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을 되찾자 (서문, 1장)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6/08/27 13:50
솔부엉이 도서관에는 책이 많다.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하다.
어제는 도서관 소파에 누워 오후내내 책을 보았다.
원래 피자매연대 워크샵 준비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려고 했지만 책 읽는 재미에 빠져서 그냥 대추리에 있었다.
 
난 도서관이 좋다.
지금 하고 있는 이 번역이 끝나면 소책자로 만들어서 솔부엉이 도서관 한쪽에 꽂아두어야겠다.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번역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친구들도 느끼길 바란다.

우리의 삶을 되찾자
- 여성들을 위한 대안적 건강관리 안내
알리시아 논 그라타(Alicia non Grata) 지음


        서문

        우리 자신을 치유한다는 것은 모든 여성들의 권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전문가들’의 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그들은 우리의 질병과 문제에 대해 ‘평균적인’ 여성에게 맞는 처방을 내린다. (또는 생체해부에 근간을 둔 현재의 의료계에서 실험대상이 되고 있는 보통의 쥐나 개에게나 맞는 처방인지도 모른다) 이 전문가들의 처방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병이 악화되거나 또는 다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통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을 바꿈으로써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훨씬 덜 독하고 몸의 기운을 빼앗아가지도 않는 천연 식물성 약재나 자연요법을 사용해 병을 치유할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을 고장난 부분들이 아니라 전일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은 의사의 충고를 무시해야 한다거나 현재 의술이 이룩한 성과들을 모두 폄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 이어질 내용들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을 치유한다는 것이며, 자기 몸이 자신에게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먼저 나는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자립적 의술과 이를 담당했던 여성조산사, 천연약제사, 치유사들의 노력이 왜 저지되고 억압당해 왔는지 살펴본다. 그 다음으로 나는 여러 여성질환들, 성병, 월경에 관한 문제들, 피임, 낙태, 임신 그리고 여성을 위한 균형잡힌 식생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는 모두 천연약초와 자연의학의 관점에서 다뤄질 것이다. 하지만 먼저 여성들이 산부인과 의사들과 근대 과학 앞에만 서면 왜 그렇게 움츠려 드는지 알아보기 위해 제1부를 시작해야겠다.


        제1부 마녀, 조산사 그리고 산파
        여성 치유사들의 역사와 그들에 대한 억압과 박해


        예전에는 의학이 민중의 편이었지, 고급 지식을 전유한 상류층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치유사들은 오늘날과는 다르게 여성들이었다. 지금은 대체로 의사의 90%가 남자들이다. 기독교가 국교화되기 이전의 로마 시대에는 몇 종류의 여성 치유사들이 있었다. (출산 전문, 일반 의학 전문 등) 이들은 모두 여성 신전과 결부되어 있었다. 멕시코에서 여성 농민 치유사를 ‘레시비도라Recibidora’라고 불렀는데, 이는 산과의사, 신모(神母), 여성 사제, 그리고 마녀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기독교 시대 전반기에 의술은 거의 전적으로 여성 치유사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왜냐하면 고대에 치유의 기능을 담당했던 사원들은 거의 대부분 여신을 섬기는 여성 성직자들이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주1) 일반적으로 천연약초시술을 했던 여성들은 산파나 조산사, 치유사, 의사 등이었다. 중세 초기 영국에서는 여성 부족장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여가장의 법적 권한을 갖고서 법을 집행했다. 영국의 대헌장에서는 이들을 ‘judices de witch’ 라고 칭하고 있는데, 이는 판관인 마녀를 가리킨다. 원로 여성들은 이전에는 부족들 사이에서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가부장적인 종교(이를테면 기독교)와 법률이 차츰 원로 여성들의 정치권력을 빼앗아갔다. (각주2)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녀사냥이나 이교도에 대한 종교재판 또는 이처럼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끔찍한 범죄들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14세기와 17세기에 벌어진 마녀사냥은 ‘미쳐버린 군중들’ 때문도 아니고, 맥각중독(맥각ergot은 LSD를 만드는 균류의 일종으로 맥각중독이 되면 환각 상태에서 비이성적인 일을 하게 된다) 때문에 생긴 일도 아니며, 미신과 공포에 실린 사람들이 벌인 극단적인 행동 또한 아니다. 마녀사냥은 여성의 권력과 농민봉기를 쓸어버리기 위해 잘 짜여진 계획 속에 진행된 몰살작전이었다. <마녀, 산파 그리고 간호사 - 여성 치유사의 역사>라는 책에서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와 디더 잉글리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마녀사냥은 조직적으로 진행된 운동으로서, 교회와 국가가 시작하고 재정 지원을 했으며 강제로 집행한 것이다...” 마녀사냥이 가장 포악하게 이뤄졌던 시기는 봉건제도를 그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었던 사회대격변 시기와 연관되어 있다. 농민들의 대규모 봉기와 음모 그리고 자본주의(이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중에서 여성주의자들에 의해 후속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몇 가지 단편적인 증거에 의하면 몇몇 지역에서는 마녀들이 여성들이 이끄는 농민반란을 대표했다고 한다.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서 희생자의 85%는 여성들(늙은 여성, 젊은 여성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각주3)

        이유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는 그 본질이 놀랄 정도로 그리고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 혐오적인데, 이것을 논외로 한다면, 그 이유는 정치적인 것에 있다. 민중의 치유사를 몰아내면 민중들 역시 효과적으로 쓸어낼 수 있게 된다. 가부장 권력이 태동하고, 계급제도가 확립되고 뚜렷해지면서 지배계급을 이루고 있던 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즉 여성들이 산부인과학을 공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지배계급은 인구를 통제할 수 있고, 자치의 들불이 퍼져나가는 것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 의학의 역사에서는 여성들로 하여금 의술을 배우지 못하게 하였다) 지배계급이 등장하고 기독교가 힘을 얻게 되면서 이같은 세력이 번창하게 된 토양은 민중의 자치에는 적대적인 것이 되었다. 그 토양이란 바로 비굴함과 맹목적인 복종이다. 여성들이 소규모 모임을 통해 만났다는 증거는 있지만 기독교에서 비난했던 것처럼 악마에게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모여서 천연 약초에 관한 지식을 나누고 지역 소식을 논의했다. 그리고 아마도 농민반란 같은 정치적 행동에 대해서도 토론했을 것이다. 이런 소규모 모임들은 축제 기간에 다른 모임들과 만나게 되었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수는 수십만에 이르렀다. (각주4) 그러나 교회와 국가는 반란의 싹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공포를 서서히 불어넣었고, 미신을 믿으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을 진행해나갔다. 천연 약제와 이에 대한 지식은 몇 세대에 걸쳐 경험적으로 논의하고 실험과 오류를 거듭하며 원인과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기독교는 완전히 반(反)경험주의적이며, 주로 신앙에 의존한다. 육감은 완전히 불신하는 것이다. 게다가 고통과 질병은 원죄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이 교회의 생각이다. 특히 출산의 고통이 그러한데, 이것은 이브의 원죄 때문에 모든 여성이 받게 된 형벌이다. 부유한 사람은 성직자인 의사에게 ‘치료’받을 수 있었고, 교회는 이를 허용했다. 그러나 수백만의 빈민들에게는 마녀와 약초 치유사들이야말로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수 세기에 걸쳐 산파들이야말로 출산 과정과 여성 신체의 내부 생김새 그리고 분만시 어떻게 힘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던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각주5) 농민이었던 마녀들이 발견한 중요한 의학적 처방 가운데 하나는 분만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맥각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맥각에서 추출한 원료가 현대의학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맥각을 사용하다가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졌다. 이밖에도 농민 마녀들은 발작 치료제로 벨라도나(belladonna) 제제를 사용했고, 심장병 치료를 위해 디지탈리스digitalis가 좋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바, 기독교와 신교의 부흥으로 여성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여성들이 이교를 믿었다거나 여신을 숭배해서가 아니었다. 이들이 가진 의학에 대한 지식이 교회와 국가에 대해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가부장적인 제도를 소유했고 지금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이들 초기 치유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여성치유사들에게는 흑마술을 부린다는 혐의가 씌워졌다. 흑마술을 부리는 사람은 인간과 가축 그리고 작물에게 저주를 내린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백마술이든 약초치료든 조산술이든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든 여성들이 시술했을 경우에는 박해를 받았다. 1542년에 제정된 마녀법에는 ‘선한’ 마녀라는 대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의술을 시술하고 여타 실용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행동이 금지된 자들’이라고 적혀 있다. (각주6) 흥미로운 것은 마녀들의 마법은 범죄행위였지만 마법사들의 마법은 번죄가 아니었다는 점이고, 마법사들의 마법은 교회에서도 가끔 실시되기도 했다. 마녀는 대부분 여성들이었고, 마법사는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여기에서 종교가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했는지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신교와 기타 대부분의 서양 종교도 포함되겠지만 주로는 기독교와 천주교에 의해서 중세시대 수백만의 여성들이 억압과 고문에 시달리고 살해되었다. (이는 근대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 여성주의 기독교라는 생각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성서를 보면 여러 곳에서 여성은 절대로 남성과 평등할 수 없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며, 불결하고, 유혹과 악의 뿌리라고 표현된 구절들이 나온다. 몇몇 흥미로운 곳을 인용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창세기 3장 16절)
*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4-15절)
* 마술을 부리는 여자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 22장 18절)

        여성들이 가진 ‘사악한 힘’과 ‘불결함’에 의해 오염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교회는 칙령을 포고하게 된다. 생리중인 여성들은 성물(聖物)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성찬을 받을 때에도 여성들은 미사포를 써야 했다. 여성들은 남자아이를 출산한 뒤에는 33일간 교회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여자아이를 출산한 뒤에는 66일간 교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분만 중인 여성은 영적으로 불결했기 때문에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다고 해도 그 자리에 있던 성직자가 죄를 사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었다.

        천주교는 교회정책에 반대하는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든 ‘마녀’라는 단어를 갖다붙였다. 또한 탈무드의 저자들은 거의 모든 여성들을 마녀라고 명했다. (각주7) 마녀는 교회가 여성들에 대해 가졌던 공포와 혐오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테이튼Elizabeth Cady Staton은 자신의 저서 ‘원조 여성주의자들이 성서를 공격하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교회의 정신은 여성을 멸시하는데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의 사도행전이나 모세 5서 같은 성경에도 나와 있고, 신부들의 증오에도 나타나며, 교회법 상으로도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금욕주의의 교리인 독신생활과 마녀의 존재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짓누르기에 충분했으며 여성을 불태우고 익사시키고 고문하는 것을 합법화했다...”

        여성과 그들이 섬기던 신은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앙심 깊은 고행자와 수도승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직자와 어머니는 불결한 것이 되었고, 악마와 내통했다고 하여 그들이 가진 전통적 지식은 악마를 부르는 주문이 되었고, 요리솜씨는 독약조제술로 둔갑하게 되었다. 이제 여성의 존재 자체는 남성에게는 원죄를 가져다준 근원이 되어버렸다. 이런 이유로 어머니와 여성직자들 (그리고 여성 치유사들)은 마녀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성서연구자들과 성서비평가들 그리고 학자들이 여성의 지위를 건드리지도 못한 이유이다. (각주8)

        슬프게도, 치유사로서의 여성들에 대한 억압은 마녀사냥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여성들은 대학입학과 의과대학 진학이 금지되었다. (물론 당시 의대는 거머리를 이용한 출혈법, 물을 이용한 치료법, 주문과 종교의식 등 엉터리 의학을 가르쳤다) 이는 미국으로도 이어져 여성은 ‘너무 약해서’ 의학을 공부할 수 없었으며, 조산술은 금지되고 불법화되었다. (몇몇 곳에서는 여전히 불법이다) 이 빈자리를 남성 산부인과 의사들이 대신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여성 생식기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이론적으로 산부인학을 공부해 시험을 보고 종이에 적힌 분만법을 본 것이 전부였으며, ‘정숙해야 한다’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에 비해 산파들은 몇 세대를 거치면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한 결과 여성의 신체와 문제들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산파들은 면허가 없었기 때문에 최신 의학의 성과와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없었다. (의사들만이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여성들은 의대에도 진학할 수 없었다. (의학 공부는 남성들에게만 허용되었다)

        아, 의학에서 여성들에게 꼭 맞는 ‘완벽한’ 자리가 주어졌다. 바로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한편으로는 의대한 ‘엄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류층 여성으로서 집안일을 쉬지 않고 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며, 항상 명랑하고 미소를 지으며, 예쁘면서도 비굴해야 했다. 간호사의 지위는 남성을 지원하되 절대로 같은 위치에서 남성과 경쟁할 수는 없었다. 간호사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은 절대로 현재의 간호사들을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니다. 간호사라는 자리는 치유사로서의 여성이라는 개념을 양보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여성의 지위를 낮추고,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사실 끝도 없이 계속할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 더많이 알고 싶다면 각주에 나온 훌륭한 책들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빼앗겼던 것, 즉 우리의 몸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치유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또한 신체의 작용을 탈신비화시키고, 기성 의학계에 맹목적으로 맡겨버린 치유능력을 되찾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우고 앞서간 사람들이 가르쳤던 천연약초 치유법과 그밖의 대안적인 요법들을 다시 배우기 위함이다. 수세기 동안 억압되고 부정되어 왔던 지식은 쉽게 되살릴 수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기성 의학계가 쉽게 기득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고, 사람들이 ‘과학자’나 ‘전문가’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면서 생기는 금전적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과 마녀, 산파 그리고 여성 치유사 자매들의 지식을 믿자.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건강이라는 중요한 한 부분을 되찾을 수 있는 자율적 발걸음을 비로소 떼는 것이다. 건강하삼!

        아나키와 평등을 위하여


        각주

1. 바바라 워커Barbara Walker, <신화와 비밀에 관한 여성백과사전> (New York, Harper and Row, 1983), 1077쪽. (모든 여성들에게 권하는 훌륭한 자료책이다)
2. 같은책. 1078쪽.
3. 바바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디더 잉글리쉬Deidre English, <마녀, 산파 그리고 간호사 - 여성 치유사의 역사> (New York, Feminist Press at CUNY, 1973), 8-9쪽.
4. 같은책, 9쪽.
5. 진 타울러Jean Towler, 조운 브라몰Joan Bramall, 역사속에서의 산파와 사회 (England, Croom Hel Ltd., 1986), 33-35쪽.
6. 같은책, 37쪽.
7. 바졸라Barjola, 바바라 워커의 책에서 재인용, 1081쪽.
8. 스탠튼Stanton, 바바라 워커의 책에서 재인용, 10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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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7 13:50 2006/08/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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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우리의 삶을 되찾자 (2장)

    돕헤드님의 [우리의 삶을 되찾자 (서문, 1장)] 에 관련된 글. 이제 곧 전국행진을 하러 대구로 떠난다. 한참 동안 번역이나 인터넷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나 그동안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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