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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활동가’라는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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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님이 인권오름에 쓴 글은 나름의 사회활동을 하는 이들이 자신의 직장에서 직면하는 고민을 잘 풀어놓고 있습니다. "활동에 있어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대중과의 호흡이자 소통인데 그 ‘대중’이라는 것을 너무나 먼 곳에서만 찾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하게 되는 것지요.

   

문제는 그러한 활동을 한다고 커밍아웃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손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여겨져야 할 텐데, 보통은 굉장한 '그 무엇'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된다는 것이죠. 특히 대화 분위기가 반동적으로 흘러갈 때 이에 반박을 하면서 드러나다 보니 '전형적인 인간'으로 찍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에 대해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지지요. 

 

게다가 스스로 '활동가'라는 정체성까지는 가지지 않고 단지 진보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맘 먹고 시민사회단체의 회원으로 있는 경우에는 애매하지요. 그렇더라도 사회 분위기가 갈수록 보수화되는 현 시기에는 좀더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소통하는 기회를 많이 마련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의견이 비슷한 이들을 이끌어내고요.



[뒤척이다] ‘활동가’라는 커밍아웃 (유라, 인권오름 제 36 호 [입력] 2007년 01월 09일 14:11:27)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동료들은 거의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사람들로 소위 ‘386세대’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에는 학생 시절 열정적으로 투쟁했던 사람도 있고 80년대 민주화운동 때 한 몫 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동안은 내가 인권활동을 하고 있다고 그들 앞에서 밝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대학 시절에는 데모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지라 그 사람들의 학생운동 경력 앞에서 괜히 주눅도 들었고 그들과의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크고 작은 논쟁들도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살기

회사동료 중 몇몇은 아직도 자신들이 꽤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단지 보상을 원만히 처리하지 못하고 전경을 많이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그들이 내 눈에는 별로 진보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망설여집니다. 머릿속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로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나이기에 그들의 강한 주장과 능숙한 언변 앞에서 고스란히 공격을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이후에 오는 서먹함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본전도 못 건질 일을 벌여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살기

시간이 흘러 어쩌다보니 몇몇 사람들은 내가 인권단체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좋은 일 하네요”
“직장 다니면서 활동하기 쉽지 않을텐데……. 부럽네요”
“나도 예전에는 데모 많이 했었어요”
  
인권활동을 무슨 봉사활동 쯤으로 여기는 사람, 자신도 뭔가 활동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 여전히 활동과 데모를 동일시하는 사람 등 인권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지금까진 부정적인 반응보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고 별다른 논쟁도 없었지만 회사 내에서 나의 생각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된다면 부딪치는 부분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겠죠. 그로 인한 인간관계에서의 불편함 등을 생각하니 아직 내가 활동가임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굳이 드러내지 않았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그와 관련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회사생활을 하기에는 편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지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더 이상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활동에 있어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대중과의 호흡이자 소통인데 그 ‘대중’이라는 것을 너무나 먼 곳에서만 찾았던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주장이 강한 주변 사람들에게 지레 겁을 먹고 가까이 있는 또다른 동료들은 아예 제외시킨 채 전혀 안면도 없는 사람들을 대중으로 설정해 놓고 그들에게만 다가가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죠. 유인물 한 장 나눠주기 위해, 서명 한 번 받기 위해 길 가는 사람만 붙들 것이 아니라 제 주위의 사람들과도 이제는 소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활동을 한다는 것이 직장생활을 하는 데 불편할 수는 있어도 위협적이지는 않은 직장에 다니면서 나 한 몸 편하자고 활동가임을 감추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한편으론 어쩌면 그들 중에 활동을 하고 싶어도 그 방법을 몰라 미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혹시 활동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 경우라면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길 찾기

‘활동가’라는 나의 정체성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한 지금 가장 고민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말’이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 주변의 동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회사동료들의 연령이나 특성상 말을 하다보면 ‘주장’이 되기 쉽고 주장은 소통보다는 논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만 잔뜩 될 뿐 아직은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래, 바로 이 길이야’라는 비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길로 갔다가 또 저 길로 갔다가 하면서 답도 모르는 길을 계속 찾아다니게 되지 않을까요.
  
풀리지 않는 고민을 안고 오늘도 이리저리 뒤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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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4 11:01 2007/01/14 11:01

2 Comments (+add yours?)

  1. 에밀리오 2007/01/14 12:27

    저야 인권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나 과 사람들이나 하여튼 주위에서 많이 부딪치면서 느끼는 거였는데... 역시 직장 다니면 더 하겠군요. 에고. 저도 고민 안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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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벽길 2007/01/18 10:35

    인권활동이 아니라도 모든 활동에 다 해당된다고 봐요. 아니 웬만큼 진보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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