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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면 막판에 항상 마음이 찜찜해 진다. 설교 좋고 찬양 좋고 은혜 충만해도(할렐루야!) 축도가 그런 마음을 말끔히 앃어준다. 온 사방을 헤매는목사의 말에 거기다 목소리까지 울리면 역겨운 느낌까지 든다. 오로지 성경과 믿음을 통해서 야훼와 일대일로 만난다는 개신교의 교리를 뒤집고 자기가 무슨 야훼의 말이 통하는 무당이나 되듯 변한 목소리로 축도한다. 동굴에서나 들을 수 있는 울리는 목소리는 교인들로 하여금 동굴에 갇혀있다고 믿게 만들고 머리를 쪼아리게 한다. 아이러니컬하게 교황의 „나만 무당이야“에 대항하여 개혁된 기독교가 수 많은 새끼무당, 즉 찌지리 교황들을 잔뜩 만들어 논 것이 아닌지 의아해 지는 순간이다.
종종 독일 개신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 축도가 제일 기다려진다. 민수기 6장 24-26절이 아니면 빌립보서 4장 7절을 암송해서 말하는 것이 축도다.
축도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야훼가 네가 잘 되기를 바라며 너를 품어 지키고 네가 잘못해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밝은 얼굴로 대하고 네 잘뭇을 덮어주고 널 굽어살펴 네 맘이 풀어지고 해방되는 평화주기를 원하다 (민수기). 무엇보다 그 어떤 이성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너희가 뜻하는 바가 옆으로 새지 않게 품어 지키기를 원한다 (빌립보서).
거기다 여목사님이 축도를 하면 아멘이 절로 튀어 나온다. 알고 지내던 독일 여목사님이 있었는데, 주로 사회활동을 해서 설교나 축도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근데 어쩌나 그 여목사님의 설교와 축도를 들을 기회가 주어졌다. 설교의 내용이 뭐 였는지, 무슨 일 때문에 설교를 하게 되었는지 전혀 생각이 안나지만 약간 상기된 불그스레한 볼로 축도하는 그 여목사님의 모습은 아직 생생하다.
뭔 말하려고 여기까지 왔지?
우선 본지 오래된 그 여목사님이 좀 보고 싶고
다음, 야훼를 이야기하면서 성을 논할 수 있다면, 야훼에게서 구하는 것이 마치 엄마가 하는 행동과 같아서 야훼가 여성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그 다음, 문어발식으로 확장된 한국 개신교가 아무런 문화를 창조하지 못한 것이 아무런 형식없이 지맘대로 날뛰어서 그런게 아닌지. 예컨대 벤자민 브리튼이 <전쟁 레퀴엠>에서 카톨릭의 예식화된 장송곡 <dies irae>에 윈프리드 오웬의 시를 병렬하는 것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형식과의 마찰과 그런 형식에 스며있는 자기바탕에 대한 성찰이 없어서 그런게 아닌지.
주제가 뒤범벅이네….
오늘 횡설수설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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