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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는 없다

지난 주에 방문한 사업장에서 건강상담을 했던 아주머니의 손목. 



뜸을 뜬 자국이다.

 

이 분은 손목 통증이 있어 3개월간 손목부담이 덜한 작업으로 일시적 작업전환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았고 그 시간만큼은 잔업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원래 작업으로 복귀한 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다시 손목이 아파서 곰곰 생각해보니 새로 들어온 자재가 불량이라 끼워맞추는데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 반장한테 이야기하여 불량자재조립은 반장이 했고 손목증상은 좋아졌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중소기업 수준에서 비교적 잘 대처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담이 되는 작업을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생겼고 그런 여건이 된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니 3달째부터는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수당을 받는 것을 거절하게 되었는데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서"였고, 지금도 왕따이기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집에 착한 세 딸들이 있어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을 잊을 수 있다고 절에가서 기도 많이 한다고 하였다.

 

같은 조합원끼리 이해를 못해주어 섭섭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조카이야기를 한다. 근처 '강성'노조가 있어 근골격계 사업을 활발하게 했던 사업장에 다니는 조카는 평소 근골격계 산재환자들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그에게도 근골격계질환이 생겼고, 그래서 아주머니도, 동료 산재 환자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중소기업에서 이정도로 대처하기도 어렵지만 막상 작업관련 근골격계 환자로 인정받아 치료또는 요양을 하고 나서 복귀할 때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따른다. 아픈 사람이 작업전환을 하게 되면 익숙한 일을 떠나 그 자리에 가야 하는 다른 작업자가 불만을 가질 수 있고 같은 공정의 다른 작업자들은 대체인력이 들어오더라도 숙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일정부분 부담을 나누어질 수 밖에 없다. 거기에다 평소 아픈 사람의 '근태'는 나쁘기 마련이다. 아픈 것을 혼자서 해결하느라 나쁜 것도 있고 통증으로 인한 우울증상이 인간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건강상담이 끝나고 노동조합 간부 면담을 요청했다. 이 회사는 서울의 모 연구소에 위탁하여 한창 근골격계 사업이 진행중이고 조만간 집단 요양이 있을 터이므로 조합에서 이런 사례들에 대해서 잘 알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조합원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시큰둥하게 듣던 사무국장은 그 아주머니는 원래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답변했다. 그 '문제'란 평소 근태가 나빴다는 것. 그리고 물리치료받으라고 내 준 시간에 '굿'을 해서 문제가 되었단다. 그러면서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이야기하면서 이를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소연. 어깨의 근골격계 질환 산재로 요양하고 돌아온 아저씨가 복귀시 노동조합에서 당분간 정상 근무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복귀후 일주일동안 잔업에 특근까지 다 하여 바로 증상이 재발되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노동조합에서 보호를 할 수가 없다며 괴롭단다. 그러면서 뭐 좋은 방도가 없을까 묻는다.

 

근골격계 사업과정에서 개별 노동자들이 원칙에 어긋한 행동을 하면서 노동조합이 흔들리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노조측에서는 떠도는 말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형평성을 위해서 수백명의 무증상자까지 모두 진찰을 해야 한다고 의사들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심지어 사측과 면담과정에서 '이번에 작업전환만 시켜주면 다시는 근골격계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협상해왔다며 대부분이 꾀병이라며 환멸스럽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사측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 어렵다. '근골격계 투쟁'이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에 갈등과 분열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안 아픈 사람 없는데 누구는 돈받아가며 치료받고 누구는 계속 일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이 말 몇마디씩만 하면 아픈 사람 하나 바보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다.

 

사무국장의 질문에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몇가지 의견을 전달했다.

 

o 근골격계 사업을 하면서 조합원들이 한 번의 과정으로 작업의 물리적인 조건이 해결되거나 아픈 사람들이 씻은 듯이 나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 기대를 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는 과정의 첫 단계에 들어선 것 뿐임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o 이 문제로 왕따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조합에서 간부들이 나서서 조합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조합간부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아주머니가 오죽 아프면 굿을 했겠는가? 굿 한번 하는 데 드는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라.

 

o 아팠던 사람이 일주일만에 잔업, 특근까지 해서 재발하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작업개선이 안되었기 때문이고 특근까지 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것이 현실이므로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점진적인 작업복귀와 특근을 안 해도 생계가 유지되는 것을 목표로 싸워야 한다.

 

o 이상에서 말한 것은 실현하기 어렵고 오래 걸린다. 의식의 변화를 위한 충분한 노력과 발생하는 사례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외에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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