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from 우울 2007/05/16 02:12

내일은 9시 수업, 집에서 7시에 나가야 대략 조금 일찍 도착할 수 있는데,

그 수업에 필요한 과제를 방금 시작했다.

그리고는 블로그에 들어와서 사람들 글을 흝어보고

급기야는 포스팅까지 하려고 한다.

 

최근에 육체적 능력이 배가된 듯한 느낌이 자꾸 드는데...

정신적 능력은 그에 반비례해서 작아진 듯하다.

 

어제는 와인한병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새벽3시경 잠들어서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과제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도 하고 씻고 멀쩡하게 학교가서 수업도 다 들었다.

너무 당황스럽게 멀쩡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담배를 끊으려고 했더니

과친구들이 극구 말린다.

담배피는 모습이 멋있으니 절대 끊어서는 안된다나.

대략 좋은 이야기같이 들리지만, 시대정신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나에 대한 배려나 고려가 전혀 없는 멘트가 아닌가.

그저 자기들 보기 좋자고 담배를 못끊게 하다니....

결국, 다시 피우고 말았다.

멋있다니...그런 이야기 너무 오랫만...

 

자랑하고 나니 시원하군. 그럼 과제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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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6 02:12 2007/05/16 02:12

파시스트

from 우울 2007/05/13 02:14

어떤 건 써도 되고,

어떤 건 먹어도 되고,

어떤 건 옳지않고,

어떤 건 하면 안돼.

 

절대로 강요하는 건 아냐.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

하지만 그게 옳은 것일거라고 나는 믿어.

너도 그렇지?

 

분명 그럴거야.

너는 우리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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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3 02:14 2007/05/13 02:14

예술가와 디자이너

- 브루노 무나리 / 디자인 하우스

 

인간은 명확히 감지할 수 있는 많은 증후들을 통해 종적인 인식을 확립하면서

이기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실 개인주의는 모든 분야에서 어떤 천재적 가치를 태어나게 하지만,

종의 감각은 거대한 집단적 구현을 가능케 합니다.

천재는 독특하고 뛰어난 결과들을 생산함으로써

다른 개인들의 야심을 좌절시키고 열등감을 유발시킵니다.

하지만 종의 감각은 타인을 위해 일하도록 하며, 크고 작은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도록 이끕니다.

개인적 이기주의의 제거와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 얻어지는 이러한 종의 인식은,

인류로 하여금 균형있는 변화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게 하며,

각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하나로 모아 문제를 해결하게 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각자가 자신을 위해 사고하도록 수세기에 걸쳐 훈련을 받아왔으며,

도달해야할 목표로서, 그리고 따라야 할 표본으로서 과거의 모든 천재들의 전례에 기초한

정체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인간활동의 중간적 가치들을 등한시해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개인은 평범한 인간이거나 천재, 또는 백치일 뿐입니다.

때마침 디즈니적 문화가 급속도로 침투해 퍼짐으로써 결국 공동체적 작업은

파멸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어릴때부터 공동체적 인식과 공동 작업을 습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이웃을 기만하거나 속이지 않고, 갈취하거나 훔치지 않는

보다 나은 사회의 건설에 이바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각자의 활동분야에서 인간적 가치의 척도를 재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45P

 

어떤 집들은 혐오스럽고 빈곤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어떤 집들은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어째서 나무, 지푸라기, 종이, 나무 껍질, 자연석 등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전통적인 집은

우리에게 빈곤한 늒미을 주지 않는 반면, 벽돌, 시멘트, 우리, 대리석 등 더 비싼 재료로 만든

서양의 집들은 스산한 느낌을 주는 걸까요?

필자는 이러한 빈곤성이 자신의 의지와 맞지 않는 환경에 살도록 강요된 상황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또한 우리의 서민 주택들이, 다행히도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애정없이 설계되며,

설계자든 주민이든 거기에 인간적으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민주택'의 정의는 '주민들에게 참담한 상황을 만들어 주는 집'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산층의 집에 적용될 때 불행은 가중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어도 설계자는, 거실 겸 식당, 침실, 현관 등 큰 공간이 모두 들어간

'작은 집'을 설계합니다.

그 공간들은 여러가지 설비들과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스타일 가구들로 가득 채워져

축소되기 마련입니다.

크기나 기능 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값비싼 가짜 고가구들은

분할 상환으로 힘겹게 지불될 것이며, 공간 속에 번듯하고 균형있게 자리잡게 되기를 바랄 것이나

열악한 공간으로 인해 오히려 빈곤성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애정 없이 설계되고 허영으로 채워지는 집은,

모두가 부러워하고 갖고 싶어하는 사치스런 주택의 최악의 모방일 뿐이지요.

 

일본의 전통적인 주택은 수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개선되고 다양해져서

이러한 빈곤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세대가 이루어 놓은 창의성이 후세들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경비와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전혀 스산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개개인이 최대한의 정성과 애정을 들여 만들었으며, 그 개개인의 집약된 창의성이

그것들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특정 미학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실용, 미학, 심리 등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주거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

구석구석의 각 세부에서 창의성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거주라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 가운데 하나를 해결하는 이러한 공동 참여의 작업 형태는,

개인적인 사고가 아니라 종적인 사고를 보여 줍니다.

참여가 없고 애정이 없는 삶의 빈곤성은 사치스런 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적 빈곤을 보다 값비싼 재료들로 보상받으려는 욕구의 결과입니다

가격, 가치, 기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

여기에서 하나의 특정 미학에 대한 요구가 태어납니다.

그것은 과거의 양식과도 관계가 없고, 현재의 예술적 유행과도 관계가 없으며,

디즈니적 문화의 영향과 혼합된 고전 문화의 결실도 아닙니다.

그것은 재료의 올바른 사용, 공간들 사이의 적절한 관계, 외형적이고 기능적인 일관성에 의해

탄생하는 새로운 미학인 것입니다.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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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2 20:52 2007/05/12 20:52

2007/05/11

from 사진을 배우다 2007/05/11 05:16

 

 

 

 

유치원생이라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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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1 05:16 2007/05/11 05:16

올뺌 개토

from 우울 2007/05/11 05:10

어쩌다 보니 올빼미 생활로 접어들었다.

아침 10시 수업을 들으려면, 7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하지만, 밤이 넘흐 좋다.

밤에는 깨어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사람이 귀하게 여겨지고 어수선한 세상을 향해 닫혀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어제 만연필을 선물로 받았다.

필기감이 무척 부드럽다.

모양도 아주 심플하고, 게다가, 내 이름이 박혀있다.

거의 보이지 않게 새겨져서 선물을 준 사람이 말해주기 전에는 몰랐을 정도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만연필이 담겨온 상자는 필통으로 쓰기로 했다.

 

해가 뜨고 있다.

하늘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은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다.

더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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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1 05:10 2007/05/11 05:10

진실

from 우울 2007/05/11 04:27

진실이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하면 모순이다.

 

진실은 없고 입장만 존재한다라고 말하면 모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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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1 04:27 2007/05/11 04:27

거울조각

from 2007/05/07 03:46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찬찬히 맡아본다.

사실, 내 콧속으로 강하게 와닿는 고소한 캬라멜 향은 그녀의 냄새가 아니다.

 

그녀의 진짜 냄새는 뭘까?

 

거울조각이 핏줄 속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유리가 깨어지면 겁이 났다.

아주 작은, 너무 작아서 땀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조각이 몸안으로 들어가서는

핏줄을 타고 다니다가 심장에 박혀 죽어버리는 것.

 

그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는걸까?

 

아침에 거울을 깨뜨렸다.

거울은 큰 조각들로 부숴져서 플라스틱 프레임안에 담겨있었지만,

나는 아주 작은 조각들이 혹시라도 바닥으로 튀었을까 걱정이 되어

키친타월을 여러겹모아 물에 적신 다음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커다란 컴파스처럼, 허리를 꺾고 거울 주변에 최대한 손과 발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랬는데도,

어딘가의 핏줄이 근질근질하다. 관자놀이 주변이 따끔거리는 것도 같다.

 

새벽 5시, 그녀는 조금 괴로운 듯 자고 있다.

오늘 잠든 그녀는 그닥 평화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꿈속에서 다음날 해야할 일을 이래저래 시뮬레이션해보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녀의 냄새를 크게 들이마셔 본다.

하루에 두번 씻는 그녀에게서는, 사실 옅은 샴푸 냄새와 로션냄새 뿐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종이인형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종이인형같다.

 

숱이 적은 머리칼이 부스스하게 펼쳐져있다.

그녀의 머리칼은 너무 가늘다.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야.

 

내일은 S 전자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었다.

 

팔꿈치께가 간지럽다. 왼손인가? 작은 유리조각들이 몸 여기저기의 땀구멍으로 튀어들어온다.

 

S전자 사람들과 만나면 그녀는 반짝 반짝 빛이 날 것이다.

그녀는 그런 일에 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

 

천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 X맨에 대한 두려움.

 

나는 그녀가 사람들을 만나는데 있어 천재적 재능을 가지 고 있다는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매번, 사실은 결코 원치않는, 사람만나는 일을 하러 가기 직전까지

심각하게 표현하는 각종 히스테리컬한 반응들을 모두 받아주고

다녀와서는 으쓱해져서 재잘재잘 늘어놓는 어린애같은 자랑도 모두 들어주면서

나는 너무나 뿌듯해지곤 한다.

 

혹시,

그녀가 유리조각을 밟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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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3:46 2007/05/07 03:46

from 우울 2007/05/07 03:15

블로그가 재미없어졌다

어찌된 일이지?

 

누워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창 너머로, 두개의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은 다급하게 깜박이고 있다.

구조요청은 아니다.

뭘까?

 

On your mark 를 듣고 있다.

 

나보다 훨씬 훨씬 먼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결정하고 그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나쁜 짓이다.

미안할 짓을 하면 안돼요.

 

나는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지 고민하다가 죽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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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3:15 2007/05/07 03:15

체코드림

from 영화에 대해 2007/05/07 01:22

대화란 가능한가?

 

내가 '개'라고 말할때, 너는 정말 나와 같은 '개'를 듣고있니?

내가 'FTA'라고 말할 때, 너는 나와 같은 'FTA'를 듣고 있니?

 

누군가에게 내가 경험한 무언가를 전달하려할 때 우리는 '미디어'를 사용한다.

'매체' 혹은 '매개체'라고 번역되는 그것.

순수한글이던 한자한글이던 한글로 말해보려 하지만 '미디어'가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 같아.

사실, 이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가 '미디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좀 더 잘 나를 이해할 것이라는 믿음.

 

대체 더 잘 이해한다는 것, 서로 대화가 더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디어'를 거치면, 원본은 손상되게 마련이다.

원본은 '미디어'의 생산자에 의해 일부 강조되고 일부 삭제되는 등 편집이 되는데,

'미디어'의 소비자는 이 내용을 제 멋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모두 알면서도, 우리는 '미디어'의 순수성이라던가 '진실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죽음'에 매우 집착하는 '바르트' 따위는 사실 현실 속에서 너무 심한 사치다.

대체 '미디어'에 진실성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나 고독하지 않은가.

 

'체코드림'은 '미디어'의 '진실성'에 대한, 

고독할뻔 했지만 고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분명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말이다.

대화라는 것이 가능할 것만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수많은 '거짓' 미디어들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이해하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하나의 '진실'한 미디어에 대해서는 정말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

 

'진실한' 미디어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로 그것을 옮기려하면 '원본'이 손상되어

그 고유의 것을 느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할만큼 강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사회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런 평가라니, 너무 오만한거 아니니?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나는 과연 '진실한' 미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걸까? 

 

개토는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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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1:22 2007/05/07 01:22

어떤 상황에 대해서 가장 진실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바보개토.

 

귀찮으니까 대충 정리해버리기는.

 

'체코드림'이라는 영화가 충격적이었는데, 충격을 정리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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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6 23:07 2007/05/06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