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View Comments

Young-sook Kweon 2011년 12월 30일 오후 12:12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살아남은 자들의 오욕..
 
사는 것 자체가 '이벤트'가 되었다는 어떤 페친의 말이 떠오른다....
사는 것이, 사실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살기위해서 용산의 망루에 올랐다는 사람이 죽는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서 항거한 쌍용차의 노동자들,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이 죽는다, 그리고 유신시절의 엄혹한 권위주의에 맞서 싸운, 그 시대에는 적어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어 그리했던, 그리고 한번 세운 결기와 정조를 유지한 '민주주의자들'인 김병곤과 김근태도 죽는다...
 
사는 것 자체가 이벤트라면 죽는 것은 이 시대의 모습이다.
이 시대, 이 사회의 모습은 삶이 아니라 '죽음'에 있다, 어떻게 죽는가의 모습에....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아니라 오욕이 되는 시대, 세월, 사회이다..
어젯밤은 참으로 길었다.
 
-------------------------------------
 
페북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모임에 올려진 권영숙님의 글을 퍼왔다. 여느 죽음과는 달리 김근태씨의 죽음에는 모두가 애도를 표한다. 권영숙님의 말대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인 셈이다. 그의 무게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하지만 미워하진 않을지라도 아쉬운 기억이 있는 사람은 있을 듯하다.
 
나 또한 사실 보수야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서, 80년대 주류 운동권들을 보수정당과 비판적 지지의 품속으로 밀어넣은 주역으로서, 김근태 씨에 주목하는 편이라 그를 비판적으로 바로보곤 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마당에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면도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부동산 원가공개 문제와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했던 것, 보건복지부장관으로서 국민연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 부정부패 문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것 등은 그가 90년대 이후 제도정치권에서 행했던 긍정적인 면이고, 투옥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해온 것은 재야에 있을 때 높이 평가해야 할 면들이다.

  
80년대에 김근태가 걸었던 그러한 길을 2010년대에 또다른 방식으로 걷고 있는 이들을 생각한다. 또한 윤태곤 기자가 언급한 것처럼, 그는 여당 정치인 생활 10년 간 실패와 좌절은 많았고 성공은 적었지만, 투옥과 고문으로 점철된 그의 반독재 투쟁 20년 만큼이나 여당 생활 10년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정치권으로 들어가 전업정치인으로 활동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아왕이면 제대로 된 진보정당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보수정당 내에서 나름의 원칙을 지키고자 했던 김근태의 모습을 최근 보수정당의 품에 안긴 이들이 보여준다면 나름 의미있을 것이다. 그게 가능할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김근태가 후배 정치인들에게 남긴 유훈을 기억했으면 한다.
 

김근태, '반독재 20년'만큼 치열했던 정치역정 (프레시안, 윤태곤 기자, 2011-12-30 오전 8:21:37)
[기자의 눈] 김근태가 후배 정치인들에게 남긴 유훈은…
 
민지네(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모임)에서 만났던 많은 이들 중에서 GT팬클럽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있었다. 여전히 GT를 좋아하지만 그를 품고 있는 둥지가 문제가 있다고 보아 GT와는 다르게 사고하려는 이들이었다. 가끔씩 그들 앞에서 GT를 비웃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이를 그럭저럭 먹었음에도 이름에 걸맞지 않게 철들지 않았던 듯하다. 좀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는데... 암튼 그들은 지금 김근태를 어떻게 생각할런지... 연말에 연락이라도 해봐야겠다.

덧붙여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80년대 나름 격렬했던 NL과 CA/PD의 정파간 다툼 때문에 각각이 몸담았던 정당이 다르게 되었다는 것. 다수파였던 NL들은 민주노동당 내에서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생겨나기 전에도 패권주의적이고 독단적인 행태를 보였고, 그 선두에 있었던 게 민청년이었다. 그 민청년의 대부가 김근태, 김병곤이었고... 이를테면 민청년 내의 주류와 노선이 달랐던 안양민청년은 왕따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문수, 이재오, 김성식 등이 한나라당, 그 전신인 신한국당에 가입하였던 배경에는 저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고집도 작용하였으리라. 온화한 미소 속에 내재해있는 운동권 주류의 전횡 또한 잊어서는 더이상 나아갈 수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12/30 12:09 2011/12/30 12:09

댓글0 Comments (+add yours?)

Leave a Reply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gimche/trackback/1193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