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우울 2008/07/01 23:47

밥을 만드는 일이 너무나 귀찮다.

 

맛있는 걸 먹는 건, 좋지만.

 

만들어 준 사람에게 감사하지만, 감사와 함께 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저녁을 수박으로 때웠다.

 

어제도 한끼 반정도 먹은 것 같은데.

 

불규칙하게 먹고.......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안드는 건 왜일까?

 

누군가 밥을 짓고 청소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렴치하게도. 근데 스스로 파렴치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7/01 23:47 2008/07/01 23:47

도망

from 우울 2008/07/01 23:30

나는 도망쳤다.

 

남은 것은, 그림 세장.

 

볼품없는 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림도구들. 벽장안에 가둬두었다.

 

단단하게 생긴 상자에 담아서.

 

그리고,

 

뚜껑은 열어두었지만, 벽장문은 닫았다.

 

벽장 앞에는, 잡동사니들이 쌓여갔고, 잡동사니들때문에,

벽장문은 힘을 주어 열어도, 가까스로 엿볼 수 있을 만큼만 열리게 되었다.

 

나는 좁은 방과,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만들어진 벽장을 탓했다.

 

그리고,

 

방안을 가득 채운 컴퓨터 책상으로 도피했다.

 

시간은 흘러간다.

 

너무 열심히 도망치다보니,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말았다.

 

어떻게 다음 늪을 지날 것인가, 어떻게 다음 산을 넘을 것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잠을 잘 것인가.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이용해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언제나 충분히 닥쳐와 주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몰랐던 것도 같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어떤 문제들은 그냥 두어도, 별 탈 없이 해결되곤 했다.

 

어둠 속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거대한 숲은,

아침이 오면 그저 작은 풀숲에 불과했다.

 

닥쳐올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않고, 쉬어야 할 때 쉬어주면

가야할 길이 보이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지쳤던 것인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도망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격렬하게 미친 듯이 도망치는 인간은, 무언가 도망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지쳤다고 생각하자, 쉬게 되었다.

 

무작정 숨도 쉬지 않고, 꽤나 오래 달려주었다.

 

달리던 버릇은 내 몸 곳곳에 남아있지만,

쫓아오던 공포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인정해버렸으니,

나는 일단 이 곳에 멈추어 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7/01 23:30 2008/07/01 23:30

도피

from 우울 2008/06/09 22:19

여기저기로 도망다니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조급하게 쫓기듯이 작업을 하게 되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고사하고

끝을 내야한다는 당위조차 의심하게 된다.

 

앞으로 나흘.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나에게만 의미있는 일인데도

나는 미친 사람처럼 집착하고 좌절하고 다시 시도하다가 괴로워하기를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반복한다.

 

시간만 좀  더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는 걸 알지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8시간 정도. 잠을 자야하니 실제로는 4시간정도.

도피는 달콤하다기 보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맛이다.

 

머리를 멍하게, 비우고 싶은데 잘 안된다.

 

겨우 학교 과제일 뿐인데.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6/09 22:19 2008/06/09 22:19

여우

from 2008/01/04 03:27

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는 공손히 대답하고 몸을 돌렸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여기 사과나무 밑에 있어" 좀 전의 그 목소리가 말했다.

 "너는 누구지? 넌 참 예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난 여우야" 여우가 말했다.

 "이리 와서 나와 함께 놀아. 난 정말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의했다.

 "난 너와 함께 놀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

 "아, 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본 후에 그는 다시 말했다.

 "<길들인다>는게 뭐지?"

 "너는 여기 사는 애가 아니구나. 넌 무얼 찾고 있니?" 여우가 물었다.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인다>는게 뭐지?"

  "사람들은 소총을 가지고 있고 사냥을 하지. 그게 참 곤란한 일이야! 그들은 병아리들도 길러.

 그것이 유일한 관심사지. 너 닭을 찾니?" 여우가 물었다.

 "아니야.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 라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거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만든다고?"

 "그래" 여우는 말했다. "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꺼야....."

 "차츰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 한 송이가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걸꺼야...."

 "그럴지도 모르지" 여우가 말했다. "지구는 온갖 것들이 다 있으니까....."

 "아, 아니야! 그건 지구에서가 아니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몹시 궁금한 기색이었다.

 "그런 다른 별에서의?"

 "그래"

 "그 별엔 사냥꾼들이 있지?"

 "아니. 없어"

 "그거 참 이상하군! 그럼 닭은?"

 "없어"

 "이 세상에 완전한 데라곤 없군" 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단조롭단다. 나는 닭을 쫒고 사람들은 나를 쫒지. 닭들은 모두 똑같고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 보이지?

 난 빵은 먹지 않아. 밀은 내겐 아무 소용도 없는 거야. 밀밭은 나에게 아무 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꺼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사랑하게 될꺼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 왕자를 오래오래 쳐다보더니.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 하고 말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어" 어린 왕자는 대답했다.

 " 하지만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친구들을 찾아내야 하고 알아볼 일도 많아"

 "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 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이렇게 풀 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꺼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꺼야....."

 다음날 어린 왕자는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꺼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 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꺼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례가 필요하거든"

 "의례가 뭐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잊혀지고 있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예를 들면 내가 아는 사냥꾼에게도 의례가 있어.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의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신나는 날이지!

 난 포도밭까지 산보를 가고. 사냥꾼들이 아무때나 춤을 추면, 하루하루가 모두 똑같이 되어 버리잖아.

 그럼 난 하루도 휴가가 없게 될 거고......"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는 말했다.

 "아아! 난 울음이 나올 것 같아"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널 길들여 주길 네가 원했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그래. 여우의 말이었다.

 "그런데 넌 울려고 하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정말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러니 넌 얻은 게 아무 것도 없잖아!"

 "얻은 게 있지. 저 밀 색깔이 있으니까" 여우가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 너는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란 걸 깨닫게 될거야.

 그리고 내게 돌아와서 작별 인사를 해줘. 그러면 내가 네게 한 가지 비밀을 선물할께"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보러 갔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하나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 역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예전의 내 여우와 같아.

 그는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꼭 같은 여우일 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여우야"

 그러자 장미꽃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있어"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나의 꽃은 지나가는 행인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 꽃 한 송이는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도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나비 때문에 두세 마리 남겨둔 것말고)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 놓는 것을, 또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기울여 들어 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그건 내 꽃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는 여우에게로 돌아갔다.

 "안녕" 그가 말했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나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 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으면 안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거지.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1/04 03:27 2008/01/04 03:27

2007/11/29

from 사진을 배우다 2007/11/29 21:4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11/29 21:40 2007/11/29 21:40

서태지15주년 기념 앨범

from 우울 2007/11/29 08:49

혹시 구하는 법을 알고 계신 분 없을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11/29 08:49 2007/11/29 08:49

funtional

from 책에 대해 2007/11/23 16:38

narrator라는 단어는 말하는 목소리(a voice speaking)를 암시하고, 말하는 목소리(a speaking voice)는 존재의 감각(인식 / sense)을 암시한다. 그라마톨로지의 출현을 선포한, 데리다는, 말하기를 글쓰기로부터 분리시키는 차이(gap)에 주목했다 : narrator를 '말하는 자'로부터 '쓰는 자'로 변형시키는 그러한 변화, 혹은 좀 더 정확하게는, 어떤 inscription point(시점)를 향하는 것의 부재. 정보과학(Informatics)은 이러한 변형을 좀 더 확장시킨다. 글쓰기가 이진수에 의해 서명된 명멸하는 기표들에 자리를 양보하게(yield to) 되면서, narrator는 쓰는 자(scribe)가 아니라, 적절한 코드들에 접근하기 위한 권한을 부여받은 사이보그가 된다.

narrator의 기능이 어떻게 변화되는가를 보려면, Mark Leyner의 [내 사촌, 나의 위장병 전문의]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 하나인 "나는 지독하게 뜨겁고 조밀한(dense) 하얀 점이었다. (I was an Infinitely Hot and Dense White Dot)" 중에서 유혹 장면을 살펴보자. "Sinutab에 의해 high되고(약을 먹고 열에 들떠있고), 등방적으로 운전하고 있어서 어떤 목적지로도 균등하게 갈 수 있는 narrotor는, 자신을 궁상맞은 작은 싸구려 술집(dive)에서 발견한다.

 

모르겠다... 그러나 거기에 그녀가 있다. 나는 그녀가 사람인지 제 5세대 여성형(gynemorphic)의 안드로이드인지 모르며, 그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내 술, 메틸 이소시아네이트 온 더 락,을 홀짝거리면서,  짝짓기(mating) 페로몬 앰플을 하나 깨어 열어서 바 전체에 그것이 퍼지도록 했다. 메틸 이소시아네이트는 인도의 보팔에서 누출되었을 때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인 물질이다. 그러나 웨이트트레이닝과 에어로빅 연습, 저지방 섬유질 식이요법 덕분에, (the scuff는) 내게는 전혀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 그녀는 충분히 확실하게 어슬렁거리고, 내 옆의 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 내 입술은 이제 그녀의 입술로부터 1옹스트롬 단위만큼 떨어져 있다. ....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머리를 돌려버린다. ... 나는 당신에게 키스할 수 없어. 우리는 단일접합체적(monozygotic) 복제인간들이야 - 우리는 우리의 유전 물질을 100% 공유하고 있어. 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너는 아름다운 하루야, 나는 외친다. 너의 숨결은 갈릴리의 바다를 건너 빠 드 부레를 추는 유칼립투스의 제피로스(서풍)야. 고마워. 그녀가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집으로 돌아가 사랑을 나눌 수 없다. 단일접합체의 근친상간은 연장자들(elders)에 의해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면? ... 만약 내가 작은 샷건을 가지고 있어서 살아있는 유기체의 세포들안에 유전 입자들을 쏘아 넣는다면, 그들의 유전자 회로들을 변형시켜 단일집합체적 복제인간이 더 이상 단일접합체적 복제인간이 아니게 한다면, 그러면 그녀는 근친상간의 타부를 위반하지 않고 근육맨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된다. 나는, 셔츠를 열어 젖히고, 검은 청바지의 허리 밴드안에 끼어있는 기구를 드러내면서, 말한다. 어떻게 그걸 가졌지. 그녀는 그 두껍게 섬유조직으로 강화된 플라스틱 몸통과 탄창위에 엠보스된 Uzi-Biotech 로고를  흘낏거리면서 숨이 막힌다. 탄창에는 젤라틴화 된 유전자재조합 DNA가 두 통 끼워져 있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샀어. .... 네 염색체를 뒤섞기 전에 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니? 겨냥하면서, 나는 말한다. 응, 있어. 그녀가 말한다. 네가 먼저 해.

 

구절들에서 재치있는 부분들 대부분은, 일반 상식(folk wisdom)과,  높은 수준의 어법과 아이디어들로 이루어져 그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유혹의 클리셰의 병치에서 비롯된다. narrator는 자연에 누출되었을 때 수천을 죽인 화학물질을 홀짝거린다. 그러나 그는 위험에 면역되어 있다. 저지방 식이요법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narrator는 여성/안드로이드에게 키스하기 위해 가까이 몸을 기댄다. 그러나 그는 수소 원자의 직경보다 더 작은 거리인, 1 옹스트롬의 거리에서조차 접촉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은 그들을 일란성 쌍생아로 만든, 그러나 그들이 서로 다른 성을 갖는 것을 막지는 못한, 같은 단일접합체로부터 복제인간이 되어, 근친상간의 타부에 의해 금지되었기 때문에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 그들은 부족의 연장자들에 의해 강요된 혈족관계의 규칙에 의해 지배되지만, 혈통의 진화론적인 형식에 끼어들고 분열시키는 유전학적 기술에는 접근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문제가 그들의 염색체를 뒤섞어놓을 Uzi-Biotech 무기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narrator는 결국, 그들의 정체성이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다섯 페이지가 채 안 되는 단편이라는 한도 내에서 조차, 이 만남은 그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건에 앞서거나 따라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narrative는 가장 빈약하고 임의적인 맥락에 의해 연결된, 장면에서 장면으로 도약한다. 모순들은 narrative를 조립과 분해의 pattern(반복?/견본들)을 통해 만들어진 문자그대로의 안드로이드의 한 종류로 만든다. 이 텍스트 안에 자연적인 몸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 텍스트를 향한 자연스러운 몸은 없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정체성은 타이포그래피와 융합하고(I was a ,,,,dot)  더 나아가 중력붕괴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같은 그러한 신기술 재구성(high tech reconstruction)과 융합된다(I was an infinately hot and dense white dot"). 기표들은, 명멸하는 기의의 훝어지는 물결 안에서 터져나갈 준비가 된 상태로, 신성의 중요한 시점에 접근하는, 폭발성 물질 내에 있는 별들의 몸처럼 붕괴한다.

행위를 친숙하게 하는 문화적 코드들과 전통적 기대들을 혼란시키는 신조어적 접목들(neologistic splices) 사이의 그러한 폭발성 긴장들은, narrative를 구성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들은, 또한 그럴듯한 심리학이 부여된 말하는 목소리로써 보다, 주관성의 새로운 종류 쪽으로 push하는, 갈라진 틈들과 혼란의 연속으로써 narrator를 구성한다. 이러한 주관성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 편의 어떤 수신자를 향하는 스토리텔러로부터 전문가로 이어지는 호를 그리는 궤도를 상상해보자. / 발터 벤야민이, 작품의 리듬에 그의 단어들을 짜맞추는 전통적인 스토리텔러를 재현할 때(evoke) 생각했던, 가치와 존재를 공유하는 공동체는 부족의 연장자들과 노래들에 대한 노래(Song of Songs)를 넌지시 빗대어 어렴풋이 반영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료타르는 포스트 모던의 조건에서, 이야기를 할 권한이, ‘물리적으로 흩어지고, 전자적으로 엮인 전문화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부여하는, 적절한 자격증을 가지는 것’에 의해 주어지는, 전문화에 대해 쓰고 있다. 궤도의 이러한 상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의미될 수 있다. narrator는, 물리적 위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거나 이야기의 제작과 관련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등방적으로” 운전하고 있다. 그의 권한은, 공동체 안에서의 물리적 참여에 의해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Uzi-Biotech 남근 은 물론이고, 페로몬, 메틸 이소시아네이트, 젤라틴화된 유전자 재조합 DNA 를 포함하는 수준 높은 언어구사능력의 소유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권한은 또한, 그것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추방된다. 왜냐하면 모순(부조화)들이, narrative와 narrator가 이야기 내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하이 테크, 정체성 변환 오르가즘 폭발에 의해 의미지워진, 가까스로 생각해낼만한 형태로 변이하려고 하면서, 극단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형태란 무엇인가? 그 물리적 발현은 다양하다. 그러나 복잡한 코드를 조작하기위한 가능성은 일정 불변의 것이다. 구절들의 언어를 통해 이미 일어난 희미한 변형들은 주관성 내에 있다. 이 주관성은 정확한 코드들을 소유하는 것에서 그의 권한을 이끌어 낸다. 셀 수 없는 시나리오들이, 누군가가 컴퓨터를 속여, 그가 컴퓨터가 구성된 권한으로 인식하는 코드를 가졌거나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에,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대중적인 문학과 문화 속에서 존재한다. 흔히 이러한 시나리오는 그 사람이, 정보적 시스템안에서 인식되지 않고 움직이게 허락하는 위조 정체성을 가지면서, 변화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narrative들을 읽는 다른 방법이 있다. 권한부여 코드들을 통해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정확히 존재하는, 그가 그 코드들을 알기 때문에 인식되는, 다른 종류의 주관성 내에서 그것들을 사용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표면적 기만은 보다 깊은 진실에 의해 받쳐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두드리는 코드들이 된다. narrator는, 비록 이러한 기능들이 narrative 안에서 시대착오적인 암시와 왜곡된 연관성으로 남아있지만, 스토리텔러나 전문적 권위자가 아니다. 오히려 narrator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이고, 해커이고, 코드를 조작하는 사람이다. 텍스트가 디지털라이즈된 그 존재 안에서 어떤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면, 문자그대로 그(he/it?)는 이러한 코드들이다.
코드의 조작자로서의 narrator의 구성(construction)은 명백히 독자의 구성을 위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독자는 같은 형식으로, 듣는 자에서 읽는 자로, 해독자(decoder)로 움직이는  층층의 고고학을 통해 구성된다. 코드는 본질적으로 즉시 광섬유로 보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의미를 고정하고 해석을 안내하는 것을 돕는, 공유되는 안정된 문맥은 없다. 읽기(reading)처럼, decoding은 원천 텍스트(source text)로부터 공간적, 시간적으로 임의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fixed-type print와는 현저히 다르게, decoding은 원본 텍스트(original text)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함축한다. - 초판, 공정한 복사, 자필 원고(holographic)는 없다. 명멸하는 기표가 있을 뿐이다. 명멸하는 기표들의 일시적인 패턴들은, G.W.S. Trow가 ‘맥락(context-문맥?) 아닌 것에 대한 맥락’이라고 표현한, 모든 맥락이, 모든 텍스트처럼, 전자적으로 매개된 구조들이라는 의심을 재현하고 구체화하고 있다.>> decoder를 시스템에 묶어 두는 것은 하나의 해석의 일치의 안정성이나, 모든 책수집가들이 알고 있는 물리적으로 책을 갖는 것의 강한 기쁨이 아니다. 오히려 사이보그로서, 자신의 신체적 특징들이, ‘몸의 내부 체제(in-format)인 DNA로부터 컴퓨터의 첫 번째 언어인 이진 코드까지 많은 층위를 통해 확장되는 기의의 사슬들 안에서 또 다른 명멸하는 기표, 살로 된 정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을 구조(construction)하는 것이다. 
‘functionality'는 가상 현실 기술자들이, 컴퓨터-인간 인터페이스에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 형식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새로운 용어이다. 예를 들어, 만약 유저가 정보 장갑을 끼고 있다면, 손의 움직임은 하나의 functionality를 구성한다. 만약 컴퓨터가 음성-활성화된 명령에 대답할 수 있다면, 음성은 또 다른 functionality가 된다. 만약 컴퓨터가 몸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다면, 공간상의 위치는 또 다른 functionality이다. functionality들은 양 방향으로 작용한다. : 다시 말해, functionality들은 컴퓨터의 능력을 묘사함과 동시에 유저의 감각-운동(sensory-moto?) 기구가 어떻게 컴퓨터의 반응들에 적응하도록 훈련되는가를 보여준다. VR 시뮬레이션과 함께 하면서, 유저는 그의 손을, 컴퓨터가 수용할 수 있는 일정한 형식의 몸짓으로 움직이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저의 뇌에 있는 신경 조직(구성?) 내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 중 어떤 것들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컴퓨터는, 인간이 컴퓨터를 만든 것처럼, 인간을 주조한다.
narrative의 functionality가 변화할 때, 새로운 형식의 독자가 텍스트에 의해 생산된다. 독자들은 다른 functionality들을 통해 읽도록 훈련되기 때문에, 명멸하는 기의의 효과들은 파문처럼 퍼져나간다. 다른 functionality들은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에 쓰여진 텍스트를 포함하는, 모든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narrative functionality들의 변화는, 특정 장르의 구조적인, 주제에 관한 특성보다 더 깊은 곳까지 미친다. 내러티브를 생산하기 위해 활성화된 양식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수준에서, information narrative와 다른 종류의 현대 소설들 사이의 미묘한 연결(접속? connection)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정보 기술을 포함하는 맥락 속에서, S/Z에서 롤랑 바르트는 훌륭하게 ‘다양한 코드들의 생산으로써의 텍스트를 읽음’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 information narrative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 information narrative가, 코드들이나 정보기술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문자 그대로의 수준에서조차 종종 이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멸하는 기의(signification)는, 코드들의 생산적인 힘을 텍스트 너머, 의미화의 과정들을 포함하는 데까지 확장한다. 의미화의 과정은, 인터페이스들이 인간을 통합 회로의 그물망에 빠뜨리게 할 뿐만 아니라, 기술들이 텍스트를 생산하게 한다. 기술, 텍스트, 인간을 연결하는 회로가 확장되고 강해질수록, 양적 증가가 질적 변형으로 변화되는 지점이 가까워진다.
만약 패턴/랜덤니스(무작위)의 변증법이 존재(현존)/부재의 자리에 대신 들어서고 있다는 나의 평가가 맞는다면, 그 함의(암시)는 내러티브를 넘어 많은 문화적 활동의 장 안으로 확장될 수 있다. 내 시각으로는, 현재 문화적 상황에서 이러한 함의(암시)들의 가장 심각한 점 가운데 하나는 물질성과 구체화(embodiment)에 대한 조직적인systematic) 평가절하이다. 나는 이러한 추세가 아이러닉하다고 생각한다. 물질적 조건들과 구체화된 경험들 안에서의 변화들은, 정확하게 매일의 경험들 내에서 그 깊은 뿌리들에 변화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에서 나는 그 변화를 분석하고 문학에 있어서의 그 함의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변화가 구체화의 경험을 변화시키는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져야만 함을 제안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려했다. 한 편으로, 만약 구체화(embodiment)가 정보과학(informatics)이 정신에 뿐만 아니라 몸에도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함의한다면, 다른 한편, 그것은 또한 비물질화를 향한 압력에 저항하는 물질성의 축적으로써 기능한다.
내가 여기에 적은 거의 내용 대부분에 내재하는 것은, 현존과 패턴이 상반되는 관계 내에 서로 맞은편에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한 가지가 더 많은 중요성이 부여될수록, 다른 쪽은 덜 주지되고 가치매겨 진다. 누군가 패턴과 현존이 상호적으로 강화하고 보완할 가능성을 즐길 때, 완전하게 다른 읽기(readings)들이 나타나게 된다. 폴 비릴리오는 정보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야하는가에 대해 누구도 물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장의 힘은 이미 작동하고 있고, 사실상(내가 그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구체화된 virtuality들로써 우리를 구성하는 환경들 안에서, 우리가 살고 일하고, 놀게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이러한 발전에 건설적으로 개입하는 우리의 가장 나은 희망은, 현존과 패턴을 상반되기보다 상호보완적으로 볼 가능성을 여는, 해석의 spin을 두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보는 인간성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세계 속의 물질적 실체로써 만들어 내는 구체화(embodiment)로부터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 : 그리고 구체화(embodiment)는 언제나 예를 들어 설명되고, 지엽적이고, 구체적이다. 구체화(embodiment)는 파괴될 수는 있지만, 복제될 수는 없다. 일단 그것을 구성하는 특정한 형태가 사라지고 나면, 어떤 양의 조작된 정보도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 이러한 관찰은 개인의 삶-형태에 대해 진실인 것처럼, 행성에 대해서도 진실이다. 우리가 사이버스페이스가 새로운 식민지의 가능성이 되었다는 새로운 전망들을 탐험하는 것을 서두를 때,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물질세계의 부서지기 쉬움에 대해서도 기억하도록 하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11/23 16:38 2007/11/23 16:38

그래

from 우울 2007/11/03 21:26

나는,

센티멘털하고

히스테리컬하고

순간적인 조증과 지속되는 울증으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어.

 

유치하고

제멋대로이고

어린애같은 삶이야.

 

자기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하고 싶은 놀이밖에 생각 못하고,

짧게 집중하고, 금방 싫증내고.

 

그래.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11/03 21:26 2007/11/03 21:26

생일선물

from 우울 2007/11/03 21:08

 

생일선물로 CDP를 받았다.

어쩌다 보니,

테입이 들어가던 walkman 이후에, 포터블한 플레이어로 CDP를 써보지 못했었는데,

역시 음악은 CD로 듣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들고다녔던 IPOD에게는 미안하지만,

MP3플레이어나, IPOD같은 건 음악을 듣기위한 기계이기에는

너무 작고 세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CD를 사서 컴퓨터에 옮겨 넣고 듣는 건, 새 CD를 산 기분을 망치는 경우가 많아서

CD를 사지 않은지도 오래되었었다.

 

오래전에 듣곤하던 '스푸키바나나'의 1집 CD를 듣고 있으니 무척 행복해졌다.

하나의 음반이라는 건, 한 권의 책 같다.

 

CD가 나오기 전에 테잎과 LP가 있었고, 그 땐 아날로그의 느낌이 더 좋았겠지만,

지금 내가 쉽게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기계가 CDP다.

 

김상이 안입는 T-Shirt를 잘라서 CDP용 옷을 만들었다.

CD를 넣어다닐, 7년 전에 사두었던 타레판다 CD통도 꺼내서 먼지를 닦아주었다.

 

CDP가 너무 예뻐서, 행복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11/03 21:08 2007/11/03 21:08

아무 것도 아닌 일을

from 우울 2007/11/01 01:42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미친 듯이 할 거야.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을 할 수 있겠어?

 

미치는 수 밖에 없잖아?

 

이렇게 간단하게, 겨우 문턱에 이르렀을 뿐인데,

AT-field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어.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11/01 01:42 2007/11/01 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