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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자기 자신의 죽음을 표상할 수 있을까? 자신의 부재를 상상하는 에고(ego)가 주체로 살아 있고 현재하는데 이게 어찌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죽음에 대한 표상은 항상 타자의 죽음이다. 사물(Ding)로 떨어진, 생명과 함께 주체가 사라진 것으로서의 타자다. 죽음의 실체는 주검이다.
파울 첼란은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표상하고 있는가?
먼저 자신이 남김없이 죽어서 완전한 타자가 되어야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엄마의 아기가 되어서?
어느 한 촛불 앞에서
망치로 두들겨 편 금으로, 그렇게
하라고 내게 간곡히 당부한대로, 어머니,
촛대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거기로부터
솟아 올라온 촛불 하나가 [독: 여성] 저를 어둠의 한가운데로
산산조각이 난 시간들의 한가운데로 인도합니다:
당신의
주검(Todsein)의 딸이.
(...)
Vor einer Kerze
Aus getriebenem Golde, so
wie du’s mir anbefahlst, Mutter,
formt ich den Leuchter, daraus
sie empor mir dunkelt inmitten
splitternder Stunden:
deines
Totseins Tochter.
(파울 첼란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에서 나찌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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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seins Tochter"의 두운에 단테의 신곡 지옥편 5곡의 마지막 행이 연상된다. "E caddi come corpo morto cade." (나는 죽은 몸이 쓰러지듯이 쓰러졌다.)지옥에서 사랑을 완성한 ("나와 영원히 결합해 있을 그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를 보고서 기절한 단테의 마음의 운동과 첼란의 그것이 사뭇 다르다. 단테는 하강하는 기절인데, 첼란은 상승하는 촛불이다. 딸로서.
첼란의 운동에는 '동정'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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