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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전의『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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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사물의 대화를 엿듣는 디자인 예언자 (프레시안, 최수태 문화평론가, 2012-01-06 오후 5:59:25)
[최수태가 좋아하는 작가]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펴냄)는 등장과 함께 눈 밝은 독자들의 환호성을 불러왔고, 여러 매체로부터 호의적 서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지면에서 굳이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전에 <인터페이스 연대기>(디자인플럭스 펴냄)를 쓴 작가 박해천을 통해, 위 문단에서 꺼낸 문제의식을 다루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거대 담론 없는 시대의 거대 담론'은 어떻게 시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지금까지 한국 지성계가 시도하지 않은 경로의 도전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거창한 논의를 위해 잠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 문장이 담긴 그 대목을 다시 불러와보자.
결국 비판의 화살들은 내 몸에 수북이 박혀 생매장의 말 무덤을 만들지만, 나를 향한 욕망의 불도저는 막지 못한다. 나는 담론의 가상 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백전백승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물론 내 비판자들은 나름 전문가이긴 하다. 지면만 허락된다면, 그들은 거시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아파트 분양가나 매매가의 상승 추이에 따라 유동 자산의 흐름을 분석하고 사회 경제적 함의를 밝혀낼 것이며, 문화사회학자의 관점에서 '강부자'로 표상된 특정 계층의 속물적 행태를 분석하고 가속화된 공간의 계급적 분화에 관해 울분을 토해낼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56쪽, 강조는 인용자)
하지만 해당 장의 화자인 '아파트'는 곧이어 이렇게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런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뿐이다. 고작." 여기서 일반적인 독자들이 예상할 수 있는 논의의 흐름은, 앞서 '아파트'가 직접 말한 "욕망의 불도저"에 기대어, '사람들은 아파트를 욕하지만 다들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니까', '이론은 말뿐이지만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하니까' 정도로 향할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반론을 절묘하게 회피하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의 담론계에서 '사회적 논의'에 거의 도입되지 않은 무언가를 꺼내든 것, 그것이 바로 박해천이라는 작가에게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셸 푸코의 이름이 한국의 지성계에서 떠돌기 시작한지 20여 년이 지났고, 그의 논의를 비판하거나 이어받은 여러 학자들도 덩달아 수입되었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역시 그런 이름 중 하나다. 그리고 박해천은 바로 그 아감벤의 '장치'라는 개념을 원용하여,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대량 생산된 아파트가 당시에 떠오르던 신중산층을 흡수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습속"을 불어넣는 기제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습속의 확산, 바로 이것이 앞서 언급한 내 비판자들이 헛물만 켠 채 백전백패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치명적 함정이다. 그들은 내가 지닌 공간의 논리가 거주자들의 신체와 정신과 맺고 있는 관계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내놓는 해결안 대부분은 그들 자신의 무능을 증명할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그들은 아파트 투기 열풍이 부동산 거품 붕괴를 재촉해 결국엔 경제적 대재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정부의 주택 정책이 소유 중심에서 거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며 부동산 관련 세제 정비, 임대 주택 공급, 분양가 상한제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67쪽)
아파트라는 공간, 즉 '장치'가 그 속에 사는 이들의 신체 및 정신을 뒤바꿔놓는 방식. 그로 인해 발생하는 한국 사회의 욕망의 정치학. 이런 종류의 논의를 담아낼 수 있는 담론적 양식은 아직까지 한국의 지성계에서 개발되어 있지 않았고, 그래서 박해천은 '픽션'이라는 표제 하에 본인이 아닌 아파트의 목소리를 끌어와야 했던 게 아닐까? 박해천은 인간 대 인간, 정당 대 정당, 권력 대 권력의 정치학이 아닌,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양상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에서 서술하기 시작한 최초의 한국어 화자다(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그렇다).
인간과 사물의 관계, 그것은 다른 말로 (몇 단계의 논의를 생략해서) '인터페이스'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인터페이스 연대기>의 서문에서 그는 "이 개념(인터페이스)은 컴퓨터 스크린의 표면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행동반경을 넓혀가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인공 환경의 접촉면을 지시하는"(8쪽)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피부 바깥에 있는 것, 심지어 잘 '관리'된 피부마저도 인터페이스의 영역으로 수렴될 수 있다.
요컨대 인터페이스는 '인간'이 '인간을 뺀 모든 것'과 만나는 방식이 되며, 그리하여 한 디자인 연구자는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부터 나선형으로 발걸음을 넓혀나간다. 그런데 그가 만나게 되는 것은 이미 거대 담론이 전부 죽어버리고, 그 거대 담론의 빈자리를 메우겠다고 도입된 온갖 현대 철학들이 제 쓸모를 잃고 주례사 비평에 소진되어버리고 있는, 혹은 그 잘난 '번역 논쟁'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는, 속된 말로 '고자'가 되어버린 한국의 담론계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지식인 한 명을 얻게 된 것이다.
▲ <인터페이스 연대기 : 인간, 디자인, 테크놀로지>(박해천 지음, 디자인플럭스 펴냄). ⓒ디자인플럭스 
<인터페이스 연대기>로 되돌아가보자. 이 책은 디자인과 테크놀로지의 공진화(共進化)를 다루고 있지만, 내용을 검토해보면 그 이면에는 '전쟁'과 '자본주의'의 공진화가 깔려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전쟁 상황실의 디자인적 측면에 주목한 1장 '전쟁과 디자인 : 정보의 병참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중후반에 걸쳐 사회 전반의 군사화가 강화된 결과, 정체 상태에 놓여 있던 디자인 담론은 군사 전략적 상상력을 경유해서만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52쪽)다는 시각은 <인터페이스 연대기>에 속한 텍스트들의 기저음을 형성하다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아파트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의 현실'에 매끄럽게 안착한다. 그 모든 과정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직접 두 책을 읽어보며 확인해보기 바란다.
우리가 살아온 20세기 후반, 그리고 21세기 초까지, 이 모든 '현재'를 지배하는 구조는 결국 제2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의 담론계는 그 세계사적 사건을 '민족 동란'으로 축소하거나, '자본주의의 연속적 진행 과정'으로 지나치게 확장하는 두 가지 선택지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수입된 이론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이론을 구성하고 그것으로부터 현실을 해석하는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박해천은 디자인의 역사에 등장한 핵심적인 '사물'들을 먼저 검토한다. 그것이 앨런 케이가 디자인한 최초의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건, 대한민국을 욕망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양산형 콘크리트 유토피아건, 그 사물들은 이론보다 앞서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루노 라투어의 용어를 빌자면) '행위자(actor)'로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과도 네트워크되어 있다. 인간과 사물 사이의 위계를 먼저 설정하고 그것들의 구성과 변화를 추적해야만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이 아니라 사물들을 먼저 해석함으로써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질서, 즉 미국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전후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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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24
박해전의『콘크리트 유토피아』를 2011 올해의 책으로 뽑은 안은별 기자의 서평을 보고,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찾아보니 이를 서평으로 자세히 다룬 기사가 거의 없다. 이전에 김영글 작가가 쓴 프레시안의 서평을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안은별 기자의 서평을 보고 다시 보니 김영글 작가의 글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나 또한 아파트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빌라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기존의 아파트를 다룬 책들은 이러한 면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하는데, 사실 한국의 아파트를 다룬 책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외국과는 다른 한국의 아파트의 상황을 단지 예외적인 것으로 다루기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천작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박해전 샘의 책은 의미가 있겠다.
다만 서평만으로는 분명한 대안이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아파트에 적응하면서 점진적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는 걸까. 아니 아파트 자체를 한국적인 양식, 한국인의 경로의존적인 기호라고 파악하고 이를 바꾸는데 들이는 품을 다른 것에 쏟는 게 나은 걸까. 아무튼 보편성을 전제로 아파트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이를 제대로 분석하려는 태도가 우선되어야 할 듯 싶다.

 

아파트가 들려주는 시트콤 혹은 잔혹극? (프레시안, 안은별 기자, 2011-12-23 오후 6:46:21)
[2011 올해의 책]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토건 경제나 자연 경관에 기댄 흔한 아파트 비판서가 아니며, 그 점에서 일차적으로 독자를 흡인한다. 아파트는 담론의 영역에선 늘 투기의 온상이라는 빤한 악역을 맡아 왔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저자는 아파트의 입을 빌려 "나는 담론의 가상 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물질의 현실 세계에선 백전백승"이라고 자못 거만한 투로 본질을 발설한다.
저자가 집중한 것은 아파트 스스로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주조하는 요체였다는 사실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란 주거 모델이 어떤 사람들을 흡수했고 그들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했으며, 그들이 살아가면서 새로운 습속을 어떻게 확산시켜 갔는지를 조망한다. 나아가 그 확산이 거주자에게 어떤 윤리를 갖게 했는지,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하게 했는지, 어떤 취향을 익히게 했는지-종합하자면 '어떤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는지를 추적한다. 이 과정엔 어항, 화초라는 자연을 닮은 인테리어 장식품의 유행부터 방문 판매 형식으로 각 거실에 침투했던 '미제' 가전제품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피아노, 태권도 학원과 가든 형 갈빗집에서의 가족 외식 등 우리가 아파트 안팎에서 겪었던 모든 행위와 기억들이 총동원된다.
시대가 정치적 '사태'나 '사건'을 분출시키고 몇 번의 버블과 버블 소멸을 거듭하는 사이, 기술의 결과물이 상품으로 쏟아졌고, 아파트 역시 진화와 장소적 확장을 거듭해 갔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아파트의 진화와 함께 커간 이들에 대한 세대론적 고찰이다.
가족 성장담을 4·19나 5·18, 6월 항쟁 같은 정치적인 사건을 중심에 둔 세대론보다 훨씬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것, 그래서 조심스럽게 내 부모가 가졌던 아파트 사(史)와 그들의 탈정치성의 이유를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이 책의 힘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1부는 각기 다른 화자가 등장하는 '픽션' 4개로, 2부는 언론 기사와 공식 기록 등을 편집한 '팩트'로 이루어져 있다. 픽션의 주인공은 군인과 건축가의 그것이 뒤섞인 '변종의 시선'과 '아파트' 자신, '강남 중산층인 1940년대 생 남자', 그리고 '꽃무늬'다.
픽션 형식의 1차 효과는 일단 재미로 나타난다. 인용 문장이 거의 문학 작품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물론 4개의 글은 빽빽한 증거를 함께 끌고 나가야 하기에, 만일 단편 소설 같은 강약 조절 능력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숨 고르기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가 '소설 쓰기'에 실패했다기보다 오히려 다른 수까지 포함해 목적을 초과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화자의 위악과 과장이 그들이 하는 그럴듯한 이야기에 독자들이 완전히는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2부 '팩트'는 그 장황한 변호 너머의 무엇을 유추해내는 데 길잡이 구실을 해준다. 한강을 중심으로 시작된 중요한 아파트 확장의 역사를 종으로, 인테리어와 자녀 교육, 쇼핑과 여가라는 생활양식을 횡으로 엮었다. '픽션' 파트의 인용문이 주로 문학 작품인 것과 달리 '팩트' 파트는 대부분이 월간지의 르포나 사진 자료, 일간지 생활면 기사가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이 '픽션'과 '팩트' 사이의 빈 공간을 "책이 마련한 독자의 자리"라며 독자 개개인이 "길 찾기의 해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아파트에 관한 자신의 '진짜' 경험담으로 채울" 자리라 강조했다. 그 상호 보완적인 독서, 자기 내러티브를 개입시키는 과정을 통해 저자가 기대하는 것은 "아파트가 구축해놓은 매혹의 자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주거 공간과 일상 사물을 상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올해의 책으로 꼽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파트와 한국 시각 문화라는 주제와 아파트 속 삶이 잡혀질 듯한 생생한 묘사, 이를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자료들, 뛰어난 문장 등등. 그러나 특히 감동했던 건 이 책이 결론에 이를 때까지 완벽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어떤 가설을, 이렇게 웅장하면서도 치밀하게, 조심스러우면서도 흥미롭게 다루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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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리도 궁금한 한국 아파트의 미스터리 (한겨레21 2011.06.06 제863호, 고나무 기자)
[표지이야기] 세계와 사뭇 다른 한국 아파트의 3대 미스터리… 부유층이 선호하고 가격 불패 신화 자랑하며 농촌에도 지어지는 이유는?
한국의 부유층이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제기됐다. 서정렬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는 ‘순환구조론’을 근거로 제시했다. 서 교수는 전자우편을 통해 “아파트가 전체 주택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주택 가격 상승을 이끌 능력과 의도가 있는 계층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계층이 자연스레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취지다. 부유층이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 대신 아파트를 선호할 만큼 경제적 이익이 크다는 취지다.
김주경 오우재 건축사사무실 대표도 ‘경제적 이익’을 꼽았다. 특히 아파트가 자산으로서 지니는 환금성에 그는 주목했다. 김 대표는 “환금성이 가장 큰 요인이다. 모든 주택은 감가상각을 당하지만 아파트는 한 번도 감가상각이 문제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건물이나 물건 등 형태를 가진 모든 자산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물리적·경제적 가치가 조금씩 감소된다. 이를 계산하는 과정이 감가상각이다. 아파트도 거주자가 살다 보면 낡고 헐어 감가상각 요인이 발생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파트는 비정상적으로 높게 형성된 아파트 가격 탓에 자산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며 환금성을 보장받는 매력적 자산이라는 게 김 대표의 분석이다.
김 대표는 호화주택에 부과되는 무거운 세금도 근거로 덧붙였다. 현행 세법상 ‘고급주택’으로 분류되면 일반 주택 취득세의 5배를 내야 한다. 단독주택의 경우 △실거래가액 9억원 이상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집 △66㎡(20평) 이상의 수영장이 딸린 집 등이 고급주택으로 분류된다. 외국 영화에 등장하는 수영장이 딸린 호화로운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한국의 부유층이 상당한 세금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생활의 편의성’을 근거로 제시했다.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부유함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라는 문화적 분석도 나온다. 디자인 연구자인 박해천 홍익대 연구교수는 전자우편을 통해 “한국의 초창기 아파트 단지들로부터 연원하는 ‘어떤 전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의 설명을 종합하면, 1970년대 초반 ‘한강맨션’, ‘여의도 시범아파트’, 구반포 등 ‘맨션의 트라이앵글’이 존재했다. 이 ‘아파트 트라이앵글’은 한국 부유층이 전통적으로 거주하던 사대문 안에서 바깥으로 팽창하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부촌 팽창의 흔적에 평창동의 고급주택가도 포함된다. 박 연구교수는 “실제로 1930년대 전후 태생의 서울 토박이 출신의 젊은 중·상류층 상당수가 (아파트로) 이주했다. 1970년대 중·후반에는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이주했다. 1970년대의 한강맨션, 1980~90년대의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이어진 흐름은 2000년대의 타워팰리스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아파트의 팽창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사태 이후 용인을 중심으로 한 고급·대형 아파트와 강남·분당을 중심으로 한 주상복합의 건설로 다시 이어진다.
세계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도 한국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분석이 갈렸다. 김주경 대표는 수요가 늘 창출되기 때문이라며 ‘수요지탱론’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요즘 추세는 인구는 주는데 가구수는 늘어난다. 수요가 꺼지지 않는다.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환금성이 뛰어난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요즘 금값이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 대표도 최근 주택 소유자 사이에서 아파트의 환금성에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서정렬 교수도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아파트 가격 하락폭이 크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중산층 계층이 집중된 서울 및 수도권의 아파트 수요가 꾸준해 가격 하락폭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해천 연구교수도 “현재의 아파트 가격은 버티기에 가깝다”면서도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유지되는 것은 수요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도 강남 아파트 가격 하락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았다. 강남 주택 수요가 있고, 동시에 강남 아파트 수요자층의 자산 토대가 튼튼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농지와 야산에 아파트가 솟은 한국의 농촌 풍경은 ‘아파트 신화’의 상징이다. 박해천 연구교수는 “농촌 거주민들조차 아파트가 지닌 신화적인 면모에 매혹돼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가 일찍 시작한 유럽에서 아파트는 노동자와 빈민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안된 주거 형태였다. 빈곤과 비위생에 시달리는 노동자계층에게 주거복지를 제공하며 가족 단위로 구별된 주택을 제공함으로써 계급의식과 단체행동을 제약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한국에서 아파트 문화는 애초에 ‘편리한 것’ ‘우월한 것’으로 수입됐다. 박 연구교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아파트의 평수 차이가 거주자가 속한 계층의 차이로 곧바로 연결되는 간단한 게임의 규칙은 1967년에 건설되었던 용산 이촌동의 공무원 아파트 바로 옆에 한강맨션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레 만들어졌던 것”이라고 썼다. 아파트가 지닌 문화적 힘 때문에 농민들이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를 선택한다는 게 박 연구교수의 논지다. 김주경 대표도 “농촌에서는 아파트의 환금성이 중요하지 않다. 도시에서의 아파트 선호가 농촌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도시 사람들은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우리는 왜 못해?’ 같은 정서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실용성론’이 반론으로 제기된다.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농촌에도 ‘나 홀로’ 아파트가 많다. 이는 양면성이 있다. 농민들이라고 생활 편의를 추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있지만, 생활 편의 측면에서 보면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다. 농촌에 나이 드신 분이 많아서 단독주택이 살기에 불편하다”고 주장했다. 서정렬 교수는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한 농촌 토지를 기반으로 아파트 사업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건설업체의 논리가 반영된 결과로 봤다.

 

[명강의를 찾아서] 박해천 홍익대 BK 연구교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한국, 김진각 편집위원, 2011/06/10 21:46:08)
한국에서 아파트란 무엇인가… 그 역사와 문화
아파트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디자인 연구 전문가인 박해천 홍익대 BK 연구교수는 "아파트는 우리의 삶과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주거공간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 즉 역사성과 문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비주얼아트센터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한국의 아파트가 갖고 있는 의미를 독특하게 풀어냈다. 그는 "아파트는 주거 유행을 창조했고, 사람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60년대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 가능한지 실험하는 기간이었다.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공동주거지 개념이 생소했던 시대에 주택공사가 처음 시도한 아파트는 뜻밖에 중산층들이 찾으면서 성공을 거뒀다. 박 교수는 "주공이 그때 뿌렸던 마포아파트 홍보물을 보면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있다"면서 "당시 교복은 사립학교만 입었기 때문에 마포아파트에 중산층이 꽤 살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6개 동 모두가 'Y'자 형태로 똑 같은 모양이어서 틀에 박힌 군사문화를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마포아파트의 성공이 70년대 서울시가 추진한 시민아파트 건설로 이어졌으나, 접근 방식은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마포아파트는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의 가능성 여부를 시험하는 무대였던데 반해 시민아파트는 달동네를 개조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는 것이다. 시민아파트는 출발부터 도시 빈민 거주지라는 계획하에 추진됐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였을까. 시민아파트인 와우아파트가 부실시공으로 70년 4월 무너졌다.
이로 인해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대안으로 70년대 초반부터 전망 좋고 품질 좋은 고급아파트가 등장했다. 그게 여의도와 용산구 이촌동 일대, 옛 반포 지역 등 한강 주변에 들어선 소위 한강 맨션아파트들이다. 그는 이 3곳을 '맨션의 트라이앵글'이라고 했다. 이는 당시 경제 상황과 맥이 닿아 있었다. "한강 맨션은 기존의 아파트와는 달랐다. 이전까진 60㎡ 정도가 가장 컸으나 한강 맨션은 99㎡에서 165㎡까지 지어졌다. 일본은 이때 경제호황을 누렸고, 우리도 고속도로가 만들어졌고 국산 포니차가 선을 보이는 등 고속성장기에 접어들었다. 경제발전이 중ㆍ대형 아파트를 짓게 만든 동력이었던 셈이다."
75년께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은 '한강 맨션의 트라이앵글'이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반포, 서초, 잠실, 압구정 등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아파트가 속속 등장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주목하라고 했다. 맨션의 트라이앵글과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잇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아파트에 대한 관점을 크게 바꿨다. 한강 맨션이 주거목적이었다면 현대아파트는 자산가치를 염두에 둔 소유, 투자의 측면이 강했다. 현대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의 20~30%가 용산과 여의도 거주자들이었다."
70년대 이런 강남지역 아파트 입주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40년 이후 출생자로 지방의 명문고 출신에 꽤 큰 기업체에 다니거나 고급공무원이 적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한 세대였는데, 이들이 내 집 마련을 하는 시점에 강남에 정착한 것이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한강 맨션과 강남의 아파트 단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박 교수의 분석은 명료했다. "한강 맨션이나 여의도 아파트촌은 서울 토박이 출신의 젊은 중상류층이 기존의 계층 질서를 재생산하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반면에 강남의 아파트 단지는 서울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지방 출신의 젊은 세대들이 내 집 마련과 함께 신흥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이 80년대 중반까지 주로 서울 외곽 지역에서 강남 아파트로 진입해 경제 성장을 주도하면서 이른바 '영동 문화'를 형성했다."
그는 90년대 이후 형성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화에서도 아파트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처음 강남 아파트에 발을 들여놓은 70년대생, 90년대 학번들이 우리 문화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서태지, 김현철, 성시경, 싸이 같은 가수들은 모두 강남 2세대다. 이들의 공간 감각과 시각적 감각은 일반인과 확연히 다른 부분은 쉽게 목도된다." 강남 8학군의 교육열 또한 아파트가 초래했다고 파악했다. 학력과 경제력이 비슷한 중ㆍ상류층들이 강남 아파트 단지에 대거 입주하면서 자녀를 좋은 학교로 보내기 위한 부모 간의 경쟁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는 것이다. 조기유학의 진원지도 따지고 보면 아파트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아파트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박 교수는 역할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고 했다.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년 이후엔 자산형성 수단으로서 아파트의 비중은 약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중산층이 아파트를 통해 자산을 축적하는 흐름이 차단됐고, 특징적인 아파트 문화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쯤 되면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에 눈을 돌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요즘 세대들은 도시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지녀야 한다. 다양한 주거문화, 형태에 그들만의 시각을 갖는 것이다. 다양한 주거 공간들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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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의 고백, "이것은 왜 '유토피아'가 아니란 말인가" (프레시안, 김영글 작가, 2011-04-22 오후 6:35:00)
[프레시안 books]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역시 아파트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아파트에 관한 방대한 양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단연코 이 책은 아파트에 관해서 말하고자 쓰인 책이 아니다. 여기서 아파트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정치, 문화, 역사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열쇳말로 작동한다.
저자 박해천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책을 설명한다. "아파트는 한국의 시각 문화를 어떻게 변모시켰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법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다고. 그러니 이 책의 여정은 아파트의 변천사를 설명하고 주거 풍속도를 훑어보는 수준에서 멈출 생각이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아파트에 투영된 현대인의 심리와 욕망, 그 작동 원리까지 그려내고자 하는 야심찬 기획이다.
악취 나는 투전의 장으로 전락한 아파트의 표면적 행보를 비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담론의 세계에서와 달리 물질의 세계에서 그러한 비판은 별 쓸모가 없다. 현실의 아파트는 여전히 대중을 매혹시키고 있다.
아파트 비판은 백전백패한다. 저자는 바로 그 이유를, 아파트가 교묘하게 구축해 놓은 시각 문화의 대중적 호소력을 간과한 데서 찾는다. 압축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아파트는 단지 몸집만 불린 것이 아니다. 거주자의 생활양식 뿐 아니라 감각 양식까지 조직하면서, 우리가 특정한 시각 논리를 갖추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더 이상 주거 상품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시각 문화 전반에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급기야 도시 생활자의 시선과 인지 방식 자체를 변화시켜 왔다.
꽃무늬는 곧 꽃무늬와 함께 했던 주부들인 것이다. 실내 장식에 애정을 쏟는 것으로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기실현을 도모했던. 소비 유행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정체성의 나침반을 따라 우왕좌왕했던. 산업화의 역군이라 불린 가부장 집단과 다를 바 없이 욕망의 숨바꼭질을 통해 나름의 역사를 써온 그녀들. 집이라는 공간이 가족의 정체성을 투영하는 거울이자 타자의 인정을 받기 위한 전시용 스크린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아파트 성공 신화를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노력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개인의 기억을 소환하는 책이다. 그 안에서 나는, 강남 1세대와 386세대 사이에 낀 '이름 없는 세대'의 자식으로 출생해 외환 위기의 불안한 학창 시절을 거치고 비정규직 900만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가고 있는 내 세대의 역사까지도 덤으로 읽고 만다.
아파트에 관해서 사람들은 극단적이기 쉽다. 열광하거나, 경멸하거나, 혹은 무심하다. 세 경우 모두, 아파트가 가진 힘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아파트와 함께 재편된 도시적 시각 질서 속에 있다. 우리는 언제나, "네가 어디 사는지를 말해봐, 그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테니"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이 조르조 아감벤의 '장치'라는 개념을 불러들이는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아파트' 스스로 대담하게 고백하듯이, 아파트는 그저 아파트가 아니다. 그는 '우리 내면의 윤곽을 주조하는 거푸집'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아파트에게 "비판의 법정에 선 용의자가 아니라 자기 옹호의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는 배우의 역할"을 맡김으로써, "아파트가 지닌 매혹적인 힘의 핵심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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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2 19:01 2012/08/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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