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노동에 대한 영어강독 모임에서 이번에 내가 맡은 번역 부분.
(따.라.서. 매우 믿음직스럽지 못한 번역이겠지요?)
책[the managed heart] 中 public life 안의 극히 일부입니다.
공적 영역에서의 감정노동이 여성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 강화되어 차별로 기능하는 지 보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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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at work (일터에서의 여성)
대인 관계에서의 기술을 요구하는 거대 기업의 성장을 통해, 대인 관계 상황을 좋게 만드는 여성적 문화와 보다 공적 분야의 늘어나는 정서노동에 대한 요구가 점점 조직화되고 표준화된다. 이는 대체로 대중과의 접촉이 많은 중간층 여성들에게서 행해진다. 7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감정노동을 포함하는 직업은 3위를 차지하지만, 남성들이 하는 직업 중 1/4만 차지하는 반면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중 접촉이 요구되는 직업은 대중에게 서비스 제공을 요구한다. Richard Sennett와 Jonathan Cobb( [The hidden Injuries of Class] 계급의 숨겨진 위협 )는 사람들이 다른 직업과 비교하여 어떻게 서비스노동에 순위를 매기는 지에 대해 평하였다. 순위의 하부에는 공장노동이 아니라 (개인이 어떤 개인에게 수행해야하는) 서비스업이 발견된다. 바텐더는 탄광노동자보다 아래, 택시운전수는 트럭운전수보다 하위 순위이다. 이러한 결과는 그들의 기능이 타인의 처분에 의존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라고 예상된다).
서비스업은 남성(9%)보다 여성(21%)이 많기 때문에 그 계급에 속한 gender(사회적 성)의 숨겨진 위협(차별)인 셈이다.
대인 접촉이 있는 여성 직업의 세계에서도 새로운 패턴이 나타나는데,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남성들은 경험하는 복종의 수위가 낮다.(같은 직업을 갖더라도 여성이 복종을 더 경험한다)
승무는 여성 직업 중 하나이자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영역의 직업중 하나이다.
남성 승무원의 숨은 과제는 ‘여성들이 하는 직업’ 내에서
그의 남성성을 유지하고 여성 승무원을 거친 승객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그들의 숨은 과제는 사회적 보호가 부재한 상태에서 승객의 분노와 불만에 대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낮은 지위가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보다 근본적으로 감정의 상태와 취급 사이에 어떤 주요한 관련이 있는가?
높은 지위의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을 주목하고 중요시 생각하게 하는 권한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 사람의 감정은 주목받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취급된다. H.E.Dale ( [The Higher Civil Service of Great Britain] 영국의 상류시민사회 )은 “감정주의(? 감정론? the doctrine of feeling)”이 존재한다고 봤다.
관리와 비서, 의사와 간호사, 정신과학자와 사회사업간사, 치과의사와 보조 사이에 권력의 차이점은 사회적 성의 차이점을 반영한다. 감정주의는 두 성(sex) 간의 또 다른 이중적 잣대(기준)이다.
낮은 지위 사람들의 감정은 두 가지 방식으로 무시당한다. 1) 이성적이라고 여기지만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하거나, 2) 비이성적인 까닭에 쉽게 해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에서의 공격(폭력) : 여성은 이중 잣대로 판단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는 여성정치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적고 있다.
모든 조사에서 그들은 정서적 이중 잣대를 확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Frances Farenthold( 뉴욕 Aurora 웰즈대학교 총장)는 아래와 같이 밝혔다. “Henry Kissinger가 짤즈부르크에서 연기했던 방식을 기억하는지? (감정을 폭발시키지만) 그가 짜증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배역이라면? 여성연기자가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배역이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라고 고착하여 생각하게 된다. 대체로 여성을 묘사할 때 그러하다.”
공적 삶에서의 여성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동의한다. 남성이 화를 표현할 때 그것은 이성적 또는 이해 가능한 화(anger)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 화는 인물의 나약함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신념에 의한 것이다. 여성이 같은 수준의 화를 표현할 때, 개인의 불안정함의 신호로 해석된다. 이는 여성이 보다 감정적이며, 그들의 감정이 무효하다는 확신에 기반한다. 여성의 감정은 실제 사건의 결과로써가 아닌 ‘감정적’ 여성으로써 자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주의”를 발견한다.
지위가 낮을수록 보고 느끼는데 많은 예의를 요구하는 데, 이것이 오히려 (진짜 감정인가 싶은)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쉽고, 불신을 크게 한다. ‘불합리한’ 감정은 지각력을 무력화시키는 것과 같다.
낮은 지위의 사람은 진행되는 일들의 결정 권한을 주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신뢰가 점점 떨어진다고 판단하게 되고 존중이 사라지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수자의 시각, 인정받지 못하는 의견을 가진 여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과 여성의 병에 대한 의학계 반응은 이에 적절한 사례를 제공한다. 한 연구에서는 의사가 52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그들이 호소하는 등의 통증, 두통, 현기증, 가슴통증, 피로에 대한 육체적 불평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 살펴보았다. 의사들은 남편들의 불평을 여성들의 불평보다 더 의학적 반응인 것으로 유도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아래와 같이 끝맺고 있는데, “이 자료는 입증한다... 의사는... 여성보다 남성의 이야기를 듣고 보다 진지하게 병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184명의 남성 환자와 130명의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상호작용하는 의사들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의사들은 환자가 여성인 경우, 환자의 심리적 요소를 중요하게 고려하려 한다.” 물리적으로 아프다는 여성들의 주장은 진짜 아픈 게 아니라 “그저 그녀의 상상”이라거나 “주관적”인 것이라며 무시될 가능성이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두 성(性)의 감정을 불평등하게 평가하는 방식에 대항하고자, 보다 진지하게 취급받기 위하여, 전면의 감정을 더욱 드러낸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악순환을 불러온다.
감정을 좀 더 표현한 것은 “감정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였으나 오히려 “감정적인” 인간이라는 이미지에 맞춰진다. 그들의 노력은 감정 표출의 사례인 양 폄하된다.
감정주의를 반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적 성과 지위 사이의 보다 근본적인 끈을 제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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