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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21
    독일 대통령 크리스티안 불프의 퇴임과 독일 전통보수진영의 행보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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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통령 크리스티안 불프의 퇴임과 독일 전통보수진영의 행보 4

 „나는 좌파가 옳았다고 믿기 시작한다.“

글쓴이: 프랑크 쉬르마허(Frank Schirrmacher), FAZ 발행인
출처: FAZ, 15.08.2011 원문은 여기



일러두기: „Bürgertum“을 독일 부르주아의 특성상 그냥 ‚부르주아’로 번역하기도 ‚시민계급’이라고 번역하기도 어렵다. 그 특성 한가지를 이야기하자면 독일 부르주아계급의 봉건 지배계급과의 결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왕의 목을 자른 경험이 있는 프랑스의 ‚부르주아’와 비교가 안되는 것 같고 ‚시민계급’은 너무 ‚시민사회’를 함의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통보수“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정통보수’는 독일 보수의 특성, 죽 경제적인 범주보다 경건주의, 카톨릭 사회윤리에 기반한 사회이념, 가치보존 등 비경제적인 범주로 자기정체성을 규정하려는 독일  보수의 특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다. 녹색당이 기민당과 자유민주당이 자기들만 „Bürger“를 대표한다고 하자, 우리도 ‚시민’(Bürger)을 대표한다는 항의에서 볼 수 있듯이 „Bürger“가 사전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논쟁에서 제각기의 의미가 부여되는 용어다.  암튼 „Bürgertum“은 ‚정통보수’로, „bürgerliches Lager“는 ‚정통보수진영’으로 번역하였다.
 

(번역)

지난 10년 동안 제멋대로 날 뛴 금융시장경제가 결국 사회저변으로 쫒겨난 좌파 사회비판을 다시 불러들이는데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좌파 비판이 다시 출현한 것 뿐만 아니라 필요하기까지 되었다. 정통보수를 대표한다고 자칭하는 정치가 마주하는 위기는, 예전에 프로레타리아를 남용했던 공산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정통보수란 말을 남용한 현 정치의 위기는, 정치적 보수주의의 자기의식.자기정체성위기(Selbstbewusstseinskrise)로 발전하고 있다.

현실정치와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뻥뚤린 공백을 감추면서 실수는 다 한다는 식의 면책시도는 이런 공백이 주는 불안을 감추려는 시도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정치적 행위의 옳고 그름만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통보수진영의 정치적 실천이 현재 리얼타임실험처럼 진행중인 „정통보수의“ 정치가 그릇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서 정통보수 최대의 적이 전제하는 것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철저히 보수적인 찰스 무어는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이렇게 쓴다. „좌파 분석의 강점은 권력자들이 어떻게 자유주의-보수주의의 언어를  수단으로 사용하여 자기이익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은폐했는지 파헤쳤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세계화’는 처음엔 순전히 세계적인 자유무역,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은행이 국제무대에서의 성공으로 얻은 이익은 갈취하고 손해는 각국 납세자의 몫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은행들은 돈이 떨어지면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해당 정부가 그들에게 새돈을 준다.“

말이 있되 그릇되거나 옳아야 한다. 근데 그릇된 말이 갑자기 옳은 말이 되면 곤란해진다.  전체의 합리성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면 바른쪽에 서 있었는지, 한평생 그랬는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시간은 역사적으로 경험 많은 옛사람들이 막판에 구제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든 구제해 보려고 다시 한번 등장해 말을 꺼내는 시간이다. 리버럴한 카톨릭 에르빈 토이펠(Erwin Teufel)이 극적인, 붕괴되는 신념체계에서 흘러나오기 일수인 수사학적 표현을 빌려 그런 유의 말을 했다. 더이상 침묵할 수 없어서 말을 꺼낸다고. 에르빈 토이펠: “나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이렇게 극의 제 1막이 시작되었다.  

정통보수 사유가 자기환상에서 깨어나는 극 전반은 지금 영국에서 무대에 올라와 있다. 지난 몇주간 가장 많이 토론된 콤멘트에서 찰스 무어는 이렇게 썼다. „저널리스트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기까지는 30년 이상이 걸렸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좌파가 궁극적으로 옳지 않았는가?“ 무어는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 그리고 그런 폭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썼다. 솔직히 말해서 누가 그에게 반박할 수 있겠는가?

정치제도는 단지 부자들만 위한 것이다? 이건 좌파의 말로서 항상 그릇된 말로 여겨졌다. 루드비히 에르하트의 독일보다 영국에서는 좀 덜 그릇된 말이었겠지만 말이다. 무어에 따르자면 지금와서 갑자기 옳은 말이 된 그릇된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돈을 신중하게 관리해야 하는 은행이 우리 돈을 빼앗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보증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으면 좀 곤란한 일이 발생한다. 그러면 좌파가 항상 주장했던 것처럼 다수의 진전을 위해서 출범한 체제가 소수를 부유하게 하는 체제로 변태한 것이 드러난다.“ 무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있는 사례를 다 일일이 들먹이면서. 머독 – 그에 관련하여 우파가 아직  포퓰리즘을 민주주의로 간주하고 있을때 좌파는 그를 이미 꽤뚫어 보고 있었다고 무어는 말한다. 신용 및 금융위기, 유럽 정부수뇌들의 범법행위, 경제담론의  우선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로존 위기. 좌파 선동주의자에게  돈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 풍자해보라고 했다면 지금 현실보다 더 적합한 구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무어는 말한다.  

이 자리에서 찰스 무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탁월한 보수 언론인일 뿐만 아니라 마가렛 대체의 공식 전기작가다. 덧붙이자면 대체가 세상을 떠나야만 발간이 허용된 전기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반응은 엄청나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그러나 오해가 몇개 있다. 혹자는 내가 영국 노동당이 옳다고 말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 나는 좌파의 이념과 정통보수의 이념을 이야기한다.“

영국의 상황은 독일의 그것과 다를 수 있고 또 그렇다면 바로 반박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간과할 수 없다. 에르빈 토이펠 논쟁은 단지 징후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가 마치 무슨 세뇌공작이나 되듯 사회를 뒤덮은 것은 정말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정통보수 사유의 상상력 창고에서 맘대로 갖다썼다: 자유, 자율, 동시에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자결, 되고 싶은 것이 되는 기회, 정부와 정부의 전능에 고삐를 채우는 것과 함께. 이런 일이 일어남과 동시에 기민당(CDU)은 신자유주의에게 기민당의 가장 큰 가치를 넘겨주었다. 즉 루드비히 에르하트의 후손들이 세계화는 사회시장경제 진화의 산물이 될 거라고 약속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였다. 루드비히 에르하트 플러스 AIG 플러스 리먼 브라더스 플러스 정통보수의 가치 – 이건 정말 킬러어플리케이션이 되었다.

여기서 하나하나 다 들먹일 필요는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Hypo Real Estate [독일 부동산 대출은행]의 감독위원회에 앉아 있었는지, 그리고 어쩔수 없어서 국유화해 달라고 사정하는 은행가의 요청으로 끝나지 않았던 일 등등을. 결정적인 것은 좀 다른데 있다. 기민당은 금융시장에 빌려준 이상적인 가치를, 개인과 개별인의 행복에 대한 이상(Vorstellung)을 한번도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기민당은 자빠지는 은행에게 그 어떤 책임도 추궁하지 않았다. 추궁은 고사하고 기민당 이상을 망치고 산산조각내는데 아무런 한탄도 터뜨리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경제적인 문제가 기필코 윤리적인 문제가 되는 이중잣대의 세상이 도래했다. 여기에 현재 상황의 폭발성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지금 위기를 베를린 공화국 이전의 위기와 구별내는 것이다. 오도로 유인한 잘못으로 처벌된 자유민주당의 핵화(Atomisierung)는 그저 기능상의 문제다. 아무도 현존하는 자유민주당이 특별한 윤리적 역량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유민주당은 사실 한번도 그런 능력을 자랑한 적이 없다. 기민당이 지불해야 하는 값은 한번의 선거결과보다 더 많은 것이다. 문제는 기민당이 정통보수의 아젠다세터인지 아니면 정통보수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고, 빨아먹고, 연약하게 하는 기생충인가에 있다.

(…)

앙겔라 메르켈은 지금까지 유로존 위기의 윤리적 결론을 주제화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열악하다. 이런 위기가 에르하트 시대에 일어났다면 자기정체성성찰프로세스(Selbstverständigungsprozess)가 반드시 일어났을 것이다. 안 그랬을리 없다. 상상할 수 없다. 보기에 이런 프로세스를 시작할 만한 인물이 기민당에 없다. [은행을 때려잡을 만한] 권력이 부족한 것이 절대 아니다. [금융시장 관련] 보수주의자들의 정치적 입장표명은 „몬스터“란 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

정통보수진영에서 출마한 연방대통령의 [크리스티안 불프를 두고 하는 말임] 행태를 보면 그가 왜 무조건 연방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연방대통령은 유럽의 최대 위기 앞에서, 마치  자기가 해야 할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믿지 않는다는 양,  침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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