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

나의 화분 2005/02/03 03:56
지율스님이 2004년 3월 펴낸 <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펴냄)라는 책의 서두에 실린 법륜 스님의 글이라고 합니다.
프레시안에 실린 글인데, 글이 좋아서 이곳에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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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지율스님은 천성산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지요.
어느 골짜기에 어떤 도롱뇽이 사는지도 꽃이며, 나무며, 바위며, 늪이며, 오솔길이며, 풀벌레들이며 화엄벌에 얽힌 사연까지도. 그래서 지율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덧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고향 산천을 달리고 있지요.
가재는 어느 골짜기에 많고 어느 바위 및에 큰 놈이 사는지도 더덕은 앞산 응달진 곳에, 도라지는 뒷산 양지바른 쪽에 진달래며, 산딸기며, 버섯이며, 나물이며, 칡이며 심지어는 가시나무 덩굴까지도 어디에서 사는지 다 알지요. 많은 밤 중에서 어느 밤나무의 밤이 가장 일찍 익는지 어느 밤이 고소한지 어느 감나무의 감이 맛있는지도 다 알지요.
그것뿐인가요. 바위, 돌이며, 붉은 흙이며, 나무며 심지어 산에 사는 토끼며, 새까지도 어디 깃들이는지 알지요. 타지 사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 대해 잘 안다고 하면 저는 웃지요. 웃을 수밖에요.
고향 방문을 했을 때 새 길을 낸다며 길가에 고목나무가 없어진 것을 볼 때 나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을 맛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우리 앞에 사라져 갈 때 나는 고향을 잃어 가고 있고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집에 들렀을 때 반겨 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 텅 빈 가슴을 안고 뒷마루에 멍하니 앉아 먼 산을 바라보듯이 내 고향 산천의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 고향 산천을 파괴하고 어떻게 돈으로 보상 받을 수 있을까요?
지율스님을 통하여 스님의 자연 사랑, 천성산 사랑, 도롱뇽 사랑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다 보면 우리의 잃어버린 고향, 어린 시절, 소년 소녀 적 꿈을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물신주의, 속도주의에 물든 우리의 불쌍한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 21세기라는 숫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율스님의 맑은 눈으로 본 천성산의 이야기로부터 새로이 시작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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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3 03:56 2005/02/03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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