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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공화국?

* 이 글은 뻐꾸기님의 [실공장 검사작업의 개선방안] 에 관련된 글입니다. 

    실공장 후공정이 매각되었다. 결국 회사의 핵심기술파트만 남기고 외주를 준것이다. 작업자 25명중 20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갔다. 이제 50인미만 사업장이 된 셈이라 보건관리대행을 그만하는 줄 알았는데 직원복지차원에서 계속 한다고 하여 오늘 갔었다.  사무직도 감원을 했는지 책상수가 줄어들어 휑한 느낌이 드는 사무실 한 구석에 타블로이드 판 크기의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라는 자료집이 있어 들춰보니 매일경제에서 연재했던 기사를 확대복사해서 철을 해 놓은 것이다. 



"노조간부들 경력관리 위해 극렬투쟁, 감옥행불사" " 알고보면 9개 분파가 난립" 등 자극적인 제목들을 훑어보자니 소름이 끼친다. 사업장 관리카드를 보니 일년전에 132명에서 바로 두달전까지 82명, 지금은 50명 이하의 규모가 되었다.  첫번째 구조조정 과정에서 몇달씩 파업투쟁을 했지만 결국 동료의 1/3을 떠나보낸 뒤 위축되었던 노동조합은 이제 다시 50인이하로 규모가 줄어들어 그만큼  힘이 작아졌다. 전무는 빙글빙글 웃으며 외주업체는 법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별개 회사라고 강조한다.  노조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예정대로 진행한 관리감독자 교육. 오늘의 제목은 '작업관련 근골격계 질환 예방의 실제".  작년 내내 사업홍보를 했다면 올해부터는 작업장내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활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일이년간의 경험을 소개하고 노사의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활동을 촉구하는 내용.  노조위원장 참여를 당부하자 총무과장이 전화통화를 하더니 '안 온답니다' 한다. 다시 걸어 달라고 해서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했더니 '가야죠'하고 휘리릭 나타났다.

 

 토의시간.  노조위원장은 일단 화부터 내고 본다. 열명의 사측관리자를 상대하려니 목소리라도 높혀야 하겠지. 'O대리, 당신이 사측 대변인이냐' 하는 말에 발끈한 관리자와 노조위원장이 한판 격돌하기도 했다.  위원장이 나에게 한 말은 "선생님이 노사공동 노사공동하는데 그게 이론적으로는 되지요. 하지만 실정은......"  허걱. 내가 언제 노사공동이란 말을 썼던가? 노동자의 참여를 강조하는 나의 말은 노동조합이 회사측에 협조해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어지는 노조위원장의 말, "좀 아프면 배치전환한다고 협박하고" , 이 대목에서 O대리, 언성이 높아진다. " 말을 좀 가려서 합시다. 언제 회사가 근로자를 협박했다고..."

 

  난상토론의 성과는 무엇일까?  근로감독관과 안전대행기관요원도 구별할 줄 모르는 시골 구석의 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고, 하고싶은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고 다음 노사협의회때 주장한 근거를 마련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생산직 노동자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현실적인 요구내용을 관리감독자들과 우리 팀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끝나고 유난히 어깨가 축 쳐진 위원장한테 "힘내세요" 인사를 하고 총무과장을 만났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다. "벌써 가세요? 선생님, 저도 스트레스 상담해야하는데......전임자 건도 있고 해서(전임자는 노사갈등의 와중에서 자살했음)....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야 하지요?" 에궁. 사무직도 반으로 줄었으니 총무과장의 업무량도 엄청 늘어났고 회사 규모가 작아졌으니 심란하기도 하겠지.

 

  시간이 되어 서둘러 정리하고 나오는데 뒷통수가 땡긴다. 후공정이 매각되는 데 근골문제가 골치아픈 것이 조금은 작용했다는 위원장의 말, 웃으면서 스트레스 상담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쳐보이는 총무과장의 얼굴, 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씨가 말라버린 작업장 풍경(매각된 후공정은 모두 여성 작업자들이 일했음).....작년 가을 내가 다녀간 뒤로 대차 맨 아랫단은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하나 이제 새로 들어온 작업자들은 다시 원래대로 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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