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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3
    알프레드 슈니트케
    ou_topia

알프레드 슈니트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슈니트케의 비올라 오케스트라 협주곡을 오랫만에 들었다. 한 때 밤을 같이 해 주었다. 유튜브에 있어서 올린다.

 

 

 
 
내가 가지고 있는 CD는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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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슈니트게에 관한 볼프강 잔드너(Wolfgang Sandner)의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좀 다듬어서 올린다.

 

슈니트케: „프로코프에프의 삶을 보면 의식(儀式)적인 처형극장에 저항하는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러나 어떤 양보도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이런저런 상황에서 그가 취했던 행동을 보면 그가 냉철하고, 모든 것을 감안하고, 매우 정확하고, 그리고 ‚아니러리컬한 명철’로 삶의 일상적인 현혹극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보호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 프로코프에프의 음악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그 현실을 왜곡하는 혹은 이상화하는 신고전주의의 재구성과는 달리 온통 자연적이고 삶의 일상적인 현혹극장에 대항하는 현실로 등장한다. 마치 우리가 의식적으로 살고 있는 이 시대에 (Gegenwart) 칠흟같이 어두운 밤이 전혀 없는 것처럼. …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같은 시대지만 그에게는 절대 모든 것을 감싸는 태양이 떠난 그런 심연이 아니었다.  모든 것 위에는 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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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잔드너: 프로코프에프의 태도를  명중하는 슈니트케의 서술은 슈니트게 자신에게 더 적절하다. 슈니트게가 프로코프에프를 서술하면서 사용한 ‚아이러니컬한 명철’이란 표현은 ‚아이러니컬한 낯설게 하기’로 슈니트케의 작품에서 등장한다. 슈니트케는 왜곡하거나 이상화하는 재구성 대신 여러 스타일을 혼합하는 다양식성(폴리스틸리스틱/Polystilistik)을 사용한다. 이건 역사적인 작곡방식들을 인용, 변형하는 방식으로서 전수된 양식들과 지금 횡행하는 양식들의 제 나름대로의 특성들을,어쩔 때는 그로테스크하게 일그러진 캐리캐춰로, 어쩔 때는 작곡방식들, 음화(音畵)들 간 아무런 가치차이가 없다는 걸 치켜세우는 콜라주로 한 곳에 모아 보여주는 일종의 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 아류라는 추궁에 „나는 도둑이 아니라 날조자다“라고 말한 것은 슈니트게다운 대답이다. 슈니트케가 작품에서 환영처럼 번쩍이거나 혹은  보란듯이 내놓는 고전물들은 그 어느 것도 원본검열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슈니트케의 인용같지 않은 인용, 지나 간 작곡양식, 예전의 음악하기 등은 그 작곡원리에 빠져서는 안돼는 통합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나 슈니트케의 창의력이 이런 것 뿐이였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유행따라 가는 작곡가로 탈이 벗겨졌을 것이다.

슈니트케: „폴리스틸리스틱은 오로지, 그것이 통째로 [비록 한순간에 사라지는 허무한 것일지라도] 어떻게든 가능한 개별성이란 [하루살이와 같은] 주변부가 될 때만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의 현상이 되면 그건 아류가 된다. 폴리스틸리스틱을 마치 무슨 시장에서 잘 나가는 것으로 여겨 재빨리 청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삼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면 끊임없는 충돌이, 내 안에 내재하는 나와 음세계간의 충돌이 있을 때 비로소 테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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