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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밤샘, 민주주의

조계사 앞에 세워진 '운하백지화 국민행동' 농성장 천막에 앉아 차소리를 부릉부릉 들으면서,

옆에 있는 생태지평 활동가들이 보는 '선덕여왕'의 소리를 들으면서, 거리에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 훈련을 혹독하게 하고 있다. -_- 

 

천막 22일째라는 농성장을 '운하백지화 국민행동'에 참여하는 환경단체들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는데

단체도 몇 개 안되고, 활동가 다들 무슨 프로젝트네 뭐네 하는 실무도 그대로고, 농성장에서 자도

다음날 사무실에 나가 일해야 하니까, 농성장에 누가 나와서 잠을 자는가는 

한마디로 뜨거운 감자요, 계륵이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이다. 

비정하게 돈으로 치자면 내 기준으로는 한 20만원 쯤 주면 할까말까한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천막 농성장, 오늘로 22일째>

 

 

더군다나 지난 주 금요일에 내가 일하는 단체가 당번이었고 그 다음날인 토요일에는 범국민대회가 있어

새벽부터 저녁 6시까지  땡볕 아래에서 시청광장에 붙박이로 있어야 했기에 오늘 당번은 참으로 거시기했던 것이다. 

 

이러고 자시고 간에, 나는 조계사에 오는 길바닥에서 같이 일하는 활동가와 엄청 싸웠다. 

좀 얌체 같아서, "아니, 금요일도 농성장에서 안 자고 토요일도 아예 못 나오면 어쩌겠다는 거냐"

라고 강짜를 부렸다가, 왕 크게 싸웠다.  

어린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사람,  시부모와 함께 살아서 시간제약이 있는 사람, 몸이 안 좋은 사람, 집에 문제가 있어 

일찍 가봐야 하는 사람 등을 빼고 나면 남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그리고 그 남는 사람들이 농성장의 밤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 번도 자지 않은 반면, 어떤 사람은 몇 번을 잔다. 

 

사람은 다양하고, 사정도 다양하고, 각 개인마다의 일정도 다 중요하고, 

그것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다양성의 밑감이라는 것,

그래서 소수자 할당제도 하고 산술적인 평등이 아니라 사정을 고려한 형평성이 중요하다는 것,

그런 것을 알지만 말이다. 

동성애자나 장애인 이슈 등 현재 내 일상과 뭔가 관련을 맺고 있지 않으

추상적으로 외쳐야 하는 다양성은 쌍수들어 환영하지만 말이다.

 

내가 뭔가 손해를 봐야하는 다양성은 너무 힘들다. 

사회적 양육, 돌봄 노동을 그리 많이 읽었지만 어쩔 때는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싸운 활동가는 아이가 없는 사람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금, 토요일을 못 나온다고 했는데 사실 그게 얌체처럼 느껴졌다. 화가 났다.

나도 개인 사정은 많다, 는 말이 목구멍을 치려고 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다양성이고, 어디까지가 '20만원 알바'라도 할까말까 고민이 드는 일을 감내해야 하는 다양성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4대강 죽이기 막는 활동은  '지더라도 해야만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여기 와서 자원활동할 수도 있는 거지만, 지금 그 차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니깐.)  

그 사람에게도 개인 사정은 참으로 절박했을 것이다. 

그 날만은 아이 키우는 사람들이 배려받는 것만큼 배려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빠진 공백을 누군가가 메워야 하고 그게 내 몫이 되었을 때에는 다양성이고 뭐고 자시고 간에 

길바닥에서 소리쳐서 싸울만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명박이가 민주주의를 다 말아먹었다'고 그 사람 욕을 밤이고 낮이고 간에 들입다 했는데

오늘 농성장에 앉아 민주주의, 나도 말아먹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  

   

 

<농성장 물품 준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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