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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04
    번역: 저항의 미학 - 노동자의 읽기 1
    ou_topia

번역: 저항의 미학 - 노동자의 읽기 1

일러두기: 생산노동자 앞에서의(‘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면서’란 의미의 ‘coram deo’를 차용하여) 읽기 윤리학을 고민하면서 '저항의 미학' 한 부분을 번역한다. 단락매김은 참조를 쉽게하기 위해서 역자가 임의적으로 매긴 것.

 

1권

[§4]

(...) 상한 몸을 간추려 바리케이드 뒤에  옹그리고 있는 아무런 무기가 없는 사람들은 위용을 자랑하는 이름으로 치장하고 백전불패이며 최상의 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자긍하는 자들에 의해서 절멸되는 형벌에 처해져 있었다.  그녀는 [코피의 엄마] 세숫대를 비우고 난 후,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로, 허벅지에 수건을 건 체, 알아볼 수 없게 희미한 형상으로 채워진 [페르가몬 신전의 양각] 벽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우리의 서술에서 모든 힘을 빼앗긴 체 땅 위에 이리저리 흩트려져 있는 사람들을 짓밟는 고문자들의 대승리밖에 인식할 수 없었다. 한 참 동안의 침묵 후에 하일만이 입을 열었다, 페르가몬에서 만들어진 작품과 같은 [예술] 작품들은 [해석의] 전복을 획득하고 땅의 사람들이 어둠과 노예상태에서 깨어나고 그들의  참다운 모습으로 등장할 때까지 거듭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5]


지(知)의 우월성은 경제적인 비호와 분리될 수 없었다. 소유의 속성은 인색이었고, 기만으로 이익을 본 자들은 무산자들에게 자기형성(Bildung/교육)의 길을 가능한 한 끝까지 막으려고 시도했다. 우리 [노동자]가 [사회적] 관계들을 통찰하고 근본적인 [경험의] 지식들을 획득하기 이전에는 지배자들의 특혜들이 지양될 수 없었다. 결합하고 추론하는 사유의 능력이 우리에게 아직 충분하게 개발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들은 반복해서 다시 뒤로 밀리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 대한 변화의 시작은 상위 계급들의 주력이 우리들의 지를 향한 억누를 수 없는 몸부림(Wissensdrang)을 겨냥한다는 걸 인식하는데 있었다. 이런 인식아래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훈련(Schulung)을, [지을 지향하는 우리를 가두는 격벽에서 빠져나오는 교묘한] 슬기(Verschlagenheit)와 자기극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탐구의 모든 영역에서 [완벽한] 숙련을(Ferigkeit) 정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들의 학습은 시작부터 반항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방어하고 정복의 기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했다. 이 수집은 대부분 우리가 완벽하게 소화한 것(das Begriffene)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거의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한 대상에서 다음 대상으로 나아가면서 피로와 길들여진 자리에서 훈련된 익숙한 보기뿐만 아니라 우리 노동자는 노동일과 후 독학에 요구되는 노력을 할 역량이 없을 거라는 그럴듯한 말에 대항하여 분투했다. (...)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거대한 재화와 축척된 발견들과 계발들의 비축으로 표현되는 문화와 일치되는 적이 거의 없었다. 무산자인 우리들은 처음엔 기가 죽어서, 그리고 경외로 가득 찬 마음으로 착착 쌓아 놓은 [문화유산]에 다가갔으나, 마침내 우리 스스로가 이 모든 것들을 우리 고유의 평가들로 채워야 하고 [문화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총체적인 개념이(Gesamtbegriff) 우리들 삶의 조건과 더불어 우리 사유하기의 어려움과 특질에 관한 이야기가 될 때 비로소 유용한 것이 됨이 분명해졌다. 이 문제는 루나차르스키, 트레티야코프, 트로츠키에 의해서 주제화되었고,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우리는 또한 1920년대 [러시아에서] 일어난 글 쓰는 노동자 양성을 위한 발안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문화문제에 관한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발언들은 서클학습에서 토론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뭔가가 활짝 트이게 하고 고무하고 또한 앞으로 있을 일을 지시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도착점으로 설정하고] 얻고자 애써 나아가는 총체성(Totalität)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예로부터 내려온 것을, 즉 궁극적으로 지배세계의 기준들과 결별을 선언하지 않은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역시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유익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진보적인 쪽의 말도 있었고, 우리 또한 수많은 작품들의 위대함과 무게를 인식하고 어떻게 사회계층들이, 모순들이, 그리고 충돌들이 시대들의 예술적 사료들에 반영되어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로 아직 우리 자신을 [주체로] 포함하는 [형]상에 도달하지 못했고, 우리와 상응해야 한다는 모든 것은 [단지] 여기저기서 빌려다 놓은 형태들과 양식종류들의 집합일 뿐이었다. 완성품으로 우리 앞에 있는 것에서 우리가 읽어 내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단지 배제된 존재(Ausgeschlossensein)라는 것이었고 이 사실과 맞서는 것이었다. 이게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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