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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섭의 『민중의 집』서평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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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님의 [진보적 지역정치의 대안 - 민중의 집] 에 관련된 글.

 

이 글은 레디앙 편집자의 말처럼 서평이라기 보다는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 진보정치, 지역운동에 대한 강상구 동지의 고민과 생각을 [민중의 집] 책 비평을 빌려서 하고 있다. 정경섭 동지의 이 책도 아직 보진 못했지만,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을 고민하는 이라면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책도 이 글도 모두 강추한다.

 
현우가 쓴 <민중의 집> 서평이 내가 민중의 집을 보는 시각에 가깝다. "민중의 집이 유럽 사대주의 또는 마포의 모델을 넘어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수많은 민중의 집 혹은 그 유사품으로 퍼져나가려면 더 리얼한 진단과 더 많은 과감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현우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나도 내가 살아가는 곳에 맞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꾼다. 솔규가 페이스북에 쓴 평 또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장석준 동지의 글을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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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좌파, 이것에 미쳐야 산다! (프레시안,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2012-09-07 오후 6:27:57)
[장석준의 '적록 서재'] 정경섭의 <민중의 집>
영화 <1900년>에서 파시스트들이 가장 증오 혹은 질시했던 곳, 그람시 같은 혁명가에게 가정이나 다름없었던 곳, 페포네 읍장과 그의 동지들이 짓고자 했고 그래서 돈 카밀로 신부가 그 복제품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곳. 그곳이 바로 '민중의 집'이다.
옛날 책에는 '인민회관'으로 번역되기도 한 이 '민중의 집'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노동 운동, 사회주의 운동, 아나키스트 운동의 초기에 중요한 거점이자 토대였다. 벨기에에서 그랬고, 스웨덴에서 그랬으며, 스페인에서도 그러했다. 그리고 노르웨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울리의 그림 속 '민중의 집'은 그 한 사례였다. 즉, 그림 속에서 노동자들이 건설하는 '민중의 집'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분명한 실물이었던 것이다.
<위키피디아>에서 'people's houses(민중의 집)'를 검색해보면, "노동 계급이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가 및 문화 센터"라는 설명이 나온다. 맞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좀 일면적이기도 하다.
민중의 집은 일종의 문화 센터다. 우리가 아는 문화 센터들처럼 그 기본 설비는 집회실, 오락실, 식당, 정원 등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청이나 기업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민중이 직접 만든 시설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몰라도 한 세기 전 유럽의 민중의 집들은 분명 그랬다.
일단 스스로 이런 시설을 만든 사람들은 이 건물을 통해 자신들이 꿈꾸던 공동체적 삶을 꾸며나갔다. 노동조합원들은 공장에서 일할 때나 간혹 파업 투쟁을 벌일 때만 서로 만난 게 아니라 민중의 집의 식당이나 오락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족들도 이 장소에 모여 같이 공부하거나 여가 활동을 벌였다. 많은 경우, 소비자 협동조합이나 노동자 진료소 등이 입주해 그야말로 생활 공동체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정치는 기피해야 할 대상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민중의 집을 처음 만들 때부터 당연한 전제였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민중의 집을 만든 이들은 좌파 정당의 당원 혹은 지지자들이거나 노동조합원들이었다. 이들은 공공연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들이었다.
민중의 집은 좌파 정당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분명 중대한 역할을 했다. 민중의 집을 짓고 거기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만들어간 체험은 노동자들이 노동 '계급'으로 결집하는 데 단단한 이음매 역할을 했다. 또한 노동 운동의 주장이 좁은 의미의 노동자 집단을 넘어 지역 사회의 다양한 대중들로 확산되는 데도 사통팔달의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소개된 유럽 좌파 정당이나 노동 운동의 역사에서는 민중의 집 같은 시도와 경험들이 별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론 논쟁이나 당의 득표율 혹은 노동조합 조직률 추이만을 소개하는 자료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작 일상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였던 게 빠진 셈이었다. 이에 따라 좌파 정치는 계속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상상력 역시 제약받게 되었다.
이번에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의 민중의 집 사례에 대한 탐방기 <민중의 집>(레디앙 펴냄)을 낸 정경섭은 이런 '빠진 고리'를 감지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항상 지역 조직의 일선을 맡아온 정경섭은 유럽 민중의 집에 대한 단편적 소개들을 조합해 이 '빠진 고리'를 우리 운동에 채워 넣는 일에 나섰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은 지극히 실천적이었다. 그는 책을 내기 전에 먼저 마포에 대한민국 민중의 집 제1호부터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정경섭은 민중의 집 역사에 대한 조각 정보를 뛰어넘는 일에 나섰다. 유럽 민중의 집 현장들을 심층 탐방할 계획을 잡은 것이다. 마포 민중의 집을 만들 때에도 그는 좀 돈키호테 같았다. 아니, 성령이 임한 열혈 전도사 같았다. 완전히 민중의 집에 '미쳐' 있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미치도록' 만들었다. 그랬기에 배낭여행 값도 안 되는 예산으로 말도 잘 안 통하는 유럽 세 나라를 향해 떠나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민중의 집>이라는 알찬 경험과 정보의 집약체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진보 정당의 지역 활동가 이전에 오랫동안 기자이기도 했던 정경섭은 독자가 마치 저자의 여행에 동행하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유럽 민중의 집 견학 체험을 전달한다.
최근 전 세계 협동조합 사례들을 직접 눈으로 보듯 전달해주는 <협동조합, 참 좋다>(푸른지식 펴냄)라는 책에 감탄한 바 있는데, <민중의 집>도 그에 못지않다. 이 책 읽기는 그야말로 독서 '여행' 그것이다.
<민중의 집>이 이렇게 생동감 있게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저자가 결코 선진 문물 견학단의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정경섭은 이탈리아나 스웨덴의 민중의 집을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교과서로 접근하거나 정리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 사례는 우리에게 풍부한 영감을 던져주지만, 결코 한계나 도전 과제가 없지는 않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도 냉정하고 깊이 있게 짚는다.
가령, 이탈리아에서는 '반베를루스코니 연합' 문제로 인한 좌파 정당의 분열이 각지의 민중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민중의 집 중 많은 수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노화와 함께 예전의 운동적 성격을 잃어버린 상태다. 마침 총선 시기에 스웨덴에 방문하게 된 저자는 좌파의 총선 패배와 민중의 집의 동맥 경화 상태를 오버랩시켜 스웨덴 복지 국가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무거운 고민거리를 던진다.
특히 이탈리아의 산업 도시 토리노 남동쪽에 있다는 작은 도시 아스티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도시에서는 1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새롭게 민중의 집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100년 전 그들의 조상의 노력의 반복이기도 하고, 이제 막 민중의 집을 시도하기 시작한 우리와 동시대의 분투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1970년대에는 민중의 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근처에 50년 된 민중의 집이 있는데 지금은 그냥 식당이다. 우리는 과거의 민중의 집을 복원하고 싶다. 우리는 새로운 지역 정치 활동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다시 정치 그 자체, 그리고 좌파정당을 신뢰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역 운동 네트워크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치 상황이 이런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민중의 집>, 151쪽)
이렇게 보면, 민중의 집은 단순히 우리 운동의 빈 구석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한때 민중의 집 등을 통해 민중의 일상생활에 깊게 뿌리 내렸던 유럽의 노동 운동도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에게도 어느덧 채워 넣어야 빈 구석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각국의 좌파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계속 밀려왔던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지구화, 금융화 바람이 생활 세계를 장악해갈 때, 좌파는 이에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대중 운동의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 운동을 풀뿌리 대중의 생활 세계와 (재)접속해야 한다. 한 세기 전 그 접속의 시도는 민중의 집으로 나타났고, 이 경험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훌륭한 참고가 되어준다. 생태사회주의자 앙드레 고르는 이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기한 바 있다.
"노동조합은 사람들이 밤늦게 찾아갈 수 있는 '개방 센터'를 만들어서 모임 장소를 제공하고, 서비스와 상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민중 대학'이나 영국의 '지역 사회 센터' 혹은 덴마크의 '생산 학교' 등을 본떠서 노동자들과 실업자들―그리고 그 가족들―그리고 퇴직자들, 연금 수혜자들, 사춘기 연령의 젊은 부모들을 위해서 교육 과정과 주제 토론회, 영화 클럽, 수리점 등등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보수를 받는 노동 이외에는 오직 소극성과 지루함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반박해야 할 것이다.
또 노동조합은 상업적 소비문화와 오락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즉, 노동조합은 애초에 자신들이 발생하게 되었던 협동조합과 결사의 전통과 노동자 계급 문화 서클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고, 또 자발적인 조직 활동과 협동적 서비스, 그리고 그들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수행할 공통적인 이해가 걸린 작업 계획에 대해서 시민들이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광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 사회에서 '문화 사회'로의 이행", <후기 자본주의와 사회 운동의 전망>(의암출판 펴냄), 385~386쪽)
수십 년 묵은 좌파 정당과 노동 운동의 관성을 타파하자면, 우리 모두 얼마간 '미쳐야' 한다. 운동의 토대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허황된 의석 수 따위에 '미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미쳐야' 한다. 민중의 집에 '미친' 정경섭의 그 열정이 <민중의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염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 나는 일부러 <민중의 집>의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지는 않았다. 독자들이 직접 이 책의 흥미로운 대목들과 만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이 널리 읽히고 이 책을 읽은 누구나 새로운 실천의 의욕을 다졌으면 좋겠다.
사회민주주의자도 읽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도 읽고, 아나키스트도 읽었으면 좋겠다. 사회민주주의자라면 복지 국가의 참된 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라면 노동 계급의 혁명적 문화를 꽃피울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아나키스트라면 지금 여기에 공동체적 삶을 구현할 의지를 다지게 될 것이다. 모두들 <민중의 집>을 읽고, 민중의 집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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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규의 페북 글

 

김현우가 <민중의집>(정경섭,레디앙) 서평을 썼다. 
짧지만, '민중의집'과 한국의 민중운동의 인연부터, 현재적 의미까지 짚고 있다. 
 
그런데 왜 '정경섭'에 의해서, '당활동가'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민중의집'이 이야기되고 있는지 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김현우가 "조로한 당"이라 일컫는 '당'이 왜 민중의집에 관심을 갖는가?
 
"조로한 당" 이면에는 "미성숙의 노동조합"이 있다. 이 "미성숙"의 이유가 재단에 뿌려진 '피'가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신심을 바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다만, 눈물과 피의 점철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한국 노동세계를 짓누르는 무게를 뒤엎을만한 임계점을 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미성숙의 노동조합"은 자신의 돌파구를 '노동자정치세력화'에서 찾은 것은, 뒤늦은 선택일지언정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문제는 '노동자정치세력화'에서'만' 찾은 게 문제이다. 기업의 장벽에 갖힌 노동세계와, 지역의 토호에 점령당한 정치세계, 이 양자를 이을 '진지'는 없었다. 미디어와 '정치구도'에만 의존한 진보정치는 사실 '도박'에 가까웠다. 그리고 '운'은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제대로 첫 단추를 풀고자 한다면, 당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민중의집>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정치"의 복원과 함께, "지역사회"로의 진출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단지 외국 사회운동사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점들, 우리와 다른 경로들, 우리의 공백지점들, 우리의 강점들을 짚으면서, 민주노조운동도 새로운 순환의 길에 첫발을 디딜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90년대 초반 "몬드라곤"을 흘려보냈던 우리가 지금, <민중의집>을 또다시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창근 동지의 페북에 "울산 북구 양정동 현자비지회 XX 주소로 지원물품"을 보내달란다. 바로 이 장소가 <민중의집>의 다른 이름 아니겠는가...
 
'서평'보다는 '책'을, '책'보다는 '탐방'을, '탐방'보다는 '실험'을, 
아니, 그보다는 먼저 '신뢰'와 '자신감'부터 회복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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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진보'는 죽었다! '골목길 진보'여 부활하라! (프레시안, 김현우 진보신당 녹색위원장, 2012-08-24 오후 6:30:27)
[정치 몰입] 정경섭의 <민중의 집>
우리에게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그리고 <돈 까밀로와 뻬뽀네>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 조반니오 과레스키의 연작 소설은 공산당 시장 뻬뽀네와 천주교 신부 돈 까밀로의 좌충우돌 힘겨루기 이야기였다. 1980년대 말 한국에서는 다분히 해방 신학적 분위기로 읽혔지만, 원 소설이 넌지시 암시하는 메시지는 아무리 싸워도 모두들 예수님의 사랑 아래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거슬러 생각해보니, 내가 '민중의 집'을 처음 접한 것은 이 소설에서였던 듯하다.
여기서 '민중의 집(Casa del Popolo)'은 '인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뻬뽀네 시장의 가부장적 온정 정치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그에게는 무한한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돈 까밀로의 교회와 인민의 집은 공산당의 전능과 예수님의 은혜를 보여주고자 틈만 나면 경쟁을 벌이고 두 무대 위에서 갖가지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인민의 집이 이 조그만 시골 소읍 사람들의 생활과 정치에서도 얼마나 중심적인 공간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하겠다.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도시로 모여들고, 이들이 만나서 놀고 토론하고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이 생겼으니 이를 대략 '민중의 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게 초기 사회주의 대중운동과 민중 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했었고,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쉬 흔들리지 않듯 뒷심 있는 생활 진보 정치를 담보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 중심 가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처음 만들어졌던 곳에서 지금은 어떻게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진보 정치가 처한 답보 상황 혹은 기초 체력의 부족을 해결하는 시사점으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보조 가설쯤 되겠다. 이를 검증하러 정경섭 부부는 45일간의 유럽 탐험을 떠났고 이 책 <민중의 집>(레디앙 펴냄)은 그 결과물이다.
'마포 민중의 집'의 활동가가 돌아본 유럽 민중의 집은 한마디로 다양했다. 아마도 벨기에에서 시작되어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퍼져간 상황을 염두에 두면 초기의 형태는 유사했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 지도자와 노동조합 조직이 함께 사람과 돈과 벽돌을 모으고 감동적인 창립 행사를 갖고, 여기서 글을 가르치고 영화와 연극을 상영하며, 노동일을 마치고 온 이들이 맥주로 목을 축이며 정치 토론을 함께 했을 것이다. 이러한 원형과 이후의 분화와 변화를 필자는 세 나라의 역사와 정치를 가로지르며 추적한다.
스페인에는 민중의 집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노동조합 내셔널 센터 건물에 상징적으로 민중의 집(Casa del Pueblo)이라 이름을 붙여놓았을 뿐, 프랑코 독재는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거점이던 민중의 집을 철저히 파괴했다. 하긴 1922년에 로마로 진군하여 권력을 탈취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가장 먼저 했던 일도 각 지역의 노동 운동 결집소였던 노동회관(Camera del Lavoro)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지금도 활발히 민중의 집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공산당과 노동총동맹이 이끌었던 과거의 위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경섭은 민주당과 재건공산당, 좌파생태자유 등으로 분열한 좌파 정치의 전반적인 위축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실험들과 열정적인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 도시에 붉은 지대를 만들기 위한 콘텐츠와 아이디어, 열망을 담는 공간"이라는, 아스티 민중의 집을 소개하는 문구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되찾고자 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스웨덴은 사회민주당 정치와 복지 국가의 토대가 되었던 민중의 집이 규모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교육협회(ABF)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가 잘 밑받침하고 있다. 민중공원, 공동체 극장, 미디어 교육, 이주민 활동까지 모든 연대의 망이 민중의 집과 얽혀 있음을 확인했다.
정경섭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애초의 가설들은 충분히 검증된 듯싶다. 의회 정치를 중심으로 한 단기간의 선거 공학에 매달리면서 한국의 진보 정치는 조로했고,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조합원과 지역 주민, 정치 활동가들이 교류하고 만날 근거지도 만들지 못했다. 강박화된 장시간 노동과 다른 선택지가 불가능한 문화 재생산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다른 삶을 도모하는데 갈수록 주저하게 되었다. 앙드레 고르가 이야기한 '아뜰리에'가 의미가 있다면 그 가장 가까운 현실태가 지금의 민중의 집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이 자연스러운 지역 사회 좌파 거점 공간이 유독 한국에는 왜 부재했을까? 한국 전쟁 이후 너무도 급격히 변하는 사회 속에서 무언가 안정적인 것을 만드는 시도 자체가 심지어 노동 운동과 진보 정당 운동 속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을 게다. 눈앞의 독재 정권과 맞서야 했던 재야 운동, 식칼 테러에 맞서야 했던 노동 운동, 2년 또는 4년 뒤의 선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진보 정당 운동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긴 호흡의 무엇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을 게다. 그리하여 이 풍파와 자기 성숙 혹은 소진을 겪고 난 운동은 다시 거울 앞에 서서, 다시 십수 년을 일구어갈 거점과 콘텐츠를 고민할 여유 혹은 새로운 강제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큰 공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책에 포함된 사례와 여정의 제한성보다는, 정경섭만의 몫은 아니겠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돌아봄과 내다봄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정말 한국에는 민중의 집 같은 게 없었던 것일까? 영등포 산업선교회를 위시한 지역 노동 운동의 사랑방들이 있었다. 불온한 서적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게 했던 공단과 대학가의 서점들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글과 컴퓨터 교실을 열며 지역 주민 사이에 뿌리내리려 했던 민중 정당 운동 조직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러한 것들이 규모나 지속성 부족으로 무시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왜 확산되지 못했고, 사회적 의미를 인정받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던가, 이런 질문이 아닐까? 또한 이는 지금 민중의 집을 운동의 대안 모색 중 일부로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스웨덴의 민중의 집이 변화해왔고 지금 다른 사정들에 처해 있는 이유와 맥락이 다양함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마창노련(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과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을 만들었던 경제적, 사회적 조건과 단일화된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를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좌파 정당이 하나의 깃발을 갖기 어려워진 조건임이 분명하다면 민중의 집은 어떤 의미로 어떻게 존재해나가야 하는가?
민중의 집이 반드시 홍세화와 정경섭의 맨파워가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지 못한 지역이나 단위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신당 당원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영등포 정다방'과 '종점 수다방'이 보다 일반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닐까?
각 정치 활동가에게는 각자의 경험과 지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던져주는 읽을거리와 토론거리는 충분히 값지다. 민중의 집이 유럽 사대주의 또는 마포의 모델을 넘어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수많은 민중의 집 혹은 그 유사품으로 퍼져나가려면 더 리얼한 진단과 더 많은 과감한 이야기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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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발로 뛰어 쓴 책『민중의 집』 (레디앙, 강상구 진보신당 부대표. 구로 민중의 집 운영위원 / 2012년 8월 21일, 2:33 PM)
[서평아닌 서평]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새 길을 모색하다
또 ‘노동자 중심성’ 타령
‘노동자 중심성’이 무슨 사골인가. 10년 넘게 우려먹으면서 다 말아먹은 주제에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또 ‘노동자 중심성’ 타령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노동자 중심성’은 너무 많이 우려먹어서 이제 먹을 게 별로 없다. 약아 빠진 정치인들은 아마도 그때를 아주 잘 알 거라서, 쓸모없어질 딱 그 순간에 ‘노동자 중심성’을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그 순간이 와도 그럴 테지만 남들이 자꾸 ‘중심’이라고 얘기하는 노동자들은 한숨만 나온다. 진보정치가 힘을 얻기 시작하자마자 돈이나 내는 존재로 전락했던 노동자들은 그런 식이라면 애초부터 중심이 될 수가 없었다. 박근혜가 필요할 때만 시장에 가서 서민을 찾듯이 진보정치 역시 필요할 때만 공장에 가서 노동자들을 찾는 꼴이었으니까.
그래도 진보정치는 노동자 투쟁에 열심히 연대했다고?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파끼리의 연대는 조끼 입고 머리띠만 안 맸다 뿐이지 좌파 보다 훨씬 강고하고 전투적이며 어떤 땐 인간적이기 까지 하다.
‘노동자 중심성’은 진보정당이 아쉬울 때 조직노동자에게 하는 구애의 표현이 아니라 현실에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동자 중심성’은 새로운 미래를 여는 자산이 아니라 몰락을 증명하는 과거의 유산이 될 것이다. ‘노동자 중심성’을 한낱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시킨 건 물론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에 진출한 직후인 2005년부터 ‘진보정당의 위기’가 거론됐었다. 이 때 있었던 몇 번의 토론회에서 지적됐었던 건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의식화, 투쟁 사업을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빈민서민의 이익대변보다는 안정적인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하고 끌려간다는 인식의 문제’ 같은 것이었다. 당시 한 토론회에서는 “더 늦기 전에 <제 2 창당>의 결의로 <당 혁신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놀랍다. 그 후로도 7년이 흘렀으니.
 
10년의 고민을 담은 책
한 편에서는 운동의 위기가 이야기 되고 또 한 편에서는 2012년 집권론이 힘을 얻어가던 이즈음 당 교육국장으로 마포에 갔던 나는 뒤풀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다가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잠깐 따로 보자던 당시 마포지역위원회 정경섭 위원장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맥주집 2층의 커피숍으로 나를 끌고 간 정경섭 위원장은 앞뒤 없이 딱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의 지역개입을 어떻게 끌어내야 할까요?”
뜬금없고 싱겁고 그리고 너무 거대한 주제. 정말 아는 게 없어서 “저 같은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라고 대답하고 한 5분 만에 커피숍을 나왔었다. 책이나 읽고 남들 앞에서 말이나 하는 걸로 운동을 때우던 자의 종말이었다.
그때 이후로 마포에는 민중의 집이 만들어졌고, 그 동안 노동조합이나 정당 지역조직에서 볼 수 없었던 각종 프로그램들이 진행됐다. 노동조합이 민중의 집과 함께 지역활동을 벌이는 사례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민중의 집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정경섭은 그때부터 혹은 2000년대 초반에 ‘노동조합의 지역 개입’이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부터 치자면 10년 넘게, 누구나 얘기했지만 아무도 실천하지 않았던 그 주제에 천착해 왔다.
‘민중의 집’은 그 오랜 동안의 고민과 실천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을 돌며 45일 동안 민중의 집을 방문 조사했으며, 유럽 방문 후 한국에 돌아와 2년 동안 각종의 자료를 찾고 분석해서 이 책을 썼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민중의 집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수식어 없이 자기 책 제목을 그냥 ‘민중의 집’이라고 지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정경섭 뿐이다.
 
노동자들을 주체로 만드는 민중의 집
이탈리아에서 민중의 집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 임금노동자, 소작농, 주변부 노동자, 주부 등 곳곳에 피폐하게 흩어져 있던 ‘일하는 자’들이 물질적·상징적으로 결집하는 공간(18p)”이었다. 민중의 집은 사회주의의 풀뿌리 현장이었던 셈인데,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최소 1천 5백 개가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좌파정당 지지도가 높은 피렌체, 볼로냐, 밀라노 등에 민중의 집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스웨덴 민중의 집은 1890년대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스웨덴 사민당과 노총의 성장 기반이었고, 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긴밀한 결합의 상징이었다(27P)”고 저자는 전한다. 스웨덴에는 현재 전국에 530여개의 민중의 집이 운영되고 있으며, 민중의 집 연합회가 전국 민중의 집의 상급단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은 한 때 전국에 900여개의 민중의 집이 있었다는데, 가장 대표적인 민중의 집인 마드리드 민중의 집은 “1908년 새로 문을 연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1930년대 초반에는 회원이 무려 10만 명에 달했다(31P)”고 한다.
확실히 민중의 집은 노동운동과 정당운동의 풀뿌리 전략이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중요한 것은 민중의 집이 하는 일이다. 마가렛 콘 교수는 당시 민중의 집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시기 노동자들은 오로지 도구적 가치에 의해 생산과정에 투입된 말 그대로 ‘객체’였지만, 민중의 집이나 협동조합에서 노동자들은 ‘주체’, 대안적 세계를 함께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45p)” 뼈아픈 지적이다. 무슨 운동을 하든 활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변할 때의 기쁨을 누려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같이 놀고먹는 게 답
그런데 노동자들은 민중의 집에서 어떻게 주체가 됐을까. 스웨덴 민중의 집의 핵심은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차별을 받지 않고 문화를 향유하는 연대의 정신(28p)”에 있다고 한다. 멋진 말이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건 ‘지역사회 구성원의 의사소통 능력과 상호 이해를 강화’하는 것이란다.
지역사회 구성원의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고 상호 이해를 강화하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은 무엇일까. 우선 만나야 한다. 만나서 함께 먹고, 마시고, 놀아야 한다. 만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야기,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을 편견, 만나기 전에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동류의식은 죄다 만나야 알게 되고, 만나야 사라지고, 만나야 생겨난다.
저자는 공동체의 시작은 “놀이와 밥(375p)”이어야 한다는 말로 이를 설명한다. 따지고 보면 성장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자기계발로 사람 피곤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놀고 먹자!’는 주장은 얼마나 선동적인가. 만나서 함께 나누는 ‘놀이와 밥’ 속에서 구성원들의 상호 이해는 높아지고 의사소통 능력은 강화된다. 그게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혹은 그 누구든.
“마포 민중의 집은 먹고 마실 수 있는 시설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유용하게 이용된다. 지역 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체들은 대형 주방과 식탁, 모임 장소 등을 갖추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런 단체들이 공동으로 민중의 집을 이용하고 함께 공간을 나눠 쓰는 것은 마포 민중의 집이 가지는 주요한 전략 중에 하나다.”(359p)
확실히 그렇다. 필자가 구로에서 민중의 집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깨달음 가운데 하나도 ‘부엌의 힘’이었다. 함께 모여 먹을 수 있는 시설은 생협의 마을 모임도 노동자들의 송년회도 고등학생들과 선생님의 동아리 모임도 모두 민중의 집으로 오게 한다.
유럽 민중의 집 활동가들은 지역에서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 일단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연구하는데,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을 마련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집이나 사무실보다 더 쾌적하고 우아한 공간을 창출(357p)”해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노동자들과 주민이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쾌적한 공간의 사례를 그래도 찾아본다면, 에어콘 빵빵한 큰 사업장 노조 사무실에 조합원들이 밥 먹고 들러서 잠깐 커피 한 잔 하는 것 정도가 있을까.
회사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이 집 말고 잠시 들를 곳이라고는 술집 밖에 없고, 도시의 젊은 노동자들이나 실업노동자들이 늘 거쳐 가는 곳은 스타벅스나 까페베네 같은 곳이다. ‘집이나 사무실보다 더 쾌적하고 우아한 공간’은 돈을 내야 머무를 수 있는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공간’이고 그 나마 상당수는 거대자본에게 장악되어 있다.
어쨌든 만남의 기본은 놀고먹기에 있고, 민중의 집은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편하게 와서 놀고먹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게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시작이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몇몇 역사학자들은 작업장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 정체성이 이웃 간에 연대로 재강화할 때만 노동자로서의 의식이 발전했다는 점을 지적했다.(376p)”고 한다. 이웃 간 연대와 인간관계의 형성은 노동자의 집단적 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게 사실이라면 민중의 집의 역할은 보다 분명해진다. 예컨대 산별노조가 천의 세로방향 실(날줄)이라면 민중의 집은 가로로 놓인 실(씨줄)이 되는 셈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때 그때부터 바로 그 노동자들은 ‘노동자 계급’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10년 전부터 얘기해왔던 노동조합의 지역개입전략은 이 말대로라면 결국 노동조합의 대국민지지획득전략이 아니라 노동자계급형성전략이 된다.
유럽사회주의 세력은 민중의 집을 “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을 조직해 나가는 대중적 토대로 삼았고, 이를 통해 노동자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20p)”하려고 했다고 한다. 언제나 단결해 있는 자본가 계급에 비해 단결하여 ‘계급’이 되는 것 자체가 목표인 노동자에게 민중의 집은 주요한 전략적 거점이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웨덴의 노동자 교육협회는 주목할 만하다. 노동자 교육협회는 민중의 집과 함께 스웨덴 풀뿌리 민주주의의 쌍두마차다. 노동자교육협회는 “전국-광역-지역단위로 조직되어 있으면서 회원 조직인 사민당과 노총, 여러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에 교육프로그램을 제공(30p)”한다고 한다.
1912년 사민당과 노총, 협동조합 조직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노동자교육협회는 “당시에는 노동자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모든 종류의 시민교육을 지원(228p)”한다. 현재 “연간 75만 명의 스웨덴 사람들이 협회가 운영하는 약 3만 5천개의 스터디 서클과 교육과정에 참여하며, 연간 200만 명 이상이 협회가 주최하는 강연회나 음악회, 영화 상영 프로그램 등(229p)”에 참여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하다.
더 대단한 건 노동자교육협회의 10대 과제다. “1. 계급사회 폐지, 2. 민주주의의 발전, 3.모든 사람들의 차이에 기반 한 평등, 4.대중운동 강화, 5.비영리 부문의 발전, 6.모두를 위한 문화, 7.페다고지 차원의 과제, 8.평생교육, 9.건강과 만족스러운 일터, 10.전 지구적 과제: 시장 주도의 지구화 반대 등”
더 바랄게 별로 없다. 지역에서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강화되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그 정체성을 더욱 뿌리 깊게 만드는 노동자시민교육 전담기관의 존재는 확실히 우리로선 부러운 일이다.
 
민중의 집은 가장 정치적인 공간
이탈리아 토리노 남동쪽 작은 도시 아스티의 산타 리베라 민중의 집. 이곳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정당만의 힘으로 지역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꾸로 정당 없이 지역운동만 가지고 지역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지역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스스로를 조직하는 활동을 모색하려는 것이다.(150p)”
민중의 집은 이런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스스로를 조직하는 정치활동,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꾸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의 본령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노동조합이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만으로 이해돼서는 곤란하다. 이럴 경우 노동자대중은 정당이 집권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노동자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주체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일, 그리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주도권(헤게모니)을 잡아 궁극적으로 사회권력과 정치권력을 대체하는 일로 새로 정의되어야 한다.
물론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선거 때는 표를 얻는 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정치세력화 운동의 핵심 원리가 되면 안 된다. 선거 참여는 사회권력과 정치권력 가운데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또한 정치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우리가 정치권력을 대체했다고 볼 수 없으며, 사회적 주도권 확보 없이 세워진 정치권력이 무너지는 건 한 방이다. 사실 사회적 주도권 확보 없는 정치권력 획득은 불가능하다.
 
노동자 정체성을 가진 주체 만들기
산타 리베라 민중의 집 활동가가 말하듯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꾸는 일이 곧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의미여야 한다면, 노동자 정체성을 가진 주체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아마도 아래 다섯 가지 정도의 과정을 거치는 일일 것이다.
① 시민으로서 노동권 환경권 등 자기 권리 인식하기 ② 함께 협동하고 연대하면서 생활개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③ 대안적 삶의 방식을 개발하고 실천하기 ④ 권력에 맞서 다양한 형태로 대응하고 문제제기하며 저항하고 싸우기 ⑤ 이와 연결돼 현실정치에 대해 관심 갖고 참여하기.
4번과 5번이 없는 운동은 ‘착한 시민운동’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예전의 노동운동은 1번부터 5번까지를 다 했거나 하려고 했었는데 3번은 사라진지 오래 됐고, 4번과 5번은 돈 대고 몸 대다 지치는 걸로 결론 났다. 1번과 2번은? 그건 자기 회사 월급 올리는 ‘실리주의’로 귀결됐다.
‘민원해결사’ 노릇에, 노동자를 ‘위해서’ 그들을 ‘대변’이나 하는 정당운동이나 노조운동은 발전할 가망이 없다. 과거 노동운동이 성장하던 시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새로운 정치의 주체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사회권력과 정치권력을 대체할 수 있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노동자는 정치적으로 세력화되는 것이다.
우파의 권력이 전국에 걸쳐 지역적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이 이웃과의 연대로 재강화되어야 한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특히 지역에서의 정치세력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의 ‘지역정치세력화’이다. 노동자 중심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시 세워져야 한다. 민중의 집은 이에 복무할 수 있는 공간이며,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자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노선이다.
 
사회운동이 모이는 중심으로서의 민중의 집
이탈리아 민중의 집은 “생디칼리스트, 개혁적 카톨릭 세력, 사회주의 세력 내 여러 분파들이 공존하면서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연대하는 대중정치의 공간(25p)”이었으며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탈리아에 비해 스웨덴 민중의 집은 “준공공기관에 가까울 정도로 안정된 곳이 많았다. 민중의 집의 가장 기초적인 골격은 지역사회단체들의 네트워크이자 허브(29p)”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아무리 작은 민중의 집이라 해도 “최소 20개에서 많게는 60개가 넘는 조직이 회원조직(29p)”으로서 민중의 집을 같이 꾸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 민중의 집은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운동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장 열심히 움직여야 할 곳은 현재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진보정당이어야 할테지만.
이탈리아 재건공산당 볼로냐 지부 위원장인 로셀라 위원장의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민중의 집에서 노총-정당-협동조합이 함께 회의를 했는데 지금은 연결선이 약해졌다.” “민중의 집의 정부 비판 기능은 예전에 비해 약해졌다. 당이 분당되지 않고 민중의 집과 노총 등이 함께 했을 때 민중의 집은 항상 노동운동 편이었고 자본가를 상대로 했지만, 지금은 당이 나뉘고 우리는 국회의원도 없다.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124p)
정당과 노조, 민중의 집의 연결선이 약해짐으로써 민중의 집의 정치적 색채도 옅어졌다는 얘기다. 결국 민중의 집이 정치적이기 위해서는 정당-노조-민중의 집의 연결선이 강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민중의 집을 반드시 정당이 운영한다거나 민중의 집의 의결구조를 정당이 장악한다고 해서 민중이 집이 잘 된다거나 정치적 성격을 가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정당과 노조가 민중의 집과 잘 연결되는 것이다.
이 연결은 곧 민중의 집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끊임없이 왕래하고 소통하는 구조로 이어질 것이며, 그 구조는 곧 앞서 말한 대로 민중의 집을 ‘정치적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이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늘 말하는 ‘조직화’의 의미도 바뀔 것이다. 우리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매개로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해주는 일로 말이다.
 
민중의 집에서 당의 역할
로셀라는 과거 민중의 집의 간판은 ‘민중의 집’이었지만 “여기는 좌파정당의 집”이라고 쓰여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마포나 구로 민중의 집이 ‘진보신당이 하는 곳’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고, 진보신당 서울시당 김일웅 위원장의 말처럼 강북의 작은 도서관이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진보신당이 하는 도서관’으로 동네에 소문났으며, 대구 서구의 도서관 ‘햇빛 따라’에서 상근하시는 김은자 동지가 진보신당 사람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은 우파가 지배하고 있는 풀뿌리 지역사회를 좌파적으로 바꾸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 이를 테면 ‘지역운동발전전략’이 있는가 하는 점일 텐데 돌이켜보면 진보정당의 지역 조직이 이런 식의 전략을 가졌던 적은 일부 정파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전략이 있는 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당원인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노조가 지역과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자기 사업장에서 노력하게끔 하는 일을 당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의 간부가 아니라 보통의 노동자들이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과 접하고 진보적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녹색, 여성, 장애 같은 부문운동이 지역에서 주민노동자들과 용광로처럼 섞이게 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주제넘은 말이지만 노동운동의 혁신에 진보정당이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전략이 없는 당은 민중의 집 존립 자체를 어렵게 하거나 혹은 민중의 집을 표류하게 한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돈’ 문제가 민중의 집의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 ‘좌파의 집’이 볼로냐에만 15~16개 정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단 3곳뿐이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좌파민주당과 재건공산당으로 나뉜 1990년대 초부터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좌파정당의 당세가 기울면서 더 이상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123p)
이탈리아에서는 “보수정권의 우세, 중도정당의 우경화, 좌파정당의 거듭된 분열로 고전하면서, 민중의 집=좌파의 집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게(25p)”되었고,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내전 후 프랑코 독재정권이 수립되면서 파괴된 민중의 집이 주로 스페인 노총의 주도하에 복원되려 하고 있으나 이미 80년대 초반 중도노선으로 우경화한 사회노동당은 민중의 집을 완전히 잊었으며, 스웨덴 사민당이 운영하는 민중의 집은 지역사회 민중의 집과는 기능이 전혀 다른 대규모 컨벤션센터라고 한다.
 
다시 시작하려는 움직임
로셀라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민중의 집 활동이 왕성했던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곧 닥쳐올 것이다. 그때 민중의 집이 다시 사람들을 모으고 쉴 수 있게 해주고, 자본에 대항하는 기지 역할을 할 수 있길 기원하고 있다.(125p)”
민중이 집에 대해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유럽의 민중의 집은 그곳의 노동운동과 정당운동이 그랬듯이 옛날 같지 않다. 결국 유럽이나 한국이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처지, 같은 마음이다. 모두가 잘 해야 한다.
덕분에 민중의 집을 하면서 드는 고민이 더 커진다. 대체 지역에서 사업장과 업종이 다른 노동자들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는 게 가능한 일일까. 우리의 활동가들은 그 과정을 충분히 이겨낼 만큼 단련되어 있는가. 여전히 주민들을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는 활동가들이 ‘소통의 매개자’로 변화하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인사조차 잘 안 하는 진보정당의 당원 문화를 바꾸는 것부터가 먼저 아닐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잘 못하면 민중의 집은 하나의 단순한 공간이자 잠깐 동안의 해프닝으로 끝날 테지만, 잘 할 수만 있다면 사회운동 전반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기획이라는 점이다.
내 말로는 믿음이 안 갈 테니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심광현 교수는 이 책 속에 인용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까지 ‘아래로부터’ 대중의 능동적 참여에 의한 진보운동의 재구성이 적극적으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과 회원, 당원 등 기존 사회운동의 구성원들이 ‘민중의 집’을 통해 지역대중들을 만나고 또 스스로에게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기존 사회운동자체가 다시 활력을 얻게 되는 ‘프로세스’. 민중의 집 건립운동은 사회운동 전반을 혁신하고 개조하는 공동의 프로젝트다.(363p)”
 
발로 뛰어서 쓴 책이 진짜 책
만남을 조직한다는 것. 이 말을 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사소한 일이라도 전화를 하고, 뭔가를 쓰고, 찾아가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다시 찾아가는 등의 일을 반복함으로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안다.
낯선 사람에게 내미는 악수가 수도 없는 어색함 끝에 소통의 기본임을 깨달은 길 위의 활동가와 단지 정치인의 뻔뻔한 위선으로 이해하고 있는 책상머리의 원칙론자와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이 올바르다고 믿는 ‘투사’와 투쟁조차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때론 광대라도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사이의 현실적 간극 역시 작지 않다.
“민중의 집은 공간 그자체이기 이전에 개인과 개인, 개인과 조직, 조직과 조직을 연결하는 메커니즘에 가까웠다.(19p)” 이런 류의 문장들이 이 책에는 곳곳에 적혀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말들, 단어를 연결시키는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런 문장들. 그래서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말들.
하지만 저자가 오랜 기간 몸을 움직여가며 얻은 작은 깨달음들을 모아 만들었을 이 말들의 무게는, 온갖 현란한 단어들을 열거하면서 철학자이자 역사가이며 운동가인 척 하는 자들 특히 그 중에서도 본인만이 원칙적인 체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다.
서평을 쓰기 위해 두 번째로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온통 이런 말들에만 밑줄을 그어 놨다는 점을 알게 됐다. 나는 이 말들 속에서 현실에서 발을 옮겨야 하는 우리 걸음에 놓인 그 무거움들과 자꾸 다시 만나게 된다. 때로는 감탄하며, 때로는 한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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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 03:08 2013/01/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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