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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하루

  6시에 일어나 6시50분 병원도착. 7시30분 특검 시작.

검진하는데 어떤 이가 와서 화를 낸다. 2년전에 심각한 고혈압이 있는데 치료 안 하고 있어 주치의한테 편지도 써주고 꾸준히 혈압을 관리하고 생활습관개선 상담을 했으나 혈압은 계속 높고 생활습관도 전혀 바뀌지 않았던 분인데, 3개월전 심근경색으로 입원해서 수술했다고 한다. 그 동안 상담하면서 가슴아프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해서 병을 키웠다고 노발대발.



상담기록을 보니 정밀검사를 권고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마치 심근경색의 원인이 우리 팀이나 되는 듯이 마구 마구 화를 내는 것을 보니 할 말이 없다.  그냥 조용히 보냈는데 그 이후로 나도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검진끝나고 작업장 순회점검했다. 개선했다는 세척조가 좀 이상해서 뚜껑을 열어보라했는데 어찌나 냄새가 지독한 지 골이 지끈 지끈 아프다. 국소배기시설이 없다. 이 공정은 디클로로메탄이 3배 초과해서 부랴 부랴 개선을 하고 나서 3차 측정까지 해서 약 20ppm(노출기준 50ppm)으로 검출되었다. 그 건으로 사측과 우리 과가 옥신각신 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서로 많이 상한 모양이다. 어쨌든 검진때 만난 작업자가 수동세척을 반자동 세척조로 바꾸었다고 좋아졌다고 하여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한숨만 푹푹 나온다.

 

검진중에 무릎통증을 호소한 사람이 하는 작업을 보러 갔다. 무릎을 하루에 600번 이상 비트는 작업을 하니 아플 수 밖에 없는데 뾰족한 개선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지켜보고 더 아프면 작업전환 해라"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지켜볼 동안 이 회사를 다닐 것인가도 불확실하다.

 

오후에는 예과 교양과목 수업을 두 시간했다. 오전내내 말하고 나서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일학년들 데리고 수업하려니 좀 짜증스럽다. 오늘은 학생들이 책 읽고 발표하는 날이라 체력소모는 좀 적었다. 첫번째 발표는 아름다운 의사 삭스. 발표를 듣노라니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일들이 있다. 그 책을 읽고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지. 두 번째 발표는 산업의학의 어머니, 닥터 앨리스 해밀튼.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시들었던 마음이 다시 피어난다. 

 

수업끝날 때 쯤 외래에서 연락이 왔다. 특검재검자 4명이 대기중이란다.  두 번째 수검자가 자기 챠트를 넘겨보더니 검사결과가 바뀌었다고 지적을 한다. 나한테 사과하는 임상병리사를 보니 짜증이 난다. 그게 나한테 사과할 일이야, 수검자한테 사과할 일이지?

 

근처 800 명 규모 기업의 보건관리자 둘이 찾아 왔다. 뇌심혈관질환 예방사업을 하는데 자문을 구한대나 어쩄다나 하고 며칠 전에 전화를 했었다. 뇌심 관리가 이번에 6시그마 프로젝트로 채택이 되었단다. 내년에 우리 병원에 직무스트레스와 근골격계 조사사업을 의뢰하려고 하는데 지금 기안을 올려야 한단다. 가져온 ppt 를 보니 장난아니게 준비를 했는데 그 노력에 비해서 많이 아쉬운 내용이다.  예를 들면 관리대상에 생산직 장기간 교대근무자가 빠져있다.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이런 건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외부 용역주어보았자 반짝 하고 끝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굳이 이런 저런 교수들 불러다 잡일시키지 말고 알아서 해라 했다. 생각보다 면담시간이 좀 길어졌다.

 

특검 판정 열 건정도 하는데 검진간호사가 **기업 보건담당자가 면담 요청했다고 한다. 직업성 질환 유소견자와 요관찰자 판정이 많이 나간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해 달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검진 중간 중간 자꾸 전화하는 걸 나중에 한꺼번에 이야기해라 하고 미루었던 것이다. 일정표를 보니 월요일 오후 1시부터 30분이 빈다. 그 이상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사전설명하라 했다. 그리고 나서 특검개인결과표를 확인했다. 복잡한 특검판정내용이 제대로 입력되고 출력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직업병 문제는 그 파장이 심각해서 여러 번 확인하고 내보내야 한다.

 

그거 끝나고 나서 인턴선생이 특정 암검진 판정 해 놓은 것을 점검을 했다. 사실 그동안 특검말고 일검, 암검진, 종합검진 결과는 판정지침 주고 알아서 하도록 해 왔는데 뭔가가 삐그덕 거린다. 판정내용이 생의학적 모형에 치중해 있는 게 마음에 안 든다. 몇 가지 수정하라 하고 진찰실을 나왔다.

 

6시에 산업위생사들과 미팅이 잡혀 있는데 아직 다 복귀를 안 했다. 하루 종일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운전하고 돌아온 사람들한테 늦은 시간에 미팅을 하자고 하는 내 마음도 편하지 않다. 하지만 더 미룰 수가 없다. 다 모이면 연락하라 하고 연구실에 돌아왔다. 빨리 하고 집에 가서 자야겠다. 내일 세미나 준비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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