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열나 바쁜데... 그런데... 그래서그런가?
보고싶은 영화가 많다.
어제 본 영화 [Time to leave].
죽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과연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이고, 누군가들과 어떠한 관계를 정리해나갈까?
젊은 나이에 꽤 잘 나가는 사진작가, 로맹은 암이 퍼져 시한부 3개월을 선고받는다.
의사는 그에게 항암치료를 권하지만 그는 좀 다른 일을 해나간다.
끊는 시간
부모와 여동생에겐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거울을 보며 열심히 연습한다. "저 곧 죽는데요."
하지만 그는 가족과의 저녁식사에서 여동생에게 "그러니까 남편이 널 떠나지"라며 독설을 퍼붓는다.
그리고는 동거중인 애인 사샤에게 애정이 식었다며 나가라고 한다.
할머니를 만나러가던 길에 있던 식당의 불임부부가 제안한 정자 기증, 아기는 딱 질색이라며 단번에 거절한다.
이렇게 주변의 모든 관계를 끊음으로써 죽음을 준비하는 듯한 로맹.
그러던 로맹이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알린 존재는 바로 할머니다.
할머니가 묻는다. 왜 나에게는 알렸냐고?
로맹이 답한다. 당신은 나와 똑같으니까.
다시 맺는 시간
몸이 조금씩 안좋아지고 구토와 약이 반복되는 어느날, 동생에게서 화해의 편지가 도착한다.
로맹은 핸드폰으로 동생에게 사과하고 동생은 이내 오빠를 용서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만나자는 제안을 일이 바쁘다며 회피한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다시 만난 사샤. 격했던 감정은 이내 차분해졌다.
그날 로맹은 마지막으로 섹스를 부탁했지만 사샤는 거부했다.
로맹은 사샤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고 잠시 누웠다. 그렇게 자신이 (아직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사샤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다음엔 바로 불임부부를 찾아가 3명이 아기를 갖기 위해 함께 섹스를 한다.
그리고 드디어, 떠날 시간
로맹은 유언장을 작성하고 유산 상속자를 곧 태어날 아기로 하였다.
그리곤 이불 한장, 물안경 하나를 들고 해변가로 찾아간다.
열심히 수영을 하는 그. 왠지 숨을 쉰다는 것이 굉장히 고귀한 행위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모래사장으로 나와 이불 위에 누운 그는, 그러나 모두가 해변을 떠나고 노을이 지고 해가 지도록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 가는 시간, 혼자 죽는 장면.
이런 장면은 왠지 고독하고 서글픈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Time to leave]가 보여준 죽음은 뭔가 색달라 보인다.
로맹의 애인 사샤는 이런 말을 했다. "애인이 생긴거지? 너는 혼자서 못살잖아."
그러나 혼자서 살지 못했던 로맹은 오로지 혼자서 죽음을 준비해나간다.
그는 처음에 고독과 서글픔이 배어나는 방식으로 주변의 관계를 끊어갔으나,
이내 끊은 관계들을 아주 조금 회복해나갔다.
마치 그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충분히 확인시켜주면서도, 결코 자신의 죽음에 몰입하지 않도록 배려하듯.
죽음을 준비하면서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가는 로맹.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의 죽음은 외로워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 지는 해를 뒤로 한 그의 모습조차 오히려 편안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그가 떠난 시간, 떠남을 준비했던 시간은 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이 두렵고,
- 인간이란 워낙 혼자 사는 존재라지만 - 특히 혼자 맞이하는 죽음에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로맹을 보면서 어쩌면 혼자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것에 편견이 있었던 건 아닌 지,
과연 나는 죽음을 잘 준비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 사족
음... 그런데 로맹은 왜 아기를 남겨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을까나?
요즘 저출산 얘기를 하도 많이 듣다보니 잠시 '홍보영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ㅋㅋㅋ
* 사진 출처 : 씨네21(http://www.cine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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