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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질환 수시건강진단

뻐꾸기님의 [피부질환 역학조사 1년후] 에 관련된 글.



지난 6월에 검진한 뒤 8명의 피부질환자에 대해서 작업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을 가지고 첩포시험을 했는데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첩포시험은 원물질을 녹이는 용매를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농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런게 중요한데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부적합한 검사가 된 것 같다. 첩포시험은 음성이나 심하게 오랫동안 증상이 있었던 사람은 유소견자 판정을 내고 작업전환를 하도록 했고 현재 증상자에 대해서 수시건강진단 건의서를 작성해서 공문으로 보냈다. 수시건강진단이란 피부질환이나 천식처럼 증상이 있을 때 진단해야 하는 직업병을 조사하기 위한 제도로 보건관리자의 건의나 해당 노동자의 요청에 의해 사업주가 노동부에 보고한 뒤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특검을 해보니 이걸 하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법정 유해인자는 아니지만 피부질환을 발생시키는 경우 둘째, 법정유해인자이나 정기검진주기 중간에 발생한 경우. 두번째의 경우 고려해야 할 사항은 검진때는 증상이 없었으나 자주 재발한다고 했을 때 증상 발생시 피부질환 수시건강진단을 요청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모르는 노동자가 99.9%일 것이므로. 그래서 특검판정란에 그 내용을 기입하고 수시건강진단에 관한 안내문을 동봉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 회사를 방문했다. 담당 부장이 면담을 시작하자 마자 일장연설을 한다. 훨씬 더 열악한 다른 계열사는 모두 멀쩡한데 왜 깨끗한 공장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냐, 작업전환건은 해당노동자가 반발해서 못 했다, 만약 이 문제가 알레르기에 의한 것이라면 해당자가 그만둘 수 밖에 없는 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다(작업전환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니). 뻐꾸기한테는 인내심을 수양하는 시간이다. 작업장에 가서 면담을 했다. 40대 남자 한 명은 다행스럽게도 작업방법 변경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가 되는 부위에 손을 안 대로 일하는 법을 연구한 것이다. 20대 여자는 좋아졌다가 다시 증상이 발생했다며 손을 펼쳐보여준다. 벌겋게 된 부위에 닿은 부분엔 금속재질과 접착제가 있다. 최근 동료작업자도 증상이 생겼다 하길래 불러서 면담을 해 보았더니 닿는 부위, 증상이 똑 같다. 이 사람들도 작업방법을 바꾸면서 증상이 좋아졌는데 최근 작업물량이 늘어나서 바쁘게 하다보니 자꾸 닿게 된다고 했다. 마지막 면담자는 작업전환을 권고했던 사람으로 알고보니 해당라인의 조장이었다. 그는 나의 권고사항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하고 개인에게 위협적이라고 화를 냈다. 지난 번 검진 때는 가려워서 못 자겠으니 제발 밤에 잠 좀 자게 해달라고 했었던 이다. 충분한 면담끝에 작업전환에 대한 권고가 성급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실 그 동안 발생한 환자 몇 명에 대해서 사측에서 알아서 작업전환한 사례들이 있었기에 부담없는 조치라고 오판한 것이었다. 라인 조장이 어딜 가겠는가. 조장을 통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첫째, 앞의 세 사람은 다른 제품 생산자로 특정부위를 접촉하는 사람만 생기지만 이 라인은 순환작업을 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업자에게 피부증상이 수시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 라인은 특정 기종을 생산할 때만 증상이 생기는데 제품과 피부 접촉양상으로 보건대 원인이 최소한 2개 이상일 것이라는 점이다. 아래 사진에서 맨 위의 피부증상자가 제품을 잡아서 닿는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금속의 재질은 제품의 부위에 따라 3가지이다. 그중 2가지엔 니켈과 알루미늄이 있다.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 발생 가능 물질이다. 그런데 금속 위에 부위에 따라 방청제와 구리스가 묻어 있다. 그것도 자극성 접촉피부염 발생물질이다. 닿기만 하면 피부질환이 발생하는 것이 확실한 접착제에는 톨루엔과 TCE가 들어있는데 성분미상 물질이 약 2-30%섞여 있다. 아마 얘가 범인이겠지. 범인을 밝혀야 한다. 구리스, 방청제,접착제 등이라면 화학물질 교체를 검토하는 것이고 금속재질이라면 그건 원청지시사항이니 바꿀 수 없으므로 새로운 피부보호구를 찾아보아야 한다.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첩포시험을 할 예정이다. 오늘 피부과 교수를 만나 의논했으나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 외래에서 환자를 너무 많이 보고 나서 파김치가 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미안함을 무릎쓰고 그런 부탁을 하는 내가 참 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시중에 나와있는 업종별 검사키트를 구해서 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 문제되는 물질 중 몇 개는 시중에 나와있는 상용화된 검사키트에는 없을 것이므로 직접 시약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번엔 구리스와 방청제, 접착제가루만 했는데 농도와 용매가 부적절했던 것 같고 알루미늄과 니켈을 추가해야겠다. 이번엔 희석방법과 농도를 다양하게 하고 검사전에 예행연습을 하려고 한다. 과에 자원자 모집 공고를 냈다. 나와 담당간호사는 일단 자원했다. 오해마시라. 담당 간호사가 억지로 결의한 건 아니니. 우리 둘 다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이 가을에 이 피부질환은 꼭 넘어야 할 산이다. * 맨위의 사진은 예상보다 지연되어 점심시간을 놓치자 회사식당에서 끓여준 라면. 이 날 너무 늦어져 다음 사업장의 일정은 연기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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