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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attached to the Lord

John 15:1-6 (10)

* Christ and His followers are connected in an inevitable
relationship as the vine and its branches.

1. The believers’ living is based on the assurance of their own
salvation.
2. They can survive, grow, and make fruit as the healthy
branches stuck to the vine.
3. Their vitality survives through their strong connection

* God is the Gardner of the branches. He has to trim them and
work with them to make them fruitful.

1. The methods that God use to care and train are using trials
of life,, spiritual training, spiritual awareness,, improvements
of character,, gifts development, etc,
2. What parts to be transformed are among personal aspects for
becoming mature Christian?
3. What parts of my image are blocking me from becoming a
mature Christian? Which outer factors of my life block me?

* How do Christians manage their life making fruit?

1. They can spiritual growth through personal fellowship,
scripture take, meditation, Bible study, etc.
2. They can make testimonial experience through experiencing
prayer-answering of God,
3. Christian life can express their virtues like love, hope,
patience, faithfulness, goodness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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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말씀섭취와 더불어 자란다

(벧전 1:22-2:3)

본문 분해
* 진리의 순종과 영혼 관리
1.영혼 정결/ 영혼을 치료하는 약, 죄악을 치료하는 것
2. 형제 사랑/ 영혼을 강화하는 약, 건강하게 하는 말씀
* 중생케 하는 말씀: 자연인은 모태에서, 중생인은 말씀으로
썩을 것들/ 세상적인 것들, 사라질 것들
썩지 않을 씨/ 영원한 것들, 사라지지 않는 것들
인간의 영광/ 풀과 같이 시듦. 일시적임, 헛된 것임
하나님의 말씀/ 영원성, 기쁜 소식, 영혼을 살림
*신앙의 해와 유익:
1. 신앙을 방해하는 것들: 잘못된(죄악적인 세상적인 그대로의) 언어 생활,
악한 생각, 거짓된
모습, 속임을 주는 헛된 것들, 영적 성장 저해 증후군/
병든 생각, 상한 마음, 더러움,
거짓된 것을 좇아가는 어리석은 성향(영적인 혼란을 초래)
2. 신앙을 성장케 하는 것들: 구속(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고 무장)된 언어 생활,
영혼의 사모하는 심령, 말씀 안에서 건강한 영양을 공급받음
영적성장의 원리/ 영적으로 건강하면 신앙은 성장한다.
평소의 신앙 생활에 기쁜 마음,
정결함, 영적성장에 필요한 영양(우유(초보의 도리)와 장성한 자의 음식:
고도의 영적성장
가르침이나 고난속에 받는 영적인 훈련)을 공급받으면 성장한다.

본문 배경 이해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거룩한 생활의 자원은 세가지 분야에서 적용이 된다.
정결케 하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형제를 신실하게 사랑하는 것과
그리고 영적 성장에 대한 갈구로 나타난다.

22. 거룩한 생활은 정결을 요구한다.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적극적인 결과는 정결한 삶으로 나타난다.
어떻게 젊은 사람이 정결케 되는 것일 까?
시편 119:9 에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 가는 데에 있다.
시련은 믿음을 정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성품을 정제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서 정결케 되는 사람의 순종의 기쁨이 있다.

중생을 통해 시작되는 변화된 삶은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과의 변화된 관계를 통해 증거가 된다.
정결한 삶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신실함은 가식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와
자매들을 악하게 생각하는 것을 벗어나야,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는 제자들이 된다.

이런 사랑은 변화된 마음에서 오며, 순수한 동기로
그리고 자신이 맡은 것보다 더한 것을 추구할 때에 일어난다.
이런 사랑은 좁은 사랑이 아니라, 깊이 있는 충분하고 강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벧전 4:8 에 무엇보다 열심으로 사랑하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이런 사랑은 사람들의 필요에 닿는 데까지 나간다.
롬 12:10, 요한 13:34, 요일 3:!1

23- 2:3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다시 상기시킨다.
거듭남에 대한 새 생명의 출생에 대해,
초자연적인 사역이 영혼의 거듭남은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들이 정결케 되는 일과,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항상 있는 것으로
베드로는 이사야 40:6-8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낡아지고, 시들어 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존재한다.
이 말씀이 설교한 말씀이며,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2:1 크리스천의 삶에서 회개와 변화는 자신의 옛 성품(모습, 성향)을 벗는 것으로 시작한다.
롬 13:12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엡4:20-24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오직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베드로는 다섯 가지 죄에 대해 언급한다. 자세와 언어로/
1. 악의/악한 의지로, 악한 생각에서 모든 악이 시작된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마가 7:20-23).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 (렘17:9)
2. 거짓 / 부정직한 것으로, 거짓은 진리의 반대로 거짓은 인간의 영혼을 기만한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다. 고로 거짓은 사단의 영향하에 들어가기 쉽다(요한8:44).
3. 가식/ 종교적인 위선적인 상태로 경건과 사랑하는 것을 체하는 자세,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다. 자신의 영혼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거나 변화를 주지 못하는 종교적인
허울이다 (마태23장에서 주님께서 종교적인 바리새주의에 책망하심).
4. 시기/ 원한 내지는 불만족에서 오는 것으로 잘못된 인간관계나 교제에서 온다.
5. 중상, 비방/ 뒤에서 험담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영적인 영향력을 받거나 준다.

이런 죄들로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은 거듭남을 이루어 그길을 따라사는 사람과
늘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힘쓰는 자에게서 이루어진다.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과거의 이런 행적들을 끊어 버린다.

2:2 / 어린아이같이 젖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으로/ 불순한 바람과 동기를 버리고,
신앙의 건강한 자세로 영적인 음식섭취를 통해 성장을 이루어 간다.
순전한 젖은 다른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거짓 가르침이나 이단의 가르침등과 다르다.
순수함은 거짓된 것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되지 않아,
크리스천들은 깨끗한 마음과 정신으로 영적으로 자라기를 갈망하면서
말씀을 사모하는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구원의 궁극적인 성취를 바라며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 하여, 일곱번 단련되고 정제된 것과 같다고 하듯
말씀은 그 자체 안에 순결성과 효용성이 나타난다. 그것이 또한 말씀의 생명성이다.
복음은 단순한 진리의 가르침 위에 서있다.

크리스천의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타난다.
1. 말씀이 그의 생활의 원천이 되는 것과 사 55:10, 요한 15:3 히4:12
2. 그의 영적 생명으로부터 죄를 없애는 일
3. 하나님의 진리가 그의 필요를 채워 주는 일
4.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일
5. 그의 축복하심을 알아가는 조사하는 일등이 필요하다.

2:3/ 베드로는 시편 34:8에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를 인용 하며,
우유의 유사함과 현재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으로 새로운 출생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고, 주님은 은혜를 풍성하게 주시는 좋으신 분이다.
구원에 대한 믿는 사람들의 경험은 얼마나 주님의 은혜가 자비로우신지를 알게 된다.

신학적인 가르침
중생(거듭남)에 대해
거듭남은 영적 출생을 의미하며, 재생산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자연적인 출생은 인간의 모태의 출생에서 시작되며,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현자의 지혜의 깨달음이나 지식의 습득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새롭게 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생명성이 있으며,
썩지 아니할 씨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성이 있다.
천지는 없어져도 내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영원속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약속을 주신 구원의 말씀으로
그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영적인 출생을 가져온다.

거듭나는 것(중생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며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위로부터 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선포되고 기록되고 모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이루었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인간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신다.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신을 영적으로 출생케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적인 인생이다.

말씀 섭취에 대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영감으로 이루어진 정확 무오한 말씀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며, 죄악을 씻기며,
사람의 모든 부분을 수술하는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이 또한 요구된다.
말씀 섭취는 말씀의 맛을 느끼며, 날마다 말씀이 주는 은혜를 받아,
지속적인 말씀의 효력을 통해, 말씀의 성육화를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속에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에의 능력이나 효력에 압도되어 말씀의 영향력에 따라 사는 것이다.

성경 공부 안
*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에 양약이 되는 것이며,
자신의 영혼을 살리며, 건강하게 비결입니다.
말씀은 영혼을 정결케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며,
인간의 죄악을 치료하는 도구로 쓰여집니다(히브리서 4: 12).

1.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혼에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자신이 받은 영혼의 유익은?
2.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는 영혼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말씀이 주는 영향력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부분은?
취미,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사람과의 교제등 중에 어느 것인가요?

*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중생케 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자연인은 모태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출생하는 중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1. 인간 세상은 모든 것이 썩을 것들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 세상적인 것들을 이생의 자랑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육체의 정욕등 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세상의 영광은 풀의 꽃처럼 시들어 버립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영혼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그 말씀은
썩지 않을 씨입니다. 그 말씀을 받은 영혼에 영원한 것들을 심습니다.

* 신앙 생활에는 영적인 굴곡이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이 있는가 하면, 슬럼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신앙을 방해하는 것들은 악한 의지로, 거짓, 가식, 시기, 중상,
비방등으로 부정적인 영적인영향력을 준다. 자신에게 있어서 문제되는 부분은?

2. 크리스천의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타난다.
말씀이 주는 유익은? 삶의 힘, 죄를 없애는 일, 자신의 필요를 채움,
영적 성장을 가능케함, 축복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우에는 어느 부분에 도움을 받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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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 to give the truth of salvation

II Tim. 3:14-17(1-17)

* The situation of Christians in the world

1. There is mainly human-centered life style, prevailing hedonism, and atheism in the world.

2. False teachings lead saints astray.

3.Christians are struggle with persecutions.

* The Chrsitians are born and grown through Bible study.

1. Bible study can make learners assured of the truth of salvation.

2. The study can make Christians to become like people of God.

3. The study also teaches them how to work well in the world as His wo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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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에게 붙어있는 사람들

포도 나무의 비유: 요한 복음 15:1-6(1-10)

본문 분해
포도 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의 필연성
1. 농부와 포도 나무
가. 예수님은 생명의 포도 나무이시다.
나. 하나님은 포도 나무를 가꾸시는 농부이시다.
2. 농부와 가지와의 관계
가. 농부의 손질
나. 말씀의 역사와 가지의 손질
3. 나무 가지의 생존 사상
가. 나무와 가지의 관계: 생존에 있어서 필연적인 관계
나. 가지의 목적: 열매 맺음
다. 가지의 열매 맺는 비결: 나무를 통해서 가지는 열매를 맺는다.
라. 가지의 운명: 열매를 통해 생존, 번영, 열매가 없으면 가지치기를 당해 버림

본문 배경 이해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세가지 관계에 대해 언급하신다.
첫 번째는 제자들이 주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것을 말씀하신다 (1-10).
두 번째는 제자들 서로의 바른 관계를(11-17),
마지막은 세상에 대한 제자들의 자세등(18-: 16:4)에 대해 언급한다.
제자들은 주님 앞에서 세가지 책임 있는 의무 이행이 있는데,
그것들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과 그리고 세상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요한 복음에서 주님에 대한 7가지 진술을 말하는 것 중에 마지막 언급이다
(1. 생명의 떡 6: 35; 2. 세상의 빛 8: 12; 3. 양의 문 10: 7; 4. 선한 목자 10:14;
5. 부활이며 생명 11:25; 6. 길, 진리, 생명 14:6; 7. 포도 나무 15: 1).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포도 나무임을 언급하였다
(시편 80:9-16, 이사야 5:1-7, 27:2-6, 렘2: 21; 12:20, 겔15: 1-8; 17:1-21; 19:10-14; 호10: 1-2)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 나무이심을 언급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포도 나무의 정원사 혹은 관리인으로 언급한다.
포도 나무에는 두 가지 타입의 가지가 있다.
1. 열매를 맺는 가지(2,8). .2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2,6).
열매 맺는 가지들은 참된 신자들을 의미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은 형식적으로 믿는 것을 (믿는 체하는 것을 의미) 말한다.
열매가 적은 것은 구원받은 것을 결코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도 주님을 믿는자이며,주님을 영접한 자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앞에서 구원의 선물을받지못하고
그분앞에서 신앙의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은
정한시간에 종말적인 심판과 영원한 버림을 받는다(겔15: 6-8).
2 절
농부는 열매를 기대한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에 기대하신 것은 순종하는 것과
의로운 것(스스로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의(하나님과의정상적인 관계의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사야 5:1-7)

나무에 붙어 있는 모든 가지 중에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농부께서 자르신다.
매년 팔레스틴에서는 농부들은 나무에서 쓸모없는 가지들을 전지한다.
그 농부들은 또한 생명이 없는 죽은 나무들을 자르며,
시들른나무일지라도 그곳에 가지들이있다면
그나무에 있는 살아있는 가지들가 열매를 더 맺도록 다듬는다.
주님에게 있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예를 들면,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잘리움을 받았다.

3절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깨끗함을 입으며(주님의 보혈로만 사람들의더러움을 씻을수 있음),
그리고 그의 말씀(그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며
하나님앞에서 정결한 심령이 되도록 한다 벧전 1:22-24)을 통해 정결함을 입는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깨끗함을 받지 못했다(요한 13:10-11)
4절
열매 맺음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안에서 그 심령을 통해 새생명의 재생산하는
삶의 결과로 이루어진다(예를들어, 주님을 통해 목적이 달라지며,
세상에서 하늘의 생명의 길을 좇아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의 심령속에서 사역을 이루어 가는것임).
4-6절
거한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하는 자신의 해야 할 일중에 가장 중요한 일의 부분은
주님 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즉 그 뜻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 보다는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에게 자신의 모든 삶에 대해 여쭈어, 그분의 인도를 따르는 상태가 되어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주님앞에서 그분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열린 귀와
사랑의 순종으로 무장된 마음과 그분을 향한 열정적인 헌신의 결심을 좇아
행해지는 선한 의지을 유지하는 상태)
즉 그런 상태가 바로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다.
거한다는 것은 사도요한 신학의 중심사상의 언어이다.
헬라어 “메노”라는 거한다는 말이 15장에서 11번 나온다
(요한복음에서는 40번이 언급, 요한 서신서에서는 27번언급).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 거한다는 것은
첫째,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며, 둘째 믿음 안에서 지속하며, 보존되는 것을 의미하며(요일 2:19,24), 셋째 믿는 것과 사랑하는 순종을 의미한다(요한15:9-10).
이런 자신이 주님안에 거하게 하는 믿음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는 참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

거한다는 것은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이 이미 구원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요일 2:19).
구원의 열매와 그 증거는 주님과 그의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섬김에 있으며
(요한 8:31, 요일 2:24, 골 1:23).
옳고 바른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거하는 것과 믿는 것은
그가 현재 진실한 구원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히3: 6-19).
고로 주님 안에 거하는 크리스천이 인생 각자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앞에서 합법적인 그리스도인이다.
즉 그것으로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한 복음 15장에서 주님 안에서 거한다는 것은 두 가지로 알 수 있다.
주님의 사랑에 거하는 것(15:9)과 주님의 교훈에 거하는 것((15:10)을 통해
주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이루러 감을 알 수 있다.
상대방과 좋은 교제를 이루려면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향해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만 해도 좋고,
그분을 느껴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나 권면은
무엇이든지 그 내용을 듣기를 좋아하고, 따르고 실천하고 싶어한다.

6절
예수님과 함께 하는 지속적인 교제는 즉 믿는 자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거주를 의미한다.
그 결과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파멸을 맞는다.
생명이 없는 가지는 죽은 것이며 잘리움을 당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쓸모 없는 것이며 불에 던져져 불에 태움을 받는다.
포도 나무의 가지가 불에 태움을 받는 것은 상징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3가지 면으로 해석을 한다.
1. 불에 태움을 입는 가지는 그들의 구원을 잃어버린 크리스천을 의미한다
(이 사상과 대치되는 성경 구절들은 요한 3:16, 36 10:28-29 롬 8:1등인데
구원의 확실성 내지는 영원성을 강조한다).
2. 불에 태움을 입은 가지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의 보좌에서
상급을 잃지만 구원을 잃지 않을 것이다(고전 3:15),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기서 죽은 가지들 즉 던져져서 시들어버린다).
3. 불에 태운 가지들은 가롯 유다와 같은 가식적인 크리스천들을 말하며,
참으로 구원받지 못하여 결국 심판을 받는다.
죽은 가지와 같은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며,
고로 영원한 지옥 불에서 처벌을 받는다(마태25: 46).
처음에 가롯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어,
그는 마치 생명의 참 포도 나무의 가치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다.
고로 그는 떨어져 나갔으며, 그의 운명은 죽은 가지와 같이 되었다.

파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마태3: 10-12, 5:22, 13:40-42,50, 25:41, 막 9:42-49 눅 3:17, 살후 1:7-9 계시록 20: 10-15)

7-8절
6절과 대조적으로 이 구절들은 포도나무의 교훈들을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열매 맺는 방법 중에서, 효과적인 기도는 믿는 자 안에 있는 주님의 말씀과
주님 안에 있는 믿음에 기초에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의 믿음에는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와 교제를 이루어가는
그분 자신에 대한 믿음과 그분이 하시는 구체적인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믿는 자의 생각을 조정하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할 수 있도록 한다.
고로 그들의 기도는 응답의 확실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한 것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믿는 자의 응답 받은 기도들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된다.
그렇게 주님의 제자들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게 된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당신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소서, 마태6: 10).

9-10절
예수님의 사랑의 경이로움에 의해 동기 부여를 받은 신자는
그의 자질이나 능력의 범위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의 패턴을 따른다.
즉 주 예수님께서 아버지와의 사랑의 관계를 맺고 계시는 것처럼
그의 제자들도 그 패턴을 따른다.
주 예수님께서 내사랑 안에 거하라 함은 신비로운 것 같으나,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만드신다.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아들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과 동일하다
(요한 14:15, 21, 23; 요일 2:3, 3:22, 24; 5:3).
고로 주님에게 능동적인 의존하는 것과 그분에게 사랑하는 순종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든 것을 향해(천성을 향해) 가는 진정한 생명의 길이다.
신자들의 세상살이는 천국백성들을 만들어가는 예비의 기간의 삶이다.

신학적인 가르침
포도 나무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대표하기도 하며,
그 포도 나무는 때로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종류나 상태를 알려준다.
하나님께서는 열매 맺는 지도자,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선택하신다.
포도 나무의 유익과 가치는 그의 열매에 있다.
신약에서 포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복음서에서 6번 정도 있다.
주님의 성찬식에서 혹은 비유에서 그리고 가르침에서 이다.
구약에서 포도의 열매를 포도주로 사용하는 것을 언급한다.
이스라엘은 포도주를 두 종류로 사용한다.
하나는 물을 섞은 음료수로서의 포도주이며,
그리고 100% 포도로만 이루어진 알코올로서의 포도주이다.
예수님은 포도의 열매를 기도와 연관된 것으로 언급하시기도 한다.
그런 언어적인 표현은 하나님의 축복의 사인으로 포도를 언급한다
(창27: 28, 요엘 2:24).
또한 구약에서 포도에 대한 이미지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그에 따르지 못하는 백성들의 한계를 나타내곤 한다.
극상품 포도에 대한 기대를 하나님께서 가지셨으나,
그 기대를 저버린 이스라엘은 쓸모없는 부패한 포도의 열매를 맺어,
주님의 심판을 자초하였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포도 나무를 자신으로 표현하시며
그 포도 나무를 참 포도 나무로 언급하신 것은
그를 거부하는 유대인들 불신실함에 대비되는
그의 진정한 메시야이심과 하나님의 참 아들이심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보다 앞서온 거짓 선지자나 거짓 스승 등과 대비한 표현이다.

주님은 자신을 줄기나 뿌리로 언급하지 않으시고
포도 나무 전체로 언급하신 것은
그의 제자들이 그 나무의 부분으로서 그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함을 말씀함이며,
즉 이말의 뜻을 풀어 설명하면,
주님을 믿는 일에 있어 그분안에 머물러야 하는 성도가
결코 주님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자신의 목적이며, 그분의 영광을 향해 사는 것이
그분안에 거하는 자의 삶의 모습이다.
이것은 요한의 핵심 사상인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자들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알리기 위한 구체적인 비유이다(요한 17:20-23).
바울은 몸의 이미지로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관계를 설명한다(행전 9:5, 엡 1:23).
요한복음 15장에서 표현된 포도나무의 상징들은
제자도의 중요한 면들을 즉 사랑, 믿음, 거함, 순종등의 의미를 알려준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에서 그런 의미들을 더 자세하게 언급한다.
주님과의 교제에서 출발한 영적인 삶의 모습이 어떠 함을 알려준다.

가지에 대해
성경에서 가지는 나무나 혹은 포도 나무와 연관된 것으로 언급한다.
상징적으로 알려지지만, 가지는 나무의 가시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가지의 특성을 따라 나무의 종류를 알려준다.
가지는 견고한 뿌리와 주된 줄기에서 영양을 공급받으며,
거기로부터 자기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붙어 있으며,
가지가 달고 있는 잎이 자라서 열매라는 풍성을 생산한다
(주님은 우리를 잎으로 보지 않으시고 가지로 비유하셨다).
꿈 해석가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서 3개의 가지를 기적적으로
생산과 풍요의 이미지로 포도가 맺힌 덩어리를 언급한다(창40:10).
자연의 혜택에 대해 시편 104:12에
시냇가의 근처에 자란 나무에서의 가지에서 새들이 생활하며 노래하는 그림을 보여준다.
건강한 나무의 가지에 대해 에스겔은 포도원이 풍부한 물에 의해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 맺을 것을 언급한다.

열매맺어야 하는 가지가 주는 의미는 참 신자와 거짓 신자의 차이를 보여준다.
참 신자의 특징은 열매 맺음을 알 수 있다.
참 신앙인이 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은 그의 열매로 알 수 있다.
진실한 지도자와 거짓 지도자의 구별도 그의 행실과 그에 따르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뜻은 모든 사람의 됨됨이를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관계와 교제의 이해
크리스천의 생활에서 주님과의 관계 설정은 처음에 일회성이면서 영원성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과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면들을 다루게 한다.
주님과의 근본적인 관계는 성도에게 있어 자신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다.

관계와 교제는 불가 분리의 연관이 있다.
건강하고 견고한 관계는 지속적이고 풍부한 교제를 보장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정상적이며 건강한 관계는 오래 지속하며, 자주 교제를 갖게 한다.
관계가 잘못 설정이 되면 교제의 활성화는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면 그 정상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통해
지속적이면서 풍성한 교제가 이루어진다.
주님과의 관계 설정은 마치 나무가 계속하여 뿌리를 내려
자신의 생존을 보존하는 것처럼,
주님과의 관계를 신선하게 할 필요가 있다.
결혼 생활에도 부부가 서로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가운데에 풍부하게 되며,
다양하게 되고, 둘의 관계는 더 돈독해진다.
결혼 기념일 챙기기, 은혼식, 금혼식, 부부간의 기념적인 사건이나
역사적인 계기를 만드는 일들을 수시로 하는 것은 좋다.
간증할 수 있는 일이나 사건이 많이 생길수록
자신과의 주님과의 관계의 줄을 더 튼튼하게 묶는다.

그것처럼 주님과의 성도와의 관계도 구원의 관계를 신선하게 하기 위해 재 헌신이나,
혹은 주님을 위한 삶을 살기로 하는 새로운 결단이나
헌신적인 자세의 매무새 고침 등을 통해 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를 더 깊은 더 풍부하게 경험하는 것도
주님과의 관계를 강화시켜주는 데 도움이 된다.
주님과의 교제는 관계의 어떠함에 영향을 받는다.
관계가 신선하고 진지하고 생생하면 할수록
교제는 깊어지고, 폭이 넓어 지며, 교제는 활발해 질것이다.

기도의 응답이나 은혜나 은사의 체험은 교제를 더 활성화 하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주님과의 관계 설정에 일조하는 일
즉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다른 사람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말씀 사역에 종사하는 일도
주님과의 교제를 풍성하게 한다.
주님의 포도 나무에 붙어있는 다른 가지들을(성도들)위해 봉사하는 일도
자신의 가지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된다.
다른 성도들을 섬기고 도와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돕는 일이며,
자신에게 일시적인 유익과 영원한 영광을 동시에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성경 공부 안
* 요한 복음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크리스천의 관계는
참 포도 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의 필연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신자들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구원의 확신인가?
아니면 주님에 대한 충성심인가?
주님을 위한 헌신의 자세인가?
교회와 타 성도들을 위한 봉사인가?

2. 참 포도 나무의 관리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지의 처분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가지에 대해 전지하는 것(가지를 손질)과
접붙임 하는 것(새로운 특성으로 만듬), 아니면 잘리는 것(버림받음) 등이다.
이 전지하는 것이나 가지를 새롭게 하는 방법은?
삶의 시련이나 영적인 훈련이나, 영적인 깨달음, 아니면 성품 개조,
은사 개발 등 아니면 다른 요소들은?

자신이 가지로서 성장하고 열매 맺는 충실한 가지로
변화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보세요.

* 신자로서 열매를 맺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는?
내부적으로 병든 가지는 충분하게 나무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
외부적으로 상한 가지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가지로서의
생존이나 성장이나 열매 맺음에 영향을 받는다.
1. 건강한 가지가 되어가는 데에 있어, 방해 받는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문제는?
2. 가지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외부의 요인?

* 신자로서 하나님 앞에 열매 맺는 생활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1. 말씀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통해 나타나는 신앙적인 표현은?
2. 기도의 생활을 통해 보여주는 간증적인 체험은?
3. 크리스천의 삶을 통해 나타내는 생활의 현상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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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racle of praise and the work of salvation

(Acts 16:16-34)
* There is a dark environment in the non-believing
world.
1. The evil forces mislead to the hearts and the minds of
non-believers.
2. Non-believers are easy to drive into foolish idol
worship and a kind of divination.
3. How do we Christians overcome the unsaved
phenomena impacted by the dark force?
By having sound faith based on biblical teachings and
consistent personal fellowship with the Lord

*The miracle of God should work on the faith expression
of the people like praising and praying God.
1. Praising God means to glorify God and it moves
God’ s mighty hand.
2. The miracle of God works to save people who depend
on God’s salvation.

* The message of messenger can cooperate with the
responding attitude to the receiver for the work of
salvation.
1. One ’s salvation comes from believing and confessing
Jesus as own Savior.
2. How do we express our personal confession?
Self-testimony, public bap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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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확신하는 진리

딤후 3:1-17 (14-17)

본문 분해
1-9 말세의 상황, 교회의 상황
인본주의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세계관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무시하는 인간 중심의 종교는 인본주의의 신앙적인 행태이다.
쾌락주의 인간의 쾌락 추구는 타락한 인간의 성향을 나타낸다
(자기의 배만 위하는 자기본위의 지나친 감성 주의)
형식주의 신앙의 껍데기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다.
믿음의 힘이 없는 사변적인 신앙, 화석화된 종교인들을 양산하는 경우
이기주의 기복적인 신앙의 중심에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적인 행태가 있다.
신앙의 이기주의는 자기 중심의 공덕 주의나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는
자기 기만이 있다.
어리석은 배움의 무익 신앙을 갉아먹는 탁상공론적인 신학 교육의 추구,
경건의 원리를 무시하는 신학적이고 철학적 이론을 추구하는 가르침.
성경적인 가르침에 위배되는 이단적인 가르침의 위험

10-13 성도의 모습, 성도의 현실
진리에 대항하는 현상 진리를 사랑하는 가는 진실한 성도나 지도자의 가늠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진리를 사랑하는 자이다.
진리에 거역하거나 대항하는 것은 거짓된 교리를 좇아가게 만든다
믿음의 실패 믿음의 파선자는 믿음을 담는 믿는 마음의 실패자이다. 그런 마음은 교만한 마음,
부패한 마음, 안일한 마음, 그리고 퇴보하는 마음 등이다.
신앙인의 고난 경건을 위해 사는 자,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는 성도는 고난의 현실이 있다.
그들 앞에는 늘 신앙적인 핍박, 생활의 곤란,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도전들(동성애, 낙태주의자, 세속주의등)이 있다.

14-17 교육의 유익, 성도의 교육
1. 배우고 확신하는 일 기독교의 진리는 가르쳐 배우는 확신함을 주는 말씀 교육이다.
2. 구원을 얻는 진리 교육 성경 교육은 믿는 자를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교육이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는 생명 교육이다
3. 의의 교육 성경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도덕 교육이며, 참된 인성 교육이다.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는 말씀 교육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다.
고로 성경 중심의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의 사람의 육성과 성장과 완전함에 이르게 한다.
본문 이해
1-9 불신적인 상황
말세라함은 초대 교회로부터 주님의 재림 시까지 전교회 역사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 중간 시기에 세상은 사회적으로 타락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타락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에서 19가지의 종말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알려주고 있다.

1-5 말세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은
1. 자신을 사랑하는 즉 자기중심 주의나 이기주의에 몰입되어 있다.
2. 돈을 사랑하는, 맘몬 사상이 팽배하며 (딤전 6:9-10)
3. 자랑하는 체 내면의 자신에 충실하게 보다는 외형에 치우치는 사람
4. 거만한 자, 오만함과 교만을 내세우는 사람
5. 타인을 거부하는, 하나님께 대해 신성시 하지 않는 무신론적인 사람
6. 부모를 불순종하는 사람
7. 감사치 않는 사람
8. 거룩하지 않는 사람
9. 사랑이 없는 무정한, 따뜻함이 없는 차가운 마음을 가진 사람
10. 용서치 않으며, 사단적인 사람(딤전 3:6-7 딤후 2:26)
11. 중상하는 사람
12. 자기 절제가 없는 사람
13. 잔인한, 길들이지 않는, 건전한 시민 사회에 거역하는 사람
14. 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15. 악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울인 현상으로, 배반적인 사람
16. 무모한, 지각없는, 무분별한, 조급한 사람
17. 자만심, 우쭐대는 사람(딤전 3:6; 6:4)
18.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
19. 경건의 모양(형식) 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로마서 2:20; 딤전 1:16)

바울은 이런 것들에 언급을 에베소서에서 하고 있다.
디모데가 대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조심하며,
그들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할 것을 권면한다(딤후 2:24).

6-7 거짓 교사들의 출현
바울은 에베소의 특수한 현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거짓 교사들이 누룩처럼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들이 만연할 것이라 한다.
그 거짓 교사들의 방법은 교활하기 그지 없다.
그들은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 속이기 쉬운 사람들을 향해
그 어린 성도들에 대해 친근하게 접근하여, 악한 영향을 끼친다.
에베소 교회의 경우에는 의지력이 약한 여 성도들에 접근하여
여러 가지 탐욕으로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유도하였다.
바울은 거짓 가르침은 도덕적인 타락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거짓 교사들은 사람들의 육욕성과 비도덕성을 부추긴다(에베소서 4: 14).

이단적인 가르침은 일시적인 유행적인 현상으로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준다.
(한국의 80년대의 종말사상에 심취한 다미선교회등)
어린 신자들은 그들이 진리를 알기 전에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한다.
진리를 아는 것은 진리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져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딤후 2:25).

8-9 진리의 리더십에 대항하는 자들
유대인 전설에 의하면, 얀네스와 얌브레는 모세의 지도력에 대항하였다.
바로의 술사들로서 모세와 경쟁하였다(출애굽기 7:11,9:11).
여기서 바울은 거짓교사들과 애굽의 술사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부패자들로 사람들을 타락으로 유인하다(딤전 3:9).
결론적으로 그들의 교회에 대한 영향력은 잠시는 심각하게 주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얀네스와 얌브레와 같은 어리석은 자들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잘못이 밝혀지는 것이다(딤전 4:15, 5:24-25).

10-13 반대에 직면한 신실한 일꾼들
바울은 인내와 신실함에 대한 자신의 예를 들면서,
디모데에게 직접적으로 권면한다 (2:1).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들과 목적, 믿음, 인내, 사랑, 참음, 핍박,
고난들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참 교사의 가르침들을
디모데가 알아야 할 것을 권면한다.
안디옥, 이고니움,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선교 여행을 하였던 디모데는
일찍이 젊은 선교사로서 신앙인의 고난 당하는 삶을 경험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핍박을 받는 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디모데를 비롯한 모든 크리스천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바울은 자기의 경험을 통해 여기서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가 처한 상황(기독교 사역자의 사역 현장과 성도들의 신앙적인 삶의 현장)에 대해
거짓 가르침들이 악한 사람들과 사기꾼들 사이에서 널리 만연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오늘날 정상적인 기독교 주변에는 많은 이단적인 집단들과
이상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 현상들은 신앙의 세계를 더 힘들게 하는 것으로
그런 거짓 가르침으로 속이는 일과 속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14-17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신앙 교육
14-15 디모데가 받은 신앙 교육
이방인의 문화와 유대 종교의 혈통이 섞인 디모데가 어릴 때부터 받은 신앙 교육은
부모로부터 받은 신앙 중심의 교육과 성경 중심의 교육은
그의 받은 교육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그에게는 두 가지 교육의 원천이 있다.
좋은 신앙인의 모델 교육과 성경 교육을 받은 것이다.
이 성경 교육은 구약에서 나온 진리에 대한 교육으로서 바울처럼
그도 또한 율법주의의 한계를 넘어간 전형적인 신앙인이었다(딤전 1:2; 딤후 1:2,5; 행전 16:1).
그 구약 성경의 책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에
맞추어 졌을 때에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다(아브라함과이삭, 야곱등)

16-17 성경 교육의 목적과 유익
성경은 디모데가 어릴 때부터 받은 성경 교육은 구원에 도달하게 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율법은 복음의 몽학(유치원)선생 역할을 하였다).
바울은 여기에서 디모데 에게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의 구약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 졌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독을 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고로 그 책들은 오류 없이 이루어진 책들이다. 이점은 유대교에서도 강조하는 점이다.
바울은 말씀의 유용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디모데의 사역의 각 방면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
죄를 지적하고 잘못을 책망하는 일(딤전 5:20, 딤후 4:2),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 주는 일(딤후 2:25, 4:2),
그리고 새 신자들을 하나님의 길,
즉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게 하는 의의 교육은 아이들을 훈련하는 것처럼
성도들을 훈련하는 일이다.
이런 교육들은 하나님의 성경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많은 유익을 주는 것이다.

성경 교육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영적인 리더십을 갖고 있다.
그는 온전하고, 능력이 있으며, 효율적인 사람으로
모든 교회의 일꾼의 조건들을 채우는 것이다.
그는 모든 선한 일들을 위해 자격을 갖춘 일꾼인 것이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 젊은 사역자에게 사역의 무거운 책임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의 헌신을 깊이 신뢰하고 있으며,
성경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디모데의 사역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는 능력을 의존하게 하는 것이다.

신학적인 가르침
악한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한 이해
초대 교회 때부터 주님의 재림 때가지 교회는
영적 생활의 중간 시기로 종말의 시기에 살고 있다.
주님도 성도들이 사는 세상은 양들을 이리로 보내는 것처럼
선한 사람들이 살기에는 힘든 악한 현상들이 타락한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나 불합리한 현상들은 인류의 범죄의 결과로 이루어 졌으며,
지금도 그러한 악하고 모순되고 부조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선한 이들은 그 가운데에서 악한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거기에 지기도 하고, 그런 현상들을 극복하며 살기도 한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 지며,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오는 그날에는
더욱 하나님의 심판에 걸릴만한 인간 사회의 악한 현상들이 만연할 것이다.
우리의 주변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문명의 발달이나 문화의 진보는
과거보다 사람들의 마음은 순수함 보다는
유능함을 추구함 나머지 교활함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순전한 마음으로 순종하기 보다는 진리의 권위에 도전하는 오만함으로 나가기도 한다.
인구가 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돕는 상부상조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인구의 폭발로 인하여
생존에 대한 경쟁심이 늘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차갑게 하고 무정하게 한다.

우리 시대의 이전의 사람들은 단순히 복음을 믿으라고 전하면 되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기독교의 보편화로 인하여,
복음의 진리를 믿는 크리스천들 중에서
기독교의 본질의 가치나 의미가 변색이 많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 있는 불신자들은 신자들에게 더 많은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며,
선한 행실의 열매를 바라 보기를 원하며
단순히 복음의 진리를 듣고 받아들여 변화 되기보다는
아무리 좋은 진리이라도 그 절대적인 진리를 우선 거부하며,
인간의 좁은 생각에서 나오는 상대적인 평가로 판단하기도 한다.
고로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신앙인의 경건의 능력과
복음을 전달하는 사역자들의 복음 메시지의 능력을 요구하는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거짓 가르침의 문제, 이단에 대한 이슈
이단은 기독교 근본 교리에 대해서 잘못되게 가르치는 거짓 가르침이다.
초대 교회로부터 이천년의 교회 역사는 수도 없는 이단들이 나타나서 교회를 어지럽혔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진리의 교육을 소홀히 하면
신앙이 여린 성도들은 미혹을 받기 쉽다.
이단적인 가르침들은 성도들을 유혹하기 위해
호기심을 자극하거나(이상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어리석은 현상)
사람들에게 긴박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종말적인 가르침 등으로 무장한다.
최근까지 세계 교회나 한국 교회는 많은 이단들의 현상들을 보아왔다.

성도들에게 진리에 대한 가르침으로 건강한 신앙을 세우게 하거나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무장시켜야 할 책임이 사역자 들에게 있는 것이다.
사역자들은 먼저 건전한 신학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기 구원(자기가 이해하고 경험한 성경적인 구원관)과
자기 복음(자기가 이해하고 경험한 성경적인 복음관)에 대한
확실한 목회 가르침 내지는 기독교 교육 철학이 있어야 한다.

필자의 목회 사역 중에 제일 안타까운 일들 중에 하나가
열심을 가졌던 순수한 평신도들이 하루 아침에
이단의 가르침에 미혹되어 가정을 버리고,
자녀 교육을 등한히 하고, 이단 집회에 빠져 정상적인 신앙 생활에서 이탈해 나갈 때이다.
어느 경우는 이단의 가르침의 배후에는
이단의 영들의 현상이라 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게 충실했던 신실한 신앙적이었던 교회의 일꾼들이
이단의 가르침에 빠지는 것이나,
이단적인 집단에 속한 사람들 중에 사회적으로 엘리트이며,
지극히 이성적이라 할 수 있는 사회 명사나
저명한 학자들까지 포섭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 배후에는 인간의 마음을 미혹하고
강한 영향력을 주는 영들의 역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 교육의 이슈들
아무리 인간 교육이 발전하고,
좋은 이상적인 가르침이라도 사람은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교육만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들의 인성 교육을 가능하게 하며, 참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을 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회 교육의 본질은
흔히 보통 교회에서 하는 짜여진 프로그램에서 하는 제자 교육이나
특수한 접근에 의한 단계별 교육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포괄적으로 가르치는 성경 중심과
성경의 권위에 입각한 하나님 말씀을 직접 가르치는 것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교육은 교육을 맡은 사람들의
옳은 성경적인 신앙의 바탕 위에서 성경의 가르침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받는 학습자들의 신앙적인 학습을 통해
진정한 기독교 교육이 일어날 수 있다.
성경 교육은 사람들을 구원을 얻게 하는 구원의 진리의 교육과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역사적인 가르침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 수 있는 교육적인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 공부 교안
*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상황
성도들이 사는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인본주의, 쾌락주의, 무신론 등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신앙인들의 맹점인 신앙의 형식주의와
이기적인 신앙적인 행태는 신앙인들의 경건을 무력하게 한다.
때로는 성도들 주변에 거짓된 가르침들이 미혹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앙인의 배움에 유익을 얻지 못하는 현상 등도 있는 것이다.
1. 자신의 주변에서 겪는 일반 사회적인 현상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영향을 주는 현상은 무엇인가요?
2. 신앙인으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에 겪는 어려운 일들이 무엇인지요?
3. 신앙인으로서 그러한 어려운 일들을 어떻게 극복하는 지요?

*성도의 현실적인 문제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삶은 때로는 자유롭지 못하고,
어떤 때에는 힘든 일도 겪는다. 그리고 일반 사회에서 소외되는 현상도 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의 현실이다.
1.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부딪치는 신앙적인 이슈는?
2. 말씀의 진리에 대한 자신의 신앙적인 자세는?
3. 성도로서 삶의 현장에서 겪는 고난의 문제들은?
성도로서 그런 고난의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3. 하나님의 사람 교육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는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일을 통해
자기 확신하는 데 이를 수 있다.
먼저는 자기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려주는 진리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연결해 주는 의의 교육을 할 수 있다.
부모를 둔 모든 자연적인 사람은 그 부모를 통해 인간이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1. 자신의 구원의 확신에 도움을 주는 성경 말씀은 무엇인지를 나누어 보세요
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3. 자신을 변화시킨 말씀이나 교육을 받은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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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생활과 영성변화

올해 새해 정초에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는 말씀이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믿는 자에게 주신 주님의 은총이다.
만물을 조성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의 심령에 부딪치는 커다란 반향이 된다.

그 동안 나의 기도 생활은 나의 영성을 유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성은 영혼의 성품인가? 영혼이 향하는 영적인 경향성인가?
아니면 영혼의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이며,
경험되어지는 영적인 세계의 창문인가?
나는 기도를 통해 어릴 때에 가졌던 인생의 꿈들, 먼 미래에 다가올 새날들에 대한 기대를
바라보는 내일의 창문으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자신은 기도를 하다 언제는 주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싶은 간절할 때가 있다.
내 영혼이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에 흥분되는 그 무엇을 준다.
영음으로 들려오는 내면의 반응은 영혼의 감성을 자극하여
열린 영적인 세계에 대한 문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많은 나의 기도가 천상에 계시는 창조주에게 올려져 왔다.
나의 무수한 쏟아낸 간구들은 때로는 영혼의 절규가 되기도 하며,
고요하게 내면에 울려 퍼지는 묵상의 언어들,
혹은 하늘을 쳐다보면 나의 마음의 창문으로 들려오는 하늘의 소리들,
그리고 나의 꿈이나 비전을 통해 울려 퍼지는 내면의 마음의 소리들.....

그 동안 신앙생활에 있어서 나의 기도가 얼마나 달라졌는가?
처음에 은혜를 받을 때에는 주님께 대한 헌신과
구원받음에 대한 감격의 열정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평신도로 사역을 할 때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할 때에 분반 아이들에 대한 어린 목자로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그어린 영혼들을 위해 순수한 목자의 열정을 담은 간구를 뜨겁게 올리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중 고등부 전담 담당 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전체 중 고등부의 부흥과 젊은 영혼들의 세상의 쉽게 노출된 유혹을 차단하고
그들을 신앙으로 키우기 위해 열정적인 간구를 드리곤 하였다.

그러다가 나의 영적인 생활은 보다 깊은 영적인 갈망이 솟구쳐 특별 기도나,
산 기도나, 금식 기도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그런 기도들은 주님을 찾는 영적인 갈망과
더불어 나의 장래를 부탁 드리는 기도를 드렸으며,
그러다가 나의 인생의 전체에 대한 간구를 드리기도 하며,
나의 삶을 드리는 헌신적인 기도가 드려졌다.

그런 기도를 드렸던 나의 영적 생활에 전환점이 되는 한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나의 영성을 순수의 열정에서 고뇌의 무감각의 영성으로 넘어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어느 주일날 젊은 교우의 군입대를 환송하는 곳에 갔는데,
당시 그 젊은 영혼은 세상과 교회의 사이에서
세속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친구였다.
그 친구의 환송은 동네 막걸리 집에서 있었다.
얼떨결에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거룩한 나의 몸과 영에 영향을 받게 되어
주님앞에서 나의 영성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은 그 후 주님께 회개를 드리는
10일간의 물만 먹고 하는 금식 기도를 드리는
나의 내면에의 영성에 변화를 가져와
나의 영성은 무감각해 진 영혼의 상태로 나아가
결국 영성의 순도는 무디어져 이어진 군생활 3년 동안의 기도 생활은
더 깊은 영적인 은혜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영적인 성장이 멈춘 상태로 지나게 되었다.
나의 기도도 신선함을 잃은 상태로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에 군 제대 후에 신학교에 복귀하여,
그 후로부터 교육 전도사로 있을 때에는
중 고등부 아이들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당시 사역자로 나선 처음의 사역시기에
자신의 영혼은 그래도 열렬히 불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심방 전도사로 성도들의 각 가정을 심방하면서
교우들의 가정적인 문제, 자녀의 문제,
그리고 직업이나 사업에 대한 간구를 그들을 위해 드리고 하였다.
이렇듯이 사역자로 혹은 책임 있는 목회를 하면서
나의 기도는 인간적이며 세속적이며,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사역의 도구로서의 기도를 드렸다.
평신도 때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기도는 점점 식으면서,
제도적이고 습관적인 기도의 언어들이 나의 영혼에 메아리 쳤다.

부목사로 있을 때에는 심방을 하면서 늘 교우들의 개인적인 문제나
혹은 교회의 공동체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였었다.
어느 때에는 하루에 심방을 하는데 거의 30가정을 다녔던 적도 있다.
심방 대원들과 함께, 잠시 가정에 머물며, 가정의 상황을 듣고는 바로 기도를 드린다.
같이 다니는 대원들에게 꼭 같이 들려지지 않는 기도를 드리려고 했으나,
그러나 나의 기도는 어느 새 공식처럼 가정의 가족들의 평안과
가족들의 축복된 삶과 그리고 그들의 대소사의 문제들을 간구 드렸다.

유학의 시기들을 포함하여 오랫동안 신학교의 신학적인 배움의 길에서는
영혼에의 메마른 상태에 있었고
기나긴 영혼의 고뇌의 시간들과 더불어
더 깊어진 영성의 변화와 함께 몇 번의 내면의 치유와
영적인 깨달음과 넓어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뿌리들을
이루게하는 영성과 경건신학의 배움은 자신의 영성의 형성과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나의 영성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개인 경건의 시간들이 도움이 되나,
과거 처음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가졌던 순수함과 영적인 열정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이렇듯이 자신의 기도의 생활의 변천사는
나의 영성의 변화와 맞물려 나의 신앙생활을 형성하여 왔던 것이다.
당시 주님께 드려지던 기도의 언어는 자신의 신앙에 영향을 주며,
자신의 영성의 변화와 발전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는 가운데에 특히 나의 신앙의 삶의 역사에는
메마른 영혼의 시기였던 신앙의 암흑기와 영적인 굴곡의 나래에서도 기도는
언제나 주님께 드려졌다.
기도의 언어나 내용은 나의 영성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할 수 있겠다.
목양을 하는 요즘은 교회의 목회와
교우들의 목양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역자의 기도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자신의 영성을 깨우치는 기도에의 헌신에 몰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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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기적과 구원의 역사

행전 16: 16-34)
본문 분해
1. 점하는 여종의 치료16-21
귀신들림의 현상인 점괘와 악령들의 영향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 지역에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
바울의 축사와 점치는 여종을 고침
(귀신들의 정체를 알리고 복음 증거를 방해함, 바울의 축사 사역)
주인들의 반발과 반 유대적인 환경 (노예를 부리는 기득권자들의 이익 추구의 영향)

2. 감옥에서의 찬양의 기적과 죄수들의 자유 22-26
바울과 실라가 태장을 맞고 지하 감옥에 갇힘 (복음전도자들의 고난의 현장)
감옥에서의 기도와 찬양 (영적인 부흥의 현장은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 일으킨다)
기적의 현장(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흔들림, 옥문이 열림, 수갑이 풀어짐)

3. 간수의 구원받은 역사 27-34
간수가 당하는 처지(죄수들의 탈옥하는 현장에 대한 책임감에 자결하려고 함)
도움을 구하는 간수 (간수의 간절한 소원: 자신의 절실한 문제해결을 호소함)
간수장에게 복음을 전함(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 복음에 있음을 보여줌)
간수와 가족들이 구원받음 (개인 구원은 곧 가족 구원으로 발전함을 보여줌)
세례와 간증의 역사(구원받음의 증거는 세례와 같은 공식적인 신앙 고백과 그리고 간증의 응답)

본문 배경 이해
빌립보 지역에 대해
로마의 식민지로, 군대의 주둔지였다. 거기에 있는 유대인인구는 소수였다.
원래 유대인 남자가 10인이면 회당이 있는데, 거기에는 회당이 없고, 기도처가 있었다.
기도처는 열린 공간이며, 작은 건물이었다.
그 지역은 반 유대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이 지역의 교회는 어려운 가운데에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루디아 같은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으나,
그녀는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
유럽은 아시아와 달리 더 로마적이며, 로마의 통치가 더 영향이 미치는 곳이었다.
로마인들은 자기 풍습이나 지역 내의 관습을 존중해주었고,
당시에 전 로마적으로는 희랍적인 종교 풍습과 문화적인 환경이 만연해 있었다.
그리이스의 신들을 숭배하는 일들을 통해
지역 내에 있는 신, 여신들을 숭배하는 일들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빌립보에는 보통 다른 지역과 같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복음을 전하는 당시 세계에는 우상숭배에 영향을 받고 빠져있는 이방인들이 있었고,
유대교를 지키는 유대인들이 있으며,
유대의 종교와 풍습을 좇아 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있었다.

어떤 학자는 사도행전의 기자 의사 누가가 빌립보에서 자랐으며
거기에 있는 의술 학교에 다닌 것 같다고 한다.
로마의 식민지에 두 리더가 다스린다.
보통 행정관, 치안관등이 식민지에서 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다.
식민지는 군대의 주둔과 로마의 군사기지로 활용되었다.

점치는 여종의 치료 및 구원(16: 16-18)
그녀는 귀신의 들린 상태에서 귀신의 힘을 빌어,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하고, 점치는 일을 하였다.
악령, 혼령에 의해, 델피신전의 아폴로 신이 악령의 뱀으로 장식되었다고 믿었다.
델피의 원래의 여사제들은 그 악령에 의해 미래를 예언하는 일,
귀신들은 악령 숭배자들에게 그런 능력을 준다. 예언하는 일등이다.
미국의 텔레비전의 한 프로에서 한 여샤만이
사람들에게 미래를 예언하고 점을 치는 일을 방영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 여종은 여청년으로 바울 일행을 만나,
계속하여 여러 날을 소리지르며,
그녀를 통해 귀신이 그들의 정체를 밝힌다.
그녀의 말이 맞지만, 그런 일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를 일으킨다.
그래서 바울은 축사를 하였다. 그 악령에게 직접 그 여종에게서 나오라고 하였다.
주님의 권세를 믿고 그의 권한을 위임 받은 주님의 일꾼들에게는
귀신을 제압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간수장의 개종 ( 16: 19-34)
여종의 주인들이 여종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같다.
그 주인들이 여종의 치료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
바울 일행을 고소하여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으로 잡히게 되었고,
누가(이방인)와 디모데(반 이방인)는 이방인으로 잡히지 않았다.
이런 일은 로마의 황제 클라디우스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일이 생기기 전에 일어난 일로
당시에 반 유대적인 경향이 농후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도시소란죄라는 죄목이 첨가 되었다.

16:22 바울과 실라의 고난의 현장
관원들이 채찍질하여 고후 11:25에 세 번의 태장을 맞았다는 내용처럼,
여기에서도 채찍질 당하는 고통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감옥에 들어갔다.
전도자들은 당시의 금지된 복음 전파로 인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수모를 당하고,
고통을 받으며, 마치 죄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비일 비재 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발을 착고에 채워, 지하 감옥에 가두게 되었다.
당시에도 복음을 전하다, 목숨을 빼앗기는 일,
심한 매질을 당하는 일, 자기의 속한 가문이나 지역사회에서 축출되는 일,
지위와 직업을 박탈당하는 일등이다.

오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고난 당하는 현장은
지금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모슬렘 지역에서는 출가나, 사회에서 매장되며,
공개적으로 전도하지 못하는 민족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대표적인 복음 전파뿐 아니라,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지역은
인디아(힌두교), 인도네시아(모슬렘), 콜럼비아, 터어키(모슬렘)
이디오피아, 미얀마 등이며, 복음 전파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지역은
인도네시아 외의 모슬렘 지역, 중국, 북한 등이다.

16: 23-24 철야 기도와 찬송이 주는 의미
바울과 실라는 지하 감옥에서 찬송을 하며,
그 기도하며 찬송하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 까지 들려졌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며,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손을 채운 수갑 혹은 착고가 풀려졌다.
하나님을 높이는 일을 통해 사람들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은 과연 자기의 백성들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이심을 알려주는 사건이다.
성도들의 찬송 중에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의 역사가 일어난다.

16: 25 부흥의 주제
바울과 실라는 사도행전의 주제라 할 수 있는
기쁨의 특별한 의미를 주는 기도와 찬송을 불렀다.
기도와 찬송이 어우러졌다는 것은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는 부흥적인 요소가 가미된 두 사람의 전도자로서의 간증을 담은 내용이다.
영적인 부흥은 주님의 말씀을 통한 부흥도 있지만
성도의 신앙 표현인 열정적인 기도와 뜨거운 감격적인 찬송으로도 나타난다.

16: 26 베드로와 바울의 비교
지진으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기적적인 구원의 역사는
베드로의 탈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5:18-20, 12:3-11)
사도행전을 읽는 독자들에게 베드로와 바울의 체험의 비교를 볼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의 내용은 초대 교회를 대표하는 두 사도들의 행적이라 할 수 있다.
초기의 베드로와 후기의 바울의 전도 사역과 선교 사역의 역사는
두 사도의 초대 교회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베드로의 탈옥에는 천사의 개입으로 기적적으로 풀려났고,
여기서는 바울과 실라가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지진으로 인하여,
옥문이 열리고 옥터가 흔들리며, 그들을 채운 수갑이 풀려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본문에서 독자들에게 능력과 기적의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16: 27-28 간수의 책임
그러한 기적적인 현상들이 일어났을 때에, 죄수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때에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간 줄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결을 하려 하였다.
당시의 간수들은 죄수의 탈출은 곧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책임이 주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책임에 대한 표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것이다.

16: 29-30 간수의 호소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간 줄로 알고, 떨며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지를 물었다.
여기에 그의 질문은 자기 목숨에 대한 문제이며,
그 사람의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가 걸린 간곡한 부탁의 물음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간절한 문제에 대해 진지한 반응을 한다.
본문은 복음은 인생 문제의 해답임을 알려준다.

16:31-32 핵심 구절31
32절은 핵심 구절로 주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 지는 것으로,
간수가 무엇을 해야 자신이 구원받는지를 질문하였는데,
그는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가를 문의 하였다.
바울은 한 말씀으로 복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간수의 집안 사람들이 다 구원받을 사람을 받았다.

16: 33-34 물세례와 복음에 대한 간증
그들이 물세례를 받으므로 그들의 죄를 씻는 증거를 나타냈다.
간수가 바울과 실라의 상처난 부분을 씻기며, 죄수들을 먹이며,
그들 가족은 다 기쁨이 충만했다. 복음을 받고 나서 기쁨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승리하는 복음의 증거는 기쁨에 있다.
물세례는 믿음 고백과 동시에, 구원의 확신의 표로 나타나고 있다.
간수와 그의 가솔들은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표로 세례를 받았다.

신학적인 가르침
귀신들림과 그에 따르는 현상, 그리고 축사
불신 세계는 대부분 어둠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다.
어둠의 세력은 불신자들의 마음에 미혹된 마음과 무지와 어리석음과
거부하는 태도를 늘 심어 놓는다.
그 세력은 적극적으로 불신자들의 육체에 까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타 종교나 그럴 듯 하지만
어리석은 영적인 가르침 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심리적으로는 깊은 불안의 세계에 살게 하며,
목적이나 방향 감각이 없이 한없이 방황하며 인생의 의미나 가치를 무시하고 살게 한다.

귀신들림은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아주 경미한 상태로 있는 경우로 이성적으로는 괞찮으나,
모든 생각이나 사상에 어둠의 영향을 받는다.
조금 영향을 받는 상태는 육체적으로 불면이나,
혹은 심리적으로 걱정이나 불안 심리가 있는 경우이다.
그 다음 단계는 반복적인 오용이나 남용의 현상에
자신을 빠뜨리는 단계로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거나, 어떤 일에 탐닉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심한 경우는 직접적인 귀신들의 영향 아래에 놓여서,
일상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장애가 나타난다.
그런 경우에는 정신적인 병, 발작적인 상태,
혹은 더 큰 상태로 인간의 정상적인 삶을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귀신을 극복하는 길은 신앙 안에 서는 것과 건전한 사고방식과
그리고 일정한 사회생활에 있을 때에는 쉽게 그런 현상들을 극복할 수 있다.
축사하는 일은 주님이 믿는 자에게 주신 능력으로 믿는 자는
누구나 어둠의 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
다만 그것을 실천하는 믿음과 영적이며, 상담 기법적인 대처 방안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내적 치유나, 자아 치유나, 기억치유나,
혹은 인간 관계 치유(용서, 재 연합등)를 통해 이루어 진다.
그리고 악령들은 사람들 속에 있는 상한 감정이나 상처의 쓰레기에 스며들기 쉽다.
고로 축사 사역자들은 먼저 피축사자들에게
그런 상한 감정이나 상처들을 해결하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성도들을 건강하게 세우는 일은 그런 귀신들림이나
영향을 받는 현상들이 일어나는 환경을 벗어나게 하며,
건전한 정신과 강건한 믿음을 견지하게 하는 일이다.

구원의 역사와 믿음의 의미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분명한 복음의 역사이다.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의 응답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들의 믿음을 따라 역사하신다.
믿음과 구원은 씨앗과 열매의 관계가 같다.
믿음은 구원을 심는 사람 속에 있는 영혼의 장치이다.
믿음은 지성이나 감성이나 영성이 함께 어우러져 사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한다.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어디서 오며 언제 시작되는 가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담은 말씀에 있음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영적 부흥의 역사 (기도와 찬송의 관계)
진정한 영적인 부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부흥은 스가랴의 예언자처럼 하나님의 영을 통해 이루어 진다.
하나님의 성령이 자유롭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바의 질서나 조건이 이루어지면
성령은 마음껏 역사하셔서 사람들 속에 역사하신다.
성령께서 그가 역사하시는 조건만 맞으시면 마음의 부흥이나,
영적인 희열이나, 감격스런 영성의 발생이나 충만한 상태의 성령충만을 일으키신다.
기도와 찬송은 영적인 감흥이 일어나는 지름 길 일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여는 일이며,
기도를 통해 영적인 통로가 하나님께 열리고,
초대교회 성도등 신앙의 선조들은 하나님께 기도라는 무기를 통해
응답을 받고, 능력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 내었다.
기도에 열정을 쏟은 만큼 성도들 사이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난다.
그리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일은
그분의 성호를 높이는 성도들의 찬양에 있다.
찬양은 곡조있는 기도이며,
능력의 성령님이 자유롭게 임재 하시는 환경을
가장 빨리 조성되는 길이 찬양에 몰입하는 일이다.
기도가 살고 찬양이 살면 영적인 부흥은 일어난다.

구원의 역사와 믿음의 표현
자신의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는 일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반드시 일어난다.
그 고백은 공중에서 침례 받음으로, 자기 구원에 대한 간증으로,
구원받은 자의 감격에서 나오는 전도에서 나오며,
혹은 자기 결단의 공개적인 고백이나 감사의 표현을 통해서 나온다.
그리고 개인의 은밀한 가운데에서도 사명으로의 발전적인 결단이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고백적인 결심으로 그리고 기타 등으로 일어난다.

성 경 공 부 안
*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계의 문제: 믿는 자 에게 적대적인 환경16-21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둠의 지배를 받는다.
고로 악령의 영향을 받는다(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또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무지하여 우상숭배에 빠져있다.
반면에 성도들은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환경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복음에 대해 철저한 무장이 필요하다.

1. 어둠의 세력의 영향을 받은 적(귀신들의 영향) 이 있습니까?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논의 해보세요.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사주팔자 신수를
본적인 있는지요. 점이나 손금을 보거나 사주 관상을 보는 일이
왜 해롭습니까?
2. 귀신을 물리친 일이나, 그 영향력들을 극복하는 일에 대해 논의 해보세요.
어떻게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3. 자기의 생활 속에서 신앙 때문에 어려운 일들이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 영적 부흥의 현장: 감옥에서의 찬양의 기적과 구원의 역사 22-26
1.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는지요?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2.하나님의 기적이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의 응답으로서의 기적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3.자신에게 경험이 되었던 영적인 부흥이나, 기적이나,
은혜의 경험들을 나누어 보세요

* 구원의 역사: 간수와 그의 가족의 구원 27-34
1.간수가 당한 인생의 문제는 무엇이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비교해서 논의 해보세요
2.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 믿음으로 혹은 확신이나 체험으로
3.구원받은 표는 무엇인지요. 침례에 대한 신앙 고백은? 간증이 주는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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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정체감과 삶의 스타일

(벧전 2:9-10)

분문의 의도 분석
성도란? 하나님의 소유인 그의 백성; 왕족, 제사장, 구별된 특별한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의 주민들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도 이전의 과거와 성도된 현재와의 비교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감,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불쌍히
여기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이란?
성도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며, 길 위에 있는 삶이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이기십시오.

성도의 삶의 지향
선한 생활, 전도의 효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12. 여러분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한 생활을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악을 행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이
회개하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에 대해
베드로는 고난 받는 크리스천들에게 신앙 생활을 잘할 것을 권면하기 위해 썼다.
지금의 터어키 지역인 소아시아의 로마 식민지들 지역에 흩어진 크리스천들에게
이방인 세계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권면하고 있다.
그 신자들은 핍박의 현장에서 성도로 태어나므로 산 소망을 갖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정신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며,
불신자나 적대적인 이방 세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새로운 행위가 요구되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한 지체로서 새로운 책임감을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이 서신은 신자들의 매일의 필요를 위한 실제적인 격려와 위로를 주고 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성도의 정체감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성도들 자신은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중요한 자기 이해이며,
자기 사명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한다.
성도들이 과거의 자신들의 삶과 지금 성도로서의 현재의 삶을 비교하며,
이방 세계에서 사는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 자기 사명을 다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본문 강해
핵심 구절 2: 9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고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세(정신)로 살 것을 강조한다.

9-10
베드로는 그의 서신의 수신자들에게 활력 있는 권면과 더불어
성도의 거룩한 삶을 실천할 것을 권면한다.
이사야 43:20 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보는 시각을 베드로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새로운 선민으로서
유대와 이방인 모두에게 적용하고 있다.

출애굽기 19:6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두고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나라를 세우리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크리스천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그리고 왕족에 속한 제사장직을 언급하고 있다.
이 뜻은 크리스천들이 세상나라에 대해 구별된 자들로, 특별한 구별의식,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사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는 것은 제사장은 백성의 중보자로서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는 하는 자였다.
고로 모든 신자가 각기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그와 교통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히 10:19-22).
동시에 그렇게 구별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주변인이나,
혹은 별 볼 일없는 존재로 사는 것이 아니라,
왕족 같은 자기 존재의 고귀한 인식과
그리고 왕족이 누리는 특권을 갖고 살 것을 명하고 있다.
왕족의 특권은 온 우주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의 권한을 함께 공유하며,
함께 그 왕의 권한의 활용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고로 성도들은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 왕권의 권한에 대해서는 주 예수님께서
마태 28: 18에서 복음 전파를 맡은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는 말씀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제 교회 시대에서 선택된 백성들을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로 여기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위해 그의 백성들을 보존하시며,
그들을 도우시고, 그들을 위해 일을 하시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그의 나라를 위해 그분의 동역자인 것이다.
이 약속은 원래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해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
즉 메시야 왕국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예언의 성취로서 알려지는 것이다.
성도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선택된 그의 백성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찬양을 나타내는 데 있다.
찬양이란 말은 탁월함(하나님의 속성의 위대하심, 뛰어나심등)을 의미하는 것이며,
성도들은 제사장으로서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고로 크리스천들은 특별한 사람들로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사람들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증인으로서 어두움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어둠은 호세아2: 23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의해 제공되는
분여(provision)를 모르는 이방인들의 상태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성도들은 그들이 그의 백성이 아닐 때에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비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의 자비는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의 근거가 되는 그분의 속성이다.
고로 성도는 하나님의 모든 관심(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시는
그의 돌봄, 보존, 인도, 격려, 능력등) 을 받는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외의 모든 종교는 이런 두려움에서 종교의 동기가 출발하고 있다.
그렇게 타종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크리스천들의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이다.

11-12
크리스천들은 세상에서 다르게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그들이 죄에 대해 대적하며, 다른 이들에게 선한 자세로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이 말씀에서 크리스천들은 죄는 미워하나
죄인은 미워하지 않아야 하는 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크리스천들은 세상에서 나그네요 즉 외국인으로 사는 것이며,
세상에서 인생길의 여행을 다니는 행인으로서 고향처럼 살지 말고
타향살이 하는 것처럼 살 것을 권면한다.
세상의 가치와 신념이나 신조들은 크리스천의 그것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고로 크리스천들은 기독교 윤리에 의해 비도덕적인 것이나,
죄악적인 태도로 추구하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억제되어야 할 그런 것들은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주장한 지나친 육체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등인 갓이다.
그런 것에서 크리스천들은 그런 것들과 영적인 전쟁을 치루는
영적인 전사처럼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여기에서 크리스천들의 자기 약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에 크리스천들은 불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빛으로 드러내며,
그들앞에서 효과적인 증인으로서 살아야 할 것이다.
11절에서 소극적으로 세상물결에 대해 방어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데서
12절에서 적극적인 크리스천의 라이프 스타일을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해 비판하는 불신자들에게 보여줄 선한 행실과
그에 따르는 열매를 맺는 살 것을 권면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판단이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그것들이 귀한 자산으로 나타내며, 자신에게 유익으로 남으며,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가치로 남게 된다.

고로 바울은 성도의 국적은 하늘에 있다고 가르쳤다(빌3: 20).
그러기에 성도는 신앙의 용사들로 가장 값진 보물인 하나님의 도성을 찾아
희망과 인내를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 공부안
1. 신자(성도)란? 하나님의 소유인 그의 백성; 왕족, 제사장, 구별된 특별한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의 주민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신자 (성도)는 누구입니까?

신자(성도)로서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자(성도)로서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높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 신자(성도) 이전의 과거와 성도된 현재와의 비교해 봅시다.
신자(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감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자(성도)이전의 자신의 상태는?

신자 (성도)가 된 이후에 자신의 모습은?

예수님 믿고 난 후에 받은 축복이나 하나님의 은혜나 자비의 손길은?

3. 성도의 삶이란?
성도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며, 길 위에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전쟁을 날마다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인생의 삶을 여행하는 하늘나라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객으로서 자신이 가져야 할 자세는?

신자(성도)는 자기의 영혼의 유익(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에게 있는 약점(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영적 전쟁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신자(성도)의 삶은 선한 생활을 하며,
불신자 전도를 위해 사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에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전도에 효과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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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생활의 이유와 유익

출 15:1-18

이스라엘의 구원은 마지막까지 애굽의 군대의 추격을 받음에서 구원받았습니다.
200만명이나 애굽의 노예를 잃은 애굽의 왕 바로와
그의 부하들은 장자들의 죽음에 애통하며 장례를 치루고 난후,
그들은 도망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노예로 잡아두려고
바로와 그의 군대는 전차 600대를 앞세우며,
며칠동안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백성들을 추격하였습니다.
홍해바다앞에서 이스라엘은 진퇴양난의 절대절명의 상황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극적인 상황은 이스라엘 앞에는 홍해바다가 놓여있고,
뒤에서는 애굽의 600대의 전차가 달려오고 있어,
모두가 죽을 상황, 독 안에 든 쥐(A rat in a trap),
진퇴양난(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라는 말처럼
앞, 뒤, 좌우 다 돌아보아도,
그들은 살아날 길은 없었습니다.
그 동안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노예로 살아왔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 민족으로 취급받으며, 천대받고 살았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 연명하는 삶이었고, 그 가운데에서 고통의 소리에 신음하였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저주받은 삶, 희망이 없는 삶, 속박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의 민족의 상황은
현재의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듭니다.
그 동포들 중에 그곳에서 탈북 하시는 분들은 살 희망이 없으니 탈출합니다.
출애굽 하듯, 그들은 그 억압된 상태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홍해바다 앞에 처한 위기의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을 펴서 그 바다를 열고
바다의 열린 길을 육지처럼 건너 구원받았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 저의 교회에 교역자 일일 수양회를 바닷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바람이 잦은 흐린 날이었는데,
수영을 하면서 육지에서 조금 바다가로 나갔습니다.
제가 수영을 하는 곳에 큰 웅덩이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갑자기 소용돌이에 말려 들어,
제가 수영을 하면서 나오려고 하는데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갑자기 물에 빠져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절규하면서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에 큰 파도가 일어나 저의 등뒤를 누군가가 힘을 받치면서 저를 밀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바닷가에서 바닷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생명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은혜 받았을 때에,
당시에 젊은 나이에 저는 신경성위장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나면 소화가 되지 않아, 약을 먹어야 되고,
만성적으로 소화불량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저의 마음에 평안함이 왔을 때,
저는 그 신경성 위장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 체험은 예수님을 믿은 저에게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위장병이 고쳐졌습니다.
그 무렵에 저는 주일 낮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다녀와서는
혼자 뒷산에 올라가 오후 내내 주님을 찬송하곤 하였습니다.
제가 주님의 구원을 받은 것을 생각하고 그 주님의 은혜의 깊음에 잠기다 보니,
저의 심령 깊은 곳에서 주님을 높여 드리고저 하는 강렬한 마음이 일곤 하였습니다.
그런 찬송 부름의 습관은 바로 저의 구원받음에 대해서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에 대한 감격을 기쁨으로 노래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은 밤새껏 동풍이 불어서 바닷물을 두쪽으로 물벽을 세워
그 사이를 육지처럼 건넜던 이스라엘 민족은 지도자 모세와 더불어,
그 새벽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나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 주님을 높이는 찬양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구주 하나님께 찬송드림은 당연한 신앙인의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의 감격을 노래로 표현함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믿음에는 지, 정, 의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중에서 주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반응은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적시어
정서적인 믿음의 단계인 마음의 감격이 정서적으로 찬송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세상에 어느 음악이든지, 음악은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줍니다.

오늘날 크리스천의 찬송생활은 크리스천음악은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들은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까?
아니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까?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음악은 우리의 생활의 한 부분입니다.
세속적인 음악은 성도에게 세속적인 영향을 줍니다.
영적 전쟁을 하는 유명한 신학교교수님의 여고생 딸이
영적으로 공격을 받아 고생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귀신의 영향이 점점세워져 결국에는 축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딸에게 있는 귀신을 축사하였습니다.
그 딸의 악한 영의 영향을 받은 그녀가 자주 들었던
아주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록음악에 있었습니다.
요즘도 그런 사단적인 타락한 음악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음악을 조심스럽게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그런 나쁜 음악에 오염되어
정신과 마음을 아울러 더럽히게 하는
악한 영에 열려, 자신도 가눌수 없는 어둠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의 정서를 부드럽게, 음악이 없다면 인생의 삶이 삭막합니다.
슬플 때에도, 감정을 표현하고, 기쁠 때에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마음의 건강에 좋습니다.
특히 노래하는 마음이나 듣는 기쁨은 마음의 정서를 메마르지 않게 합니다.
찬송하는 일은 더욱 영혼을 강화, 마음의 정서를 편하게 함과
그리고 하나님에게로 더 우리의 마음을 이끌리게 합니다.

성경에는 단체나 개인이 찬양이나 찬송을 부르는 것에 대한 기사들이 여러 내용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역대하 20: 1이하에, 남 왕국 유대의 나라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의 연합군들이 쳐들어 왔을 때에, 유다는 막을 힘이 없어,
군대의 힘이 약하니, 긴급히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의 군대가 평소에 훈련되거나 적들을 대항할만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여
왕으로 비롯하여 온 나라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전력이 연합군으로 편성된 적들을 대항하여
싸울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유다의 군대 앞에
레위족속들의 성가대 앞세우며, 찬송을 부르며, 적진으로 나가니,
하나님께서 유다나라를 위하여 싸우시는데,
하나님께서 적들의 전력을 상실하게 하시므로,
적의 연합군은 서로 반목질시하여, 서로 죽이다가,
결국에는 다 전멸하게 되었는데, 그 전쟁을 승리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나가서 전장에 널려있는 전리품을 수거하는데,
너무 많아서 백성들이 다 가져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다윗이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잃었던 것을
불레셋의 나라의 족속들에서 되찾아올 때에,
춤을 추면서 찬송하며 기뻐하였습니다.
찬송은 때로는 이렇게 기쁨이 충만한 자신을 가눌수 없는 감격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라는 찬송을 부를 때에
흥겨워서 춤을 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찬식을 하신 후, 감람산으로 나가실때에
그들과 함께 찬미하시며 나가셨습니다.
마가복음 14:26절에는 제자들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찬미하고 가셨습니다.
사도행전에 첫순교자 스데반의 집사가 원수들로 부터 무수한 돌을 맞으며,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순교하는 순간에
스데반은 자기의 영안이 열리면서,
하나님 보좌우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성도들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지름길이며,
그의 은혜를 유지하는 신앙에 활력이 됩니다.
늘 찬송을 가까이 함은 크리스천의 삶의 승리의 비결 중에 하나입니다.
지난 번에 송구영신 예배 시에 말씀 드렸지만,
제가 새벽에 찬송을 하는데, 하늘이 열리고,
천국의 길을 향하는 나의 마음에 은혜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찬송의 유익은 성도의 신앙의 자세의 나약함을 강화시켜줍니다.
찬송할 때에, 성도들에게 들어있던 부정적인 마음,
나약한 마음에, 강한 의지와 용기의 마음을 북돋아 줍니다.
찬송은 우리에게 또한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를 갖게 합니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하에서도 희망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늘 찬송하는 사람의 얼굴은 항상 명랑한 얼굴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을 입고 사는 성도의 삶은
항상 구원의 감격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하며,
그 구원과 은혜의 감격은 날마다 주님을 높이며,
찬미하며 사는 성도들로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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