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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폭력…아마르티아 센 | 바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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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정체성에 집착하면 폭력 싹튼다 (경향,손제민기자, 2009-12-18 17:32:21)
ㆍ포용과 배제가 함께 존재하는 정체성은 ‘양날의 칼’
▲정체성과 폭력…아마르티아 센 | 바이북스 | 이상환·김지현 옮김. 1만8000원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을 뜻하는 정체성이란 결국 ‘다른 사람’ ‘다른 사회’를 전제해야만 성립한다. 저자는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폭력과 관계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폭력은 사람들이 어떤 한 정체성을 독보적으로 강조하고 거기에 매달리면서 싹튼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들이 한국인임을 유별나게 강조한다면 한국을 지배했던 역사를 가진 일본인들과 갈등하기 쉽고, 어떤 사람이 기독교도임을 유별나게 강조하면서 무슬림과 갈등하고 종종 폭력이 뒤따르곤 한다. 그것은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갖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무슬림은 폭력적이다’ 또는 ‘진정한 무슬림은 평화를 사랑한다’고 무슬림 아닌 사람이 무슬림을 규정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갈등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정체성에 대한 강조가 갈등만 낳는 것은 아니다. 같은 한국인, 같은 기독교도끼리 해외에 나가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돈독하게 지낸다. 전쟁이 벌어지거나 하면 같은 피를 이어받았다고 여기는 이들끼리는 처음 보는 사이에도 형제애를 느낀다. 그런 점에서 정체성 의식은 양날의 칼이다. 타인을 따뜻하게 포용하기도 하고,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하기도 한다.
 
문제는 어떤 정체성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졌다’는 등의 이유로 다른 정체성에 비해 독보적인 우위를 갖는 경우이다. 국가나 민족, 종교를 이유로 전쟁을 하게 되면 노동자, 페미니스트, 신문기자 등과 같은 정체성들은 사라진다. 저자는 그런 인간 정체성의 다원성이 무시되고 단일의 정체성만 고려될 때 인간의 왜소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졌을까. 저자의 개인사와 관계있다. 그는 힌두와 무슬림이 갈등했던 1940년대 인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벵골계 인도인이다. “1월에는 관대했던 사람들이 7월에는 무자비한 힌두교도와 흉포한 무슬림으로 갑자기 바뀐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은 저자가 속했던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르완다, 보스니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아일랜드·영국 그리고 이슬람세계·미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벌어지는 일로 해석됐다. 밤낮을 경계로 ‘빨갱이’ ‘반동’의 양극단을 오간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로서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종교, 문명, 국가, 문화 같은 큰 덩어리의 정체성에 과도하게 투사할수록 갈등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결론짓는다. 그래서 해결책도 하나의 정체성이 다른 모든 정체성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인, 인류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다문화주의가 좋은 길로 제시된다. 다만 현실에서 (특히 영국에서의)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자유를 수반하는 진정한 다문화주의라기보다, 신앙에 입각한 분리주의를 수반하는 ‘다원적 단일문화주의’인 경우가 많다는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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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으로 조작된 정체성은 폭력을 부르고… (한국, 오미환기자, 2009/12/18 22:01:05)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출신 석학 아마르티아 센(66ㆍ하버드대 교수)은 폭력의 배경으로 정체성의 갈등을 지목한다. 그는 민족 정체성이나 종교 정체성, 또는 민족과 종교가 결합된 종교적 민족성이 부딪쳐 증오를 부른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한 정체성이 실은 '환영'일 뿐이며,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정체성과 폭력>(부제 '운명이라는 환영')의 요지다.
 
이 책은 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왜곡, 그로 인한 환영을 다룬다. 대표적인 것이 정체성은 단일하다는 가정이다. 예컨대 냉전 이후 세계의 갈등을 문명 간 대결로 풀이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하나의 문명권 안에도 다른 문명이 공존하는 현실을 무시한, 그러니까 기본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문명은 충돌한다거나 충돌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문명 공동체라는 '단일 정체성'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라고 지적한다.
 
센은 민주주의는 서구적이라는 믿음,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옹호, 세계화에 대한 거부감 등에도 '단일 정체성'이라는, 배타적이고 호전적인 환영이 깔려 있음을 날카롭게 간파한다. 센은 야만적으로 조작된 정체성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경고하며 실제 사건들을 환기시킨다. 센은 "단일 정체성이라는 운명은 없다"고 강조한다.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다원적인 것이어서 하나의 낙인을 찍을 수 없다며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환영에 덜 감금된 세계를 꿈꾸며' '정체성에 앞서 이성을'이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크고 묵직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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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나는 누구인가 (서울, 박록삼기자, 2009-12-19  18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반드시 여러 성격의 공동체에 중복해 속해 있다. 이렇듯 복잡다단한 집단에 속한 그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주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 강조하며 배워 왔던 공동체 의식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다. 특정한 공동체 성원으로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하고 연대감이 풍부해지며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개인의 만족감과 공동체의 소속감도 더욱 커질 수 있다. 다만 이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때다.

인도 벵골 출신으로 1998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76)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정체성과 폭력’(이상환·김지현 옮김, 바이북스 펴냄)을 통해 “정체성 의식이 타인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할 수도 있다는 추가적인 인식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정 집단의 정체성에 기초한 인식은 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경향을 낳을 수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다는 얘기다.
 
그는 끊임없이 정체성과 폭력의 상관 관계에 대한 질문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코소보, 보스니아, 르완다, 부룬디, 팔레스타인, 수단 등 20세기 폭력과 전쟁의 야만이 휩쓴 세계 분쟁 지역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시대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정치경제학적 혜안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센 교수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량 학살이 벌어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사는 ‘키갈리 시민이며 르완다인이고 노동자인 한 후투족’의 예를 들며, 그 사람은 자신의 수많은 정체성 중 후투족으로만 바라보도록 압력을 받고 ‘키갈리 시민이며 르완다인이고 노동자인 투치족’을 살해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특정 정체성에 근거한 분파주의적 증오는 이렇게 야만적으로 조작돼 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던지는 비판은 이른바 ‘문명 충돌론’을 겨눈다. 문명 충돌론은 1990년대 중반 발표된 뒤 9·11 테러 등을 거치며 현대 문명 담론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이론이다. 문명 충돌론은 세계를 서구권, 이슬람권, 힌두권, 중화권 등으로 단순화시켜 문명 간 갈등과 충돌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이후 이 문명 충돌론은 많은 비판 이론에 직면하면서도 여전히 세계 지성계에서 정설처럼 간주되고 있다. 센 교수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세계의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방식을 배제한 채 ‘문명의 구성원’이라는 단일 집단의 정체성으로만 파악하려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예컨대 헌팅턴은 인도를 힌두문명권으로 분류했지만 인도의 무슬림 인구는 1억 4500만명으로 헌팅턴이 이슬람권으로 분류한 거의 모든 나라보다 훨씬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는 곳이다. ‘범주의 단순화’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이론이기에 이에 대한 옹호론이나 비판론 모두 잘못됐음을 지적한다.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에 천착해온 센 교수는 ‘정체성과 폭력’을 통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학문이라면 경제학과 철학, 정치학, 외교학, 사회복지학 등이 모두 서로 별개가 아님을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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