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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6호> 과거 총파업에서 배우자

과거 총파업에서 배우자

 

현대차 노동자들은 과거 25년간 임단협 쟁취를 위한 파업, 노동악법 폐기와 재개정을 위한 총파업 투쟁으로 요구를 쟁취해 왔다. 현대차 노동자투쟁의 역사에서 단협이든 대정부 투쟁요구이든 중요한 요구들은 총파업 없이 쟁취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온전한 주간연속2교대와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 전환을 위한 원하청노조 공동 총파업투쟁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과거 총파업투쟁의 교훈을 통해 원하청 승리의 길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98년 정리해고 저지투쟁
 

현대차노동자들의 투쟁 역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력적인 총파업은 96~7년 노동법 개정 총파업과 98년 정리해사용자 삽입 이미지고 철회 총파업투쟁이다. 특히 98년 36일간의 공장점거파업은 가장 강력한 총파업투쟁이었다. 그럼에도 98년 투쟁은 정리해고 최소화 논리에 무너졌고, 지도부의 직권조인으로 사실상 패배했다. 여기에서 노동자들은 무엇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가?

 

 

투쟁의 교훈


첫째, 투쟁의 상과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98년 투쟁은 IMF 경제위기 하에서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상이 불명료했다. 경제위기 하에서 회사 살리기를 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 살리기를 할 것인지 분명한 판단이 필요했다. 노동자 살리기를 선택했다면 노동자 살리기의 구체적인 행동강령이 제출되어야 한다. 노동진영은 이 대목에서 철저히 대응하지 못했다.

 

둘째, 노동자의 대안을 가지고 공세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 당시 노조지도부는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의 대안(주 38시간으로 근무시간단축, 주간연속2교대로 근무형태 변경, 배치전환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을 가지고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전개했음에도 끊임없이 흔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안을 분명히 하고 공세적으로 나아가기보다, 오히려 가능성이 없다며 수세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셋째, 양보교섭을 해서는 안된다. 98년 투쟁에서는 양보교섭을 거듭하면서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약화시켰다. 노조는 배치전환, 임금삭감, 단협개악, 희망퇴직까지 순차적으로 수용하면서 거듭 뒤로 밀리고 급기야는 가장 위력적인 투쟁을 벌였음에도 ‘정리해고 최소화’까지 밀린 것이다.

 

넷째, 투쟁을 통한 조직력 강화라는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당시 투쟁을 벌이는 내내 ‘폭력진압 당하고, 정리해고 된다면 노동조합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팽배했는데 조직보존논리가 역으로 조직력을 더 약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됐다. 자본은 대부분의 활동가들을 해고시키거나 무급휴직 처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더욱 위축됐다.

 

다섯째, 민투위 등 현장조직들의 역할이 전투력 증강에 집중되는 한계를 보였다. 현장조직 활동이 사수대 활동을 뛰어넘어 사측과 정권의 회유와 탄압에 흔들리는 지도부를 견제, 견인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의지를 조직하는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줬다.

 

하지만 98년 총파업투쟁이 한계를 드러내며 패배했을지라도, 투쟁을 준비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노조와 현장활동가들이 혼신의 노력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조합원 교육, 간담회, 아파트 단지 조합원 가족 조직화, 지역 조직화 등 현장을 넘어 가족, 지역까지 조직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정리해고 철회-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투쟁은 98년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였고, 노동자의 대안을 가지고 자본과의 전면전을 펼친 투쟁이었다.

 

2012년, ‘노동혁명’이라 말하는 주간연속2교대-사내하청 정규직화는 가장 명확한 노동자의 대안을 가진 공세적 투쟁이다. 수세적-방어적인 투쟁으로 후퇴를 거듭해왔던 지난 노동자투쟁에 전환점을 만들어낼, 그리하여 노동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낼 투쟁이다. 따라서 이 투쟁은 98년 투쟁만큼이나 중요한 투쟁이다. 그리고 총자본과 전면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투쟁이다. 우리의 각오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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