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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연 첫 행 “Ein Gott will aber sparen den Söhnen”의 첫 낱말인 부정관사 “ein”의 의미가 정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문학작품에서 정관사와 부정관사는 해당 명사에 관한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정관사의 경우 이미 도입된 내용에서, 반면 부정관사의 경우 뒤에 도입될 내용에서 해당 명사의 정체가 밝혀진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Ich fuhr auf einer Landstraße, da stand ein Auto – 나는 어떤 지방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거기 차 한대가 서 있었다. 이 차에 대한 정보는 뒤에서 도입되는 내용에 있다. 그래서 부정관사는 보통 약간의 긴장, 기대, 혹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부정관사의 다른 용법은 일반화(Generalisierung)의 한 방법인 “대표 단수에 의한 일반화”(exemplarische Generalisierung)에서 사용된다. “Ein Mann weint nicht.” (남자는 울지 않는다. “너 남자 맞아? 왜 울어?” 란 의미다.)
“ein Gott”의 해석.번역에서 우선 이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횔더린이 이야기하는 ‘신’은 흔히 이야기되는 신이 아니다. 이 신의 정체는 뒤에서 밝혀진다. 이 외에 횔더린은 삶이 충만한 곳에, 즉 사랑 우정 더불어살기(Geselligkeit)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성취되는 [시.공간의] 곳에 다양한 신이(복수!) 거주한다고 생각했다는 (참조: R. Safranski, Romantik, Eine deutsche Affäre, S.166) 정도만 지적하고 넘어가자. 첫 행의 해석에서 문제가 되는 다른 표현은 “aber”다. 반대의 의미라기 보다는 “Christmas comes but once a year.”에서의 ‘but’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한다. ‘익히 알고 있듯이’ 정도라 할까.]
[자식들의 행동을, 자신이 스스로 체험해서, 익히 알고 있는, 자식의 삶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인] 신은 자식들이 정처없는 삶을 사는 걸 면하게 해주고 싶어하면서, 흐르는 물들이 깊은 곳에서 라인강 처럼, 단지 성스러운 알프스에 억제되어, 그에게 막말로 분노할 때 [조용히] 미소짖는다. 이런 연단의 장에서 모든 것이 또한 숙성된다. 이런 연단을 받고 산맥을 떠난 후 라인강이 자신에 만족하여 독일 땅에서 조용히 흐르고, [남을 등쳐 먹지 않지만 이득을 남기는] 좋은 [사]업에 푹 빠져 [예전의] 그리움을 달래는 모습, 아버지 라인강[으로 성숙하여] 땅을 일구고 도시를 세워 사랑하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그 모습이 보기 좋다.
Ein Gott will aber sparen den Söhnen
Das eilende Leben und lächelt,
Wenn unenthaltsam, aber gehemmt
Von heiligen Alpen, ihm
In der Tiefe, wie jener, zürnen die Ströme.
In solcher Esse wird dann
Auch alles Lautre geschmiedet,
Und schön ists, wie er drauf,
Nachdem er die Berge verlassen,
Stillwandelnd sich im deutschen Lande
Begnüget und das Sehnen stillt
Im guten Geschäfte, wenn er das Land baut,
Der Vater Rhein, und liebe Kinder nährt
In Städten, die er gegründ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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