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손배 가압류
10일 뒤면 배달호 열사의 10주기입니다. 그는 두산중공업의 손배가압류 문제 등을 제기하며 분신자결하였습니다. (관련글: 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는 노래, 호각) 이번에 돌아가신 노동자들도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가 문제였습니다.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도 아니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이른바 민주정부 시절부터 노조파괴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죽어나가자 노동법률단체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쟁의행위를 벌인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을 촉구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자회견, 토론회 등을 상당히 한 것 같은데, 상황은 10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이 문제를 다룬 기사들을 블로그에다 모아놓았는데, 잘 못찾겠네요. 앞으로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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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 손배청구액 70,000,000,000원 (한겨레, 김소연 기자, 2012.12.27 20:43)
기업의 노조파괴 수단으로 악용
2000년초 탄압수단으로 본격 등장
MB정부때부터 개인에게도 청구해
대부분 파업 ‘불법’ 규정해 눈덩이
2010년의 6배…가압류는 10배 이상
* 700억원·2011년 노동부 자료
사용자 쪽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사례는 21일 숨진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처음은 아니다. 9년 전에도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에 따른 압박감을 못 이겨 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는 손해배상·가압류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분신자살했고, 같은 해 10월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 이해남 세원테크 노조위원장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손배·가압류가 사회문제가 되자 노동계와 경영계가 소송을 자제하기로 합의를 했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27일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기업이 노조나 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액수가 2010년 121억4200만원에서 지난해 7월 기준 700억1000만원으로 급증했다. 가압류 신청 금액도 2010년 13억3000만원에서 지난해 160억49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사쪽의 손해배상 청구는 대기업 노조부터 사회적 약자들인 비정규직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철도노조는 2006년 파업으로 2010년에 10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은 데 이어, 2009년 파업으로 또다시 6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가 2009년 당시 파업에 들어가려고 하자, 사쪽인 코레일이 법원 확정판결도 나오지 않았는데 2006년 파업 때 청구한 손해배상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하겠다고 협박했다. 가압류가 들어오는 순간 노조는 돈줄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손배·가압류는 노조를 옥죄는 노동탄압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노조뿐만 아니라 노조 간부 개인에게도 손해배상이 청구되면서 노조 활동이 더 위축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손배·가압류는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비켜 가지 않는다. 불법파견 인정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경우, 현대차 사쪽은 700여명의 조합원을 상대로 116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90여명에 대해선 가압류까지 이뤄졌다. 한달 월급이 고작 100만원 안팎인 홍익대 청소노동자들도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싸우다가 홍익대로부터 2억8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이처럼 사용자 쪽이 손해배상·가압류를 남발하는 배경에는 노동자들이 합법파업을 하기가 무척 어려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웬만한 파업은 대부분 ‘불법’으로 간주되고, 사쪽은 ‘불법파업’임을 내세워 법적 대응에 나서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한진중공업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와 철도노조의 구조조정 중단 요구 등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지만, 이 문제로 파업을 하면 우리 사회에선 불법이 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데 어느 누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나. 불법을 감수하며 파업과 농성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 또한 불법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근로조건 관련 분쟁’만 합법파업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법원은 구조조정, 민영화, 정리해고 등은 경영권에 해당하는 문제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해석한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합법파업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 현장의 손해배상·가압류가 노조를 탄압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 손해배상·가압류가 심한 이유는 파업권을 부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데다, 법원이 소송에서 너무 쉽게 사용자 쪽의 주장을 인정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조파괴 수단 된 회사의 손배소송 제한해야” (한겨레, 김소연 기자, 부산/김광수 기자, 2012.12.27 19:47)
민변 등 법률가단체들, 노동조합법 개정 촉구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 최강서(35)씨의 자살을 불러온 주요 원인인 사쪽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해, 법률가 단체들이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 5개 단체는 27일 오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들어설 예정인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도록 노동조합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현재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를 비롯해 수많은 투쟁사업장 노조들이 각종 손해배상 청구로 위협을 받고 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 제도가 노조 파괴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된 사업장은 한진중공업(158억원), 쌍용자동차(237억원), 문화방송(MBC·195억원), 케이이씨(KEC·156억원), 코레일(철도공사·65억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116억원) 등이다.
법률가 단체들은 “사용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고 노조가 쟁의행위를 계속하거나 다시 하려고 하면 가압류에 들어가겠다고 위협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동기본권을 침해하거나 노조 자체의 괴멸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원이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단순히 민사소송상의 입증 문제만으로 바라봐, 사용자들의 막대한 청구를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노동법과 노동사건의 사회법적인 특수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쟁의행위가 폭력적인 상황으로 진행되지 않는 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이날 오후 부산역 앞에서 2000여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영남권 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한진중공업은 노조를 상대로 낸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부당해고와 피말리는 소송이 외대 노조간부들 죽음 불렀다” (한겨레, 용인/김기성 기자, 2012.12.27 20:39)
변호사 “학교쪽 소송 질 것 알면서도 항소심 무리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측 손배소 (경향, 이영경 기자, 2012-12-27 22:21:10)
ㆍ쟁의행위 손해 주장… MBC도 노조에 195억 요구
ㆍ노조 파괴 수단 악용… 법률가들 “위헌” 법 개정 주장
노동조합 활동을 옥죄는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간부 최모씨(35)는 유서에 “노조를 상대로 낸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철회하라”는 글을 남겼다.
경향신문이 27일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코레일·유성기업·MBC·KEC 등 7개 노조에 청구된 손해배상액을 합한 결과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해고와 징계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조원들에게는 만져볼 수도 없는 큰 액수다. 이들 사업장은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등 노사갈등이 심한 곳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11월 정리해고를 철회하면서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최소화한다는 노사합의를 깨고 158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송전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자와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100억원대의 손배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2009년 파업을 이유로 쌍용차는 노조와 조합원 140명을 상대로 100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도 비정규직지회가 2010년 벌인 파업을 이유로 81억원, 올해 벌인 파업을 이유로 35억원 등 총 116억원의 손배 소송을 청구했다.
MBC는 노조와 집행부 16명을 상대로 195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반도체업체 KEC 노조와 조합원 66명도 156억원의 손배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코레일이 철도노조를 상대로 낸 손배 소송 액수는 98억원이다.
정부와 민간 보험사도 손배 소송으로 노조 옥죄기에 동참하고 있다. 정부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 27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파업 진압 당시 노조와의 충돌로 부상당한 경찰들의 치료비와 손상된 경찰 장비에 대한 보상 명목이다. 메리츠화재는 쌍용차에 지급한 보험금에 대한 구상금으로 110억원을 노조에 청구했다.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가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고 노동자의 자살 사태까지 이어지자 이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기업들이 노조의 쟁의행위를 제약하고 노조 파괴 수단으로 손해배상과 가압류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합법적 쟁의행위로 생긴 손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법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설]노동자 죽음 몰아넣는 손배소 남용 근절돼야 (경향, 2012-12-27 21:18:47)
현재 파업에 대한 사측의 손배소 액수가 알려진 것만도 1000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한진중공업 외에 쌍용자동차 237억원, MBC 195억원, KEC 156억원,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116억원, 철도노조 98억원, 유성기업 40억원 등이고, 수억원대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쟁의행위에 대해 폭력적인 상황으로 진행되지 않는 한 배상 책임을 지울 수 없음에도 사측이 손배소와 가압류제도를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남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사용자 손배청구권 남용에 노조만 '패가망신' (매노, 구은회 기자, 2012.12.28)
노동법률단체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청구 제한해야"
노동법률단체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쟁의행위를 벌인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촉구했다. 박 당선자가 잇단 노동자 사망사건에 대해 해결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주문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민주노총 법률원은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 당선자가 입버릇처럼 밝힌 ‘국민행복’에 노동자가 배제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된 반노조 정책을 폐기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에 착수하라”고 요구했다. 손해배상 청구권을 남용해 노조와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용자들의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회사 청구 100억원·국가 청구 27억원·구상금 110억원)·금속노조 KEC지회(156억원)·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2010년 파업 81억원·2012년 파업 35억원)·언론노조 MBC본부(195억원)·철도노조(98억원) 등 주요 분규 사업장 노조들은 회사측이 제기한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로 물질적·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
헌법에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보장돼 있다. 하지만 법원이 쟁의행위에 민사적 원리를 적용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노조는 파업 한 번에 패가망신하는 상황에 몰린다. 실제로 법원은 쟁의행위에서 비롯된 민사소송상 손해액만 입증되면 사용자들의 제기한 막대한 손배청구를 인정해 주고 있다.
이들 단체는 “쟁의행위는 그 자체가 기본권 행사인 동시에 헌법적 질서에서 예정하고 있는 행위”라며 “쟁의행위가 폭력적인 상황으로 진행되지 않는 한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배상책임을 부정하는 방향의 입법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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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가압류, 나는 당해보지 않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안다. 바로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과 같은 이들이 목을 매거나 분신하면서 남긴 것이 손배·가압류를 철회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철도노조에게 대해 철도공사를 상대로 24억 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포스코 본사를 점거했던 포항건설노조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조치가 포스코로부터 행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냥 답답할 뿐이다.
백무산 시인의 관련된 시와 프레시안 김하영 기자의 기사를 담아왔다.
백무산(시인)
불법파업에는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대응하고
합법파업에는 직장폐쇄로 맞서라
불법국회파업에는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대응하고
합법파업에는 국회를 폐쇄하라
파업 참가자 급여를 가압류하고
본인과 가족과 보증인의 모든 재산을 가압류하라
파업의원의 세비를 가압류하고
당사와 집과 비자금과 골프채를 가압류하라
노동자들의 제도개선 따위 정치파업은 불법이므로
생산차질 거액을 손배소로 압류하라
정치인들의 사학법 따위 비정치적 파업은 불법이므로
생활차질 거액을 손배소로 압류하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하고 정리해고로 맞서라
무노동 무세비 원칙을 고수하고 국민소환으로 맞서라
국회의원이 무슨 노동자냐?
아니므로, 손배소를 수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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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가압류' 망령, 비정규직 상대로 부활 (프레시안, 김하영 기자, 2006-07-27 오전 11:22:03)
수백억원으로 급증…과중한 압박으로 갈등증폭 불씨
2003년 '신종 노조탄압 수단'이라 불리며 노동계의 반발을 샀던 '손배·가압류' 문제가 잠시 주춤하다가 2005년 이후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다. 특히 최근 비정규직 분야의 노사분쟁이 증가하며 대부분의 손배소송이 비정규직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최근 대법원이 2003년의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24억여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이같은 손배소송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사용자 측에서는 "불법파업 및 업무방해 등의 불법행위를 막고, 이를 막지 못했을 때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손배소송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손배·가압류가 노동자 개인은 물론 노조활동에 끼치는 영향력은 가히 파괴적이다.
■ 2005년 이후 비정규직에 손배소송 집중: 노동부에 따르면 노조 활동과 관련된 연도별 손해배상 소송액은 2002년 210억여 원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의 자살을 기점으로 줄어들어 2004년에는 67억 원정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노총은 손배액에 부분에서 노동부보다 2배 가량 많게 집계하고 있지만 2003년을 기점으로 줄어들었다는 데 대해서는 양쪽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2005년부터는 손배·가압류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조, 기륭전자 노조, 익산CC 노조 등 비정규직 노조에 대해 제기된 손배소 금액만 모두 400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KTX 여승무원 노조에 대해 철도공사가 '스티커 제거 비용'으로 3억여 원, ㈜한국철도유통이 파업기간 손실 명목으로 5600만 원의 손배소송을 각각 제기했다. '점거사태'를 겪은 포스코건설도 포항 건설노조를 상대로 18억여 원의 손배소송을 준비 중이다. 현재 해결되지 않은 전체 손배소송액 가운데 85% 가량이 비정규직 노조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비정규직 노조 손배소송이 늘어난 이유는: 노동법 상 합법파업에 대해서는 손배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 분쟁은 대개 '불법' 딱지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비정규직 노조의 대부분이 하청의 형태로 공정의 일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기계를 멈추는' 파업 본래의 효과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불법행동'을 택하는 일이 잦다.
사용자 측은 하청계약을 해지하는 형태로 손쉽게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고, 노조 조직률이 낮은 사업장의 경우 노조가 비노조원을 상대로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하기 일쑤다. 또한 근로계약 상 하청업체가 사용자이기 때문에 법률상 하청업체와 '쟁의'를 벌여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원청회사가 '사용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실력행사를 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게 된다. 원청업체는 계약상 사용자가 아니고, 따라서 법률상 쟁의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포항 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와 KTX 여승무원 노조의 '스티커 투쟁' 등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일 들이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은 "대기업 노조의 경우 노사관계가 안정돼 가는 경향이지만, 막 생겨나기 시작한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끊임없는 분쟁을 겪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파업 절차가 까다롭고,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아 수많은 손배와 고소·고발에 시달리는 데 반해, 사용자는 불법 파견 판정을 받아도 끄떡없다"고 비판했다.
법원도 '파업 목적'의 정당성보다 '파업 절차'의 합법성에 무게를 두고 판결하기 때문에 노조 측이 송사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지 않다.
■ 가장 악랄한 수법-개인에게 손배 때리기: KTX 여승무원 노조원들도 최근 '3억짜리' 손배소장을 받고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그동안 파업을 응원해주던 주위 가족들도 손배소장을 보고서는 '이제 그만하고 새 직장을 찾으라'고 애원한다고 한다.
한 노조원은 "차라리 감옥을 가라면 가겠지만, 3억 원을 내라면…"이라고 말 끝을 흐렸다. 이런 상태에서 사용자 측이 "노조를 탈퇴하면 손배소송을 취하해 주겠다"고 회유하면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있던 노조원들도 흔들리게 된다.
'단체행동'인 파업 등에 대해 개인에게 손배·가압류를 제기하는 것이 가혹하다는 사회적 비난에 따라 개인을 상대로 한 손배·가압류는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최근 비정규직 분야에서는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조직이 잘 갖춰진 대규모 노조는 손배·가압류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조직력이 약하고 노조 경험이 적은 비정규직 노조에게는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노조 자체를 상대로 한 손배소로 소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손배를 거는 행위는 노조 와해 공작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 가압류 들어오면 살 길이 막막: 수억~수십억 원에 이르는 손배소는 개별 노동자들에게 '억' 소리 나는 눈앞 캄캄한 일이지만, 가압류가 들어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당장의 생계가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의 폐해를 인정해 최저생계비를 남겨두도록 급여 가압류의 한도를 제한했지만, 전세값이나 통장잔액 등의 자산은 여전히 위태로운 상태다.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집안에 각종 가압류 딱지가 덕지덕지 붙고 급여 가압류로 수입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아이들 학원비는 물론 먹고 입는 비용까지 줄여야만 한다. 2003년 1월 분신자살한 배달호 씨는 유서에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를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이 없을 것이다"라고 토로해 가압류의 잔인함을 보여줬다.
■ 손배액 산정에는 문제 없나: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 노조원들에게 청구한 손배액 3억 원의 산출 근거는 '스티커 한 장당 제거비용 5506원'이라는 것이다. 스티커 한 장을 떼는 데 15분이 걸리는데, 철도공사 정규직 직원의 15분 간의 임금과 스티커 제거용 스프레이 등 재료 구입비용을 합산한 금액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KTX 여승무원 노조는 "공사 측이 스티커를 제거하기 위해 인건비를 별도로 지출한 것도 아니면서 금액을 부풀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노조원은 "우스개 소리로 '만약 나한테 3억을 주면 스티커를 내가 다 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만약 손배소송이 진행돼 스티커 부착의 불법성이 인정되면 스티커 부착 비용을 두고 노사가 다퉈야 할 판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불법 파업 등으로 인한 영업손실 비용을 손배액에 그대로 포함시켜 청구하는데, 노조 측은 이 또한 근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파업기간의 손실액은 파업이 끝난 뒤 특근과 잔업 등을 통해 보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파업 종료 이후의 보충은 무시하고 파업 기간의 손해만 따져 손배를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정확한 손해액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손해사정인을 고용해 정밀한 조사를 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노조는 회사의 영업기밀에 접근할 수 없고 산정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당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앉아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 "손배 때려서 다 받아낸 기업 있나":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은 "그동안의 사례를 보건대 손배·가압류 소송을 걸어 법원에서 이긴 뒤 손배액을 전부 다 받아내는 회사는 하나도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사용자 측은 손배·가압류 소송 금액이 개별 노동자가 갚을 수 없는 수준임을 뻔히 알면서도 '노조 탄압'의 수단으로 손배·가압류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2~3년씩 걸리는 손배·가압류 소송을 걸어 두면 사용자 측은 노조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에이스' 카드를 한 장 더 쥐고 카드를 치는 셈이다. 그래서 손배소송의 대부분은 노조가 백기항복을 하는 것으로 끝나거나 양측의 합의에 의해 취하된다. 하지만 이 에이스 카드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손배·가압류가 또 다른 노사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 철도노조는 "철도공사를 상대로 24억 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어떻게 갚으라는 것인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노조의 고정자산에 대해 압류가 들어오고 조합비에 대해 압류가 들어오게 될 텐데, 이는 노조더러 문을 닫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게 과연 노사관계를 제대로 풀어나가자던 사측이 취할 태도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철도노조의 손배·가압류 문제가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처럼 비정규직 분야에서 손배·가압류가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의 목을 조여 오고 있다. 고용 불안정, 낮은 임금, 취약한 조직력 등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로 인해 겪는 고통은 대규모 조직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크다.
2003년에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 한진중공업 김주익 씨, 세원테크 이해남 씨 등이 목을 매거나 분신하기에 이른 과정에도 손배·가압류의 문제가 깔려 있었다. 이런 '희생'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재의 상황을 냉철히 살펴봐야 한다고 노동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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