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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 nothing day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buy nothing day)

 

 

올해 11월 25일은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었다.

이 캠페인은 1992년 캐나다의 벤쿠버(Vancouver)에서 테브 데이브(Ted Dave)가 시작하여,

나이키에 버금가는 '대항 상표'를 만들겠다며 스니커즈 예약판매도 했었던 

애드버스터지(Adbuster)가 국제적으로 띄웠으니, 벌써 15년이 넘었다.

이 단체는 무더기로 빈 카트를 끌고서 대형 매장을 빈둥빈둥 돌아다니면서

돈 한푼, 찌라시 종이 한장, 플랑카드 한장, 안 쓰면서 '바이 나씽 데이'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그 뒤에는 벽보 붙이니라 전단지를 찍어댔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라스 러미스, 녹색평론사)를 밑줄 치면서 읽어왔던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마저

겨울은 춥고, 단체 기부금은 영 끊기고, 월급은 간당간당해지고,

하여, 마음이 스산해지는 80년 만의 경제 위기에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전셋값이 안 오르는 것과 자동차가 안 팔리는 것 외에는 위로할 코딱지도 없습니다요.

 

게다가 경제위기가 소비 위축을 가져와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 그악스러운 상황에서

호주 총리는 보너스를 주고 우리의 명박씨는 유가 환급금이라는 돈을 풀어 내수 소비를 진작시키려 한다.

낭비는 안 좋은 것이라고 성경에도 나와있는데, 이제는 개신교 장로님도 돈을 쓰라신다. 

'저축해야 나라가 산다'는 새마을 정신은 '소비해야 일자리가 생긴다'라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올해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모두들 경제가 성장하니 않으니, 정말이지 풍요롭지 않다고 대답하는 시기에 '안 사야 한다고'  스스로를, 그리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

또한, 어쨌든 강요로라도 소비를 줄여야 하는 이 시기야말로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을 '덜 우아' 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좀 덜 쌈박하되, 겉멋은 소금에 절인 배춧잎처럼 푹 죽어버린.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자발적 소박함을 외치는 것마저도 

부러울만치 쿨한 '문화 청조자들'을 넘어설 수 있도록.

지금까지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대개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블라, 블라, 블라 들이었다.       

 

 

기술발달로 인해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생산성은 400% 이상 향상되었다. 50년대에 40시간 일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11시간만 일해도 가질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40시간 씩 일한다. 바꾸어 말하면, 50년대보다 400%씩 더 많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도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경제학'에 나온 것처럼 만성 질병으로 병상에 누워 고액의 이혼청구소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400%의 효율로 경제성장률을 증가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 더 많이 써서 이 속도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려면, 지구와 건강을 망치는 수밖에 없다. 에너지 효율성 개선과 환경친화적인 기술이 60억 인구의 욕구와, 총 에너지의 80%를 사용하는 선진국 인구의 400% 늘어난 소비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버다. 기술이 다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친환경 기술로 전환하는 과정마저도 많은 에너지가 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이 필요하고 불면증을 달랠 약을 산다. 마구 생산되는 유해물질로 인해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간성화를 낳고, 일상생활 속 유해물질들이 암 발병률을 높인다. 농약도 많이 생산되고 제초제도 많이 뿌려지고 PCB도 많이 버려진다. 우리는 이것들을 다 몸으로 앓아야 한다.

내수 진작을 위해 당선되자마자 명박씨는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없앴다. 커피숖마다 일회용컵이 마구 쓰이고 이런 일회용 플라스틱들은 태평양을 떠돌다가 폴리머로 광분해된 다음, 유해물질을 흡착한다. 플라스틱 폴리머를 먹이로 착각한 바다 생물들은 그것을 먹고 죽어서 발견되거나, 오염된 채로 시장에서 팔린다.

 

반면 경제위기가 닥치자 '본때없는' 근본적 생태주의자가 쌍수들어 환영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택 건설이 줄어들어 캐나다의 곰 열대우림 숲(the Ancient Bear Rain Forest)에서 벌목이 줄어들고 있다.

회색곰 (grizzly), 엘크, 늑대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북미에서는 카풀, 자동차 공동소유, 대중교통 및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 경제위기의 시기에 삼천리 자전거의 주가가 오른다는 소식이 있는데 확인은 못 해 보았다.우리의 삼천리, 달려라~ 룰루)  아르헨티나에서는 노천굴(strip mining) 광산이 문을 닫았고, 캐나다의 알버트(Alberta) 주에서는 타르 샌드  개발계획이 보류되었다.

 

경제성장이 되면 우리는 풍요로워 지는 것 같은데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소득 1만 5천불이 넘으면 그 이상의 소득은 행복지수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구는 망가지고 취약자들은 환경성질환과 암으로 고통받는다.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1933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50시간의 노동 시간을 40 시간으로 단축하였다.

행복지수를 측정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불행하게 나오는 실업자들이 득시글한 시기에,  주당 10시간의 노동시간을 줄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도록 했다. 그리고  노동자는 40시간의 노동을 통해, 돈이 아니라 인생을 채우는 수많은 '쓰잘데기없는 것들'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결국 효율성이라고 절대 없는 사랑, 관계, 슬로우 푸드, 추운 겨울 이불 속 게으름 같은 것들이 인생을 사금파리처럼 반짝반짝하게 해준다.  

대공황의 삼엄한 시대에 하루 10시간의 노동이 8시간의 노동으로 대체되었다.

2008년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단 하루의 쇼가 아니라 8시간의 노동을 6시간의 노동으로 대체하는 운동을 통해서

반소비를 통한 행복한 날들을 맞았으면 좋겠다.

물론 물가가 요로코롬 오르는데 최저임금을 낮추려는 황당 시츄에이션 속에서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 그 단어 자체로 잔인하지만서도 말이다.    

 

이 글은

http://www.theecologist.org/pages/archive_detail.asp?content_id=2005 을 번역한 후, 조금 의견을 더한 것이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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