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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6월 항쟁, 6월의 노래,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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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 이 만화는 작년에 나름 감명깊게 본 것이다. 그 때 볼 때에는 최규석이 그린 것인줄도 몰랐다. 그 100℃가 창비에서 책으로 나왔단다. 학습만화 형태로... 6월항쟁이 무엇인지, 어떠했는지를 말해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오늘 100℃를 다시 보니 처음 볼 때보다 감흥이 떨어진다. 지금 상황이 너무 엄혹해서인지, 아니면 22년 전과 비슷하게 자유주의의 탈을 쓴 보수세력이 판을 주도하고 있어서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6월항쟁과 유사한, 소위 전민항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세계사의 경험과 이론을 통해 알았고, 작년 촛불을 거치면서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역사에서 배우고 있는가.

 
6.10 만화 ‘100℃’ 작가 최규석 (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2009-06-10 오전 09:32:11 )
 
99℃ 현실 향해 던지는 ‘불쏘시개’ (한겨레, 서정민 기자, 2009-06-10 오전 11:39:33)
87년 6월항쟁 담은 만화 ‘100℃’
22년전 실제 역사와 가상 인물
씨줄·날줄로 엮어 육중한 극화
“민주주의는 100℃에 끓는다” 

 
87년 6월 항쟁을 생생한 극화로 재구성한 최규석의 만화 <100℃>(창비 펴냄·1만2000원)는 6월 민주항쟁계승사업회가 지난해 1월 누리집(http://610.or.kr)에 올린 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최규석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등 발표작마다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2008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 등을 수상한 작가다. 
  
‘100℃’라는 제목의 의미는 만화 속 양심수의 대사로 설명된다. “물은 100℃가 되면 끓는데, 언제쯤 끓을지는 온도계를 넣어보면 알 수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포기도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난 흔들릴 때마다 지금이 99℃다, 그렇게 믿어. 99℃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만화로 보는 6월민주항쟁
 
2.
갈까말까 주저하다가 가게 된 6.10 집회는 역시나 씁쓸함만을 남겼다. 다들 아쉬워하는데도 밤샘농성으로 서울광장을 지켜낸(?) 우리의 민주당만은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이제는 원내에서 열심히 싸우겠다고 한다.
서울광장에 뿌려진 손자보 중에 '국정쇄신'도 있더라. 거참... 부자정책에 반대한다고? 민주당은 민중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모양이지? 저들이 수권정당이 되면 서울광장에서 맘놓고 집회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는 있겠네. 집회하지 않을 때는 다시 스트레스를 누적시켜 나갈 테고...
 
물론 서울광장의 무대에서 용산 철거민들도, 쌍용차 노동자들도, 화물연대 노동자들도 나서서 발언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본무대는 민주당 보수정치꾼의 사회아래 의석을 가진 정당순으로 각 정당의 대표들이 의례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노동자들은, 철거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제에서 발언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과연 상하이차 매각에 책임이 있는 노무현 정권을 비판할 수 있었을까. 비정규 악법을 제정했던 노무현 정권과 민주당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6.10의 서울광장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지지서명을 받았고, 여기에 수많은 시민들이 호응을 보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87년 6월에 노동자들의 자리가 없었듯이 2009년 6월 서울광장에서도 노동자들은 주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객은 아니었지만, 기껏해야 세입자 정도였달까. 
 
내가 서울광장에 있었던 것도 7만명이 모였다는 그 자리에 작년처럼 쪽수를 채워주기 위해 목적이 가장 컸지만,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전경들이 쇠몽둥이를 휘두르고, 방패로 시민들을 찍었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되고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만약 평화롭게 진압을 했다면 또 그렇게 평화롭게 해산되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6.10 섞이지 못한 구호와 민주주의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9년06월11일 1시34분)
"수권정당을 만들어 달라"고 돌아온 대답
 
“직선제가 없었다면 이명박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정치인의 말은 “수권정당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말로 돌아왔다.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민주주의 쟁취하자”고 외치자 무대로 오른 정치인은 “그러니 야당에 힘을 실어 달라”는 고백으로 답했다. 서울광장을 연 공은 밤새 천막을 쳤던 국회의원들에게 돌아갔다. 사회자의 “국회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오”라는 요구에 시민들은 순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영광을 국민들에게”라는 정치인들의 말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들러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광장에 사람들은 많은 데 광장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도 했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시청 앞이 아니라 용산에 민주주의가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이 삶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광일 교수는 “비대칭적인 힘들이 평등해 지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여성과 장애인들이 서로 평등하게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3.
6.10 때는 우리나라도 나오고, 노찾사도 나와서 '광화문에서'를 부르며 작년 촛불이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광야에서, 상록수, 살아오는 동지여를 부르면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더라. 가면 갈수록 집회가 퇴행적이다. 90년대로 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80년대로 가려고 한다. 무대 위에서만 그런가. 서울광장 잔디밭이 아닌 거리에서도 시민악단이라는 사람들이 역시나 80년대의 노래들로 사람들을 모은다. 잘해야 바위처럼이고, 심심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다. 노무현 정권 시기에 청와대에서도 불리워졌던 그 관제가요 말이다. 구태의연하다. 
  
운동권이 주도하는 집회는 재미없고 지루하고 틀에 박힌 것처럼 아무런 감흥이 없다고 비판하던 사람들은 시민들이 주도하는 그런 집회, 시위에서 무슨 감흥을 느끼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차라리 6월의 노래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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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노래  2006/06/13 13:07
 

2006년 6월 13일, 또다시 이제는 '서울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시청앞 광장에 한국 대 토고간의 월드컵 축구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일 것이다. 바로 4년전 6월의 그날처럼.

 

언제부터인지 유월은 87년 6월이 아니라 2002년 6월을 되새기는 달이 되어버렸다.

대중의 역동적인 힘의 분출을 찬양하면서...

호국영령의 달이라는 이름으로 휘몰아쳤던 반공의 광풍이 퇴색된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하면 되는 것일까.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 중 미군 장갑차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혔던 효순이, 미선이 4주기는 연합뉴스의 단신기사로 처리되고 넘어갔다.

88년 6월 10월 홍제동 네거리에 누워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대던 이들의 목소리는 시청 앞에서 윤도현 밴드와 함께 락으로 편곡된 '애국가'를 부르고, 버즈의 ''Reds Go Together'를 외쳐대는 청춘들의 함성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유월은 무엇일까. 오늘 월드컵 응원을 위해 나가는 시청앞 광장이 이한열이 나가고자 했던 시청이었을까. 

  

87년 6월9일. 군사독재가 미친 듯이 쏘아댄 최루탄이 쫓겨 가는 이한열의 뒷머리에 꽂혔다. 온몸이 뒤틀리던 이한열이 남긴 마지막 말은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내일 시청에 나가야 하는데 ….” (한겨레신문 2006년 6월 10일 손석춘칼럼, 활짝 핀 ‘악마의 꽃’ 중에서)

  

월드컵 응원가로 변용된 도 울림이 있지만, 아직은 <6월의 노래> 또한 내 가슴 속에 있다.

    

 

공연실황을 음반에 담은 민중문화운동연합 12집 '저 평등의 땅에'(1988)에는  87년 6월의 감동을 담아 낭독을 넣어 부르는 <6월의 노래>가 실려 있다. 노래 속의 유월이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과 단절되었기에 우리들의 유월이 아니라 당신들만의 유월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꺼려졌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유월의 거리가 이제는 자본과 권력이 마련한 장으로 전락해버린 지금, 87년 유월의 의미만이라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원을 위해 나선 지금의 그 거리가 바로 87년 6월의 산물이기에....
 

민중문화운동연합 - 6월의 노래 
 
우리들은 일어섰다 오직 맨주먹 피눈물로 동지를 불렀다
독재타도 민주쟁취 하나된 소리 민주와 해방의 나라 이뤘다
아 우리들의 수난 우리들의 투쟁 우리들의 사랑 우리의 나라
이 세상의 주인은 너와 나 손 맞잡은 우리 전진하는 우리
이 세상의 주인은 너와 나 투쟁하는 우리 사랑하는 우리
아 해방통일의 우리 되살아오는 유월에
아 해방통일의 우리 되살아오는 유월에
   
물고문, 성고문, 최루탄
시민, 노동자, 도시빈민, 학생, 농민
시청앞, 종로, 종로, 신촌
권인숙, 박종철, 이한열
광주, 전주, 부산, 대전, 서울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 통일, 민중, 평화, 해방
유월의 거리는 해방의 거리
  
아 우리들의 수난 우리들의 투쟁 우리들의 사랑 우리의 나라
이 세상의 주인은 너와 나 손 맞잡은 우리 전진하는 우리
이 세상의 주인은 너와 나 투쟁하는 우리 사랑하는 우리
아 해방통일의 우리 되살아오는 유월에
아 해방통일의 우리 되살아오는 유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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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과 민주화 20년 2007/06/10 06:11
 
6월 10일을 맞아 노래를 걸까 했는데, 6월의 노래에 대해서는 작년에 썼더라. 나는 1987년 6월에 뭘 했을까. 
 
한참 재수를 하고 있었다. 학원에서 친구들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가지고 '이 신문이 더 크게 시위를 다루었네, 저 신문이 더 크게 다루었네'하고 논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때는 경향신문은 어용신문이었고, 한겨레는 창간되기 전이었다. 
 
학원이 전남도청 바로 뒤에 있었기에 심심하면 시내에 나가서 시위 구경도 있었다. 학원 선생들은 나중에 문제 생기니까 시위에 참여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지만, 그 나이에 그게 되나. 대학에 다니던 친구들이 해방춤을 추는 광경을 보면서 나도 그냥 휴학하지 않고 학교에 다닐껄 하는 생각도 하고... 
 
6월이라서 6월항쟁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 6월항쟁의 정신은 무엇이었고,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 것일까. 87년 6월이 가진 한계에서 한발자욱도 나가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의 품 안에 안긴 채 민주화의 적자인 양, 진보의 대변자인 양 하는 자들이 6월항쟁의 정신을 더럽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부족하나마 나름의 답을 참세상의 논평과 김명인 교수의 칼럼에서 찾았다. 물론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은 아니지만...
 
다른 글들도 많지만, 아래 글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병천의 글 추가. 
 
[논평]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진보 20년의 허상 (참세상, 2007년06월09일 2시09분)
계급투쟁의 진실 찾아 변혁의 세계화 그림 그려야
   
6.10항쟁 20주년을 맞는다. 누가 잊으랴. 승리의 6월이었다. 최루탄 자욱한 거리,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은 기억에 선연하고, 6월의 어느 한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환청이 들리는듯 하다. 87년 6.29 항복 선언은 민주주의 투쟁의 쾌거로 세계 계급투쟁사에 기록되었고, 한국 사회 민주주의와 개혁을 향한 출발점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그날 이후 네 번의 대통령선거가 치러졌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는 반세기동안 민중의 삶을 점령해온 반공-냉전주의 세력을 역사의 뒤켠으로 몰아세우는 저력을 발휘했다. 참여정부 집권 마지막 해에 맞게 되는 6.10항쟁 20주년, 행자부는 1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민주인사, 행정부 각료, 각계 주요인사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 차원의 첫 공식 기념식을 갖는다. 6.10항쟁을 기념하는 국가기념일이 지정되었고, 갖가지 기념행사와 토론회 등 풍성한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6.10항쟁을 만들었던 민중들 어느 누가 기념과 축제의 주인공이 아니랴. 그러나 다시 묻는다. 오늘 민주주의와 진보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6.10항쟁 20년이 지난 지금, 진보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유연한 진보' 논란에서 진보는 극단적으로 희화화되었다.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아 나선 자본과 선진화 담론의 결탁은 우연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위기와 용세계화론이 만나 전방위 자유무역협정이 추진된 것도 필연의 산물이다. 진보를 가르는 기준이 계급투쟁이라는 진실은 은폐되고, 급진적 이념은 낡은 시대적 인식으로 멸시하는 풍토가 지배적이 되었다. 20년의 민주주의와 개혁은 피로도가 다했고, 민주주의와 개혁의 볼모로 잡힌 진보는 심각한 정체성 훼손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6.10항쟁 20년,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자본의 질주를 제어하지 못한 채 진보의 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를 위해 등장한 참평포럼은 자본에 굴복한 자유주의자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민주주의의 화신을 자임하고, 촛불 신화를 만들어온 자유주의자들의 신자유주의 권력화는 한미FTA 타결로 정점에 이르렀다. 참여정부의 국가전략은 시장을 넓히기 위한 전략, 기업하기 좋은 환경, 지속가능한 기업환경, 시장친화적인 사회, 비전2030으로 압축된다. 사실상 자본의 국가전략이라 할 참여정부의 비전에는 사회구성원의 생존의 문제와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유주의자들의 선택은 비극을 초래했다. 부동산과 투기가 추앙받는 사회, 자살률, 저출산율, 소득격차, 노동시간, 사교육비 지출 모두 OECD 1위인 사회가 되었다. 천재 1명을 만들기 위해 1천 명의 보통사람을 희생시키고, 부의 대물림과 서열을 고착화하는 입시 경쟁체제를 진보라 부르고, 영리법인과 민간의료보험 허용으로 의료산업 선진화를 혁신으로 명명하는 사회, 정보통신산업 발전을 명목으로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과 통신비밀보호법 시행 예고로 국가의 감시체제와 정보인권 침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국정 치적을 홍보하는데 가공할 물량을 쏟아부으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는 깡그리 무시하는 나라를 만들어놓았다.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후퇴하며 자본에 민주주의의 혼마저 내다준, 대한민국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평화, 개혁, 진보의 진면목이 여기에 있다.
  
지난 20년, 민족주의 운동이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한 실천에 주목한다. 분단을 고착화하고 그로부터 계급적 이익을 구가한 반공-냉전주의와 싸워온 민족주의는 대한민국 진보의 중요한 축을 차지했다. 반미자주, 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은 시시때때 귀감으로 회자되기도 하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오늘날 민족주의 운동 경향은 대중운동의 주도적 위치를 점했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운명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민주주의 발전과 계급구성의 변화에 조응하는 위치를 찾지 못한 채 혼동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우리민족'의 강조와 민족주의의 과잉은 신자유주의 모순 심화에 따라 형성된 저항 주체에 대한 왜곡을 부르기도 하고, 민족의 이익을 우선함으로써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와 사회적 소수자와의 연대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번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진로'에 실린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는 민족주의 과잉에서 기인한 극단적인 인식이 엿보이는 사례다. 이주노동자와 성소수자에 대한 배타성의 표현은 단순한 해프닝이나, 범민련 기관지 차원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남북간 평화와 통일을 눈앞에 둔 시기, 한반도 평등평화를 위한 노력은 남과 북 사회구성원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모든 종류의 계급적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노력이 민족의 이름으로 치환되거나 폄하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신자유주의축적체제의 모순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자 바야흐로 자유주의, 민족주의 할 것 없이 신자유주의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개량 확장과 복지 실현의 맥락에서의 반신자유주의 주장은 그 한계와 맹점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바 있다. 초국적자본 이동이 자유로워진 시대, 미 제국주의의 전쟁 책동이 지속되는 조건에서 반신자유주의는 반제, 반자본 변혁의 세계화를 위한 실천이어야 하고, 신자유주의정치 일반과 자본 축적체제 모두를 넘는 전략적 구상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20년 전 계급투쟁의 목표가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 실현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데 있었다면, 앞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넘는 사회구성원의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연대의 권력 형성을 직접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자유무역협정으로 자본운동이 가져올 위험천만한 사회 문제를 예측하는 가운데, 교육, 의료, 물 등 사회공공성을 지키고 사회화 전망을 모색하는 실천과 지속가능한 생태와 여성주의 실천, 민주주의와 인권 침해에 맞서는 저항, 그리고 한반도 사회구성원 모두의 균등한 삶의 질을 구현하기 위한 평등평화전략으로서의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새로운 진보의 걸음을 내딛을 때다.
  
20년 전 불렀던 ‘그날이 오면’은 자본과 권력에 저항한 수많은 열사와 희생자의 염원을 담은 노래였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청 앞에서 수십억 원을 들인 대규모 기념행사와 축제가 벌어지는 오늘, 열사들이 꿈꾸었던 그날은 과연 이루어진 것일까. 다시 청주대 청소용역노동자 폭력이 빚어지고, 노점특별관리대책 철회 기자회견 참석 노점상은 불법 연행되고, 공무원노동자는 정부의 탄압에 맞서 종합청사 옆 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비정규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비정규직 탄압이 하루도 거를 날이 없다. 20년이 지난 6월 거리의 풍경이다.
 
노동자를 자본 위기의 희생양으로 삼는 비정규법 시행, 거짓말과 왜곡으로 점철된 자유무역협정 추진과 생명 경시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미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동맹 강화로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평화번영정책... 이처럼 민주주의 20년의 자화상은 초라하다 못해 파국을 예고하기에 이르렀는데, 오늘 6.10항쟁 20주년 ‘국민이 꽃 피울 희망의 대한민국’은 누구의 가슴을 쓸어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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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6·10항쟁’ 성찰과 실천 (서울신문, 김명인 인하대 교수·황해문화 주간, 2007-06-08  31면)
   
6월 민주항쟁이 벌써 스무돌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4·13 호헌발언을 거쳐 6·10 대투쟁, 6·29선언, 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가 12월16일 대통령선거에서 예기치 못한 결말로 일단락된 6월 민주항쟁. 그후 20년동안 한국사회는 ‘1987년 체제’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6월 민주항쟁이 이룬 것과 남긴 것들을 축으로 하여 움직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민주화라고 부르든 분단체제의 변동이라고 부르든 한국사회가 이를 계기로 결정적인 질적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표면적 성취에 눈이 어두워 그 이면에서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군사독재의 오랜 사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도취하고 만족해 질적 변화의 본질을 올바로 꿰뚫어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었던 시민민주혁명은 우리의 오랜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세계사적 변화의 한반도적 부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높은 파고 앞에서 심각한 동요를 겪고 있다.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역대 민주정부는 한편으로는 시민민주혁명을 추진해온 ‘민주화권력’이었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권력’이기도 했다. 20년 전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주의가 단지 대통령 직선제나 하는 형식적 민주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과 연대와 사랑을 실천하는 본질적이고 전면적인 민주주의였다면 지금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승자독식의 개인주의와 경쟁주의, 야만적 시장주의의 무한한 확장과 사회적 양극화는 우리가 갈망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배반이자 모욕이 아닐 수 없다.
  
6월 민주항쟁 20년, 올해는 기념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명실상부한 국가기념일 대우를 받게 된다고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혁명기념일은 곧 혁명의 무덤이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흥청망청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어긋난 혁명의 행로를 다시 돌이키는 전면적 성찰과 실천에 다시 불을 지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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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광장, 열림과 닫힘 (프레시안, 이병천/참여사회연구소장,강원대 교수(무역학), 2007-06-10 오후 3:22:46)
[기고] 다시 '모두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올해 시민축제는 20년 전의 국민대행진, 그날 6월의 광장을 다시 복원해 낼 수 있을까? 아니, 단지 복원을 넘어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시민광장을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억압이 있는 곳이라 해서 반드시 저항과 투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세계사는 억압과 비굴한 굴종이 공생하는 곳이 허다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웃 아시아 나라들만 보더라도 정치적 민주화는 크게 지체돼 있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인내와 끈기로 살아 온 대한민국 국민은 억압과 야만의 그 슬픈 역사만큼이나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억센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가졌다는 데서 큰 자부심을 갖는다.
  
6월 항쟁은 그 투쟁의 문명력과 참여, 연대의 힘으로 민주주의 시대정신을 대중화하고, 전국민화 했다. 이 뿐만 아니라, 마침내 민주화의 시대를 열어 제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에는 구심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심력도 작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오늘의 우리에게 6월 항쟁은 대한민국 구체제에 항거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원지이자 수렴점으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 대 민주주의'의 발산점이기도 하다. 즉, '가진 자, 강한 자의 밀실에 갇힌 당신들의 엘리트 과두제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다수 민중의 참여와 복지, 사회경제적 삶의 요구를 실현하는 모두의 민주주의, 광장의 민주주의인가'를 둘러싼 투쟁의 발산지이기도 하다.
  
6월 항쟁은 민주연합의 봉우리를 높이 쌓아 올렸던 만큼이나 그 반대로 가는 내리막길 또한 대단했다. 이는 '87년 혁명'의 큰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설을 밝히고 여기서 교훈을 얻어, '모두를 위한 광장의 민주주의'라는 새 길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6월의 풍경은 20년 전 그날의 6월과 판이하게 다르다. 당시는 민주주의가 상승하는 희망의 언어였으나, 지금 민주주의는 냉소의 대상으로 추락 중이다. 많은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선진화를 내세우는 보수 세력의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의 성격도, 주체의 구성도 크게 변화됐다. "우리는 87년 이래 민주화가 가져온 공간 속에서 상당히 즐겁게 살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아주 다르다.
  
오늘날 우리는 기념하고자 하는 것은 1987년 6월 항쟁이지 결코 6.29 선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12.16 대통령 선거를 기념하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한국 사회에서 저항적 자유주의 세력의 수장으로 통했던 YS, DJ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 분열됐던 사실, 그 분열에 민주화 세력 전체가 끌려들어 갔던 사실, 이것이 6월 항쟁의 활화산에 찬물을 끼얹고 '운동으로서 민주주의'를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단절시켰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6월 항쟁이 곧 이어 일어났단 7~8월 노동자 대투쟁과 단절됐던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한다. 1987년에서 1997년에 이르는 민주화 10년이 YS의 무분별한 세계화 노선으로 인해 '외환위기'로 귀결됐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97년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아래,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로, 그리하여 절차적 민주주의 공고화와 신자유주의 보수 혁명이 중첩되었으며, 나아가 전자가 후자를 정당화하는 '외피' 역할을 수행했던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6월 항쟁을 기념하는 일이 단지 20년 전 과거 '함께 하나가 되었던 그날'을 기념하는 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다가올 새 6월'의 미래를 구상하고 이에 대한 희망을 키우는 일로 승화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절차적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함께 이를 지속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실질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는 풀뿌리 민주주의, 생활상의 민주주의, 생태 민주주의로 보다 넓고 보다 깊게 심화돼야 한다.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는 그 자랑스러운 역사적 저항의 문명화 힘을 잃지 말되, 구성과 대안의 민주주의로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운동은 제도의 한계에 대해 말한다. 제도는 운동의 한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1953년 반공보수주의 체제로까지 소급되는 보수 독과점의 한국 정당 정치에서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대안과 구성의 민주주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대안과 구성으로 가는 우리들의 민주주의의 새 길은 공공성에 대한 국민들의 근본적인 발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우리 역사와 함께 뿌리 깊은 공(公)에 대한 불신을 청산해야 한다. 모두 함께 공을 키우고 가꿈으로써 공과 사가 상생할 수 있는 활공개사(活公開私), 활사개공(活私開公)의 민주 공화국의 정신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 공공의 시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가진 자와 특권층에 대항하고 공화국의 번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공평한 '무기'를 쥐어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갈등이 공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나라로 가는 발전의 활력이 되게 해야 한다.
  
가진 자의 밀실에 갇힌 당신들의 '두 개의 대한민국'을 넘어서, 다수 민중의 참여 연대와 삶의 요구를 실현하는 모두의 민주주의, 공공의 광장의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 새로운 6월의 광장은 새로운 진보의 진보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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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02:50 2009/06/12 02:50

3 Comments (+add yours?)

  1. 최규석 2009/06/12 03:52

    같은 아쉬움때문에 책 뒤에 부록을 덧붙였습니다. 기존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불만이 조금은 해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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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길 2009/06/12 12:11

      한겨레의 서평에 부록이 있다고 해서 아마 그런 불만이었던 부분을 보완했나 보다 했습니다. <습지생태보고서>도 그렇고, <대한민국 원주민>도 그렇고, 나오는 작품들을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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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밀리오 2009/06/12 09:47

    아... 6월 10일날 100도씨 다시 봤었는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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