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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어에 “Dünnbrettbohrer”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얇은 판자를 뚫는 사람’이란 말인데, 별로 똑똑하지 않는 사람이란 의미에다 해야 할 일을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을 취하는 사람을 풍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포스트구조주의란 게 이렇게 얇은 판자를 뚫는 사람들이 입는 옷? 그리고 그게 임금님의 옷이라고 자랑? 아이들의 눈에도 임금님이 과연 휘황찬란한 옷을 입었을까? 아니면 발가벗었을까?
이런 의혹을 품게 된 동기는 독일에서의 몇 가지 판결사례다. 규범성이 문화상대적이란 건 법정에서 쉽게 받아들여지는 반면, 노동자를 구속하는 노동법현실은 일보의 물러섬이 없는, 자본주의적 계약에 묵인 사람 단 한명의 탈출도 허용하지 않는 “강철같이 단단한 [가혹한] 외피족쇄”(“stahlhartes Gehäuse”, 막스 베버)로 유지되고 있다.
사례 1 : “벙커 살인사건”(Bunkermord)
1. 범죄서술
쿠르드인인 A는 터키에서 쿠르드 노동자당 PKK의 무장투쟁에 참여. 총격전에서의 부상으로 하반신불구가 되어 양다리를 쓸 수 없게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됨. A는 1994년 18세로 독일 브레멘에 입국. 망명자로 인정. 브레멘의 PKK 동조자들 사이에서 전쟁영웅으로 존경됨. 1998년 말 당시 17세 여성 D를 사귐. D는 1996 쿠르드인 부모형제와 함께 브레멘으로 이주. 두 사람은 결혼을 원했지만 우선 D의 부모들 앞에서 숨김. 쿠르드 전통규율에 어긋나게 A는 D의 어머니에게 D와 결혼하겠다고 고백. 이걸 알게 된 D의 아버지는 정언적으로 결혼허락거부. 그는 A를 무엇보다 먼저 장애자로 봄. 이 사실 자체가 A가 자기 딸에게 적합하지 않은 이유가 됨. 그는 그 외 A는 PKK 당원으로서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하여 D의 아버지는 브레멘 지역을 관할하는 PKK 담당자를 찾아가 하소연. D의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었다고 느끼고 PKK에 의한 명예회복을 요구. 그가 보기에 A는 PKK의 간부여서 PKK가 그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 D의 아버지와 그가 위탁한 사람들에 의한 절교시도 실패. D는 오히려 1999년 5월 A의 집으로 이사. 쿠르드 커뮤니티는 이 두 사람의 행동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음. 특히 A가 점진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A와 D는 1999년 6월 비밀리에 한 회교사원에서 이슬람법에 따라 결혼함. A와 D의 관계가 쿠르드인 사이에서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지속적으로 구설에 오름. 하여 PKK의 지역 담당자가 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됨. 1999.8.24 이른 시간에 새벽에 피고인 To와 M에게, 그리고 이어서 피고인 T에게 A와 D를 죽이라고 명령. 피고인들은 살인명령에 당황하고 살인명령의 번복을 시도했지만, 결국 그 명령에 굴복하고 복종함. 피고인들은 희생자 둘을 승용차에 실고 베저 강의 인적이 드문 외부 둑으로 데리고 감. 모두가 하차한 후 희생자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살해. 우선 피고인 T와 To가 D의 팔을 붙들고 둑을 넘어 약 75 미터 정도 베저 강변으로 끌고 감. 거기서 D의 머리를 몇 분 동안 죽을 때까지 흙탕 속으로 누름. 사망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그녀의 머리를 진흙으로 쌓아올려 덮음. 다음 차례로 피고인 T와 To는 승용차 옆에 있던 A를 살해함. 둘 중 하나가 자동차 휠너트 스패너로 히 11번 A의 머리를 힘껏 내려치는 등 폭력을 행사됨. 결과 A는 다수의 두개골 골절상을 입음. 여기다 피고인 M이 승용차로 두 번 땅바닥에 누워있는 희생자를 들이박고 질질 끌고 감. 약 15-30분 후에 A는 사망함.
2. 2001.4.4 브레멘 지방법원 판결
위의 범법행위를 모살(謀殺/Mord=종신형)이 아니라 고의적인 살인(Tötung)으로 규정하고, 13-15년간의 자유형 선고
3. 연방[대]법원에 항고
3.1 피고인 항고 기각
3.2 검찰 항고 허용
3.3 연방고등법원이 문제시한 점
- 브레멘 지방법원이 위의 살인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파묻혀 살고 있는 “낡은(archaisch) 관습과 가치관념”이 중재를 불가능하게 하였고, “위와 같은 극단적인 살인도 허용된 것”으로 인식하게 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피고인들에게는 “명예와 사회적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이 관건이었고, “이들에게는 강하게 내면화된 고향의 가치관념 때문에 그들의 동인들이 객관적으로 매우 사악하고 방약무인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이 인식되지 않았기” (강조 ou_topia) 때문에 [반드시 종신형 선고가 따르는] 모살을 성립시키는 “비천한 동인”(niedrige Beweggründe)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
4. 브레멘의 다른 배심재판서에서 재심
- 모살이 아니었다는 첫 선고 확인, 오히려 피고인 한명의 감형을 축소
사례 2) 연방노동재판소 1984.5.17 판결 -2AZRn 3/83 -
1. 사건: “비넨슈티히-건” [‘비넨슈티히’는 독일 케익류]
1980년 12월부터 에쎈의 어는 한 백화점 뷔페의 판매직원으로 고용된 한 여성이(월급 1,705 DM) 약 30 Cent(당시 60 Pfennig)어치의 비넨슈티히 한 개를 훔쳐 먹었다는 이유로 즉각 해고됨.
1982.3.29 다른 판매직원이 비넨슈티히 한 개를 훔쳐 먹었다고 사측에 일러 발단. 기업평의회의 청문과 동의를 거쳐서 사측은 즉각 해고 함.
2. 즉각 해고에 불복하고 소송
2.1 구(區)법원
- 고소인은 당일 속이 안 좋아서 오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상태가 좀 좋아지자 허기증을 느끼고 비넨슈티히 한 개를 먹었다고 진술. 그녀의 행위는 질서위반이지만 즉각 해고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판결.
2.2 지방법원
- 지방법원은 해고 이전에 경고가 있어야 했기에 즉각 해고는 유효하지 않다고 하고 즉각 해고를 변상 1200 마르크와 함께 정식해고로 전환하도록 판결. 지방법원의 핵심사유는 판매직원이 자신의 행위가 불법임을 의식하는 게 “거의 불가능”("kaum bewußt") 했다는 점. 일회적이고 보잘 것 없는 [재산]손상을 두고 볼 때 그런 일리 다시 일어날 때 엄중하게 다루겠다는 경고 없이 바로 즉각 해고하는 중차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
2.3 연방노동법원
- 양측 항고
- 판매직원은 노동계약 해지 번복을, 사측은 항고 기각, 즉각 해고 유효선고 요구.
- 연방노동법원은 1958년(!!) 판결사례를 참조하여 지방법원 판결의 무효를 선언하고 즉각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 1958.3.24 연방노동법원 판결(- 2 AZR 587/55 -)은 카운터 캐쉬어가 1 마르크를 덜 찍고 횡령했다는 의혹을 다루는 건이었는데 그런 의혹 자체가 합법적인 해고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결. 사용자의 소유물은 그게 아무리 보잘 것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걸 횡령하는 건 그 자체 중요한 해고사유가 된다는 것.
이런 일이 독일에서 종종 일어남. 최근 들어 특히 [여기서 짧게 소개한] 에멜리-건이 사회적인 이슈가 됨. 연방노동법원에 가서야 사측의 해고가 위법 판결을 받음. 시민사회와 노조 ver.di의 거센 반발이 있었음. 당시 금융위기를 저지해야 한답시고 은행과 그에 연루된 자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돈을 갖다 주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 달리 판결할 수 없었는지도 모름.
이런 노동법, 노사관계 폐지는 포스트구조주의의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서는 아마 할 수 없는 일인 지도 모른다.
철갑옷을 입은 노동자만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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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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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급하게 정리했다.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정리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인간들을, 다시 말해서 추상적 인간("Man")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men)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포스트구주주의적인 접근이 한나 아렌트의 [The Human Condition]보다 한발 후퇴한 접근이 아닌가 한다. 스토아에 기반한 시인, 특히 호라티우스의 비판과 관련해서 'vita activa'를 앞 한나 아렌트의 책을 소개하면서 설명해 주신 선생님이 기억난다. 인간의 다원성(plurality)는 평등(차이없음)과 차이를 동시에 안고 존재한다는 것.
지금 독일 여기저기서(뮌헨, 함부르크, 아이젠슈타드 등) 난민들이 추방에 대항하여 단식투쟁 등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우린 다르니까 달리 처우"해 달라는 게 아니라 "우리도 니네들과 다름이 없는 똑 같은(!) 인간"이란 것. 차이이론을 뒤집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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