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작.고.붉.은.덩.어.리

서로를 전부 다 알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러 가지 말들에 결정되거나 편갈리지 않고, 너의 아픔과 슬픔을 나의 아픔과 슬픔처럼 느낄 수 있다면.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다리 사이엔 작고 붉은 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물컹하고, 단단하고, 부드러운 나의 ‘살’에 대해 민감해 짐으로써 다른 여러 가지 감각에 민감해지고, 나아가 다른 존재의 고통에 민감해지는 것.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에 호소함으로써 살아있거나 살아 있었던 것들의 감각들을 좀더 나와 가까이 느끼는 것. ... 누군가 이 이야기를 볼 때, 머리보다 몸이 이야기하는 것에 좀더 귀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몸이 느끼는 것이 전부 진실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머리보다는 좀더 솔직하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거부하거나 간과하지 말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도, 살아있는 다른 존재들도 느낀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몸의 감각에 기반해서 다른 이들을 바라본다면 좀더 쉽게 그들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해는 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보다는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런 방식의 소통. 그것이 여성성의 한 측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 여덟 개의 방, 여덟 개의 시간 전시회 중 작가 소하의 그림과 글 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