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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집끼 글의 짜집끼 번역
엘프리데 옐리네크 : 법의 보호를 받는 자들 (원문은 여기)
우리는 살아 남았어. 우리는 살아 남았어. 뭘 더 바래, 살아 남았다는 것 말고. 그래, 살아 나았다는 것 외 남은 게 없지, 신성한 고향을 떠난 삶에. 아무도 우리의 행렬은 자비롭게 내려다 보지 않아. 하긴, 우리를 [깔아] 내려다 보긴 하지. 우리는 피난 길에 올랐어. [천인공노할 짓을 하고] 민족[공동체]의 심판을 받은 게 아닌데 [어딜 가나] 모두 우릴 죄인으로 취급해, 저기서, 여기서. 우리 삶에서 발생하여 스스로 지(知)로 등장할 수 있는 게 다 소멸되었어, 이런 저런 [호출과 허접한 지(指)적] 가상에 층층이 눌려 질식해 버렸어.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지(知)의 대상이 아니야. 지(知)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무언가를 개념으로 취하려는 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우리는 낯선 법령들을 읽으려고 노력하지. 그러나 아무런 말이 없어.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 우리는 [상품처럼] 주문 되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우리는 호출되면 출두해야 해. 여기서 출두하고 나면 다시 저기서 출두해야 해. 우리가 밟을 수 있는 땅이 과연 있을까. 그런 나라가 있다면 이 나라보다 더 자애 깊은 나라여야 할 터인데, 우린 그런 나라를 아직 접해본 적이 없어. 없어. 우린 밟힌 채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다시 돌려 보내지지, 꺼지라고 해. 우리는 교회의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혔어. 그러다가 우리는 다시 일어서지. 우리는 아무것도 안 먹어. 안 먹어선 안되는데, 최소한 마시기는 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지. 여기 평화를 탄원하는 나뭇가지 더미가 있어, 기름 종려나무 가지인가, 아니야, 올리브 나무에서 끊어온 거야. 맞아. 아 여기도 있네. 다 글이 새겨져 있어. 우린 이것 말고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어. 말해주세요. 이걸 누구에게 건네주면 되죠, 이 더미를. 2톤이나 되는 이 종이를 하나하나 다 글로 채우고 모았어요. 물론 도움을 받았지요, 당연하지요. 그래서 지금 탄원하는 자세로 올려 드립니다, 이 종이를. 뭐라고요, 네 아닙니다. 체류허가증[종이들은]은 없습니다. 이 종이 한 장 뿐입니다. 이걸 누구에게 건네주면 되죠? 님께? 받으세요, 여기 있어요. 하지만 가지고 가신 뒤 아무 것도 안 하시면 우리는 다시 다 복사해야 해요, 인쇄해야 하고요. 그건 알고 계시죠? 저기 저 하늘 높이 계신 분들 좀 보세요.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어요. 고개를 돌리지 마세요. 바로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말입니다. 늘 하시는 데로 좀 내려다 봐 주세요! 우리는 여러분들께 탄원합니다. 시와 농촌과 도나우의 빛나는 강물을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민] 여러분, 아니 관청에 계시기에 더 주인처럼 보이고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벌로 내리시는 [관료]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에게 이번에는 이래라 했다가 다음번에는 저래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이 마땅하지 않아요. 천사 여러분,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이신 님! 여러분들을 대항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할 수 없는 게 없고, 다 해도 괜찮지요. 저기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누가, 어떤 신이 여기에 계시고 주관하시는지? 여기 이 교회에서는 그게 누군지 알아요. 하지만 다른 곳에는 어쩌면 다른 이들이 있겠죠. 대통령이 있고, 총리가 있고, 여성 장관이 있고. 그러지요. 그리고 물론 벌을 주는 분들은 따로 있죠. 이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기 저 땅 밑 저승이 아니라 모두 다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걸. 예를 들자면 바로 님이죠. 그게 누구냐고요. 바로 님이어요. 님이 누구든 간에, [여기의] 님이든, [저기의] 님이든, 예수든, 메시아든, [이것 저것 다 보관하는] 메시든, 다 벌을 주죠. 집안일과 가문과 모든 경건한 자들을 챙기시는 님이시지만 우리는 거두어 주시지 않아요. 맞아요, 우리는 불러서 온 게 아녀요, 재발로 알아서 왔죠, 님의 교회에 왔죠, 탄원하는 행렬로, 제발 우리를 도와 주세요, 하나님,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 발이 당신의 강변을 밟았습니다. 우리들의 발 중 운이 좋은 발은 이와 완전히 다른 강변을 밟았습니다. 근데 이제 앞으론 어떻게 되죠? 바다가 우리를 거의 집어삼켜 뻔했어요, 산속에 거의 묻힐 뻔했어요. 이제 우리는 이 교회에 있어요. 내일은 그 수도원에 있게 될 겁니다.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인해서, 대통령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그 [대변자의] 자리에 앉혀진 그들이 애써 대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일 모레 어디에 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디에서 누울 자리가 허용되지 않을까, 어디에서 누울 자리를 강요할 수 있을까, 어디에서 다시 쫓겨날까, 어디에서 우리의 뼈를 묻을 수 있을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물론 우리가 아니죠. 그 누가 이 모든 걸 할 것인지, 누가 우리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할 것인지, 누가 우리를 동등한 현존자로 취급하고 쳐다 볼 것인지, 혐오감 없이, [우린 몰라요]. 고향의 개울가에서, 바닷가에서, 우거진 숲에서 내몰림을 당한 자들을, 잃어버린 고향의 아픔에 쌓여 탄식하면서, 모태 고향의 노여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자들을, 이런 사람들을 여기 님은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 있는 우리 중 아무도 [이곳] 누구와 같은 혈통이라고 우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런데, 말해봐요, 왜, 왜 님까지 우리를 노여워하죠? 이걸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픔과 한 짝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정말이에요. 근데 우리가 뭘 했길래 우리를 두려움 안에 가둬 두시죠? 어딜 가나 두려움입니다. 내가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가 두고 온 고향 사람들을 다시 마주하는 두려움, 이 보다 더 큰 두려움을 님 앞에서 느낍니다. 하는 수 없이 당신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하는 , 머무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두려움. 이렇게 말하는 저에게 님은 서슴없이 너 말 잘했다 하시겠죠. 예 틀림없이 그러시겠죠.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당신은 모든 곳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시는데, 그럼 왜 여기에 오셨죠? 새로운 두려움을 맛보려고, 다시 한번? 우리는 지금 아니면 쓰지 않는 야만인의 말을 합니다. 우린 그런 언어가 있는 줄 몰랐어요, 사용할 줄도 모르고요. 항상 그렇죠,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이방인 사이에 있으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죠, 지금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죠? 우리는 이 언어로, 우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사용할 줄도 모르는 이 언어로, 우리와 달리 님이 자신처럼 구사하시는 이 언어로, 탄원하고 외칩니다. 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 비통을 삼키는 심정으로 우리를 좀 봐 주세요, 좀 노력해 보세요, 님이 절대 알 수 없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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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시대, 작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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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1632.html"내가 이 심포지엄에 참석하면서 다소 흥미롭게 느꼈던 것은 1990년대를 이 매체들과 함께 체험의 영역에서 수용한 사람들과 문헌을 통해서만 검토할 수 있었던 신진 연구자들 사이의 의미화의 편차였다. 체험 세대들은 해당 매체를 열독하거나 편집했던 자신의 기억을 고백적으로 피력하면서 매체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열정적으로 논의했다. 반면 문헌 검토에 기반해 매체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자들은 다소는 차갑고 냉정한 평가를 피력했다."
'감정 구조’는 시대적인 것이기도 하고 세대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현실에 의해 구조화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대의 주동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구성해가는 것이기도 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객관화하고 의미화하는 과제는 그것이 오늘의 현실을 구성해낸 계기적 기원에 해당되기 때문에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분절된 시간의 계측 단위 속에서 특정한 주관적 기억만을 토대로 시대를 재구성한다면 주관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역사화된 시간의 다층적인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공감능력이 배제된다면, 관찰자들의 객관주의가 항용 초래하듯 당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가열한 정념과 신념, 행위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기묘한 낯섦의 감각으로 차갑게 단순화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큰 시대를 살아냈던 작은 사람들을 점묘하면서도 벽화 그리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 이명원, <큰 시대, 작은 사람>, 한겨레 2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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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必歸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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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할默생각念.[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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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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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의 현상학- 롤랑 바르트 -
님이 오시나 보다. 사랑은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사랑이다. 기다림은 소리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님의 보폭을, 님의 무게를, 님의 리듬을 안다. 님의 발자욱 소리. 수많은 발자욱 소리에서 님을 알아보고 님을 맞이한다.
- 폴 드 만 -
난민은 아버지가 지배하는 의미의 장을 떠나 어머니가 공명하는 소리의 장으로 돌아간다. 날 받아 주는 소리, 아니면 날 거부하는 소리, 이 둘 뿐이다. 목소리일 뿐이다. 말의 소유권이 아버지에게서 회수되어 어머니께로 돌아간다.
- 루터 비문 -
기억의 장은 숭배의 장이 아니다. 요란한 의미의 장이 아니다. 기억의 장이다.
- 엘리야 -
기억의 장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오래된 소원에 귀를 기울이는 장이다. 기억의 신 앞에서 그가 오도록 잠잠해지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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