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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죽노동인권센터 소식지 제22호

 
     
 
홈페이지
 
 

감사합니다.

 


반년동안 부당한 해고에 맞서 투쟁해 온 한미희동지가 복직하며 지역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거대자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50대 한 여성노동자의 끈기와 지역연대의 단결된 힘의 결실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울합니다.
5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노동자대회가 죽창을 든 폭도들의 난동으로 난자당하고 있습니다. 두들겨 패서 찍소리 못하게 하겠답니다. 그러시라지요. 그러시라지요. 어디 물러날 자리라도 있으면 돌아보기라도 하겠지만 아시다시피.

두렵습니다.
사실은 소름끼치도록 두렵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도 뒤돌아 줄행랑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주춤거릴 필요 없습니다. 맞짱 떠도 잃을 것이 없습니다. 주검이 되더라도 뜨겁게 살아야지요.

                                                                              호죽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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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자료실

<호죽노동인권센터의 활동현황 5월 10일부터 5월 25일까지>

 

1. 상담 중 특기사항
① **통운 : 5인 미만을 만들기 위하여 차량 소유주를 몰래 변경하려고 함.
② **병원 : 이 병원 장례식장에는 지금 일이 없으니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다른 업장에
       파견해서 일을 하라고 함
③ **환경 : 8년간 급여 130만원, 퇴직금 10만원씩 급여명세서에 포함하여 지급하였을
       때 퇴직금 받을 수 있는지
④ *** : 노동조합과 회사가 인원감축을 합의하고 그 과정에서 명예퇴직에 응하지 않은
       3명을 정리해고한 사례
⑤ **식당 : 식당에서 2년여를 근무하였는데 도중에 직원이 4명일 때도 있었고 5명일
       때도 있었음.  이 경우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⑥ 임** (전 하이닉스하청조합원) : 퇴근 후 뇌경색 발병.주야교대근무. 민주노총 지원을
       요청하여 요양급여신청을 함께 진행하기로 함.
⑦ **교수 : 임금체불로 노동부에 진정하려고 함. 그와 별도로 한달 전에 해직되었는데
       소송하려고 함.  이 기간 중 다른 직장에서 근무를 하였을 때 해고기간 중의
       임금을 지급받을 있는지
⑧ (주)**프라자 : 직원 총20여명으로 건물관리업무를 함. 입주자대표회의가 다른 관리
       업체로 위탁을 맡기므로 이 회사 소속으로 더 근무할 수 없어 퇴직. 대다수가 퇴직
       하고 이 회사에는 극소수만 남아 일없이 있음.체불임금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⑨ **산업 사례 : **화학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 직원 수는 42명임.  축소된 부서 인원
      18명 중 7명을 정리할 예정.  노사협의회가 있으나 직원들이 뽑은 것은 아님.  
      5.15자로 해고예고.  해고 이후 찾아오면 구제신청 지원하기로 함.
⑩ **택시 : 그간 회사가 휴차일은 임금을 주었으나 무노동 무임금으로 앞으로는 못
      주겠다고 함.  이것이 법위반에 해당하는지.  참고로 5일 일하고 하루 쉼.
⑪ **씨 : **다이아몬드공구에서 퇴직한 여성으로 퇴직 전 손가락 통증이 심해 치료를
      받았으나 퇴직후 통증이 어깨로 올라와 3월에 어깨파열이 확인됨.  
      의사에게 몇가지 물어볼 것 확인시키고 다시 찾아오시도록 조치.
⑫ **사 : 사업의 거의 전부가 양도되고 일부 조합원을 제외하고 거의 전 조합원이 고용
      승계됨.  이 경우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이 당연히 승계되는지.  일부 양도라도
      노동조합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경우라면 노동조합도 존속하고 단협도 승계된다고
      보여지는데 추후 양수회사 측이 선임한 대표이사가 부인할 수 있으므로 노동부의
      해석을 미리 받기로 하고 질의서를 작성하여 드림.
⑬ **링크 : 회사가 기존에 통상임금으로 취급하던 수당을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노동부
     의 회신을 받아 통상임금에서 제외시킴. 관행적으로 유지하던 근로조건을 일방적으
     로 하락시키는 것을 부당하므로 노동부 진정을 제기하기로 함.
⑭ **씨  : 나이 70 되신 분으로 경비로 근무. 말초신경염으로 가까운 사물이 2개로 보이
     는 질환.  근무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사 소견 있으나 회사에서 해고하려고 함.  
     이 해고가 정당한 해고인지, 대응방안은?
⑮ 김** : 가족의 어려운 형편으로 농협 돈을 고객의 예치금을 담보로 하여 그 고객이
     대출받는 식으로 4천만원을 빼내어 본인이 사용함. 회사가 횡령 등 혐의로 해고함.  
     어떻게 하면 좋을지.
- 김** :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면 회사를 폐업하라고 변호사가 상담을 해 주었다며, 퇴직
     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사장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 조**  : 사장이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변경하면서 모든 직원을 퇴사처리한 후 다시
      재계약을 하며 수습기간 3월에 7개월짜리 계약을 강요하는데 계약을 해야하는지.
- **씨 : 전에는 가사 일만 하다 2년전부터 아파트 청소를 하고 있는데, 얼마전 계단청소
      를 하고 내려오다 삐끗하여 무릎관절십자인대가 파열되었는데 산재여부는.
- **씨 : 건설일용직인데 관공서 발주공사에서 일한 임금을 받지 못해 노동부를 찾았더
     니 시일이 많이 걸리고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다며 관공서를 찾아가도 될지
- 박**씨 : 교회 집사(교회 및 사택관리)로 일하다 사직했는데,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노동자로 인정되어야 한다는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 김**씨 : 경비로 7년 근무하였는데 월급은 7년동안 동일. 최저임금위반인지 상담하고
     노동부에 진정함.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받아야 할 돈을 계산해오라며 본인은 계산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며 재차 상담.

2. 상담 및 법률지원활동 현황
 ① 김** (**요양원) 부당징계구제신청 심문회의 - 기각
 ② 한** (KT) 부당해고구제신청 재심 심문회의 - 초심유지
 ③ 권**, LG화학노조(LG화학) 부당전적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접수
 ④ 김** (동원**) 부당해고구제신청 재접수 및 이유서 제출
 ⑤ 연** (**총연맹) 부당해고구제신청 재접수 및 서면 준비
 ⑥ 오** 요양행소 서면제출
 ⑦ 강** (원**) 도산인정신청 및 김** 외 4건 임금사건 지원
 
3. 노동인권활동
  ① KT공대위 경과 및 활동보고
- 중노위 심문회의에 앞선 공정판정 촉구 기자회견 (4.28)
- 중노위 심문회의 - 초심유지 판정
- 중노위 판정에 따른 보도자료(4.29)
- 한** 복직통보 (5.8)
- 한** 복직통보에 따른 공대위요구안 사측 전달 및 보도자료 송부 (5.12)
- 손해배상소송은 시기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②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준)
- 아르바이트 실태조사(전수조사) 의뢰 및 설문전달예정(5.20)
- 활동가/강사양성교육 및 역량강화를 위한 노동인권교육 (5.28 전교조 강사:조광복)
- 전교조 청주지회 준비단체 제안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③ 충북평등학부모준비모임 집행위원회
- 5.23 교육주체 결의대회에 모든 회원 참여 결정
- 회원배가 및 재정안정화를 통한 충북평학 발족을 서두른다.
- 자율형사립고 관련 대응은 서명운동에 주력하기로 하였습니다.

  ④ 노동인권교육활동
- 청주여성인력개발센터 노동법 교육
- 보은농협 전조합원 교육 : 보은농협(조합원 60여명)
- 충북대학교 교양강좌 특강 - 고용평등
- LG화학노조 간부 교육

  ⑤ 최저임금 선전전  - 월, 수, 목요일 청주고용지원센터 (13:00)

  ⑥ 홍보 및 연대활동
- 충청타임즈 상담글 기고 및 소식지 발송 (종이소식지 우편발송)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토론회 참여 - 실업운동에 대한 평가 및 제안
- 노동절 ‘실업자대회’ - 실업자 참여 저조, 선전효과
- 노동자 대회 - 5.9, 5.16 대전에서 열린 결의대회 참여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 고통입니다.
땀을 흘릴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것은
...... 죄악입니다.

사람의 죽음 역시 평등하지 못한 세상

 

 
                                                    (사회주의노동자당 충북준비모임 조장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전국적으로 추모의 물결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저는 얼마 전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 화물노동자가 기억났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노동자로 기억되길 바랬던 박종태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길 바랬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요? 지금 시국에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면 저 역시 참 인정 없고, 미운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웃을 때 저는 혼자 쓸쓸히 울어 본적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한동안 망설이다가 제 생각은 더 깊어져 오래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사람들 귀에서 점점 낯설어 가고, 기억에서 마저 멀어져 가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노동자 탄압에 항거하며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야만 했던 사람들의 주검 앞에서 '분신으로 투쟁하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일갈했던 사람이 누구였던가요. 죽은 이의 영전에 잠깐 고개 숙이고 명복을 비는 것은 고사하고, 소금과 재를 뿌렸던 그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 아니었던가요. 잡으라는 수구언론, 수구정당, 독점재벌은 못 잡고 노무현 대통령의 원칙주의적이고, 강직한 칼날은 누구를 향해 있었는가 물어보고 싶은 날입니다.

그때 당시 정말 죽을 힘 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글을 남겼더랬지요. 오늘 다시 그 글을 꺼내 읽다보니 사람의 죽음 역시 평등하지 못한 세상이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대통령께서 예전에 변호사 시절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셨던 때도 있었지요? …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나라의 노동정책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제가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합니다. 노동자들과 대화는 외면한 채 오로지 노동자 죽이기로 일관하고 있는 악질기업주들에 대해서 반드시 정부 차원의 대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길이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2003년 10월 23일 분신해 11월 17일 세상을 떠난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이 남긴 유서 '노무현 대통령께' 중에서)

"전 공부방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평등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가르쳐온 내가 이런 현실에 복종하여 참아왔습니다. 인간대접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어찌 학생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제발 저의 고민을 들어주십시오. 현실을 참고 묵묵히 학생들에게 남아있어야 합니까? 아님 우리도 인간임을 외치며 우리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말해야 합니까?"
(2003년 10월 26일 분신해 10월 31일 세상을 떠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 노동자가 노트북에 남긴 '노무현 대통령님께')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도리어 노동자의 희망을 무너뜨리는 듯해서 얼마나 그가 미웠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며 오는 2003년, 노동자가 줄줄이 분신했던 열사정국, 여의도에서 방패와 군홧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나이 드신 농민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이랜드 아줌마들의 투쟁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의 비정규직, 대량외주화는 그때부터 더 확산되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좋아해 청와대까지 갔었던 제 어린 후배를 경찰이 두들겨 팼던 한미 FTA도 생각나는군요.

오늘 저는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를 추모하는 대전 촛불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경찰들도 우리처럼 근조 리본을 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처음부터 우리를 둘러싸고 겁을 주었지요. 정말 전직 대통령까지도 죽게 하고, 우리 노동자의 삶도 무참히 깨부수는 현실의 통지권자와 더러운 명령에 따라 졸졸 따르기만 하는 권력의 하수인들이 미웠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130일이 되도록 눈물만 흘리고 있는 용삼참사까지 생각은 번져 갔고,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버린 2465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의 파업까지 제 생각은 이어졌어요. 정말 슬픈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 속에 전직 대통령의 죽음 외엔 용산참사도, 쌍용자동차도, 박종태 열사 이야기도 없지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이 예전보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더욱 비참하다는 것을요. 술 한잔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고 제발 말로만 외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비록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결국 아플 걸 알고서도 옳은 길을 가고야 마는 돈 없고, 힘없는 약한 사람들의 편에서 오늘도 저는 몸으로 부딪치려 합니다.  

가난한 자들이 꾸는 꿈은 죄가 되는 세상이지만, 고인들을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추모 드립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말씀 드리고픈 이야기는 누가 잘못되었으니 기억하지 말고, 욕하자는 말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든 노동자든 다 똑같지, 죽어서도 다른 슬픈 현실이 못마땅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인 ‘인권’의 시작이 바로 여기서 부터인지도 모릅니다.

 

월요일입니다.
고박종태열사 촛불추모제
모습입니다.

대전경찰서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말라며
전경을 쫙 깔았습니다.

실랑이가 오고가고
이윽고
전경들이 우리를
애워쌉니다.

흔들림없이
촛불추모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대한통운안에서
전경차 10여대가
줄지어 나옵니다.

우린 고작
서른명 남짓인데...

 
 
 
 
 

최선의 선택!

 


한국JCC지회 사무장 신관우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노동조합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한국JCC지회는 조합원이 78명인 노동조합이다.

노동부 진정사건은?
노조에서는 연장근무수당 미지급과 관련하여 7개월동안 사측과 협상을 벌이다 호죽노동인권센터에 문의했다. 센터에서는 임금체계를 세밀히 검토한 후 연장근무수당 뿐 아니라 각종수당 및 통상임금산정에서의 위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동안 조합원들의 받아야 할 체불임금이 상당하리라는 법률자문을 하였다.

노조는 지체하지 않고 노동부에 진정서 및 이유서를 제출하고 수차례 출석조사를 받았다. 노동부는 답을 내놓지 않고 시간만 질질 끌며 사측에게 유리한 해석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심지어 엉뚱한 판례를 들먹이며 거꾸로 된 법해석을 내놓으며 노동조합을 우롱하기까지 했다. 노동조합은 자본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노동부에게 더 이상 놀아날 수 없었다.

이에 노동조합은 즉각, 노동부의 각성을 요구하며 강력한 규탄 집회를 열고 노사지원과장과 면담하였다. 사실 말이 면담이지 결정을 내야하는 자리였고 물러설 수 없는 자리였다. 지회장은 논리적으로 쟁점을 집어가며 단호하게 노동부의 본분을 상기시켰다. 지회 간부들과 호죽센터의 조광복노무사, 충북본부대협부장, 대전충북지부 조직부장은 날카롭게 혹은 열정적으로(물컵을 날리며) 노동부를 압박했다.

결국, 지회장의 결단과 추진력, 센터의 전문적 법률자문, 한방으로 정리한 지역본부와 지부의 삼박자 공격에 사측과 노동부는 항복했다. 통상임금산정시간, 법정수당,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수당, 소급분 지급방법 등에 합의하였고 이달 급여일에 소급분의 50%를 우선 지급키로 하였다.

이 싸움의 의미는?
당연한 권리인데 뭘 그리 호들갑인가?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당연한 권리를 찾으려고 그동안 지회장(이하 간부들) 뿐 아니라 지부, 지역본부, 호죽센터가 총동원되어야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무엇보다 집행부를 믿고 기다려 준 조합원들의 신뢰가 가장 큰 힘이 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지역의 연대와 지회장의 결단과 추진력, 그리고 조합원의 신뢰가 하나로 어우러진 결과이다. 이 투쟁은 노동조합이 단결과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지역연대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시시때때로 우롱당하고, 착취당하고, 무시당하는 이 땅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 있겠는가! 단결투쟁을 염원하며 한 노동자가 생명을 잃었다. 이 땅의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전략과 전술은 단결투쟁 뿐이다. 노동조합의 단결투쟁만이 이 땅의 노동자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 애면글면 법률자문을 아끼지 않으신 호죽노동인권센터와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금속노조대전충청지부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차 빼라.
마이크 사용금지.
시끄럽다.

어쩌라고?

월요일 대전 대한통운 앞

 

법과 제도 그러나 직관 - 느낌 - 상상 그리고 박종태

 

 
                                                          호죽노동인권센터 공인노무사 조광복


하나. 법과 제도 그러나 직관느낌상상

내가 하는 일 중 하나가 노동법을 다루는 일이다. 그런데 때때로 이 일이 너무 싫을 때가 있다. 사람의 인성이 성장을 하는 데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관·느낌·상상 이런 것이 큰 몫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논리는 그 다음의 문제다. 논리는 직관이나 느낌이나 상상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데 혹은 잘못 된 직관을 나중에 수정하는데 그 역할이 있는 것이지 결코 직관·느낌·상상 이런 것을 대신하거나 앞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과 제도는 사람의 직관·느낌·상상이 작동하기도 전에 이미 답을 제시하고 그 속에서 오로지 그 법과 제도가 수용할 논리를 내놓을 것을 강제한다. 내가 싫은 것이 바로 이 것이다. 사람의 직관과 느낌과 상상을 주눅 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 법과 제도에 의해서 지금 수많은 사람이 내몰리고 있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적법하게 계약 해지되고,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적법하게 노동조합 조합원임을 부정당하거나 또 계약 해지되고, 파견노동자들은 사용사업주로부터 적법하게 직접 고용되지 못하고 그 밖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용역, 도급, 위탁이라 해서 또 적법하게 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한다. 모두가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직관과 느낌과 상상이 작동하기도 전에.

인간스럽지 못 한 이 법과 제도 속에서 우리가 내놓을 논리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피눈물을 쏟거나 죽거나 극렬하게 저항하는 것 빼고는. 그런데 이놈의 법과 제도는 그 저항을 또 법과 제도의 이름을 앞세워 불법으로 내몰고 감옥으로 내몬다.

그러나 천만 다행스럽게도 이 완고한 법과 제도가 사람이 노동 속에서 일군 뜨거운 직관과 느낌과 상상을 이기지 못 했다. 나라님의 법으로 효수되었던 전봉준은 하다못해 박정희도 기념비를 세우는 장군이 되었다. 테러범이고 범법자이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 유공자가 되었다. 총을 탈취하였던 광주의 “폭도”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유공자가 되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사형되고 투옥되었던 수많은 민중과 학생들이 역시 민주화운동의 유공자가 되었다. 모두가 당시의 법과 제도를 가지고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들이다.


둘. 그리고 박종태

그러니 우리는 한 시대를 앞서 헌신하였던 선배들 덕에 적어도 이 정도의 직관과 느낌과 상상은 가지게 되었다. 지금 시대를 헌신하였던 많은 열사들이 나중에는 "열사"이자 동시에 "유공자"의 칭호를 갖게 되리라는.

박종태 열사여!
당신이야말로 이 인간스럽지 않은 탐욕의 시절을 끝내는 데에 목숨을 헌납한 "유공자"입니다. 그것이 법과 제도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로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직관과 느낌과 상상입니다. 누구도 막지 못 해서 눈앞에 다가올.


 

대전집회에 함께 갔던
노동자 한 분께
글을 부탁드렸는데
써놓으시곤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안보내주셔서...

모르지 않습니다.
글이라는 것이
사람을 주눅들게
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센터 홈피에 실린 글을
대신 올립니다....


 

삼성전기 성희롱과 관련한 노동부의 불기소의견에 대하여

 

 
이 글은 피해자 이은희씨 지인의 요청으로 작성한 호죽노동인권센터 논평입니다.                                                  

삼성전기에 근무 중인 이은의씨(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였으므로 그 의사를 존중하여 여기서도 실명을 그대로 쓴다)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아래에서는 남녀고용평등법이라 부르겠다) 위반 고소사건에 대하여 노동부는 7개월을 끈 끝에 결국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일이 있다. 뒤늦었지만 그것을 지적하려고 한다.

고소사건의 내용은 회사가 같은 법 제14조의 “②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의 규정을 위반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을 위반하였을 경우 사업주는 같은 법 제37조(벌칙)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은의씨와 관련한 경위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이씨는 1998년 삼성전기에 입사하였다. 직장생활은 아무 문제없이 평탄하였다. 그러나 2003년 영업팀으로 발령받은 후부터 그 부서 팀장에게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받아 왔다고 이씨는 주장하였으며 실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성희롱 사실을 인정받았다. 이씨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회사에 신고한 때는 2005년 6월이다.

그런데 회사는 이씨가 소속된 부서가 폐지된 2005년 7월부터 같은 소속의 다른 직원들은 모두 새로운 부서를 배치하여 업무를 부여했으나 이씨에게만 업무를 주지 않고 사무실에 그냥 앉아 있도록 하였는데 그 기간이 무려 2006년 1월까지 7개월이었다. 2006년 1월 IR부서로 배치받았으나 업무를 주지 않고 회의에서 배제하는 등의 불리한 대우가 계속되었다. 인사고과점수가 과거에는 B를 주로 받았으나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C마이너스’라는 아주 낮은 점수를 계속 받았다. 2007년 초에는 과장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2007년 4월 사회봉사단이라는 부서로 발령받았는데 이 업무는 업무내용이나 경력관리의 측면에서 볼 때 한직 중의 한직으로 취급받았다.

이씨는 2007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회사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하였고 같은 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사실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회사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 결정한 바 있다. 한편 이씨는 2008년 9월 회사를 상대방으로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위반으로 고소하였는데 노동부는 2009년 3월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이상이 사건의 경위다. 노동부가 내세운 불기소의견 사유는 2005.7.1 대기발령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는 공소시효(2005.7.부터 3년)가 만료되어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후 IR부서에서의 업무 미부여 및 사회봉사단 발령에 대한 혐의에 대해 범죄혐의를 확인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은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이 노동자의 무엇을 보호하려고 하는지 즉, 보호법익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매우 경솔한 판단이다.

먼저 노동부는 이은의씨가 소속된 부서가 폐지된 후 새로운 부서로 배치하여 업무를 주지 않은 행위를 “대기발령 처분”이라는 하나의 인사처분 행위로 보아 2005.7.1자를 공소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은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로 형사소송법은 공소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시효는 범죄행위의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제252조 시효의 기산점) 계속범의 경우 범죄가 기수(범죄의 구성요건이 완전히 성립되어 실현됨을 말한다)가 된 이후에도 그 법익의 침해 내재 위태화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범죄행위가 종료하지 않고 계속되는 범죄로서 감금죄, 약취·유인죄, 주거침입죄 등이 대표적이며 이때의 공소시효는 그 범죄행위가 종료된 때이다. 즉시범은 일정한 법익의 침해 내지 위태화가 발생함으로써 범죄가 완성되고 범죄행위도 종료하는 범죄를 말한다. 절도죄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2005.7.1부터 2006.1월까지 계속된 업무미부여(혹은 대기) 상태에 관해서 시효의 기산점을 새로운 업무를 주지 않은 시발점인 2005.7.1자로 볼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부서로 배치되기 직전인 2006.1월로 볼 것이냐의 문제이다.

참고로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는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사용자의 정당한 이유 없는 인사상의 불이익처분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취지이다. 그런데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는 “②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의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불리한 조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근로기준법 제23조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고 “불리한 조치”라고 썼을까?

그것은 해고 등 인사상의 불이익한 처분행위뿐만 아니라 사용자라는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풀뽑기와 같은 허드렛일을 시킨다든지, 업무상의 필요성을 현저히 넘어 서서 장기간 동안 일을 시키지 않는다든지 하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불리한 조치가 행하여질 수 있고 이러한 모든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성희롱 피해를 입었거나 그 사실을 주장하는 노동자를 보다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다. 따라서 금지되는 불리한 조치의 범주가 단지 해고, 정직, 그 밖의 인사명령과 같은 처분행위에 국한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따라서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에 의하여 보호받아야 할 법익은 근로기준법의 부당한 인사처분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는 차원이 다른 즉, 성희롱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 사실을 주장한 것으로 모든 불리한 조치를 받지 않을 권리이고 그 법익을 계속하여 침해하였다면 계속범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부서를 폐지한 후 다른 직원과는 달리 유독 이은의씨에 대하여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지 않은 사실과 거기에 더하여 누가 보아도 업무상의 필요성을 현저히 넘어선 7개월 가까운 장기간 동안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지 않은 사실이다. 7개월의 기간은 매우 비정상적인 것이고 이 기간 동안 당사자는 아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 사용자로서는 성희롱 피해를 입었음을 주장하는 이은의씨를 다른 직원들보다 더 적절한 업무를 부여할 목적으로 잠정적인 시간 여유를 가지기 위해 업무대기를 하도록 조치하였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한 합리적인 목적을 충분히 이은의씨에게 설명을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기를 시키는 합리적인 목적 범위를 훨씬 도과하는 7개월 동안을 일을 주지 않고 방치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점이 해고, 정직, 감봉 혹은 회사규정에 의해 시행되는 대기발령 처분 등의 인사처분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사내규정이나 혹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합리적인 목적 범위를 초과하는 대기상태를 계속하여 유지함으로써 성희롱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이은의씨로서는 근로기준법이 아닌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하여 보호받아야 법익을 계속적으로 침해받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의 취지에서 본다면 사용자인 삼성전기는 일반적인 ‘대기발령’이라는 일회의 인사처분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합리적인 목적 범위를 초과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업무를 주지 않고 대기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의 “불리한 조치”를 계속한 것이 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삼성전기는 즉시범이 아니고 계속하여 법익을 침해한 계속범이 될 수 있고 또 이렇게 보아야 굳이 “불리한 조치”라는 특별한 문구를 마련해둔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노동부가 이러한 사실관계 그리고 법 규정의 문구와 취지를 무시하고 장기간 동안 계속되었던 행위를 일회의 인사처분 행위로 취급하여 공소시효의 기산점을 2005년 7월1일로 삼은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아주 경솔하고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보호받아야 할 법익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노동부가 혐의를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다른 사실들 역시 공소시효의 문제와는 다르지만 법 취지의 관점에서 동일하다. 새로운 부서 배치 후의 업무미부여, 이후의 사회봉사단 발령을 각각 분리하여 놓고 그저 기계적으로 판단한다면 당연히 성희롱 피해사실을 고지한 시점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증거 없음”의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남녀고용평등법의 관련 조항이 성희롱 피해를 입었거나 그 주장을 하는 노동자가 그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사용자의 불리한 조치로부터 보호하는데 그 취지가 있으므로 사용자가 행한 일련의 행위들을 각각 별도의 처분으로 구분하여 판단하거나 또는 행위 시점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성희롱 사실을 고지한 최초의 시점부터 일련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은의씨는 먼 훗날 느닷없이 사용자로부터 불리한 조치를 받은 것이 아니라 장기간 동안 새로운 업무를 주지 않는 대기상태, 새 부서 배치 후에도 업무를 주지 않는 등의 특별한 취급, 지속적인 하위 인사고과, 승진누락, 한직으로 보직 전환 따위의 일련의 불리한 조치들을 거의 쉬지 않고 받아왔다. 이러한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각각의 행위들을 분리하여 기계적으로 판단한다면 남녀고용평등법이 마련한 관련 조항의 취지는 현실 노동관계에서 도저히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이씨가 최초로 성희롱 피해를 회사에 알린 시점부터 그 전과 다른 일련의 불리한 조치들을 오랜 기간 동안 쉬지 않고 받아 왔다면 설령 시점이 떨어져 있더라도 최초로 성희롱 피해를 알린 것과 관련이 있는 행위로 추정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사용자측이 불리한 조치를 한 것이 정당한 행위이었음을 입증하지 못 하였다면 응당 성희롱 피해를 알린 것과 관련이 있는 불리한 조치이었다고 간주해야 마땅하다.

 

조광복노무사 블러그
http://blog.jinbo.net/hojug/
많이 방문해 주세요.

 

궁금한소식 전합니다.

 

* 고 박종태열사정신계승 투쟁 결의대회
- 2009.5.23 상당공원
- 선전물을 읽는 시민들의 모습이 진지했습니다.

* 우진교통 차고지 및 생존권사수를 위한 천막농성 및 결의대회
- 매일 108배를 올리며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 말장난으로 얼렁뚱땅 모면하려는 주택공사는 각성하라.

* 교육주체결의대회
- 지난토요일 서울에서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함께하는 결의대회가 있었습니다.
- 충북에서도 전교조, 평학회원 등 많은 분이 함께 하셨습니다.

* 청주교대 학생들과 짧은 인터뷰
- 일제고사와 공교육에 대한 짧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 일제고사의 형식이 보완되어도 반대하겠냐는 질문입니다. 완전폐기만이 보완입니다.

* 평등학부모회에서 자율형사립고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관련 교육이나 자료가 필요하시면 전교조나 평학으로 연락바랍니다.
- 서명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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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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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울은 덕에

  

                                                                          2년을 울은 덕에

 

사람을 잘 따라 발밑의 그늘 같기만 했다  발발이였는데 이름을 다롱이라고 했다  눈이 초롱하고 영특해서 붙여주었다 한다  세상을 나와 두어 달 만에 상경한 어린 것을 어머니가 두어 평 남짓한 마당에 묶어 놓았는데 혼자서 매일 밤을 울었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이 제 옆을 지날 때면 목줄이 끊어져라 뛰어올랐다  수컷을 들여다 놓아도 새끼는 통 들이지 못하던 것이 2년을 울고서는 처가댁으로 옮겨가서 포도밭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울음이 뚝 그친 것이다  그리도 장하고 대견했을까 포도밭이 제 몫인 것을 확인하느라 뒹굴고 등을 비벼댔다  무슨 조환지 해마다 새끼를 들이고선 제 새끼가 시들시들 앓다 죽자 마당에 떨어진 살구꽃처럼 납작 엎드리기도 했다  8년을 목줄 없이 나이를 먹어 갔다  이빨이 숭숭 빠지고 꼭 사람마냥 눈꼽을 달기 시작하더니 처가 할머니 생전처럼 마당 한 쪽을 없는 듯 차지하고 있더니 늦가을 일주일을 통 보이지 않았단다  하루는 장인어른이 포도밭에 나가 그 녀석을 보셨는데 땅을 파고 낙엽을 깔고 그 속에 제 몸을 쏙 뉘여 잠이 들었다고 한다  개는 죽을 때면 저의 뉠 자리를 만든다고 하셨다  2년을 울은 덕에 다롱이는 죽어서도 포도밭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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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 사업주가 변경되었더라도 실질적인 사업주는 애초에 고용한 회사가 될 수 있어

 

☞ 질문


관광버스 회사 운전기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기가 막힌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버스기사가 12명 정도 되지요.  회사에 채용되어 월급을 받고 몇 년 씩 일을 했는데 10개월쯤 전에 회사가 가지고 있는 버스의 소유자를 변경했더라구요.  전혀 몰랐지요.  차량을 모두 사장의 부인과 처남, 처제 그리고 동생 앞으로 돌려놓았지요.  부인 빼고는 얼굴들도 모르는 관계지요.


직원들 소속도 변경된 차주 쪽으로 옮겨버렸지요.  까맣게 몰랐던 것이 통장으로 월급을 입금할 때는 여전히 회사 명의로 찍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일도 예전대로 회사 관리자가 배차를 주는 대로 해왔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지요.  심지어 차주 한 명이 소유한 차량만 운전한 게 아니고 이 차주, 저 차주 가릴 것 없이 회사 지시에 따라 아무 차량이나 모두 운전을 하였습니다.


뒤늦게서야 퇴직한 직원이 퇴직금 관계로 노동부에 진정을 하고서 우리에게 알려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월급 통장을 보니 통장 입금자 명의도 이제는 변경된 차주로 찍혀 있더군요.  아마 퇴직금을 안 주려는 심보로 그런 것 같은데 이런 황당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요?


☞ 답변


이런 얌체 같은 일이 종종 있습니다.  실제의 사업주가 노동법의 적용을 회피하려는 생각이지요.  현행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됩니다.  그러니 인원을 분산시켜 놓으면 법정수당, 연월차휴가, 퇴직금 이런 것을 전부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와 같이 사업주가 자신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소속을 다른 사람 앞으로 돌려놓았으나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고 모든 노동관계의 권한을 과거와 다름없이 행사하여 왔다면 변경된 소속은 명목에 불과하고 여전히 노동법이 적용되는 실질적인 사업주는 애초에 고용하였던 사업주입니다.


님들의 경우 애초 고용한 사업주가 법을 피할 목적으로 차량 소유주의 명의를 변경해 놓고 해당 노동자들의 적을 옮기면서 그 사실을 숨긴 점, 여전히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여 왔던 점, 업무지시권한과 배차권한의 전부를 회사가 행사한 점, 노동자들은 차주의 얼굴도 알지 못 하였던 점, 노동자들은 차주 한 명의 차량만 운전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지시대로 여러 차량을 운전하였던 점들을 종합하면 님들의 소속 적은 차주에게 형식적으로 편제된 것일 뿐 여전히 애초의 고용주인 회사가 님들의 실질적인 사업주의 지위를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


법적으로는 회사를 상대로 사업주지위확인소송 혹은 부당전적구제신청이나 전적무효확인소송 등을 통해 다시 노동자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다만 추후 회사가 진정한 의사를 갖고서 아예 사업을 분리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이때는 법적으로만 대응하기는 어렵고 노동조합 설립 등 특단의 대책을 준비하셔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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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제도 그러나 직관.느낌.상상 그리고 박종태

 

법과 제도 그러나 직관.느낌.상상 그리고 박종태



하나.  법과 제도 그러나 직관.느낌.상상


내가 하는 일 중 하나가 노동법을 다루는 일이다.  그런데 때때로 이 일이 너무 싫을 때가 있다.  사람의 인성이 성장을 하는 데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관·느낌·상상 이런 것이 큰 몫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논리는 그 다음의 문제다.  논리는 직관이나 느낌이나 상상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데 혹은 잘못 된 직관을 나중에 수정하는데 그 역할이 있는 것이지 결코 직관·느낌·상상 이런 것을 대신하거나 앞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과 제도는 사람의 직관·느낌·상상이 작동하기도 전에 이미 답을 제시하고 그 속에서 오로지 그 법과 제도가 수용할 논리를 내놓을 것을 강제한다.  내가 싫은 것이 바로 이 것이다.  사람의 직관과 느낌과 상상을 주눅 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 법과 제도에 의해서 지금 수많은 사람이 내몰리고 있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적법하게 계약 해지되고,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적법하게 노동조합 조합원임을 부정당하거나 또 계약 해지되고, 파견노동자들은 사용사업주로부터 적법하게 직접 고용되지 못하고 그 밖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용역, 도급, 위탁이라 해서 또 적법하게 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한다.  모두가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직관과 느낌과 상상이 작동하기도 전에.


인간스럽지 못 한 이 법과 제도 속에서 우리가 내놓을 논리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피눈물을 쏟거나 죽거나 극렬하게 저항하는 것 빼고는.  그런데 이놈의 법과 제도는 그 저항을 또 법과 제도의 이름을 앞세워 불법으로 내몰고 감옥으로 내몬다. 


그러나 천만 다행스럽게도 이 완고한 법과 제도가 사람이 노동 속에서 일군 뜨거운 직관과 느낌과 상상을 이기지 못 했다.  나라님의 법으로 효수되었던 전봉준은 하다못해 박정희도 기념비를 세우는 장군이 되었다.  테러범이고 범법자이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 유공자가 되었다.  총을 탈취하였던 광주의 “폭도”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유공자가 되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사형되고 투옥되었던 수많은 민중과 학생들이 역시 민주화운동의 유공자가 되었다.  모두가 당시의 법과 제도를 가지고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들이다.


둘.  그리고 박종태


그러니 우리는 한 시대를 앞서 헌신하였던 선배들 덕에 적어도 이 정도의 직관과 느낌과 상상은 가지게 되었다.  지금 시대를 헌신하였던 많은 열사들이 나중에는 "열사"이자 동시에 "유공자"의 칭호를 갖게 되리라는.


박종태 열사여!

당신이야말로 이 인간스럽지 않은 탐욕의 시절을 끝내는 데에 목숨을 헌납한 "유공자"입니다.  그것이 법과 제도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로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직관과 느낌과 상상입니다.  누구도 막지 못 해서 눈앞에 다가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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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성희롱과 관련한 노동부의 불기소의견에 대하여

 (참고)

삼성전기 성희롱 사건이 있습니다.  피해노동자의 결단과 노력으로 인터넷에서도 많은 관심들이 있었습니다.  아래 글은 아는 분이 노동부의 불기소의견에 대한 칼럼을 하나 부탁하시길래 작성한 것입니다.

 

 

삼성전기 성희롱과 관련한 노동부의 불기소의견에 대하여

 

 

삼성전기에 근무 중인 이은의씨(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였으므로 그 의사를 존중하여 여기서도 실명을 그대로 쓴다)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아래에서는 남녀고용평등법이라 부르겠다) 위반 고소사건에 대하여 노동부는 7개월을 끈 끝에 결국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일이 있다.  뒤늦었지만 그것을 지적하려고 한다.


고소사건의 내용은 회사가 같은 법 제14조의 “②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의 규정을 위반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을 위반하였을 경우 사업주는 같은 법 제37조(벌칙)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은의씨와 관련한 경위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이씨는 1998년 삼성전기에 입사하였다.  직장생활은 아무 문제없이 평탄하였다.  그러나 2003년 영업팀으로 발령받은 후부터 그 부서 팀장에게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받아 왔다고 이씨는 주장하였으며 실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성희롱 사실을 인정받았다.  이씨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회사에 신고한 때는 2005년 6월이다. 


그런데 회사는 이씨가 소속된 부서가 폐지된 2005년 7월부터 같은 소속의 다른 직원들은 모두 새로운 부서를 배치하여 업무를 부여했으나 이씨에게만 업무를 주지 않고 사무실에 그냥 앉아 있도록 하였는데 그 기간이 무려 2006년 1월까지 7개월이었다.  2006년 1월 IR부서로 배치받았으나 업무를 주지 않고 회의에서 배제하는 등의 불리한 대우가 계속되었다.  인사고과점수가 과거에는 B를 주로 받았으나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C마이너스’라는 아주 낮은 점수를 계속 받았다.  2007년 초에는 과장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2007년 4월 사회봉사단이라는 부서로 발령받았는데 이 업무는 업무내용이나 경력관리의 측면에서 볼 때 한직 중의 한직으로 취급받았다.


이씨는 2007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회사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하였고 같은 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사실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회사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 결정한 바 있다.  한편 이씨는 2008년 9월 회사를 상대방으로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위반으로 고소하였는데 노동부는 2009년 3월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이상이 사건의 경위다.  노동부가 내세운 불기소의견 사유는 2005.7.1 대기발령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는 공소시효(2005.7.부터 3년)가 만료되어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후 IR부서에서의 업무 미부여 및 사회봉사단 발령에 대한 혐의에 대해 범죄혐의를 확인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은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이 노동자의 무엇을 보호하려고 하는지 즉, 보호법익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매우 경솔한 판단이다.


먼저 노동부는 이은의씨가 소속된 부서가 폐지된 후 새로운 부서로 배치하여 업무를 주지 않은 행위를 “대기발령 처분”이라는 하나의 인사처분 행위로 보아 2005.7.1자를 공소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은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로 형사소송법은 공소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시효는 범죄행위의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제252조 시효의 기산점)  계속범의 경우 범죄가 기수(범죄의 구성요건이 완전히 성립되어 실현됨을 말한다)가 된 이후에도 그 법익의 침해 내재 위태화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범죄행위가 종료하지 않고 계속되는 범죄로서 감금죄, 약취·유인죄, 주거침입죄 등이 대표적이며 이때의 공소시효는 그 범죄행위가 종료된 때이다.  즉시범은 일정한 법익의 침해 내지 위태화가 발생함으로써 범죄가 완성되고 범죄행위도 종료하는 범죄를 말한다.  절도죄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2005.7.1부터 2006.1월까지 계속된 업무미부여(혹은 대기) 상태에 관해서 시효의 기산점을 새로운 업무를 주지 않은 시발점인 2005.7.1자로 볼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부서로 배치되기 직전인 2006.1월로 볼 것이냐의 문제이다.


참고로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는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사용자의 정당한 이유 없는 인사상의 불이익처분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취지이다.  그런데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는 “②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불리한 조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근로기준법 제23조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고 “불리한 조치”라고 썼을까?


그것은 해고 등 인사상의 불이익한 처분행위뿐만 아니라 사용자라는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풀뽑기와 같은 허드렛일을 시킨다든지, 업무상의 필요성을 현저히 넘어 서서 장기간 동안 일을 시키지 않는다든지 하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불리한 조치가 행하여질 수 있고 이러한 모든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성희롱 피해를 입었거나 그 사실을 주장하는 노동자를 보다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다.  따라서 금지되는 불리한 조치의 범주가 단지 해고, 정직, 그 밖의 인사명령과 같은 처분행위에 국한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따라서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에 의하여 보호받아야 할 법익은 근로기준법의 부당한 인사처분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는 차원이 다른 즉, 성희롱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 사실을 주장한 것으로 모든 불리한 조치를 받지 않을 권리이고 그 법익을 계속하여 침해하였다면 계속범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부서를 폐지한 후 다른 직원과는 달리 유독 이은의씨에 대하여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지 않은 사실과 거기에 더하여 누가 보아도 업무상의 필요성을 현저히 넘어선 7개월 가까운 장기간 동안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지 않은 사실이다.  7개월의 기간은 매우 비정상적인 것이고 이 기간 동안 당사자는 아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 사용자로서는 성희롱 피해를 입었음을 주장하는 이은의씨를 다른 직원들보다 더 적절한 업무를 부여할 목적으로 잠정적인 시간 여유를 가지기 위해 업무대기를 하도록 조치하였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한 합리적인 목적을 충분히 이은의씨에게 설명을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기를 시키는 합리적인 목적 범위를 훨씬 도과하는 7개월 동안을 일을 주지 않고 방치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점이 해고, 정직, 감봉 혹은 회사규정에 의해 시행되는 대기발령 처분 등의 인사처분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사내규정이나 혹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합리적인 목적 범위를 초과하는 대기상태를 계속하여 유지함으로써 성희롱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이은의씨로서는 근로기준법이 아닌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하여 보호받아야 할 법익을 계속적으로 침해받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의 취지에서 본다면 사용자인 삼성전기는 일반적인 ‘대기발령’이라는 일회의 인사처분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합리적인 목적 범위를 초과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업무를 주지 않고 대기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의 “불리한 조치”를 계속한 것이 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삼성전기는 즉시범이 아니고 계속하여 법익을 침해한 계속범이 될 수 있고 또 이렇게 보아야 굳이 “불리한 조치”라는 특별한 문구를 마련해둔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노동부가 이러한 사실관계 그리고 법 규정의 문구와 취지를 무시하고 장기간 동안 계속되었던 행위를 일회의 인사처분 행위로 취급하여 공소시효의 기산점을 2005년 7월1일로 삼은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아주 경솔하고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보호받아야 할 법익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노동부가 혐의를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다른 사실들 역시 공소시효의 문제와는 다르지만 법 취지의 관점에서 동일하다.  새로운 부서 배치 후의 업무미부여, 이후의 사회봉사단 발령을 각각 분리하여 놓고 그저 기계적으로 판단한다면 당연히 성희롱 피해사실을 고지한 시점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증거 없음”의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남녀고용평등법의 관련 조항이 성희롱 피해를 입었거나 그 주장을 하는 노동자가 그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사용자의 불리한 조치로부터 보호하는데 그 취지가 있으므로 사용자가 행한 일련의 행위들을 각각 별도의 처분으로 구분하여 판단하거나 또는 행위 시점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성희롱 사실을 고지한 최초의 시점부터 일련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은의씨는 먼 훗날 느닷없이 사용자로부터 불리한 조치를 받은 것이 아니라 장기간 동안 새로운 업무를 주지 않는 대기상태, 새 부서 배치 후에도 업무를 주지 않는 등의 특별한 취급, 지속적인 하위 인사고과, 승진누락, 한직으로 보직 전환 따위의 일련의 불리한 조치들을 거의 쉬지 않고 받아왔다.  이러한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각각의 행위들을 분리하여 기계적으로 판단한다면 남녀고용평등법이 마련한 관련 조항의 취지는 현실 노동관계에서 도저히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이씨가 최초로 성희롱 피해를 회사에 알린 시점부터 그 전과 다른 일련의 불리한 조치들을 오랜 기간 동안 쉬지 않고 받아 왔다면 설령 시점이 떨어져 있더라도 최초로 성희롱 피해를 알린 것과 관련이 있는 행위로 추정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사용자측이 불리한 조치를 한 것이 정당한 행위이었음을 입증하지 못 하였다면 응당 성희롱 피해를 알린 것과 관련이 있는 불리한 조치이었다고 간주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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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죽노동인권센터 소식지 21호

홈페이지
 
 

노동절 열심히 투쟁하셨지요?

 


이번 노동절에 실업자대회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센터를 찾았던 분들과 함께 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하루 전에 좀 급하게 연락을 했습니다. 이주노동자들도, 이**아저씨도, 김**아저씨도 함께 하자고 전화합니다. 바쁘고, 놀아야하고, 여행할거라고 합니다. 그래도 몇 분이라도 연락이 되어 오신다고 합니다. 기분 좋습니다. “호죽 깃발로 오세요. 못 찾으면 전화하세요. 제 연락처는 ***입니다.” 호들갑스러운 전 가벼운 사람입니다.

당일, 두 분 오셨고, 한 분은 어색한 미소로 급한 약속이 있다고 합니다. 전 가벼운 사람입니다. 급실망 합니다. 노동절에 실업자대회 현수막을 들고 우리끼리 어정쩡하게 행진합니다. 꼼꼼하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했습니다. 반성하면서 교훈으로 정직하게 남기겠습니다.

                                                                              호죽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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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죽노동인권센터의 활동현황 4월 24일부터 5월 09일까지>

 

호죽노동인권센터 활동보고

1. 상담 중 특기사항
① KT 한** 부당해고재심 심문회의가 있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를 인정한 초심을 유지한다는 판정을 하였습니다. 한**노동자가 눈물로 읽어낸 최후 진술은 자신의 30여년의 삶이었던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② **요양원 김** 부당징계구제신청 심문회의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기각되었고, 재심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③ 동원F&B 김** 부당해고구제신청 다시 접수했습니다. 동원F&B노조는 김**노동자의 부당해고철회를 위해 매일 중식집회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④ **교회에서 시설관리 등 온갖 일들을 도맡아하던 노동자가 **교회의 압력으로 퇴직하였는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하는 상담이 있었습니다.
⑤ **모직에서 시설관리로 일하다 뇌경색 발병. 산재가능한지  
⑥ 회사가 화의개시결정을 받았는데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화의개시결정은 법정 도산으로 인정됨으로 퇴직하고 체당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⑦ **기업 내 협력사에 근무하던 중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예고통지를 받았는데 구제방법이 있는지 하는 상담이 있었습니다.

2. 상담 및 법률지원활동 현황
 ① KT 한** 부당해고구제신청 재심 심문회의 - 초심유지
 ② 연** 부당해고구제신청 이유서 준비 - 취하 - 재접수 예정
 ③ 동원F&B 김** 부당해고구제신청 접수 및 이유서 준비
 ④ 김** (**요양원)부당징계구제신청 심문회의 - 기각, 재심신청 예정
 ⑤ 원** 임금체불 및 도산인정신청
 ⑥ LG화학노동조합 ** 부당전적구제신청 접수 및 이유서 준비
 ⑦ 캄코노조 조합원

3. 노동인권활동
 ① KT공대위 - 공정한 판정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및 심문회의 참관, 민사소송 준비
 ② 최저임금 선전전 및 실업자대회
 ③ 청주여성인력개발센터 노동법 교육, 충북대학교 특강(고용평등)
 ④ 보은농협노조 교육, LG화학노조 간부 교육
 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토론회 참여 - 경제위기 시 정부의 실업ㆍ복지정책에 대한 검토와 우리의 대안과 요구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 고통입니다.
땀을 흘릴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것은
...... 죄악입니다.

  나보다 나은 이놈들을 어찌 함부로 밟고 갈 수 있으랴

 

 
                                                     호죽노동인권센터 공인노무사 조광복

아직은 좀 이르지만 봄이 한창을 지날 때면 온 밤을 개구리들의 울음이 몸을 섞는다.  산란기다.  그러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이 논에서 저 논으로 아스팔트길을 가로질러 팔짝 팔짝 건너간다.  끊어지지 않는 행렬이 팔짝거린다.  시골 지방도로에서는 해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내 사는 곳이 시골이어서 매일 아침 출근길에도 또 퇴근길에도 그 길을 지나갔다.  가장 난감할 때가 비오는 날 많은 개구리들이 제 짝을 찾아서 아스팔트 도로를 총 총 총 넘어갈 때다.  저네들도 하나 뿐인 생명인데 함부로 뭉개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조심한다고 살피면서 차를 몰지만 아마도 꽤 많은 애꿎은 목숨들이 아스팔트 길 위에 부려졌을 것이다.

출퇴근길이 나에게는 직장과 집을 오가는 말하자면 “소통”의 과정이다.  나에게는 일상의 "소통"인데 개구리들에겐 생명을 다치게 하는 "단절"인 것을 그 때 알았다.  우리에겐 소통인 것이 더 약한 이들이 틀림없을 다른 누군가에겐 단절과 고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개구리들이 저의 생명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얼마 전에 여성 노동자가 상담을 왔다.  제법 큰 회사 내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인데 회사 가동률이 떨어지자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우선 내보내고 거기에 정규직들을 전환배치한다는 것이었다.  그 얼마 전엔 정규직인 공무원 한 명의 자리를 보전해 줄 요량으로 운전 일을 하는 계약직 노동자를 계약기간도 안 되어 해고한 경우도 있었다.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 중에는 아직도 "인원을 감축할 필요가 있을 때는 계약직, 일용직, 협력업체 소속 직원을 먼저 정리한다."는 규정이 제법 살아 있다.  설령 이런 규정이 없더라도 인원을 감축할 때는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정리하고 노조는 그 것을 못 본 채 하는 것이 거의 정해진 수순이다.  어려운 말로 정규직 노동조합과 회사 사이의 "묵시적 합의"요, 좀 더 고상한 표현을 빌자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혹은 남모를 협약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규직 노동조합과 회사가 벌이는 소통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단절이요, 큰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소통", 좋은 말이다.  요즘 부쩍 많이들 쓰는 말이다.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들여다 볼 것이 있다.  나와 우리에겐 소통인 것이 더 여린 생명이고 더 약자임이 틀림없을 수많은 풀과, 꽃과 나무와 개구리와 도롱뇽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와 장애인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소통은 모든 생명과 약자를 보듬어 안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하고도 근본에 대한 질문을 개구리들이 나에게 해 주었다.  나보다 나은 이놈들을 어찌 함부로 진달래 밟듯 즈려밟고 갈 수 있으랴.

 

조광복노무사 블러그
http://blog.daum.net/hojug
http://blog.jinbo.net/hojug/
많이 방문해 주세요.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서 못 가집니다.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 차고지 및 생존권 사수를 위한 천막호소 돌입
- 기자회견 및 농성장을 다녀왔습니다. -

2009.5.7. 우진교통은 주택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우진교통의 생존권과 차고지 사수를 위해 청주시민과 관계기관에 간절히 호소를 드리는 김재수대표의 기자회견문은 “청주시민 여러분!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을 살려주십시오.”로 마감한다.

우진교통이 주택공사의 택지개발에 포함된 차고지를 지켜내지 못하면 시내버스운송면허가 취소된다. 존치부담금이니 차고지 이전이니 하는 현실성 없는 대안은 오히려 우진교통 노동자들의 밥줄을 끊겠다는 협박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노조위원장은 생존권사수를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고, 반드시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을 후배들에게 온전히 물려주겠다며 투쟁결의를 다졌다. 존치부담금 수억을 부담하라는 것은, 의왕시에서 주거용 비닐하우스를 강제철거하면서 4천만원에서 1억을 부담하면 임대주택을 주겠다는 말장난과 다를 바 없는 잔인한 폭력이라는 자주관리위원의 울분도 쏟아졌다.

김재수대표의 간절한 부탁의 말이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서 못 가집니다. 밥도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주택공사의 이윤보다 사람의 생존권이 더 중요합니다. 밥줄을 놓으면 끝장입니다. 이보다 절박한 것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이겨야만 합니다. 동지들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천막농성장의 풍경도 비장하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해 고역이지만 대표를 비롯한 자주관리위원, 비번인 조합원들은 농성장을 밤낮으로 지키며 흔들림 없이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관계기관은 늦장 피우며 피해갈 궁리를 하는 대신, 농성장에서 하루하루 수명을 단축해가고 있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존권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생존권 사수
차고지 사수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 사수

 

속터지는 노동자 -  죽음에 대한 예의

 


- 고 박종태 열사 정신계승 투쟁을 위한 열사대책위 결의대회를 다녀왔습니다. -

타인의 죽음에 무뎌지는 제가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너무 가엽고 미워 그만 살아야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가슴이 쿵 떨어지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숨막히는 초라를 끌어안고 놓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그 고통을 어느새 잊었나 봅니다. 누구든 그보다 더 큰 고통과 슬픔으로 죽음을 선택했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타인의 죽음을 간단히 지워버리는 제가 아주 싫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집회장소로 가는 동안 마음속 깊이 슬퍼하지 못하는 내가 걱정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괜히 생트집 잡는 말들을 쏟아냅니다. “죽긴 왜 죽어. 자식들은 어쩌라고” 등등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말들로 슬픔을 위장합니다.

집회는 5천여명의 노동자가 모인 가운데 숙연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고 박종태 열사의 유서를 들으며, 남겨진 아내의 고백을 들으며, 잡지 못한 동지들의 애타는 외침을 들으며 그제야 서러운 눈물이 흐릅니다. 정말 사람이 죽었습니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어서,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해서, 너무나 절박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이 이제야 보입니다. 그리고 힘없고 초라한 우리들이 보입니다.

고인의 유서에는 그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그 절박함을 간단히 지워버리고, 내 손톱 밑에 가시만 아파하는 비열한 시대에 냉혈한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이 그토록 지켜내고 싶었던 ‘노동자의 생존권’이 오늘이 지나면 식상한 구호로 남겨지진 않을지 두렵습니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악착같이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 센터를 찾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만나면 답답하고 미안합니다. 센터에서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모른척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


 

 노동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철폐
 노동탄압  중단
 해고자 원직복직
 운송료삭감 중단

 

궁금한소식 전합니다.

 


* 동원F&B 부당해고 철회 중식집회 투쟁
- 월~금 13:00 청주공장 내
- 중식집회에 연대하였다 출입문을 막아 나오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였으니 경찰이 올 때까지 못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노총충북본부 등 조속한 조치로 상황은 금방 종결되었고 노동조합의 중식집회 또한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 노동조합은 무기한 중식집회 등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합니다. 연대와 지지 부탁드립니다.

* 고 박종태 열사 정신계승 투쟁을 위한 열사대책위 결의대회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화물연대는 총파업투쟁을 위한 총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 동지들의 삶 속에 당신을 남겨 달랍니다.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을 오늘이기를 다짐해 봅니다.

* 한국JCC 임금사건 합의 종결
- 법정수당, 통상임금 등 그동안 지급받지 못했던 임금지급에 합의

* KT 한미희노동자 5월 11일자로 복직통보
- 축하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투쟁하신 결과입니다.
- 또다시 감시, 따돌림을 당할까 걱정이 앞서지만 의연하게 대처하겠다고 합니다.
- 공대위는 집행위원회를 열어 향후 대책 및 한미희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요구전달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 충북평등학부모회 집행위원회
- 수요일, 전교조사무실.
-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대응 등 논의 예정

 


후원계좌 알려드립니다.
401821-51-001634 / 농협
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

 

충북 청주시 상당구 흥덕구 미평동 35-17번지 2층 호죽노동인권센터 공동대표 조순형. 이정훈.
Tel : 043) 286-9596, Fax : 043) 286-9598,http://www.cbnodong.org/hojuk/hojuk.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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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을 강요당해 어쩔 수 없이 사직하였다면 부당해고에 해당할 수 있어

 ☞ 질문


너무 억울해서 어제 술을 잔뜩 먹었습니다.  일을 하다 회사 상급자와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했어요.  말다툼 중에 나이도 한참 어린 상급자가 너무 함부로 말을 하는 것 같아 순간 발끈하여 욕을 하고 멱살을 잡았지요.  주위에서 말려 다시 일을 하는데 회사 관리자가 사무실로 부르더군요.  사직을 하라고 하더군요.  나도 과했지만 나이 어린 상급자가 너무 함부로 말을 한 것이 발단이 된 건데 억울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직을 못 한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회사가 일을 주지 않더군요. 


일을 주지 않은 채 3일 지나니 다시 관리자가 부르더군요.  이렇게 해 보아야 힘들기만 하니 사직서 써라, 그러면 실업급여는 받게 해 주겠다, 사직서를 안 쓰면 상급자에 대한 항명으로 해고를 시키고 그러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면서 사직서를 내밀더군요.  더 견디지 못 하고 사직서를 쓰는데 관리자가 사직사유에는 “개인사정으로 사직합니다”라고 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썼지요.  회사를 그만 두고 실업급여 신청을 하러 갔더니 웬걸 담당 직원이 개인사정으로 사직을 한 거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속상해서 술을 먹었습니다.



☞ 답변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하셨군요.  한 마디로 회사로부터 기망을 당한 상황이네요.  그 정도면 술 한 잔 안 할 수 없겠지요.  일반적으로 사직서에 개인사정으로 사직한다는 내용을 기재하여 사직서를 제출한 후 퇴직을 하였다면 이것은 자발적인 사직에 해당하므로 고용보험법이 보장하는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회사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직을 하게 된 것이 인정되었을 때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요.  만약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직한 것이 인정된다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고요, 다른 한 편으로 강요에 의한 사직이 부당해고로 인정되어 다시 복직하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법에서는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님께서는 강박에 의한 사직이었음을 주장하면서 사직의 의사를 철회하고 원직복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사직이었던 것을 입증하여야 하는데 상급자와 말다툼을 한 사실, 그것 때문에 회사 관리자에게 불려가 사직을 하도록 강요받은 사실, 사직을 거부하자 3일 동안 일을 주지 않은 사실, 다시 관리자에게 불려가 사직을 하지 않을 경우 해고할 것이며 실업급여도 못 받게 한다고 강박을 당한 사실, 사직 사유로 개인사정이라고 쓴 것은 관리자가 불러준 대로 쓴 사실을 차례대로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동료들의 사실 확인, 관리자가 사실을 인정하는 대화 녹취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입증하기가 수월치는 않겠지만 끝까지 권리구제를 위해 노력하셔서 억울함을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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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나은 이놈들을 어찌 함부로 밟고 갈 수 있으랴

 

아직은 좀 이르지만 봄이 한창을 지날 때면 온 밤을 개구리들의 울음이 몸을 섞는다.  산란기다.  그러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이 논에서 저 논으로 아스팔트길을 가로질러 팔짝 팔짝 건너간다.  끊어지지 않는 행렬이 팔짝거린다.  시골 지방도로에서는 해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내 사는 곳이 시골이어서 매일 아침 출근길에도 또 퇴근길에도 그 길을 지나갔다.  가장 난감할 때가 비오는 날 많은 개구리들이 제 짝을 찾아서 아스팔트 도로를 총 총 총 넘어갈 때다.  저네들도 하나 뿐인 생명인데 함부로 뭉개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조심한다고 살피면서 차를 몰지만 아마도 꽤 많은 애꿎은 목숨들이 아스팔트 길 위에 부려졌을 것이다.


출퇴근길이 나에게는 직장과 집을 오가는 말하자면 “소통”의 과정이다.  나에게는 일상의 "소통"인데 개구리들에겐 생명을 다치게 하는 "단절"인 것을 그 때 알았다.  우리에겐 소통인 것이 더 약한 이들이 틀림없을 다른 누군가에겐 단절과 고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개구리들이 저의 생명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얼마 전에 여성 노동자가 상담을 왔다.  제법 큰 회사 내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인데 회사 가동률이 떨어지자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우선 내보내고 거기에 정규직들을 전환배치한다는 것이었다.  그 얼마 전엔 정규직인 공무원 한 명의 자리를 보전해 줄 요량으로 운전 일을 하는 계약직 노동자를 계약기간도 안 되어 해고한 경우도 있었다.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 중에는 아직도 "인원을 감축할 필요가 있을 때는 계약직, 일용직, 협력업체 소속 직원을 먼저 정리한다."는 규정이 제법 살아 있다.  설령 이런 규정이 없더라도 인원을 감축할 때는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정리하고 노조는 그 것을 못 본 채 하는 것이 거의 정해진 수순이다.  어려운 말로 정규직 노동조합과 회사 사이의 "묵시적 합의"요, 좀 더 고상한 표현을 빌자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혹은 남모를 협약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규직 노동조합과 회사가 벌이는 소통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단절이요, 큰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소통", 좋은 말이다.  요즘 부쩍 많이들 쓰는 말이다.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들여다 볼 것이 있다.  나와 우리에겐 소통인 것이 더 여린 생명이고 더 약자임이 틀림없을 수많은 풀과, 꽃과 나무와 개구리와 도롱뇽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와 장애인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소통은 모든 생명과 약자를 보듬어 안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하고도 근본에 대한 질문을 개구리들이 나에게 해 주었다.  나보다 나은 이놈들을 어찌 함부로 진달래 밟듯 즈려밟고 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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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근속기간 중 5인 이상 해당 기간에는 퇴직금 지급해야

 ☞ 질문


안녕하세요.  본인은 한 2년 간 식당에서 주방 일을 했어요.  하루 온 종일을 근무한 것이 아니라 낮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저녁에는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음식 만들고 설거지하는 일을 했지요.  근무시간으로 따지면 하루에 총 4시간을 한 것이지요.  월급은 적지만 집이 식당과 가까워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집이 이사를 하게 되어 출퇴근이 곤란해서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는데 식당 주인에게 퇴직금 얘기를 꺼냈더니 하루 종일 일한 것도 아니고 하루에 몇 시간 일했는데 무슨 퇴직금이냐, 그리고 직원 수도 얼마 안 되는데 퇴직금은 주기 곤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식당이 4명이었다가 5명이었다가 했는데요, 어림잡아 4명이었던 때가 한 7개월, 5명이었던 때가 한 1년 5개월 정도 되었던 같아요.  본인과 같은 경우 퇴직금을 받은 수 있는지요.



☞ 답변


현재 시행 중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사용자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하여 퇴직급여제도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퇴직금제도를 설정하고자 하는 사용자는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법의 시행일과 관련하여 “상시 4인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은 2008년 이후 2010년을 넘지 아니하는 기간 이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부터 시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4인 이하 사업장은 이 법이 시행되지 않고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를 면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님께서는 식당에서 1일 8시간을 근무하지 않고 시간제로 근무를 하셨는데 질문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1일 4시간 근무를 하였으므로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은 족히 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식당 주인이 근로시간 문제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을 명분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고용된 노동자 수와 관련한 것인데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퇴직급여제도는 4인 이하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 수가 경우에 따라서는 4인 이하인 때와 5인 이상인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노동부에서는 “퇴직금계산을 위한 계속근로년수는 전체 재직 기간 중에서 상시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인 기간 및 병역법에 의한 군복무기간 등을 제외한 기간을 합산한 기간으로 해야 한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님께서 근무하신 총 기간 중 5인 이상인 때를 모두 합산하여 그 기간이 1년이 넘는다면 그 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청구하실 수 있습니다.  식당 주인에게 다시 한 번 관련 법을 알려주고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이야기하시고요 그래도 주지 않을 경우 식당 소재지를 관할하는 노동부에 진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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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죽노동인권센터 소식지 제20호

 
     
 
홈페이지
 
 

잘못했습니다.

 


고용지원센터 앞에서 최저임금 선전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남균사무국장은 교육을 받기위해 준비하고 있는 노동자들 앞에 섭니다. 실업급여를 받기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노동자들 앞에 섭니다. “민주노총이 잘못한 것이 많습니다.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뼈아픈 반성을 하며 이제라도 여러분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호죽노동인권센터는 민주노총이 이런 의지를 담아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법률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방문하시면 ..... 감사합니다.” 짝짝짝...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으니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겠지만, ‘무료법률지원이니, 당신들과 함께하겠다느니’ 하는 말보다는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부끄럽다고 하는 그이의 말에 박수를 보낸 것이려니 생각합니다. “그래, 자식! 잘해봐!” 하는 ....

이번 노동절에는 실업노동자와 함께 합니다. 비명같이 외쳐봅시다.
실업급여 수급기간 연장! 수급대상 확대! 실업부조 도입!

                                                                              호죽노동인권센터

 

Info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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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자료실

<호죽노동인권센터의 활동현황 4월 9일부터 4월 23일까지>

 

호죽노동인권센터 활동보고

1. 상담 중 특기사항
①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법률지원하고 있습니다.
② **노동조합이 소속사업장 외주업체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외주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하여 사측 및 외주업체와
   접촉하고 있습니다. 센터에서는 법적인 검토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③ 괴산에 소재한 **식품이라는 김치공장.  매일 30분의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토요일 3시간의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건으로 상담.
④ **복지시설이 운영하는 장애인 작업장 사례입니다.  
   70~80명 근무.  2007년 노사협의회 구성.  피상담자는 정년퇴직함.  
   남성노동자가 같은 장애인인 여성노동자에게 극도의 폭언을 퍼부어 분을 못 이긴채
   작업 중 쓰러짐.  치료받은지 3주 째이나 말을 크게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  
   현재 산재 신청 중이나 더 나아가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의함.
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3월 임금을 삭감함.  나중에 경기가 좋아지면 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해 달라고 하여 삭감 동의 사인을 해줌.  
   이 30% 삭감분을 추후라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여 상담함.
⑥ **금고 부당해고판정서 도착. 절차상 하자 인정하고 사유는 평가 유보
   (매우 특이한 판정서임. 사유의 평가를 유보한 판정은 흔치 않음),추후 다시 해고우려.
⑦ **학원에서 15년이상 총장 개인기사와 미화원으로 근무하던 중 계약기간만료로
   해고당하여 상담. 연차수당, 연장근로수당, 해고예고수당 청구.
⑧ 4월 상담은 해고/인사관련 상담 및 임금체불 상담이 많았습니다.

* 정식품,LG화학,코스모링크,우진교통(주),가자투어 등 노동조합의 현안문제 법률지원.

 4) 상담 및 법률지원활동 현황
 ① 연** 부당해고구제신청 이유서 준비 - 취하 - 재접수 예정
 ② 한** 부당해고구제신청 재심 답변서 1, 2 제출/4.28 15:00 심문회의 예정
 ③ 전** (**운수) 부당해고구제신청 심문회의 - 화해
 ④ 김** (**요양원)부당징계구제신청 출석조사 - 심문회의 예정
 ⑤ 변** 외 (주성대) 임금사건 지원
 ⑥ 김** 임금사건 진정 (최저임금 홍보활동 중 상담)
 ⑦ 원** 임금사건 진정 (도산인정신청 및 체당금신청 지원예정)
 ⑧ **환경 임금 검토
 ⑨ 정** 외 임금사건 출석조사 (충주노동부)
 ⑩ **센터 일용직노동자 인권문제 상담
 ⑪ **고속 - 대의원선거 이후 구제신청 취하, 노조합병결의, 후원관계는 계속,
    추후 중요사안에 대한 상담 및 논의구조는 이어가기로 함  

 6) 노동인권활동
  ① KT공대위 - KT본사 선전전 (화,금 출근시간),4.28 기자회견,심문회의 참관
  ② 최저임금 선전전 - 고용지원센터(월, 수, 금) 13:00
  ③ 청주여성인력개발센터 노동법 교육, 파업학교 노동법 교육
  ④ 충청타임즈 등 상담글 기고 및 소식지 발송
  ⑤ 충남노동인권센터 방문 - 노동인권활동 방향에 대한 토론
  ⑥ 전략조직화연석회의 - 희망터(현정희분과장) 사례발표 및
      공공서비스 전략조직화 계획 검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 고통입니다.
땀을 흘릴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것은
...... 죄악입니다.

  한아름 흘린 눈물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대외협력부장 김기연

23살. 한창 겉멋을 부릴 나이. 메뉴큐어와 마스카라를 바르는 것을 넘어 어느덧 화장법의 달인으로 등극할 나이. 꿈의 나래를 한창 펼쳐야 할 그 나이에 그녀는 절망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녀는 지난 4월 10일.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에서 애지중지하던 그녀의 머리를 내놓았다. 어깨를 덮을 정도로 치렁치렁한 그녀의 생머리는 성큼성큼 잘려나갔다.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군 그녀의 눈엔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길에 따라 번져 흐르는 검은 마스카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 그녀는 이제 23살의 대학생 ‘한아름’ 양이다.

‘취업성형’까지 마다하지 않는 시대에 한아름 양은 민둥머리를 택했다. “이제 4월의 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5명이 죽었다.” 4월 21일 방영된 PD수첩 <대학가면 개고생이다>편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녀는 말한다. “좀 허전하고 춥기는 하지만, 내가 자른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다. 내 자신을 버린 것도 아니다. 정말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잘라내고 있는 건 이명박 정부에게 걸었던, 정말 서민을 위할 거구 민주적으로 나를 운영할 거라는 실낱같은 믿음과 기대였다.”

‘1,000만원 등록금 잔혹사’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녀의 말마따나 올해 벌써 5명이 스스로 숨줄을 끊었다. 살아있는 대학생들도 ‘이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우성치고 있다. 지난해 학자금 대출을 받은 61만명의 대학생 중 1만명은 사회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신용불량자의 멍에를 짊어져야 한다. 학비를 위해 ‘유흥업소 남자 도우미’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신분열증 치료제’ 성능실험에 참가하는 등 학비마련을 위한 ‘마루타’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등록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발빠른 정부여당이 큰소리쳤다. ‘등록금! 반값으로 모시겠습니다.’ 2007년 1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강재섭씨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대학등록금을 반으로 줄이는 5대 입법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녀의 그 공약에 믿음과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벌써 2년이 훌쩍 지났건만 감감무소식일 뿐이다.

반값 등록금 해결에 필요한 정부재정은 5조원 정도다. 내년부터 20조원 이상 깎아주는 ‘부자감세’의 반에 반값에 불과한 액수다. ‘부자우대 대학생천대’ 정책만 바꿔도 능히 실현될 수 있는 금액이다. 신용우량자인 부자들은 ‘더 부자되세요.’외치고, 대학생들의 등골 빼먹고  신용불량자로 내모는 일을 중단하면 된다. ‘반값 등록금’이 단지 민심을 낚기 위한 ‘낚시공약’이자 ‘떡밥공약’이 아니라고 강변할게 아니라 실현가능하도록 추경예산에 5조원을 반영하면 된다.

2008년 OECD의 국민총생산 대비 공교육비 정부 부담의 평균치는 1.1%다. 한국의 정부지출 부담은 0.6%로 ‘반값 지출’에 머물고 있다. 2007년 한국의 국민총생산액은 9,571억달러. 현재 환율(1,300원)을 대비한 국내총생산의 0.5%는 6조 2천억원에 해당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OECD 평균치만 준수하면 ‘반값 등록금’은 해결될 수 있다.

어느 개그우먼의 말마다나 ‘스텝 1. ‘반값 등록금’에 필요한 예산을 추경예산에 반영한다. 스텝 2. OECD 국내총생산 대비 공교육비 정부부담분의 평균치인 1.1%로 맞춘다. 스텝 3. 추경예산 5조원을 즉시 사용한다. 반값 등록금 참~ 쉽죠잉’ 이렇게 쉬운 일을 정부는 변죽만 울리고 있을 뿐이다. 되레 ‘반값 등록금’ 대신 ‘반값 월급’ ‘반년 고용’에 지나지 않는 인턴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처럼 믿음과 기대가 무너진 현실이 그녀에게 민둥머리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그녀는 세상을 향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희망의 품앗이’를 함께 하자고 말하고 있다. 4월 10일에 이어 5월 1일과 2일 개최될 큰 집회에서 ‘품앗이’를 함께 할 ‘세상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한아름 양은 말한다. “1분 1초가 급하죠. 너무나 절박하고 절실한 문제거든요. 누군가 더 알리고, 더 뛰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친다. “5월 1일 범국민대회 있는거 아시죠?” 참고로 한아름 양이 흘린 눈물은 순도 100%짜리 진심어린 눈물이다. ‘실천’은 없고 ‘감성’만 있는 ‘악어의 눈물’이 결코 아니다.


 

▲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등록금 인하,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는 전국대학생대표자
  농성선포식에서
  홍익대 총학생회장 한아름씨가
  삭발 도중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출처 : 나는 왜 청와대 앞에서 머리를 밀었나 - 오마이뉴스

 
 
 
 
 

의료연대 부설 ‘희망터’를 소개합니다.

 

- 이름도 거창한 ‘미조직전략조직화연석회의’에서 희망터 현정희분과장을 모시고 ‘희망터’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삼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의료연대를 꾸리며 밤을 세우는 토론 끝에 활동가들은 기업을 넘어 지역조직의 형식을 갖추고 중소병의원 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를 실현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미조직비정규직의 실제 조직화를 위해서는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를 일상적으로 전담하는 활동가와 노동조합과는 다른 조직화센터가 필요했다. 이것이 희망터이다. 이 고민은 노조의 미조직비정규직조직화에 대한 노조상근자들의 고민과 사업은 있었으나 정규직노조의 투쟁기간 혹은 임단협기간동안에는 상근자로서 노조에 집중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미비활동은 단절되는/반복되는 한계에서 시작되었다.

2006년 4월 의료연대는 인력과 재정을 통일하여 ‘희망터’를 설립하고 3명의 상근활동가가  활동을 시작했다. 희망터는 활동가 교육훈련, 요양간병노동자 조직화 활동, 중소병의원노동자 조직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요양간병노동자는 노동조합과는 다른 틀로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협회’ 등 요소요소에 들어가 간부자리를 장악하고 계속 선전선동활동을 하면서 제도와 정책문제에도 적극 개입해 나가고 있다.

중소병의원노동자의 조직화 전략은 지역문화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한두명의 개별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으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에는 여러 가지 넘지못할 산이 있었다. 그래서 지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지역에서 문제화하고 지역에서 노동조건을 개선하도록 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정당 및 전문가조직과 연대하여 매주 지역캠페인 활동을 통해 꾸준하게 지역의제로 만들어 가고 있다.

희망터의 운영은 의료연대 부설이기는 하지만 의료연대에서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하지는 않으며, 재정만 부담하는 형태로, 희망터에서 조직화사업을 주도하고 지도하도록 전권을 주고 있다. 물론 의료연대에 희망터 활동보고는 정기적으로 하고 있고, 노조에서도 선전활동 등 역할분담할 일은 연대하여 추진하고 있다.

희망터의 희망은 모든 지역에, 산별 ‘희망터’같은 조직화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즉 지역별, 산별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코디네이터로 자리하는 것이 희망이다. 희망터는 노동조합과는 다른 조직화센터로 호죽노동인권센터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충북은 충분히 힘이 있다. 지역에서 호죽센터를 만든 것만 봐도 알수 있다.  

- 산삼을 먹은 듯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불끈 힘이 솟았습니다. 막(이 대책없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뭔가 하고 싶습니다. 막 뭔가 시작하고, 막 열심히 뭔가 하고 싶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공적인프라와 서비스질 강화하라.-기자회견사진

⊙ 병원노동자희망터는

병원이나 의원, 각종 보건복지시설 등 보건의료관련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곳입니다.

해고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비정규 노동자와 중소영세 병원 노동자의 문제는 상상을 초월합니다.주 48시간이 넘는 근무, 생체리듬을 완전히 무시한 교대근무를 하면서도 100여만원이 조금 더 되는 저임금은 법적 기준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임금체불, 퇴직금과 수당 미지급, 부당한 인사 등의 불이익 뿐만 아니라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어나는 부서장 및 의사들의 폭언· 폭행 사건을 비롯한 술자리 보조 등 비인격적인 대우 등등,,,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가슴에 눌러온 문제에 대해 드러내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합니다.전국의 보건의료노동자의 권리확보를 위한 활동을 하기 위한 곳입니다. (홈피-희망터소개글)  

 

속터지는 노동자... 처벌은 원치 않습니다.

 


청주고용지원센터에서 최저임금 홍보 및 상담을 진행하면서 만난 아저씨 이야기입니다.

아저씨께는 죄송하지만 처음 말을 걸으셨을 때는 장애가 있는 것으로 생각 될 만큼 아저씨의 말투는 느리고 순박했습니다. 작년 여름에 다니던 직장에서 두달정도 임금을 못 받으셨다고 상담을 하셨고, 센터를 방문하시어 임금체불 진정을 하였습니다. 나이도 있고, 말씀이 워낙 느리시고 하니 직장잡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직장에서 생산직으로 두달반정도 근무하였는데, 임금도 못 받고, 해고당했다고 합니다. 사업주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본인도 어려워 빌려주지 못했더니 나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노동부에서는 사업주가 지불할 능력이 없어 체불금품확인원을 발급해주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려고 하는데 처벌을 원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고, 나에겐 큰돈이지만 백만원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게 할 수가 있느냐며 극구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답니다.

사실, 아저씨는 7년동안 생산직으로 근무하다 퇴직하고는 몇 년동안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실업급여도 이전에는 자발적 퇴직이라 받지 못했고, 이번에는 고용보험기간이 짧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열심히 고용지원센터를 오가지만 아저씨의 착한 심성을 알아차릴 사업주는 아직 없나봅니다.

근로감독관도 아저씨의 사정이 측은했나봅니다. 이 사업주를 상대로 다른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낸 임금체불 진정사건 조사가 끝나면 아저씨를 위해 ‘지불각서’라도 받아줄 생각이라고 합니다. ‘지불각서’가 아저씨의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감독관도 짐작하겠지만 어떻게든 돕겠다는 것이니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아저씨께 물었습니다. 왜 처벌은 원치 않는다고 하셨냐고요. 사람이 살면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느냐고 하십니다. 돈 빌려주지 않는다고 나가라고 한 사람인데, 임금도 싹뚝 떼어먹은 사람인데, 미안하단 말도 안하는 사람인데......

아저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아저씨의 노동권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아저씨와 의논하며 계속할 것입니다. 그깟 백만원이 아닌 억만금보다 더 값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최저임금 홍보 및 노동상담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용지원센터 앞입니다.

 

 "끌어"   - 학창시절의 문학 서클에 보내는 조사(弔詞) -

 

* 이번 소식지에는 궁금한소식 대신 재미있는 글 하나 소개합니다.
* 조광복노무사 블러그에 실린 글입니다.

"끌어"

학창시절의 문학 서클에 보내는 조사(弔詞)

글쎄, 내가 갑자기 왜 이 얘기를 하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아득하고 아득해져서 마치 배가 바다 위에 남긴 긴 곡선의 끝자락 같이 가물가물한 시절.  오래된 화상 자국 마냥 아주 지울 수도 없고 그래서 때때로 아릿한 고등학교 문예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몸과 마음을 바쳤으나 어린 시절의 자유와 감성과 상상을 짓눌려 다시는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왜 어린 아들 현을 보면서 나의 그 시절과 아이의 미래가 겹쳐졌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생각할 것도 없이 찾아간 서클(당시는 동아리를 서클이라 했다)이 문예반이다.  국민(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너의 소원이 무엇이뇨”라고 물어보면 시인, 소설가, 작가 이런 그럴듯한 말은 알지 못하여 그저 “문학가요”라고 대답했다.  이때부터 나의 학교 특활(특별활동)은 문예반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문예반을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라도 끝 촌구석에서 말단 공무원 녹을 잡수시는 와중에도 자식 하나만큼은 제대로 가르쳐보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자식들을 12시간 걸리는 완행열차에 실려 서울로 올려 보내신 아버지의 그 “청운의 꿈”을 와르르 무너뜨린 곳이 바로 문예반이었다.

나의 입학년도가 82년이고 기수가 41기니까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서클이다.  이름도 매우 오만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00문예반이라 부르겠다.  또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필력이 높기로 알아주는 서클이었다.  그러니 대대로 세습되어 온 말도 안 되는 전통이니, 또 어린 것들의 치기 이런 것이 얼마나 우세스러웠을까.  우리 기수는 처음 8명~10명 정도가 서클에 들어온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4명만 남았지만.  서클 입회 절차가 다 끝나고 첫 소집을 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잘못 엮인 것 같은...  수업이 끝나고 학교 근처 뒷골목 짱깨집(당시 우리들은 그렇게 불렀다)에서 2학년과 3학년 선배들을 모시고 신고식을 치렀다.  짜장이 들어오고 소주가 들어오고 선배들은 고약스럽게 갖은 폼을 잡고 담배들을 꼬나물었다.  그리고 1학년부터 시작해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다.  노래가 아니라 악다구니를 내야 했다.  이게 아니다 싶었다.

선배들은 틈만 나면 짱깨를 갔다.  1,2학년끼리 혹은 3학년을 모시고 가기도 하고, 졸업한 선배들이 와서 가기도 한다.  그런데 1,2학년끼리 갈 경우에는 절대 2학년 선배들이 돈을 내는 경우는 없다.  단골 짱깨에는 1학년들이 맡긴 시계나 돈 될 만한 품목들이 쌓여갔다.  나는 맡길 게 하나도 없어서 늘 동기들에게 미안했다.

문예반은 매일 모임을 가졌다.  점심시간에 선배들보다 일찍 서클실에 와 청소를 하고 정자세를 한 채 앉아서 선배들을 기다려야 한다.  수업을 마친 후에도 저녁 8시까지 정자세를 한 채로 선배들의 훈계를 듣고 써온 글을 평 받아야 한다.  1학년이 앉은 곳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큰 창문이 있고 바로 창문 너머에는 “창밖의 여자”를 대신하여 벽돌 건물의 붉은 벽이 노려보고 있다.  그 붉은 벽이 어둠을 콱 깨물어 칠흑이 번질 시간이면 그 어린 가슴 속에도 서글픔이랄까 비애랄까 이런 감정이 울컥 번지는 것이다.

문예반에서는 1학년들은 매일 글을 한 편씩 써가야 한다.  우리는 시와 수필 중 하나를 자신의 장르로 선택해야 했고 나는 시를 선택했다.  매일 시와 수필을 써오라는 지시가 참 기가 찰 일이었지만 그 때가 안 되는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무인천하가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지시를 거부할 권리와 배짱이 우리에겐 없었다.  조건도 까다롭다.  맞춤법, 띄어쓰기 틀리지 말 것, ‘그리움’, ‘슬픔’ 같은 추상명사는 절대 쓰지 말 것 따위.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빳다(좋은 용어는 아닌데 당시 그렇게 불렀다)를 맞아야 한다.  그 환경에서 매일 주옥같은 시가 나온다면 나는 천재시인 랭보의 반열에 서야 하겠지만 현실은 나 같은 놈한테 그런 천재성을 주지는 않았다.  수업시간에 수업은 듣지 않고 시를 써야 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점심 전까지 시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야 한다.

문예반이 선생들 사이에 가장 악명이 높았던 것은 전교1등을 했던 아이도 몇 달 안에 꼴찌의 반열로 내려앉힐 수 있는 기적을 행하고 학교 대걸레를 남아나지 못하게 하는 빳다 덕택이었다.  문예반에 입회한 대부분의 동기들은 얼마를 못 버티고 탈퇴를 햐였다.  그런데 선배들이 탈퇴 빳다는 50대라고 엄포를 주었기 때문에 그걸 피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쓴다.  어머니가 바카스 1박스를 사들고 와서 탈퇴를 시켜달라고 사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탈퇴를 하려는 놈과 그걸 붙잡아 본보기로 응징을 하려는 놈 사이에 추격전이 벌어진다.  탈퇴하려는 후배들은 선배와 마주치지 않기 위하여 등교시간을 넘겨 지각을 하거나 심지어 결석까지도 감행한다.  한 보름 동안의 눈물겨운 숨바꼭질에 성공한 일부는 그 대가로 성적 최상위 클라스에 저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붙잡혀온 일부 친구는 가엾게도 50대까지는 아니라도 한 스무 대는 치도곤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성적이 후드득 떨어지니까 한 번은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너 문예반 하는 것 안다.  그거 탈퇴하면 안 되겠냐, 문예반이 빳다가 세고 공부도 하기 힘든 곳인데 잘 생각해봐라 이런 보약 같은 말씀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거라 탈퇴할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들끓는 청소년기에 나는 오로지 문학을 하고 싶었고 문예반 외에는 달리 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전부나 다름없는 문예반으로부터 나는 자유와 감성과 상상을 억압받았다.  몇 번 고민을 했지만 그 때마다 문예반에 남는 것을 선택하였다.

문예반 빳다는 유명하다.  빳다를 맞을 때보다 그 전의 분위기가 정말 견디기 어렵다.  선배들은 한 번씩 수업 끝나고 저녁 때 대걸레 자루를 모아오라고 내보낸다.  그러면 우리는 교실을 돌면서 대걸레에서 걸레를 떼어내고 자루만 모아온다.  그렇게 모아온 것이 한 번에 20벌은 족히 넘을 것이다.  창밖의 붉은 벽이 어둠을 어금니 물듯 쿡 물어버릴 때, 선배와 후배들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다가 선배 하나가 마침내 입을 뗀다.  “끌어”  우리는 긴 탁자를 뒤집어 또 하나의 탁자에 올려놓은 후 서클실 한 쪽으로 끌어 붙인다.  탁자 다리가 시멘트 바닥에 그르륵 끌리는 소리가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당시 대학교들은 전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주최하였다.  수업을 빼먹어서 좋은 날이다.  그런데 괜히 하는 얘기가 아니고 많은 중요한 상을 우리 문예반이 휩쓸어왔다.  내 동기들도 다들 몇 차례씩 장원도 타고 그랬는데 유독 나만 상을 타지 못했다.  난들 왜 상을 타고 싶지 않았겠는가마는 한 번도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다.  나는 한계를 금방 깨닫고 2학년 중반부터 백일장에 가도 더 이상 글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다 3학년 봄철에 대학 백일장에 참가할 때다.  1학년 후배 하나가 제출 시각 15분 전까지도 시를 전혀 쓰지 못하고 끙끙대는 것을 보고 내가 지금부터 불러주는 대로 적어라 하고 한 10분간 불러주었는데 그게 덜컥 차하(3등상)에 입상한 것이다.  학창 시절 상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비록 남의 이름으로 탔지만...

문예반 활동의 절정은 1학기 때 00지라는 문예지를 한 차례 내는 것도 있지만 뭐니 해도 2학기 때 00문학회라고 이름을 달았던 문학의 밤을 개최하는 일이었다.  해마다 국화가 활짝 피는 가을철에 문학회가 열리는데 각자 준비한 시와 수필을 낭독하는 시간이다.  이 짧은 한 때를 위해서 한 달 동안을 초죽음의 수준으로 연습을 한다.  작품집에 실릴 시와 수필을 쓰고 낭독 연습을 보통 밤 10시~11시까지 한다.  한 밤 내내 발성연습을 시킨다고 소리를 꽥 꽥 지르게 한다.  모두들 더 예민해져 빳다도 심해진다.  문학회에 오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여학생들이다.  어린 가슴이 설레지 않을 리 없다.  운 좋게도 나는 어떤 때는 여학생으로부터 종이학을 선물받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여학생이 내 시낭송을 듣고서 울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단 한 번도 로맨스로 이어진 적이 없다.

이런 큰 행사를 마치고 나면 예외 없이 졸업한 선배들을 합쳐 수십 명의 인원이 짱깨를 향한다.  1학년 때는 몰랐으나 2, 3학년 때는 왜 이리 슬픔과 허무함이 복받쳐 오르는가.  나는 술에 만취가 되어 엉엉 울고, 토하고, 또 울었다.  모두들 그랬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일어나서 문예반가를 부를 때는 모두들 정자세를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도무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노래가사를 마치 유언을 써내려가듯 비장하고 또 비장하게 읊조리는 것인데 그 가사가 이렇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도 같이도 변하시기 잘하시는 여자의 마음 보아라 믿지 못할 여자의 마음 / 믿을래서 믿었나 외로와서 믿었지 살자고 믿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란다 보아라 믿지 못할 남자의 마음 // 우리 집에 부모님 나를 낳고 길러서 문예반 가서 요 모양 요 꼴 되라고 나를 낳고 길렀나 보아라 믿지 못할 자식의 마음 / 기를래서 길렀나 낳으니까 길렀지 기르고 싶어 길렀던 것은 절대로 아니란다 보아라 믿지 못할 부모의 마음”

1학년 때 그토록 싫어했고 닮고 싶지 않았던 선배들을 나 또한 닮아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매 맞는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듯이 서글프지만 나도 그렇게 변해갔다.  짱깨에서 후배들 앞에서 갖은 폼을 잡고 술잔을 들고 담배를 꼬나물고 슬프게도 나도 빳다를 휘두를 때가 있었다.

졸업을 하고 한 동안 후배들에게 정성을 들였다.  다시는 나의 경험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어리지만 성적에 목매지 않고 문학을 향한 열정을 품고 있을 기특한 후배들이 문예반으로 인하여 자유와 감성과 상상을 가두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후배들을 찾았지만 크게 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해가 지날수록 내 발걸음도 조금씩 뜸해지고 89년인가 전교조가 설립되고 학교마다 “굴종의 삶을 떨쳐...” 노래가 퍼지고 얼마 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노래가 또 온 세상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어느 땐가 우연히 동기들로부터 문예반이 해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학년 재학생들이 전원 탈퇴하였단다.  그 후로 문예반은 다시는 재건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은 일탈을 하고 싶어 들끓었던 내 청소년의 한 시절이 의지하였던 피난처요, 또 어린 열정을 쏟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시절에 목말랐던 자유와 감성과 상상을 가두고 억압하였던 곳이다.  나는 문예반에서 시를 배웠으나 가슴과 몸으로 쓰는 시를 배우지 못하고 단지 시 쓰는 기술만을 익혔을 뿐이다.  나와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에 없는 말을 시와 수필의 형식을 빌려 상을 타기 좋게끔 꾸미도록 통제받았다.  그 덕에 상을 휩쓸고 한 시절을 풍미하였던 문예반은 하늘을 찌를 것 같던 군사정권이 퇴락하듯 전교조와 서태지와 아이들을 거쳐 점점 쇠락하여 해체되었다.  아프기는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억압받고 갇혔던 자유와 감성과 상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에돌아가야 했다.

먼 세월을 흘려보내고 문예반은 기억에서 흐려져 갔다.  그 문예반과 당대의 서클들이 사라진 자리를 입시학원이 성적 성적 오로지 성적을 위해 들어찼다.  나는 사랑하는 어린 아들 현이 더 크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학원이라도 가라고 해야 할 판이다.  그때는 자위하듯이 아빠의 학창시절이 그래도 열정을 쏟아 부을 곳은 있었다고, 뜨거운 눈물 한 번 받아줄 곳이 그나마 있었다고 말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는 아들 현에게 그런 돼먹지 않은 얘기는 해주고 싶지 않다.  학창시절 문예반은 나의 모든 것이었으나 그 때의 억압이 자유와 감성과 상상에 목말랐던 그 시절의 나에게 너무나 힘겨웠으므로.  나중에는 그 억압을 은연중에 즐기는 나를 확인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으므로.

내 아들 현에게만큼은 꼭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너의 시절에 걸맞는 자유와 감성과 상상을 마음껏 누리라고.  그것을 도와주고 싶다고.

 

조광복노무사 블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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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방문해 주세요.


- 궁금한소식 전합니다. -

* KT공대위 기자회견 예정
- 2009.4.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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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자대회 깃발아래로 모입시다.
- 5월 1일 13:00 청주체육관으로




 

충북 청주시 상당구 흥덕구 미평동 35-17번지 2층 호죽노동인권센터 공동대표 조순형. 이정훈.
Tel : 043) 286-9596, Fax : 043) 286-9598,http://www.cbnodong.org/hojuk/hojuk.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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