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녀의 일상

이사하고 발끝도 내어놓지 않고 하루내 집안에만 있다.

그녀도, 아이들도.

 

- 넓으니까.

 

그녀는 아이들이 거실에서, 안방으로 다시 작은방으로 옮겨다니며 놀고 있다고 한다.  지붕카를 타고 놀이집을 꾸미고 미끄럼틀에서 내려와 주방놀이용 씽크대 안에서 오색가지 한복들을 꺼내기도 한다.

 

- 어쩌자고.

 

그녀의 집이 아이들의 놀잇감과 약간의 동화책들로 온통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하하. 웃고 말았다. 여기서.

 

여전히 커텐을 달지 못 하고 있는 그녀의 창들은 유난히 크고 많다. 상가주택이라. 하면서 그녀는 웃풍이 심해 춥다고 중얼거린다. 그 어조에 불만도 실망도 저며있지 않는 것에 유심히 그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의 네 변 중 하나가 주욱 창으로 이어져있었다. 길게 이어진 창턱 위로 그녀는 작은 소품들을 줄지어 올려 두었다. 카페처럼. 시선의 대부분을 창 쪽으로 두면서 정작, 그녀는 밖으로 나가지는 않고 있다. 바깥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여기서 그녀의 공간은 어디인걸까.

고등학교 시절, 자그마한 제 방의 창가에 50*70의 책상 위에 빨간 스테레오카셋트를 하나 두고 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안온했던 그녀에게 스무살 이후, 밖으로  떠돌기에 바빴던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가진 적이 없었다.  도망치듯 감행했던 결혼 이후에도 그녀의 공간은 책상 하나, 걸상 하나를 그토록 원했건만 아직까지도 갖지 못 하고 이제는 별로 필요치도 않다는 듯 익숙해하고 있었다.

 

- 뭐...별로.

 

무엇이든 욕구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법.

그러하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망. disire. 이다.

 

그녀는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 생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도. 가치로운 것. 실존적인 의미, 노동이나 마르크스도.

- 맑스주의 이상의 답을 얻지 못 했어.

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대학을 떠났었다.

다른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길을 가는 것에 힘들고 지쳐했던 그녀는 어느날 문득, 손을 놓았다. 그때, 투쟁의 어느 즈음에 문득 포기를 입에 담았던 것처럼.

 

말이 되어 나온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되었었다. 투쟁의 끝도. 결혼의 시작도.

어느 선배가 충고하기를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면서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침묵으로 긍정하였으니 자연스럽게 아이도 낳았다. 아이.

아이를 낳았다. 라는 말은 좀처럼 쉬이 끝나지 않는 현실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그녀의 방황, 절망, 화내고 혼자 울고 누군가를 향해 요구하는 것을 보고 지켜왔던 것은 그녀의 벗이었다. 이제 그녀가 남편에게 가졌던 작은 소망을 걷어내고 벗에게 요구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한 지금, 그녀의 옆에는 아무도 없다. 나 외에는. 언제나 열외였던 배제가 이제는 특권이 되어 표정 없어진 그녀의 곁을 지키는 유일한 자가 되었다.

 

그녀의 집에는 여전히 걸려지지 못한 커텐과 부러진 커텐봉, 그리고 짝이 맞지 않는 커텐고리들이 남아있지만 더이상 그녀는 창을 꾸미고 싶어하지 않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먼지를 그대로 놓아두면서 시선의 높이로만 바깥쪽을 바라볼 뿐, 찬바람 들어온다면서 창문 열기에도 인색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그녀의 일상

갈팡질팡 하는 그녀.

시선이 흔들린다.

책을 읽지 못 하고 글을 쓰지도 못 한다. 상념에 잠기지도 못 하고 따라서 잠들지도 못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생을 주도하는 고삐를 놓은 것은. 다시 쥐려는 의욕을 상실한 것은.

그녀를 두고 떠나왔던 그 십년 전 쯤부터였을까.

방황의 한 가운데서 결혼을 하고 두서없는 수다를 떨기 시작하고 비난과 욕지기를 거르며 비판과 하소연을 계속 하다가 어느날 뚝. 수다를 멈췄다.

 

- 사람은 변하지 않아.

 

이혼하는 여자들이 많이 그렇듯 그녀도 그런 말을 했다. 눈꼬리 붉어진 채.

 

염세주의자였던 그녀가 생의 한 가운데를 뚥고 운동과 맑시즘을 움켜쥔 채 표표히 건너왔을 때 사람은, 적어도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는 변화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 믿고 믿음을 현실에서 증거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절망한다.

투쟁도, 운동도 그리고 동지들도 함께 할 수 없었을 때 이미 고갈된 에너지와 신념으로 결혼한 남편에 대해 노력하기를 그저, 조금.

 

- 그에게 무엇을 원하겠어.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남편의 가사분담 거부에 당황하고 힘들어했지만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라구. 그리 말하는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 괜찮아. 별루.

 

그녀는 이어 말했다.

 

- 결혼도 별생각없이 대충했는데 이혼을 너무 오래 생각하는 것 같아.

 

그녀는 별로 관심없다고.

그녀는 그런 여자다. 제가 놓은 것을 다시 돌아보지 않는.

 

- 박원순이 누구야?

 

하면서 그녀 생긋 웃는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며. 한나라당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동갑내기 친구의 말에 글쎄? 시장 정도의 권력에 접근하려면 그놈이 그놈이지, 뭐 별 다르게 행동할 수 있겠나? 하면서.

 

- 노무현도 그렇게 운신의 폭이 좁았는데. 오죽했으면...

 

슬프다. 그 정도를 감당해내지 못 하는 한국사회가.

 

그녀가 어느날 끈을 놓는다면...

가 버리겠지.

지금,

지금은 간신히 얼굴을 보고 있지만.

 

- 아이들이 있으니까.

 

근년들어 둘째가 부쩍 이뻐보인다는 그녀. 아직 어린 아기들이 좋다며.

겨우 초등 1학년일 뿐인데 큰 아이가 하루 하루 학교를 다녀올 때마다 모르는 애가 되어 온다며.

거리감을 느낀다.

그녀는 세상의 질서에 이질감을 느끼며 속하지 못 하였던 것처럼

제 아이에게조차 어려움을 갖는다.

 

- 네게 가면 내가...

 

그녀는 입 밖으로 내지 못 한 채 건너다 본다.

 

- 내게 무엇이 좋을까?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그나마 다시 양평으로 가겠다는 말은 안 꺼내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그녀의 일상

"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무슨 ! "

그녀는 두 줄까지도 다 읽지 않고 내던져버린다.

 

" 그냥 공산당이라 그래, 뭔 이름은 맨날..."

점점 더 작아지는 목소리.

 

" 십년도 더 전부터 떠들어봤자...그놈의 강령초안은 집구석에서만 떠드는..."

울것 같은 표정으로 냉소에 흠뻑 젖은 말투로.

 

" ... ... "

침묵, 그녀는 함께 논구하지 않았던 상대 앞에서 성을 낸 것이 무안스럽다는 듯? 혹은 슬프다는 듯.

 

40년 동안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가신 어머니가 질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듯.

" ... ... "

 

그녀의 슬픔에 공감한다. 함께 고뇌했으나 모자랐고 함께 방황했으나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앞에서 같이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었기에 아마도.

사랑받고 있는 거겠지.

 

그녀가 확신처럼 우리가 다시 함께 할 것이라고 느낀 것은 아마도 무상급식 껀에 대한 단체의 다른 입장을 알게 되면서였을 것이다.

" 한나라당이라니 ! "

그녀는 전에 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냈다.

그리고 실소하며 일축했다.

" 혁명 이후 숙청대상이야. 한나라당과 함께 일했다는 전력은. "

작은 목소리로 비난을 깔고 중얼거리던 그녀.

" 풀뿌리 시민운동이란게 그렇게 뒤섞어 줄 스는 건 아니지..."

 

그런 후에 그녀는 강요하듯 눈빛을 빛내며 들쑤시고 있다.

" 단체를 나와야겠네. 스트레스가 뭐 몸과 마음에 다 쌓이고 있는데. "

 

그리곤 열심히 센터를 세울 곳, 새로 터를 잡을 곳을 알아보느라 밤을 새운다. 아....

이 여자를 따라 가야 하나. 쫓기듯 앞서가야 하나.

 

머리나 식히러 등산이나 가야겠다.

저질체력의 그녀, 산행은 절대 같이 간다 소리 안 하니, 훌쩍.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그녀의 일상

어찌하여 그러한가.

한 마디, 두 마디 하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그녀는 집착한다.

마치 모래 구덩이 속에 선 채 한 가닥 외로 꼰 지푸라기를 잡듯이.

 

음식보다 더 깔끔한 인테리어의 일식집에서 그녀, 심심하기 그지 없는 모밀국수를 먹는다.

먹으며 소분소분 말을 잇는다. 끊일듯 끊이지 않고. 한번씩 건너 낯빛을 살피며. 슬쩍 떠 보듯 한 가지씩 질문을 던지며. 명절을 쇠러 시댁을 다녀오며 말 상대 해 주지 않고 또 상대가 되지도 않는 거리 뜬 사람들 속에서 심심해하더니.

 

" 그러면 북한산 주변으로 알아볼까? "

" 그러게. "

" 집을 거기 두고 조금 나와서 출퇴근하면 되지. 애들 학교야 뭐 이제 많이 컸는데 아침에 같이 나오고... "

" 그럴 수도 있지. "

 

아무래도 집을 옮겨야 겠다고, 짐을 좀 줄이고 책들도 버리든 어떻게 처분을 하고...내년 봄 즈음엔.

흘려듣듯 그녀는 책. 하고 중얼거렸었다.

 

" 이십대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책들인데. "

밥보다 술보다 더 돈을 많이 들이며 사 모았던 책들이었다고, 그녀는 80년대의 신간들이었고 90년대의 신간들을 그 때 그때 다 사 들이며 알고 싶어했고 논구하고 싶었으며 이론이 어떻게 실천이 되어야 할 지를 몰라 고뇌했었던...서른 즈음까지의 십년간, 혹은 인생의 거의 전부를 표상할 만한 책, 노트, 팜, 그리고 서류들과.

" 열 다섯에서 열 아홉까지의 일기장이 한 박스였는데 그것들과 함께... "

그녀는 함께 내다버린 남편보다 오빠에게 더 상처받았었다. 친족으로 살아오면서 논리적으로는 아니나 감성적으로는 충분히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 버리지 못 하고 있는 것을 버려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버리지 않고 끌어안고 있는 것을 무참히 버려버린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해야 할 지..."

그녀는 싱긋 웃었다. 책을 버려야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에 부응하듯 관용의 태도를 보이며. 아니 포기하는 심정을 냉소적인 목소리에서 미처 비워내지 못 하면서.

 

그녀가 언제부터 이렇게나 눈치를 보았던가.

거절하고 거절하고 거절하니 상처받지 않는다는 표정을 맨얼굴을 들지 못 하는 연예인처럼 안면에 걸고 있다.

그녀의 구분과 경계선에 서 있으니 많은 이들이 함께 용서를 받는다. 책을 버려야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녀의 책을 버려준 남편까지 도매금으로.

 

그렇게 지류에 착목하듯 본류를 흘리더니 그녀, 그래서...하면서 말을 잇고 또 잇는다.

" 집을 어디로 옮기려구? "

" 양평을 간들 뭐 그리 다르겠어? 혁신학교나 대안학교나. 전원마을이나 북한산 자락의 구옥들도... "

" 그렇긴 하지. "

 

이제 그녀는 아무런 호응을 안 해도 혼자 진도 나간다.

" 그럼 내년에 집을... "

 

하면서 그녀, 인생스케쥴을 짜 주겠다기에 어디 한 번 해 보라. 하고 말하니 아연 긴장한다. 슬쩍 쳐다보는 듯 싶더니 잽싸게 눈길 돌리며.

 

" 시간 있는 내가 알아볼께. "

 

그녀, 6개월 전으로 퇴행했다.

그리고 마음을 삭이고 또 삭인다.

 

- 내가 너를 기다려 십년을 돌아 왔다.

- 터를 잡지 못 한 채 부유하듯 살며...

-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주변을 맴돌며...

 

그녀는 이제 어찌할 것인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홀로 떠날지.

다시 집착처럼 함께 할 집을 알아보며, 같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릴지.

 

그녀가 밤을 새며 정보의 바다를 누빌 때

불안이 엄습해 오면서도 힐끔.

자만하는 자신이 들여다보아져 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그녀의 일상

그녀의 한숨.

그녀의 그리메.

눈 벌개진 채 눈물 일렁인다.

 

담배연기처럼 한숨, 쉬고 다시 내쉰다.

시간을 구획짓는

그녀의 근심

 

온세상을 그늘

지운다.

 

 

 

 

" 왜 그래? "

" 그냥..."

 

그녀가 좋아하는 이탈리안식 레스토랑에서 런치메뉴라도 값싸지 않은 파스타를 먹어주었건만 아이스커피의 얼음을 지걱거리며 창을 보고 있는 그녀.

도심의 거리를, 아니 창틀 정확히는 창의 문짝을 보고 있다. 프로방스풍의 갤러리창의 문짝과 격자들을.

 

" 전원주택이 너무 비싸. "

" 그렇겠지..."

 

함께 슬퍼해주어야 하니 말끝 흐려준다. 거기 비싼 줄 언제 몰랐었나...

 

" 학교 근처에 작은 집이 있는데. "

 

그녀는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된 듯한 작은 집이 학교를 멀지않게 쳐다보며 턱 하니 있더라...한다.

방 두 개와 그 방들을 합친 정도의 거실, 그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화시켜 구석에 밀어놓은 작은 부엌.

하지만 씽크대에서 내다보는 작은 창으로 널따란 앞마당이 다 들어오니 족하다며.

거실이 테라스를 가진 명품 전원주택은 아니나 넓은 창 앞으로 통나무로 만든 야외테이블이 있으니 그 또한 족하다며. 흔하게 지어진 하얀 스틸하우스도, 불안한 목조주택도 아닌 연한 감빛의 조적조의 신축이니 가히 탐낼만 하다며 한숨을 내리 내쉰다.

 

" 얼만데? "

" 2억 6천 부르더라구. "

" 20평이라며? "

" 대지는 200평이야. "

" 그래..."

" 평당 100만원은 다 넘더라구. 그나마 작은 집이라 그정도 가격이야. 난방도 심야전력이구. "

" 심야전력? "

" 한전에서 싸게 공급해주는 건데, 요즘은 허가를 안 해 준대. 신축들은 거의 가스통 배달해서 쓰거나 기름보일러나 뭐...펠렛이라나 그런게 나왔다던데...암튼 심야전력이 난방비 젤 적게 든대. 양평은 추워... "

 

추위에 약한 그녀. 겨울마다 가스요금과 실내온도 사이에서 방황하더니 상당히 주의를 기울인다. 심야전력이 아닌 건 유감이지만. 하면서 그녀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졌으나 걸어는 갈 만한 또 다른 집에 대해 얘기한다.

 

" 칠천만원이래. "

" 뭐? "

그녀, 생긋 웃으며.

" 집만. "

뭔 소린지...

" 그럼 땅은? "

"남의 땅인데, 개인은 아니고. 뭐 시유지 같은 개념이지. 도지세를 조금 내면 된대. "

 

하이고...

그녀가 그렇게나 땡겨하니. 모처럼 일없는 휴일 아침 문자 주고 받다 통화 좀 하고 같이 나섰다.

음. 한시간...10분 걸리는 군.

 

" 지하철역에선 10분 안 걸려. "

" 그래? "

" 물론 차로. "

 

과연, 택시 타니 10분 안 걸려 떡하니 집 앞으로 모셔다 준다. 그래...서울에서 어디에 살든 지하철역 이용하고 도보 10분 안 걸리겠냐. 안 걸리면 역세권이니 비싸지...울 집은 15분 이상 걸린다...

과연...칠천만원짜리 집은 그 주변의 전원주택, 2층 집에 넓은 데크에 연초록의 잔디가 깔린 마당, 아니 정원, 아니 그냥 대지라고 말해야  도심 속에서 가끔 보는 마당이나 정원 딸린 주택들과 다르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전원주택들을 부러워하며 열등감에 빠질 것 같은 그런 구옥이다. 30평이니 넓기는 하다만...

 

" 웃풍 있을 것 같지? "

 

그녀는 역시 난방 걱정. 85세 할머니의 안방에 놓인 검은색 자개장이며 거실창 아래의 돌로 된 베란다와 하늘색 패치워크의 욕실 바닥 타일이 현관에도 똑같이 깔려있는 것을 눈에 담으며 그녀는 쓴웃음을 짓는다.

" 1970년대의 전형적인 단독주택이네. 서울 변두리에 흔하게 남아있는. "

파란 철대문과 마당을 발라버린 시멘트바닥을 내려다보며 싸긴 하지만...나중에 매매도 잘 안 될 것 같고...기와지붕 얹힌 시골농가라면 모를까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마당에 더하여 언덕 위 코너의 완경사에 세로로 걸쳐진 대문이라니...완전 월곡동 산 1번지야. 하면서 하하 웃는 그녀, 허탈한 시선을 막골의 골짜기 사이에 들어찬 허공으로 던진다.

 

그래도 그녀는 며칠이나 고민을 했단다. 평지의 2억 6천과 그 4분지 1이라 해도 좋은 7천만원 사이에서. 후자의 경우가 사실 그녀가 동원할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 2억을 대출받을 수는 없쟎아. 하면서 실소하는 그녀. 아, 어떡하지. 하면서.

 

뭘...뻔한거지...

원래부터도 현실성이 없었는데. 그녀는...

그럼에도 계속계속 생각하고 있다. 자꾸 쳐다보면 확신이 생기고 길이 보일 지도 모르고 그러다보면 정말이 될 지도 모르쟎아. 하면서.

정말로...그녀는 어느날 휙 이사가고 없을 것 같다.

 

그녀의 한숨이 계속되기를.

그 눈물 계속 훔쳐주며

곁을 지킬터이니.

 

헌데...눈 벌개진 한 쪽 눈이 아프다면서 또 눈병이 난 것 같다고. 봄에 한 번 났던 눈병이 재발했나. 요즘은 이런저런 알러지가 다 달려드는 것 같다며. 한시간 넘게 한산한 지하철 속에서 에어컨 바람 속에 앉아있더니 코를 흥흥 거리며 중얼거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그녀의 일상

" 혜정아 ! "

 

뚝 끊어진 전화에 열이 확 뻗친다.

안 그래도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스마트폰이 터치가 잘 안되어 신경 곤두서는구만, 이 여자가 말을 하다 말고 끊고는 받지 않는다. 지 맘대로 하겠다고. 아니, 저의 뜻과 다른 것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며 상의는 커녕 통지도 않고 갔다. 양평으로. 나는 가련다. 하면서.

어찌 그러한가.

저와 함께 하지 못 하고 혹은 안하는 벗들을 두고 새로이 이웃을 만들어 지내겠다 하면서.

아이들에겐 작은 학교가 모든 것을 챙겨줄 터이니 저는 그 옆에서 손을 거들겠다 하면서.

더 이상 화내지 않으리. 바라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으리니 당신들이 내게 마음 둘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면서.

 

" 혜정."

 

그녀를 안고 사랑한다 속삭였지만, 말 뿐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그녀는 배시시 웃고 만다.

그녀의 오르가즘에 동참하고 열을 받아주었지만, 짧은 쾌락이 그녀를 오래 웃게 하진 못하니.

그녀가 녹음을 보고 싶어하는 구나.

들풀 우거진 땅을 밟고 싶어하고 바람 속에 서  있고자 하며

정갈한 식탁과 테라스가 있는 집을 갖고 싶어하나 무엇으로 소원을 들어줄 것인가.

사람을 싫어하니 다만 도시가 싫다 하는 것으로 가려 덮고

경쟁이 싫다하면서 작은 학교에 기대어 숨어 살자 하면서

아이들을, 아이들만, 아직 저의 품 안에 자식이려니 팔을 안으로 굽히고

홀로 지키는 토굴 앞의 괭이처럼 눈짓을 하더니

휙 들어가버린다.

제가 나고 자란 도시를 버리고.

도시 속에 옭죄인 벗들은 그냥 두고

나는 가려니...

 

" 경기도야. "

 

그녀는 언제나처럼 시니컬하게 입술끝을 씹듯 말아올리며 말했다.

 

" 언제라도 턴 할 수 있는. "

 

그녀는 싱긋 웃으며 건너다 본다.

 

" 이 봉우리도 아닌 갑다. 싶으면 금방 돌아올꺼야. 쉽쟎아. 가기보다 오기는 더. "

 

그녀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 묻지 않기에.

 

" 너는 할 일이 있지? 여기서. "

 

6개월 전엔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기서도 네가 할 일이 있을꺼야. 라고 말했으나.

 

" 함께 일하기로 했쟎아. "

 

힘없이, 절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해봤으나 그녀는 에이. 하고 만다. 우문에 답을 하면 서로 우스워진다며.

 

" 나중에 내가 일할 자리가 생기면 그때 돌아올께. "

 

그녀에게 트릭을 썼으나 그녀는 알고 들어온 것이니, 이제 그만 나가겠다 하면서 나중에 정말로 우리가 함께 할 만 하면 그때...

전에는 그러지 않았었던 그녀가.

 

- 우리가 함께 의논해서 !

- 네가 단체에 들어온다면...

- 여기...남아서...지역에서 우리가 조직을 만들어.

 

그녀는 십년 전에는 그렇게 말했었다. 연단에서의 구호소리보다 더 크게 울릴 것같은 눈동자로.

그 깊은 안쪽에 눈물을 가득 담고, 공장 거리에 남자고. 함께 조직을 만들자고. 같은 단체에 들어가자고.

그리 할 수 없다 하는 동지에게 더 말 하지 않고 등 돌려 가는 뒷모습을 그냥 바라보면서 혼자 십년 세월을 보냈다.

곁을 맴도는 강아지처럼 아이들이 크는데 따라 이런저런 상담을 해오고 이런저런 일정들을 만들어오고 가찹든 멀든 훌쩍 와서 차 한 잔, 술 한 잔을 청하던 그녀가.

지친 어깨, 허망한 시선을 멀리 두면서 제가 가장 편한 곳으로 그냥 혼자 가겠다 한다.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며.

 

" 낯선 곳에서 뭘 해? 외로울꺼야. "

 

그녀는 무슨 소리냐는 듯, 건너다 보더니 피식 웃는다. 익숙한 이곳에서도 저는 늘 외롭다며.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그저 들판을 바라보기 위해 가는 것 뿐이라며. 재개발구역의 창을 내다보기는 무안하다며.

한 번 쯤은 제 하고픈대로 해도 되는거 아니냐며. 그도 못 하면 인생이 저물어 회환만이 남을 것이니.

아이들과 함께 나무 아래 있고 싶다 한다.

 

" 혜정아 ! "

 

" 네게 테라스를 공유하자 한다한들 ! "

 

그녀는 전화를 끊기 전, 힘주어 한마디로 쏘아붙였다.

 

" 너는 들어올 생각이 없쟎아 ! "

 

그녀가 하지 않은 한마디가 남아 울린다.

십년 전에도, 지금도 !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결혼한다 하였고 그녀를 아는 모두가 당황해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보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활동, 과거, 현재 그리고 결혼. 이어지지 않았고 그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그녀의 동갑내기 친구가 말했다.

 

" 너 때문이었어. "

" 뭐? "

" 네가 결혼해서 아이와 가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

" 그게 무슨...바보같은 소리야..."

" 너와 공통의 화제를 갖기 위해서였어. 실제로 결혼 이후 다시 만나서 잘 지내오고 있쟎아. "

 

그런 여자였다. 제가 집착하는 것에 모든 것을 경사시키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둘째의 고견

엄마가 딸들에게 말한다.

" 너는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것 같니? 그리고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 같니? "

 

여덟살.

" 음...나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애. 엄마는 못 하는 것 같애. "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자 반색하며 엄마.

" 그래 !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해야 하겠어 ? "

 

가만있는 여덟살, 뒤에서 따라오던 여섯살.

"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해. "

 

오옷 !!!!!

역쉬 둘째는 천재가 틀림없어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그녀의 일상

어여쁜 그녀.

안고 싶어. 안고 싶어.

오지 말까? 하길래 오지 말라 했더니 진짜 안 온다. 아니, 전화 한 통 없다.

하루 기다려보고 이틀째 아침, 전화 했다. 그녀 없이 맞는 사무실의 아침. 정말 재미 없다.

말단신입사원 흉내를 내면서 아침마다 커피를 타 주는 걸, 거리낌 없이 받아 먹다가 홀로, 멍청히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슬슬 열 받는다. 이 여자는 왜 틈만 나면 꼬리를 감추나...

아이들이 방학을 했으니 천상 집에 붙잡혀있을 수 밖에, 아니 어쨌든 집에 머물러있을 터인데 통화 중의 대답이 영, 시원챦다. 예, 아니오로 끊어지는 콜드 스피치는 아니더라도 대답이 짧다. 그리고 기다린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이.

 

" ...그랬어. "

" 응, 그렇구나. 하하하. 그때부터도 게임에 빠져있었어. 조합원들과 친하려고 스타크래프트 한다더니 ! 하하하. "

 

그래도...이혼했다는데, 그렇게  크게 웃을 일은 아닌것 같은데. 이 여자가 주변에서 실패한 결혼 사례를 많이 보더니?

 

" 불임이 평균 십프로이고, 이혼율도 십프로이고, 한부모가정이나 재혼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등등 하면 소위 정상가정의 프로테지는 더 떨어질 것 같은데? "

" 아? 정상...? "

" 그래, 노멀한,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여타의 다양한 소수자들을 비정상이라고 밀어내는 사람들. 그들의 자기방어적인 레테르. "

 

그녀는 말을 길게 하기 싫은 듯, 얼버무리지도 않고 뚝 끊었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다른 화제를 꺼낼꺼냐는 듯. 용건이 있는 건 아닌거지? 하면서.

 

" 왜? "

" 아, 나 나가야 해. 시간 약속이 되어 있어. "

" 그래? 그럼 나중에... "

" 까칠 아줌마라, 늦으면 눈치보여. "

" 하하. 까칠아줌마? 알았어. 그럼 끊어. "

 

오후 늦게 문자가 왔다.

 

' 반론의 근거가 겨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쟎아. 라고 말하는 상대. 계속적인 대화상대가 되지 못 해. '

 

조금 있다 또 문자가 왔다.

 

' 연락 바랍니다. '

 

흠...이건 그녀의 외화가 아닌데.

아니나다를까 짦은 문자가 연달아 온다. 질문.

그녀는 몇 번인가 회의 중이라는 문자를 받으면서 통화연결에 실패한 이후, 직접 전화거는 걸 자제했다. 그리고 문자를 찍기 시작했다. 잘 못 찍으면서. 미싱도, 바느질도 그렇게 들여다보면서 손가락 놀리고있으면 협심증이 생기는 것 같다고. 그녀는 어린시절, 테트리스도 잘 못 해서 오락에는 당췌 흥미를 붙이지 못 했다고...대체로 그 손으로 빨리 할 수 있는 건 자판 두드리는 것 밖에 없는 게지. 후.

 

전화 걸었다. 편하고 즐겁게 받는다. 앞에 둔 듯 수다를 떨지만 그래도 되는 상황인지 파악을 못 해서 불안해하며 빠르게 지껄인다. 영화 보러 가자고. 요지는 그것인데 가능한 날짜를 찾아 한참을 말 주고 받다가 결국 못 가겠다고 대답했다.

 

" 그래, 그럼 다음에 가지, 뭐. "

 

그리고 곧 통화를 끊었다. 빨리 포기해 주고, 별 중요한 거 아니니 상관 없다는 듯이 다른 화제를 꺼내고 그렇게 상처받지 않은 양을 다 못 해서 어색하게 전화통화를 종료하는 것이다. 그녀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와 외출하기 위해 무리를 할 수는. 아이들을 두고 밤에 나올 수도. 일에 매여 있는 몸을 빼낼 다른 시간대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녀가 집에 있는 오전시간을 찝어서 알바하라고 꼬셔서 사무실로 불렀겠는가...

 

오지않게 된 방학 이후의 오전 시간, 그녀도 나름대로 바빴다고 한다.

방학식을 하는 둘째네 반에 과자보따리를 만들어주느라 아침부터 일했다고, 반대표를 하는 다른 엄마들이랑.

방학한 첫날에는 즐겁고 알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문화센터에 접수하러 가느라 바빴다고, 땡볕에. 전업주부로서 본분을 다하여 유능한 엄마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까칠엄마랑 손잡고.

의외로 엄마들과 잘 지내고 있는 듯.

그, 깊이 없는 사교생활 속에서 그녀는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주의할 점은 오직,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한 마디 더 하는 것만 자제하면 된다고. 그래서 결국 마음 차지 못 하여 냉소 뒤의 외로움을 절감할 수 밖에 없지만. 그녀는 니도 내게 다르지 않다. 하는 듯 말을 끊고 돌아선다. 단지...영화보러 갈 시간을 못 냈을 뿐인데.

그래도 캠핑은 같이 갈 껀데. 그녀가 남편은 못 온다 하였고 또 부르고 싶지도 않다 하였으니. 어쩌면...

아이들을 한 텐트에 몰아넣고 다른 텐트에서 그녀와 술을 마시게 될 지도. 그녀는 술을 원하나 또 다른 것도 하게 될 지도 모르지. 어여쁜 그녀를 안고 싶은 자가 대작을 할 터이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그녀의 일상

그녀의 다리 사이를 닦아주었다. 물티슈 왕창 쓰면서. 

우리들의 홈이라면 함께 목욕이라도 할텐데.

도질까, 무섭다. 집을 갖고 싶은.

욕망, 그보다 더 진한 감수성.

 

창 넓은 베란다를 갖고 싶어. 아니 발코니를.

연한 초록의 잎들이 무성한 나무, 풀, 낮은 꽃나무. 듬성듬성 내보이는 흙더미들.

그녀는 가꾸지 않은 정원이라도 흙을 밟으며 걷고 싶어한다. 발이 아프게 되고부터.

 

- 강화마루, 아니 원목마루인가. 암튼 마룻장 때문이야. 넓고 딱딱한.

 

그녀는 발이 아프게 되기 직전, 통증을 느끼면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그래도 관심두지 못 하고  바쁘기만 했던 아이들의 세살, 다섯살 적을 보냈던 아파트에서의 넓은 마루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 마루 끝에서 울었던 일. 아이 돌보기에 힘이 부쳐 괴로웠던. 남편에게 화내다가 하소연하다가 속이 끓어 슬픔이 북받쳤던 일. 그 집을 슬픔으로 기억한다. 그 넓고 딱딱했던 마루. 청소하기에 힘에 부쳤던. 늘 어질러진 집기들을 집으러 다니느라 발이 아팠던,  제 몸을 돌아보는 것이 너무 늦었던, 그 집을 떠나고 또 다른 집에서 맞벌이하면서도 채 일년을 살아내지 못 하고 결국 집을 줄여 이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제서야 그녀는 몸이 예전같지 않음을 알았다고. 더이상 무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음을, 그녀는 금방 되풀이되는 스트레스와 피로에 처지는 몸과 불안정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 하면서 눈물 많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 못 하겠다. 하였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끊임없이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 하는 자신을 비로소 돌아보면서 그녀는 말하기를 멈췄다. 그렇게...화내면서 살 무엇이 있는가고.

그리고 버릇처럼 되뇌었다. 괜찮아. 하고.

원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지. 하면서.

내가 그에게 너무 큰 것을 원했다. 하고.

그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상처받지 않을 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새로 상처입을 가능성은 없을 테니.

 

" 우리, 연애하자. "

 

그녀의 벗은 어깨 위로 린넨셔츠를 걸쳐주면서 속삭였다. 팔을 끼워 옷을 다 입고,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려 손을 내어민다. 붙잡아 일으켜 달라고. 항상 어리광을 부린다. 곁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 혜정아. "

그녀, 못 들은 듯 바지를 꿰어입고 바클을 채우고 매무새를 다듬는다. 시계를 흘낏 거리며.

 

" 너, 빨리 옷 입어. 나는 다 입었는데 뭐하고. 웃기쟎아, 너만 홀랑 벗고 있으니. "

 

그녀의 작은 입이 웃음을 떨구고 있다. 제가 주도하여 갖고 놀았으니 이만 가 볼란다. 하는 선비처럼. 그런 마음의 자세로 내려다보며, 어서 일어나라고 채근한다. 그녀가 무릎으로 어깨를 친다, 톡톡.

 

" 혜정아, 우리 연애하자. "

 

더 크게 또렷이 말했다. 그녀의 무릎을 감싸안으며. 매어달리는 주막집 과부처럼 비통하게, 애절하게, 아니 진솔하게.

그녀는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니나 그리 심각해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는 듯.

 

" 어, 참, 빨리도 얘기하네? 키스하고 포옹하고 자고 난 담날 아침에야 대사 치는 게 요즘 청소년들의 연애순서야? "

 

그녀, 올려다보며 미안함 반, 간절함 반으로 눈길 꽂았으나 마주쳐 주지 않고 손길 내민다. 일어나라궁...시계 좀 보구...나, 얘들 데리러 가야 해. 너두 할 일 많쟎아.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 옷 입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 혜정아, 우리 연애하자. "

" 아, 97번만 더 말하면 백번째야. 너 백 한 번째까지 프러포즈할꺼야? "

" 응. "

" 왜 그래? "

 

그녀, 비로소 눈 들여다보며 가만히 섰다. 그녀가 모르지는 않는다. 무슨 뜻인지. 우리. 라고 말했는데. 그녀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앞으로도 그럴 의사가 없는 것에 대해. 그러면서도 이리 강짜부리듯 규정을 하자 하는 것에 그녀는 따지고 들며 부당하다 할 지도. 허나, 누가 따지리. 사랑하면서 사랑해선 안된다는 당위론을 들먹이는 게.

 

" 연인이라고 인정해 줘. "

" 그게 무슨 소용인데? "

" 나한테 솔직하게...욕구를 보여 줘. "

" 니가 그러고 싶은 거겠지. "

" 너도 그러고 싶쟎아. 싶을 때 있쟎아. 오늘처럼. "

 

그녀, 잠깐 생각을 하려는 듯 말을 멈춘다. 눈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맘이 읽히지가 않는다.

 

" 그래. "

" 혜정아. "

" 하고 싶을 때 얘기할께. 내가 그러듯 너도 그러면 되지. 우린 연인이야. 됐지? "

" 혜정아, 내가 성욕만 얘기하는게..."

" 네가...대체 뭘 해 줄 수 있어? 내게. "

 

그녀, 똑바로 쳐다보고 있지만 분노 혹은 슬픔이 없다.

 

" 네게 미안하다고 말하진 않을 꺼야. 하지만 사랑해. "

 

그녀, 감흥없이 듣고 있다. 이런 고백을.

 

" 내가 더 사랑해. "

 

그리고 돌아선다. 시간 없어. 갈께. 하면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습작 - 그녀의 일상

그녀의 두 손이 손바닥을 맞잡듯 떠받치고 있다. 손바닥 안에 움푹 패인 화상 자국이 무슨 신주단지라도 된 듯.

상상력이 풍부한 그녀, 가스렌지 위에서 번지는 불길을 눈 앞에서 보는 듯, 황망히 불꽃 위로 내젓는 두 손이 미처 느끼지 못 한 뜨거움을 대신 느끼듯 눈쌀 찌푸러진다. 속 상하고 속 상해서 그 마음 베어져 건너올 것 같은 찌푸린 얼굴, 꾹 다물어지다 못 해 질끈 깨물어지는 입술, 동글게 오무리며 다가온다. 호. 하고 불어줄 듯.

 

" 흉 지면 어떡해. "

" 손바닥인데 뭘. "

 

그예, 입술 다가와 더운 숨결을 떨군다. 살짜기 벌어지며.

저절로 손바닥이 닫아진다. 손목 비틀며 빼내려는 데 그녀, 작은 두 손 와짝 감아잡고 놔주질 않는다.

하아.

이 여자가.

 

" 놔. "

" 싫어. "

 

이 여자가, 상황 판단 못 하네. 안 하는 건가.

그녀의 어깨로 자유를 가지고 있는 다른 한 손이 건너온다. 둥근 어깨, 작고 좁다. 한 손가락만 걸쳐도 다 가려지는.

그녀의 두 손 안에 잡혀있는 한 손에서 힘을 빼며 그 시각, 그녀의 어깨를 타넘는 다른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결코 의도한 바 없다. 누가 이런 세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애드립이 난무하는 예능프로의 작가처럼 사랑의 순간에는 예측이 불허하다.

 

" 그럼, 다른 데선 싫다고 하면 안돼. "

" ... "

 

그녀,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묻고 싶으면서도 눈을 들지 않는다. 손바닥의 상처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하고, 그에 팔린 정신이 다른 눈치를 채면서도 수습이 안되고 있다. 그런 것이다.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 하는. 사랑이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