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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모레면 유럽에서 2차대전이, 독일이 시작한 살인적인 공포가 종결된지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대륙을 잿더미로 만든 전쟁이 마침내 종결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유럽 유대인이 살해되었습니다.
이 전쟁의 과정에서 수백만의 병사와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이 전쟁에 이어 다수의 국가에서 수백만이 고향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유럽이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독일이 반세기동안 분단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서방 연합군과 소련연방이 함께 독일을 항복하게끔 쥐어짬과 동시에 나치독재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비로소 종결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우리 후세는 서구과 동구의 지난날의 적국의 희생가득한 이 투쟁에 감사해야 할 이유밖에 없습니다. 저 투쟁이 우리가 오늘날 독일에서 자유와 존엄을 누리며 살게 해주었습니다.
여기 홀테-슈투겐브록(Holte-Stukenbrock) 성에서 이 시간 이 전쟁의 가장 큰 범죄에 속하는 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소련연방의] 적군(赤軍) 수백만명이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병들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들은 굶어 죽었습니다. 그들은 살해되었습니다. 전시국제법과 국제사회의 협약에 따라 독일군의 보호를 받아야 했던 수백만의 전쟁포로가 [이렇게 생명을 빼았겼습니다.]
그들은 먼길을 [맨]발로 걷도 또 걷도록 강제되었습니다. 그들은 텅 트인 화물차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들은 수용소 혹은 집합소라 불리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그곳엔 거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몸을 누일 곳이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위생시설이 전무했습니다. 진료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몸을 누일 자리로] 흙구덩이를 파야 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것을 긁어모아(notdürftig) 판자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절망하는 가운데 온갖 시도를 다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dann) 강제노동에 집단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쇠약해지고 굶주려 지친 몸에 그들은 비번히 이 강제노동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불과 몇백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포로수용소 “스탈락 326 젠네” (Stalag 326 Senne, [Stalag은 Stammlager/‘줄기’수용소의 준말])가 있었습니다. 31만명 이상의 포로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대다수가 여기서 생명을 빼았겼습니다. 수만이 여기에 묻혀 있습니다.
숫자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근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들은 최소한 독일 포로가 된 소련병사들이 당해야 했던 공포와 무자비한 다루기에 대한 대략적인 상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백 30만명 이상이었던 소련 포로 중 분명 절반 이상이 생명을 빼았겼습니다. 수백만의 운명, 이름, 삶의 이야기. 러시아사람, 우크라이나 사람, 키르기스탄 사람, 조지아[그루지야] 사람, 우스베키스탄 사람, 투르크메니스탄 사람 등 이들은 소련연방의 민족의 구성원이었습니다.
서구연합군 전쟁포로의 상황은 어땠는지 살펴보면 엄청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서방연합군 포로 중 약 3%가 포로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 서구에서와는 달리 동구에서의 전쟁은 나치 정권이 애초부터 세계관의 전쟁, [특정 인종을] 다 죽이고 [재생할 수 없게] 뿌리는 뽑는 전쟁으로 (Vernichtungs- und Ausrottungskrieg) 계획했습니다. 이렇게 계획된 전쟁은 계획에 멈추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닌그라드를 떠올려 봅시다. 수백만의 이 도시를 굶겨 죽일 목적으로 수년간 포위망으로 에워쌌습니다. 모든 점령지에서의 민간인에 대한 잔인성을 떠올려 봅시다. 그러나 특히 러시아에서, 매우 우별나게 거기서 그랬습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그리고 히틀러의 명시적인 명령아래 자행되었습니다. 독일군(Wehrmacht)은 이 명령을 기꺼이 이행했습니다. 합참의장 할더(Halder)는 1941년 5월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아타를 뛰어넘에] 군인간에 우애가 있다는 입장을 버려야 한다. 공산주의자는 전에도, 후에도 동료가 아니다.” 차후 이 요구에 부합하게 포로들이 다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전 소련연방 민족들의 지울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중략]
독일인으로서의 우리는 먼저 독일의 죄(Schuld)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의 연장선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독일군(Deutsche Wehrmacht)의 책임하에 사망한 수백만의 죽음이 “2차 대전에서의 가장 큰 독일 범죄의 하나”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전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도 지금에 와있는 우리는 앎니다. 독일군 역시 [전쟁 일상을 넘어서는] 보다 심각한, 그리고 [해서는 절대 안되는] 극심한 범죄를 자행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Auch die Wehrmacht hat sich schwerer und schwerster Verbrechen schuldig gemacht.).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와 같은 소련 포로의 참담한 운명이 독일에서 전혀 [사태의 중차대한 성격에] 부합하게 의식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종의 기억의 그림자(in einem Erinnerungsschatten)에 [갇혀]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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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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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종결 70년을 앞두고 독일에 이상한 혀놀림(falscher Zungenschlag)이 있다. 30년전 5월 8일을 독일의 해방(Befreiung)으로 규정한 바이체커 대통령의 연설에 물타기가 이루어지고 있다.소련에 의한 해방은 있었지만 자유는 없었다는 논리다. 해방(Befreiung)과 자유(Freiheit)를 대립시키는 말장난이다. 소련하 동구권에는 자유가 없었다는.
30년 전 독일이 자신의 책임을 물었다면 통일을 이루고 유럽연합을 이끌고 가는 독일이 폴란드, 지금은 우크라이나까지 들먹이면서 소련의 책임을 물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가우크 대통령의 이 연설은 다시 한번 독일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억의 그림자'(Erinnerungsschatten)는 신생어다. 독일의 현재 기억정치 혹은 역사정치(Geschichtspolitik - 뮌클러/Münkler)을 정확하게 꼬집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의 기억정치가 '유럽의 집'을 차용하여 일부 소련 배제의 정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브레멘 대 하이데 교수가 [사석에서] '유럽의 집'이란 표현을 제일 먼저 쓴 사람이 히틀러였다는 말이 생각난다. 히틀러의 '유럽의 집' 구상은 소련, 러시아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후 '유럽의 집'이란 표현은 콜 총리와 고르바쵸브도 사용하였다. 이 둘의 '유럽의 집'에는 러시아도 분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히틀러로 회귀하여, 특히 우크라이나 분쟁을 둘러싸고, 러시아를 배제하는 이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기억의 정치가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 가우크가 '기억의 그림자'란 신생어로 일침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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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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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nngerungsschatten"(기억의 그림자)에 현상학의 핵심개념인 "Abschattung"(음영)이 겹친다.기억이 참다운, 즉 총제적인 기억이 되려면 음영에 가려진 대상을 두루 헤아리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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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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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유학생들은 동서구 유럽을 20세기 자본주의비판 역사학습의 공간으로 삼으자!!부가 정보
민들레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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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독일은 유럽에서 독일이 히틀러파시즘 독일군국주의 고향인만큼 반공법대신 극우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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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반공법은 없습니다. 극우 처벌법도 말이 안됩니다. 다만 유럽차원에서 반공산주의 정서 혹은 논리는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유럽평의회 주요 기구인 의회회의(Parliamentary Assembly of the Council of Europe/pace, 다른 기구는 각료위원회/ᅟᅟCommittee of Ministers)에서 2006년 1월 26일 유럽에서 "공산주의 전체주의 체제의 유산을 청산"(『dismantle the heritage of the former communist totalitarian systems)하자는 결의를 했습니다. (참조 유럽 평의회 결의 1481, http://assembly.coe.int/Mainf.asp?link=/Documents/AdoptedText/ta06/Eres1481.htm)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유럽연합의 유럽정상회의(European Council)와 구별해야 한다. 예컨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유럽평의회 가입국이다.]
"스탈린"문제에서 좌파가 주도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수세에 몰리고 반공산주의 정서가 지배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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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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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기억정치가 진영논리에 매달려 있을 순 없습니다.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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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der Durchschnittsmensch)은 자신이 스스로 체험한 [1차] 세계대전보다 아득한 중세의 전율적인 사건에 더 예민합니다. 이 인식은 충격적인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을 공개 화형에 처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겁니다.결론적으로 인류는 아무런 경험과 기억을 가지지 못할 때, 바로 이런 시.공간에서만 속수무책입니다. […]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모습을 드러낸 위험 중에서 가장 큰 위험은 그 희생양으로 우리 세대를 골랐습니다.
숨쉬기의 무저항력, 이것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인간은 그 무엇보다도 공기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공기 안에서 인간은 아직 에덴동산의 아담과 같이 움직입니다. 순수하고, 순결하고, 악한 짐승이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하면서. 공기는 최후의 공유(Allmende)입니다. 공기는 모두에게 똑같이 제공됩니다. 공기는 미리 갈라 놓은 게 아닙니다. 가장 가난한 자도 공기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이가 설사 굶어죽는다 할지라도, 물론 거론의 가치가 없지만, 여하튼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쉼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공유했던 것 중 바로 이 마지막의 것이 [헤르만 브로흐가 말하길] 우리 모두를 독살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앎니다. 단지 아직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잘하는 게 (Kunst) 숨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브로흐(Hermann Broch)의 작품은 전쟁과 전쟁, 독가스전과 독가스전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아직 어디선가 지난 전쟁의 독소분자를 느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린 그럴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분명한 건 숨쉬기에 우리보다 훨씬 더 정통한 그는 앞으로, 그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서 숨쉬기를 앗아갈 독가스에 이미 지금 질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출처: 엘리아스 카네티의 에세이집 『말들의 양심』(Das Gewissen der Worte), 브로흐의 50세 생일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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