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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1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2호> 강령, 이렇게 생각한다!
    사노위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2호> 강령, 이렇게 생각한다!

 

강령, 이렇게 생각한다!

 

[편집자 주]그동안 4회에 걸쳐 3개의 강령초안 제출자의 의견을 게재하였다. 이번호는 현재 논의되는 강령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을 게재한다. 강령 초안의 성안과 토론 그리고 완성에 있어 도움이 되길 바라며, 독자들 역시 강령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목적지와 선로로서의 강령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영원한 사회체제가 아니다. 노예제, 봉건제 사회가 그러하였듯이 역사적으로 일정기간 존재하는 역사적 체제일 뿐이다. 역사적 사회체제들을 지탱해 온 노예와 농노는 각각 노예주와 봉건영주 지배하에 그의 노동력을 빼앗겼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노동자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배계급인 자본가로부터 착취와 탄압 속에서 힘겹게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민중이 착취체제인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착취 없는 사회로 나아가려는 역사적 욕구는 자본주의가 폐지되지 않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자본주의를 폐지함으로써만 착취와 탄압에서 벗어나 자기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노동자민중의 역사적 욕구를 그들과 함께 앞장서서 투쟁으로 이끄는 것이 노동자당이다. 노동자당은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착취 없는 사회로 나갈려는 노동자민중의 기관차이다. 그 기관차는 분명한 목적지와 선로를 갖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민중을 사회변혁의 길로 모아내서 자본주의 폐지를 위해 달려 나아가야 한다. 그 기관차의 목적지와 선로가 바로 강령이라고 생각한다.
 
강령에는 자본주의 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 담겨야 한다. 즉 기관차의 목적지와 선로가 노동자당의 전략과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당의 목표는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것으로 전략을 설정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노동자권력을 수립하기 위해 노동자 대중을 어떻게 조직하고 투쟁에 나서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 전술로 나와야 한다.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그렇게 갈 수 있는 대략의 전략과 전술은 있어야 노동자당이 출발할 수 있다고 본다.
 
3차 총회를 앞두고 강령토론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기간이 강령기초위원 그룹들의 강령 작성과 그들 간의 토론이었다면 각각의 초안이 나온 뒤부터는 전체 회원 간의 토론으로 발전하였다. 거기다가 사노위를 둘러싼 외부 조직과 활동가들 사이에서 강령에 대한 관심과 훈수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사노위 강령토론이 우리들만의 토론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사노위 강령토론은 사노위 주변 조직과 동지들에 큰 파장과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루아침에 완벽한 강령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든 회원들은 근거와 논리로 자기의 주장을 하되, 다른 동지의 정당하고 근거 있는 주장에는 귀 기울이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도 정리가 되지 않는 쟁점이 있다면 이후 실천과정 속에서 해소해 나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우리는 같이 해보려고 모인 것이지, 차이를 확인하고 결별하는 수순을 밟기 위해 사노위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자. 근거 없는 주장과 과도한 주장은 자제할 줄도 알고, 다른 동지의 근거 있는 주장에는 귀 기울일 줄 알아야 자본주의 한국에서 노동자`민중의 첫 기관차로 사노위가 자리 잡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남은 기간 최대한의 집중과 토론으로 사노위가 노동자당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침목을 다 같이 깔아나가자.
 
김동성
 
 
 
 
 

강령은 당의 가장 효과적인 선전이다!

 
사노위는 공통의 강령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 많은 동지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이는 당연하다. 하나의, 그리고 올바른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강령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당건설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강령을 통해 우리가 한국의 노동자 계급에게 알려야 할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 독재의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부르는 이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사적소유의 철폐를 포함한 부르주아에 대한 독재, 그리고 노동자 민주주의이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과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는 폭력혁명을 통해 이루어지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일차적 목표로 한다. 그리고 노동자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때문에, 자본가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며 이제껏 억압받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나라의 운영과 생산을 직접 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기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하나 실상은 하나이다. 계급이 어느날 갑자기 증발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민주주의는 사적소유의 철폐와 부르주아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권력을 분쇄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적소유의 철폐는 노동자 민주주의를 통해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의 사용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또다른 국가권력을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독재는 권력을 잡는 방식이자, 새로이 만들어질 사회의 기본 운영원리이다.
 
노동자 독재가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의 중요성도 있지만,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의 노동자 계급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노동자 독재는 일당, 혹은 개인의 독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민주주의의 발달이 사회주의를 가져온다는 말도 아니다. 생산수단이 노동자 손에 들어와야 하고, 그것을 노동자가 직접 관리,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의 강조이다.
 
또 하나, 우리는 노동자독재가 당독재로, 당독재로 관료독재로 변하는 소련의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 노동자 독재가 포함하는 두 가지 측면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임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발달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나라나, 사적 소유는 철폐되었지만 노동자 민주주의가 전혀 실현되지 않는 나라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강령을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이 목표로하는 사회주의 사회가 이것이며, 우리는 어떠한 전략전술을 통해 이 사회에 도달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강령토론회에서 느낀 점, 그리고 조금이나마 아쉬웠던 점도 이러한 부분이다. 강령 토론회에서는 3인안, 5인안, 제4인터안 동지들의 발제와 상호 질문을 통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서로 간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부족하나마 토론이 이루어졌고, 그를 통해 서로 다른 안의 입장이 명확해 지고,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와 오해가 줄어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세 안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가지고서도 나는 소위 진보진영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들, 학생들에게 이것이 대안이기에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에 함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던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 건설은 이제까지의 진보운동진영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이다. 그렇기에 당 건설의 목표와 방법으로 나타나는 강령이 그 시도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이들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강령이 하나로 합쳐 질 때,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강령등을 통해 더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계급을 설득해 나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든다.
 
김정석
 
 
 
 

노동자가 이해하는 강령을 만들자!

 
노동자정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민주노총은 반MB승리와 진보정치 승리를 말하며 사실상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 진보정당에서는 MB심판을 위해서는 민주당과의 연대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사노위는 이런 흐름에 대해 민주대연합과 진보대통합의 기만성을 폭로하며 노동자계급정치를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이 현실화되려면 유인물, 혹은 구호로 표현되는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정당이 아닌,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지역과 현장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실천하고 조직할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아직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과 자본주의 철폐, 사회주의가 먼 미래의 일, 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에게 바로 현실의 과제이고, 투쟁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강령’ 건설을 통해, 당면한 투쟁의 결합을 통해 이 문제를 노동자들과 함께 돌파해나가야 한다.
 
현재 사노위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정당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강령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순회토론이나 정치신문을 통하여 강령초안을 제출한 입장 및 토론이 치열하게 진행 중에 있다. 정말로 치열하게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강령토론을 하고 있으면 지금 진행 중인 강령을 가지고 노동자계급정당과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당신은 사회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라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어떠한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에게 강령이란 노동자계급으로 조직하고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정당을 조직할 수 있는 무기이어야 한다. 노동자의 투쟁이 근로조건 개선과 임금 및 고용을 목표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투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건설할 새로운 사회, 강령으로 표현되는 노동자계급정당과 건설할 사회주의 사회에 동의하고 투쟁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강령토론은 너무나 어렵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면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을 접한 현장활동가들에게는 이 토론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머리를 맞대고 당 건설 논의를 하기에는 강령논의는 일부의 논의로 제한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들만의 강령토론, 마치 학술대회처럼 자신의 지식과 주장만을 관철시키려 하는 건 아닌지 이런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물론 끊임없는 학습과 강령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과 선동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에게 아무리 훌륭한 강령이라 해도 이해할 수 없다면, 조직할 수 있는 무기로 사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계급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민주노총의 투쟁으로는 근로조건이나 고용, 임금인상은 쟁취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은 불가능하다. 노동자의 투쟁이 노동계급투쟁으로, 불평과 불만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열정으로 조직될 때만이 우리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정당을 중심으로 우리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강령을 무기로..
 
우리에게 필요한 경령은 학습능력과 이론적 역량을 중심으로 한 강령토론이 아닌, 혁명사를 중심으로 한 이론논쟁이 아닌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무기를 만들기 위한 강령이 되어야 한다. 혁명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백형록
 
 
 
 
 

동의하는 지점을 분명하게 하고, 이를 확대하자

 
사노위에서 하는 3번의 강령토론회에 참여했다. 세 번의 토론회를 참여하고 나서야 사회주의노동자당 강령의 논쟁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5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토론회는 나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5월 24일 나에게는 네 번째 토론회가 전북본부 중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나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하고 나의 실천에 큰 도움이 될 자리이다. 전북지역의 사회주의자, 현장의 전투적 활동가들이 많이 참여해 함께 논쟁하고, 결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대학교 출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대공장 현장활동가 출신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동지들보다 늦게 사십줄의 늦은 나이에 사회주의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이후 다양한 일을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더러움을 너무 많이 보고, 느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질 때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되었고 나름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 활동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철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민주노동당은 이제야 사회주의 가치를 폐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드러냈다). 그 때 한 동지로부터 학습제안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학습을 하게 되었다. 학습을 하면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사회주의운동을 하는 조직을 만나기 어려웠다. 학습을 현실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조직을 찾아보기는 더 어려웠다. 이명박정권의 심장을 서늘하게 한 촛불투쟁이 벌어져도 사회주의 조직은 그렇다할 활동과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내 옆에서 함께 학습한 이병렬 열사가 분신을 했지만 난 조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투쟁하자고 했지만 투쟁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주위의 몇 몇 사회주의자 개개인들이 모두 열심히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실패했다. 안타까왔지만 그것이 사회주의자 개개인들의 한계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주의운동 조직들의 한계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조직활동이 필요하고 당 건설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도 촛불투쟁의 경험 때문이었다. 촛불투쟁을 경험하고, 쌍차투쟁을 보면서 고민할 때 사노위를 알게 되었고 전북의 개별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주저 없이 사노위에 가입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기회가 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처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절박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사회주의 강령 토론을 하면서 아직도 부족함을 느낀다. 강령토론에 입장을 말하고, 앞장서서 강령논쟁을 하지 못하지만 강령의 소중함은 잘 알고 있다. 강령토론회에서 쟁점별 차이를 좁히는 것 같으면서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세 안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세 안이 무엇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지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은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자본주의를 철폐할 노동자권력이 대중파업에서 솟아나 전국적으로 이중권력을 창출하고 끝내 자본가권력을 타도하고 승리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고 부르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민주주의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 이 정도는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로 현실 투쟁에서 함께 하면서 개별투쟁과 권력장악투쟁의 다리를 놓을 요구를 조직하고 투쟁하는 것, 그것이 지금껏 우리의 공동활동 아니었나. 전북에서는 늘 그런 고민으로 활동했다. 현대자동차 전주지회 투쟁에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요구하면 투쟁한 것, 그 후속으로 다양한 사업을 배치한 것도 연장선상의 일이었다. 전북버스파업이 완전공영제(사업권 몰수, 노동자통제 하의 완전공유제)를 요구하고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 것도 사노위전북의 첫 제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당면투쟁을 권력장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이행요구에 대해 더 큰 고민이 있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사노위를 통한 당추진위 건설 외에 다른 방안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강령논쟁을 더 치열하고 심도있게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쟁은 논쟁대로 해야 하지만 서로가 동의하고 있는 지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난 확정된 강령에 따라, 조직의 정치방침에 따라 현실에서 활동할 준비는 되어 있다. 전북지역에서 현장투쟁에 결합하면서 사회주의자로서 최선의 활동을 할 결의가 되어 있다.
 
김영범
 
 
 
 

강령논쟁, 보다 풍부하게!

 
강령은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강령(초안)의 대중적 제기! 지배 권력인 자본가 국가의 전복을 위한 노동자 계급의 당, 전위당의 강령은 변혁운동 한복판에서 대중적으로 선동되고 운용되어야 할 실천적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러나 제출된 초안 모두 한마디로 ‘낯설고 어렵다.’ 강령건설의 방식에서 ‘집단적 연회’의 조직화와 이를 통한 ‘집중과 내외적 정치적 긴장’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령논의는 총회를 앞둔 시점에서 풍부해지고 있다. 미래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복의 밑그림, 결국은 내가 만들고 소속하고 운용할 당의 모습이 논쟁의 과정에서 어느덧 손에 잡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출된 3개의 강령초안들은 각 논자들의 상대 안에 대한 그 예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차이는 크지 않다.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사회를 이윤과 임노동을 기본관계로 하는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사회주의’ 로 명명한다는 점에서, 또한, 창출할 권력 혹은 정부의 형태를 노동자 민주주의에 근거한 ‘노동자 권력’으로 분명히 한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건설하고 운용할 당은 당 프로그램에 동의된 의식된 분자들로 이루어진 전위당이며, 계급투쟁일체를 책임지도 이끌어나갈 것을 자기 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3개의 안은 공히 동의하고 주장하고 있다.
 
몇 가지 지점에서 차이점을 문서상으로 해설상으로 존재하나, 본질적 차이라기보다는 강조의 차이라고 보여진다. 풍부한 실증과 근거로 치열한 논쟁으로 강령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야 하지 않을까? 각 안에 대한 단상과 판단을 제기하는 것으로 주장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5인안은 당의 기본임무로 국가권력 전복 과제를 실질적인 도상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의 모델과 접근법에서 단정적이고 일면적이며 구태성에 얽매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위당 역할론과 혁명론의 그 당위적 정당성에도 상당한 이론적 공격에 노출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결정적으로 이행요구강령의 문제이다. 당면계투와 혁명사이의 가교로써 이행강령안의 문제는 해외에서 얻은 영감(?)의 문제라기보다는, 이행요구가 ‘개량과 혁명’사이에서 혼란을 격고 있기 때문이다. 이행요구(10개중 절반정도)로 말미암아 혁명이 자칫 개량주의에 갇힐 위험이 있다.
 
둘째, 3인안의 핵심은 ‘과정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에 있다. 제출된 안중 가장 자기 일관성이 높다. 그 동안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성찰과, 생산영역을 넘어 재생산영역에 대한 인식의 확장에 기반 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주체형성’의 강조로 잘 드러난다. 변혁운동은 민주주의를 통해 자기 근거와 성립이 가능하며, 사회모순의 전반영역에서 주체를 형성해 들어 갈 때만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별개인 듯 강조되는 ‘민주주의’는 동어반복이라는 점, 각 영역의 ‘과제 문제’를 ‘조직화 주체’로 잘못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각 영역에 조직화의 대상이 따로 있는가? 분리주의, 의식개조론, 점진주의로 공격을 받는 이유다.
 
셋째, 4인터 안은 테제식으로 명료하게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4인터의 한국사회 성격 규정 등 전반에서 드러나는 인식은 기존의 제국주의(혹은 신식민지)론 분석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실천적인 강령 건설운동이 필요하다. 즉, 강령은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실천을 통해 확보하고, 이론을 높여나가는 과정이다. 당건설과 함께 이론적 논쟁은 가족주의식, 혹은 써클식 안개를 걷어내고 본 궤도에 다다를 것이다. 전복을 위한 강령논쟁,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자!
 
김동수
 
 
 
 

당건설의 결의로 강령을 건설하자!

 
중요한 것은 현실의 계급투쟁에 대한 구체적이고 치밀한 분석이다
 
지금 사노위에서 ‘강령’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막연한 전망을 구체적인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을 체험하고 있다는 비장함이 있다. 그러나 지금 사노위 강령토론에 대해서 몇 가지 문제의식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 사회주의자,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의 역량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강령을 천상에 있는 고귀한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령은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밝히고,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계급운동의 경로를 명료화시키는 것이다. 즉 계급투쟁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강령토론은 선배 혁명가의 문구 ‘해석’과 러시아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만 ‘한정’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20세기를 살고 있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현실의 계급투쟁에 대한 구체적이고 치밀한 분석이다. 선배 혁명가들이 살았던 시기와 그들의 혁명적인 투쟁은 우리의 ‘나침반’일 뿐이다. 그 나침반으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길을 찾아 나가야한다. 특히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발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러시아혁명의 ‘굴절’과 68혁명의 ‘패배’에 대한 균형잡힌 고찰은 너무나 절실하다.
 
이른바 ‘정통’과 권위 있는 분석틀이 부재한 상황에서 우리가 과거 ‘사회구성체논쟁’ 수준의 구체로 상승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최소한 현실의 세계경제와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전제되어야겠다. 그리고 21세기에 새롭게 고양되고 있는 반전·반세계화 투쟁과 선진국에서의 계급투쟁, 그리고 남미와 중동 정세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강령 토론은 지금 수준에서 정리할 수 있는 원칙적 수준을 명료화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사노위의 3가지 강령초안은 공히 혁명적 지향을 공유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임박한 과제를 사회주의 혁명으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으며, 국가권력의 파괴/대체라는 레닌주의적 전통을 다시금 복원하고 있다.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왜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가?
 
그런 면에서 지금의 강령토론은 교감을 통한 상호침투의 과정이어야 한다. 오히려 현실의 계급투쟁과 조직적으로 연루되면서, 공동의 연구과제들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공동의 과제들을 다양한 단위들, 개별 활동가·연구자들과 함께 풍부하고 구체화시켜나가자. 섣부른 파산선언이 아닌, 당건설의 결의와 진지함으로 힘차게 강령건설 투쟁을 전개하자.
 
심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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