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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운전사의 직업병은 어떻게 예방해야 하나?

풀소리님의 [안건모] 에 관련된 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랑은 큰 관련은 없지만 트랙백을 걸었다. 가끔은 트랙백을 걸어야 블로깅하는 것 같아서..... 풀소리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노총의 야합으로 복수노조가 유예된다는 기사를 읽고 덤덤했는데 풀소리 블로그와 참세상 기사를 읽어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알았다.  마침 어제 오늘 시내버스 회사에서 일반검진을 했는데 오늘은 수검자가 적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이 회사 검진을 하고 나서  사측과 노조위원장에게 정비직에 대한 석면노출여부 확인과 분진노출 실태파악을 위한 작업환경측정, 그리고 특수건강진단이 필요하다고 각각 말했다. '편견을 가지지 말자, 무슨 노총 소속이냐가 그렇게 까지 중요하겠냐' 하는 생각을 하려고 애썼지만 멀뚱 멀뚱 관심없이 듣는 노조위원장을 보면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것을 알았다.

 

  작년에 작업현장에서 만난 정비사들은 '과거에는 브레이트 라이닝에 석면이 있었으나 요즘은 버스가 대부분 새 차로 바뀌어서 별로 없다, 먼지는 많다.' 이렇게 말했는데, 이번에 사측에 보낸 공문에는 석면은 없고 먼지는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고 쓰여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기는 하나, 사측의 확인서를 받는 일까지만 해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니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올해 가 보니 이젠 낡은 버스가 거의 없어졌고 먼지도 덜하고, 요즘엔 방진마스크도 주긴 준다고 하니 다행이다.

 

<식당의 정비사 지정석- 작년에 정비사 지정석이 있는 이유는 작업복에서 나는 먼지와 기름냄새로 부터 운전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또 다른 게 눈에 보이더라. 동전이랑 지폐를 세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소음과 먼지에 노출되는 것을 보았다. 작업대가 낮아서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어깨를 반복해서 앞뒤로 움직이는 작업이라 허리와 어깨 통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 어쩐지 사무직으로 표시된 사람 중에 어깨랑 허리 아프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난 그게 컴퓨터 작업을 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루에 네다섯시간 하는 작업이라도 그 정도면 부담이 꽤 될 것이다.

 

<돈세는 작업, 안에 들어가 불편한 자세를 찍고 싶었지만 소장이 반대해서 무산되었다>

 

   동전을 한꺼번에 셀 때는 우뢰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무직이라 격년에 한 번 검진을 받는다 하여 일단 청력검사를 하라고 했다. 세 명중 2명은 소음성 난청 패턴으로 나왔는데, 그 중의 한 명은 군 시절 비행기소음에 노출되었다 하니 동전세는 작업의 소음의 영향인지는 확실치 않다. 소음측정을 해보고 싶지만 사측의 적대적인 태도와 노측의 무관심을 이미 한 번 경험한지라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귀마개와 마스크 지급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설명했다. '경리아가씨'를 비롯한 사무실내 여성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맞장구를 쳤다. 이제 공은 소장한테.....

 

  버스를 타는 우리들은 기사분들이 무섭고 짜증내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검진하면서 만나는 기사분들을 다르다. 운전직은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이다. 직업적 운전자체도 힘들지만 손님까지 상대하자면 상당한 감정노동을 하게 된다.  아침 6시부터 밤11시까지 버스를 몬다. 2시간에 한 번 최대 40분의 휴식시간이 있지만 따로 휴게실이 있는 건 아니고 길에다 버스를 대놓고 쉰다. 그 나마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켜지지 않는 날도 많다. 이틀에 한 번 이렇게 일하게 되어 있는데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회사에서는 '원하는 사람'한테 일을 주기 때문에 어떤 이는 일주일에 6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과 직무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에 직업적 운전사는 심혈관 질환의 고위험군임이 일찍 부터 밝혀졌건만, 산업안전보건법은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보건관리자 선임대상 사업장에서 제외된다.  

 

 버스기사들의 요통과 목 통증 도 잘 알려진 직업병이다. 전신 진동과 장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느라 받는 스트레스가 요통을 유발하고, 백미러 등을 자주 확인하면서 목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다보면 경추 추간판 탈출증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어제 오늘 검진에선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 문제는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물어보기 시작하면 아픈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걸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도 질문하는 사람들한테는 간단한 설명을 해주는 정도로 했다.

 

 불규칙한 식사와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위장관 증상 호소자도 많았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암검진이라도 좀 열심히 받으라 했더니 한 명을 빼놓곤 다들 금시초문이라 한다. '경리아가씨'한테 좀 수고스럽더라도 암검진 홍보를 좀 해달라고 가르쳐주었다. 이런 건 공단 홈피에 가면....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가장 많은 호소는 역시 피로였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뿐인 그들은 술 담배도 끊은 사람도 많고 영양제도 잘 챙겨먹고 운동도 나름대로 열심히들 한다. 반대로 매일 술을 마시거나 담배없이는 스트레스 해소를 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돈때문에 자발적으로(?)' 17시간 근무를 주 6일해서 피곤한 것을 어쩌겠는가......과로로 인한 사망사고가 많이 나니 3일만 하시라고 하는 내 말은 무력하지만 안 할 수 없는 권고사항이다.

 

  둘째날인 오늘은 거의 수검자가 없었다. 어제 누가 모친상을 당해서 다들 거기 가는 바람에 검진받으러 안 왔단다. 우리 입장에선 소위 '공치는 날'이 된 지라 소장이 좀 미안해 하면서 수검률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이후에는 병원으로 개인별로 들어와서 검진을 받게되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병원이 그 버스 종점이라 그렇게 들어오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오늘은 마침 일감도 안 가지고 나왔는데 오전내내 한산하여 안하던 짓도 좀 했다. 여기저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답글들이 하나 둘 도착하는 것을 읽어보니 쌓인 피로가 좀 풀린다. ㅋㅋ

 

 검진이 끝나고 오후에 예과 수업이 있어 나 혼자 부랴 부랴 나왔다. 직원들은 그 푸짐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남았다. 다녀보면 고된 작업장일 수록 밥을 잘 주는 경향이 있다.

 

<푸짐한 밥, 반찬이 무려 9가지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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