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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청소년 신조어로 “merkeln”(Merkel/메르켈로 동사를 만듬)이 뽑힐 가능성이 가장 크다 (http://www.jugendwort.de).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황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우선 지켜 본다는 의미다.
메르켈 총리의 통치스타일을 풍자한 신조어다.
그러나 난민사태를 마주하는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총리로 거듭나고 있다 (제1공영 방송 ARD 2015.8.31일 타게스테멘 코멘트, https://www.tagesschau.de/inland/kommentar-fluechtlingspolitik-109.html)
통일을 이룩했듯이 난민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거다. “Wir schaffen das.” - 냉철한 자연과학자, 정치역학의 달인 메르켈이 오바마의 말과 감정을 빌린 것 같다. “Yes We Can”.
메르켈의 비전은 어떤 비전인가?
오래된 비전이다.
유럽 연합의 원리다.
"Die universellen Bürgerrechte waren bislang eng mit Europa und seiner Geschichte verbunden. Das ist einer der Gründungsimpulse der Europäischen Union. Versagt Europa in der Flüchtlingsfrage, geht diese enge Bindung mit den universellen Bürgerrechten kaputt, sie wird zerstört, und es wird nicht das Europa sein, das wir uns vorstellen." (메르켈, 2015.8.31 연방프레스센터 기자회견)
"보편적 시민권은 지금껏 유럽 및 유럽 역사와 맞물려 있었다. 이것이 바로 EU 창설의 동인 중 그 하나였다. 유럽이 난민 문제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즉 EU의 보편적 시민권과의 긴밀한 관계에 기반하여 지켜야 할 것이 훼손되면, EU는 파괴될 것이다. 그 결과의 유럽은 우리가 그리는 유럽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원리로 난민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2014년 ‘보편적 인권’을 박탈당한 난민들로 제한된 망명권에 의거하여 망명심사를 통과하고 독일에 체류할 수 있게 된 난민은 2%선이다. 그럼, 나머지는 다시 추방되었다는 건가? 그렇지 않다. 망명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난민 과반수 이상이 다양한 형태의 체류 허용으로 독일에 머물고 있다 (참조: 아르민 나세이 FAZ 기고글 “경제난민에 대한 증오”, http://www.faz.net/aktuell/feuilleton/debatten/hass-auf-wirtschaftsfluechtlinge-in-deutschland-13776696.html?printPagedArticle=true#pageIndex_2)
어떤 프레임으로 난민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궁금하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보편적 인권이 적용되는 난민 수용에는 독일인 74%에서 93%까지 동의하지만, 경제난민의 경우 69%가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http://de.statista.com/statistik/daten/studie/378984/umfrage/umfrage-zur-akzeptanz-der-fluchtgruende-von-fluechtlingen/ )
메르켈 총리가 경제난민은 차단하겠다고 나선 건 이런 통계를 염두한 약간 포퓰리즘 적인 발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세이가 독일 유력 일간 FAZ에 기고한 앞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지배층은 이미 달리 생각하고 있다.
어떤 프레임일까?
독일의 철저성/원칙준수성(Gründlichkeit)이 “매우 좋지만”(“super”) 난민문제 해결에는 “유연성이 요구되고 있다”는 메르켈의 말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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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인권의 문제는 그게 정치적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것. 좌파의 요구인 보편적 인권의 내용적 확장, 즉 [경제적] 생존권이 문제다. 이게 우파의 주도아래 이루어질 조짐?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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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동시장의 문제일 거다.망명신청자와 망명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독일 체류자는 노동시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이들은 생활원조을 받는다. 지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독일인에게 지급되는 최저 생계비에 수준으로 올랐다. 이른바 제2 실업수당(장기 실업자에게 지급)에 준하는 금액이다.
이들의 노동시장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변환이 있었다. (참조: 2015.8.3 노동부 발표, http://www.bmas.de/DE/Presse/Pressemitteilungen/2015/erleichterter-zugang-praktika-junge-asylbewerber-und-geduldete.html)
오늘 날레스 노동부장관 발표에 의하면(http://www.sueddeutsche.de/politik/nahles-mehrkosten-in-milliardenhoehe-durch-fluechtlinge-1.2630236) 난민의 독일이주로 2019년까지 취업가능 인구, 즉 실업수당 II를 받은 사람이 약 100만 불어날 거라고 한다. 2016년 사회보장제도 금고에 크게는 약 33억 유로 상당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거라고 한다. 이들이 빨리 좋은 이웃과 좋은 직장동료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여기에 하르츠 노동시장 개혁으로 주변부로 밀려난 독일인 노동자층의 혐오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네오나치 신정당 "제 3의 길"이 독일인을 위한 복지를 외치는 이유다.
극우의 난민 혐오는 문화적 이질감, 레비나스를 운운하는 타자에 대한 무감각(오민석, 사랑하기 어려움,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547958&cloc=olink|article|default 한국일보 김범수 칼럼, 우리 곁의 난민, 우리 안의 난민, http://hankookilbo.com/v/38ab99a4b44d4ba88d84ca88f2938545) 등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타자의 네러티브를 '강요'하는 건 대려 진보좌파라는 것. 이민자는 본토배기와 다름없이 살기를 원하는데, 신분상승 등 새로운 네러티브를 만들기 원하는데 (아르민 나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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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따뜻한 침대를 위해서서 투쟁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미래다. 비엔나 난민의 항의에 대한 코멘트"(We don't fight for warm beds. We want our future. Kommentar zu den Protesten der Refugees in Wien, M. Messenger/ Ilker Ataç, 난민 운동의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율적 형성(Selbstkonstituierung der Flüchtlingsbewegung als politisches Subjekt/http://eipcp.net/transversal/0313/atac/de 에서 재인용)"Die Figur des Flüchtlings ist historisch gesehen eng mit der Idee von Widerstand verbunden. Der Akt, das eigene Land aufgrund unerträglicher sozialer und politischer Umstände zu verlassen, ist für sich genommen ein politischer Akt. Auch die Genfer Flüchtlingskonvention ist ein Schritt zur Durchsetzung der Anerkennung von Grundrechten für jene Menschen, die gezwungen sind, ihr Land zu verlassen, weil sie aufgrund von politischer Repression und/oder ihrer eigenen politischen Überzeugung andernorts Zuflucht vor Verfolgung suchen müssen. In vielen Fällen ist also bereits der Grund für die Flucht ein politischer Akt, die Entscheidung zur Flucht wird zu einem politischen Akt und auch die Reisebedingungen sowie die Notwendigkeit, sich im Hinblick auf die Schutzsuche in einem anderen Land zu organisieren, sind politische Akte."(앞 링크)
"A Monnet Method in Asylum Policies?
As is the case for every crisis, also this crisis could become an opportunity – for a better EU: a EU internally not yielding to strongly emerging nationalisms and externally not acting like a supra-nation state.
This project would base its politics on the frequently celebrated historical fact that human rights are a European invention – and, foremost, it would not use this assumed European superiority in external policies (and, frequently, in accordance with economic interests) but it would understand it as a mandate for the internal development of the EU.
This project would take at face value its own reaffirmations of closeness to the citizens. Therefore, it would understand the increasing protests of citizens as efforts to develop a new European project and not as disturbances to the everyday business of EU institutions.
This project would open up a fundamentally new perspective on EU citizenship and not content itself with endowing national citizenship with some further supranational rights. It would interpret the widely acknowledged obsolescence of the concept of national citizenship as a political mandate to develop new forms of citizenship instead of silently accepting that more and more people in Europe are subjected to laws in whose formation they did not have a say.
This project would offer opportunities for European identifications far beyond the sterile efforts of the European Commission to bring the EU closer to the citizens. For the starting points of this project would not be the assumed wishes of the silent majority but the engagement of people in Europe for a better Europe – people who do not want to die for Europe but who want to live in and for Europe." (Monika Mokre,
Where Europe is falling apart and where it could emerge anew, 2013/http://eipcp.net/transversal/0313/mokre1/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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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메르켈이 "보편적 인권" 대신 "보편적 시민권"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에 주목한다. 무슨 차이일까? 보편적 인권에는 부여의 의미가, 보편적 시민권에는 쟁취의 의미가, 탈 역사적인 규범적 의미와 역사적인 실천의 의미가 대립된다고 해 보자.
유럽차원에서 누구나 일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시민권을 챙취한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는가? 이 시민사회는 단지 '확장된 국가단위'의 시민사회일까?
2. 유럽연합이 다시 미.영이 망쳐논 세상의 뒤처리를 하고 있다. 안보리 승인 없이 자행된 유고 공습으로 발생한 난민 뒤처리를 해야 했던 유럽연합, 이번에 이라크 공습, 리비아 공습으로 망가진 중동, 북아프리카 난민 뒤처리를 하고 있다.
3. 이번 계기로 유럽연합이 뒤처리 규범적 소프트파워를 넘어 더 적극적으로 '세계질서'에 참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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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는 본성적으로 가족이나 우리 개개인 모두를 앞서고 (καὶ πρότερον δὲ τῇ φύσει πόλις ἢ οἰκία καὶ ἕκαστος ἡμῶν ἐστιν. 정치학, 1권, 1253a), 또한 하나로 묶어 놓았지만 의사소통이 안되는 바빌론과 같은 에트노스(ἔθνους)의 범주가 아닐 뿐만 아니라 플라톤이 말하는 아버지의 법이 관철되는 대물림 된 것도 아니라는 (정치학, 3권, 1276a) 아리스토텔레스에 기대어 보자면 물론 시민권이 우선이다. ‘시민권’은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 바로 앞의 문장이 말하듯 “[새로운] 완성된 세계를 얻는 것과(“Sie haben eine ganze Welt zu gewinnen.”) 같은 것?부가 정보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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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럽연합이 다시 미.영이 망쳐논 세상의 뒤처리를 하고 있다. 안보리 승인 없이 자행된 유고 공습으로 발생한 난민 뒤처리를 해야 했던 유럽연합, 이번에 이라크 공습, 리비아 공습으로 망가진 중동, 북아프리카 난민 뒤처리를 하고 있다. ----그게 아니죠... 유고 공습 때는 전쟁이 끝난거구요.
난민은 그 전에 벌써 뮌헨와서 난민 신청하고 일 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리비아는 기름 매장량이 많아요.
오히려 기름을 싸게 갖고 가는 미영이 똘똘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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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보내서 폭격하고 기름 싸게 가져오는게 똘똘한 건가요? 거기 살던 사람들은 어쩌고?남들 등쳐먹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이라 생각하더라도, 최소한 그게 당연하거나 잘하는 짓인 양 얘기하진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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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님티토의 유고 붕괴가 이에 거의 1 세대 이전의 일이 되었네요. 기억도 아물거리고. 하지만 독일은 아직 그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 난민 문제의 반은 발칸반도에서 유입되는 난민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본법 개정까지 애기되고 있습니다 (안전한 3국으로 규정하는 요소를 기본법에 명시하자는, 예컨데 망명승인률이 저조한 경우.
전유고의 붕괴 서술이 너무 단순했습니다. 내적 요인을 다 이야기해야 겠지만 그럴 능력은 없고... 다만 전유고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독일이 그다지 책임있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애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뮌헨에 망명하여 [독일]우파, 극우파와 놀던 투드만의 크로아티아의 독립의 인정을 놓고 당시 프랑스와 독일간 이견이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당시 독일 외무상 킨켈이 나서서 제일 먼전 인정했던 걸로 기억되고요.
전유고붕괴를 놓고 킬링 필드 애기하지 않을 수 없고요...
주목하고 싶은 것은 미.영주도아래 그동안, 다시 말해서 1648년 이후 최소한 이념적으로/이데올로기적으로 유용했던 국제법에 변화가 있었다는 데 주목하고자 합니다. 보편적 인권이 빌미가 되었다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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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누가 그런 나쁜 짓을?"했냐는 오이디푸스의 질문에 "바로 너" 했던 테이레지아스의 답변에 화를 벌컥낸 오이디푸스가 생각납니다.
서구의 보편적 인권: "누가 그런 나쁜 짓을"
테이레지아스: "바로 너!"
그 나쁜 놈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가 눈알을 빼버렸는데, 서구의 보편적 인권은 어떻게 할 지 궁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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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보편적 인권을 미국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로 규정하고, 그 근간은 이기주이라는 오늘 FAZ(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짜이퉁/프랑크포르트일반신문)의 기사 "자신의 이상에 걸려 넘어지는 유럽"(Europa stolpert ueber seine eigenen Ideale, http://www.faz.net/aktuell/feuilleton/debatten/europas-widersprueche-in-der-fluechtlings-debatte-13784038-p3.html?printPagedArticle=true#pageIndex_3)가 재밌네요.정치난민은 수용하고 경제 난민은 송환하자는 주민의, 정계의 요구를 반박하는 글. 난민이 서구가 추구하는 이상을 따르고 있다는 것.
오이디푸스와 라이오스가 만난 길목에서 이런 대립( Konstellation)을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런 시민권이 없는 떠돌이 오이디푸스는 보편적 인권을 주장할 수 밖에 없었고, 아버지 라이오스는 관습에 기반한 예의범절(Sitte)을 주장하고.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보편적 인권은 안티고네의 보적 인권과 달리 이기주의에 뿌리하고 있다고.
오르반이 그의 반난민 발언 및 정책으로 유럽의 왕따가 되고 있는 것 같지만 메르켈이 어제 철옹성 스위스에서 난민/망명심사 철차를 스위스 같이 하자고 한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면 철옹성 유럽을, 다시 말해서 확장된 국가로서의 유럽의 위상을 지키자는 것과 별반 다름 없는 것. 네오나치 정당 "제 3의 길"이 유럽연합을 스위스처럼 "선서공동체"(Eidgenossenschaft)로 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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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오이디푸스가 인간의 복잡한 역사성을 몰랐기 때문에 스핑스의 수수께기에 정답을 제시할 수 있었지 않나 합니다. 자연의 시간보다 더 추상적인 시간 밖에 몰랐기 때문에.
보편적 인권 역시 추상적인 인간 밖에 모르기 때문에 시원한(?) 대답을 할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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