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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9
    정희성의 시 두 편 + 하나 더(6)
    손을 내밀어 우리

정희성의 시 두 편 + 하나 더

두 아이의 학교가는 시간대가 다르고

요즘은 새벽같이 출장가는 일이 좀 드물어져서

아침마다 책읽을 시간이 짬짬이 난다.

 

잠깐식 읽을 때는

시 한두편이라도 읽어가는게 느긋하지.

 

오랜만에 정희성 시인의 최근 시집을 구해서 읽다가

아침부터 키득키득 혼자서 웃었다.

 

 

<시인 본색>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

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서도 오골계(烏骨鷄)!

 

ㅋㅋㅋㅋ...

오골계 드셔 보셨는지?

뼈가 까만 닭이다.

보약으로 곧잘 쓰는데

대학교 때 친구네 하숙집에 갔다가

늦은 밤에 출출해서

주방을 뒤지다가

채 식지 않은 닭백숙 냄비를 보고는

야 맛있겠다 해서 친구랑 열심히 먹었는데

아뿔사

그게 하숙집 주인의 남편을 위한 보양식이었다고....

미안해서

나중에 쌀 한말 사들고 그집에 다시 갔던 기억이 난다.

 

남들은 희디 흰 학이라고 남편을 칭송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속까지 다 검은 닭이다?ㅋㅋ...

뭐 긴 설명이 필요없는, 긴 사연이 담긴 작품이네.

 

내 아내의 입장에서 날 보면

아마 오골계보다 더 할껴...-.-

 

 

또 하나...

 

 

<희망>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그 전에 희망에 대해서 내가 주로 인용했던 말이라면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말 정도....

 

근데 이 석 줄의 짧은 시에서는

나 자신에게서 희망을 일깨우고 갈무리하는 자세가 보인다.

정희성 시인도 제법 나이가 들었나 보다...

 

내가 이전에 술자리에서 노래 대신에 읆곤 하던 시가

정희성의 "새벽이 오기까지는"이었는데

그 시를 한번 보면 실감이 날 듯하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새벽이 오기 전에

나는 머리를 감아야 한다

한탄강 청청한 얼음을 깨서

얼음 밑에 흐르는 물을 마시고

새벽이 오기 전엔

얼음보다 서늘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저 어질머리 어둠에 불을 지피고

타오르는 불꽃을 확인해야 한다

얼음 위에 불을 피우고

불보다 뜨거운 마음을 달궈야 한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나는 보리라

얼음 위에서 어떻게 불꽃이 튀는가를

겨울의 어둠과 싸우기 위해

동지들의 무참한 죽음과

보다 값진 사랑과

우리들의 피맺힌 자유를 위해

 

나는 보고 또 보리라

불이 어떻게 그대와 나의

얼어붙은 가슴을 뜨겁게 하고

저 막막하고 어두운 겨울 벌판에서

새벽이 어떻게 말달려 오는가를

아아 눈보라 채찍쳐

새벽이 어떻게 말달려 오는가를.

 

 

술자리에서 내가 이 시를 외우며 악을 쓰면

사람들은 마지막에 다그닥 다그닥 말달리는 소리를 내면서

술잔을 부딪히고는 했다...ㅋㅋ

 

회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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