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내가 참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장교로 입대해서는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열심히 지키는 덕분에
현경씨가 발뻗고 잘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좋아요...]

[...]

늘 진지한 그에게,
내가 무어라고 대답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나 실망했던 것만은 마음에 남아있다.
내가 이 사람이랑 어떻게 친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 따위
관심도 없지만
TV에서 공짜로 해주길래 함 보다가
엄청 화가나 버렸다.

미친 전투씬을 보여주고 나더니
그게 다 우릴 살리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삼대를 모아
보무도 당당하게
묘지에 도착한 라이언은
이렇게 단란한 가족을 이루었으니
훌륭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잊을 수 없을 만큼 현실적이고 참혹한 전투 장면을
[어쩔 수 없는 전쟁]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하다니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이성적 상황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하다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또다른 전쟁을 부추긴다

[너희들은 전쟁을 잊고 있다
너희들은 너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 전쟁을 잊고 있어서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전쟁이라도 다시 일어나든가 해야지
삶의 의미라는 것을 도대체 알기나 하냐는 말이다]

아깝다
스텝들이 먹은 밥
전투씬에 사용된 돈
필름이랑 카메라랑 극장의 좌석까지...

천박한 그의 명성,
덕분에 나는 좋아하는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들 중에서
[A.I]를
구경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영화의 전투씬은
MTV 보다 더 선정적이다
리얼리즘을 가장한 선정성으로 관객을 끌어
미친 세계관을 유포하는, 기만적인 장사꾼.
(상인들을 모욕하려는 뜻은 없다)
그 기만적인 모습이,
전쟁을 참상을 그리는 척 하면서 전쟁으로 돈을 벌고
예술인 척 하면서 장사하는,
가슴아픈 척 하면서 즐거운 그 모습이

재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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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2 18:44 2002/02/12 18:44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두 편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의 영화의 색감과 화려함,
고전적인 사랑과 죽음에의 동경,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그가 할리우드적이라고?
그게 뭔데?

그의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은 [사랑] 뿐이다.
지지부진 바쁜 와중에 서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무언가를
가식적으로 지켜내고는 자기안위를 위해
가족입네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붉게 미쳐서 화려한 태양의 빛으로 눈 멀어 버리는
하얀 조명을 푸르게 얼려버리고
노랗게 타오르는 보석을 검은 색으로 시들게 하는
그보다 더 검은 피를 토하지 않고는 증명할 수 없는,
페스트처럼 보라빛으로 변한 얼굴에서
끝없이 깊은 심연으로 만나는 눈동자에서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 [죽는다].
구차하게 가족이나 국가, 혹은 권태...그런 것들로 자신을 변명할 틈은 없다.

혁명처럼 그들은 화려한 피를 뿌리며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죽음]을 위해 죽는다.
죽지않고는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과 색과 언어로
완벽한 사랑을,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그를 어떻게 비웃을 수 있지?

다른 사람의 진지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
사람들은 늘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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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2 18:27 2002/02/12 18:27

유배지에서

from 우울 2002/02/12 17:08
묵묵하게, 자기일에 대해서 떠벌리지도 않고
남의 일에 대해서 참견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면서,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라면,
내가 아주 오래동안 꿈꿔온 사랑이라는 것이
가짜가 아니라면,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도 부정할 수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름군과 모모짱을 풀숲에 풀어놓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 후에
나에게 보여주러 데려오고 자유롭게 돌아가도록
살게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럽혀지지 않은 풀과 꽃과 나무와 고기를
내 손으로 요리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더운 잠자리에서 자고 깨끗한 물로만 씻고
나를 표현할 시간이 있으면 좋을텐데.

부유하게 자라 상처를 모르는 너희들에게
왜곡된 칼날이 번뜩이고
내가 또다시 그 칼날에 찢겨야 하는 이유가 뭐지?

내 진심을 갈갈이 찢어야 속이 시원한 너희들
끊임없이 타인의 피와 살을 먹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너희들
너희들의 칼날에 기꺼이 몸을 대고
내 삶을 유배시키는 것
내 동류의 삶들을 유배시키는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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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2 17:08 2002/02/12 17:08

모모의 제왕절개 수술

from 우울 2002/01/28 13:43
아가를 낳았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모모짱이 하루만에 다시 진통을 시작했다.
배안에 아이가 남아있었던 거였다.
새벽 3시경, 동물병원에 전화를 해서
수의사를 깨우고 달려가서는
모짱의 골반에 아이가 끼어있는 모습을
엑스레이 촬영으로 볼 수 있었다.
이미 하루가 지난 뒤라 아이는 죽어있었고
모짱은 기진한 상태였고
아이를 꺼내기 위해 제왕절개를 해야했다.

고양이는 임신 기간이 두달 정도 된다.
지난 11월 19일부터 약 3~4 일간 발정기였던 모모는
따라서 1월 20일 경이 출산 예정일이었다.
1월 15일 쯤에는 병원에 데려가서
임신 상황을 체크하고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하루 이틀 미뤄 온 것이 잘못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몸도 잘 못가눌 정도로 아픈 와중에도
아가에게 젖을 물리는 모짱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뭐라...할 말이 없어야 하는걸까...

모모는 이제 많이 기운을 차렸다.
태어난 아가도 벌써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는 내가 무섭다. 바쁘다는 것도 무섭다.
참 삶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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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28 13:43 2002/01/28 13:43

모모가 출산을...-ㅇ-

from 우울 2002/01/24 13:32
우리아가첫사진2.jpg
우리 아가 모모가, 아아~
아직도 아가인 우리 모모가...
어제 아가를 낳았다.

아빠인 아름군을 꼭 닮은 건강한 아가를...
아무도 모르게 침대 밑에 낳아두고는....아...

집에 돌아오니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모모가 아기를 낳은 냄새라는 필이 와버렸다.
아직은 아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눈은 무슨 색인지...
배에는 어떤 무늬가 있는지...어떤 성격을 가졌을까...

모모짱과 아름군은 나름대로 아가 옆에서 의젓하다.
두마리도 세마리도 아닌 꼭 한마리의 아가.
가슴이 짠 하다.

내 손바닥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녀석이,
생긴 것은 꼭 원숭이 같아서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굴러다니고...
아름군처럼 팔베게를 하고 잠을 자는 것이다.
심지어...찍찍거리기도...
쥐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한 보숭 보숭한 녀석.

내가 미리 만들어준 출산 상자가 마음에 안들었던지,
모모는 구경하기도 어렵게스리
침대 밑의 매트리스 받침대의 천을 찢고
그안에 들어가서 아가를 낳아놓았다.

모모의 뱃속에 고런 녀석이 2달 동안 들어 있었다니...
아아 이상하다...

아가 이름은 멀로 지을까?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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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24 13:32 2002/01/24 13:32

이 방에는....

from 우울 2002/01/05 21:50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만 쓰고 싶었다.
누구와도 연결되어있지 않은 나.
어떠 어떠 하지 않아도 되고,
관계속에서 보여져야만 했던 그 모든 의무들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나.
페미니스트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나.

그런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 자신을 유배시킨 요즈음,
나는 이곳에 글을 쓸 수가 없다.

나는, 개성이 강하고 눈에 띄며,
옳은 의견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해나가야 한다.

할테면 제대로 해야지.
대학 2년, 우습지도 않은 자살 소동을 부린 후
살아야 한다면 운동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유배된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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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5 21:50 2002/01/05 21:50

사랑

from 우울 2001/10/21 18:39
사랑과 관계는 다른 거라고 나는 생각해.
옛날에 흔히 쓰던 말로 "다양한 관계들의 양상"이 있고,
사랑은 개념이지.
사랑은 어디에나 쓰일 수 있고
혹은 어디에도 쓰일 수 없고 그런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사랑은 혼자 하는거야.
사랑을 대화할 수는 있지만,
그리고 그 사랑을 느낄 수는 있지만
사랑은 혼자 하는거야.
결코 잡히지 않는 "의미"의 사슬을 혼자 이어가면서.

사랑은 통제할 수 없지만,
관계들의 양상은 스스로 통제해야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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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1 18:39 2001/10/21 18:39

Long Goodbyes

from 우울 2001/10/16 16:03
그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고, 가슴 한 구석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그의 어떤 것.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단 한번도 나의 사랑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꿈을 꾼다.
그와 내가 떠난 그 방에 우연히 들렀는데,
사실은 그가 그 방을 떠난 것이 아니어서,
내가 방을 돌아보고 있는 동안 그가 돌아오고
이제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현실적인 대안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가만히 있고 싶어하는 것
돈이 없는데 벌지 않는 것
그가 가사노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동물을 돌보고 싶어하는 것
보다 나은 어떤 것을 갈구하는 것
가끔 히스테릭해지는 것, 대화하고 싶어하는 것...

그러나 꿈속에서도 나는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방에서 걸어나온다.

Long Goodbyes - Camel

Down by the lake
A warm afternoon,
Breezes carry children's balloons.
Once upon a time, not long ago,
She lived in a house by the grove.
And she recalls the day,
when she left home.

어느 따스한 오후,
호수 아래쪽에는
산들바람에 아이들의 풍선이 날리고 있습니다.
예전,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절
그 숲 근처에는 한 여인이 살고 있었지요.
그녀는 집을 떠나던 바로 그 날을 떠올립니다.

Long good-byes make me so sad
I have to leave right now
And though I hate to go,
I know it's for the better
Long goodbyes make me so sad.
Forgive my leaving now
You know I'll miss you so
and days we spent together

오랜 이별은 나를 너무도 슬프게 만듭니다.
지금 바로 떠나야만 하겠지요.
가고 싶지 않지만
떠나는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랜 이별은 나를 너무도 슬프게 만듭니다.
떠나더라도 용서해 주세요.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했던 날들을 얼마나 그리워 할 것인지

Long in the day
Moon on the rise
She sighs with a smile in her eyes
In the park, it's late after all
She sits and stares at the wall
And she recalls the day
when she left home

하루가 다 가고
달이 떠오르면,
그녀는 눈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한숨을 내쉽니다.
너무 늦었지만,
그녀는 공원에 앉아 벽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던 바로 그 날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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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냉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사랑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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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6 16:03 2001/10/16 16:03
나는 현실을 우울한 동화처럼 바라보기를 즐긴다.
교조주의적 참고서인 정치적으로 올바른 운운 하는 그런 동화말고 진짜 동화말이다.
모든 동화는 우울하다.
소외된 사람들이 우울하게 살아간다.
가난으로 아이들을 버리고 늙은 할머니가 혼자 살아야 하며
여자는 얼굴이 예뻐야 하는 그 세계는 당시 현실의 반영이다.
바보도 착하기만 하지 않아서 물건을 훔쳐야 하고,
외로운 거인은 머리가 나쁘고...인어는 말을 하지 못한다.

파우스트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바꾸어 보라지.

아멜리에를 보았다.
동화속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내 맘속에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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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3 17:32 2001/10/13 17:32

유리벽 너머

from 2001/10/01 15:10
그들이 근처에서 우리를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고, 온도도 조금 내려갔다.
다시 어디로 움직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며칠 전부터 모두들 말이 없다.
말을 해봤자 공포감만 늘어날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게 된 것이다.
그 대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완전히 남에게 맡긴 사람의 처절한 기대감이 가득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 밖에 없다.
운 좋게 표면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발 아래를 볼 수 없는 상태로 이동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바닥까지 내려간다고 해도, 단지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을 뿐이지만, 어쩌면, 건물밖으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닐 가능성이 더 높지만, 그런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내려간다. 바닥 쪽의 철망을 뜯고 아래 층으로, 우리는 일주일 동안 그 아래 층을 구경만 해왔었다.
기시감. 사실 이런 상황은 진정한 기시감이 아닐 것이다.
한 층을 내려올 때마다 기시감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 건물에는 바깥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
물론 바깥에서도 우리를 볼 수 없으니, 도망치기에는 비교적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창문도 없지만, 문도 없다. 들어올 수도 없지만, 나갈 수도 없다.
맨 아래층에, 문이 없다면, 우리는 더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된다.
25. 새로 내려간 층에 칼끝으로 숫자를 새긴다...

그렇게 한 층 한 층 내려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그 층에는, 유리벽이 있었다.
유리벽의 바깥에는 흙과 나무와 꽃과 새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23호는 유리와 바닥의 모래를 할퀴다가 손톱이 모두 빠져 버렸다.
그의 피가 물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듯 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우리는 유리벽에 뺨을 대고 웅크린 채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멀리에서 둔탁한 움직임이 몸안으로 다가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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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01 15:10 2001/10/01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