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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 이야기

*  홍실이님의 [9장 + 10장] 을 읽으면서 생각 난 이야기.

 

  그 때 나는  '저농도 노말헥산에 의한 말초신경손상'이란 주제로 석사논문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 연구는 노말헥산이 함유된 본드를 사용해서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신경전달속도검사를 해서 말초신경손상여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노말헥산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검사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 즉 연령, 학력, 음주 등이 연구대상과 유사한 집단을  대조군으로 선정해서 비교를 해야 하는데 신경전달속도검사라는 게 전기 자극을 주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불쾌한 검사일뿐더러 한 번 검사에 30분정도 걸리기 때문에 대조군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병원내에서 대조군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30-50대 남자이며 저학력인 집단. 환자이송원들이 적격이었다. 환자이송원은 오더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병원에서 환자들을 보조하는 남자직원을 말한다. 그 때까지 나는 실습을 포함하여 병원생활 4년째였지만 환자이송원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그들의 휴게실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었다.  수소문해서 찾아가서 환자이송원들이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의학연구의 대조군으로 안 해본 검사가 없으며 한번도 고맙다는 인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엔 전기충격을 가하는 검사라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 구씨가 나서서 많이 도와주었다. 구씨는 오래된 환자이송원이었고 동료가운데 신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구씨의 협조를 얻기 위해 이렇게 연구에 협조해주는 것이 의학의 발전과 노동자 건강보호에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역설을 했고  직업병이 무엇인지 산업의학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구씨의 도움으로 수십명의 대조군에 대한 검사가 끝날 무렵 우리는 많이 친해졌고 살아온 이야기도 하게되었다. 구씨가 기억하는 호시절은 ** 페인트에 근무할 때였다. 거기선 병원 환자이송원처럼 감정노동을 할 필요가 없으며 어디가서 이야기하기도 버젓한 직장이기 때문이다. 

 

일년쯤 지나서 병원복도에서 만나서 인사를 하는데 안색이 좋지 않아 물어보니 혈액종양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구씨가 1970년대에 일했던 페인트 회사에서 벤젠에 노출된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구씨는 공장을 청소하다가 벤젠을 뒤집어 쓰고 쓰러져 인근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구씨에겐 거액의 치료비를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나는 산재로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설명했다.  먼저 그 페인트 회사의 노출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노동조합에 전화를 했다. 그런 시끄러운 일에 노동조합이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답변이었다. 산재로 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구씨가 노출된 발암요인은 벤젠만이 아니었다. 환자이송원의 업무중에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엑스레이를 찍을 때 자세를 취하도록 붙잡아 주는 일도 있다. 호흡기 내과 병동 담당이었던 구씨는 매일 수십번 엑스레이에 노출되었다. 지금이야 납으로된 에이프런 으로 보호하는 것이 필수이지만 그 시절엔 그런 것이 없었다고 한다. 구씨가 방사선에 의해 혈액종양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공무상 질병 신청을 해 볼 수도 있다.

 

구씨는 이미 이 병원에서 직업성 질환에 걸린 적이 있었다. 호흡기 내과 병동 시절 결핵에 걸려 치료받았다. 당시 복용했던 결핵약인 리팜핀의 부작용중의 하나가 혈액이상이었다. 나는 혈종내과 교수님에게 잘 말씀드려 방사선이나 리팜핀 장기 복용으로 인한 혈액이상쪽으로 소견서를 받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의논할 수 있는 노무사를 소개시켜주었다. (당시엔 전공의신분이라 내가 공식적으로 관여할 입장은 아니었음)

 

구씨는 결국 리팜핀 부작용으로 인한 혈액이상으로 공무상 질병 인정을 받았고 휴직계를 내고 일년정도 요양을 떠났다. 그 뒤로 나는 모교를 떠났다. 가끔 그가 생각날 때마다 그가 요양중에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했었는데 얼마전 같이 일하던 간호사선생님으로 부터 그가 복귀하여 작업전환이 되어 수위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이다.

 

 '그저 기구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비교적 해피엔딩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일이 자신을 어떻게 해치는 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구씨들을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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