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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화요일 오후 2시쯤 내과에서 타과의뢰서가 왔더라.
원래 월요일에 온 건데 과내 사정으로 하루 늦게 전달되었다.
쓰윽 보니 환자가 트리클로로에틸렌이라는 유기화합물에 노출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대사물인 삼염화초산을 소변중에서 분석해달라는 것이더라. 주치의가 작년에 우리 과 인턴을 훌륭하게 돌았던 선생님이라 그런 의뢰서를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특하다.
트리클로로에틸렌은 스티븐존슨증후군의 유발물질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우리 나라에서도 4-6명의 환자가 발견되었고 최소한 한 명은 사망했다.
우리 과 검사실에서 하는 것이니 그냥 검사를 진행하면 되는 것인데 문제는 환자가 노출중단후 일주일이 지났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검사할 가치가 별로 없다고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유기화합물은 반감기가 길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정해진 다른 일 끝나고 나서 내과 주치의한테 전화를 해보니 상황파악을 먼저 해야되겠더라. 퇴근시간 임박해서 맨 먼저 환자를 본 피부과선생님을 만나서 자료를 받으면서 어차피 이건 양-반응관계가 있는 병이 아니라 감수성이 있는 사람한테서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걸리는 것이니 미량 검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소변분석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소변을 채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저녁중에 소변받도록 오더를 내달라고 내과 주치의한테 말했다. 그런데 병동에서 샘플을 어떻게 채취하는 지 몰라 우리 과에서 가르쳐주어야 하겠기에 임상병리사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정확하게(민감도와 특이도 둘 다 높은 방법)으로 분석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해당 팀장에게 물어보고 일단 우리 과에서 먼저 분석한 뒤에 결과를 보고 다른 분석기관에도 의뢰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요즘 우리 과의 분석결과의 신뢰성 때문에 고민이 많음). 빨리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몇 시간내에 결과가 나왔다. 두 가지 분석방법이 있는 데 더 정확한 것은 GC로 분석하는 것이나 공단지침은 발색법(UV)이고 우리 병원은 정도관리 통과기관이다.
결과가 나왔다.
작업종료후 소변에서 100g/g Cr이 노출기준인데 50이 나왔다.
일주일간 작업을 중단한 사람한테서 나올 수 있는 수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전화를 했다.
우리가 자주 샘플을 보내는 원진의 최선생님은 그 물질에 대한 분석경험은 충분치 않아서 못 한다고 했고, 산업안전공단에 전화를 해 보니 외부 샘플은 일체 분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 대목에서 열 좀 받았다. 옛날에 베릴륨 중독 사건 터졌을 때 그런 중요한 시료를 공단에 의뢰하라는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건 그 양반 개인의견일 뿐이라며 안 된단다.
환자가 일했던 공정의 물질안전보건자료에는 트리클로로에틸렌이 없다. 타 병원에서 실시한 작업환경측정결과에서는 노출기준의 100분의 1정도로 검출된다. 소변 검출 농도는 상식적이지 않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원점부터 다시.
사업장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납품업체에 전화해서 확인하고 다시 사업장에 확인한 결과는 약 20미터 떨어진 지점에 트리클로로에틸렌 세척공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측에서는 두 공정사이는 어느 정도 격리가 되어 있어 노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을 하길래 가서 볼 수 있냐 물어보니 의외로 오란다.
산업위생사샘과 함께 갔다. 공장이 우리 병원에서 10분거리라 가 볼 생각을 한 것이다. 막상 가니 딴소리를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공장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설득했고 결국 그 공정을 보았다. 충분히 상당량의 트리클로로 에틸렌에 노출될 만 하다는 것을 물질안전보건자료와 눈으로 확인했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그렇게 높게 나오는 게 가능하냐인데. 그건 현재의 작업자들을 조사해보는 수 밖에 없고 나는 그걸 조사할 만한 권한이 없다.
사측에서는 법적인 의무를 다 했고 몇 년씩 일한 사람들은 멀쩡한데 일한지 한달도 안된 사람이 직업병이 웬말이냐 한다. 이 병이 원래 희귀하고 특이체질인 사람이 걸리는 것이라 예측할 수 없었던 문제라 설명했더니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면 좋겠냐 묻는다.
현행 법에서 트리클로로 에틸렌의 배치후 첫 건강진단은 6개월후에 하도록 되어 있지만 신규입사자에 대해서 한달이내에 열흘간격으로 세 번 이상 간기능을 체크하고 피부질환여부를 확인하는 게 안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같이 간 산업위생사샘이 작업환경개선방향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었다.
돌아와서 트리클로로 에틸렌에 의한 스티븐존슨 증후군으로 판단된다,
산재요양신청을 해야 할 사안이다라고 회신을 쓰고
피부과 샘한테 전화로 이 내용을 전하고 종결했다.
이 일 처리하느라 세미나도 참석 못 했고,
진행중인 연구의 중간보고서 제출도 못했고,
내일 심포지움 토론문을 시작도 못 했다.
도대체 나는 하루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내가 한 일은 노출을 확인해줌으로써 업무관련성을 입증한 것과
이로써 환자가 산재요양대상임을 알려준 것 뿐이다.
노출확인은 그냥 산업위생사 샘한테 다 맡기고
마감이 닥친 일을 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보면 요중 삼염화초산 검사코드만 알려주고 끝냈으면 될 일인데
사측에서 환자가 취급했다고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상 트리클로로에틸렌이 없었기 때문에 이 난리를 피웠다.
제발 간접노출에 대한 개념 좀 잡고 살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타과의뢰서가 우리 과에서 잠자고 있었던 하루라는 시간때문에,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서 좀 오버했던 것 같다.
일의 경중완급을 잘 판단하고 살아야겠다.
환자는 간기능이 꽤 좋아져 오늘 내과에서 다시 피부과로 갔다고 한다.
문헌을 보니 좋아졌다가 이차감염으로 죽은 사례가 있었다.
그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오지 않기를 빌 뿐이다.
그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이주노동자이다.
여러가지로 지치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냥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이 난국을 수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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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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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이 적극적이고 명확한 부분이 좋습니다.아마도 남에게 맡기고 다른일을 했더라면 더 힘들었을거예요.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