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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0/07
    데칼코마니인 집회 문화?(1)
    나은
  2. 2004/10/06
    [잡담] 미칠 듯이 빠른 확산 - 블로그.
    나은
  3. 2004/10/06
    노동자권력
    나은
  4. 2004/10/05
    마하, 아인슈타인 그리고 레닌
    나은
  5. 2004/10/05
    삼국지(三國誌), 후한말의 계급투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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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4/10/05
    잡다한 스크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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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4/10/05
    끙. 생산의 압박...(2)
    나은
  8. 2004/10/02
    성별 분업
    나은
  9. 2004/10/01
    책임
    나은

데칼코마니인 집회 문화?

  • 등록일
    2004/10/07 12:56
  • 수정일
    2004/10/07 12:56

* 이 글은 핀트님의 [나를 우리를 현재를 돌아보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연속되는 트랙백을 보면서 우리의 집회 문화를 되돌아 본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집회는 과연 참석한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소통하교 교류하는 공간이 되고 있는가. 현실의 집회는 과연 그러한가? 으레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민중의례와 사회자의 발언, 가끔씩 부르는 투쟁가와 대회사, 투쟁사, 연대사 그리고 투쟁결의문 낭독까지 체계적인 순서로 정형화된 형식 속에서 투쟁의 의미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

 

특히 민주노총 주최의 노동자 집회에서 이런 것들을 많이 느낀다. 집회 때는 연사들이 나와서 하는 소리 가만히 듣고 있다가 행진이라도 시작해야 좀 숨통을 트면서 우리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현실. 철저하게 짜여진, 혹은 통제된 순서 속에서 다양한 발언과 문제제기 - 특히나 전투적인 입장이나 아래로부터의 문제제기, 성폭력에 대한 지적과 시정요구들! - 들은 입막음 당하기 십상이다. 이쯤되면 확실히 뭔가 뒤바뀌었다. 사람이 '동원'되는 집회는 우리에게 필요 없지 않은가.

 

나 역시도 직접 집회를 기획해 보았고 사회를 보기도 했지만, 막상 집회 발언 배치와 사회자 발언을 통해 집회 참가 대중에게 내용을 선동하는데만 골몰했지, 참가 대중으로부터의 발언을 이끌어 내면서 후배들에게 집회라는 공간에 대해 설명했던 - 투쟁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면서 결의를 모아나가고 직접 싸우는 장 - 그 모습을 이끌어 내는 고민은 정말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유연하고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일단은 마이크를 개방해야 한다. 지정된 연사들만이 아니라 발언을 하려는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작년 시청 앞의 노동자대회 때, 미리 지정된 것이긴 했지만, 모든 노동자들의 귀를 끌어당긴 것은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언도 아니요, 민노당 대표의 발언도 아니요, 투쟁하는 현장조합원들의 발언이었다. 그리고, 가끔 집회 때 검은 옷을 입은 분들이 분필로 땅바닥에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적는 걸 보았는데 그것도 참 좋다. 아예 집회하고 행진하지 말고, 행진을 먼저 하고 정리집회를 하는 것은 어떨까? 단숨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겠지만, 이런 고민들이 우리를 관성으로부터 끄집어 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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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미칠 듯이 빠른 확산 - 블로그.

  • 등록일
    2004/10/06 21:55
  • 수정일
    2004/10/06 21:55

노동자권력

  • 등록일
    2004/10/06 12:57
  • 수정일
    2004/10/06 12:57

* 이 글은 돕헤드님의 [모골이 송연해지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현실은 힘의 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어떤 투쟁이든지, 그렇다. 더 나아가 사회 자체를 바꾸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권력투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물리적으로 탄압하는 자본가들의 국가권력에 맞서기 위해서 대안은 노동자권력일 따름이다.

 

그러나, 노동자권력의 의미를 자본가권력의 의미와 동일하게 이해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청와대의 주인이 노동자로 바뀐다고, 국회의사당의 다수를 노동자가 차지하고, 국정원장에 노동운동가 출신이 취임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자권력은 아닌 것이다.

 

시청 앞에서 열린 보수층 집회를 보면서 나 역시 전율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동원된 대중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 아니라면 지적해 주시길) 반면에, 우리의 운동은 다르다. 자발성과 해방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바탕이 된 운동만이 진정한 운동이다.

 

그래서 저들과 다르며, 달라야 한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특히나 조합주의의식과 가부장성을 넘어서 세계의 모든 억압받던 이들에게는 열려 있고, 지금까지 억압해 오던 자들에게는 날카로운, 그런 권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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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아인슈타인 그리고 레닌

  • 등록일
    2004/10/05 11:14
  • 수정일
    2004/10/05 11:14

http://blog.jinbo.net/onikawa/?pid=39

 

막상 읽고 나니 여러가지 질문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혁명을 하고자 한다면...

이라고 말을 꺼내려 했으나 막상 자신이 없어졌다.

혁명이냐? 개량이냐?를 물어 온다면 어쩌지?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동급 취급하는 것에 혹은 레닌주의가 스탈린주의의 맹아였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쓰고 싶은데 마냥 소심해지고 있다. 쩝.

 

그리고 무오류성은 나도 결코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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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誌), 후한말의 계급투쟁 (2)

  • 등록일
    2004/10/05 11:01
  • 수정일
    2004/10/05 11:01

http://blog.jinbo.net/tol/?pid=9

 

환관원인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정말 마음에 든다.

거기에도 마초적인 음모가 있었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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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스크랩들

  • 등록일
    2004/10/05 10:59
  • 수정일
    2004/10/05 10:59
되도록 직접링크. 남을 위한이 아닌, 나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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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생산의 압박...

  • 등록일
    2004/10/05 01:30
  • 수정일
    2004/10/05 01:30

처음엔 별 생각없이 블로그를 개설했다가, 매일같이 진보넷 블로그에 들어와 보면서 블로그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지가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개인적인 공간임과 더불어서 모두의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것. 그게 바로 블로그의 묘미고 매력인 것 같다. 그 때문에 특히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이들에게는 자기의 실천과 생각을 퍼뜨리는데 얼마나 용이하겠는가. 요즘은 틈만 나면 주변 동지들에게 블로그 좀 만들어 보라고 권하고 다닌다.

 

한편, 매일 자가증식 블로거진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생명력있는 블로그는 필히 자가 생산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짤막한 감정의 나열, 혹은 퍼옴과 스크랩 위주로는 좀 곤란하다는 것이지. 특히 나에게는. 내가 온라인을 활용하는 스타일 자체가 어떤 시기에는 온라인 글쓰기에 굉장히 열중하지만 어떤 때는 그저 내버려두기도 하고, 이게 반복되는 형상이다. 그리고 사실 요즘이 글쓰기에 좀 소홀한 시점인 것 같다. 그래서 웬지 모르게 밀려오는 듯한 생산의 압박... 과거에 다음 까페도 만들어 봤고, 이른바 싸이질도 해 봤지만 모두 오래 가지 못하고 버려졌다. 블로그도 은근슬쩍 그렇게 된다면 참 끔찍하다.

 

내일부턴 맘 잡고 뭔가 좀 써 봐야겠다.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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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분업

  • 등록일
    2004/10/02 00:04
  • 수정일
    2004/10/02 00:04

선봉대의 구성과 가두투쟁

대자보와 플랜카드를 포함하는 선전작업

후배 챙기기

뒷풀이 자리 분위기 조성

과일 깎기

...

 

운동권 내에서 보이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토론했다.

단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감해야 한다.

부여잡아야 한다.

진정, 해방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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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 등록일
    2004/10/01 00:40
  • 수정일
    2004/10/01 00:40

* 이 글은 후지이님의 [오늘 난 자유롭게 책임을 선택한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가끔 학교에 가 보면 지나다가 후배들을 만나곤 한다.

반갑게 인사하고.

걔 중엔 같이 학생회를 하자고 열심히도 매달렸던 이도 있고,

집회에 나가자고 무던히 붙잡았던 이도 있고,

학회에서 세미나 한 번 해 보자고 열심히 침튀겼던 이도 있고.

 

때로는 5초 안에 손 흔들고 살짝 웃으며 "안녕" 한마디로,

때로는 "잘 지내냐"라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때로는 "언제가 졸업이냐, 복학이냐, 휴학이냐, ..." 잡다한 것들을 약간 덧붙이고는 "다음에 보자"로 마무리 한다.

 

지나치면서 항상 던져보는 질문 하나.

과연 그/녀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그/녀들은 이렇게 지나친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만약 내가 변한다면

분명 그/녀들은 확인하고야 말리라. '운동'이라는 길에는 전망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한편으로, 추석 연휴 탓에 꽤 오래 만나지 못한 후배 동지들을 생각하며,

그 동지들에게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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