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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4/08/29
    애국 - 이어서(1)
    ou_topia
  2. 2014/08/28
    애국
    ou_topia

애국 - 이어서

여기, 나도 역시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다 ...

[아름다운 시 등등을 지으면서 내 삶을 살겠다는] 이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더 좋을 수 없는 장소를 찾았다. 노르망디의 르아브르 드그라스에서 그리 멀지 않는 해변가에 자리한  빌라를 찾은 것이다  ... 나는 이 곳에서 잔잔한 노래를 지으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

그러나 이런 기분에 취하면, 알다시피, 방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종종  고양된 마음과 볼이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밖으로 나가 어디로 가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 염두하지 않고 거닐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상태였다. 결국,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아브르의 시골길로 접어 들었다. 그때 가지가지의 초라한 궤짝과 함, [대대로 물려 받아] 닳고 닳은 살림살이, 아낙네들, 그리고 아이들을 높게 실은 여러 대의 큰 농업용 마차가 천천히 내 앞을 가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남자들이 걷고 있었다. 이들의 말을 듣는 순간 적지않게 놀랬다. 슈바벤 사투리 독일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고향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는 사라들임을 쉽게 알았다. 이들을 눈여겨 보면서 나는 내 생에서 아직 느껴보지 못한 느닷없는 감정이 날 아찔하게 관통하는 걸 느꼈다. 모든  피가 역류하여 심장으로 올라가 갈비뼈를 두드렸다. 마치 가슴에서 뛰쳐나와야 하는 것처럼. 마치 지체없이 나와야만 하는 것처럼. 호흡이 목에 걸렸다. 내가 만난 것은 조국의 모습이었다. 금발머리 독일이, 진지한 파란 눈빛으로, 느긋하고 너무 신중한 얼굴로, 내가 옛적 그토록 지루하게 느끼고 격분했던, 그러나 이젠 애처로운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우매를 아직 입언저리에 지닌 채, 마차에 앉아있었다 … [이젠] 조국의 궁핍조차 돌연 보배롭고 값찐 것이었다. 고루한  속물근성과도 화해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그의 손을 욺켜 잡았다. 독일 해외 이민자들의 손을 욺켜 잡았다. 마치, 조국과 갱신된 사랑의 동맹의 악수를 하듯이. 그리고 우리는 독일말을 했다 ...

저 만남은 나로 하여금 깊은 비애에 빠지게 했다. 암흑같은 슬픔에 빠지고, 납처럼 무거운 마음이 무너졌다. 해도해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승자처럼 취해서 오만하게 날뛰던 내가 이젠 허리가 꺽인 사람처럼, 맥이 풀린 환자처럼 엉금거렸다. 이건, 단언하건데, 갑자기 요동하는 애국심의 결과가 아니었다. 뭔가 더 고귀한, 뭔가 더 좋은 것이었다 …

애국심, 진정한 애국심은 묘하다. 조국을 사랑하면서 팔순이 되어도 조국사랑을 한번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다. 물론, 줄곧 고향에 머문 사람이 이렇다. 봄의 본질은 겨울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고, 난로 옆에서 가장 좋은 5월노래를 짖는다. 자유사랑은 감옥[에서 피는]꽃이다. 감옥에서야 비로소 자유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독일조국 사랑은 독일국경에서야 비로소, 특히 이국땅에서, 독일불행을 몸소 보았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

확언하는 바, 나는 애국자가 아니다. 내가 그 날 눈물을 흘린 것은 순전히 그 작은 소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미 날이 기울고 있었다. 한 작은 독일 소녀가, 이민자들 중에서 이미 본 적이 있는 작은 소녀가 해변가에 생각에 잠겨 서서 먼 바다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작은 소녀는 8살쯤으로 보였다 … 저게 대양이냐고 날 물었다 …

나는 밤이 깊을 때까지 해변에 서서 울었다. 나는 이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도 해변에서 울지 않았던가. 그의 은빛 발의 어머니가 [테티스] 바다에서 나와 그를 위로해야 하지 않았던가.  나도 역시 바다로부터 한 음성을 들었다. 그러나 이 음성은 위로를 주기 보다는 대려 깨워 일으켜 엄명하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게 아니라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지혜로운(grundweise) 음성이었다 ...

그 이후, 내 조색판에서 황금천사[빛] 색들은 [다] 바짝 말라버렸다. 함성을 지르는 붉은색만이 유동하고 있다. 피빛의 이 붉은색으로는 오로지 붉은 사자만을 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나의 다음 책은 틀림없이 온통 붉은 사자가 될 것이다. 존경하는 독자들은, 앞의 고백을 감안하여, 이를 기꺼이 받아주기 바란다.
 
1833년 10월 17일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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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어이 동무, 자네의 방패에 [아름답게 노래하는] 황금천사를 그려 달라 하지 말고, 붉은 사자를 그리게 날 내버려 두소. 난 어쩔 수 없네, 내겐 그게 익숙해. 자 보게나. 내가 황금천사를 그린다해도 그 천사는 붉은 사자의 모습일거네.”

어는 한 존경할 만한 예술가 동지의 이 말을 이 책이 머리에 둘렀으면 한다.

(…)

이제 내가 아주 겸손해진 건가?

세간의 겸손은 항상 합당한 근거가 있다는 걸 잊지 말게. 신은 자비로워서 보통 그의 사람들이 겸손이나 이와 유사한 미덕을 수행할 때 그걸 아주 쉽게 해 준다네. 예컨대, 원수에게 일침을 가할 만한 머리(Geist)가 없는 사람이 원수를 용서하는 건 – 그런 머리가 없는게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 은총을 입어 너무 볼품없는 코를 갖게 된 사람이 여성을 유혹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쉽다네.

(…)

신에게 감사! 6월 혁명이 그토록 얼어있던 혀를 풀어 주었다. 물론, 하루 아침에 깨어 일어난 사람들이 여태 하지 못했던 말을 단숨에 털어놓으려고 한 결과 내 귀를 종종 불쾌하기까지 몽롱하게 한 아우성이 수없이 일어났다. 이럴 때마다 말해야 하는 의무(Sprechamt)를 내팽개치고 싶은 충동이 날 사로잡은게 정말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예를 들어 장관직을 포기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요직이 공화국의 가장 높은 호민관의 수익보다 훨씬 더 짭짤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행하고 추구하는 일이 공허한 선택이고, 새로운 이상의 창고에서 우리가 대변하고 실행하고 싸우고 괴로워하기로 결단한 이상 하나를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마치 어떤 문헌학자가 그가 주해를 달면서 평생을 보낼 고전 한 권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상을 취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이상이 우리를 취하여 노예 삼고, 우릴 채찍질하여 투기장 안으로 밀어넣어  우리가 강요된 검투사처럼  그 이상을 위해서 싸우게 하는 것이다. 참다운 호민관 또는 사도직은 다 이렇다. 아모스가 아마지아 왕에게 “나는 선지가가 아닐뿐만 아니라 어떤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다. 뽕나무 밭에서 따다 남은 열매를 줍는 양치기일 뿐이다. 그러나 주님이 날 양떼에서 불러 이렇게 말씀하였다. ‘가서 예언하라.’”라고 말한 것은 의기양양한1 자백이었다. 그 볼품없는 수도승이 그의 교리때문에 보름스의 제국회의에 기소되어 황제 앞에 서서, 마음의 겸손을 다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떤 철회도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이게 [이 교리가] 나의 바탕이다. 나는 달리 할 수 없다. 하나님이여 도우소서, 아멘!’하고 끝을 맺었던 것은 의기양양한 자백이었다. 너희들이 이런 성스러운 강제가 뭔지 알았다면, 우리를 더 이상 나무라지, 더 이상 비방하지, 더 이상 중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 우리는 주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말의 종일 뿐이다. 막시밀리안 로베스피에르가 “나는 자유의 노예다.”라고 한 것은 의기양양한 고백이었다."

(하인리히 하이네, 살롱 1권 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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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 wehmütig 애처로운. 이건 흐름상 말이 안된다. 어원사전과 그림사전을 찾아봤더니 원래 의미는 '분노'와 관계가 있다. 1800년 즈음까지 이런 의미로 사용. 하이네가 이 서설을 쓴 건 1833년이다. 그래도 하이네는 옛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의기양양하다'란 의미가 왜 '의기소침하다'란 의미로 전복되었는지 모르겠다. 독일 혁명의 실패에 따른 독일 브루주아 비더마이어시대의 '내향성'(Innerlichkeit)과 상관이 있는걸까?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