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from 책에 대해 2007/10/07 18:57

NeoPool님의 [BombBombBomb] 에 관련된 글.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바람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나중탁구부를 읽다보면

세계를 언인스톨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시가테라도, 두더지도 읽다보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핑퐁은 미노루 후류야님의 아류였다.

존 메이슨처럼.

 

하지만, 역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떠올랐다.

레이먼드 카버도.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구나......

정말로 같은 시대를 살고 있구나.

 

아류라는 건 멋지구나.

 

평론가가 아닌, 작가의 짧은 말이 있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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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8:57 2007/10/07 18:57

그거 알아?

from 우울 2007/10/07 12:31

이 세계의 모든 물체는 서로를 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 만유인력이라고 부른다는 거.

 

질량이 무거울 수록, 당기는 힘이 강해진다고 해.

시공이 물체에 의해 휘기 때문이라고 하지.

 

나는, 가끔 어째서, 부피가 아니라 질량일까 하고도 생각하고,

질량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도 생각해.

 

우리는 질량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질량은 변하지 않는 거지만(이건 말장난이야),

어떤 존재도 변하지 않지 않으니까,

언제까지나 같은 질량을 갖는다는 건, 전 세계의 총질량을 계산한 경우에나 그럴지도 모른다.

 

의외로, 개토는 어제와 오늘, 지속적으로 같은 질량을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질량은 의외로 단순한 거라서, 우리는 저울로 질량을 잴 수 있다.

 

아주 작은 단위의 무언가들이 어쩌다 똘똘 뭉쳐 개토모양으로 만들어진거야.

서로를 아주 강하게 당겨서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쳐진 개토는,

하지만, 늘 불안한 거지.

 

언제 해체될 지 알 수 없잖아.

내 안에, 아주 무거운 질량을 갖고 있지 않다면, 내 모든 조각들이 산산히 흩어져 버리게 되는 거야.

 

무섭다.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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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2:31 2007/10/07 12:31

친구에 대한 예의

from 우울 2007/10/07 11:57

예의를 지키려면,

 

그래, 이해해. 내가 모르는 어른들의 세계가 있는 거지.

그건 훨씬 복잡하고 어렵게 얽힌 거대한 털실덩어리같은 거라서,

한번 얽히고 나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거라지.

 

그래, 이해해.

그동안 고마웠다고 생각해.

덕분에, 가끔은 즐거웠어.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때 이야기가 온전히 살아서 다른 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본다는 건,

기쁜 일이었어.

 

라고 말하고 싶어.

예의를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이곳에 나를 보러 올까?

하고 많이 생각해봤어.

처음에는,

 

더이상 오지 말아줘. 라고 말하려고도 했어.

 

하지만, 어차피 안올거라는 생각도 들었어.

 

답은 없고 복잡해졌지.

 

오든 오지 않든 상관없다고도 생각해.

 

하지만,

 

하지만,

너는 내 기분을 알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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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1:57 2007/10/07 11:57

지각방식이

from 우울 2007/10/07 11:03

비슷하긴 개뿔이 비슷해.

누가 그딴 걸 안단 말인가.

 

그럼 대체 뭐지? 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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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1:03 2007/10/07 11:03

지각방식.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어쩌면 더 절박한 무언가가 있었을까?

 

내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것?

그것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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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1:00 2007/10/07 11:00

지각방식

from 우울 2007/10/07 10:53

어쩌면,

그게 문제였다.

 

지각방식.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는 관계를 지속해나가도 될만한 절박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각방식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각자의 삶이 있지 않은가.

 

바쁘고 바쁜 이 세상엔

[지각방식이 같고 아니고]같은 사소한 이유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은 하늘에서 주기적으로 떨어져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결정이다.

 

소유관계는 명확해야 한다.

 

두 사람이 한 집에 살고 있을 경우,

둘이서 함께 TV를 사서는 안된다.

 

한 사람이 집을 나가야 할 경우,

TV를 둘로 나눌 수는 없는 거니까.

 

하물며(이 시점에 하물며란 어색하기도 하고 적당하기도 하다),

한 지구에 살고 있다고 해도

둘이서 함께 밥솥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인간은 '계약'이라는 걸 만들어냈다.

 

살다보면,

소유관계가 명확해지기 힘든 경우도 많고 하니.

 

소유를 함께 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겸사겸사 '법'도 만들기로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계약에 없는 관계는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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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0:53 2007/10/07 10:53

하기조차 하다.

from 우울 2007/10/07 10:19

000의 소설은 ~하지만, 무엇보다 ~하고, 단순히 ~한 것이 아니라, ~하기조차 하다.

 

부끄럽지 않니?

그런 걸 쓴다는 거.

 

아니지.

부끄러운 것은 없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을 쓰는 사람들 덕분에 소설이 쓰여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 때문에 쓰게 되는 것일까?

이 세계의 부조리함이 존재하지 않아도 소설이 쓰여질까?

 

소설이라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 ~하고, 단순히 ~한 것이 아니라, ~하기조차 하다'라고 쓴 이들에 대해

그저 세련되게 읽기좋게 재밌게 쓰는 것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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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0:19 2007/10/07 10:19

에스키모가

from 우울 2007/10/07 10:10

손님에게 부인을 빌려준다는 점에 대해서,

 

내가 그 부인이라면 별로 싫지 않을 것 같아.

 

아직도 그렇게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끔은 손님이 와주기를 기대할지도 모르겠어.

 

낯선 손님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아.

 

뭐 실망스러운 손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즐거울 거라고 생각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냉동고가 끝도 없이 끝도 없이 커다란 거야.

텅빈 냉동고인 줄 알았는데 가다보면 고깃덩이도 하나씩 매달려 있곤 했지.

 

썰매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달리고 있어.

따듯해 보이는 개 12마리가 누군가의 삶을 싣고 달리고 있어.

 

하얀 집 속엔,

바다표범가죽을 손질하는 내가, 얼굴이 거슬거슬 튼 채로 앉아있어.

 

그가 왔다고 해서,

내가 기쁜 내색을 한 건 아니야.

 

따듯하다는 건 기쁜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어쩌면 그가 외부에서, 아주 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왔기 때문에

나는

그와 말이 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는 내일 아침이면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연결된

냉동고의 반대쪽 출구로 다시 떠날테니까.

 

나는 그런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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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10:10 2007/10/07 10:10

커뮤니케이션

from 우울 2007/10/07 09:54

커뮤니케이션에서,

 

같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역설한 바 있지만,

 

누구와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를 선택한다는 입장에서,

선택의 기준은,

 

개별 존재들의 지각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다시 말해,

 

꼭 같은 공장에 다니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전혀 다른 생활세계에 살아도,

무언가 나랑 통할 것만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거다.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가져본 적도 몇번 있었지만, 돌아보면 역시 아니었다.

 

김상은 나에게 있어, 범우주적인 존재다.

김상은 나의 생활세계이자 내가 존재하게 해주는 쌀과 책과 음악과 그림같은 존재.

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단순히,

 

그가 정기적으로 돈을 벌어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돈이라면 나도 그럭저럭 벌고 사는 편이다.

 

올해에만 해도,

 

나는 최소한 천만원쯤은 번 것 같다.

벌자고 맘 먹었으면,

두배정도는 더 벌었을 것 같지만,

나는 맘을 먹지 않았다.

 

그런 것과는 다른 거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김상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는다.

 

오늘은,

 

어쩌면,

 

지각방식이 비슷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절교를 선언한 것에 대해 쓰려고 한다.

 

훗.

 

절교를 당했다.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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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7 09:54 2007/10/07 09:54

 

구덩이에 악마의 얼굴이 2/3쯤 보인다. 구덩이 둘레엔 그의 발자국들도 찍혀있어.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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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6 14:03 2007/10/06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