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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43

(§43) 수학적 인식에서는 통찰이 사태의 외부를 겉도는 행위다. 그 결과 [사태에 침몰하여 사태/개념의 운동을 따라 잡는] 참으로 해야 할 일은[1] 이런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행위로 대치되고 변질된다. 그래서 [수학적 인식은 그가 사용하는] 작도나 증명 같은 수단이 [형식논리적으로] 다 맞는 말들만[2] [줄줄이] 포함하고 있다고 자긍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들의] 내용은 왜곡된 것이라는 점이다.[3] 앞의 예에서 본 바와 같이 삼각형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그 찢어진 부분들은 작도하는 과정에서 [임의적으로] 그 삼각형의 언저리에 작도되는 다른 도형에 때려 붙여진다. 이렇게 인식이 전진하는 과정에는 원래 다루려고 했던 삼각형은 안중에서 사라지고 단지 조각난 상태로만 다른 총체에 예속되는 것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본래 다루려고 했던 삼각형이 복구된다. — 우리는 여기서도 역시 개념의 운동에서와 같이 내용의 부정성이[4] 발동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거기서 어떤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확고한 사상이 사라지는 것을 놓고 [그 확고한 사상의 그릇됨을 이야기한다면] 여기서는 더욱더 [수학적 인식의] 내용의 그릇됨을 이야기해야만 할 것이다.



[1] 원문 . 서문 §1 에서 이야기된 내용과 비교할 수도 있겠다.

[2] 원문 . 역자의 귀에는 하면 <겉치레>라는 의미가 들린다.

[3] 명제가 맞더라도 그 명제의 개념에서 증명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개념의 운동에서 새로운 내용이 생성되는 과정은 수학적 인식에서와 다르다는 것이다. 서설 §18과 대비하여 읽을 수 있겠다.

[4] 원문 . 또 소유격이 문제다. 주격 소유격인지 목적격적 소유격인지 구별해야 할 것 같은데, 좀 헷갈린다. 운동의 원동력이 <부정성>이라면 주격 소유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수학적 인식의 증명과정에서는 <부정성>이 운동의 원동력이 아닌 것 같다. 이 문단전체가 알듯하면서도 뭔가 좀 아리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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