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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운동과 사회적 경제 : 협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하승우)

 

지역사회운동과 사회적 경제 : 협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하승우(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1. 사회적 경제의 뿌리와 지역사회
사회적 경제를 접근하는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한다. 장원봉에 따르면, 사회적 경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시장경제의 부정의를 대체하는 급진적인 사회전략으로서 사회적 경제의 해방적 의미에 주목하는 것, 둘째는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사회적 자본이 국가 실패를 보완하며 고용과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에 주목하는 것, 셋째는 사회적 경제가 신자유주의의 동원전략에 지나지 않고 그 대리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적인 입장이다(장원봉, 2006: 50).
실제로 사회적 경제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입장과 목표도 다양하다. 공/사와 국가/시장의 구분을 벗어난 사회영역에 관해 사회적 경제만이 아니라 비영리섹터나 제3섹터라는 용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이 비영리섹터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고, 사회적 경제는 제3섹터나 시민사회와 동일한 개념으로 파악되기도 한다(주성수, 2008).
그 평가나 목표가 어떻든 간에 거버넌스로 대표되는 국가의 실패와 최근 금융권의 위기와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로 대표되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 또는 대체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으로서 사회적 경제가 요구되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에 관한 논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고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지금 현재 전개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에 관해 얘기하기에 앞서 사회적 경제의 뿌리를 먼저 살펴보자. 서로 보살피며 협동하는 노동의 흐름은 인류의 역사가 출현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밭을 갈고 곡식을 수확하는 농업은 그 노동의 성격상 협동을 요구했고 자연적으로 부락을 형성시켰다. 크로포트킨은 이 점을 강조했다. “오래 전에 공동으로 밭을 경작하거나 파종하지 않았을 때도 다양한 농사일은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수행하였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공유지 가운데 일정 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거나 공동의 창고를 다시 채우거나 종교적인 축일에 생산물을 사용하기 위해서 지금도 여전히 공동으로 재배된다. 공동으로 관개수로를 파고 복구하기도 한다.”(크로포트킨, 2005: 165) 이런 성격은 한국의 두레와 촌회(村會)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하승우, 2008a 참조). 크로포트킨은 이런 농업을 무시하고 상공업의 발전에 집중하는 것이 정치·경제적인 위기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도시가 저지른 가장 크고 치명적인 과오는 농업을 무시하고 상공업으로 부의 기반을 쌓은 것이었다. 그래서 도시들은 고대 그리스 도시들이 이미 저질렀던 과오를 반복하였고 똑같이 어리석은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다. 많은 도시들이 지방으로부터 멀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지방에 적대적인 정책을 채택하게 되었고,…시민들을 완전히 타락시킬 정도로 대출 계약이 체결되었고 선거 때마다 내부적인 경쟁은 점점 더 심화되었으며, 그러는 동안에 소수의 가문에 이익을 남겨주었던 식민지 정책이 위태로워졌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분열은 더욱 심화되었고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각 도시마다 왕권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든지 자기편과 지지자를 찾을 수 있었다.”(같은 책, 262~263쪽)
서로 협동해서 생산물을 수확했기에 그 소유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고 공동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많았기에 자연히 회의하고 공동으로 결정을 내리는 정치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의 삶은 공동체라는 존재와 긴밀하게 서로 연관되어 있고, 경제는 그런 삶의 구조를 반영했다. 이렇게 보면 국가와 시장의 실패 이후 사회적 경제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근대에 와서 등장한 국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적 경제의 기반을 파괴하며 사회의 위기를 불러왔다. 쓰노 유킨도는 이런 위기를 소농의 위기로 파악한다. “자연의 활동을 인간의 활동으로 대체함으로써 집약농경은 자연과는 어떠한 모순도 일으키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의 은혜를 괭이와 낫으로 수확하는 ‘생산이 곧 선’인 세계로 나아갔다. 그런데 시장원리에 근거한 화폐경제는 ‘생산이 곧 악’이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유킨도, 2003: 194)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적 경제의 뿌리는 훨씬 더 깊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니 단순히 사회적 경제를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회복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하면 안 된다.
사회적 경제는 자신의 정치·경제적인 사회구조를 다시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사회적 조건은 과거와 다르고 단순히 과거의 구조를 복원하는 것은 그 과제를 올바로 드러내지 못한다. 사실상 이미 국가와 시장경제가 사람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협동과 보살핌의 원리를 강조하고 그것의 자율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장원봉은 해방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해방적 관점은 현재 신자유주의적 강압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국제적 관계 내에서 사회적 경제에 부여된 역할이 받는 압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급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경제가 급진적인 경제 전략으로 작동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또한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해방적인 질서가 현실의 자본주의 내에서 아주 제한적으로만 실현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구상은 다분히 이상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의 관점에는 탈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 대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탈자본주의로의 이행전략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점은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논리는 제공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대안적 이행의 논리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장원봉, 2006: 55쪽) 비슷한 관점에서 구도완과 여형범은 “생태 공동체와 어소시에이션이 이곳저곳에서 만들어지고 활발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너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보면서 생태적 공동체·어소시에이션이 국가와 자본을 생태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구도완·여형범, 2008: 98).
국가와 시장경제가 대부분의 사회자원을 통제하고 직·간접적으로 개인의 삶을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난 삶 자체를 구상하기 어렵다(국경을 벗어난 이주민들조차도 국가의 손에서 벗어났을지언정 여전히 시장경제의 통제와 규율을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대안을 추구해 온 다양한 운동들이 국가나 시장경제의 틀 안으로 포획되어 자신의 대안적인 성격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목격되고 있다. 사실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경제의 흐름이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은 19세기부터 맑스(K. Marx)와 맑스주의자들이 꾸준히 외쳐온 바이다. 맑스는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려는 시도를 ‘공상적 사회주의’라 정의하고 인터내셔널 창립선언에서 “협동조합식 노동이 아무리 원칙상 우월하고 우연적인 노력이라는 좁은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기하급수적으로 자라나는 독점의 성장을 결코 억제할 수 없고, 대중을 해방시킬 수도 없으며, 심지어 그들의 빈곤이라는 짐을 눈에 띄게 덜어 줄 수조차도 없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하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분권과 자치(自治)를 외치던 지역사회운동은 근대국가의 권력을 약화시키려 했고, 사회적 연대와 자급(自給)을 주장하는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힘을 대체하려 했다. 이런 실천적인 노력은 근대국가와 자본주의를 자율적인 공동체들의 공동체로 대체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운동과 사회적 경제는 접합점을 만들어 갔다.
예를 들어, 프루동(P. J. Proudhon)은 소유를 축적이 불가능한 점유로 대체하고, 협동조합의 건설과 이를 지원할 인민은행의 창립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프루동의 관심은 노동의 상호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회체계를 구성해서 농민과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도록 지원하려 했고 그의 정치구상은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연방주의’로 구체화되었다. 왜냐하면 연방 공화국에서 권력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인민의 일반의지를 실행하는 조절위원회들에 일련의 대표들이 결합하는 ‘자생적인 집단들(natural groups)’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생적인 집단들’이 사회적 경제에서의 노동단위와 일치하기 때문에, 국가의 성격은 정치적인 것에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변한다(우드콕, 2008).
그리고 간디는 이를 스와라지와 스와데시라는 핵심원칙으로 정리하고 마을 스와라지를 주장하며 이 둘을 결합시킨 마을공동체를 구상했다. 간디는 마을 스와라지를 “상호의존적인 완전한 공화국”이라 주장했다. “모든 마을의 첫째 관심사는 자신의 식량작물과 옷을 위한 목화를 키우는 일이다. 마을은 가축들을 위한 비축양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들을 위한 오락과 놀이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용 토지가 더 있으면 ‘쓸모 있는’ 환금작물을 키워서 마리화나, 담배, 아편 등을 쫓아내어야 한다. 마을에는 마을극장, 학교, 공회당을 둘 것이다. 깨끗한 물 공급을 보장하는 자체의 급수시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물이나 저수조를 통제 관리하여 할 수 있다. 교육은 기초과정의 끝까지 의무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가능한 한 모든 활동은 협동체제로 수행될 것이다. 불가촉천민이라는 등급이 있는 오늘날의 카스트 제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불복종과 비협력의 수단을 동반한 비폭력이 마을공동체의 제재규약이 될 것이다.”(간디, 2006: 60~61)
풀뿌리운동으로 대표되는 지역사회운동과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이미 인류 역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천되어 왔고, 만일 그 둘이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대안의 힘은 더욱 강해지리라 믿는다. 이 글은 그 대안의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2.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기
지역사회운동이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어 왔다. 먼저 맑스주의나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과거의 구태의연한 비판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지역사회운동이 지역이라는 좁은 공간의 변화로 제한될 뿐 아니라 그 변화의 성격 또한 보수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심지어 “가장 앞선 풀뿌리 모델이라는 독일의 녹색당조차 사민당의 손길에 그 운명이 좌우될 만큼 위약하고, 미국과 일본의 암울한 현실이 반 세기 넘게 요지부동인 것은 그 풀뿌리라는 것이 이미 인민의 파괴적 도전을 완충시키는 ‘체제의 풀뿌리’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주장도 있다(이재영, 2008). 그리고 협동조합운동이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고 “게으름뱅이와 사기꾼들의 천국이 될 것이며 지속가능하기는커녕 파산이 보장되어 있는 유토피아적 공동체에 불과”(곽노완, 2006: 73)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이론적 흐름은 여전히 국가를 중심으로 대안을 생각하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전략이 협소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낭만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맞서려 하는 자본주의적 관점을 뒤집어 적용할 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의 이론적 전제는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볼 뿐 아니라 사회를 그런 인간의 단순한 집합체로 바라본다. 그래서 개인이 사회의 그물망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서로 돕고 보살피는 호혜의 관계가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뿌리깊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이론적 고민은 자본주의를 낳은 산업화에서 시작할 뿐 그 이전에 훨씬 더 오랜 역사가 존재했다는 점을 무시한다. 더구나 이런 시각은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서로 횡단하며 대화하고 연대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현재의 흐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성현은 세계은행(World Bank)이 추진하는 사회개혁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통적인 국가역할의 약화가 가져올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통합발전모델(Comprehensive Development Framework)이 “시민사회부문의 특정한 행위자에게 빈곤한 공동체의 이익과 미래를 대표하도록 하면서, 사실상 민중부문에 존재하는 자활적 에너지를 국제금융공동체의 신자유주의적 규범으로 흡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책무성·참여·역량강화(empowerment)라는 좋은 가치를 내세우는 거버넌스와 통합발전모델이 결국은 시장경제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김성현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을 예로 들며 ‘사회적 경제의 영리화’를 우려한다(김성현, 2008). “새로운 원조정책과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과거에 자본가들이 고려하지 않았던 비공식적인 경제 혹은 사회적 경제에서 영리적 이윤을 ‘거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국가와 시장의 논리를 벗어나 특수한 규범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 화폐가 교환되는 사회영역이다.…사회적인 영역에 직접 개입하는 시장의 논리는 공공성이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영역을 확대시킨다. 이러한 접근은 진보적 담론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경제에 대한 국가의 탈개입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방향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김성현, 2008)
그렇다면 이런 비판들이 주장하듯이 국가가 변하면 새로운 정치·경제적인 구조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까? 김창진에 따르면, 1905년 혁명 이후 러시아는 협동조합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전쟁과 혁명, 유례없는 물가 폭등과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위기는 농민들의 협동조합 구성을 자극할 뿐 아니라 도시에서의 소비자협동조합의 성장을 불러왔다. “1917년 2월혁명 전야의 러시아 협동조합운동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전된 조직체계를 기반으로 거대한 대중(인구의 약 1/3~1/2)을 포괄한 사회경제운동으로 성장했다. 러시아 협동조합은 양적으로(단위조합과 그 회원 수에서) 세계 제일임을 자랑했다.”(김창진, 2008: 29)
협동조합운동을 이끌었던 지식인들은 협동조합이 대중의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켜 줄 뿐 아니라 “한편으로 자주성과 상호부조의 이념을 널리 선전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민의 조직화에 집중”(김창진, 2008: 113)해야 한다고 봤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조건이 협동조합의 성장을 가져왔지만 오랜 짜르 지배를 거치면서 대중의 의식은 협동조합의 발전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협동조합 활동가들은 협동조합의 성장 이면에 나타나는 ‘어두운 측면’이나 ‘성장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러시아 협동조합은 자금력이 부족했고, 실무 능력이 신통치 않았으며, 자주성이 불충분했고, 직원이 적었으며, 많은 회원들이 조직의 의미와 과제를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광범위한 대중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부 부유층이 주인 노릇을 하곤 했다.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보기에 이 모든 단점들은 주로 농민과 노동자들의 의식이 낮은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활동가들이 보기에 가장 시급한 일은 ‘연대의 원칙을 보급’하는 일이었다. 많은 문맹자들이 의식있는 회원으로서 협동조합 조직에 가입할 수 있도록 계몽운동을 펼쳐야 했으며, 이에 따라 협동조합의 주요 활동 분야가 인민들의 계몽사업이 되었다.”(김창진, 2008: 148).
그래서 이들은 ‘의식적인 시민’을 만드는데 협동조합이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문화·계몽 활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문화·계몽 사업분야에는 도서관, 독서실의 건립, 방과 후 교실, 강의, 간담회, 연극, 음악회, 축제 등의 조직, 인민회관, 문화·계몽센터, 상호부조 조직의 설립 등이 포함되었다. 협동조합이 전개한 비경제 활동의 과제는 단지 협동조합을 선전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의미에서 농촌 주민들을 계몽하고 그들의 도덕 수준을 제고하는 것까지 포함했다. 그 중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가진 것은 미래 농촌 문화생활의 중심인 인민회관의 건립이었다. 인민회관(‘인민궁전’)의 설립에는 소비조합이나 신용조합뿐 아니라 구베르니야 젬스트보와 심지어 읍 단위 촌회까지 참여했는데, 이는 그 사업이야말로 모든 다른 활동을 위한 기반이자 결실이었기 때문이다.”(김창진, 2008: 149) 이런 공간을 통해 협동조합은 자신의 성장발판을 다질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협동조합운동의 성장이 협동조합에 관한 레닌의 생각까지도 바꿨다는 점이다. 처음에 레닌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는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이어받았지만 “협동조합을 신경제정책에 적응시킬 것이 아니라 신경제정책을 협동조합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협동조합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왜냐하면 레닌은 자본주의 경제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닌의 죽음은 이런 깨달음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했고 협동조합의 원리를 획일적으로 러시아 사회에 적용하려고 한 시도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레닌은 협동조합을 ‘집단적 자본주의제도(collective capitalist institutions)’로 생각하고 그 이사회에 거부권을 가진 정부의 대표를 임명했다. 그리고 협동조합인민은행을 국영은행에 합병시켰다. 1919년까지 소협·농협·신협은 그 지역의 모든 시민들로 구성된 소비자코뮌으로 전환되었다. 그리하여 소협이 주요한 배급기구가 되었으나 자율성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워바스(J.P. Warbasse)가 서술한 바와 같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자발적인 협동조합운동이 정치국가에 의해서 완전히 흡수되었다. 그리하여 자발적인 운동은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레닌은 곧바로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고 ‘협동조합의 관점을 잃어버려’ 신경제정책이 너무 과도하게 진행되었다고 술회했다.…그러나 일단 자율성이 파괴되어 버리고 나면 그것을 복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레닌은 깨달았다. 그는 만년에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공산당은 협동조합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버챌, 2003: 87)
그런데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진행된 협동조합에 관한 이론적 논쟁은 흥미로움을 준다. 20세기 초반 러시아 협동조합운동은 세 가지 경향, 즉 동업조합주의, 순수협동주의, 사회주의 경향을 띠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경향이 서로 논쟁을 벌이며 협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을 논의했다. 동업조합주의자들은 협동조합의 원칙이 근로농민조합에서 가장 잘 구현되고 동업조합이 자본주의의 위험에 대처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새로운 인간을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서 생산조합이 경제에 도덕적·이상적 요소를 도입하고 상호연대의 원리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업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거부하고 협동조합 “경제적 이익과 도덕적 이해를 결합시킴으로써 인간 사회에서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독자적 사회체계”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순수협동주의자들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의 어떠한 변화도 전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협동조합이란 다양한 계급들 사이의 연계이며,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우호적인 협력을 위한 중립적 기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협동조합운동이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계급투쟁의 성격을 가져야 하고 협동조합이란 “최고 유형의 사회주의, 즉 아나키즘적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 주장했다(김창진, 2008: 30~40).
이런 세 가지 경향이 서로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차야노프(A. Chayanov)같은 뛰어난 농경제학자가 출현했다. 차야노프는 농업이 자연과 맺는 특수한 관계를 인정 “그에 따르면 농업생산은 농기업의 확대에 자연적 한계를 설정한다. 만약 광범위한 영토에서 경영이 이루어진다면 주인은 그 공간에서 실로 거대한 도구들을 옮기고 다녀야 한다. 경영 규모가 크고 경작 면적이 넓을수록 더 많은 농산물들이 더 긴 거리를 거쳐 수송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전반적인 경영 비용은 물론 개별 생산품의 비용도 증가하게 된다.”(김창진, 2008: 59~60).
하면서 협동조합을 통한 농업의 수직적 집중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차야노프는 그런 농업경영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가족농이고 협동조합을 통한 농기업이 이를 가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차별적 최적화를 주장했다. 농민생산협동조합은 기술적 진보를 고려하면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구조를 최적조직화의 경제적 효율성에 맞춰 쇄신해야 한다. “그는 ‘조직화 계획’을 각각의 농업생산과정을 담당하는 개별적 집단으로 나누고, 각각의 과정에 가장 적합한 규모로 조직화한다면 농업에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경영도구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김창진, 2008: 65) 그리고 차야노프는 협동조합의 실패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의무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는 농민들의 태도”(김창진, 2008: 70~71)에서 나타난다고 보고 협동조합의 문화·계몽활동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에게 협동조합은 두 가지 원칙의 통합이었다. 한편으로 협동조합은 조직·경제 형태로서 협동조합 기업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광범위한 사회운동, 더 정확히는 ‘각자 자신의 이념을 가진 운동들’이었다.”(김창진, 2008: 71)
이런 차야노프의 계획은 협동조합 조직의 단일화나 농업 집산화를 주장하는 레닌과 스탈린의 계획과 충돌했고, 결국 그는 반소비에트 혐의로 체포되어 억압을 당했다. 러시아에서의 협동조합운동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그 경험은 ‘실패의 교훈’을 남겼다. 즉 국가를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를 사고하는 것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가는 표준화되고 중앙집중화된 틀을 강요하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침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협동조합운동은 협동조합이 자신의 토대를 다지려면 협동조합의 활동에 매몰되지 말고 문화·계몽활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만이 아니다. 크로포트킨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유대인 아나키스트들과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들이 다양한 형태의 대안공동체를 만들어갔다. 특히 유태인 아나키스트들은 정치적 신념뿐만 아니라 언어(이디시어)와 전통(유태교)으로 묶인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들은 협동조합 건설에 열중했는데 신발가게, 빵집, 의복공장, 학교 등 다양한 직종에서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회원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클럽, 협동조합, 상호부조모임 등을 조직하고 강연, 피크닉, 콘서트를 후원했으며 파리코뮨 기념일(3월 18일), 노동절(5월 1일), 헤이마켓 순교자들의 처형일(11월 11일)을 기념하며 일종의 대항문화를 형성했다.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들도 오케스트라와 연극모임을 가졌고 피크닉(picnic)과 소풍, 강연과 콘서트를 즐겼다. 피크닉은 단순히 먹고 마시며 춤추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운동을 위해 돈을 모으는 중요한 행사였다. 뉴욕과 뉴저지의 아나키스트들은 증기선을 빌려 허드슨강을 타고 올라가는 소풍을 떠났고 비어마운트나 다른 시골지역에 도착할 때면 먹고 마시며 아코디언과 만돌린을 연주한 뒤 항상 기금을 모았다(애브리치, 2004)
 
3. 시장경제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경제‘운동’의 필요성
앞서 얘기했던 비판들은 단지 기우(杞憂)일 뿐일까? 그런데 이런 우려는 사회적 경제를 지지하는 편에서도 얘기되고 있다. 19세기 이후 사회적 경제가 발달해온 한 축을 살펴보면 그것이 성급한 걱정이라고 볼 수 없는 현실적인 근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공제조합들이 공공복지 영역으로 편입되어 갔으며, 각종 노동자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들 그리고 신용협동조합들은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통한 시장의 기업이 제공하는 편익보다 우월한 체제가 되지 못하였다. 이 같은 환경에서 전통적인 사회적 경제 조직들로서 협동조합과 공제조합 그리고 다양한 결사체 조직들은 애초의 결사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잃은 채, 시장경쟁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것을 유일한 조직의 존재이유로 가질 수밖에 없었다.”(장원봉, 2008: 205) 더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은 지역사회를 근거로 한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을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운동이나 사회적 경제를 지지하는 편에서도 두터운 현실의 벽에 막혀 그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국의 시민사회를 분석한 글은 IMF 외환위기 이후 사람들의 의식이 신자유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보통사람들의 의식이 경쟁과 효율, 시장만능주의에 경도되어 경쟁력 키우기를 마치 진리처럼 받아들인다는 분석이다(주성수 외, 2008: 58).
또한 협동조합 운동 내부의 구조도 취약하다. 김흥주는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었다고 평가받는 충남 홍성의 풀무생협 생산자 회원 285농가를 설문조사하고 난 뒤 생산자들의 가격만족도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이념보다 이윤동기에 따라 참여하는 생산자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이념이나 소신보다 생존전략의 한 방식으로 친황경농업을 선택한 경우가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다 정부는 실적 위주의 친환경농업정책을 펴나가고, 풀무생협은 정책적 지원에 기대어 조직적 외형 확장에만 관심을 집중하다 보니 생산자의 관리나 규율은 소홀하게 되고, 소비자와의 관계적 신뢰도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김홍주, 2008: 26) 더구나 땅값 상승이 유기농민을 압박하고 토박이농부들이 고령화되는 현상 역시 농촌공동체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녹색평론 100호 기념좌담).
도시의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생협이 대중의 일상 속으로 더욱더 깊이 스며드는 것은 좋지만 그런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물든 대중의 욕망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그것은 생협운동이 ‘웰빙’바람을 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대중을 자기 삶의 주체로 만들지 않고 ‘소비자’로서의 의식을 강화시킨다. “지역 생협의 홈페이지에는 들어가지 않고 물품 주문 사이트에만 들어오는 조합원들은 주인의식을 갖기가 어렵다. 그들은 생협의 운영진과 사무국을 서비스의 공급자인 듯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말하자면 매달 일정한 조합비를 냈으니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클라이언트 의식이다.”(김찬호, 2008: 146)
이런 여러 가지 현상들은 사회적 경제의 성공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의 한 단위로서 협동조합운동은 단순히 협동조합에 머물지 않고 협동조합‘운동’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에는 지역사회운동과의 적절한 결합이 필요하다.
이런 운동적 관점은 일찍이 협동조합운동에 주목했던 사회주의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중의 자생성을 강조했던 그람시는 이탈리아의 토리노동맹(Alleanza Torinese)이 주도했던 소비자협동조합운동에서 사회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협동조합운동은 생산의 영역을 건드리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지만 소비자에게 엄청난 이득을 제공하고 “사회적 책임의 사회주의적 의미를 정제·제련하는 거대하고 인상적인 실험실”(그람시, 2001: 77)이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대중의 자발성과 혁명적인 지도를 결합하려 했다는 점에서, 엘리트와 대중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점에서 다른 맑스주의자들과 차이점을 가진다. 그리고 그람시는 대중문화의 지배언어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항 헤게모니가 새로운 소통구조를 통해야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했다(홀럽, 2000: 175). 즉 언어의 프레임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칼 폴라니(Karl Polanyi)도 협동조합에 주목하는데, 그는 사회주의의 국가주도, 관주도 경제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란 “산업 생산이라는 조건 속에서 인간들의 관계가 매개자 없이 직접적이며 인격적인 즉 인간적인 성격을 띠는 상태”(폴라니, 2002: 86)라고 봤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인간적인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폴라니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꾸리는 ‘삶’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콩나물 교실에서 받는 교육’ 혹은 ‘뒷골목 문화’ 그 이상이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가 좋은 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좋은 집을 가져야 한다고 우긴다면 정신이 나갔거나 위험한 사상을 가진 인물로 간주될 것이다. 자신의 생산물을 이웃과 나누는 것은 다른 이들의 장사를 망치고 결국은 자신의 장사도 망치는 짓이 된다.”(폴라니, 2002: 93)
그리고 그런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는 사물의 표피적인 관계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을 관찰하는 ‘내면 조망’을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의 필요 욕구와 노고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상황을 상상해보고 그의 필요 욕구와 고통과 노고를 느끼고 경험하며 그의 내적 자아로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내면 조망’은 물질적인 것과 관련있는 외부적 조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외부적 조망을 통해서는 경제를 이루는 세 요소 가운데 생산 수단의 문제에만 이를 수 있으며, 경제 생활의 다른 두 요소는 ‘내면 조망’이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조망 아래 있는 것이다.”(폴라니, 2002: 106)
그런데 이 내면 조망은 중앙정부의 계획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따라서 폴라니는 “노동조합, 산업 결사체, 협동조합, 사회주의적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회주의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폴라니, 2002: 110)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폴라니는 민주적으로 조직된 소비자 협동조합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조합의 투표권을 가진 구성원들은 매일 노동계급 여성들과 만나며 그들이 활동하는 공동체의 모든 주민과 관계를 맺어나간다. 따라서 조합의 지도층을 인도하고 비판하며 충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성원들의 필요 욕구를 '내적으로 조망'하는 기관인 것이다.”(폴라니, 2002: 113~114) 앞서 얘기한 그람시처럼 폴라니는 협동조합의 의미를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에서 찾았다. 그리고 폴라니는 내면조망이라는 개념을 통해 상호간의 욕구를 이해하고 조절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운동의 전략이 필요한데, 이것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을 다시금 확립하는 것이다.
 
4. 교육과 연대, 미래와의 소통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소비자에서 삶의 주체로의 전환이다. 그것은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자조와 자기책임의 원리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통해 생활 속에 확립된다. 이 민주주의는 자발적인 참여와 민주적인 관리를 통해 생활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는 이런 민주주의가 구현되어 있지 않다. 교육이 경쟁과 승자독식을 가르치고 학연·지연·혈연이 사회적 관계망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1인 1표를 실현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회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사회운동조차도 이런 잘못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그 장을 통해서만 대중은 소비자의 정체성을 벗어나 민주적인 주체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요즘 얘기되는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 역시 그 윤리성은 소비자의 의식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역사회의 풀뿌리 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는 중요한 함의를 던져준다. 왜냐하면 풀뿌리운동은 일상의 문제들을 대중이 스스로 처리하고 결정하며 수동적인 대중이 능동적인 정치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올 만큼 커다란 힘을 기르지 못했지만 풀뿌리운동은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운동이나 활동가는 민중을 계몽하고 이끄는 역할이 아니라 민중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돕는 역할을, 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을 맡는다. 민중이 어디에 서 있고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민중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시작하고 민중에 대한 낙관이나 비관을 미리 예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상식에서 시작해 전체적인 사회구조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빈민운동의 토대를 쌓은 솔 알린스키(Saul Alinski)와 민중교육의 산파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aire), 씨의 사상을 확립한 함석헌, 생협운동의 정신을 다진 장일순 등은 이런 풀뿌리민주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다졌다. 이들 네 명의 사상가는 각기 비슷하지만 다른 장에서 자기 활동을 펼쳤다. 프레이리는 브라질에서 추방된 이후 미국과 세계를 돌며 민중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알린스키는 미국 내 지역을 돌며 빈민조직화에 힘을 쏟았다. 장일순은 원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각종 지역운동을 벌이는 한편 민청학련 등 민주화 운동에 도움을 줬고, 함석헌 역시 곳곳에 강의를 다니며 민주화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렇게 달랐지만 시공을 초월해 서로가 만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장일순이 프레이리를 읽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던 장일순이 알린스키를 접했을 가능성도 높다. 장일순은 가톨릭센터에서 함석헌 등의 각종 지식인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고 중요한 문헌들을 번역해 보급하며 이른바 ‘원주캠프’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니 함석헌도 이런 자리를 통해 알린스키나 프레이리의 이론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하승우, 2008b).
그리고 풀뿌리 운동은 민중을 믿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민중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때때로 접촉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닥으로 긴다는 것은 그들의 경험과 상식, 전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민중을 모시고 살릴 때 가능하다. 단순히 민중을 일방적으로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속에서 변화를 경험하고 배울 때 진정 민중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은 사람들이 서로 울고 서로 울리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고, 민중이 꿈틀거리며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지원한다.
사실 생협이 구성하는 만남과 관계의 장 역시 그런 민주주의의 장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의 활동을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 생협의 관계망이 정말 생활재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얼굴을 심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얼굴을 익히고 맞대며 서로의 삶을 걱정하고 있는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주체로서 자신의 역량을 기르고 있는가? “생산자 스스로 철학적 교육자가 되어 지역농업변화의 주체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농민과 함께 교육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내용 접목을 연구하여 현실적인 학교급식 교육프로그램(농민 일일교사제, 농촌봉사, 체험학습, 노작교육, 산촌유학 등……)을 만들어 진정한 ‘얼굴있는 농산물’이 생산·공급되도록 할 수 있다. 현재로도 충분히 학교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도농교류, 1교1촌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다. 이렇게 학교급식이 교육과 접목되는 학교교육계획을 마련하는 것은 학교운영위원회(학교자치)의 몫이며, 도시학생들이 굳이 대안학교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지방학생과 교환학습을 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이빈파, 2008: 260).
작업장과 매장 내에서는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원리가 실현되고 있는가? “사회적 기업의 수익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의 달성과 사회적 기업의 유지·발전을 위한 적정한(미리 경정된) 수익(또는 자원획득)을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적정한 수익 또는 자원획득의 방법으로 내부유보를 전혀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내부유보만으로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는 경우까지 내부합의를 통해 적절한 비율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내부유보를 전혀 없게 하는 경우에는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비영리단체와 같이 금전적 수익은 전혀 없게 하고(내부유보를 없게 하는 것) 사회적 가치 달성만을 위해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내부유보는 없어지고 사회적 가치 달성을 위해 특별히 필요한 자원은 필요할 때마다 관계자들로부터 획득하여 사용할 수 있다. 정반대의 경우는 관계자들로부터의 자원획득을 없애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의 규모를 미리 합의한 후 내부유보(사업수익)를 통해 모든 자원을 획득하여 사용하는 경우다. 결국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협의와 합의를 통해 적절한 수준의 내부유보와 관계자들로부터의 자원획득의 비율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이상훈, 2008: 174)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운동의 시초라고 보는 로버트 오웬(R. Owen)은 『새로운 사회에 관한 의견』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영국의 공장에 생명 없는 기계를 널리 받아들인 뒤에 거의 예외 없이 인간은 부차적이고 뒤처지는 기계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육체와 정신이라는 원재료보다 나무와 철같은 원재료를 개량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쏟아져 왔습니다. 이 주제에 적절한 관심을 쏟기만 하면 여러분은 부를 창출하는 도구로서 인간이 여전히 많이 발전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겁니다.” 오웬이 뉴라나크에서 시도한 공동체 건설은 단순히 협동노동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오웬은 그곳이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장이어야 한다고 봤고,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합리적이고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봤다. 오웬은 마을 한가운데에 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에 ‘새로운 시설’(new institution)을 만들었다. 이 곳에는 혼자 걸어다닐 수 있는 빈민과 노동계급의 아이들이 모여 미래의 가능성을 기르고 자신의 참된 본성을 지키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오웬은 그런 교육을 통해서만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근대국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빈민과 노동계급에게 가하는 폭력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해소되고 사회적 경제가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가능성은 지금 현재의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따라서 청소년을 비롯한 미래세대를 협동조합에 참여시키는 구체적인 방안도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인적 역량도 부족하다. 세대간의 단절을 넘어서 소통과 학습의 언어를 창출하는 힘은 어른들이 끊임없이 자기를 연마하고 삶을 매력적으로 가꾸는노력에서 나온다. 그것은 아이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고령화와 평생학습시대를 살아갈 어른들 자신에게 절실한 자질이다.…대안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존의 교육과 다른 세계관과 자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 같은 것을 갖게 된 것은 보람이지만, 그것을 실현하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이는 결국 대안적 사회와 경제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김찬호, 2008: 154)
그리고 사회적 경제의 성공 여부는 그것이 기존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다른 자신의 ‘사회적 시장’,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을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사회적 경제가 기존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자신을 적응시킨다면 그것은 자신의 기반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사회적 일자리 사업이나 레츠(LETS)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한밭레츠가 지역통화 운동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어느 정도는 기여한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즉, 품앗이만찬 등의 공동체 행사를 통해 타지에서 이주해온 신규 회원의 정착을 돕고, 건강한 이웃관계를 형성했으며, 노인, 주부 등 유휴노동력을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기술과 재능을 학습하는 등 자기개발 기회도 마련해주었다. 또한 재활용품 사용을 생활화하고, 자원낭비를 막고 나눔과 공유의 정신을 실천에 옮겼으며, 한밭레츠를 폐쇄적인 모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개발해 추진하고, 공동체와 생태계 원리를 따르는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을 창출하는 데도 적지 않게 이바지한 것으로 보인다.”(박용남, 2008: 23)
, 마을만들기운동 등을 통해, 그리고 친환경급식이나 로컬푸드만이 아니라 주거, 보험,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런 관계망의 구성에서는 협동조합만이 아니라 협동조합운동의 가치에 동의하는 다양한 지역단체들도 참여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의 망은 국경선을 넘어 확대될 수도 있다. “농장의 고된 노동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남반구의 민중들이 바로 이 공정무역의 과정에서, 합의에 기초한 ‘조합’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자신들이 처한 조건과 문제점들을 드러내는 주체로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들 앞에서 감히 열 수 없었던 입을 열어, 자신들이 처한 처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운동을 통해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차미경, 2007: 244); 하지만 이런 소통과 만남에도 일정한 원칙은 있다. “지향해야 할 지역자립의 경제(中村 1998)는 폐쇄적인 자급자족경제가 아니다. 지역자립사회가 서로 연대하는 것이다. ‘일본 국제볼런티어’의 대표였던 이와사키 슌스케(岩崎駿介)의 “인간의 순환을 열고, 물건의 순환을 닫는다”고 한 표현이 생각난다. 대량무역을 그만두는 대신에 지역의 자립성을 높이고, 사람 사이에 국제교류를 활발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량·광역 유통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환경부하를 크게 한다. 무역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대량의 철광석, 대량의 석유, 대량의 곡물이 장거리수송되는 사회는,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불건전하다. 특히 식량은 ‘식량주권’이 기본이며, 자유무역주의에 의해서 무역을 확대하는 게 아니라, 식량자립을 기본으로 하면서, 페어트레이드에 의해서 그것을 보충해야 할 것이다.”(기요시, 2003: 210)
그런 관계망의 확대가 공동소유의 영역을 확대시킨다면 그것은 새로운 노동과 거래(trade)의 원칙을 확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운동은 다시금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협동조합의 활동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보살피고 있는가? “생태지역의 인간활동과 자활공동체의 주된 사업은 둘 다 ‘돌봄의 노동’과 관련된다. 현재 자활공동체에서 하는 노동은 간병, 집수리, 재활용, 청소 등 사람-사람간 서비스(복지 서비스), 사람-자연간 서비스(환경 서비스)를 두 축으로 하고 있다. 노동능력이 있는 빈곤층이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더 열악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는 지역통화 등 생태적 교환체계에 의지할 수도 있다. 둘째, 생태지역과 자활공동체 모두 공동체로서 지역의 성격에 대한 논구를 필요로 한다. 분명히 생태지역은 사람과 자연의 호혜적이고도 공동체적인 지역성 회복을 지향한다. 그리고 자활공동체의 정착을 위해서는 특히 농산어촌의 지역특화적 사회적 기업이나 장소 공동체적 사회적 일자리의 개발 등 지역화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한상진, 2008: 122)
새로운 사회운동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새로운 대안을 구성하고 있는가? “지난 세기하고는 다른 21세기의 사회적 경제는, 마찬가지로 지난 세기와 다른 21세기의 새로운 사회운동과 맞물려 있다. 먼저, 새로운 사회운동은 그 운동의 주체에 있어 계급과 노동자 중심이라는 기존 사회운동의 범위를 넘어선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체는 오히려 주변인(minority), 청년, 여성같은 고도 산업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노동자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고,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생활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며,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또 운동의 영역에서 기존의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생산의 문제에 한정됐다면, 새로운 사회운동은 환경·인권·평화 등 삶의 전체성과 관련된 영역에서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운동의 조직방식에서 소수의 지도층이 통솔하는 서열형 조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지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는 개인간의 그물형(network) 조직을 형성해간다. 21세기의 사회적 경제 또한 전세기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회운동과 조우하면서 운동의 주체와 영역과 방식을 새로이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김기섭, 2008: 151~152)
연대가 가능한 자신의 사상적 지평을 넓히고 있는가? “인간관계 훈련이나 소통기술 워크숍 같은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생협의 커다란 비전을 그리고 그 꿈을 공유하는 것이다. 생각을 넓어지고 벅찬 미래를 상상하고 있으면 웬만한 어려움과 사소한 갈등들을 넉넉하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끊임없는 학습으로 의식수준을 높이고 조직의 체질을 개선해가는 운동을 요구한다. 그것 없이는 활동가의 폭이 결코 확대될 수 없고, 차세대 리더십도 육성되기 어렵다. 따라서 생협연합회의 교육도 문명과 사회의 거시적인 흐름을 읽으면서 생협의 위상을 짚고 미래의 모습을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더욱 깊고 넓게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김찬호, 2008: 141)
협동조합운동은 목표를 크게 잡아야 한다. 협동조합운동의 목표는 세계평화와 사회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글래스고 대회에서 선언되었듯이 “한편으로는 ‘모든 국가들 간의 평화와 선의를 유지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국민의 사회적·경제적 생활이 협동조합의 원칙에 의거하여 조직된다면 국제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에는 평화가 필요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협동을 이루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협동에는 일반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의 운동체로서의 협동조합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시장을 둘러싼 국가간의 경쟁이야말로 전쟁의 근원이고, 반면에 생산자 및 소비자로서의 인간의 이해를 조화시키고 정의의 원칙에 입각한 국제교역을 기초로 한 시스템이 곧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버챌, 2003: 78~79)
어려운 시기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 그것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경제에 관한 고민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사회적 경제가 어떻게 구성되었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협동조합운동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줄 것이다. 함석헌이 말했듯이 “한 시대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결코 개인행동의 타락이나 어떤 제도의 깨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사회가 어지러워진 결과로 오는 것이다. 어지러움은 그보다도 전체의 산 통일이 깨지는 데서 온다.”(함석헌, 1979: 277) 그렇게 고난을 겪으며 회복된 자의식은 개인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 전체의 통일을, ‘하나’의 회복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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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통화위원회 관련 기사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7896.html
금통위원 이달 4명 교체…또 청와대 밀실서 임명하나 (한겨레,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2012.04.11 21:46)
과반 넘게 바뀌어…관료·학계 등 모두 탐내
정권 입맛에 맞는 전문성 부족 인사들 앉혀와
“인사청문회 등 사전 검증 거쳐야” 목소리 커

기준금리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오는 20일 사상 유례없는 큰 폭의 물갈이를 앞두고 있다. 위원 7명 가운데 반수가 넘는 4명(공석 1명 포함)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통위원 선임이 전문성과 중립성에 대한 여론 검증 없이 권력 핵심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정권 차원의 제 식구 챙기기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권위와 명예를 동시에 누리는 꽃보직 금통위원은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꽃보직’이다. 금통위원은 기준금리와 통화정책을 결정해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데다 국내외 경제의 흐름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 무엇보다 임기 4년이 법으로 보장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다. 게다가 책임은 없고 연봉도 3억원이 넘는다. 차관급 관료의 두 배 수준이다.
따라서 금통위원은 정치권에서는 개국 공신들에게 나눠줄 ‘전리품’으로, 경제관료들에게는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전에 몸을 만드는 ‘기항지’로, 학계에서는 실무 경험과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가문의 영광’에 해당하는 자리로 통한다. 특히 정권 말기라서 경쟁률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에는 금통위원 하고 싶은 사람을 줄세우면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한은 정문에서부터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까지 늘어선다는 말이 돌았다. 지금은 그 줄이 청와대 정문까지 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들이 금통위원으로 임명되는 기준은 김중수 한은 총재가 금통위원 자격으로 강조해온 글로벌 마인드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보다는 청와대 의중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한상의 손경식 회장은 ‘대한상의 추천 몫인 금통위원이 왜 1년 넘게 공석이냐’는 야당 의원 질문에 금통위원 선정은 사실상 청와대의 몫이라는 점을 시인한 바 있다.
■ 경험과 소신보다는 논공행상으로 결정 원승연 명지대 교수(경영학부) 분석을 보면, 1998년 이후 현재까지 금통위원으로 재직한 사람 가운데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은 모두 23명이다. 경력으로 보면 관료 출신이 8명, 교수 등 학자 출신이 7명, 한은 출신이 4명이었다. 한은을 제외한 금융권 경력을 가진 사람은 2명뿐이었다.
이는 금통위원 임명이 얼마나 금융정책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획재정부 등 추천 기관의 ‘제 밥그릇 챙기기’나 정권의 정치적 배려로 전문성이 부족한 위원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한은의 한 전직 간부는 “한은의 기본 역할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금통위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논공행상으로 금통위원이 임명되면서 그로 인한 악영향은 금융시장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에 미치게 된다. 금통위원 출신인 이성남 전 민주당 의원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기준금리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짧으면 6개월, 길면 10년 후”라며 “금융강국이라는 미국조차 통화정책을 잘못 운용해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것을 지켜보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좀더 투명한 절차를 거쳐 금통위원을 선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은 노조는 성명을 내어 “새로 임명될 금통위원들은 밀실 인선이 아니라 인사청문회 등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쳐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금통위원 임명 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관련 법을 발의했으나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 새 금통위원 후보 누가 거론되나
‘글로벌 감각’ 인사 3명 물망
MB측근 최중경 전장관 입길
TK 출신 인사 2명 내정설도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3명의 임기 만료가 채 열흘도 남지 않았지만 한은 안팎에서는 신임 위원들에 대한 구체적인 하마평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검증 절차 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나 전직 경제 관료로 채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는 이미 금통위원에 대한 인사 검증에 들어갔다.
오는 20일 임기가 만료되는 금통위원 자리는 모두 세 자리다. 여기에 2010년 4월20일부터 공석인 한 자리를 포함하면 모두 4명의 금통위원이 새로 선임돼야 한다. 지난 6일 퇴임한 이주열 전 부총재 자리를 박원식 신임 부총재가 채운 것을 포함하면 이번에 5명이 바뀌는 셈이다. 한은 역사상 금통위원이 3분의 2 이상 바뀐 것은 처음이며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조직의 안정성을 위해 일부러 임기 만료 시점이 겹치지 않도록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정작 후임 금통위원 임명을 두고는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현재 자천 타천으로 금통위원 후보로 거론돼온 인물은 몇 명 있다. 글로벌 금융 감각이 뛰어나다는 ㅇ씨, ㄱ씨, ㅅ씨가 유력할 것이라는 말 정도다. 언론에 보도된 최중경 전 장관도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최 전 장관이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데다 기획재정부 차관 시절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고환율 정책을 추구했던 인물이어서 물가안정 책무를 맡는 한은과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 안팎에서는 김 총재가 금통위원으로는 소신을 내세우는 성향이 있는 교수보다는 관료 출신을 선호한다는 말도 나온다. 교수 출신인 위원들이 김 총재 뜻과 반대되는 소수의견을 계속 제기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금통위원은 사실상 청와대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김 총재의 입김이 먹히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현 정권과 코드를 맞춰온 대구경북(TK) 출신 인사 2명이 이미 내정돼 있으며 나머지 2명을 지역 안배 차원에서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금통위원 후보들에 대해 현재 검증중”이라며 “임명 시기는 총선 때문에 금통위원 임기가 만료되는 20일 이후로 미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4112202105&code=920301
새 금통위원에 ‘MB맨’ 거론… 한은, 독립성 잃을까 뒤숭숭 (경향, 박재현 기자, 2012-04-11 22:02:10)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 선임을 앞두고 뒤숭숭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 매달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의 최고 의결기구인 금통위는 이달 중 4명의 새 위원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면서 가뜩이나 위협받고 있는 한은의 독립성이 더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금통위는 7명으로 구성되는데 의장(한은 총재)과 당연직(한은 부총재)을 제외한 5명은 한은·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대한상의·은행연합회가 각각 추천한 인사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추천직 위원 중 오는 20일 김대식·최도성·강명헌 위원의 임기가 끝나고, 2010년 4월 이후 공석인 상의 추천 몫도 이번에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새 금통위원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민상기 서울대 교수, 이종화 고려대 교수, 김윤환 금융연수원장, 김태준 전 금융연구원장, 채희율 경기대 교수 등이다. 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거나 ‘MB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경력이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민 교수는 김중수 한은 총재와 대학 동기로 현재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2010년 12월 대통령실 국제경제보좌관에 임명됐다. 김윤환, 김태준 원장과 채 교수는 MB 선거캠프 출신이다.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대책본부장을 지낸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한때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과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도 하마평에 올랐다.
금융계에서는 청와대가 이미 금통위원을 내정했으나 총선과 민간인 사찰 등 최근 사회 분위기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예년 같으면 임기만료를 보름가량 앞두고 차기 금통위원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계는 청와대가 한은에 이어 금통위마저 장악하려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은법에 따라 금통위원은 4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또 연봉은 3억원이 넘고, 비서가 딸린 사무실과 고급 승용차가 나온다. 처우도 좋지만 정부로서는 입맛에 맞는 금통위원을 앉히면 통화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을 때 금리 조정을 통해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금통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시 김중수 총재와 금통위는 성장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금리를 올리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은행 노조 관계자는 “금통위가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금통위원 선임은 향후 중앙은행 독립성의 잣대가 될 것”이라며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진 민간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논평] 금융통화위원 공석 1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경실련, 2011-04-11)
- 대한상공회의소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추천권한을 행사하라 -
- 허울만 남은 금통위원 기관추천제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

내일(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그러나 참석대상 금융통화위원은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7명이 아니라 6명이다. 지난해 4월 박봉흠 전 금통위원이 퇴임하면서 생긴 빈 자리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 설립 이후 6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추천권한을 행사해야 할 대한상의가 정부의 눈치만 보며 금통위원 추천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한 나라의 통화신용정책을 심의·의결하는 중요 정책결정기관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파행 운영은 민간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마련된 금통위원 기관추천제가 사실상 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민간단체 추천 몫인 은행연합회의 경우 지난해 4월 현직 정부관료 출신인 임승태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추천한 바 있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민간인을 금융통화위원회에 포함시킴으로써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통화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기관추천제의 목적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여기에 대한상의가 정부의 낙점만을 기다리면서 1년여 동안 허송세월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기관추천제가 이제는 확실히 정부 관료의 낙하산 인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금통위원 추천과 금통위 회의가 왜곡되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행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김 총재는 그동안 한국은행 내외부에서의 문제제기에 대해 오히려 “운영상의 큰 어려움이 없다”라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일관해왔다. 한국은행법 13조는 7명의 금통위원 정원을 명시하고 있다. 잇달아 금리인상 시기를 놓쳐 시장으로부터의 신뢰를 잃고, 열석발언권 허용 등으로 한국은행의 중립성에 의문을 낳게 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김 총재의 책임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법에서 정한 금통위원 정원이 채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1년여 동안 절름발이식으로 금통위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이를 계속 방관한다면 과연 김 총재에게 한국은행의 권위와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생각이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법에서 금통위원 정원을 7명으로 정하고 기관추천제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경제 상황에 따라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때 가부동수로 인한 정책 혼란을 막고, 민간 금융권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대외경제 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금통위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우선적으로 대한상의는 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소신 있게 금통위원 추천권한을 행사하여야 한다. 계속해서 정부의 눈치만을 보며 추천을 미룬다면 더 이상 추천권한을 가진 민간기관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울러 금통위원 기관추천제도 개선을 포함하여 금통위 지배구조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관추천제가 사실상 정부 관료의 몫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변질되면서 통화정책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기초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기관추천제도 폐지 등 개선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한국은행 총재 및 금통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 통화정책 결정자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높이기 위한 임기 연장, 열석발언권 폐지 등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은행이 시장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고 명실상부한 중앙은행으로서 자리를 잡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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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잃어가는 금통위… 청와대도 한은도 ‘모른 체’ (경향, 김희연·송현숙·오관철·박병률 기자, 2011-03-08 22:02:57)
ㆍ잊혀진 한 자리, 금리 결정 등 막중한 역할… 총재도 공식 문제 제기 안해
ㆍ“조속 임명해야”-“정부 입김에 편향된 결정” 한은 독립성 훼손 우려 커져

“한때 이런저런 사람 얘기가 들리더니 요즘은 금통위원 얘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없앨 자리도 아니지 않나. 금리결정을 제대로 해 연봉 3억원 이상 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장기 공석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한 자리를 두고 금융당국 관계자는 8일 이렇게 말했다. 항간에는 ‘미친 존재감’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금통위원 공석 한 자리는 이와는 정반대다. 갈수록 그 존재감이 잊혀지고 있을 정도다. 금통위를 이끄는 한은 김중수 총재는 물론 나머지 금통위원들조차 공석사태에 따른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고 있다. 금통위 자리는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 잊혀진 한 자리 = 올 초까지만 해도 금통위 공석 한 자리는 금융계 관료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경제 각료들의 교체와 함께 수순을 거쳐 곧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공석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존재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분위기까지 있을 정도다. 6명 체제가 아무 문제없다면 한은법 개정을 통해 금통위원 인원을 줄여 예산을 절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의 속내를 모르겠다는 불평도 쏟아지고 있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는 한나라당 한 의원은 “관련법 개정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청와대가 지나치다”고 털어놨다. 금융권 관계자는 “MB정부에 공이 있는 관료 출신들이 요직을 두루 맡는 상황에서 또 관료를 임명해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누군지 몰라도 기왕의 현직 임기를 모두 채운 후 옮겨오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금리결정 시 정부의 입김이 노골적으로 반영된다는 비난이 일면서 금통위원에 대한 존재감이 상실된 측면도 있다. 어차피 금통위원들의 결정이 아닌 정부의 판단이 작용한다는 해석에서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의중이 사실상 금리를 결정짓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지닌 자리이기보다는 고액의 연봉을 받는 자리 정도로 보여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반대로 현직의 한 금통위원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국내외 상황을 하루라도 놓치면 제대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만큼 현 경제상황이 위급하다”면서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막중한 자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금통위 공석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회피했다.
◇ 임명 촉구하는 여론 팽배 = 경향신문이 8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 전 한은 총재, 시중은행장, 경제학계 등을 대상으로 ‘금통위 공석 사태’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묻자 대다수가 “고물가로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때에 금통위의 파행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조속한 임명을 촉구했다.
한 시중은행장은 “조속히 후임을 결정해 중앙은행의 정책이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장은 “금통위원 공석으로 한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에 대해 우려를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재정부는 열석발언권을 가지고 경기상황을 설명하면 정부의 의견을 듣고 한은이 최종 판단하는 게 한은법의 정신”이라며 “재정부의 판단을 한은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한은 몫”이라고 말했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장은 “이달에도 당연히 금리인상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향후에도 물가 동향에 맞춰 통화정책을 수립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법이 정한 금통위원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금통위원 7명이 각기 대표성을 가질 때 통화정책이 균형을 이룬다”면서 “한은의 책무는 통화가치 안정으로 그 한 방법인 금리정책을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도 “물가불안으로 중지를 모아야 할 때 한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기본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통위원은 어떤 자리… 통화정책 결정·사실상 靑서 임명 (경향, 이윤주 기자, 2011-03-08 22:04:57)
금통위는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관이다. 권위 있고 존경받는 자리인 데다 3억원 이상의 높은 연봉이 보장되고, 이변이 없는 한 4년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인선 때마다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 총재와 부총재를 포함해 총 7인의 위원으로 구성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다른 5인의 위원은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 한은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등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재의 임기는 4년이고 부총재는 3년으로 각각 1차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으며, 나머지 금통위원의 임기는 4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형식상으로는 각 기관에서 1명씩 추천을 받아 금통위원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지만, 사실상 임명권을 가진 ‘청와대의 뜻’에 따라 임명이 이뤄진다. 대한상의는 “후보자를 물색 중”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청와대 낙점’을 기다리느라 장기간 공석이 빚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실제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낙선자 챙기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논공행상 등 후임 금통위원과 관련해 거론된 소문은 대부분 정치적 고려가 깔린 해석이었다.
2004년부터 4년간 금통위원을 지낸 민주당 이성남 의원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금통위원의 기관 추천제도를 폐지하고 국회 인사청문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사설] 전리품 된 금통위원, 아예 구조조정 하든지 (한국, 2010/12/26 21:09:14)
8개월째 비어 있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인사가 결국 해를 넘길 모양이다.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데, 박봉흠 전 금통위원이 4월 24일 임기를 마친 뒤 만 8개월 간 공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후임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힘없는 민간기관이 추천권 행사에 늑장을 부릴 이유는 없을 터. 그렇다면 대통령이 아직 금통위원을 낙점하지 않았다는 말인데,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에 따른 논공행상 자리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금통위원은 차관급 자리여서 이번 개각 때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감사원장 등이 정해진 후에야 논의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금통위원 한 자리의 공석이 길어져 한은 금통위는 의장인 김중수 한은 총재를 비롯한 6명이 참석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한국은행법에 따라 7명이 참석하면 과반수로 정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3대 3 동수가 될 수도 있다. 몇 명이 출장이라도 가면 의결정족수 5명을 채우지 못해 회의 자체가 열리지 못한다. 한은 부총재가 당연직 금통위원인 데다 나머지 4명 중에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가 많아, MB정부 초대 경제수석 출신인 김 총재 의중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독립적인 통화정책 기구'가 아니라 '대통령 정책자문단'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김 총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자들의 거듭된 추궁에 "금통위를 항상 7명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한은 총재로 임명된 직후 "한은 독립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말도 했던 사람이다.
4년 임기 보장에 3억원 대의 연봉을 받는 금통위원은 통화정책의 중립성과 금융시장 안정을 책임진 막강한 자리이다. 이런 자리가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돼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식이니 허울뿐인 추천제를 차라리 임명제로 바꾸고 대폭 구조조정하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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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202031115&code=900308
[베스트셀러 탐구]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경향, 백승찬 기자, 2012-07-20 20:31:11)
ㆍ“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재능뿐만 아니라 1만 시간의 연습 필요”
21세기 인기 경영서 저자들 중에는 기자 출신이 많다. 언론사에서 대중적인 글쓰기 감각을 익힌 이들은 전문용어 대신 내러티브로 경영학 이론을 풀어냄으로써 경영학 교수나 기업인 출신 저자들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토머스 프리드먼(59), <롱테일 경제학>의 크리스 앤더슨(51), 그리고 말콤 글래드웰(48)이 그 대표다. 최근 출간된 에이드리언 울드리지의 <경영의 대가들>은 이들을 언론인 세계의 “퍼스트 클래스 승객”이라고 표현했다. 언론사들이 경영과 영향력 면에서 쇠퇴기를 걷고 있지만, 이들 기자 출신 구루에게는 각 출판사들이 수백만달러의 선인세를 주면서 계약서를 내민다. 울드리지는 MBA나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지지 않은 이들 기자 출신 구루가 폐쇄적이던 경영 이론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오래된 원죄인 단순화와 과장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중에서도 글래드웰은 ‘황태자’ ‘록스타’로 불릴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세번째 책 <아웃라이어>(김영사)는 이미 궤도에 올라 있던 글래드웰의 인기를 더욱 확고히 했다. 2008년 미국에서 나온 <아웃라이어>는 이듬해 한국에서 번역돼 4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아웃라이어(Outlier)’의 사전적 의미는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다. 글래드웰은 이를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선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 확장시켰다. <아웃라이어>는 성공의 비결을 살피는 자기계발서인 동시에 이를 가능케 한 사회·문화적 요인을 살피는 경영서다.
<아웃라이어>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성공의 비결은 모두 틀렸다’고 주장한다. 통상 어느 사람의 성공은 타고난 지능, 재능, 개인의 열정 등에 힘입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글래드웰은 사회가 주는 ‘특별한 기회’와 ‘역사·문화적 유산’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선수들 중에는 1분기에 태어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유소년 아이스하키 리그가 1월1일을 기준으로 선수를 선발하기 때문에 같은 해 출생자들 중에서도 발육 수준이 좋은 1~3월생이 코치 눈에 들어 좋은 훈련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에릭 슈미트 등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들은 대부분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이들은 모두 최초의 개인 컴퓨터가 판매되기 시작한 1975년에 20대 초반이 됐다. 낡은 패러다임에 매몰돼 있을 만큼 나이가 많지도,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할 만큼 어리지도 않은 이들은 컴퓨터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다.
성공하기 위해선 재능뿐 아니라 노력이 중요하다. 여기서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을 제시한다. 특정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가량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밴드 비틀스는 독일 함부르크의 싸구려 클럽 등지에서 주 7일 연주했다. 그들이 본격적인 성공을 거두는 1964년까지의 연주 시간이 대략 1만 시간이었다. 청소년 시절의 빌 게이츠는 새벽마다 인근 대학의 컴퓨터실에 잠입해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
책 후반부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권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제시된다. 아시아인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는 쌀농사, 그리고 언어 덕이다. 쌀농사는 그 어떤 농사보다 세심한 손길과 인내력이 필요한데, 여기서 비롯된 부지런함이 수학 문제를 푸는 지구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자에서 비롯된 숫자는 십일, 십이 하는 식으로 논리적이고 규칙적이지만, 영어권의 숫자는 eleven, twelve같이 불규칙적이다. 서양 아이들에게 산수는 작위적이고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아시아 아이들은 규칙적인 숫자 체계 아래서 쉽게 산수를 배운다.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의 괌 추락 사건도 아시아 문화권의 관습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다.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이 같은 문화는 기장, 부기장 사이에도 적용된다. 당시 대한항공 여객기의 기장은 줄곧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지만, 부기장은 이를 눈치챘으면서도 명시적으로 기장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다. 결국 조종실 내 의사소통의 부재는 참사로 이어졌다.
김은섭 경제·경영 서평가는 “2007년 나온 자기계발서 <시크릿>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긍정의 심리학을 유행시켰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며 “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대표되는 <아웃라이어>의 아이디어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혜영 김영사 편집장 역시 “<아웃라이어>는 충분한 자료와 연구 결과에 바탕한 신선한 시각을 제시했다”며 “이것이 자기계발서의 주요 독자층인 20~40대 직장인 남성을 넘어 여성 독자까지 끌어들인 이유”라고 말했다.
<아웃라이어>는 창의성, 자율성 대신 부단한 노력을 강조한다. 미국 학교에선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의 학력 격차가 있는데, 이는 3개월에 이르는 긴 여름방학 동안 상류층 학생은 보조 학습을 하는 반면 하류층 학생은 방치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아웃라이어>는 엄청난 학습량, 노동강도를 강조하는 한국의 학교, 직장 문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아웃라이어>를 ‘개인이 아닌 구조’를 강조하는 책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웃라이어’는 개인의 비범함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결절점에서 탄생한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선 소장은 “ ‘1만 시간의 법칙’이 조기교육을 옹호하는 논리로, ‘아웃라이어’를 강조하는 것이 ‘한 명의 천재가 수백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논리로 소모된다면 저자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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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악셀 호네트)

 

[키워드로 책 읽기]이유 있는 99%의 분노 (경향, 노명우|사회학자, 2011-10-14 19:31:14)
ㆍ월가 시위·김진숙 고공농성 등
ㆍ자기존엄 회복 위한 정당한 행동

갈등은 이상적이진 않지만 현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단어다. 평화에 관한 이상적인 질문을 현실적인 질문으로 바꾸게 되면, 우리는 인간이 투쟁하는 이유를 묻게 된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평화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투쟁에 나선 까닭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투쟁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싸움을 즐기는 싸움꾼이 아니다. 투쟁하는 사람은 보다 많은 여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돼지와 같은 존재도 아니고, 돈을 받고 영혼을 저당잡힌 채 왜 싸워야하는지 이유도 알려하지 않는 ‘용역’도 아니다. 싸움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지도 않은 정신대 할머니들이,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긴 철거민들이, 폭력과 고문에 항의하는 인권운동가들이, 등록금에 절망한 대학생들이 왜 거리와 크레인 위에서 투쟁하는지 궁금해질 때,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책이 바로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인정투쟁>(문성훈·이현재 옮김/사월의책)이다. 독일에서 1992년 나온 책이다. 1세대인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와 2세대인 하버마스의 뒤를 잇는 3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 호네트는 ‘인정’이라는 틀로 인간사의 갈등을 들여다본다.
인정이란 얼마나 통속적인 단어인가. 인정은 학자들만 사용하는 전문 용어가 아니다. 다른 일상어처럼 인정은 식욕이 왕성하다. 철학자는 대식가보다 미식가에 가깝다.
학자가 미식가로서의 전문적 식견을 발휘하며 단어의 정교화에 탐닉할 때, 일상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미식가는 까다로운 취향을 지닌 편식가로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먹성 좋은 사람이 바로 좋은 식욕 때문에 놓치고 있는 영양소를 미식가는 골라낼 수 있다. 호네트는 미식가의 위치에서 인정에 접근한다. 통속적인 인정의 개념으로는, 종업원의 불친절에 화가 난 손님이 매니저를 불러 “손님은 왕”이라고 소리 지르는 ‘리얼 진상’의 풍경, 승진심사를 앞둔 가련한 샐러리맨이 임원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머리에 넥타이를 두르고 탬버린을 두드리며 “부장님 최고!”를 연발하는 가련한 장면만이 떠오르지만, 미식가의 감정을 거친 인정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세상은 다르다.
인간은 배부르면 만족하는 돼지가 아니다. 아무리 위장이 꽉 차 있어도, 자기 존엄이라는 그릇이 비어 있다면 인간은 만족할 수 없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개인의 욕구는 자기의 밥그릇에 보다 많은 음식을 채워 넣고 싶은 물욕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인정에 대한 절실함은 보다 많은 돈도 넘치는 권력도 아니라, 자기 존엄이라는 스스로 부여한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정에 대한 요구가 부당하게 무시될 때 사람은 모욕감을 느낀다. 모욕은 자기 존엄을 추구하는 개인에 대한 일종의 관념적 살인이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고문이나 폭행은 단순한 신체적 학대가 아니라 자기 존엄 추구를 짓밟는 행동이다. 지렁이는 밟혀서 고통이라는 물리적 자극이 느껴질 때, 물리적 자극에만 반응하여 꿈틀댄다. 하지만 인간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인격에 가해진 무시에도, 그로 인한 정신적 모멸감에도 반응하는 존재다.
인간은 지렁이처럼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시민에게 응당 부여돼야 하는 권리에서 배제됐을 때 굴욕을 느낀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명시돼 있는 시민의 권리가 특정 집단에게 보장되지 않을 때, 자존감은 굴욕으로 변한다. 종교가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성취하고 싶은 꿈이 다르다고,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고, 한 개인의 생활방식과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무시돼 놀림의 대상이 될 때, 그 개인 혹은 집단의 명예와 품위는 무차별적으로 훼손된다.
투쟁은 모욕당한 사람이 훼손된 자기 존엄을 다시 획득하려고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다. 그래서 <인정투쟁>의 부제는 너무나도 적절하게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이다. 인정투쟁은 무시와 모욕을 통해 존엄이 훼손된 개인 혹은 집단의 명예 회복을 위한 행동이다. 인정투쟁의 원인은 탐욕도 트집도 투정도 아니다. 따라서 존엄을 되찾기 위해 인정투쟁을 벌이는 사람의 목소리를 사회는 경청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래야 사회는 정상적이라는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자기 존엄의 회복을 위해 인정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라야 비정상의 딱지를 떼어버릴 수 있다.
아무리 철학자가 통속적인 인정 개념에 담겨 있는 자기 존엄의 추구라는 영양소를 찾아내도, 통속적인 개념을 더욱 타락시키는 악덕 업자가 판을 치면 미식가의 노력은 머쓱해진다. 악덕업자는 통속적 개념을 더욱 통속적으로 만든다. 악덕업자에 의해 미식가 철학자가 도덕적 요소라는 영양소를 발견했던 인정이라는 음식은 다시 정크 푸드로 타락한다.
정크 푸드가 지배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인정이라는 재료 고유의 풍미를 식별할 능력이 없어진다. 인공 조미료를 흠뻑 뒤집어 쓴 정크푸드화된 인정이란 단어는 성공과 단순 등치된다. 정크 푸드의 달콤한 속삼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명예와 품위를 훼손당한 사람들이 자기 존엄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투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인정이란 사물로부터의 인정에 다름 아니다. 몰고 다니는 자동차의 크기가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명절날 선물로 들어오는 갈비세트의 무게와 위스키의 연도수로 인정 여부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기 존엄에는 둔감하면서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물에 둘러싸여 있지 않을 때만 모욕을 느끼는 물신화된 심성을 지니게 된다.
인정의 통속화가 극한까지 진행되면, 인정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과 동의어가 된다. 인정받았음이 타인의 ‘눈에 들었다’와 동일하게 느껴지는 한, 사람은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과 눈도장을 구걸하는 사람으로 양분되기 마련이다. ‘속류화된 인정’은 사전에 등록돼 있지 않지만, 속류화된 인정투쟁이 판을 치는 조직생활을 한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그 뜻을 알 수 있는 ‘짜웅’에 가깝다. 속류화된 인정투쟁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는 아부의 능력과 인정 여부가 정확히 일치한다.
사람은 각자 자기 그릇의 크기로 타인을 이해한다. 배부른 돼지의 눈에는 모든 투쟁이 위장을 채워달라고 꿀꿀거리는 소리로만 보인다. 그런 사람들은 한 개인의 권리가 무참히 무시된 소설과 영화 <도가니>의 상황을 보고도 도덕적으로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며, 자기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깊은 속내도 알지 못한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물질적 보상만을 받겠다고 아직까지도 매주 수요일 집회를 하고 있겠는가? 자기 존엄을 회복하려는 인정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개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인정투쟁을 벌이는 시위대를 보고도 “아니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그만이지 인정이라니 웬 지랄들이래?”라고 막말을 뱉어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책이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개가 아니라 존엄을 추구하는 사람을 위해 쓰여졌다는 점이다. 사람만이 이 책의 핵심적 메시지를 해독해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말한다. 자기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인정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당신은 도덕적이라고. 그래서 당신은 한없이 정당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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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한국, 무시당한 자들의 분노로 교정한다! (프레시안, 노명우 아주대학교 교수, 2011-09-16 오후 6:41:25)
[왜 '인정 투쟁'인가] 악셀 호네트의 <인정 투쟁>
너무나 분명한, 사람에 관한 두 가지 사실에서 출발하자. 로빈슨 크루소는 예외적 존재이다. 모든 개인은 사회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관념 속에서 개인은 단독자일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 모든 개인은 사회적 존재이다. 두 번째 사실. 인간은 먹고살아야 하지만 물질적 궁핍 해결이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생존 그 이상을 원한다. 배부른 돼지가 되었을 때 맛보는 동물적 만족감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사람은 돼지가 아니라 자기 존엄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사람에 관한 명백한 변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교차하는 지점에 '인정'이란 단어가 있다. 인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악셀 호네트는 인간을 규정하는 부정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빚어내는 풍경을 탐색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얻고 그를 통해 자긍심을 획득하지만, 무시에 의해 자긍심이 훼손되었을 때 투쟁하는 끊임없는 인정 투쟁의 과정이다.
인정 투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독창적이지는 않다. 호네트는 통속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인정이라는 개념을 예나 시기(1801~1807년) 헤겔로부터 빌려왔다. 하지만 인정 투쟁 개념을 되살리고 발전시키는 호네트의 솜씨는 능숙하며 충분히 독창적이다. 호네트는 헤겔로부터 물려받은 인정 투쟁 모델을 조지 허버트 미드의 사회심리학과 결합시켜 헤겔을 현대화하는데 성공한다.
초기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이 후기의 노동 모델에 의해 대체되었음을 비판하는 호네트의 모습에서 우리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3세대라는 호네트의 별칭을 떠올리게 된다. 호네트의 스승 하버마스가 마르크스주의 모델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미드를 비롯한 사회학 이론과 결합시킴으로써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발전시켰던 것과 유사한 궤적을 호네트 역시 밟는다. 스승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길을 찾는 호네트는 잊혔던 헤겔의 인정 모델에 주목한다.
<인정 투쟁>(문성훈·이현재 옮김, 사월의책 펴냄)의 1부는 헤겔의 인정 모델을 발굴하는 호네트의 시도가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1부는 헤겔에 관심이 없거나, 헤겔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독해하기에 지루할 수도 있다. 1부의 지루함은 교수 자격 청구 논문으로 쓰인 이 책의 배경과 크게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부를 넘기고 나면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이 미드와 결합되어 현대화되는 매우 흥미로운 2부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인정 투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상호주관적 인정의 유형들을 다루는 2부의 5장과 개인의 자기 정체성과 무시를 다루고 있는 6장이다.
인정은 전문적 학술 용어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다양한 맥락에서 다채롭게 사용되는 일상 특유의 현장감이 넘치는 단어이다. 일상의 가장 현장감 있는 개념인 인정을 사상사적 맥락과 결합시킴으로써, 인정은 통속적인 뉘앙스를 벗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설명하는 핵심어로 부상하는 마법을 부린다.
이 마법은 전적으로 이 책 속에서 일상-사상사-현실이 황금의 삼각형 관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황금의 삼각형 속에서 사상사와 일상이 결합하기에 헤겔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지만 호네트의 책은 사변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또한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되 일상적 용어가 갖고 있는 통속적 혼돈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학문적 체계성을 부여함으로써 일상의 삶에 대한 성찰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이 모든 관련이 현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로 작용하기에, 아카데미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행위는 항상 타인을 전제로 한다. 타인을 전제로 하지 않은 행위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타인은 항상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타자를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드는 '일반화된 타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호네트는 미드로부터 '일반화된 타자'의 개념을 빌려오되,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과 결합시켰다. 철학과 사회학은 이렇게 호네트를 통해 결합했다.
개인이 일반화된 타자와 긍정적인 상호주관적 상호 관계를 맺으면 그게 인정이다. 개인 간의 상호 관계는 그래서 인정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의 재생산은 상호 인정이라는 지상 명령 아래서 수행"(184쪽)된다. 하지만 개인은 항상 타자로부터 긍정적인 상호주관적 관계를 맺지는 못한다. 인정의 대척점에 모욕이나 굴종과 같은 '무시'라는 무시무시한 범주가 도사리고 있다. 인정은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힘이지만, 반면 무시는 주체에 엄청난 심리적 훼손을 가한다. 인정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만, 무시는 개인을 사회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인정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과 같은 원초적인 인정 형식부터 각 주체의 권리를 인정하는 권리 관계 형태의 인정 형식 그리고 가치 공동체를 지향하는 연대 형식의 인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 가지 인정 형태를 거치면서 개인의 긍정적 자기 관계의 정도가 단계적으로 높아"(186쪽)지기에, 인정 형태가 고양될수록 인간은 단순한 자기 보호로부터 적극적인 자기 발현으로 고양될 수 있다.
인정 형태의 고양이 일어나지 않을 때 혹은 각각의 인정 형태들이 무시라는 인정에 대한 거부와 만날 때 사회 투쟁은 벌어진다. 무시의 형태는 다양하다. 폭력, 고문, 폭행 등 개인의 신체적 불가침성을 건드리는 무시가 있는가 하면, 굴욕의 경험을 안기며 개인의 자기 존중을 훼손하는 무시도 있고, 특정한 생활 방식을 평가 절하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형태의 무시, 즉 인정에 대한 부정은 해당 당사자에게 무시나 모욕으로 이해되고, 이는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을 불러일으키고,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은 사회적 투쟁을 추진하는 심리적 동기가 된다.
인정 투쟁 모델은 설명적이다. 인정 투쟁 모델은 정치적 권력 관계나 경제적 이득을 사회 갈등의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분과 학문적 설명에서 벗어나서, 현실에서 우리가 접하는 사회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많은 투쟁이 먹고살기 위한 투쟁이었지만, 모든 투쟁이 먹고살기만을 위한 투쟁은 아니다. 인정 투쟁 모델은 그 빈틈에서 발생하는 투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단지 설명적이라면 인정 투쟁 모델은 사회 갈등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인정 투쟁 모델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현실에서 일어났던 투쟁을 설명하는 대목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이유에 도덕적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분노'는 투쟁을 촉발하는 원인이지, 투쟁의 도덕적 기초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단지 투쟁이 분노의 표출에 불과하다면, 투쟁하는 사람은 투덜이 혹은 싸움꾼의 의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체적 훼손, 모욕과 무시, 권리 침해에는 반드시 반응해야 한다. 하물며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댄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은 신체적 위해가 가해졌을 때만 꿈틀대는 지렁이는 아니다. 인간은 꿈틀대는 단순 반작용 그 이상을 위해 투쟁을 한다. 인정 투쟁 이론은 여기서 가장 광채를 발휘한다. 인정 투쟁 모델은 단지 사회적 투쟁의 등장에 대한 설명 틀이 아니라 나아가 도덕적 자기 형성 과정에 대한 해석 틀이다.
인정 투쟁으로 전개되는 사회 투쟁은 단순히 자기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투쟁과는 다르다. 인정 투쟁의 촉발 요인이 자기 존엄에 대한 부정이기에, 인정 투쟁은 제로섬 게임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무시를 통해 부정당했던 자기 존중을 되찾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인정 투쟁은 단순히 심리학적 공격적 행동도,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 행동이 아닌 약화된 자기 존중에 반응하는 일종의 자기 치유적이며 동시에 무시라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회를 치유하는 도덕적 행동이다. 이 치유의 과정이 인정 투쟁의 도덕적 역할이다.
인정 투쟁은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와도 같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정 투쟁이 폭력, 고문, 폭행 등 개인의 신체적 불가침성에 대한 반작용뿐인지, 아니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인지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는 가늠될 수 있다. 생존권과 폭력에 대한 거부와 같은 원초적인 인정 투쟁만을 수용하는 사회는 도덕적 고양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무시를 통해 훼손된 자기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고양된 인정 투쟁을 승인하고 그 투쟁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귀를 갖고 있는가?
혹 인정 투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고 과잉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전적으로 '지금 여기'의 한국이 부끄러운 성숙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숙하기에 품위 있는 사회를 향한 사회로 가는 투쟁의 길을 찾으려고 할 때, <인정 투쟁>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최상의 안내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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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무시와 모욕에 대한 분노가 투쟁을 부른다 (경향, 박영도 | 연세대 국학연구원 사회인문학 연구교수, 2011-08-26 20:47:05)
헤겔 이후 ‘인정(認定)’ 혹은 ‘인정투쟁’이라는 용어가 오늘날처럼 자주 언급되고 중시된 적도 없을 것이다. 그 중심에 하버마스의 창백한 ‘소통’ 범주로부터 투쟁의 피가 도는 ‘인정’ 범주로 이행함으로써 프랑크푸르트학파 제3세대의 출현을 알렸던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이 있다.
이 책의 출발점은 간명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감은 인정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형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때는 긍정적 자아가 형성되고, 반대로 타인으로부터 무시와 모욕을 경험할 때는 부정적 자아상이 형성되고 좌절과 분노가 쌓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나, 모든 싸움의 출발점엔 모욕과 분노가 있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호네트는 이 일상적 경험과 상식으로부터 도덕적 갈등의 형식인 ‘인정투쟁’이라는 진주를 캐낸다. 크건 작건, 혁명의 도화선이 되건 일시적 분출로 끝나건, 이 인정관계 속에 일상의 도덕적 역동성이 자리잡는다. 이 인정투쟁 개념을 통해 호네트는 계급투쟁의 숨겨진 메커니즘을, 계급투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갈등을 해명하고자 한다.
호네트에 의하면, 근대에 오면 인정관계와 그 원리는 친밀한 공동체의 배려 원리, 회사 같은 결사체의 업적·성과 원리, 정치공동체에서의 평등한 존중의 원리로 다원화된다. 그런데 시장자유주의에서처럼 이 다원화된 원리들이 결사체의 업적·성과 원리 하나에 의해 식민지화되면, 인정관계의 왜곡과 궁핍화가 발생한다.
이 시각에서 보면, 사회복지체제라는 것도 배려의 원리나 평등한 존중의 원리를 통해 성과·업적 원리를 제어함으로써 시장자유주의의 구조적 폐해를 피하려는 시도이다. 신자유주의란 이 제어의 틀이 사라지고 인정관계의 일면적 왜곡과 궁핍화가 극단화됨을 말한다. 야차 같은 성과 원리가 재촉하는 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무대에서, 존중의 시간은 짧고 모욕의 시간은 길다. 이 때문에 존중을 늘리고 모욕을 줄이기 위해 경쟁은 물불 가리지 않고 치열해진다. 이 상황에선, 나의 자존감을 존중의 소통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모욕 위에서 세우는 일그러진 인정 메커니즘이 지배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분노가 축적된다.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 해프닝도 그렇다. 보편적 복지의 관점은 수혜자들에게 모욕과 무시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것이다. 50%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자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에게 밥은 밥이 아니라 독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그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타인에 대한 모욕 위에서만 자신의 존중을 발견하는 일그러진 인정관계의 철저한 신봉자일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일그러진 인정관계가 지배하는 곳에선 삶은 무시와 모욕으로 비루해지고, 마음은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차고, 거리는 천함과 뻔뻔함으로 비열해진다. 이 상태를 그대로 둔다면, 뻔뻔함의 거리가 분노의 거리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런던 폭동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사회갈등을 분석하는 새로운 진보적 범주를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선 인정 범주만큼이나 우리의 일상적 도덕감각과 밀착된 비판적 범주도 드물다. 동아시아 유교권에서 도덕적 경험과 감수성의 기원에는 인정관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논어>의 첫장을 펼쳐보라. 거기서 공자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 而不溫 不亦君子乎)”라고 말한다. 유교적 도덕의 지향점인 군자가 인정관계를 통해 정의되고 있다.
물론 공자는 인정관계의 훼손에서 비롯하는 분노의 개인적 규제에 방점을 찍는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개인에게 너무 큰 윤리적 부담을 준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서 공자의 취지를 살리는 사회윤리적 전망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인정관계의 훼손을 최소화해 좌절과 분노의 축적이 최소화되게끔 사회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부른다.
  
한국의 고질병 ‘사회적 무시’…그 치료법은? (한겨레, 최원형 기자, 20110826 21:09)
호네트 ‘인정투쟁’ 개정증보판
사랑·권리·연대 세가지 축으로
사회적 갈등구조에 해법 제시
“분배제도 등으로 구체화 필요”

〈인정투쟁-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악셀 호네트 지음·문성훈·이현재 옮김/사월의책·2만3000원

인간 사회에서 결코 끊이지 않는 사회적 투쟁들은 과연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근대 서구 사회철학은 사회적 삶이 근본적으로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관계라고 규정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규정한 토머스 홉스가 대표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과 사회를 ‘좋은 삶’을 추구하는 정치적 공동체로 파악했으나, 근대 철학은 이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개별적 원자로서 인간의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을 중시한 것이다.
사회적 투쟁의 핵심 배경이 ‘자기보존’보다도 ‘인정’이라고 분석한 <인정투쟁>은 이런 기존 관점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시킨 획기적 저작으로 꼽힌다. 지은이 악셀 호네트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하버마스에 이어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하는 3세대 이론가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산실인 독일 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사회철학자다. 1992년 나온 이 책은 90년대 국내에 번역 소개됐으나 절판됐다가 이번에 2003년 판본을 번역한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국내에 소개됐다.
<인정투쟁>의 핵심적인 명제는, “사회적 투쟁은 상호인정이라는 상호주관적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주장으로 압축된다. 호네트의 인정이론은 예나대학 시절 청년 게오르크 헤겔의 철학적 사유와 사회심리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의 경험과학적 분석으로부터 비롯됐다. 청년 헤겔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사회화 과정 속에서 중요한 조건이 된다고 봤다. 미드는 개인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목적격 나’와 ‘주격 나’ 사이의 마찰에 주목했다.
이들의 철학과 이론을 종합한 호네트는,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긍정적인 자기의식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라고 봤다.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들은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인정해주는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 사랑·권리·연대 등 세가지 층위에서 이런 사회적 인정질서를 풀이할 수 있다고 한다.
인정투쟁 이론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투쟁이 주로 물질적 영역에서의 ‘자기보존’을 위한 생존경쟁에서 비롯된다는 기존 관점을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집중했던 기존의 사회철학들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을 단지 생존 유지를 위한 것으로 다루는 데 그쳤다면, 호네트의 인정이론은 ‘행복한 삶,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 자신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사회로부터 인정받으려 투쟁하는 인간의 총체적 모습을 불러낸다.
만약 개인 또는 집단이 자기 정체성을 타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모욕’을 당할 경우엔 어떨까? 호네트에 따르면, 인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자 각 개인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의식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다.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 되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폭동이나 봉기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분출되는 사회적 인정투쟁에는 모두 이런 도덕적 분노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인정투쟁 이론은 특히 급격히 변화하는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풀이하고 해결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를 계기로 터져나온 촛불집회에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치 엘리트의 권력 장악 수단으로 변질된 데 맞서 ‘주권적 존재’로서 인정받으려는 대중들의 욕구가 있었다. 차별 철폐와 고용 보장을 부르짖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사회적 존재로서 제대로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들어 있다. 단지 ‘생산과 분배’의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풀어낼 수 없는 사회적 갈등들에 대해, 인정투쟁 이론은 좀더 폭넓고 세심한 접근법을 제시해줄 수 있다.
호네트의 제자이자 이 책을 옮긴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는 “특히 한국 사회는 ‘사회적 무시’라는 독특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며 한국 사회에 인정투쟁 이론이 좀더 폭넓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는 명문대를 가지 못해서, 장애인이라서, 못생겨서, 여자라서, 외국인 노동자라서, 노동자라서 등등 수없이 많은 이유로 타인을 무시하는 병리적 현상이 있는데, 인정투쟁 이론은 이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에 적합한 틀이라는 것이다.
인정투쟁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정치적 민주화나 경제적 정의 등 구체적인 분배 정의에 대한 요구를 약화시킨다는 반론도 있다. 문 교수는 “인정투쟁 이론이 분배 정의 문제를 부정하거나 뛰어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인정은 권리나 제도, 사회적 연대를 통해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 호네트와 낸시 프레이저가 벌인 논쟁을 담은 <분배인가 인정인가?> 등이 ‘악셀 호네트 선집’으로 계속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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