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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2006). 『민주주의의 민주화: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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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2006). 『민주주의의 민주화: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서울: 후마니타스.
 
이 책은 최장집 교수가 썼던 여러 글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미 보았던 글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묶어서 보니 또 다른 맛이 난다.
편집자인 박상훈은 이미 출간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년 1판 출간)의 후속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주었던 만큼의 충격은 없다. 아마 이미 접해서일 수도 있겠다.
  
저자 서문
 
○ 선거경쟁과 수의 힘을 핵심 원리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이라 불리는 시민의 다수는,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여러 제도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잘 작동할 경우 사회복지에 친화적이고 노동통합적인 생산 및 분배체제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른 체제에 비해 훨씬 더 크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헤게모니로 군림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그러한 사회경제체제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인 것을 넘어 거의 허구인 것처럼 보인다(최장집, 2006: 6-7).
  
○ 경제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이 담론으로서나 정치적 이슈로 제대로 제기되지도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서유럽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조건에 있다(최장집, 2006: 7).
  
○ 최장집은 민주정부의 구조, 민주정부의 리더십과 엘리트, 민주정부의 성격 변화에 분석의 초점을 두었다. 문제의 원인은 정책 이념과 방향, 그리고 실제 정책 수행의 과정과 결과를 포함하여 민주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기인하는 바 크며, 그것은 외부의 어떤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주정부 스스로의 변형이 가져온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보수적 기성질서와 같은 외부의 압력이나 제약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어떤 가치와 어떤 생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고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8).


1장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
 
○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외부로부터 뿐만 아니라 민주화세력 내부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해졌는가를 잘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오른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왼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제기되는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가 체제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사회심리적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8).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민중적인 내용을 확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최장집은 자주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의 형성”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최장집, 2006: 19).
  
○ 우리는 민주화 이후의 사태를 통하여 커다란 민주화의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주의란 정치적 참여의 평등을 제도화하는 통치체제로서, 이를 통해 보통사람들 스스로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는 체제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민주적 성격을 보다 많이 갖는 정부일수록 보통사람들의 사회경제적 권익보다는, 그 정책의 효과가 사회최상층의 권익을 보다 더 잘 실현하는 이념이자 정책독트린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래서 민주화와 특정 정책독트린의 효과 사이의 비상응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를 민주화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민주화의 역설은 노무현정부에 이르러 극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20).
  
※ 변형주의(trasformismo): 19세기 후반 이래 이탈리아 정치 엘리트들의 행태에서 기원한 개념. 좁게는 집권 엘리트들이 안정적인 다수를 형성하기 위해 반대파를 통합해내는 정치와, 그것이 빚어내는 비공식적인 후원-수혜 관례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반대파들이 지배적 가치에 흡수, 동화되는 양식 일반을 가리키는 데, 여기서는 주로 민주정부 나아가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헤게모니에 흡수, 동화되는 현상에 초점을 두고 있다. 뚜렷이 구분되는 이념과 정책적 차이를 통해 사회에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는 정당들간의 경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지 못한 정당체제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정치양식(최장집, 2006: 22).
 
○ 노무현대통령은 김대중정부 시기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부터 왔다. 대안이 주변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기존 집권당의 지도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점과 아울러 개혁에 대한 커다란 자율성을 확보한 정부가 탄생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민주주의제도의 핵심내용을 이루는 대표성과 책임성의 연계를 모호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만약 그가 책임성(accountability)의 연계로부터 벗어나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움직일 때, 그리고 그의 움직임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응하는 개혁의 추진자이기보다 현상유지를 더욱 강화하는 헤게모니의 추진자가 될 때 누가 그를 민주적으로 구속할 수 있겠는가?(최장집, 2006: 23)
   
○ 대의제민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민중이 스스로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선출한 대표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 통치자의 행위가 책임성을 갖도록 하는, 대표체제의 민주적 통제가 중요하다. 대표성과 책임성의 연계 고리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선출된 통치자가 그를 선출해준 투표자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만드는가의 문제는, 민주주의체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해결해야할 최대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선거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정치적 자유와 참여를 확대시키고, 사회경제적 정치의제의 범위를 확대하고, 민주적 통제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 때, 이러한 정부를 대의적이라고 말하고, 민주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어떤 형식적 기준을 갖고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실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노력이 중단되거나 거부될 때 민주주의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3-24).
   
○ 대표-책임의 고리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민주적 통제와 구속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으나, 반대로 개혁자로서 자신에게 위임된 것을 수행하고자 할 때 지지의 동원과 권력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따라서 통치자가 민주적 통제와 책임성의 연계를 부담스러워할 때, 그것은 개혁에 필요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구축하는 과제를 통치자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4).
  
○ 사회가 갈등적 이익과 요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란 사회 내에 존재하는 갈등들을 억압하거나 범죄화하는 대신,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이익들을 공식적 대표의 체계 내에 통합하고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정치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최장집, 2006: 26).
→ 이게 민주주의 맞나?
  
○ 보수적 야당은 민주정부가 자신들의 정책적 입장과 차이가 커서 더 공격적이고 그러지 않으면 협조적이 되기보다, 민주정부의 지지기반이 강할수록 타협적이고 약할수록 공격적인 양태를 보였다. 노무현 정부가 보수헤게모니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지지기반과 야당과의 관계 모두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에 대한 이탈과 공격은 커졌고, 결과적으로 민주정부의 지지기반과 정치적 리더십은 크게 손상되었다.
경제정책과 노동-사회복지정책은 민주주의 하에서 하나의 정부가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정책영역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간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생산레짐을 뒷받침하고자 하는 경제관료의 수중으로 넘겨진지 오래다. 노동-사회복지정책은 경제정책의 잔여범주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강력했던 만큼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해졌다.
  
사회경제적 정책영역에서 변화가 없었던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동북아허브 건설, 지역균형 발전, 행정수도 이전, 기업도시 건설과 같은 정책영역이었다. 이는 국가재정과 행정력의 대규모 투입을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무엇인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주장과 이미지는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나타난 것은 개발이익을 둘러싼 ‘이권의 지방배분 정치’(pork-barrel politics)였다. 거대한 국가자원의 공간적 재배분이 사회적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것이 민중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갖기 어렵다. 국가의 예산이 이권이 되고, 여기에 투기적 요소들이 결합될 때, 그것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그간 적지 않게 경험해왔다(최장집, 2006: 27-28).
  
○ 민중주의 운동의 중요한 약점은 민주주의이론을 한국적 현실에 맞게 구체화시키지 못했고, 대의제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를 핵심적 구성요소로 한다. 이로부터 권위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강력한 집단적 열정과 에너지를 창출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가치이면서 동시에 제도적 실천이다. 그 제도 작동의 중심 메커니즘은 선거와 정당이다. 그리고 그것은 헤게모니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헤게모니의 제약이라는 조건하에서 민주적 제도를 운용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제는 비상한 능력의 지적․정치적 리더십을 요구한다. 권위주의를 붕괴시키는 능력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최장집, 2006: 33).
 
○ ‘87년 체제’를 사실적 서술개념이 아닌 사태의 평가를 위한 가치함축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것은 민주화로의 전환점에서 이루어졌던 제도화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이, 이후 이 사태를 규정하는 응결된 틀로서 과도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치게 구조주의적인 설명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잘못된 경로를 1987년 헌법과 같은 제도의 틀이 갖는 문제로 환원하면서 결국에는 1987년을 전후한 민주화 과정을 통째로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역정당체제는 민주화운동으로 표출된 강렬한 변화의 욕구를 수용할 수 없었던 낡은 정치적 대표의 체제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의 갈등 축이 노동문제와 사회경제적 문제를 포괄하도록 재편하는 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정당들이 전국적으로 의석을 골고루 나눠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기존의 지배적 접근은, 민주화의 과제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억압하고 낡은 정당체제를 지속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최장집, 2006: 34-35).
 
○ 최근 노사모가 보여 주고 있는 변화는 인물 중심의 정치참여가 갖는 문제의 최종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가치와 대의가 아닌, 특정의 리더를 추수하는 운동의 경우 그 리더의 행적에 따라 운동의 성격과 궤적이 쉽게 변질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민주화운동의 탈동원화와 함께 이들 운동세력의 해체와 기존질서내로의 분자적 흡수를 촉진하는 효과를 증폭시킨다. 이는 또한 변형주의의 효과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최장집, 2006: 37).
   
○ 민주주의를 가져온 중심세력들이 담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는 운동의 열정을 통하여 분출된 바 있었지만, 제도를 만들고 제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데는 극히 미숙하다.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기존의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의 변화를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엄청난 대중적 동원에 의한 집합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상황에서는 국면적 힘을 극대화하는 운동이 극히 효과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문제는 체제전환에서 요구되는 논리와는 상이하다. 민주주의는 대중의 폭넓은 정치참여를 통한 민중권력의 창출을 지향한다. 따라서 그 어느 체제보다 민중적 요소를 부여하는 체제이다. 하지만, 참여가 참여자의 계몽적 이해와 자각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할 때, 그리고 참여를 통한 힘의 창출이 제도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를 진작시키지 못할 때, 제도를 운영하는 방법이 실천을 통해 습득되지 못할 때, 민주주의체제에 내재된 민중적 요소는 발현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실현은 민주주의에 내재된 모순적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가운데 운동의 효능을 과대평가하는 인식을 키운 것만은 분명하다(최장집, 2006: 38-39).
  
○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은 세단계로 구성된다. ① 민주주의의 시민사회적 기반이 강화되고 건강하게 발전하여, 정치의 중심조직으로서 정당과 정당체제가 사회에 폭넓게 기반을 갖게 되는 것, ② 선출된 정부가 대표-책임의 연계에 의해 구속되는 것, ③ 선출된 정부의 정책 효과가 경제적 부와 자원의 분배구조를 향상시켜 민주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강화하고, 정치적 평등의 실현을 제약하는 조건을 최소화하는 것(최장집, 2006: 39).
  
민주주의는 총체적 비전을 담는 이념이나 어떤 통일적인 도식 내지는 규범과는 본질적으로 병존하기 어려운 체제이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목표와 결정은 가능한 많은 참여자들이 논의의 결과로서 획득되고,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그것이 작동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 과정 내부로부터 문제를 끌어내고 결정하는 이 실천적 경험을 통해 민중들의 자각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체제이다. 운동은 위기나 특정의 국면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운동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진보파들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 다시 운동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재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쉬운 선택이다. 운동의 재활성화가 오늘의 변화된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할지도 회의적이거니와,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회피할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안타깝지만 퇴행의 사이클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운동을 통해 무엇을 못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운동의 항상적 동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참여의 정치적 실천은, 자각된 전위부대가 운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자극을 불어넣는 방법보다 일상적 정치과정 내부에서 민중들 스스로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권력의 작동과 민주주의의 제도, 작동원리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또 집합적으로 요구된다.
 
오늘의 현실에서 운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해결의 방법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운동에 헌신하고 참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과거 민주화시기보다 더 큰 운동가 개인의 자기희생과 실존적 문제가 제기된다. 말할 것도 없이 운동은 투쟁을 통한 문제 해결을 본질로 한다. 운동이 정치와 사회 전체를 개혁의 대상으로 설정할 때, 운동가는 그에 대응하는 이념과 가치, 규범과 신념을 스스로 다짐하고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운동은 피할 수 없이 사회에 대해 갈등적이고 이념적이 되며, 또 이러한 운동가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는 사회를 향하여 어떤 효과를 갖기 이전에 자신 스스로에 대해 엄청난 압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적인 삶의 조건과 공적 과업을 일상성 속에 결합함으로써 실현되어야 하고, 그러한 태도와 실천을 지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오늘의 일상적 조건에서 운동가는 사적 생활과 공적 대의를 위한 행위간의 커다란 괴리와 긴장으로 고통받게 된다. 이것은 그의 행위가 사회를 개선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그 자신의 삶, 개인적 행복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다.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스스로 강하게 설정할수록, 강한 이념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이념과 가치로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된 사회의 모습과 비전은 더욱 더 이상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41-43).
→ 결국 운동도 정당정치라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최장집 교수는 미헬스가 언급한 바 있었던 과두제의 철칙에서 진보정당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야 하지 않은가. 이 운동과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에 관한 논의가 최근의 조희연, 손호철 교수가 참여한 진보논쟁의 싹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최장집 교수의 지적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긴 하다.

   
○ "현실정치에서 제도 내지 일상적 담론구조를 통해 제기될 수 없는 문제를 드러내고, 그것을 사회의 공적 의제로 만드는 것은 운동이지만, 이를 정치의 일상 속에서 구현하는 것은 제도화된 정당이라는 사실 때문에 거기에는 언제나 괴리와 긴장,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정당으로의 제도화는 운동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언제나 불만족스럽게 대표하고 실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운동대로, 오래 지속할 수 없고 일상 속에서 정책으로 전환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운동-정당간의 관계는 일종의 변증법적 상호관계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정치의 현실주의자로서 민주주의 제도가 허용하는 경계를 끊임없이 넓히려는 시도와 함께, 정당이라는 중심 수단을 활성화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현실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치의제로 전환하여 실천하는 정치의 과정이 확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과정은 정치현실 속에서는 최대한이지만, 운동의 의제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이상의 기준에서는 최소한이 될 수밖에 없는 범위 내에서 작동하게 되지 않나 싶다.
이상과 운동은 현실 속에서 어떤 것을 얻고자 한다면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면 안 되고, 그리고 무엇을 얼마나 잃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정치에서 최대강령적 목표를 얻으려고 할 때는 다른 가치를 희생시키거나 너무 많은 비용/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정된 최소강령적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실정치에서는 때때로 엘스터가 ‘신포도’(sour grapes)라고 표현하듯, 적당한 물러섬과 현실 상황에 적응하며 실현가능한 범위에서 가능성 또는 선호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최장집, 2006: 44-45).
→ 편집자 주에 나와 있는 글인데, 앞에 나온 논의를 잘 정리하고 있는 인용문이다.
  
2장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주화 세대의 과제
  
○ 과거 군부통치를 한국 사회의 소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협소한 엘리트 지배의 권위주의였다고 한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그간 참여가 배제되었던 대중적 참여의 폭이 비약적으로 넓어진 민주주의가 되었어야 했는데, 오늘의 민주주의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즉,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되 엘리트 중심의 민주주의로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48).
→ 이에 대한 근거가 구체적으로 보여져야 하는 것 아닌가?
 
○ 정서적 급진주의와 보수적 실천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원인은 결국 헤게모니에 의존한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 있는 것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갖다 쓰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실패를 강한 레토릭으로 보상하고자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왔다(최장집, 2006: 54).
  
○ 투입 지향적(input-oriented) 정치와 정책 형성의 모델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사회와 유리된 전문가들만의 싱크탱크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요구와 변화가 투입되고 소통되는 체계이다. 산출(putout) 중심의 정책생산 전문가 집단은 자본과 권력, 헤게모니 등 외부의 영향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싱크탱크가 잘 발달해 있는 미국 정치,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치가 사회적 기반, 민중적 요소와 괴리되어 미국 사회의 상층과 전문가 엘리트 집단 중심의 기술관료적 비전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최장집, 2006: 55).
  
3장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헤게모니 사이에서
 
○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은 우리가 삶의 현실을 이해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련의 개념틀이나 믿음의 체계를 발전시켜 온 결과로 보기 어렵다. 즉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이다. 냉전반공주의나 신자유주의적 경제독트린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해방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냉전반공주의는 한국사회와 정치의 제도화를 주형해온 이데올로기적 기반이자 해석의 틀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경제적․사회적 갈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특정 갈등은 그 표출과 대표가 허용되는 반면, 어떤 갈등은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갈등의 제도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상의 유지를 가져오는 보수의 스펙트럼에서만이 정당의 조직과 정치경쟁이 허용되는 정당체제의 협애한 제도화는 그 직접적인 결과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가 창출하는 가장 부정적 효과는 그것이 삶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실제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한다는데 있다. 헤게모니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능력 내지는 힘이라 할 수 있다(최장집, 60-61).
  
한국의 민주화가 폭넓은 사회개혁과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제약
- 이 모든 것은 분명 이를 믿도록 하는 역사적 경험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두려움의 동원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는 세 가지 역사적 경험을 말하는 것인데, 일제 식민지배로 상징되는 주체적 근대화의 실패 경험, 전쟁과 분단을 통하여 내면화된 미국에 대한 의존성,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성공사례로서 인식되는 박정희 신화가 그것이다. 이들 경험은 한국사회에서 전체주의적 속성을 강화하는 경향을 부추기고, 비판과 경쟁적 대안의 조직화를 어렵게 하며, 가치의 다원화를 가로막는 효과를 갖는다. ‘어떻게 하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든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어찌되었든 경쟁에서 이겨야한다’, ‘미국에 밉보이면 안 된다’는 두려움은 그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최장집, 2006: 61).
  
○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이 갖는 문제의 핵심은, 사익의 실현과 사적 영역의 극대화를 강조하고 공적영역을 최소화하려는 것을 중심가치로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존립기반을 해체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시장 역시 사회조직의 한 형태에 불과하며 그 자체가 국가의 규제정책과 국가의 역할을 통하여 조직되고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효율성이 시장 스스로에 의해 자동적으로 창출된다는 주장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독트린이 강조하는 것처럼 국가의 역할, 국가의 경제행위가 축소되고 있다는 주장도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제이콥 핵커와 폴 피어슨이 미국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듯이, 세금 감축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차적으로 부유층에 혜택을 부여하고 사회복지정책과 공공정책을 위한 재정을 감축함으로써 일반 국민과 저소득층에 해악적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은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국가의 역할이 전환된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62-63).
Hacker, Jacob S. and Paul Pierson(2005). Off Center: The Republican Revolution and the Erosion of American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 신자유주의의 효과가 두 가지 내용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시장과 국가․정치․민주주의와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설정하면서, 전자의 사적 영역과 시장원리가 후자의 국가․정치․민주주의로 인해 축소되는 것을 문제 삼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구성의 내부적 작동원리에 있어 시장원리의 절대적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상대적 크기를 강조하는 첫 번째의 경우,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은 각각 뚜렷한 자율성과 작동원리를 가지며, 양자의 경계를 인지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시장의 지배효과는 상당 정도 제한된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에는, 시장의 가치와 원리가 사회의 모든 하위구성단위와 수준, 영역에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야 하고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갖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전면적이다.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정치영역에 미치는 효과는 첫 번째 경우에서 두 번째 경우로 확대되고 심화되어 왔다. 청와대와 정부조직의 구성 및 운영원리를 기업조직의 원리를 따라 개혁하고자 했고, 정책과 그 결정과정, 나아가 정치와 정당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압도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만큼 그 영향력의 확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는 없다(최장집, 2006: 63-64).
  
○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들은, 반부패와 투명성 강화, 그리고 정책경쟁을 모토로 한 당의 전문화 등과 결합하면서, 정치개혁론의 근저에서 가장 중요한 헤게모니적 위력을 갖는다. 이런 종류의 개혁들이 전혀 무용한 것은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제도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회기층의 대중적 삶의 현실로부터 나오는 요구들이 어떻게 폭넓게 대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최장집, 2006: 65).
  
○ 성장과 효율성의 원리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술관료적 경영주의나 전문기술주의 가치의 강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최장집, 2006: 65).
- 기술관료적 경영주의(technocratic managerialism): 막스 베버적 관료주의의 목적합리성과 현대 기업 조직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경영적 원리를 결합한 개념. 수단적 가치와 효율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조직 및 조직운영의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비정치적 내지는 반정치적 가치를 핵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사기업조직과 정치적인 권위주의 체제와 잘 상응한다. 사회의 다양한 이익 갈등에 기초하고 이를 조정하고 타협하며, 효율성보다는 갈등의 조정과 통합을 중심 원리로 하는 민주정치의 특성과는 상반된다. 엘리트 내지는 전문가 중심의 폐쇄회로식 결정방식과는 달리 결정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이 공적 통제 하에서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민주주의적 정치과정 및 정책결정과정과는 정반대되는 조직이나 제도의 운영원리이다.
  
○ 아직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가 더 우월한 가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성장을 위해서는 효율성의 가치가 중시되어야 하고, 이는 기술관료적 경영주의를 통해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는 ‘성장=효율성=기술관료적 경영주의’의 등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이 등식은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가치는 민중주의와 분명히 배치된다는 사실이다. 정치개혁의 의제를 지배하는 기술관료적 효율성의 가치는 대중의 정치참여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이를 대신하여 전문적 지식이라는 덕목을 갖춘 엘리트들의 역할과 참여를 확대하는 전제나 지향을 배면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이후 정치개혁의 내용들 역시 민중참여를 제약하고 엘리트지향성을 강하게 갖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민주화 이후 모든 선거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높은 국회의원 교체율을 나타냈으며, 17대 국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기존 국회의원의 60% 이상이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당체제는 여전히 보수독점의 구조를 탈각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이익과 갈등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 경쟁과는 거리가 먼 구태의연한 쟁투를 계속하고 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엄청난 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당체제의 구조적 특성이 강력하게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정부하의 정책결정과정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다.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부서의 정책형성과 심의과정에서 외부로부터의 투입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정부의 최고 정책결정자들과 중간층 인사들의 다수는 과거 운동권 출신이며, 개혁적 인사들이다. 이들과 시민사회의 소통 채널들은 전에 없이 확대되어 정책결정과정에 있어 시민사회 운동단체들의 참여와 그로 인한 투입 또한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의 정책 내용과 결정 방식은 실제 사회현실 및 사회갈등의 중심내용과는 크게 괴리되어 있다. 정책결정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참여가 확대되고,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진 집단은 대학의 지식인들과 연구자들, 국가영역과 민간영역에 있는 연구기관과 단체에서 활동하는 많은 전문가 집단이다. 최근에 이르러 크게 확대된 각종 정부위원회나 자문위원회, 그리고 정책연구 프로젝트 등을 통한 이들 전문가 집단의 참여는 민주화와 더불어 변화된 정책결정과정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이다. 지난 어떤 민주정부보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의 효율적 운영과 생산적 정책결정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면서, 전문가의 참여가 결합된 기술관료적 결정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데 열성적이었다. 물론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 지식인의 참여와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제의 설정에서 정책의 형성과 결정에 이르기까지 사회현실에서 발생하는 삶의 문제와 민중적 요구가 중심적 동력이 되어야 하며, 이들을 대표하는 것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정부의 정책과 그 결정과정은, 이러한 사회적 현실이나 정치경제적 문제와는 매우 거리가 먼 방식으로 변질되었다. 그것은 정책 산출 중심의 사고와 정향으로 특징되는 바, 전문가 엘리트의 비전에 의해 창출되는 사회를 지향하고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내용과 스타일은 특히 노무현정부에 들어와 두드러진다. 국가 운영과 정책 결정의 이러한 기술관료적 스타일은 정치를 효율적 정책의 산출과는 거리가 먼 비생산적인 이전투구의 장이자 파벌간의 난투장으로 이해하는 정치관과 무관하지 않다(최장집, 2006: 66-67).
  
○ 정치에서 도덕주의적 가치가 강한 이유에 대해, 혹자는 도덕과 명분을 중시했던 조선조 유교적 전통의 산물이라는 정치문화적 기원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에 대해 도덕주의적 접근이 강한 것은 사회경제적 갈등의 표출을 억압하고 자연히 갈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배제하는 데 기인한다. 즉 즉 갈등이 팽만한 사회에서 갈등을 정치적․제도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데 따른 사회심리적 보상작용의 결과물이이라는 것이다.
 
도덕주의는 민주적 과정의 실패의 산물이다. 그것은 갈등을 민주정치의 과정 내에서, 정치 안에서 제도화의 방법을 통하여 해소했던 경험이 많지 않고, 그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서 문제를 혁명적 방법으로 일거에 해소하고자 하는 일종의 청산주의적 심리와 성급함의 심성에 그 연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68-69).
  
○ 도덕주의에 대한 운동권의 의미내용은 훨씬 더 치열하다. 운동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자는 도덕적 인간이 되어야하고, 역으로 도덕적 인간이 진정한 운동가라고 인식은, 자연스럽게 도덕적 인간만이 민주주의자이며 이들만이 민주주의를 잘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는 민주주의를 제도와 매개된 정치적 실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규범으로 수용하는 태도이자 자세이다. 민주주의가 가치와 이상, 그에 헌신하는 도덕적 열정 없이는 진전될 수 없고, 또 그럴 경우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현실 제도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실천되고 작동되지 않으면 안 되며, 갈등과 권력이 충돌하는 정치과정으로 뛰어들지 않고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할 때만이 운동이 지향하는 민중적 가치와 대의를 민주주의라는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다(최장집, 2006: 70).
  
○ 도덕주의가 가져오는 민주적 과정에 대한 부정적 효과는, 그것이 현실을 현실 자체로서 접근하기보다 규범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차원의 실질적 문제에 무감하게 만들고, 갈등과 권력, 나아가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의 표출과 그에 기초를 둔 정당을 매개로 권력을 창출하는 것을 핵심요소로 한다. 즉 민중적 참여와 민중적 요구의 확대를 통해 기존의 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개혁을 압박하거나, 민중적 권력을 창출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것을 정치과정의 중심으로 포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민중적 요소의 투입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상당정도의 갈등, 무질서와 소란스러움을 동반하며, 이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는 말이다(최장집, 2006: 70-71).
   
대체적으로 운동권들은, 권력이 충돌하는 민주정치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정치의 영역 밖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정치를 초월해 있는 것으로 상정되는 전문가라든가 사법부라든가 시민사회의 운동이라든가 하는 어떤 제3의 해결자를 불러들이는 방법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71).
  
○ IMF 금융위기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개와, 한국의 경제발전과 산업구조의 급속한 변화가 초래한 노동시장의 분화는 모든 노동운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동의 이익기반을 해체했다. 이러한 변화는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들 사업장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자와 실업자들간의 이익갈등을 첨예한 대립관계로 몰아넣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공동이익을 제공하면서 이들을 조직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도덕주의적 방법으로 접근되거나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오늘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의 대의를 저버리고 사적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론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 노동운동도 이 집합행위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독립운동, 혁명적 변화, 민주화운동과 같은 사회적 변혁기, 즉 동원의 시기에는 집합행위의 딜레마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원이 평상시로 되돌아가는 탈동원의 시기, 도덕주의는 물질적 이익추구 앞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이익집단운동으로 전락했다”라든가, “초심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하며, 과거의 도덕적 가치를 불러들이면서 이 사태에 대해 도덕적으로 개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이들 운동이 더 이상 과거의 도덕성을 견지할 수 없는 것은, 거시적으로는 민주화라는 정치적 조건의 변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경제발전에 의한 노동시장조건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미시적으로는 운동에 헌신하는 개인이 자기이익에 반해, 그리고 인간의 행복 추구 욕구에 거슬러 지속적으로 도덕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주의를 다시 불러들이는 방법으로는 실천적이고 도덕적인 힘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도덕주의의 딜레마는 노동운동에 국한되지 않고 민주화운동 전반에 해당된다. 도덕률에 기초한 정당화는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와 양립하지 못하게 될 때 붕괴된다(최장집, 2006: 71-73).
  
○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개혁의 이름으로 과격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 저간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규모나 자원동원 능력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이다. 연대와 공동체의 원리로 움직여야 할 시민사회의 운동 부문은 정부가 제공하는 재정자원을 고리로 수혜-후원의 구조에 깊숙이 통합되었다. 반대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조직된 관료행정체제의 구조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상응하도록 개혁하려는 노력은 쉽게 포기되었다. 각종 위원회 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관료기술주의적 결정을 보완하는 기능으로 전락했다. 즉 시민사회가 권위주의 시절보다 국가의 확장된 부문으로 통합된 사실이 두드러진다. 요컨대 시민권을 확장하는 민주정부의 기능은 실종된 반면, 신자유주의 가치를 준봉 혹은 내면화한 정부의 기능은 크게 확장된 것이 그간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최장집, 2006: 73-74).
 
4장 노무현 정부와 한국 민주주의: 열망-실망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나
→ 2003년 5월 29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참여정부 출범 100일,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글이다. 최장집 교수의 탁견을 볼 수 있는 글이다. 노무현 정부는 최장집 교수가 우려했던 대로 행동해왔다.
  
○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 - ‘열망-실망의 사이클’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
전자는 선거과정에서 분출된 열망이 선거 이후, 즉 새로운 정부의 수립 이후 실망으로 변하는 주기적 순환을 말하며, 후자는 정당의 역할보다 언론과 검찰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열망-실망 사이클’의 악순환의 결과이자 때로는 원인 혹은 그와 수반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열망-실망의 사이클은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하나의 법칙적 현상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그간 민주정부들이 보여 준 반복적 패턴이었다(최장집, 2006: 76).
  
○ 민주화 이후 야당이 집권정당이 되고 정부가 되면서 직면하게 되는 커다란 문제(최장집, 2006: 77-79)
 
첫째, 리더십과 인적자원의 문제
개혁은 힘의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있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슬로건이나 개혁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뒷받침할 힘의 동원과 기득이익 못지않은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의 투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의 과정에서 리더십은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비전과 프로그램은 체계적이고 현실성이 있어야 하며, 이를 추진할 수단들 역시 정비되어야 한다. 즉 개혁은 정책적이기에 앞서 정치적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둘째, 헤게모니와의 대면과 타협
새로운 정부들은 보수적인 헤게모니와 타협하는 정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이 집권한 민주정부 자체의 약함 때문이고, 사회의 사적 영역에서 강력한 기득이익들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기득이익을 능가하는 정치적 지지기반이 투입되지 못하고, 강력한 헤게모니에 저항할 주체적 역량을 갖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들은 현상유지를 결과하게 될 안일한 정책대안을 선택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
 
셋째, 한국판 분할정부의 출현
중요한 것은 분할정부가 자주 정치의 교착상태를 만들어내면서, 대중동원을 목표로 한 정당간 선거경쟁으로부터 대통령 대 의회라는 제도간의 권력투쟁이 정치의 중심이 되고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엄청나게 증대하게 되는 정치의 퇴락현상, 긴스버그와 세프터가 말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정당정치를 압도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분할정부는 행정부와 의회간의 제도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때에는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기능적으로 작동할 때에는 오히려 민주정치를 퇴행시키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최장집, 2006: 79-81)
Ginsberg, Benjamin and Martin Shefter(1999). Politics by Other Means: Politicians, Prosecutors, and the Press from Watergate to Whitewater. W.W. Norton & Company.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출현은 민주주의의 퇴락을 말하는 징후적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두 정당간의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좁혀지는 것과 함께 선거에서의 지지율 차이가 줄어드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정치인들간의 정권 획득을 둘러싼 쟁투가 격렬해짐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선거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엄청나게 팽창하는 반면, 사회 저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대중동원의 메커니즘인 정당의 역할은 줄어드는 현상을 동반한다. 이 과정에서 투표자들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성’을 갖지 않는 제도나 기구들, 즉 국가기구 내의 검찰이나 사적 영역에서의 언론이 점차 정치의 중심 행위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를 둘러싼 중심적 이슈들 바깥에 위치하는, 즉 갈등의 폭이 적고 기술관료적 접근이 가능한 이슈들, 예컨대 탈규제정책이나 행정합리화, 대민행정업무의 개선과 같은 문제들은 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갈등의 폭이 넓은 이슈는 거의 다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서 최장집은 외적 제약보다 내적 제약을 더 강조한다. 선출된 정부가 대안적인 비전, 정책목표, 정책의 실천프로그램과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정부는 집권 초기를 지나면서 빠르게 보수기득이익과 타협하고 그에 포획되는 경향을 보였다.
  
○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부문의 자율성 증대와 더불어 사적 영역의 확대이다. 기업, 언론, 지식사회 등 한국 사회의 보수적 부문은 시장효율성을 강조하고 그 동안 한국을 이끌어 왔던 국가에 대하여 그것의 실패, 비효율성을 말하면서 공공부문에 대한 민간부문의 우위를 강조한다. 즉 이들에게 있어 민주화는 곧 시장자유화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시민운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국가의 팽창이 권위주의를 가져오게 한 요인이라고 전제하면서 공공성과 시민사회, 그리고 비정부조직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세계화, 민주화, 신자유주의, 시장효율성의 가치와 독트린이 지배적인 오늘의 시대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사적 영역과 시민사회의 확대가 곧 그동안 권위주의하에서 억제되었던 일반 대중들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 사회의 균열과 갈등의 광범위한 표출,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된 정치적 대표체제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정치참여가 증대되고, 이들의 이니셔티브하에서 정치가 확대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이 민주주의의 중심 조직, 메커니즘이 정당이다. 그러나 대중의 정치참여 확대 없이 사적 영역과 시민사회가 확대된다는 것은 사회의 거대 사익 집단들, 거대 사적 조직과 기구들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는 ‘정치의 민영화’(privatization)를 의미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곧 정치영역에 있어서 거대 사익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반면 공공영역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갖는다(최장집, 2006: 83-84).
 
○ 정당 중심의 정치가 약해지고 언론이 정치를 대신할 경우 사회의 광범한 저변층이나 중산층의 이익과 요구보다는 상층의 기득이익이 일면적으로 대변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과정의 순환구조
1) 사회․시민․투표자→투표→정당→선거로 선출된 정부→사회․시민․투표자에 대한 ‘책임성’
2) 사회․시민․투표자→언론을 통하여 제공되는 여론의 투입→언론의 영향하에 있는 여론의 부침과 평가에 끌려 다니는 정당과 정부→투표자에 대한 책임성의 약화 : 미디어크라시(mediacracy), 미디어민주주의(media democracy)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가 잘 안 된다면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정당의 저발전과 정치인들의 무책임에 돌려질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정당은 새로운 유권자층과 사회 저변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고,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요구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으며, 선거경쟁에서 새로운 리더십,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조직하지도 못했다. 다른 한편 언론의 정치지배는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귀결인 측면도 있다(최장집, 2006: 84-85).
 
○ 지배담론으로서의 도덕주의(최장집, 2006: 86-88)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정치에 대한 도덕적 평가의 잣대를 비약적으로 높이면서 부패문제를 정치의 중심에 놓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대통령 주변의 부패문제와 씨름했다. 대통령과 관련 있다 싶은 부패 사안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언론과 야당의 공격, 국회의 제도적 권력과 결합된 특검제의 활용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번창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부패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과관계의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국가 부문과 관련된 부패문제의 핵심은 국가와 사적 영역 사이에서 후원과 정치적 지지가 교환되는 관계, 혹은 정부와 민간 부문이 수혜와 지대추구로 연결되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부패를 구조적으로 축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민주화이다. 부패 때문에 민주주의나 정치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족 때문에 부패가 유지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부패담론’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창궐은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개혁적인 정부라면 정치개혁의 제일의 주제를 민주적 참여와 대표성의 확대, 그리고 국가/정부의 책임성 확대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의 정치개혁 논의에서 그 기준과 목표가, 반부패로 표징되는 도덕적 규범이나 정치의 생산성과 효율성 증진이라는 경제적 가치에 두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 지배담론으로서의 전문가주의(최장집, 2006: 88-90)
 
민주정부도 큰 사회를 움직이는 기구이고 국가 역시 거대조직의 하나라고 할 때 이를 운영함에 있어서 전문성, 기술합리성이 필요함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전문기술합리성이 민주적 가치에 우선하여 강조되거나 이를 대체하려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나 조직의 운영원리로서 그것은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전문적 지식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사회적 가치판단과 여러 윤리적 고려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평등한 참여, 평등한 시민권과 같은 정치적 원리 등 숱한 문제를 포괄한다.
  
로버트 달은 이미 플라톤의 『국가』에서 이론화된 바 있는 이러한 전문기술주의를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라고 보았다. 마넹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추첨제와 순환제를 중심으로 공직을 선출하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의 본질은 전문기술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해석했다(마넹, 버나드(2004). 『선거는 민주적인가』. 서울: 후마니타스.). 이 전문기술주의는 정치에 있어 ‘후견주의’를 그 내용으로 하며, 민주주의의 중우적 성격을 부정적으로 강조한다. 기술합리주의, 엘리트주의는 일체의 민중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 담론과 병행하여 진행된다.
  
언론이 강조하는 전문기술주의는 현대의 발전한 과학적 지식이나 현대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민중들이 이해할 수 없으며, 다수결과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통해 해결하기도 어렵거니와 민주주의는 갈등으로 분열되기 쉽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분열과 갈등에 끌려 다니는 동안 사회 전체를 위해 중요한 문제, 미룰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문제들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큰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엘리트주의적 관점을 갖는다. 이러한 가치와 관점은, 우리 사회가 갖는 학벌 중심적 특성이나, ‘고시’라는 국가시험을 통한 공직자 충원 방법, 그리고 박정희식 관료적 발전모델의 신화 등으로 인해 쉽게 확산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의 자격에서도 전문가라는 평가가 중시되고, 정부의 인사 특히 국영기업, 공사 등의 인사충원에 있어 “정치인 배제, 전문가 중시”라는 기준이 자주 강조되듯이 전문성, 기술합리성의 가치는 정치적 가치보다 우선시된다. 뿐만 아니라 정책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주의가 수반하는 효율성의 가치는 민주적 결정이 아닌 기술관료적 결정을 정당화한다.
  
○ 지배담론으로서의 신자유주의(최장집, 2006: 90-91)
시장경쟁에서의 이익창출과 이를 위한 효율성을 기본가치로 하는 기업운영의 논리가, 사회적 갈등을 표출․대변하고 시민들의 안정과 복리 증진을 기본가치로 하는 공적 결정의 논리를 대신하면서, 국가 운영의 원리를 기업 운영의 원리와 동일선상에 놓게 된 것이다.
  
○ 민주정부라면 참여의 폭을 넓히고 사회의 요구를 폭넓게 대표하려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무현 정부의 개혁자들이 논의하고 있는 것과 같이, 정치개혁의 목표를 지역주의 극복/반부패에 둔다면 그것은 방향을 잘못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사이더라고 할 수 있는 기존의 정치엘리트 내의 지역적 분포만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92-93).
  
○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에게서 발견되는 특징: ① 선거와 더불어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이 한 정당의 지도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그 역할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다. ② 갈등을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 역할에서 핵심은 그가 정당의 대표라는 사실이다. 투표자들은 선거경쟁에서 그가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 이념,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의 후보이기 때문에 다른 정당 후보가 아닌 그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출된 대통령은 일차적으로 그를 지지한 투표자로부터 선거를 통해 그 요구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지지자들에게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그러나 언론을 중심으로 한 지배담론의 여론몰이는 그가 갈등을 표출하고 파당적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대표가 아닌, 통합과 화합을 실현하는 국가 전체의 대표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이에 부응해 대통령은 정당의 대표가 아닌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그러면 결과적으로 기득이익과 타협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즉 선거 때는 표를 위해 지지자를 끌어들이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지지자들의 요구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최장집, 2006: 94).
  
○ 일반 대중들의 참여로부터 시작하여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이 전체과정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이 상상력이 대통령의 머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한 대중의 요구 표출과 지식인들의 이론화 노력이 정당의 대표기능과 상호 소통하면서 만들어지고 습득되는 사회적 지식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를 정치적으로 응집하여 정책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주변에 그리고 정책결정이 일어나는 정부의 부처 주변에 정책자문을 위한 위원회들의 설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들 정책자문기구의 역할이 사회의 요구와 사회적 지식의 투입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앞선 정부보다 나은 차이와 업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정책결정은 전문가주의와 기술관료주의의 범위 안에서 순환되는 내부투입(within-put)에 중심이 주어졌다. 핵심은 국가영역 밖의 사회로부터의 투입이다. 정책결정이 아래로부터의 투입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란 대통령을 중심으로 행정부의 고위 결정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정책을 만드는 산출과정을 의미하기보다 사회와 소통하며 사회의 광범한 요구들이 정책결정과정으로 투입되는 과정을 더 중심에 두는 체제이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95-96).
  
○ 3년이 지난 2006년 시점에서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최장집, 2006: 96-98)
  
노무현 정부의 통치스타일은, 앞선 다른 정권에 비해 세 가지 점에서 특징적이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담론과 실제 정부 정책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책의 관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떤 정권 못지않게, 아마도 가장 미국의 요구에 순응적이었다. 한때 그토록 강조했던 동북아시대론, 동북아균형자론은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한미동맹에 집중하고 있다. 경제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실제 정책에서는 가장 과격한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부정적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서로 다른 정책방향 내지 정책 사이에 부정적 의미의 상호교환(trade-off)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한 정책분야에서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중대 정책을 끌어 쓰는 틀어막기식 접근이 자주 나타난다. 대미외교의 미숙함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정책영역을 부당하게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미 FTA를 하면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안보위험이 줄어드는 효과를 갖는다는 식의, 서로 다른 차원의 정책분야가 비논리적으로 뒤섞인 주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개진될 수 있는 것은 이런 조건에서 가능했다.
 
셋째, 정책노선의 일관성 부재이다. 하나의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정책방향과는 매우 다르거나 아니면 정반대가 되는, 변화의 진폭이 드라마틱하다 할 정도로 크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한미 FTA 문제이다. 자칫 IMF사태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줄지도 모르는 정책사안에 대하여 정책결정자들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사전준비도 없이, 그리고 광범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의 과정도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사회에 강권하는 일은 민주정부가 취해야 할 결정방식이 아니다. 미국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면서까지 그렇게 졸속으로 추진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일반 국민과, 그 정책효과를 부정적으로 안게 되는 사회집단들을 소외시키고 대통령과 소수 기술관료 내지 보좌관들이 중대 정책사안을 폐쇄회로적 방법으로 결정하는, 권위주의체제에 전형적인 기술관료적 결정방식을 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장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디자인 서설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편, 「아세아연구」, 47권 3호(2003년 12월)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 민주화 이후 제도개혁은 여야당을 포함하여 여러 정치적․사회적 그룹으로부터 제기되었다. 하나는 분권형 대통령제 및 책임총리제와 같이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정부형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치부패 척결, 깨끗한 정치 구현, 생산성과 효율성을 실현하는 정당개혁에 대한 요구였다.
 
노무현 정부는 출발 초기부터 통치구조를 둘러싼 개헌이슈에 결속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헌정체제가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잘 작동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나아가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현재의 제도논의들이 얼마나 한국 민주주의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제도문제가 좋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제도디자인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최장집, 2006: 100-101).
 
○ 제도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들은 수없이 많다. 민주화라고 하는 변화된 환경에서 기존 제도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민주화 이후 사회의 새로운 주요 이슈들과 그로부터 분출하는 사회적 갈등을 다룰 수 있는 제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제도의 결핍 또한 큰 문제가 되고 있다(최장집, 2006: 101).
 
○ 제도 문제를 검토함에 있어 최장집은 지오반니 사르토리의 문제의식, 즉 “제도는 무엇보다도 작동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르토리는 제도를 제재와 보상으로 구성된 유인체계의 틀로 이해한다. 하지만 최장집은 제도를 유인체계의 메커니즘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한국으로 수입된 원래의 모델과 한국적 토양이 접합하면서 빚어지는 효과, 즉 정치사회학적 문제에 보다 많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다소간 문제의식을 달리한다. 그것은 한국의 개혁자들이 외래의 모델을 가져왔을 때,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들이 그 제도의 효과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제도를 수입할 때 상정했던 목적과 실제로 이식된 토양에서 나타나는 효과간의 차이에 주목한다.
Sartori, Giovanni(1994). Comparative Constitutional Engineering. Macmillan Press Itd. p. ix.
 
이러한 문제의식은 두 단계의 고려를 필요로 한다. 하나는 개혁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이 설정된 이후에 특정의 제도가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광범한 그물망으로서의 사회적 관계가 상호연관 효과를 가짐으로 인하여 제도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최장집, 2006: 101-102).
Elster, Jon(1988). "Introduction." Jon Elster and Rune Slagstad eds. Constitutionalism and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 필립 슈미터와 마찬가지로 최장집도, 현대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통일된 체제가 아니라 별개의 특성을 갖는 영역에서 제도화된 ‘부분체제들’(partial regimes)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즉 여러 부분체제들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위계적으로 조직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원리로 조직된 부분체제들이 잘 작동하면서 전체적으로 좋은 효과를 낳을 수 있도록 결합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전체적 이해를 가지고 부분적이고 국지적인 문제영역에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특정 영역 또는 보다 상위의 영역에서 제도개혁 디자인을 할 때에도 다른 영역, 또는 하위 체계의 영역과 상호보완적이고 순기능적으로 결합하는 문제를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최장집, 2006: 103).
 
○ 민주주의도 하나의 통치체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는 인간의 선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정한 비용이 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정치가 비록 부패로 변질되고 부패의 온상이 되기 쉽다 하더라도 이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고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올바른 처방이라 할 수 없다. 올바른 치유책은 민주주의의 비용이 정치에서 과도한 부패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패를 평가하는 잣대 역시 과도한 도덕적 기준이 아닌 엄격한 법률적 기준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 목적 역시 부패가 완전히 척결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이성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면 족하다. 부패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관련하여, 병보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최장집, 2006: 104).
  
○ 민주주의에 필요한 정치의 비용의 문제와 관련해 가장 합리적인 개혁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기업이나 거대 사익집단에는 법적 기준을 높이되 비용의 원천은 다변화․다원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당과 사회, 후보와 유권자가 접촉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통제기준은 낮추되 거대 사익과 국가/정부가 유착될 가능성이 있는 지점의 통제기준은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대중 참여의 정치에 기초를 둔다. 어떠한 부패도 허용하지 않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환경에 정치를 위치시키고자 한다면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참여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는 약화된다. 정치가 도덕화될수록 대중정치의 조건은 약화되고, 그 결과 정치 밖에서 풍부한 정치적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사회 상층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현대판 귀족주의적 특성은 강화될 것이다. 니노는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것은, 개인들이 한 체제를 민주주의적이다, 또는 공고화되었다라고 평가하는 주관적 정당성이 아니라, 그 작동을 통하여 실체적으로 그 정의가 충족되는 객관적 정당성이라고 강조하면서, “나의 관심은 정치체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관한 공동체의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체제를 도덕적이고 정당하게 만드는 데 있다”라고 말한다.
Nino, Carlos Santiago(1996). The Constitution of Deliberative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p. 8.
  
민주주의는 제도적 형태를 갖는 여러 형태의 민주주의‘들’로 구현될 수 있다.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는 한 사회의 선택이다. ‘객관적 정당성’의 기준을 중심으로 한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실현하고자 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05-106).
  
○ ‘즉응의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세 문헌
1) 엘스터는 제도적 안정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민의 동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정치체제를 서술하는 개념으로 ‘인스턴트’(instant) 정치라는 말을 사용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자주 변화했던 플로렌스의 선거제도를 예로 든다. Elster, "Introduction", pp. 9-10. 2) 니노는 다수결을 통해 결정이 만들어질 때 시간적 변수에 초점을 둔다. 그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의 이익이 변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익이 표출될 때 과거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현재의 변화된 시점에서 더 이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결정이 현재의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다. 만약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항상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즉응적’(instantaneous) 정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니노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어떤 도덕적․규범적 끈, 그리고 또한 이 관계를 강제적으로 묶는 외부적 제도로서의 헌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Nino, p. 183. 3) 쉐보르스키, 스토크스, 마넹은 제도화가 너무 안정적으로 된 결과로서 고도의 담합적 정당체제가 만들어진 경우와 그 정반대로 선거 때마다 정당체제가 변하는 제도화 없는 극단적인 경쟁체제로서 ‘명멸하는’(ephemeral) 정당체제를 대비시킨다. 두 극단은 다 부정적이다. 바람직한 정당체제는 안정적 제도의 틀 내에서 경쟁체제가 지속되는 것이다. Przeworski, Adam, S. Stokes, B. Manin eds.(1999). "Elections and Representation." Democracy, Accountability and Represent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49.
한국의 인스턴트 정치는 위의 세 요소를 모두 부분적으로 포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이익과 유동하는 세력균형 상황에서 기존의 제도와 체제가 끊임없이 도전받고 작동하지 않게 되는 현상, 혹은 표피적 변화는 계속되지만 기존의 구조는 그대로 있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부정적 현상을 지칭한다(최장집, 2006: 109-110).
  
○ 민주화 이후 정치적 대표체제와 관련하여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하나의 독자적 조직으로서의 정당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하고 우선적인 문제는, 정당이라는 개별 구성단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개별 정당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 자체 독자적 차원을 갖고 있으며, 역으로 개별 정당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당간 경쟁의 틀 내지는 배열형태, 즉 정당체제의 차원에 존재한다(최장집, 2006: 111).
  
○ 사회의 갈등이 폭넓게 대표되는 것과 이들간의 경쟁이 중요한 까닭은, 샤츠슈나이더가 강조했던 바와 같이, 갈등의 범위가 좁아질 때 갈등의 강도는 더 첨예화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제도화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폭넓게 대변하지 못하는 허약한 체질의 정당체제로부터 나온다(최장집, 2006: 111-112).
  
○ 문제가 되는 것은 특수이익과 정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분출하는 특수이익을 다루고, 공익과 특수이익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특수이익에 대해 정부와 일반이 사용하는 지배적인 담론이란 고작해야 ‘집단이기주의’라는 말밖에는 없다. 이 단순하고 권위주의적인 말만으로는 무엇이 공익이고 무엇이 사익인지, 무엇이 공익과 부합하는 사익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사익인지를 알 수 없다. 특수이익들이 왜 나쁜지에 대한 이렇다 할 정의 없이,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이 전횡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특수이익에 대한 비합리적 대응은 사회의 갈등이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문제들이다(최장집, 2006: 112).
  
○ 최장집은 한국에서의 지역주의 문제가 갖는 핵심 성격을 이데올로기적 현상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분해가능한 주요 요소들로 구성된 집적물로 이해된다. 즉 다양한 이념과 가치의 정치적 동원을 억압하는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계’, 사회의 다양한 집단이익에 조직적․재정적 기반을 두지 않는 ‘사회적 기반 없는 정당구조’,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가치들이 중첩적으로 중앙집권화된 ‘초집중화된 사회구조’ 등 한국 사회의 여러 특징들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최장집, 2006: 113).
 
○ 지역주의적 현상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 한다면, 인위적으로 지역별 의석분포를 균등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지역 이외의 다른 이익들이 표출/조직되어 선택의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균열축이 들어오게 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114).
 
○ 오늘의 정치권과 언론을 통하여 무성하게 제기되는 정치개혁 담론과 논의를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것들이 도덕주의적 관점을 통하여 오늘날 한국 정치가 당면한 문제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깨끗한 정치를 위한 개혁을 강조하는 동안, 참여․대표․책임성과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들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완전히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이다. 정당이 국가/정부와 사회를 매개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자, 정부를 만들고 정책적 수단을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심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당의 발전 없이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개혁의 제1의 목표는 어떻게 정치의 장을 경쟁적이면서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포괄적이 되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로부터 모든 정치개혁이 시발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곧 참여와 대표, 책임성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최장집, 2006: 114-115).
 
(1) 참여
 
민주주의는 곧 대중참여의 정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참여, 대표, 책임성 가운데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는 참여이다. 민주적 제도의 모든 것은 이 참여라는 기초 위에 건립된다. 그러므로 참여의 폭과 내용은 민주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요인이다. 참여의 개념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중심적인 것은 투표를 통해 선거경쟁에 참여하는 것이며, 따라서 투표율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민주주의의 척도이다.
  
인구의 1/3 정도가 참여한 가운데서 다수를 획득한 정당이 집권당이 된다는 것은 대표성 역시 극히 취약한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구조적으로 소수정권이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투표자와 투표불참자의 구성이 확연한 계층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인종, 저소득층, 노동자 등 사회 하위계층의 투표율은 극히 저조한데, 그래서 미국을 중산층 중심의 보수적 민주주의라고 말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를 개혁하려 하지 않는가? 그것은 공화-민주 양당의 당 간부들과 중산층 지지자들이 그들의 기득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담합하여 개혁을 사보타지하기 때문이다(Ginsberg and Shefter. Politics by Other Means. pp. 21-22.). 
 
민주주의에서 하나의 정치제도가 보수적이냐 개혁적이냐를 가늠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을 찾는다면, 그것은 참여를 억제하는 효과를 낳는 제도를 갖느냐, 아니면 이를 촉진하는 제도를 갖느냐에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 개혁논의는 참여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법의 집행자들, 개혁자들, 지배적 담론은 대중의 집단적 힘이 정치로 들어오는 문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신규 유권자들이 선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은 줄고 있는데도, 시민운동의 선거개입이나 여러 가지 운동적 형태의 선거캠페인 등은 불법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이슈들을 폭증시켜 왔다. 그것은 양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비교적 장기간의 주기를 갖는 한 번의 선거로, 이 다양하고 복잡한 의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몇 개의 정당대안 중 하나에 대한 투표라는 선택이 만들어 내는 집합적 결정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적 결정구조는 매우 엉성하고 조야하기만 하다. 새로운 이슈의 등장과 선거라는 방법에 의한 결정 사이에 비대칭적․구조적 불균형이 커지게 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한 특징인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전반적인 사회의 민주화와 아울러 여론, 담론이 창출되는 영역에서 거대 사익들의 독과점을 억제하는 논의구조의 확대와 활성화를 촉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수이익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도록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기를 더욱 강하게 기대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정책이나 개혁안을 결정하여 위로부터 부과할 때 충돌은 필연적이다. 더구나 민주정부가 공권력을 사용할 때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은 권위주의 정권 때보다 훨씬 더 높아진다.
 
사회 전체이익과 특수이익이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적 제도의 핵심은 이들 이해당사자들을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노동과 같이 사회의 중요 생산자 집단을 정책결정과정에 참여시키는 합의적 결정주의, 즉 코포라티즘이다. 그 제도적 장치는 정부가 중재자(interlocutor)가 되고 이해당사자 대표들이 직접 대화하여 결정하는 정부, 기업단체 대표, 조직노동자 대표의 3자결정기구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합의적 결정주의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하부기반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기업이든, 노동자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율적 결사체 조직이 기능이익의 범주에서 대표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강력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정부대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이들 조직을 협의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노동조합을 정책결정의 당사자로서는 그만두고라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참여는 사회 내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대표성을 갖는 각자의 조직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최장집, 2006: 115-118).
  
(2) 대표
 
중요한 것은 사태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문제인데, 결정구조의 폐쇄성과 정치부패는 정치적 대표체제의 이념적․계층적 협애성과 엘리트 카르텔 구조의 특성 위에서 만들어졌고 유지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정당체제의 변화 없이 개별 정당조직의 개혁이 효과를 갖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의 지배적인 접근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정당체제 개혁의 효과가 정당조직 내부의 민주화로 연결되는 접근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다.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의) 범위와 (계급의) 편향성은 동일한 경향성”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갈등이 한 쪽으로 치우쳐 국지화되면 사회상층의 이익이 편향적으로 대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의 방향은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고 편향성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정치개혁 논의들은 어떻게 사회의 이익, 요구들이 정치권에 많이 들어오고 어떻게 정치를 경쟁적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인가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정치안정이냐 불안정이냐의 기준이 주요가치로 인식되면서 양당제가 선호되고, 다당제는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가치와 이익, 갈등들이 광범위하게 표출되는 것에 중심적인 가치를 둔다면 다당제가 선호될 수 있을 것이다(최장집, 2006: 118-120).
  
(3) 책임(성)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선출된 대표․정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후보들 가운데 누구에게 맡기면 잘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의 정도를 판단해 전망적으로(ex ante) 평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정부가 임기동안 얼마나 제대로 업무를 수행했느냐 하는 데 대해 사후적으로(ex post) 평가하는 것이다(Przeworski, Stokes, and Manin, "Elections and Representation," pp. 29-54). 현실에서 이를 담보하는 중심적인 메커니즘은 정당이다. 정당․후보는 강령, 이념, 공약의 차이와 유능함의 정도로 경쟁자와의 차별성을 과시하게 되고, 이를 이행하도록 노력하여 다음 선거에서의 평가를 통해 재선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통하여 제기되고 또 실제로 실현되기도 한 당정분리론과 대통령의 당적 이탈은 바로 이 책임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것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연계, 대통령과 정당의 연계를 단절하고, 정치적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책임정치의 약화를 가져오고, 정치체제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능적 통합성을 무력화시킬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정치체제의 파편화, 즉흥성, 무책임성, 제재대상의 불분명함, 평가의 불확실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제도적 문제 가운데 하나는, 권력의 분립과 견제에만 치우침으로써 체제를 작동시키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을 많이 드러냈다는 데 있다. 개혁자들은 수평적 책임성이 과도할 경우 그것이 자주 파괴적 효과를 가질 수 있고 잠재적으로 헌정적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최장집, 2006: 120-123).
  
○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란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체제라는 매우 함축적인 정의를 내린다(쉐보르스키, 아담, 임혁백․윤성학 옮김(1997). 『민주주의와 시장』. 서울: 한울. p. 34. Adam Pezeworski(1991). Democracy and the Market. Cambridge University Press.). 권위주의는 집권세력이 패배할 경우 판을 쓸어버리고 결과를 번복하면 되기 때문에, 또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선거과정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경쟁의 결과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체제이다. 여기에서 선거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거나 다만 체제정당화의 기제에 불과하다. 이와는 달리 민주주의에서 정치행위자들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패자는 다음 선거경쟁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28).
  
○ 좋은 제도개혁은 어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좋은가, 왜 어떤 부문에서 제도개혁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성적이고 사려 깊은 논의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동일한 제도는 개혁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제도개혁은 제도 자체의 내용과 그 제도가 작동하는 조건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많은 경우 외부의 모델을 따르는 개혁은 원래 모델이 실현했던 효과를 갖기보다, 해당 사회의 여러 토착적 조건들과 결합하면서 기존의 부정적 문제를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제도개혁은 최소주의적이어야 하고, 신중해야 하며, 광범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최장집, 2006: 129). 
  
○ 현대 민주주의의 중심적 원리이자 제도들, 예컨대 3권분립, 다수결의 원리, 지역대표의 선거제도 등 기존의 제도적 장치에 상상력과 사고를 묶어둘 필요는 없다.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는 다양한 제도대안이 모색될 단계에 이르렀고 또 실제로 모색되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제도개혁 논의는 그간의 한계를 넘어, 상상력과 아울러 넓은 이성적․공론적 논의가 가능한 방향으로 확대․발전되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130).  
  
6장 민주주의와 노동의 문제
  
○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무엇을 이루어냈느냐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매우 초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저하게 퇴보했고 현재 계속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반비례하여 발전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136).
  
○ 한국의 민주정부들의 경제, 사회정책은 권위주의정부보다도 더 성장중심적이고, 그러므로 재벌중심-노동배제적이고, 세계의 그 어떤 주요 국가들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 즉 시장근본주의를 따르는 경제독트린과 정책라인을 취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적 정책라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IMF위기 이후 불과 7, 8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기조가 매우 급진적으로 취해졌고, 그 결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구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너무나 급격하게 재편성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를 추동하는 중심적 가치는 경제성장이고, 이를 실현하는 도구적 가치는 효율성, 경쟁, 능력주의(meritocracy) 등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도 갖지 않고 시장경쟁에서 약한 자원을 갖는 보통사람들이, 수의 힘을 통하여 정치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권익을 실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체제이다. 시장경쟁에서의 열패자 또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서민층이나 소외계층들은 선출된 정부들이 개혁적이기를 기대하면서 투표했고, 그들을 정부로 선출했다. 그러므로 선출된 정부는 시장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이들에게 사회적 보장과 복지를 부여하는 정책을 실현할 위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로크의 개념을 따르면 그것은 정부와 피치자간의 신뢰(trust)이며 최근의 민주주의이론의 개념으로는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고 하겠다. 이 연결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 하나의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따라서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가치, 그리고 그에 따른 정책을 솔선해서 수용하고 추구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따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한 세계적 모델사례로 발전해 가고 있다(최장집, 2006: 138).
  
○ PD적 문제의식은 그동안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전혀 정리․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PD적 문제의식의 정리․실현 내용은 ① 노동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이며 보편적 원리로서 일정한 경제적 시민권을 획득/부여받고 그에 따라 사회전체와 생산체제에서 주요하고도 정당한 행위자로서 인정되는 것 ②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원리는 존중되나, 제어되지 않은 시장경제는 경쟁, 효율성, 업적중심의 가치만이 아닌 그와는 다른 근원적인 인간가치, 사회윤리적․공동체적 가치에 의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정하게 규제․제어되는 것 ③ 재벌중심의 경제/산업구조는 다양한 대기업의 존재와 중소기업의 강화에 의해 보다 다원화되고, 영세자영업은 현대화된 자영업으로 발전되는 것 등의 요소들을 포함한다(최장집, 2006: 140).
  
○ 선거경쟁을 주도하는 정치엘리트 ― 그들의 조직적 표현으로서 정당 ― 경쟁의 결과 등장한 민주정부가 자신들의 사회적 기반과 단지 논리적으로만 연계되어 있을 경우, 다시 말해 책임성과 위임의 원리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체제는 민주주의를 형해화하거나, 냉소적으로 만들거나 또는 실제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다른 어떤 권위주의적, 엘리트적 지배체제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왜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갖지 않는 한 민주주의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갖지 못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투표에 의한 선거경쟁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사태를 변화시키기 어렵거니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나 학자들은 두 방향에서 대안을 찾는다. 한 방향은 투표와 선거경쟁 자체를 의미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동시에 직접민주주의의 모델을 살려 참여민주주의의 범위를 넓히고 채널들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다. 결정과정의 참여범위를 넓히고, 민주적 통제의 이슈영역과 범위를 확대하고, 시민들이 대안적 정보원과 지식을 확보하여 이슈에 대한 계몽적 이해와 이성적 판단의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주장이다(John Dryzek, Robert Goodin, 그 밖의 참여민주주주의 이론가들). 다른 한 방향은, 민주적 자유와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 즉 경제적 조건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다(Robert Dahl, Charles Lindblom, Amartya Sen, Joseph Raz 등). 이 내용들은 이미 PD라는 형태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제시되었다. 요컨대 한국의 민주주의발전을 위해서는 PD적 문제의식이 현실적으로 정리․실현하는 과제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될 것이다(최장집, 2006: 141-142).
→ 최장집 교수는 참여민주주의의 틀 안에 경제민주주의, 산업민주주의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참여민주주의의 범위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 민주주의의 질과 내용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국가와 시민사회, 공동체적 필요와 사적 선호, 국가에 의한 공적 강제력과 자율적 교환 등 이들 양자 간의 구분들이 실제로 어떻게 배합되느냐에 따라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적 필요와 공적영역을 극단적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민주주의와 병립하지 못했듯이, 사적 선호와 사적 영역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민주주의와 병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143-144).
 
○ 현재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급진적 신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무는 위험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의 현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 어느 것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양자는 어디에서인가 접점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흥미있는 사실은, IMF위기이후 민주정부들의 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수용한 것은, 외부적 압력의 강제에 의해 선택이 완전히 닫혀있는 상황의 산물이었다기보다 민주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즉 민주정부에 의한 선택이 성장주의, 시장효율성, 시장합리성, 시장주권의 이념과 가치가 완강한 헤게모니로 자리 잡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의 하나였다.
 
민주주의와 시장원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념, 가치, 제도, 실천을 갖는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이익과 갈등의 광범한 표출을 허용하고 정당이나 운동 또는 이익집단들을 매개로 하면서, 갈등해결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는 하나의 정치체제이다. 일차적으로 민주주의는 시장경쟁과 그것이 창출하는 불평등화와 소외효과를 중화하고 보완하는 민중적 성격을 띠는 정치제도이자 체제이다. 민주정부들이 스스로 시장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탈정치화와 정치의 다운사이징에 앞장섬으로써 왜 스스로의 권력과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퇴행한 것은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아이러니라 하겠다(최장집, 2006; 144-145).
  
○ 민주정부의 변신(metamorphosis)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최장집, 2006; 145-147).
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세력들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것으로 믿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정부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들 정치적 집권세력은 정부가 된 이후 어떤 경제적․사회적 정책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대안적 정책, 실천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추진할 인적 역량을 갖지 못했다.
  
② 정부가 된 이들은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막강한 헤게모니를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주로 국가관리와 정부정책의 수행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대 헤게모니와 압력은 대중매체와 여론에 의해 두 방향에서 작용하게 되는데, 하나의 방향은 정부의 업적이 언론을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더십과 집권세력 자체에 대한 능력이 모든 계기마다 추궁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두 외부세력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는데, 하나는 시민사회 내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인 재벌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내의 전문가집단인 행정관료, 테크노크라트이다. 불확실한 위임과 대표-책임간의 연계가 느슨한 구조를 갖는 데다 민주정부가 아무런 경제사회정책을 갖지 못하고,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을 통하여 경제적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동안, 대북문제와 한미관계에서는 일정한 개혁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 민주정부의 집권세력들은 그들 스스로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가졌다고 자임하기 때문에, 그들이 취약하다고 믿는 보수세력과 좋은 관계 설정 또는 그 방향으로의 지지확대가 중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한다. 결과는 경제, 사회정책 영역의 보수화이다.
  
③ 헤게모니와의 타협에 의한 문제해결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증폭시키게 된다. 민주정부는 두 요소에 의해 부정적 효과의 증폭에 직면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자체가 결과하는 빈부격차, 고용불안정, 노동자 소외, 사회해체와 같은 부정적 효과에 의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의 위기가 수반하는 리더십의 약화와 정부수행/업적의 하락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에 대한 잠재적․현재적 지지세력의 이탈이 증대하고, 정부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진다. ... 아마도 노무현 정부만큼 정서적 급진주의와 실제 제도적․정책적 실천에 있어 극도의 보수적 내용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현상을 보여 주는 예는 찾기 힘들 것이다.
  
○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시장지상주의, 이를 구성하는 시장자율성 또는 시장주권, 경쟁, 업적주의, 효율성의 가치가 사회 전체의 전일적 가치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시장지상주의의 가치가 이데올로기가 된 것의 효과(최장집, 2006: 147-149)
 
① 시장지상주의의 가치는, 가치다원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단일가치이기 때문에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는 이를 수행한 결과에 따라 서열화되기에 이르렀다. ... 성장주의와 시장지상주의가 헤게모니가 되는 만큼 그 안에서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내용을 갖는다. 그것은 국가-재벌관계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과 성격 자체를 변모시킨다. 즉 모델이 되는 재벌기업이 국가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 행위의 범위를 정의해주고, 국가가 해야 할 정책을 제시하며, 관료행정의 규칙과 규범의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국가 그 자체를 내부로부터 변모시키는 것이다.
  
② 시장과 시민사회를 포함하여 사회에 대한 국가의 중심적 역할이 급격하게 약화됨과 동시에,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거대기업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한국도 이제 기업사회적 면모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민주화 이후 계속되어야 할 민주화는 민주정부의 선출을 중심으로 국가부문의 민주화가 선행하고, 다음에는 민주정부의 개혁적인 정책들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단위를 개혁하는 방법으로 민주적 가치와 규범, 규칙들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민주화가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정지될 때, 국가의 약화에 힘입어 사회의 헤게모니 구조는 이전보다 더 완강한 보수적 질서로 재편되기 쉽다.
  
○ 핵심은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유연화의 방향을 완결짓고자 하는 정책목표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정책의도가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하여 노조가 얻을 것은 다만 부분적인 교환 이상일 수 없다. 노조는 참여하여 작은 것이라도 얻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급진적․파괴적 집단이 아니라 민주주의 하에서 이성적 협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어떤 이미지개선의 효과를 얻느냐, 아니면 협상의제 자체를 보다 중요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현재의 얻을 것을 포기하고 판을 깨느냐 하는 선택의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최장집, 2006: 151).
    
○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의 과제는 선출된 민주정부가 어떻게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하게 하는가, 이를 위해 어떻게 사회부문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드는가에 있다. 민주정부의 경험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까닭은 두 측면, 즉 ①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이념과 정책대안을 갖지 못했다는 점과, ②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세력화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 결과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증폭되고, 그 사회적 기반이 오히려 약화되는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최장집, 2006: 158).
 
○ PD적 문제의식의 핵심은, 성장에 균형을 맞추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등하고, 경쟁하는 사회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에 기초하면서, 그것은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일방의 전일적 가치와 힘이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이다. 또한 시장-효율성-경쟁을 중심원리요 가치로 삼고, 인간노동의 가치가 발전의 한 수단, 성장을 위한 하나의 요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공리주의적 원리에 대응하여, 공동체의 가치, 인간의 근원적 가치, 그리고 노동의 보편적 가치 등 독립적인 가치를 증진함으로써 양자가 균형을 맞추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적 노동의 가치는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하며, 이를 형성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세력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정책의 수준에서 그것은, 노동계층을 포함하는 민중들에게 보편적인 경제적 시민권이 부여되는 것, 그리고 상당한 산업구조의 변화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 및 고용체계를 발전시키는 일을 포함한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성장동력을 구축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 하겠다.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세력화의 수준에서는, 노동자와 그들의 운동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사회적 힘의 균형추 내지 중심세력 중의 하나로 역할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로부터 또는 그것을 기초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 현재와 같은 선거경쟁과 대표의 체계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해 가능할 수 있는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참여의 범위가 보다 확대되고, 이를 통해 민중적 힘의 투입이 정치과정 내로 넓게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참여와 시민사회에서의 운동의 중요성을 말한다. 참여는 투표를 통해 선거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노동현장, 직업현장인 사회의 하위조직과 수준에서 성원들의 폭넓은 참여를 말한다. 그리고 운동은, 제도가 갖는 본래적 보수성, 즉 경직화와 일상화, 민중적 힘을 제약하는 경향성 때문에 민중적 힘이 정치과정으로 투입되는 중요한 채널이다(최장집, 2006: 159-160).
  
7장 한미 자유무역협정 정책 비판과 대안적 발전모델: 하나의 시안
 
○ 갑작스럽게 결정되었고 과격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한미 FTA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은 한미 FTA 정책이 그만큼 복합적이고도 다층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결정된 이후에야 서둘러 이 사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함에 따라 혼란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162).
  
○ 성장잠재력 저하, 국제경쟁력 약화, 고용증대에 대한 부정적 전망, 사회 양극화, 그 위에 중국의 추격위협이 가중시키는 미래에 대한 어두운 예상 등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할 근거로 동원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을 불러들이는’ 이 쉬운 방법을 모르고, 그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고 한국적 조건에 부합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괜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된다.
  
위와 같은 정부의 논리는 ‘개방이 안 돼서 문제이고 한미 FTA로 개방이 이뤄진다면 생산성 향상과 경제발전 등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인과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그간 정책결정자들이 견지했던 신자유주의적 비전과 한미 FTA 추진이라는 처방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DTA 정책은 더 많은 시장원리와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추구했던 그 동안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최종적 결과물 이상이 아니다. 그간 추구했던 정책노선이 가져온 가장 분명한 문제는 경제의 불균등 심화 내지 사회 양극화이고 노동배제적 생산체제의 지속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수행이 가져온 실제의 기록일 텐데, 이에 기초해서 평가한다면 분명 그렇게밖에 정의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한미 FTA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에 입각하여 운영해온 기존의 경제체제를 보다 공고히 하고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성장과 동시에 양극화 해소를 말하고, 한미 FTA 추진의 근거 중 하나로 그것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고 홍보함에도 불구하고, 그 인과논리는 그저 상정된 것일 뿐 현실화될 가능성이나 설득력을 전혀 갖지 못한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한미 FTA는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적 미국경제에 전면적으로 개방 내지 통합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최장집, 2006; 164-166).
  
○ 성장중심론의 한계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성장의 둔화를 걱정하면서 그 원인을 따지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충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동안, 제조업이 급격히 약화된 산업구조와 분절화된 노동시장 체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빈부격차 및 양극화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에게 양극화 문제는 성장둔화의 결과물일 뿐 그 인과관계가 역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주장은 성장의 분배효과(성장이 가져다주는 ‘넘쳐흐르는 효과’)에 대한 일방적 과신에 치우쳐 있다.
성장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구조에서 높은 기둥들은 다음 단계의 행진에서도 언제나 제일 앞서고, 중간은 언제나 중간이고, 제일 작은 기둥은 언제나 맨 뒷줄에 서게 될 수 있다. 더 나쁜 경우는 행진(성장)이 계속되면서 맨 앞줄의 기둥(최고소득 집단)이 전봇대만큼 높아지고, 중간과 마지막에 선 기둥(소득수준이 낮은 집단)들의 높이가 비슷해지거나 더 작아지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 행진하는 대열 속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성장에만 초점을 두고, 성장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론이나 정책은, 행진 그 자체가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열에 참여해서 행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렌도르프가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이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하려는 것은, 성장에만 초점을 두는 논리는 너무 단순하고 일면적이라는 사실이다. 동반성장론은 성장을 강조하고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은 말하지만, 그 대열의 구성과 내용과 관련하여 민주주의와 복지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이렇다 할 처방을 제시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고용은 증대시키지 못한 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오늘날 경제지표들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최장집, 2006: 167-168).
   
○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은 과거에 이루어진 선택이 그 이후의 선택을 체계적으로 제약한다는 뜻이다. 경로의존성은 제도들에 얽혀있는 상호작용의 체계가 여러 행위자들의 관성적 패턴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자 기성 제도에서 혜택을 보는 기득이익이 제도의 지속성을 강화하고 변화를 어렵게 하는 이치를 나타내는 말이다. 제조업 중심의 권위주의 산업화에서 이제 금융, IT, 서비스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개방경제로 발전하자는 것은 한국 경제사에서 경로의존성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민주정부들이 잘못된 선택을 계속해온 결과였다. 다른 경로의 선택의 공간이 존재했다고 보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174-175).
  
○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IMF 금융위기와 같은 엄청난 균열과 갈등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정책의 차이가 정당간 경쟁의 축을 만들기보다는, 거꾸로 사회경제적 차원의 정책적 차이가 더욱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경쟁하는 정당들은 정작 민중적 삶의 조건에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정책 차이를 발전시키지 않았다(최장집, 2006: 179).
   
○ 지식정보산업, 금융 및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을 앞세운 성장제일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 노동․고용․소득 상황의 악화를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 야당, 관료, 재계, 주류 언론, 지식인 전문가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주요 엘리트 집단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전 동맹이 형성되었다. 이에 대항하는 어떤 대안적 이념이나 프로그램의 형성도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완강한 헤게모니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정부정책과 국가의 자원들이 집중될 때 사회적 시민권 내지 사회보호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은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이는 대통령과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한미 FTA 추진을 천명했을 때, 한국의 여야 양대 정당 어디로부터도 이렇다 할 비판이나 대안이 제기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삶의 피폐화나 불평등의 심화가 한국 사회에서는 정당간 경쟁을 분기시키는 정치적 의제로 부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정당들은 한결같이 경제성장을 강조한다. 대안을 말하고 이를 진지하게 실현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이 대안을 지지할 수 있는 강한 정치적 세력화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대안이 강한 의지를 갖는 정당의 강령과 정책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한 강령과 정책을 갖는 정당이 선거경쟁에서 승리하여 그 정책 실현을 위임받거나, 아니면 정치적 다수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표의 블록을 형성하여 그 크기만큼 정책내용으로 포함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강한 분배효과를 갖는 사회경제적 이슈와 정책대안이 제기될 때 기존의 수혜집단들은 많든 적든 불이익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고 반대로 새로운 잠재적 수혜집단이 부각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정책이슈가 선거경쟁의 핵심 의제로 제기될 때 갈등은 사회화되고 유권자 동원은 확대되면서 정당체제는 재편의 압력에 더 강하게 노출되는 것이다(최장집, 2006: 180-181).
  
○ 교육-기술유형은 생산의 사회적 체제이론의 관점에서 말하는 제조업 생산체제와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양자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제공해주는 연결고리는 ‘자산특수성’(asset specificity) 개념이다. 노동자들이 갖는 특정의 교육과 기술은 투자를 통해서 그들이 획득하는 것으로 그들 자신에게 자산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특정 노동자들이 소지하는 특정의 기술은 ‘자산특수적 기술’이 된다. 이 개념에 바탕을 둔 산업조직의 거래비용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소지하는 기술 자산이 특수하면 할수록 그 자산의 소지자들은 한 경제조직 내에서 경제행위를 수행하는 데 더 큰 인센티브를 갖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복지문제와 관련하여 이것이 갖는 이론적 함의는 매우 크다. 이 관점에서 볼 경우, 노동자가 보다 특정한 기술을 소지하는 것과 이들이 취업해 있는 기업에 대한 헌신의 강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체제란 생산성을 초과해서 국가가 지불하는 비용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갖는 자산특수적 기술을 보호한다는 관념으로 이해되고, 그러할 때 그 혜택은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의 몫으로도 돌아가게 된다. 국가가 사회보호를 통해 일정한 기술을 갖는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면, 그것은 사적 생산의 단위인 기업에 대해 경쟁력을 갖는 기술을 보호하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185-186).
 
○ 최장집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의 대안으로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제조업분야 중소기업 육성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산업정책과 노동-사회복지정책을 병행하면서 두 영역에서의 미시적 연계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짐으로써 세계화된 국제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조율된 생산체제를 창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국내 생산체제로부터 나오고 그에 기반을 두는 ‘내발적’ 발전 전략, 즉 성장정책과 산업정책, 노동 및 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이 만날 수 있는 발전의 틀, 그 속에서 성장과 고용증대가 병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양극화 해소 내지는 완화에 기여하고, 또 반대로 양극화 해소가 성장에 기여하는 산업발전 모델이 필요하다.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방향의 대안이 개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외적 제약이 크다 하더라도 모든 나라가 동일한 발전 경로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대표체제가 사회적 요구를 얼마나 폭넓게 대표하는가에 따라 여러 다른 유형의 기술-교육-생산-성장-복지-노사관계의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고, 정치적 리더십의 진취적 계기 역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적·정치적 계기들의 응집을 통해 미국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모델이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생산체제를 향한 적절한 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믿는다(최장집, 2006: 197).
    
○ 필립 슈미터는 로버트 달이 말하는 민주주의 조건 목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한 요소가 빠져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그 체제는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외부로부터 다른 강력한 정치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행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영토 밖 행위자들의 승인 없이는 정책결정을 할 수 없다면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최장집, 2006: 198). 
  
8장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구조: 칸트의 영구평화론의 관점에서
  
○ 한반도 평화를 ‘통일’에서 찾는 이해방법과 ‘공존’에서 찾는 이해방법을 대비시키면서, 후자의 관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는 이유는, 통일이 안 돼서가 아니라 공존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통일이 당위적으로 강요될 때, 남북한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들이 과소평가되거나 통일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거부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같이 우리 사회의 절실한 과제들이 통일 이후로 미뤄지거나, 모든 문제의 근원을 분단으로 치환하려는 이데올로기에 희생될 수 있다. 통일은 공존이라고 하는 평화의 조건이 갖춰진 이후 남북한 두 체제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고, 또 그럴 때만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최장집, 2006: 223).
  
9장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념적 기초: 공존과 평화를 위한 의미지평
  
10장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하나의 해석: 민주주의자의 관점에서

  
○ 민주화를 중심으로 현대사를 보는 이유는 민주화의 동력들이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일차적으로 성장했고 그 동력이 민주화를 이끌어 냈으며,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민중이 참여했다는 데 있다. 나아가 향후에도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민중적 참여의 폭이 확대됨과 아울러 그 역할이 커지는 것을 중시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최장집, 2006: 261-262).
   
○ 절차적 정당성을 갖지 못했던 박정희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하여 산업화라는 실질적 변화를 통해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보전하고자 했다는 능동적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말 그대로 권위주의정부가 주도하는 산업화를 의미한다.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고속성장을 목표로 국가-재벌기업의 연합을 통해 중심적인 생산자 집단인 노동자들의 참여를 정치와 생산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권위주의는 고도성장을 추동하고, 고도성장의 성과는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구조를 통하여 권위주의와 경제발전은 병행되었다. 이러한 권위주의산업화의 구조적 결함은 무엇보다도 그 발전체제가 민주적 요소를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산체제란 국가가 앞장서 자본을 증대시키고, 노동을 억압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로부터의 소외는 발전의 성과를 분배하는 과정에서의 소외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최장집, 2006: 263).
   
○ 기본적으로 민주화란, 구체제가 구축한 정치적 사회적 구조를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체제 내에 다시 위치시키고 정렬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 문제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체제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양자 간의 갈등을 어떻게 민주주의에 의해 제도화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집약되었다(최장집, 2006: 267).
  
○ 민주화이후의 정당체제가 구체제 하에서 발전한 정당체제를 얼마나 변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의 성격을 형성하고, 발전방향에 영향을 미치는데 결정적 변수라 하겠다. 구체제의 정당체제는, 매우 협애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 내에서 제도화된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구체제의 지배적 이념이요 가치라 할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를 중심 내용으로 했으며 또한 그 틀이 유지되는 조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제약하는 조건이었다. 그 부수적 결과의 하나는 지역감정의 동원과 지역기반에 의존하는 지역주의 정당체제라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의 정당체제는 운동의 중심세력이 참여함으로써 그것이 변화의 계기를 가졌던 것도 아니고 따라서 변화의 계기를 가졌던 것도 아니었으며, 운동이 제기한 두 중심의제를 정당 간 경쟁구조 내로 포섭하지도 못했다(최장집, 2006: 268-269).
  
○ 한국의 민주화가 절차적 수준에서의 민주화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은, NLPD의 이념에서 혁명적 급진성을 제거하고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이념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화이후의 조건에서는 현실의 핵심문제를 다룰 수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될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그 이념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정당체제 내로 들어오고, 그럼으로써 구체제하에서의 정당체제가 재편성되고, 그 정당이 선거경쟁을 통해 다수당이 되고 정부가 되어 그 개혁프로그램들을 실행하는 경로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270-271).
  
○ 민주정부들이 민중문제와 관련된 정책영역, 즉 경제정책과 노동/사회정책에 있어서 대안을 갖지 못할 때 나타난 결과는 매우 퇴행적이었다. 한편의 결과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대안형성의 틀과 방향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세력화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의 결과는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 즉, 구체제 하에서 완결된 권위주의산업화 발전모델에 워싱턴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결합한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게 된 것이다.
  
헤게모니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고 효과를 미치는 영역은, 바로 보통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이 핵심이 되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제 및 사회-노동정책이라고 하겠다. 민주화이후 민주정부들이 발전시켰던 신자유주의 정책레짐은 경제영역이나 사회의 구조와 계층화에 있어서나 미시적 삶의 영역에 있어서나 여러 형태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회경제적 문제해결을 위한 공적 집합적 결정능력과 수행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정치의 구조도 취약해졌다.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이 만들어내는 것은 ‘노동없는 민주주의’, ‘민중 배제적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그 정의에 있어 보통사람들이 그들의 이익, 요구, 열정을 그들의 대표를 통하여 실현하는, 보통사람들 스스로의 통치체제이다. 즉 민주정치는 공공선을 결정하고 창출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수의 힘이 지배적인 결정원리인 민주주의 하에서는 보통사람들의 의지와 권력이 권위주의와 같은 다른 엘리트중심 체제와 비교하여 더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경험에서 가장 큰 역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리더십이 IMF금융위기 이후, 구체제의 성장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진지한 노력 없이 구체제의 성장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이고 무매개적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추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272-273).
  
○ 한국현대사가 냉전반공주의 이념과 분단국가의 발전→권위주의적 산업화와 고도성장→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사회는 몇 개의 대기업집단, 몇 개의 대학, 이들 대학 출신의 엘리트, 몇 개의 언론사, 몇 개의 강력한 이익집단들과 그들 간의 상호 연계망에 의해 지배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한 사회가 동심원적 구조를 갖는 것을 말하는데, 그리하여 모든 사회적 힘이 중심의 정점으로 초집중화하면서 특권 계층 간의 폐쇄적 순환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반면 서민대중의 보통사람들은 그들의 이익과 요구를 조직하고 대변함에 있어 별다른 진전을 얻지 못하고,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스스로를 대표하는 자율적 권력의 중심으로 성장하지 못한 힘없는 익명의 다중으로 떨어졌으며, 이데올로기와 대중조작에 의한 동원의 대상으로 자주 전락하곤 했다. 경제적 생산체제에서만이 양극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요 영역에 있어서도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즉 정치적·사회경제적 동원능력이 잘 발달된 강력한 대규모 조직과 그 주변에서 기능하는 엘리트집단을 한편으로 하고, 힘없고 조직·대표되지 못한 다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것이 한국 사회 양극화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것이다.
  
강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상상력, 창조적 사고, 그리고 대안이념들의 발전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다원적 발전이 억압된다. 결과는 냉전반공주의나 발전주의와 같은 일괴암적 유일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모델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노동없는 민주주의 또한 대표적인 지배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유일가치와 몽매주의를 만연하게 한다. 민주화 이후 이데올로기의 정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수준에서의 민주화가 경제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넘쳐흐르는 효과를 제어하고자 했던 거대 조직과 기득이익들의 보수적 대응에 기인하는 바 크다(최장집, 2006: 273-275).
  
○ 최대강령적 혁명은 민주주의의 작동과 병립하기 어렵다. 혁명적 사태를 동반하면서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될 수는 있으나, 민주주의는 항시적인 민중동원과 운동을 통해 작동하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정치적 참여와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가지며, 공공선을 창출하는 집합적 결정과정에 개인이 개별적인 단위로서, 또는 유사한 이익과 요구를 조직하는 방법을 통하여 참여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그것은 경쟁하는 이익의 평등한 참여가 보장된 제도의 틀 안에서, 갈등하는 이익들 간의 경쟁을 허용하고 타협하도록 이끄는 체제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운동이 중심이 되는 비상한 시기의 체제가 아니라 일상성 속에서, 즉 보통사람들의 삶의 세계에서 제기되는 일상적 관심사와 더불어 작동하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이 체제에서는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문제해결을 포괄하는 최소강령적(minimalist) 이념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76).
  
○ 오늘날 민주적 제도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어떤 최적의 배합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그 중심 내용으로 한다. 한국사회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을 갖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민중주의는 민주적 국가의 역할을 통한 개혁의 프로그램들, 즉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정당한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생산체제의 각 수준에서 조직노동의 참여와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며, 분배구조의 개선과 사회복지권의 확대를 포함하는 공동체와 공공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의 원리로 실현되었다.
  
신자유주의적 독트린과 그에 입각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여기에 노동참여, 사회복지 및 사회통합을 가치로 하는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 모델의 내용이 가미될 수는 있어야 한다(최장집, 2006: 277-278).
  
○ 한국의 현대사는, 해방이후 초기 건국과정에서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양극화로 인한 내전적 상황과 6.25전쟁으로 나타난 실제의 전쟁을 통하여, 그리고 남북한 분단과 항구적 대결구조를 통해 어느 나라보다도 큰 폭력과 보통사람들의 많은 희생, 사회적·이데올로기적 균열과 갈등을 경험했다. 이 갈등과 균열 위에서 군부엘리트 지배와 권위주의 산업화는, 경제발전이라는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엘리트지배의 공고화와 노동배제/소외라는 부정적 결과를 낳음으로써, 또 하나의 거대 균열과 갈등구조를 창출했다.
민주화는 중첩적 갈등으로부터 배태되고 분출되었지만, 동시에 이 거대 갈등을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을 통해 완화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는다(최장집, 2006: 278-279).
  
○ 갈등과 균열의 표출과 정치적 대표를 부정시하는 한 통합의 이데올로기와 담론은 대안의 봉쇄, 곧 이데올로기적 전체주의를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사회의 중심적 갈등과 균열을 대표해야 하며, 기존의 지배적 이념이 아닌 대안적 이념을 통해 이를 조직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랄프 다렌도르프에 따르면, 현대의 대규모 사회에서 갈등은, 그것이 제도화되지 않고 억압될 때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그는 사회가 강해지고 통합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억압하거나 마구 뒤섞거나 치환되지 않게 해야 하며 그 자체가 표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당과 정당간의 차이를 통해 이러한 갈등을 대변하고 이를 현대적 언어와 이념과 이론으로 정의하고, 그리고 이들 차이들이 정당과 정당간의 경쟁을 제도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접근되고 해결될 때 비로소 한국사회의 해체적 경향은 서서히 제어되기 시작할 것이다(최장집, 2006: 27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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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6:05 2007/05/07 06:05

3 Comments (+add yours?)

  1. 홍실이 2007/05/07 10:55

    흑. 이렇게 긴 포스트 처음이야요. 도저히 못 읽겠삼.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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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벽길 2007/05/07 10:58

    읽으시라고 옮긴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냥 논문쓸 때 인용도 하고, 검색하기 좋으라고 제가 관심있어 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발췌해서리 자료용으로 올린 것입니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진보블로그를 사용할 때에는 삽입기능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한꺼번에 쭉 늘여서 옮겼는데, 괜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었네요.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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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늘아이 2007/05/08 16:37

    완전 스크롤의 압박....
    나중에 수정해서 삽입쪽으로 옮기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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