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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님의 [인쇄업의 유기화합물 노출] 에 관련된 글.인쇄업체중에 비교적 작업환경이 양호하고 임금도 많이 주는 그 회사의 특수검진이 마무리 되었다. 특검결과 소음성 난청을 제외하고 7명의 유기용제 요관찰자와 1명의 유기용제에 의한 피부질환 유소견자가 나왔다. 특검에서 천식과 피부질환이 확진되었으나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2명은 수시건강진단 건의서를 보냈다. 지난 월요일에 가서 직업병 요관찰자 및 유소견자 사후관리 상담을 하고 담당과장과 부장면담을 했다.
유기용제 요관찰자로 판정된 이 7명중 현재 근무자 5명을 상담했는데 그들은 모두 수년 동안 이 작업을 해 왔고 2회 반복측정한 신경행동검사에서 이상소견이 있었다. 원래 이 검사는 10가지중 2개이상에서 비정상이면 유기용제 중독 2기라고 진단하게 되어 있다. 입사초기엔 괜찮았는데 점점 나빠졌다는 게 확인이 되어야 업무관련성을 입증할 수 있지만 이 검사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는 고로 현재로선 확인불가.
이 회사의 인쇄공정은 지난 번 작업환경측정 때 톨루엔, MEK, IPA, 에틸아세테이트 이 네 가지의 유기용제를 혼합유기용제 노출기준을 2배 초과했고 요관찰자들에게서 그날 측정한 유기용제 대사물(마뇨산)은 노출기준의 80%정도로 검출되었다. 상담결과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작업환경측정당시 인쇄기 중 한 대의 환기설비가 고장이었다는 것, 작업자들은 평소 거의 맨손 또는 폴리글러브만 끼고 용제에 손을 담그다시피 한다는 것, 압통이나 동판 닦는 것처럼 순간 고농도 노출때도 호흡용 보호구를 쓰지 않는다는 것.
---> 작업자들에게는 검사결과의 의미를 알려주고 피부노출의 중요성과 방독마스크의 올바른 착용에 대해 강조해서 설명했고, 사측에는 적합한 보호구를 선정하여 지급하고요관찰자에 대한 추적검사를 하도록 권했다. 환기설비는 이미 수리했다고 한다.
피부질환 유소견자는 작업전환을 시키기로 했다. 이 회사는 공정이 여러 개라 가능하다고 하는데 본인이 야근이라 직접 면담 못 한게 좀 마음에 걸린다. 일단 노출감소를 위한 대책을 해 보고 또 재발하면 그 때 작업전환해도 된다는 게 내 생각인데 워낙 여러가지 사안을 이야기 하다보니 충분히 설득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HDI 사용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두드러기와 천식환자에 대한 수시건강진단 권고이다. 둘 다 작업 1년미만의 젊은 사람인데 사측에서는 알레르기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일한 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직업병 가능성이 있다는 데 반발했다. 또 하나는 그들이 직접 취급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회사에서 A동에서 TDI작업을 했는데 B동의 천식환자가 재발한 사례를 들어 설득했다. 그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검진이라는 점을 강조.
천식환자는 메타콜린 유발검사 양성으로 나왔는데 문진을 다시 해보니 반응성 기도장해 증후군일 수도 있겠다. 입사초기 고농도 유기용제 노출을 경험해서 심한 증상을 겪고 사측에 환기시설 설치를 건의해서 받아들여진 적이 있다 한다. 반응성 기도장해증후군은 천식과 비슷하지만 기도유발검사 양성이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질병이다.
꽤 긴 시간을 논쟁섞인 대화를 나누니 매우 피곤해서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려는 데 담당부장이 혈압 좀 재 달란다. 대화 전에 재야지 실컷 열받은 다음에 재면 어떻게 하냐 하고 웃었는데 재보니 170/110 이다. 허걱. 지난 번 검진때까지 괜찮았는데. 들어보니 최근 한 달간 혈압변화가 심했고 신경쓰는 일이 좀 있다고 한다. 본인이 보다 정확한 검사를 원하기도 하고 연령, 흡연상태, 스트레스 상황을 고려해서 순환기 내과 교수 앞으로 진료의뢰서를 썼다.
지난 번에 교대근무자에 일산화탄소노출이 기준을 초과한 사람을 순환기 내과로 보냈다가 왜 왔냐고 하고 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 매우 난처했던 경험이 있기에. 혹시 몰라 직업심장학회 권고사항을 참고로 적었다. 이런 경우 24시간 심전도, 심초음파, 스트레스 유발 검사를 하도록 권하고 있느데 앞의 2개는 검사가능하고 뒤의 것은 국내에서 검사가 세팅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산업의학 전문의로 일하면서 제일 어려운 일의 하나는 사업주를 설득하는 것이다. 직업병 문제는 사측이 한 두 번의 설명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수십년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내왔는데 왜 올해는 이렇게 시끄럽냐는 질문부터 나온다. 내 답변은 법이 바뀌었고 이젠 노동자의 건강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로 발전해가기 때문이니 그렇게 이해해달라. 꼭 누가 죽어야 직업병이라는 생각,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두 번째는 흔히 해당 노동자의 특수성(주로 불성실)을 들어 트집에 가까운 질문들을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하느라 하지만 쉽지 않다.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하던 노동자가 질병이 생기는 순간 평소 불성실한 사람으로 갑자기 낙인 찍히고 본인 과실에 의한 것으로 몰아부치는 일은 고전적인 문제이다.
이 가을에 상반기에 검진하고 마무리 된 곳을 몇 군데 더 가야 한다. 때로 사측과 논쟁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우리의 임무는 그들이 알아듣도록 설명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호흡조절하고 해야 하는 어려운 일...... 그래도 하나 끝내서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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