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언니, 우리 오늘까지예요.

  지난 주 목,금요일 검진은 참으로 우울했다. 회사가 합병되면서 수십명의 노동자가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사람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검진을 앞당겨 실시한 곳이다. 나가면 그나마 검진받기도 복잡해지니 검진이라도 받게 해주자는 건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일년 전쯤 사주가 외국회사에 매각을 했고 그 후 방문할 때마다 심란하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다. 생산직은 이미 구조조정이 끝나서 생존자들이 검진을 받았고 사무직은 수검자의 반 정도가 나가는 사람이었다. 어떤 부서는 일이 없어 회사나와 공 차고 놀고.... 어떤 부서는 새벽 세시까지 일하는 분위기가 몇달째 계속되었다. 잠 못자는 사람, 혈압이 높은 사람, 매일 술먹는 사람.....



   생존자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회사가 두 개의 공정중 하나를 다른 나라로 보내고 새로 라인을 깔고 있어 해당부서 사람들은 거의 매일 밤 열두시이후 퇴근. 생존자들도 얼굴이 편해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수검자는 전 지회장이었는데 뭐라고 말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회사가 합병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여러 명 있었는데 얼굴에 피로가 가득하다.

 

   첫날 검진을 하고 나서 사측의 설명과 달리 나가는 사람들은 이미 퇴사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두 번째 날부터는 그 문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아불싸..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모니터 위치를 정 중앙으로 놓고 짬짬히 스트레칭을 하고......'이런 설명을 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이 바로 구조조정 대상자였던 것이다. 담당 간호사 말이 " 언니, 우리 오늘까지예요" 하더란다. 어쩐지 애매한 표정을 짓더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용접흄 문제가 심각해서 그 먼지가 옆 공정까지 날리는 것 때문에 작업자들끼리 다툼이 있기도 했고,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이후 산재요양 대상에는 끼지 못하지만 계속 통증이 있어 상담을 받으면서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사측에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손목이 아파서 한달정도 요양하면서 동료들과 사이가 나빠져 눈치가 보인다던 아주머니도 보이지 않는다. 작업장 순회점검할 때마다 흥분했던 산안부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둘쨋날 검진이 끝날 무렵, 초라한 행색의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왔다. 기름때 찌들은 작업복. 이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술냄새가 풍긴다. 그들도 오늘이 마지막인 사람들이기에 어제 모두들 술 한 잔 했다고 한다. 알콜보다 더 건강에 해롭고 무서운 것은 절망이 아닐까. 이럴 땐 유해작업이라 할지라도 실직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버젓한 노동은 우리 모두가 꿈꾸는 것이지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