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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217115734
테크노마트 진동 원인! '자유시장' 위기와 일치한다? (프레시안,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02-17 오후 5:53:58)
[프레시안 books]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이경남 옮김, 우석훈 해제, 민음사 펴냄)
자유시장의 실패는 자유시장 '경제학'의 실패

2008년에 발생한 미국 발 금융 위기에 대해서 시중에는 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팔리는 것들은 아마도 2008년을 전후한 미국 금융가의 모습을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인물과 사건 위주로 서술하는 책들일 것이다. 이런 부류의 책들이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경제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더라도 마치 소설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읽고 나면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1930년대의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심각한 사건이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대로 이론을 가지고 체계적인 설명을 해주는 책들이 있다. 로버트 쉴러의 <버블 경제학>(정준희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은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누리엘 루비니의 <위기 경제학>(허익준 옮김, 청림출판 펴냄)은 케인스와 슘페터의 관점에서, 그리고 라구람 라잔의 <폴트 라인>(김민주·송희령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과 케네스 로고프의 <이번엔 다르다>(최재형·박영란 옮김, 다른세상 펴냄) 그리고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위선주 옮김, 컬처앤스토리 펴냄)은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2008년 위기를 설명하며 동시에 위기 극복을 위한 나름대로의 처방과 함께 예상되는 사태 전개를 묘사한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은 그 저자들 자신만의 독특한 경제학의 관점에서 최근의 경제 위기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경제학 및 경제사상의 전반적 흐름 속에서 2008년의 위기를 바라보는 그런 책을 없을까? 여기 소개하는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이경남 옮김, 민음사 펴냄)이 그런 책이다.
존 캐서디의 <시장의 배반>의 원제목은 '시장은 어떻게 실패하는가?경제적 참화의 논리(How Markets Fail ? The Logic of Economic Calamities)'이다. 이 책의 목적은 경제학과 경제사상이 어떻게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관해 이해해왔고 또한 이해하는데 실패했는지, 그리하여 경제사상이 어떻게 오늘날의 글로벌 금융 위기를 낳았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자유 시장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흥망을 추적할 것이다. 그린스펀의 말대로 그것은 하나의 의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정교하고 총체적인 방식이다. 나는 사상사와 금융 위기의 설화와 해결책을 하나로 묶어 보려 했다. 최근의 사태는 그것이 전개된 지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11쪽)
딱딱한 경제 이론과 생동하는 저널리즘의 결합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와 2부에서 경제학과 경제사상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짚어준다. 그런데 수십, 수백 년 전에 죽은 경제학자들의 케케묵은 이론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경제학설사 책들과는 달리, 캐서디의 서술 방식은 결코 따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은 18, 19세기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의 삶과 사고방식을 설명할 때조차 그것을 21세기 초반의 엘렌 그린스펀과 로렌스 서머스(오바마 정부 최고 경제 자문) 등의 그것과 빗대면서 생생한 오늘날의 인물인 양 묘사하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이 갖는 최대의 장점은 경제이론에 대한 딱딱해지기 쉬운 설명이 생동감 넘치는 저널리즘적 묘사와 잘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인 존 캐서디는 옥스퍼드 대학교와 뉴스쿨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선데이 타임스>와 <뉴욕 포스트> 등에서 기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현재 <뉴요커> 경제 담당 기자이며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린스펀과 서머스의 사고방식과 발언에 대해 저자가 신문 기자로서 인터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있는 생생한 일화들을 경제학 및 경제사상의 맥락 속에서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동시에 그러한 경제 이론적 맥락이 어떻게 2000년대 초중반에 발생한 부동산 버블, 2008년의 버블 붕괴라는 현실 속에서 구현되어 나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저자는 경제학의 사상과 이론이 어떻게 역사적 자본주의의 실천 속에서 구현되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왜 실패했는지를 추적해 나가는 것이다.
경제학의 역사는 두 부류 경제사상의 대결
이 책은 애덤 스미스 이래 지금까지의 경제학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고 믿는 '유토피아 경제학'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시장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데 실패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실 기반 경제학이다.
전자에 속하는 개념 원리는 '보이지 않는 손'(애덤 스미스)과 '파레토 효율'(빌프레도 파레토), '일반균형 모델과 애로-드브뤼 정리'(레옹 발라 등), '텔레커뮤니케이션'(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통화주의와 선택의 자유'(밀턴 프리드먼) 등이다. '효율적 시장'(유진 파머)과 '초합리적 인간-컴퓨터의 합리적 기대와 정부 개입 무용성'(로버트 루커스와 로버트 배로)의 원리 등 역시 이러한 전통 속에 있다. 이 책의 1부는 이러한 유토피아 경제학의 원리와 개념을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그에 반해 자유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 실패의 영역을 지적하는 개념 원리로 저자가 소개하는 것은 '공공재의 경제학'(아서 피구와 프랜시스 베이토), '죄수의 딜레마와 게임이론'(존 내쉬와 폰 노이만), '숨겨진 정보와 레몬 시장'(조지 애컬로프), '미인대회와 비합리적 군중'(케인스와 로버트 쉴러, 안드레이 슐레이퍼), '금융 시장의 본원적 불안정성'(하이먼 민스키) 등이다. 이 책의 제2부는 이런 개념과 원리야말로 '현실에 기반을 둔 경제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경제학의 역사를 다루므로 결코 술술 읽히는 만만한 책은 아니다. 특히 경제학에 대한 기본 교양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1부와 2부는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역으로, 대학에서 원론 수준의 경제학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수많은 수학 방정식들의 고리타분함과 비현실적인 시장균형 타령에 답답함과 따분함을 느꼈던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확 뚫리는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예컨대 '파레토 효율'과 '에로-드브뤼 정리' 등의 개념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과 경제학적 논쟁의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 경제에 적용될 때 어떠한 한계에 직면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시원스럽게 지적해주기 때문이다.
위기의 자유시장 경제, 위기의 자유시장 경제학
이 책의 백미는 역시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는 3부이다. 3부에서 저자는 주류 경제학의 이론과 그 정책가들이 경제의 현실과 어떻게 충돌했으며 2000년대 초중반의 부동산 버블을 잉태하고 그것을 더욱 증폭시켰는지, 그리하여 2008년의 금융 위기를 왜 예측하지도 못했고 위기 발발 이후에도 허둥대며 속수무책으로 대응했는지를 '시장 실패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묘사한다.
여기서 저자는 앞의 1, 2부에서 묘사한 '정보의 비대칭성'과 '죄수의 딜레마', '비합리적 군중심리'와 '금융 시장의 본원적 불안정성' 등의 개념과 원리를 통해 2000년대 초중반에 미국에서 전개된 부동산 신용 버블의 창출과정을 묘사한다.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점은 2008년의 금융 위기는 결코 특정 인물들의 도덕적 해이 또는 탐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 특히 금융 시장과 같이 정보 비대칭성 및 인센티브 구조가 중요한 시장 영역에서 '자유시장' 논리가 지배할 경우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대규모의 '시스템적' 실패였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적 실패'의 배경에는 정보 비대칭성 하에서 발생하는 비합리적 군중심리와 죄수의 딜레마, 본원적 불안정성 등 금융 시장 '시스템의 본원적 특징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한 자유시장 경제사상의 실패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태보에 뒤흔들린 테크노마트
이 책에는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이 쓴 어려운 학술 논문의 내용들이 많이 소개되고 인용된다. 그런데 그 어려운 논문들을 얼마나 읽기 쉽게 소개하는지. 그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지난 해 7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 위치한 테크노마트 빌딩이 갑자기 아래위로 크게 흔들려, 건물이 곧 붕괴되는 줄 알고 모든 사람이 대피하는 난리를 겪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건물이 서 있는 지반에 문제가 있다는 둥 90년대에 무너진 삼풍 백화점처럼 중간 층의 기둥을 없애 버려서 그렇다는 둥, 뭔가 건물 자체의 구조적 결함에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진짜 원인은 어이없게도 그 건물 12층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수십 명이 동시에 하고 있던 '태보(Tae-Bo)' 운동이었다. 태권도의 발동작과 권투의 손동작, 에어로빅의 스텝이 흥겨운 댄스 음악과 어우러지는 운동 말이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겨우 수십 명의 동작 때문에 수십 층 건물 전체가 흔들린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렇지만 건축 전문가들은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태보 운동이 일으킨 진동의 주파수가 테크노마트 건물의 고유한 진동 주파수와 공명한 결과 공진동 현상이 발생했고 그 공진동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물리학에서 나온 공진동 개념을 가지고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붕괴를 설명한 것이 바로 한국인 학자인 신현송 프린스턴 대학 교수이다. 그는 2009년부터 2년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한국 정부의 글로벌 금융 위기 대책을 이끌기도 했었다.
이 책의 3부에는 우리나라의 테크노마트와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런던 템스 강의 한 다리 이야기가 나온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완공된 '런던 밀레니엄 다리'는 신축 이후 크게 다리가 흔들려서 곧 폐쇄됐다. 전문가들이 마침내 밝혀낸 근본 원인은 바로 공진동 현상. 불과 수백 명의 행인이 그 다리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진동이 발생했고 그 진동이 사람들을 하나의 획일적인 대응 몸동작으로 유도하면서 다시 새로이 같은 방향의 큰 진동을 발생시켰다.
그 결과 다리가 붕괴할 정도의 위력이 만들어졌다. 연구에 따르면 160명 미만이 다리 위에 있을 때는 어떤 위험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수치(역치)를 넘어서면 우려할 만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제어공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양의 피드백'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000년 당시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금융 시장의 취약성을 연구하던 신현송 교수는 금융 시장 역시 밀레니엄 다리처럼 붕괴할 수 있다고 논문에서 지적했다.
"다리 위의 보행자는 (금융자산) 운용을 조정하는 은행이고, 다리의 흔들림은 가격 변동이다. 사람들은 다양성을 원하지만 시장 가격은 피뢰침처럼 획일성을 강요한다. 이런 유형의 유동성 실패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 유동성이 일정 역치 이하로 떨어지면 (기존에는) 안정성을 추진하는 선순환을 이루던 모든 요소가 (이제부터는) 힘을 합쳐 안정성을 훼손시킨다. (…)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 역치가 어디인가이다." (383쪽)
금융 취약성의 원인을 밝힌 신현송 교수의 논문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나 같이 경제학을 좀 아는 사람도 구하기 힘든 신현송 같은 전문적 경제학자의 어려운 학술 논문들을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게다가 저널리즘적인 에피소드까지 잘 섞어가면서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현실 기반 경제학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의 1, 2부는 주로 경제학 및 경제사상을 분석하면서 그러한 분석의 맥락 속에서 2008년의 금융 위기를 부차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에 반해 3부는 역으로 2008년의 금융 위기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을 본격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러한 역사 현실적 맥락 속에서 경제학 및 경제사상을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1부와 2부를 읽는데 힘겨움을 느끼는 독자라면 3부부터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앞부분을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첨언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내가 지금까지 읽은 경제학설사 책 중 가장 실감나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원인은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뛰어난 이야기 실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고국인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 런던에 정착한 하이에크가 1930년대 중반에 케인스와 공개적인 논쟁을 벌이는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그 짧은 에피소드를 읽는 것만으로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경제학적 견해가 어떻게 다른지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파레토와 애로, 드브뢰 등의 삶과 사고방식에 관한 에피소드들 역시 마찬가지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일반균형이론과 그 수학방정식 모델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더군다나 비판적 논평도 더불어서) 저널리즘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에선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더구나 저자는 뉴욕의 뉴스쿨에 재학하면서 진보적인 비판이론과 그것을 만든 학자들에 대해서도 박학하다. 예컨대 저자는 1980년대 한국의 진보 학계와 '386(486) 세대'에게도 많이 알려진 폴 스위지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의 저자)와 해리 매그도프 (<제국주의의 시대>의 저자) 등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1980년대 이래 미국에서 나타난 금융 주도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비판적으로 묘사했는지에 관해 여러 에피소드들까지 곁들이며 재미있고 적절하게 소개한다.
2008년 시작된 이래 지금 이 순간에도 대 불황(Great Regression)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작년 가을에 시작된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에서 보이듯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 자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신자유주의와 자유시장 이념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학과 경제사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맨큐의 경제학 교과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 강의를, 그 대학 학생들이 보이콧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새로운 대안적인 경제사상을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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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와 복지국가(정승일 강연)

 

"최악의 공황이 온다…우린 정말 재수 없는 세대"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 2012-05-24 오후 12:05:19)
[강연] 정승일,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강좌에서 김상조 등 정면 비판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은 23일 저녁 '세계 금융 위기, 왜 발생했고 왜 계속되는가'라는 주제로 서울 마포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에서 강연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하는 연속 강좌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중 첫 번째 강연이었다. 이날 정 연구위원은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1997년 말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그리스 문제 등을 비교하며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경제 위기는 대공황이며, 그 후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말 재수 없는 세대"라고 말했다. 이번 위기에 대해 정 연구위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제 2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정 연구위원은 "대공황이 시작된 건 1929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전개된 건 (그로부터 4년 후인) 1933년"이라며 지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타격을 입었던 세계 경제가 안정되는 듯하다가, 최근 그리스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다시 출렁이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그리스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든 아니면 유로존에서 탈퇴하든 반드시 크게 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했다. 1997년 타이부터 한국까지 연달아 무너지며 동아시아 금융 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유럽에서도 만약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그리스 같은 상황이 된다면 큰일이 터질 것이라는 말이다.
정 연구위원은 "쓸데없이 공무원이 많고 복지가 과다하고, 그래서 망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그리스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이야기를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것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그리스 국채를 사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를 도와줘야 한다는 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독일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단 그리스의 불부터 꺼주고, 그 다음에 장기적으로 구조 개혁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 정 연구위원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1990년대 한국의 경험을 반추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국제통화기금을 비판했다. 삭스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일하는 진보적인 학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다. 그런 삭스조차 금융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당시 삭스는 국제통화기금을 향해 '너희가 해야 할 건 불난 집에 가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소방수 역할이다'라고 비판했다. 극장에서 불이 났을 때 조용히, 차분하게 끄는 게 아니라 불이야라고 소리부터 지르면 수백 명이 압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7년에도 국제통화기금 뒤에 있는 미국이 조용히 400억 달러를 한국 정부에 꿔줬으면 (외환위기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 연구위원은 "(역사적으로) 금융 위기의 패턴은 같다"고 진단했다. 금융 시장을 대폭 개방하면 흥청망청 달러 자금이 들어오고 그 결과 거품이 생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하면서 첫 번째로 은행을 국유화했다. 대통령 산하 은행을 만든 것이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 들어 은행이 본격적으로 민영화됐다. (…) 김영삼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한 통제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한국의 은행들이 뉴욕이나 런던에 지점을 만들고 외국에서 (대규모로) 돈을 꿔오기 시작했다. 박정희 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은행들은 그때 봉이 김선달 식으로 장사를 했다. 외국에서 싸게(금리 3퍼센트 수준) 돈을 꿔서 한국에서 높은 금리(대출 금리 10%대)로 빌려줬다. 은행뿐만 아니라 종합금융사들도 그렇게 했다. 그 결과 외채가 급증했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400억 달러 수준이던 것이 말기에는 14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중 400억 달러를 막지 못하면서 국가 부도가 난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 대목에서 "외환위기의 원인은 금융 시장을 마구 개방한 것이며, 그 책임을 재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IMF 위기가 터진 후 재벌의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삼성, 대우 등 재벌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때문에 금융 위기가 터진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자유주의 경제학이다. 탐욕의 과잉을 하느님, 즉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처벌한 것이라고 보는 방식이다. 그런데 (IMF 위기가) 재벌의 탐욕이 넘쳐서, 혹은 관료가 정경유착을 해서였다면 이승만, 박정희 때는 왜 안 터졌나."
정 연구위원은 "요즘 그리스에 대해 복지 과잉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듯이, IMF 위기 때 한국에서는 복지가 없었으니 재벌과 관료의 탐욕을 비난했던 것"이라며 경제 문제를 도덕 이론으로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금융 위기를 막으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주먹, 즉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 개입에 부정적인 주류경제학자들을 비판했다. 아울러 금융 시장에 대한 통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규제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박정희 정권 때) 은행들의 외환 도입을 통제하던 경제기획원이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없어졌다. 그 후 해외에서 돈을 꿔오는 걸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다. 100퍼센트 확신한다. 만약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박정희 체제 타도'라는 명분으로 경제기획원을 없애지 않았다면,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지 않고 금융시장도 (대폭) 열지 않았다면 1997년에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이) 박정희 때로 돌아가면 안 되지만, 그 시기에 잘했던 요소들은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체제를 연상시키는 것들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을 돌아보며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연구위원은 김상조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 "정운찬의 제자들"을 거명하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한국 정부는 자본을 투입해 은행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박정희 때로 돌아간 것이다. 이때 경실련과 참여연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은행 국유화에 반대했다. 진보 쪽이 원하는 게 관치경제를 철폐하고 박정희 체제를 없애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은행 국유화를 빨리 해소하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어디에 은행을 팔 수 있었겠나. 그래서 해외 매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막강했던 그 시민단체들은 매각 과정에서 노코멘트(No comment)를 했다.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이게 무슨 진보인가.
당시 대우도 전체가 국유화됐다. 즉 산업은행 소유가 됐다. 그런데 이걸 매각할 곳이 국내에는 없었다. 그래서 외국에 판 것이다. 대우자동차는 헐값에 GM에 넘어가지 않았나. 쌍용자동차도 중국에 팔리고, 그래서 22명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걸 가지고 요즘에 경제 민주화 이야기하는 분들이 '쌍용차 봐라. 재벌 때문에 저런 것이다. 그러니 경제 민주화를 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난 당신들이야말로 쌍용차를 저렇게 만든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에 터진 '카드 대란'과 관련해서도 정 연구위원은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거세게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에 (카드사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으려 하다가 나중에 투입했다. 그냥 놔두면 (카드사는 물론) 은행까지 파산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갖고 (지금의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게 왜 카드사들을 살려주느냐. 이건 재벌 도와주기 아니면 관치금융이다'라고 비판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이야기다. 왜 정부가 불을 끄는 것도 못 하게 하나. 대공황이 터졌을 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폭풍은 사라지고 불황은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폭풍우는 언젠가 끝날 테니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였다. 경제 민주화론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럴 거면 경제학자들이 왜 존재하나. 어떻게 하면 폭풍우를 뚫고 갈 것인지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재벌과 투기자본, 뭐가 더 나쁜가?" (프레시안, 김윤나영 기자, 2012-06-01 오전 10:42:46)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강연] 이종태 "복지국가냐, 주주자본주의냐"
"민영화는 나쁘다. 그 중에서 공공부문이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가는 경우는 최악이다. 그나마 국내 재벌기업에 넘어가는 것은 차악이다. 그런데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재벌기업 민영화'는 극렬히 반대하면서 '투기자본 민영화'에는 침묵한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한 말이다. 국내 재벌들이 적어도 '지속가능한 기업경영'을 고려하는 것과는 달리, 기업의 존폐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주주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투기자본은 국내 사회·경제에 최악의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정 연구위원이 재벌개혁보다는 주주자본주의 규제를 강조하는 이유다. 
이종태 <시사IN> 기자는 최악의 민영화의 예로 최근 요금 인상 논란을 불러일으킨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을 꼽았다. 이 기자는 "아무리 지하철 요금을 올려줘도 메트로 9호선의 경영 상황은 절대 개선될 수 없다"면서 "메트로 9호선의 부실기업화는 주주자본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메트로 9호선의 수익이 주주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메트로 9호선은 자본금인 1671억 원보다 3배가량 많은 5000억 원을 대출받았고, 적게는 6%에서 많게는 15%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를 물면서 '부실기업화'의 수순을 밟았다. 2009년 개통 이후 메트로 9호선이 기록한 순손실 1634억 원 가운데 대출 이자비용은 무려 1000억 원에 이른다.
메트로 9호선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이자를 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메트로 9호선의 금융계 주주가 곧 채권자들이기 때문이다. 메트로 9호선의 주주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사, 신한은행 등은 메트로 9호선 운영에 필요한 자본금 5000억 원을 '투자'하는 대신 고금리로 '빌려주기'로 결정했다.
주주들이 메트로 9호선의 순이익을 늘리는 데 관심이 없는 이유에 대해 이 기자는 "메트로 9호선에서 순수익이 발생하면 주주들은 법인세를 제하고 줄어든 배당을 받아야 한다"며 "반면에 적자라면 수익이 없는 만큼 메트로 9호선은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고, 주주들은 고금리 대출이자를 통해 메트로 9호선이 내지 않은 법인세를 포함한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자는 "문제는 이처럼 기업의 지속가능성에는 관심이 없는 주주자본주의가 전 세계가 돌아가는 법칙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 입장에서 투자자들은 그저 외부인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고용창출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했던 분위기도 1970년대를 전후로 오로지 주주에 대한 봉사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확산, 기업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 외주화 증대 등 신자유주의적인 변화가 이뤄졌다고 이 기자는 지적했다.
이 기자는 "정태인 원장, 이병천 교수는 금융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 현상의 단지 일부로만 간주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나를 비롯한 <선택>의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을 주주자본주의, 혹은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인) 금융자본주의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가 태양계라면 금융자본주의는 태양계의 핵심인 태양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등의 현상은 태양을 둘러싼 행성들이다. 그런데 정태인 원장은 (금융자본주의가 아니라)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등의 현상을 묶어 신자유주의라고 본다. 그러면서 '재벌 규제 방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설립, 최저임금 인상, 하청기업의 집단교섭권 부여,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소비자 권리 강화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 원장이 제시한 '재벌 규제 방안'조차 금융자본주의를 규제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선택>의 저자들에 따르면 금융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며, 지속가능한 체제를 위해서는 금융이 경제를 지배하는 구조를 깨고 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들은 더 나아가 금융자본주의를 규제하지 않고는 다른 사회·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선택>의 저자들이 주주가치에 기반을 둔 운동인 '소액주주 운동'에 비판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소액주주 운동이 금융자본주의 체제에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과 관련해 정태인 원장은 <프레시안> 기고에서 "금융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가 양극화의 근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원장은 "<선택>이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며 "과연 경영권을 보호해주면 재벌들이 배당금을 줄여서 투자를 늘리고 하청단가도 올려주며 노동자 임금도 끌어올릴까"라고 반문했었다. 정 원장은 또 "한 국가에서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는) 효과를 낼 뾰족한 정책은 별로 없다. (다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규제 강화의 진행에 맞춰 주주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시정해야 한다"며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정책, 외환보유고 관리 정책을 사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을 소개하며 이 기자는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정책을 쓰는 것은 자본통제보다 어렵고 시간도 더 걸린다"며 "동아시아 공동 환율정책이 이뤄질 때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자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정 원장을 비판했다.
강연이 끝나자 청중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주주자본주의 규제' 방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답변에 나선 정승일 연구위원은 기업을 안정적으로 꾸릴 만한 경영자나 창업자에게 이를테면 '1주10표'를 주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1주 1표밖에 허용이 안 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1주 1000표인 주식도 발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 상장하기 전 주식을 발행할 때,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20% 지분을 갖더라도 의결권을 60% 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면 주커버그는 60%의 의결권에 대한 주식을 시중에 매각하지 않고 1주 1표짜리만 매각하면 된다. 창업자 프리미엄이 발동하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삼성그룹을 예로 들며 "삼성의 주주 중 80%가 마음만 먹으면 주주총회에 와서 이건희 회장을 몰아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이건희 회장이 대주주 행세를 하면서 주가를 올리고 주주들의 배당금을 높여줬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1주 10표제가 법률로 허용되면 이건희 회장은 주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배당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자가 주식을 매입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런 식으로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가 언급한 '메트로 9호선' 사례에 대해서도 정 연구위원은 "오스트리아나 영국에서처럼 민영화하더라도 황금주 제도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주란 단 1주를 갖고도 적대적 인수합병 등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으로, 주로 정부가 보유한다. 그는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면 서울시가 주식을 많이 안 가져도 메트로 9호선에 대한 의결권을 50% 넘게 만들 수 있다"며 "한국에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국제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종태 기자는 "대기업 계열사 해체와 약화에 반대하는 <선택>의 입장을 재벌 옹호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며 "<선택>의 문제의식은 주주자본주의와 재벌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주자본주의와 복지국가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 계열사들을 해체해서 국내 대기업에 대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을 높인다면, 친노동·친중소기업·복지 정책들은 실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사회민주주의냐 진보적 자유주의냐 (프레시안, 한창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06-11 오전 9:12:02)
[강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세 번째
요즘 언급되는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재벌개혁이다. 그렇지만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이에 정승일 박사는 "참된 경제민주화의 궁극적 목표는 평범한 사람들, 국민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는 복지국가의 구축으로 넓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재벌개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이 바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시간 단축, 청장년 실업자·미취업자 문제의 해결 같은 '노동민주화'라는 것이다. 또한 대학생이 직면한 살인적인 대학등록금 문제와 주거난 문제를 해결하고 600만 노인들의 노후 생존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역시 참된 경제민주화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시급한 일들에 비해 왜 재벌개혁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정 박사는 아울러 힐난했다.
더구나 정 박사에 따르면 "재벌개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는 바, 모든 개혁은 그 개혁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재벌개혁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가 미국 월스트리트 유형의 주주자본주의를 만들겠다는 건지 아니면 스웨덴 유형의 복지국가인지를 만들겠다는 건지를 분명히 해야 경제민주화의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 박사는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즘 등이 모두 자기 나름의 경제민주화론을 펼쳐왔다"며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운위되는 경제민주화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민주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왜 자유주의만이 유일한 경제민주화냐는 반문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결국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하는 사상이며, 따라서 신자유주의와 큰 차이가 없고, 이 점에 관한 한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 역시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정 박사는 <선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경제민주화론 중에서 우리 국민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고 압축했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보수와 진보에서 모두 자유주의가 지배하여 왔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공병호와 전경련·모피아, 김영삼·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보수적 자유주의이고, 또한 김상조·정태인과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아울러 "진보적 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한국 진보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경제민주화의 프레임 즉,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한국 진보가 국민들에게 제시할 국가 비전으로 선택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민주화로써 그가 제시하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한편으로는 사기업과 시장 경제가 인정되어 재벌계 대기업이 큰 역할을 하며 경제가 대외 개방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비와 생활비가 전액 무상이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여성복지와 노인복지, 건강·의료 복지 혜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시간이 짧고 비정규직 문제가 거의 없다. 노동자 개인과 노동조합의 권리 수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소비자 협동조합과 주택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 역시 매우 발전해 있다.
정 박사는 정태인 원장과 이병천 교수 등이 복지국가를 '사회복지의 확대'로만 한정시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 박사는 "사회복지의 확대(즉 보편적 복지의 확대)만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며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큰 두 영역에서 진정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먼저 노동 영역에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며, 그 핵심 목표는 개인과 개성의 해방, 즉 실질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과 개성의 창조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보수적, 진보적 자유주의가 모두 강조하는) '자유 시장'이 아니라 적극적 국가개입 즉, 복지국가적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두 축으로 하는 종합적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하지만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자본 영역의 경제민주화도 필수적인 바, 그 핵심 목표는 자본(금융과 산업·기업)으로 하여금 이기적인 수익성 추구와 사적 부의 축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와 기술혁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라며 자본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울러 강조했다. 이 점에 관한 한, 복지국가는 '자본을 국가적으로 통제한' 박정희 경제체제로부터도 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을 배워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자본을 어떤 방법으로 통제할 것인가? 하나는 완전경쟁(공정경쟁) 시장을 만들어 '시장의 규율이 기업을 통제'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즉 대기업과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잘게 쪼개어 수만 개의 중소벤처기업, 수천 개의 독립 대기업을 만들어 그들끼리 치열하게 (무한)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 및 재벌기업의 대주주(오너) 소유 지분 역시 잘게 쪼개어(이른바 '자산재분배')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상조·정태인·유종일 등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말하는 재벌개혁이다.
그에 반해 정 박사는 "우리나라가 미래형 첨단 제조업을 대규모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런 식으로 대기업과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잘게 쪼개고, 게다가 대주주 소유 지분 역시 잘게 쪼개어 '시장 규율과 주식투자자 규율이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보다는 '불완전 경쟁'의 존재와 대기업 및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의 존재 이유 및 이들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사회민주화의 원리에 맞는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 박사는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려면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통해 서민들의 직업과 생계를 안정시키는 것도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자본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를 통해 민간 기업들이 왕성하게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나서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한편으로는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모방하여 친노동, 친서민적인 노동-복지정책을 대폭 강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외환금융시장에 대한 국가적 통제와 주주자본주의 통제, 대기업 및 중소 벤처기업과 협력하는 선별적 산업정책과 같은 박정희 체제의 유산과 전통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신성시하는 '공정 경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정경쟁을 사실상 완전경쟁 시장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만약 1970-1980년대에 완전경쟁 시장을 추구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준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박정희에서 노태우에 이르는 30년 동안 한국은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대한 수입 제한, 달러화 유출입 통제 등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자본과 시장에 대한 국가적 통제 정책)을 펼쳤는데, 이것은 사실상 불공정, 불완전 경쟁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즉 한국은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정 박사는 "복거일과 공병호, 안병직 같은 뉴라이트 논자들은 마치 박정희 체제가 자유주의 체제였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만약 박정희가 뉴라이트 인사였다면 1970년대부터 FTA를 했을 것이고, 그 경우 오늘날의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정 박사는 "박정희에서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 이르는 반(反)노동, 반(反)시장, 친성장(성장지상주의)의 경제 정책 중에서 한국의 진보 세력이 앞으로 계승해야 할 긍정적 요소가 바로 '반시장, 친성장적인 국가의 통제'였다"고 재차 강조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관리와 통제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 역시 그러한 국가 통제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 박사는 "박정희식 경제체계의 두 축은 '반노동'과 '친성장' 정책이다"라고 분석했다. 우선 박정희 체제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로 상징되듯이, 철저한 반노동 체제였음이 분명하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정 박사는 자신과 장하준 교수가 박정희 체제의 반노동적 성격에 눈을 감았다고 비판한 이병천 교수의 지적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비판'이라고 아울러 덧붙였다.
하지만 박정희 체제의 친성장주의는 곧 '친자본'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박정희식 경제체제는 친성장 체제(성장 지상주의 체제)였지, 반드시 친자본 체제는 아니었다는 것이 정 박사의 평가다. 예컨대 1970년대 당시 현대그룹이 새로 진출한 자동차나 조선 같은 중공업은 통상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약 10년 정도를 필요로 하며, 이 기간 동안은 수익이 나지 않는 무모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정책적으로 정주영 같은 재벌 오너들에게 정책자금을 지원하면서 투자를 거의 반강제했다. 자본주의 "기업"의 제1원리는 "이윤(수익성)"이지 "경제성장"이 아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10년 동안 수익도 나지 않을 대규모 투자를 국가적으로 강제하면서까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목적으로 했던 반시장주의, 반자유주의 정부였던 것이다.
이에 정 박사는 "우리나라도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고 발전시키려면 기업들이 왕성한 설비투자와 기술투자를 지속해야 하고 수백만 개의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신규로 창출해야 한다"며 "만약 금융시장(증권시장)과 기업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이러한 일을 꺼린다면, 그들에게 '족쳐서라도(강제해서라도)' 그런 일을 하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박사는 "우리가 <선택>에서 주장했던 것은 박정희 체제의 이런 일부 경제 정책 요소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지, 박정희 정권 그 자체를 찬양하거나 박정희 시기에 있었던 정책들을 모두 지지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자신들을 향해 많은 진보 인사들이 '박정희 체제를 찬양'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데 대하여, '헛다리짚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의 목표로 제시한 복지국가와, 민주화를 억압한 독재정권인 박정희 체제 사이에 그 무슨 친근성이 있다는 것인가? 정 박사는 스웨덴의 사례를 들었다. 사회민주당이 무려 70년 동안이나 장기 집권한 스웨덴은 전후 수십 년간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을 우리나라의 박정희식 경제체제와 같이 엄격하게 규제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후반에 이러한 규제를 대폭 폐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 부동산 거품이 크게 만들어지면서 1992년 대규모 금융위기를 겪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박세일 사단(자유주의 그룹)'의 의견에 따라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대대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후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사령탑'인 경제기획원이 1994년 해체되고,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면서 가입의 선결 조건으로 요구 받은 외환금융시장의 개방과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1997년 말에 외환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영삼 정부가 표방한 '자유주의(세계화 정책)'가 친노동이었던 것도 아니다. 박정희 경제체제의 핵심이 반노동과 친성장(반시장)이었다고 한다면, 김영삼 정부는(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인데) 반노동, 친시장(친자본)이었다. 게다가 정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에 이어 출범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반노동, 친시장(친자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였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크게 활약한 이른바 '정운찬 사단(진보적 자유주의 그룹)' 역시 '박세일 사단'과 대동소이한 친시장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하여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는 20년간의 '자유주의의 시대'에 박정희 체제의 반노동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박정희 체제의 '친성장주의, 반시장주의'의 요소들은 계속 파괴되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 오히려 민주정부 기간 동안 그 이전에 비해 경제 성장이 잘 안되고 빈부 격차는 군부독재 시절보다도 훨씬 심해졌다. 이런 식의 경제민주화를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계속하겠다고 하는 것이냐고 정 박사는 반문했다.
한국의 경우 북유럽, 특히 핀란드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박정희식의 은행 국유화와 선별적 산업육성정책, 대기업-재벌그룹(노키아그룹) 육성 등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라 불리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1960년대에 집권한 핀란드 사회민주당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 관치경제와 재벌그룹 등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우선 청산되어야만 비로소 그 바탕 위에서 복지국가 만들기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얼마나 헛다리를 짚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핀란드의 사례라고 정 박사는 말했다.
복지국가에서도 역시 소득의 단순 재분배(2차 분배)와 좁은 의미의 사회복지는 만능이 아니다.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를 통해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와 꾸준한 경제성장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복지국가의 유지에 필요한 엄청난 재정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에 정 박사는 "복지국가에 필요한 주요 재원인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도 자본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통제를 통해 달성되는 왕성한 생산적 투자와 경제성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옹호한다고 하여 그것이 반생태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이에 정 박사는 "경제성장과 함께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최고 수준의 복지가 달성되어 대다수 국민들이 당장 아등바등하는 삶에서 벗어나 훨씬 여유로워지면 독서와 문화, 교양을 통해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것이 대폭 확산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생태나 환경이 인류 공동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태주의적 자각이 크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력 발전소 폐기가 유별나게 스웨덴과 독일 같은 복지국가들에서 보수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크게 지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생태환경적 자각이 친노동 복지국가가 된다고 하여 저절로, 자동적으로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복지국가 운동 역시 친생태 계몽운동과 함께 생태주의 운동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덧붙였다.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 (프레시안, 한창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06-20 오전 7:42:53)
[강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네 번째
재벌개혁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되어온 주제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재벌 위주로 돌아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특히 재벌 가족들의 편법 상속이나 재벌그룹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같은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재벌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중론이다.
문제는 재벌개혁이 잘못 진행될 경우 '아니함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마구잡이 재벌개혁은 자칫 우리나라 최대기업들의 소유지배 구조를 뒤흔들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와 투기자본들만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잘못된 방향의 재벌개혁이 자칫 '죽 써서 개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정승일 박사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1주일 전에 이병천 교수가 <프레시안> 지상에서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는 제목의 긴 글을 쓴 것에 대해 "재미있는 제목의 글을 쓰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전에 이병천 교수에 대해 장하준 교수와 정 박사가 '재벌가문(총수 일가)과 재벌그룹(제도)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반박하자, 이병천 교수는 재벌이라는 것은 재벌 총수가문과 재벌 그룹 기업들이 한 몸으로 엮인 것이므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재벌 총수를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재반박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정 박사는 이병천 교수의 글 제목을 얘기하면서, "재벌 총수를 재벌 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실효적으로 떼어놓는 데는 수십 가지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재벌그룹이 파산할 경우 당연히 재벌가족을 재벌그룹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재벌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통념이 강했다. 하지만 IMF 사태와 그에 따른 재벌개혁 과정에서 많은 재벌그룹들이 파산하고 해체되었다. 정 박사는 "1997년 이전에는 흔히 30대 재벌그룹을 말했다. 그렇지만 그 30대 재벌그룹 중 1/3이 그 이후 해체되었다. 실질적으로 온전히 생존하여 재벌그룹 형태를 유지한 것은 과거 30대 그룹 중 1/3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30대 재벌이 아니라 10대 재벌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어 통합진보당이 실질적인 재벌해체를 지난 3월 공약으로 제시한 데 대해서도 "재벌해체가 별로 진보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30대 재벌그룹 중 1/3가량이 해체되고 1/3가량은 형체만 남은 1998년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는지 잘 생각해보면 된다"고 충고했다. 재벌해체의 결과 대우자동차가 GM에 매각되고 쌍용차는 상하이차에 매각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또한 딤채 냉장고를 만드는 위니아만도(과거 한라그룹)와 오리온전기(과거 대우그룹)는 투기적인 영미계 사모펀드에 팔려 조각조각 해체되어 청산되었거나 지금도 그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재벌 해체론자들이 원하는 것이 이렇게 재벌 기업들이 해체되어 산산조각 나서 외국에 매각되거나, 본래 기업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인지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
정승일 박사는 "대우그룹, 쌍용그룹, 해태그룹 등이 부도난 후 채권은행들이 그 그룹 및 계열사들의 주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병천 교수의 표현 그대로, 재벌그룹으로부터 재벌총수 및 그 가족들이 생이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병천 교수 역시 그룹 체제가 갖는 장점은 인정한다고 한다. 단독의 독립 대기업 체제보다는 대기업들로 구성된 그룹경영 체제가 선진국 추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정 박사는 "채권은행들이 재벌 가족을 대신하여 그 그룹들의 대주주 노릇을 하면 된다. 그런데 왜 그것이 안 되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 박사는 대우그룹의 예를 계속 들었다. 대우그룹의 경우 먼저 1단계에서 채권은행단을 대표하는 당시 산업은행과 제일은행이 대주주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이다. 채권은행들은 대우그룹이 거느리던 계열사들을 하나둘씩 매각하기 시작하였다. 왜 제일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은행들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면 안 되는 걸까?
정 박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알려면 이른바 '금산 분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 분리의 역사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는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적된 모건(Morgan) 은행에 철퇴를 내리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상업은행은 일반기업(산업자본)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일반기업의 부실화 위험이 그대로 은행의 부실화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벽 설치 차원에서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은산 분리(은행-산업자본 분리)는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조치가 아니었을까?
정 박사는 이에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스위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미국의 조치를 따르지 않았다. 예컨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의 다임러와 벤츠 자동차가 파산하였고 도이체방크라고 하는 채권 은행이 이들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당시 무수히 많은 독일 기업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도이체방크는 다임러-벤츠의 대주주 역할을 회사가 정상된 이후에도 계속 수행하였다. 그 이후 70년간 계속 수행했으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다임러 그룹은 한국 재벌그룹처럼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해서, 자동차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항공과 IT, 철도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다양한 계열사들도 가지고 있었다.
독일만이 아니라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은행들이 은산 분리 원칙이 매우 엄격한 미국에 비해 더 금융위기(은행위기)를 겪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금산 분리(은산 분리)라는 원칙이 지고지순의 절대 원리가 아니라는 증거다.
정 박사는 "글래스-스티걸 법과 같은 엄격한 은산 분리 원칙을 지키는 선진국은 미국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세력조차 미국식 제도를 우상처럼 숭배한다"고 힐난했다. 한국에는 미국의 글래스-스티걸 법의 원칙이 은행법에 들어와 있고 따라서 시중은행이 비부실 기업(워크아웃 등을 졸업한 정상 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단,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 특수은행은 예외적으로 대주주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개혁적 진보 세력은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할까? 대표적인 진보개혁 경제학자인 김상조 교수는 "은행들이 산업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이른바 '독일식 은행 자본주의'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은행들은 독일·스위스 은행들과 달리 독자적인 기업여신 심사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의 은행들이 독일과 스위스의 은행들과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관치금융의 관행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진보개혁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한국 시중은행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깔려 있다. 즉 한국의 은행들은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부실화된 대기업들에 제공되는 구제금융에서도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관치금융을 이유로 은행의 대주주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김상조와 유종일 등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요구한 조급한 은행 민영화와 그 결과인 은행들의 주주자본주의화로 인하여, 은행들에 있어 고객 기업의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평가하는 심사능력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은행이 고객 기업의 대주주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제대로 된 기업통제, 기업감독 역할을 수행하려면 제대로 된 산업전문가와 업종 전문가들이 은행 조직 내에서 조직적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처럼 단기수익성 위주의 주주중시 경영으로 은행들이 운영될 경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 박사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관치금융 비판과 조급한 은행 민영화 요구야말로 우리 은행들에 있어 기업 대주주 역할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데 단기수익성 위주의 경영은 모피아 경제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로 정부가 부실은행들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국유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은행 국유화 체제를 영구화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시 그 '민주정부'들은 은행 민영화에 주력했으며 민영화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의 주가 올리기에만 주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국유 은행들조차 부실 재벌그룹들, 예컨대 대우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계속 수행할 의지가 없었다. 단기수익성과 주가 띄우기에 방해가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튼 지난 반세기도 넘게 유지되어온 은산 분리 원칙을 갑자기 한국에서 폐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 박사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은행계 산업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시중 은행들이 보유한 대주주 지분을 그 산업 지주회사에 이전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예컨대 현재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는 건설업체와 조선업체들의 경우, 그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산업 지주회사를 신설하고 그 지주회사를 통해 정상화된 건설사 및 조선사들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때 우리은행이 그 지주회사에 대해 대주주 역할을 하는 데서 발생하는 은산분리 원칙 침해에 대해서는, 은산 분리에 관한 은행법에 예외 조항을 신설하여 은행계 지주회사에 한해 허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 그룹 계열사의 부실화 위험이 은행 부실화의 위험으로 전이될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 박사는 "그런 위험 전이의 가능성은 그 중간에 있는 산업 지주회사가 제대로 된 차단벽 역할을 수행하도록 잘 설계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놀라운 것은 스웨덴 최대의 재벌그룹이며 한국 재벌의 개혁방향으로 흔히 거론되는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이 사실상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SEB라고 하는 은행이 설립한 은행계 지주회사(holding company)로 출발한 Investor AB라고 하는 지주회사가 발렌베리 그룹의 핵심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핀란드에도 이런 은행계 기업그룹들이 여러 개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재벌 그룹 계열사들이 부실해져 파산하였을 경우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우량 재벌그룹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삼성그룹이나 현대기아차 그룹 같은 우량 재벌그룹에서 재벌가족을 그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떼어놓을 수 있을까?
정 박사는 삼성그룹의 사례를 들면서 "삼성은 누가 보아도 편법적인 방식의 상속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5년경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 4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재용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불과 16억 원만을 상속세로 냈다. 현행법상 상속재산의 50%인 2조를 냈어야 했다. 정 박사는 "이런 경우 '재벌과의 타협'은 있을 수 없으며, 이건희 회장은 몇 년간 감옥에 들어가 조용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박사는 그렇지만 "만약 이건희 일가가 상속세를 법규대로 50% 납부한다면, 가뜩이나 쥐꼬리만 한 이건희 일가의 대주주 지분은 그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면서, "삼성그룹 전체의 결속력을 유지해온 대주주 지분이 이렇듯 더욱 줄어들게 될 경우, 국내외의 주식투자 펀드들과 투기자본들이 더욱 설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에 대해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그런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정 박사는 "이때 시장 논리란 바로 주식시장 논리와 M&A 시장 논리를 말한다"고 평했다. 또한 "주식시장과 M&A 시장은 주가 가치 극대화 논리를 따르는 법이며, 따라서 이 경우 삼성그룹을 쪼개고 해체하여 '매각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장 논리가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정 박사는 "이 경우 삼성전자 같은 초대형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이 국내 자본에게는 힘에 부치기 때문에 결국은 해외 자본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LG전자가 삼성전자를 인수하는 것 역시 독점 금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박사는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여타 계열사들은 과거 국민의 혈세로 육성한 기업들이다. 왜 이런 소중한 기업들을 해외 자본에 매각하려야 하는가?"라고 아울러 반문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삼성그룹 해체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의 편법 상속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도 없지 않는가? 이에 정 박사는 재벌가족들의 경영권 상속(대주주 지분 상속)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일가가 국세청에 현물(주식) 형태로 납부한 상속세를 시중에 매각하여 현금화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 현물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그 주식지분을 보유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지주회사를 신설하거나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만약 이런 방안이 전면적으로 실시될 경우, 삼성그룹의 핵심 대주주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함께 국가(민주공화국)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부분적이지만 생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재용으로부터 그 후손에게로 다시 상속될 때마다 국가는 상속세로 획득한 지분의 보유를 확대할 것이며, 따라서 언젠가 국가는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가 될 것이다. 즉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30대 재벌 특별법을 시행하여 이런 방식의 현물 상속세를 30대 재벌그룹에 적용하게 할 경우, 국가는 앞으로 수십 년 뒤 30대 재벌그룹의 최대 주주로서 그 재벌 그룹들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정 박사의 가설이었다.
정승일 박사는 "이와 같은 방안은 현재의 상속증여세와 여타 법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시행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즉 '국유화'라는 명칭에서 연상되는 엄청나게 급진적인 방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국가지주회사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에 관한 법을 새로 제정하여 그 기관이 위와 같은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방안은 대기업 그룹의 점진적 국유화라는 재계의 비난과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타협안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재벌가족의 상속 지분을 국세청에 납부하지 않고 공익재단에 기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익재단의 지배구조와 운영을 해당 재벌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방식으로, 그야말로 공익적 인사들에 의해 수행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는 이건희 가문에서 점진적으로 수십 년에 걸쳐, 그 공익재단으로 이전될 것이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이건희 가문이 점진적으로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정 박사에 따르면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이 현재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발렌베리 그룹 소유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최대 주주는 발렌베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그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는 여러 개의 공익재단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50년 전에 시작된 발렌베리 가문은 그간 5회가 넘는 재산 상속을 했는데, 그때마다 상속세를 납부하는 대신 여러 개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그 재단에 자신들의 상속 지분을 현물로 기부했다.
그 결과 오늘날 공익재단은 발렌베리 가문을 제치고 Investor AB의 최대 주주이다. 물론 그 공익재단의 수익금은 역사와 언어학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연구비로 쓰이고 있으며, 발렌베리 가문 일가에는 단 한 푼도 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다. 단, 그러한 기부에 대한 대가로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그룹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이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가족원들은 Investor AB에서 적은 지분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 경우, 경영 능력이 떨어지는 무능한 후계자들은 그 지주회사의 경영 일선에 CEO로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사장(chair man) 또는 한갓 이사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무능한 재벌 3세, 4세 경영'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정 박사는 아울러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 박사는 한국의 경우 기업집단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정 박사는 "나는 2006년부터 이미 기업집단법의 필요성에 관하고 말하고 써왔으며, 요즘에는 김상조 교수와 정태인 원장 등도 그것에 동의하는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집단법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정 박사는 이미 지주회사(holding company) 체제로 전환한 LG그룹과 그렇지 못한 삼성그룹을 비교했다. "LG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의 최상위에 있는 지주회사인 (주)LG가 상법상 주식회사다"라면서, 따라서 "(주)LG는 상장회사인 까닭에 공시의무도 있고,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 선임 의무도 있어 상당 정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삼성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 최상위에 있는 미래전략기획실이 아무런 법적 권위도, 법적 의무도 갖지 않는 임의 조직이다. 정 박사는 "따라서 미래전략기획실은 아무런 공시 의무도 없고, 그것을 감독하고 감시할 이사회도, 감사위원회를 구성할 의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래전략기획실은 투명성이라곤 전혀 없는 일종의 유령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에서 총수 황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기업집단법은 이와 같은 기형적인 현실을 타개하여, 미래전략기획실과 같은 그룹 경영 조직에 아예 상법상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면서 양성화,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장점은 먼저 미래전략기획실로 대표되는 그룹경영 조직을 감시하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상법상 의무화되고 또한 공시 의무도 부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삼성그룹 최상위 조직의 내밀한 활동을 감시하는 장치들이 합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 결과 삼성그룹의 편법 상속과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 등이 지금에 비해 매우 힘들어진다.
또한 현재의 공정거래법상 재벌규제가 모두 폐지되고 상법상의 재벌 규제로 대체되기 때문에 재벌들의 구명 로비가 매우 힘들어진다. 즉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의 재량권 여지가 많은 행정 규제가 아니라 사법부 판사의 판결에 따르는 상법상 규제로 재벌 규제가 획기적으로 재편되는 까닭에, 재벌 규제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대폭 향상된다는 것이 정승일 박사의 설명이다. 즉 사후적으로 계열사들에서 소액주주와 채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법부에 모기업 또는 미래전략기획실을 소액주주 또는 채권자가 고소·고발하고 그에 대한 판결을 공무원이 아닌 사법부에서 내리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기업집단법이 제정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무능한 재벌 3세, 4세는 경영 일선(그룹 CEO)에 나서지 말고, 후선(그룹 이사회 이사장)에 머무르게 하는 '책임 경영'이 명확하게 된다고 아울러 말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회장이 북치고 장구 치고 자기 마음대로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자신이 삼성그룹의 CEO인지, 삼성그룹의 이사장(chair man)인지 본인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미래전략실의 최고 경영자(CEO)는 최지성 씨가 맡고 예컨대 이재용은 미래전략실 이사회 이사장(또는 이사)으로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을 법률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업집단법이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 경우 재벌 가족은 재벌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몇 발짝 물러나는 것이고, 그만큼 재벌가족과 재벌그룹의 생이별이 진행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정 박사의 강연을 들은 일부 청중은 기업집단법에 대하여 "그렇게 되더라도 삼성그룹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차라리 출자총액제한 등의 수단으로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는 것이 더 낳은 대안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 기업집단법은 재벌그룹의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지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만약 삼성그룹이 항공산업과 제약산업 같은 미래첨단 제조업 쪽으로 신규 계열사를 만들고 그것의 육성에 전력을 다할 경우, 오히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성원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항공이나 첨단 소재, 제약 같은 미래 산업의 경우 향후 5년, 10년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며 더구나 그 기간 동안 흑자가 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그런 일에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거둔 혈세를 사용하느니, 이왕이면 삼성이나 현대차 같이 이미 돈 많이 벌고 있는 기업그룹들이 대신 해준다면 국민들로서는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 또는 현대차 그룹으로 경제력이 더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집중된 경제력(기업집단)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정승일 박사는 "경제력 집중 그 자체의 긍정성과 효율성까지 약화시키는 장치들(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해)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은행이나 국가, 공익재단과 같은 여타 이해관계자들이 삼성과 현대차 같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또는 최대주주로서 역할하게 하여 그 집중된 경제력(재벌그룹 권력)을 사회적·민주국가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경제력 집중의 방지·약화'(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한)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희에게 75% 소득세, 이걸 대선 공약으로"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 2012-07-05 오후 12:23:37)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강연] 정승일, '공급 고민하는 복지국가' 강조
"복지국가가 되면 성장이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2일 저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서울 마포구)에서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주제로 강연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한 연속 강좌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중 7번째 강연이다.
정 연구위원은 1929년 대공황이 터지기 전후의 역사와 오늘날의 위기를 비교했다. 정 연구위원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정말 재수 없게도 80년 전 세계 대공황 때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공황이 터졌을 때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점도 비슷하고, "전 세계 진보 세력에게 자유주의, 긴축 논리에 적절히 대응할 논리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1930년대 초와 닮았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200여 년간 자본주의를 움직인 핵심 사상이 자유주의"라고 말한 후, 이를 보수적 자유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로 구분했다. 정 연구위원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대처 전 영국 수상 등을 보수적 자유주의의 사례로 들었다.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진단했다.
"영어로는 social liberal이라고 한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케인즈다. 1910년대에 영국 자유당이 역사적인 변신을 했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자, 당 내에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처칠이 대표적이다. '자유, 시장 원리도 좋지만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1919년 자유당은 집권하자마자 누진소득세를 도입했다. (특수 상황인) 전시를 제외하고, 누진소득세로 복지를 하겠다는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이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젊은 케인즈 같은 이들이었다. 이런 사상이 (대공황 때)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로 넘어갔다."
이 대목에서 정 연구위원은 '경제 민주화론자'로 분류되는 진보 성향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정 연구위원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이종태 <시사IN> 기자는 <프레시안>을 통해 '경제 민주화론자'들과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social liberal 전통을 가져온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누진세와 복지를 강조한 건 몇 년 안 된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박정희 체제를 비판하고 시장을 강조했다. 케인즈 경제학을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국가 개입보다 시장을 강조하는 맨큐 같은 뉴케인지언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런 진보적 자유주의가 20년간 진보 세력을 이끌어왔다."
정 연구위원은 "김영삼·이명박 정부에서는 박세일·박형준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자유주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주도했다"며 "이 두 자유주의는 공통점이 많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진보적 자유주의에서 벗어나, 사회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보편적 복지국가는 성장과 대치된다고 하는 이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투자, 생산, 공급"에 대한 적극적인 해법이 복지국가 건설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케인즈 경제학은 수요 중심 경제학이다. 소득과 소비가 주요 관심사다.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복지국가가 소비와 소득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복지국가가 되면 내수 시장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퍼센트를 넘는데, 이걸 40퍼센트 정도로 낮춰야 한다. 일본은 15퍼센트 정도이고 미국은 5퍼센트도 안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소득과 소비도 늘려야 하지만 그것보다 총투자를 늘려야 한다. 소득과 소비만 이야기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자본도 늘리고 평생교육과 연계된 노동을 공급해 완전고용을 달성하게 하는 그런 복지국가가 필요하다. 투자, 공급, 생산과 이에 대한 사회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정 연구위원은 영국-미국과 독일-스웨덴을 비교했다. "흔히 '복지국가는 한물갔다'고들 한다. '케인즈 경제학은 1970년대에 무너지지 않았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공급을 중시하지 않는 복지국가였다. (수요 중심의 케인즈 경제학을) 문자 그대로 실천한 영국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의 방식)은 1970년대에 무너졌다. 그와 달리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무너지지 않았다. 공급에 대한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정 연구위원은 "스웨덴은 보편적 복지, 평생교육을 통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산업 정책을 통한 기업 육성 등을 한 묶음으로 해 복지국가가 됐다"며 높이 평가했다. 이어 "박정희 모델에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보편적 복지가 없었지만, 우리가 만들려는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 노동권 보장 및 노동시간 단축, 평생교육 체제를 갖춘 나라"라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4대강 사업 등에 마구 쓰이는 예산"을 줄이는 등의 재정 낭비 방지 대책도 필요하지만, 세금 문제도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세금 낭비를 줄이는 게 우선이고, 세금을 더 걷는 문제는 그 다음"이라며, "복지국가5개년계획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세금 문제에서도 '경제 민주화론자'들과 의견을 달리했다. 정 연구위원은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법인세를 대폭 인상해 복지국가 재원을 조달하자고 하지만, 법인세를 더 거둬들일 필요는 없고 그동안 감면한 것만 없애면 된다"고 주장했다. 법인세를 낮추는 대신, 주주에 대한 배당을 줄이고 재투자 비율을 높이게 한 스웨덴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공정 경쟁을 위해 소유 집중을 깨자는 것이 자유주의의 핵심"이라며 "(그와 달리) 난 종부세처럼 소유에 대해서가 아니라, 소득에 대해 과세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조세 수입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이 개인소득세"라며 "누진적 개인소득세 중심의 세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각종 교육비 공제 등 개인소득세 비과세 및 감면 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대한민국 상위 30퍼센트"이며, 이로 인해 개인소득세에서 조세의 공평성 원칙이 무너졌다는 진단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사람에게 33퍼센트가 아니라 프랑스처럼 75퍼센트의 소득세를 물리자'는 식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며 "이런 걸 대선 공약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 정부는 1년에 100만 유로(약 15억 원) 이상 버는 사람에게 75퍼센트의 소득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런 방안이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재벌 개혁 방안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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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등의 주장에 대한 이병천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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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성격 논쟁 관련 글 -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싱크탱크 광장] “사민당-‘재벌’ 타협? 사실과 다르다” (한겨레, 신정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2.06.19 22:10)
“복지국가 북유럽에도 ‘재벌’ 자리잡아”
“1938년의 살트셰바덴 협약은 노사분쟁 해결방식만이 의제…소유보장과 고용증대·조세를 교환한 정치적 타협 아니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스웨덴 모델’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스웨덴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주요 정치적 화두로 대두된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의 대표 사례인데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율, 실업률 등 거의 모든 거시경제지표에서 유럽 최상위권 성적을 거두어왔으며,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로부터도 비교적 쉽게 탈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델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웨덴 모델을 선호하는 논자들의 일부는, 스웨덴의 산업구조가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 있으며, 발렌베리 가문을 대표로 하는 거대 금융가문들이 주요 대기업들에 대해 강력한 소유지배력을 행사해왔다는 데 특히 주목해왔다. 세계 최강의 사민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이 있는 나라에서 한국의 재벌 체제와 유사한 기업지배구조를 용인해온 것은, 재벌 체제의 장점을 살려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투자와 고용 증대 효과를 보는 한편, 그 성과를 고율 조세를 통해 정부가 흡수함으로써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최근 강하게 대두된 의제인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재벌 체제를 약화시키거나 해체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벌 총수의 소유지배권을 보호해주고, 특히 재벌 가문 3세로의 경영권 상속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재벌 기업과 재벌 총수 가문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재벌 그룹 또는 총수의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유도하는 등의 방식으로 복지국가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고, 재벌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 증대에 매진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필자가 보기에 스웨덴 모델의 역사에 대한 부정확한 지식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논리를 제시하는 논자들은 스웨덴 사민주의 세력, 즉 사민당과 생산직노동조합 중앙조직(LO)이 발렌베리 가문을 대표로 하는 거대 금융가문들과 명시적 타협을 통해, 거대 금융가문들의 소유지배권은 건드리지 않는 대신에, 그 대가로 거대 금융가문들이 고율 조세를 수용하고 투자와 고용 증대에 매진하는 형태로 윈윈 게임을 전개하기로 약속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컨대 스웨덴식 협조주의적 노사관계 형성의 출발점으로 많이 거론되는, 1938년의 살트셰바덴 협약은 노사 간 분쟁사항의 해결방식만을 의제로 삼았지, 거대 금융가문의 소유지배권 보장과 투자와 고용 증대 및 고율 조세 부담을 정치적으로 교환한 타협이 아니었다.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은 사민주의 세력과 대기업들 간의 타협과 무관하게 1930년대 초부터 사민당 정부가 일관성 있게 추진해온 프로젝트였다. 복지국가 건설의 핵심 원동력은 사민당의 장기 집권이었고, 이를 가능하게 한 핵심 요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직률을 가진 생산직노동조합 중앙조직과 사민당의 밀접한 협력, 우파 정당들의 고질적 분열, 사민당의 우수한 정책 역량 등이었다. 살트셰바덴 협약 이후 1960년대 말까지 사민주의 세력과 대기업들 간에 협조적 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거대 금융가문들의 소유지배권 보장을 매개 고리로 하여 달성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소유지배권을 특권적으로 보장받는 대가로 재벌 총수 가문이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투자와 고용 증대? 소유지배권을 보장받기 위해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소유지배권을 완전히 보장받은 이후에도 이러한 정치적 교환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재벌 총수 가문의 소유지배권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투자와 고용 증대, 고율 조세 납부를 받아내자는 것은, 막대한 현찰을 주는 대가로 액수도 얼마 안 되고 현금 회수 여부도 불확실한 어음을 받는 것과 비슷한 일일 것 같다
 
“복지국가 북유럽에도 ‘재벌’ 자리잡아” (김인춘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집권후 1938년 협약 통해 노사대타협
대기업의 소유구조 보장…한국도 대기업 구실 필수적“

최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현안 중 하나가 재벌개혁으로 대표되는 경제민주화 문제이다. 그런데 재벌개혁의 방향으로 주주모델 방식과 이해관계자모델 방식이 진보진영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다.
1997~98년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의 방안으로 미국식 주주모델 제도가 국내에 도입되어 왔다. 그럼에도 가족경영 등 재벌 체제는 더욱 강고해졌으며, 더 큰 문제는 기형적 주주모델이 초래한 막대한 비용을 국민들이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미국식 모델이 가능하지 않음이 드러났고 더욱 심화된 재벌 체제 상황에서 기존 대주주를 견제하기 위해 또다른 대주주(예를 들어 국민연금 지분)를 만드는 방안까지 검토됐던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미국식 외부 분산주주모델보다 지배주주모델이 제도적으로 용이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장하준 교수의 재벌해체보다 국유화가 낫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지배주주모델의 유용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평등과 사회적 신뢰를 자랑하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에서도 집중화된 대기업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꼭 재벌 체제를 해체해야 경제민주화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재벌형 기업집단은 몇가지 중요한 우위 원천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가족경영의 문제가 심화되었지만 재벌의 기업소유가 과연 본질적인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스웨덴의 가족지배주주 체제와 복지국가의 공존 사례를 들면서 재벌 체제를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장하준 교수의 소위 재벌활용론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만 장 교수 또한 현재 한국 재벌의 문제들을 그대로 덮고 가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재벌 체제로는 스웨덴 모델처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벌활용론은 기본적으로 민주적이고 투명한 재벌 체제를 전제하는 것이며 다만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복지국가와 재벌 체제 경영권을 상호 보장하자는 점에서 미국식 주주모델이나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측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벌개혁론과 재벌활용론의 이분법은 잘못된 것이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1932년 집권 후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노사대타협을 이루었다. 자본과 정치세력 간 타협으로 사회민주당은 대기업의 기존 소유 및 경영구조를 보장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차등의결권이 보장되어 적은 지분으로 거대한 기업피라미드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교차소유제로 기업지배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당시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은 무엇보다 투자와 고용, 기업성장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우선시했다. 강력한 대주주에 의한 안정된 기업지배구조는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본집약적 산업과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50년대 이후 사회민주당의 정책은 대기업의 자본축적과 자본집중을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반면 스웨덴 대자본(가)은 투명성, 낮은 부패, 투자와 고용, 노사협력, 세금으로 복지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고용을 늘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한 것이다. 이는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핵심 조건이 된다. 스웨덴의 대기업은 경영권을 보장받지만 가족지배가 아닌 재단을 통해 지주회사를 지배하고 재단은 수익의 대부분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복지와 증세, 고용확대, 비정규직, 장시간근로 개선 등의 문제에 대기업의 구실은 필수적이며 대기업의 구실을 도외시하고는 선진적 복지국가를 만들기는 어렵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대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복지국가 건설에 있다. 대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면서 더 많은 세금과 책임을 부담하게 하여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조정과 정치적 합의로 조세, 노동 및 복지정책과 연계한 한국식 빅딜모델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에 대한 시장규율의 압력수단만큼 정치사회적 압력수단 또한 기업지배구조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12 스톡홀름 포럼’ 스웨덴서 내달2일 개최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겨레사회정책연 1돌 기념
‘스웨덴 복지의…비전’ 주제

‘2012 스톡홀름 포럼’이 7월2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고틀란드 섬에서 열린다. ‘스웨덴 복지의 위기, 기회 그리고 비전’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스톡홀름 포럼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와 스칸디나비아정책연구소(소장 최연혁)가 공동 주최한다. 이번 포럼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설립 1돌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2일 열리는 포럼에 앞서 세실리아 세이데고르드 고틀란드 주지사가 환영사를 하고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민주당 의원)가 축사로 화답한다. 잉바르 칼손 전 스웨덴 총리가 ‘스웨덴 복지모델의 본질, 희망과 꿈’이라는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그 화려한 서막을 연다.
오전에 열리는 1세션은 ‘북유럽 모델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조건: 현재 위기의 진단과 미래의 해결책은?’이라는 주제로 스웨덴 의회의 바르브로 베스테르홀름 자유당 의원, 앙네타 루트로프 환경당 의원, 윌바 요한손 사민당 의원과 함께 이창곤 소장이 참가해 토론을 벌인다.
오후에 열리는 2세션에선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방자치: 문제와 기회의 진단’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펼쳐진다. 한나 베스테렌 고틀란드 부시장과 카롤라 군나르손 스웨덴 지방자치협의회 부의장 등 스웨덴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와 김성환 노원구청장, 나소열 서천군수, 김윤식 시흥시장 등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참가한다.
마지막 라운드테이블 토론은 ‘복지개혁의 딜레마: 세금, 국민여론, 그리고 경제성장’이라는 주제로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교수가 사회를 맡고, 렌나르트 에릭손 스톡홀름대학 교수와 스벤 호르트 쇠데르퇴른대학 교수, 예란 테르보른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혜주 고려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가한다.
3일 스톡홀름 포럼 참가자들은 해마다 7월 첫주에 열리는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 참석한다.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는 스웨덴 총리를 포함한 정치인들과 700여개의 시민단체와 관련 기관이 참여해 정책토론과 정치를 논하는 대축제다. 스톡홀름 포럼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 조직위원회를 방문한 뒤, 오후에는 고틀란드 지역 정당대표들과 ‘스웨덴 모델의 도전과 지역정치: 재원, 서비스 질, 그리고 주민 접근성’을 놓고 대화를 벌인다. 이날 오후 4시부터는 정치박람회 참가자들의 거리 난상토론회가 벌어진다.

 

"왜 이 씨 가문과 타협해야 복지국가 될 수 있나"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 2012-06-24 오후 2:29:08)
[인터뷰] 유종일 KDI 교수 "자본 통제, 재벌 개혁…둘 다 하면 된다"
"의미 있는 토론이긴 한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최근 <프레시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두고 나오는 말 중 하나다. 이런 기대 섞인 우려를 여러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20일 만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에게서도 같은 진단을 들었다. "생산적인 논쟁이 돼야 할 텐데 아쉽다." 유 교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 쪽으로부터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은 경제 민주화론자 중 한 사람이다. 인터뷰는 KDI의 유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유 교수는 "필요한 논쟁이긴 한데 굉장히 감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비슷하게 하고 재벌들이 횡포를 부려 불균형과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시장과 재벌을 규제하고 조정해서 바꿔야겠다'는 것이 한국 사회에 형성된 합의다. 상황이 이러한데, '경제 민주화론자는 신자유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건 경제 민주화를 고민하는 사람들로서는 좀 황당한 일이다."
유 교수는 "장하준 교수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왜 재벌과 타협해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건가?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된다. 세금을 걷고 그 세금으로 복지 정책을 실시한다, 이렇게 하면 된다. 왜 (삼성) 이씨 가문과 타협해야 복지국가가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재벌과 대타협' 문제와 관련해 유 교수는 "법 위에서 놀고 있는 재벌들이 뭣 때문에 타협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타협하지 않으면 나도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타협하는 것이다. 그 힘을 만들자는 것이 재벌 개혁 운동이다."
유 교수는 "생산적인 논쟁이 돼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논쟁을 위한 논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그걸 고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개혁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무엇인지, 구더기(부작용) 무서워 장을 안 담그는 게 맞는 건지, 그게 아니라 장을 담그려면 어떤 보완 대책이 필요한 건지, 이런 식으로 가야 생산적인 논쟁이 된다.
(…) 장하준 교수 쪽도 '재벌이 다 잘하고 있다'는 건 아니고 이러저러한 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것 아닌가. (…) 어떻게 재벌을 개혁하고 경제 민주화를 이루고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지, 그리고 장 교수가 이야기하는 국제 투기성 금융 자본의 폐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논의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서로 접점을 찾으며,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 방식의) 생산적인 논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유 교수는 "자본 통제가 우선이냐, 재벌 개혁이 우선이냐 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말했다. "둘 다 하면 되는 것이다. 재벌 개혁을 하면 자본 통제를 못한다? 자본 통제를 하면 재벌 개혁을 못한다? 전혀 그런 게 아니다. (…) 자본 자유화에 가장 앞장선 세력이 누군가? 재벌이다. 또한 재벌은 최고의 수혜자다. 재벌들이 금리 싼 자본을 열심히 들여오고 했던 것 아닌가."
유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재벌 개혁과 자본 통제를 대립적인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 '(변화한 한국에 대한) 감을 잡을 때까지 몇 년간은 대중적인 글쓰기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걸 딱 2번 어겼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쓴 것 중 하나가 외환 자유화 2단계를 할 때 반대한 것이다. 그밖에도 학술회의,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자본 통제를 해야 한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에 반대하는 힘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있다"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사례로 들었다. "우리의 주된 전선은 거기다. (…) 전경련부터 해체해야 한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는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119조 2항은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 등을 위해 정부가 규제 및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경제 민주화의 근거 조항으로 여겨진다. 또한 "국민이 경제 민주화를 절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 수수료 문제 갖고 음식점 주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청년들은 최저임금이나 아르바이트생 권리 문제 등을 놓고 싸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여기저기서 싸우고 있다. 희망버스도 많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형 슈퍼마켓 때문에 동네 가게 주인들은 다 죽을 맛이다. '우리도 먹고살게 해달라. 왜 대기업만 잘나가냐', 이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들이 원하니까, 정치권도 표를 얻으려고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꼽히는 재벌 개혁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흔치 않은 기회가 왔다"고 진단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때 재벌이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재벌 개혁이 사회의 중심 과제로 등장했다. 많은 개혁 조치가 이뤄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벌의 힘이) 부활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폐해가 더 심해졌다. (…) (요즘 재벌 위주 경제의 폐해를) 국민들이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 재벌 개혁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유 교수는 재벌 개혁의 핵심이 "총수 지배 체제를 바꾸고 소유 지배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유 교수는 이를 위해 순환 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계열 분리 명령제, 노동자 경영 참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는 역사적 과제"라며 "꼭 단기에 승부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길게 보면 반드시 이뤄질 일이고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유 교수에게 물었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재벌 개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일까. "예를 들면, 법인세 비과세 감면 액수가 굉장히 많다. 그걸 전면적으로 없애고, 딱 하나 세제 혜택을 주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물론 고용 문제는 한두 가지로 풀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 뭐 좀 달라지겠구나', 이런 느낌이 확 올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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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문제 해결이 급한가 재벌규제가 급한가? (프레시안,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2012-06-12 오후 2:51:08)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장하성 등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에 답한다
2년 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를 계기로 불붙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복지국가 담론에 찬물을 끼얹는 주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진보적으로 분류되는 인사들로부터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예컨대 연 1000만 원에 이르는 과중한 대학생 등록금 문제의 해결이 시급한가, 아니면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를 통한 재벌규제가 더 시급한가? 당연히 등록금 문제 해결이다. 게다가 등록금 문제뿐이랴. 대학생 당 연 1000만 원에 이르는 생계비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런 과제들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에 진보적인 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이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라는 판이다. 청춘 남녀들이 직면한 이런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연 10~20조 원의 신규 복지 예산을 어떻게 조달한 것인지(부자 증세 등을 통해)를 모두 논의하고 고민해도 모자라는 판이다.
게다가 이런 일을 국회의원과 관료들이 알아서 해결해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청춘 남녀들이 스스로 들고일어나야 한다. 국회와 행정부, 대통령이 이런 일들을 하도록 압박해야 하고, 따라서 대학생과 청춘 남녀들을 이런 등등의 복지국가 이슈를 중심으로 널리 조직하고 교육시켜 나가야 한다. 이와 유사한 대중적 복지국가 운동을 노인복지와 여성복지, 초중고 교육 등의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벌여 나가야 한다.
또한 기존의 대기업 중심,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을 어떻게 환골탈태하게 하여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들도 함께하는 노동운동으로 만들어낼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어떻게 하면 기존의 기업별 사내복지 체제를 국가적, 보편적 복지 체제로 바꿀 것인지를 고민하여야 한다. 이 모든 새로운 복지운동, 새로운 노동운동이야말로 진보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고, 이것을 하나로 집약하는 것이 바로 복지국가 운동이다.
수백만, 수천만의 평범한 청춘 남녀들과 청소년들, 시민들, 현장 노동자들, 여성들과 노인들이 자신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삶을 개선하는 데 직접 참여하는 거대한 대중운동, 이것이야말로 한국 진보 운동의 지난 수십 년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빠져 있는 '진보 운동의 기본 질서'이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기본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진보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출자총액제한과 집중투표제, 순환출자 금지와 같이, 일반인들은 알아먹기도 힘든 어려운 전문가적 용어로 이야기하는 일부 진보 엘리트들이 주도하면서 수백만, 수천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진보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구경꾼'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자유주의 엘리트 방식의 운동이다. 진보적 자유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소득과 계층이 그 자식들의 소득과 계층으로 대물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패자부활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가장 시급한 과제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지는 복지국가야말로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실질적인 해법이다.
정의와 공정·공평의 의미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각기 다른 정치 경제 사상과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장하성과 김동춘 교수 등이 말하는 것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의론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보수적 자유주의건 진보적 자유주의건 관계없이, 정의와 공정·공평을 '경쟁'의 테두리 안에서 이해한다. 즉 개인들 간, 기업 간, 정당 간의 경쟁(대립)에 있어 그 경쟁이 절차 또는 형식상 공정·공평하게 이루어지면 그것을 '정의롭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형식적, 절차적 공정·공평이야말로 정의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공정한 경쟁' 즉 '기회의 평등'(기회의 공정성)이야말로 자유주의가 말하는 핵심적 가치이다.
형식적·절차적 평등을 가장 중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당연히 '복지보다 우선적인 것은 공정·공평'이라고 말하며, '복지 국가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특권과 특혜의 철폐'라고 주장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말하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 역시 일종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이다. 요즘에는 문재인과 이해찬 등 친노 인사들 역시 이러한 정의관을 자주 표방한다.
그렇지만 나 같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개인 간, 기업 간 경쟁이 제 아무리 그 형식 및 절차상 공정·공평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빈부격차 심화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예컨대 아무리 공정한 시장 경쟁 절차가 준수된다고 하더라도 10개의 신생 벤처기업들 중 9개가 파산하고 1개만 생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 9개 파산 업체의 창업주와 종업원들이 실직자가 되는 것도 불가피하다. 그런데 만약 획기적인 고용보험, 그리고 그 자식들에 대한 '대학까지 무료 공교육과 학생 생계비 보조 혜택', 그리고 저렴한 주택복지 등의 복지국가 정책이 없다면, 그 가족들마저 모두 인생 파탄의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복지국가의 도움 없이 이들을 위한 '패자 부활전'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자유주의자들은 예컨대 열심히 자진해서 공부한 서울대 출신 직장인이 연소득 1억 원을 받는 데 반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지방대 출신 직장인이 연소득 3000만 원을 받는 것에 대하여, 그것은 '시장 경제의 기본 질서' 즉 공정경쟁(기회의 평등) 원칙이 준수된 것이므로 '정의롭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대기업 생산현장의 고졸 노동자들이 연봉 7000만 원을 받는 데 반해 중소기업의 대졸 사무직들이 연봉 3000만 원을 받는 것은 '공정 경쟁'의 원칙이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재벌대기업 노동자들의 특권과 특혜의 폐지가, 따라서 이를 위한 민주노총 기업별 노조의 약화·해체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정태인과 김기원 같은 개혁적 진보 인사들이 민주노총을 '재벌과 야합한 진보의 적'으로 간주하면서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진보적) 자유주의의 정의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절차적 평등, 기회의 평등보다 실질적 평등(실질적 공정·공평)을 통한 '실질적 사회 정의'의 구현이 훨씬 더 시급하고도 중요하다고 보는 사회민주주의는 복지국가야말로 노동시장의 불공정, 불공평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특권과 특혜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기업별·특권적 복지를 국가적·보편적 복지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최저임금의 대폭 상향 조정과 산별노조 및 산별 단체교섭의 법률적 강제, 이를 통해 달성되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국가적 관철이 필요하다. 이것이 노동민주화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강제되는 산별 단체교섭 및 최저임금의 대폭 상향 규제와 같은 국가개입주의 없이, 어떻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전체에 있어, 그리고 정규직 및 비정규직 모두에 있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공정·공평의 원칙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이와 같은 보편적·국가적 복지와 산별노조·산별교섭은 모두 장하성과 김동춘, 정태인 등이 중시하는 '시장 경제의 기본 질서'(즉 공정한 시장경쟁과 기회의 평등)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그것은 '복지국가의 기본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복지와 복지국가 없이 정의로운 사회,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건가?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프레시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시사IN > 기자, 2012-05-28 오후 5:55:41)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1>
우리의 새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후 <선택>)는 2005년 발간된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마찬가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정책의 배경에 있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즉 그런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을 '경제민주화'로, '진보적 자유주의'로 묘사하며 찬양했던 개혁진보파 인사들 역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우리는 두 책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 정부 또는 좌파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모두에 만연한 - 거대한 착각이라고 썼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일부 진보 인사들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시장개혁을 2013년 체제 하에서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재추진해야 한다고 하는 것 역시 강하게 비판하였다. 하물며 우리는 <선택>의 맨 앞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기본적으로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에요. 시민들이 이런 측면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안티 이명박'이 노무현 시대로 회귀함을 의미한다면 정말 허무한 일 아닐까요? (...)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이를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젠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합니다".
논쟁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정태인, 이병천처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지식인들, 그것도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들마저 우리 책에 대해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을 펼치는 것은 정말 당혹스럽다.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있다. 바로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한국은행 독립성 문제에 대한 논란을 보자. 우리는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전통적으로 한국은행 독립성을 - 그리고 이를 통한 물가통제에 집중하는 통화정책을 - 옹호하면서 그에 반대해온 기획재정부(또는 재정경제부)를 비판해온 데 대하여 우리의 새 책에서 비판하였다.
그런데 정태인은 공개편지에서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에 물들었는데 반하여 한국은행 근무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를 반박하였다. 정태인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관료들을 경험해보니 그렇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태인은 따라서 한국은행 독립성 주장은 반신자유주의 즉 경제민주화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정태인의 이러한 논법은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여 관찰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정태인 식의 논법대로라면 신자유주의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는 기획재정부는 해체 또는 약화시키는 것이 해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니면, 비신자유주의자들이 많은 한국은행 또는 (정태인이 말하는 방식의) 재벌규제 실무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다른 정부조직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기획재정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실제 정태인이 "100%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하는 김상조는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피아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태인은 신자유주의에 뿌리 깊이 감화된 관료들(개인들)이 유별나게 기획재정부에만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관료들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한미FTA 추진)에도, 교육과학부(교육 시장화 추진)에도 철철 넘쳐난다. 공정거래위원회(각종 규제완화 추진)와 노동부(노동권 약화 추진), 보건복지부(사회복지 축소 추진)에도 그런 신자유주의적 관료들은 넘쳐난다.
그렇다면 이런 부처들도 해체 내지 약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런 논법대로라면, 현재의 국회와 청와대(따라서 우리나라의 모든 국가기관)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인물들이 대다수라는 이유로 그 권한과 위상을 해체 또는 약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한다면, 원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주장해온 밀턴 프리드먼과 하이에크 류의 신자유주의와 똑같은 정책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인물과 제도를 구별하지 않는 똑같은 문제점은 이병천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이병천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 독재 유산 위에 서 있다"는 글에서, 한국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를 추진해온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재벌계 인물들과 경제 관료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과 금융자산가들이 선두에 섰던 서구와는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모피아 관료와 재벌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추진한 '잡종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한다.
훌륭하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점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박정희 체제의 권력자들(모피아와 재벌)이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동일한 인물·개인들이라는 이병천식 논법을 따라가자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즉 시장주의적 제도·정책)와 박정희 체제(즉 반시장주의적 제도·정책) 사이에는 별다른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이병천은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셈인데, 제도·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이병천은 우리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선택>에서 재벌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인 양 엉터리로 묘사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비판인데, 이 역시 이병천이 개인(재벌가족과 그 가신들)과 제도(법인기업으로서의 대기업과 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심각한 곡해요 중상비방이다.
이병천은 이건희와 정몽구와 같은 재벌가문(인간·개인)과 그룹 체제(제도·정책)를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재벌그룹(즉 대기업집단 체제)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다는 점을 곡해하여, 마치 우리가 이건희·정몽구 회장과 같은 재벌 가문과 그 가신 그룹의 이해관계와 행위들(각종 불법행위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양 착각한다.
요컨대, 정태인과 이병천은 박정희식 경제체제(반신자유주의적 제도·정책)와 그에 관련된 인물들(신자유주의적 모피아 경제관료들)을 구별하지 않고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또한 대기업집단(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이라는 경제 제도를 재벌 가족들(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여 사리사욕을 취하는)이라는 인물·개인들로부터 구별하지 않으며,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또한 한국은행 독립성 여부에 관한 제도적·정책적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개인-인물들이 한국은행에 많으냐, 기획재정부에 많으냐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재벌개혁 만능론은 반민주적 행위" (프레시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시사IN > 기자, 2012-05-30 오후 4:03:13)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2>
정태인·이병천 등을 포함하는 많은 개혁진보 지식인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민주화이고 그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시각에 따르면, 재벌개혁의 핵심 과제는 재벌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와 같은 '왜곡된' 소유지배구조로 인위적으로 묶여 있는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약화·해체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계열사 간 출자총액의 제한과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해야 하고, 이렇게 하여 왜곡된 소유지배구조가 정상화된다면 비관련 다각화(문어발식 확장)와 계열사 간 상호 지원 같은 '왜곡된' 경영 역시 바로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우선 생각해 볼 점은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거의 동일시한다. 그렇지만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이루어야 할 여러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노동자 개인의 권익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대폭 향상시키고, 또한 (독일의 공동결정제처럼) 종업원 대표자들의 회사 경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설립을 지원하여 소비자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 그리고 소농·소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성한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금전적 지원을 통해 그들의 경제적 힘을 향상시키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전기와 철도·지하철, 버스, 우편, 수도처럼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나 혹은 그런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산업정책과 복지정책 등을 통하여 ('1원 1표'라는 반민주적인 원리에 기초하게 마련인) '시장'을 규제하여, 기업들이 가능한 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즉 국민들의 이익에 맞도록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그 구조와 인맥상, 물가안정과 통화가치 유지 등 금융중심적 시각에서 경제문제를 파악하게 되어 있는 중앙은행(한국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서 중앙은행이 고용이나 성장처럼 일반 국민에게 더 중요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이렇듯 경제민주화를 위해 할 일이 여러 가지로 많은데도 개혁파의 경제민주화론은 이런 여타 요소들은 거의 무시하면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거의 동의어로 쓸 정도로 재벌개혁(대기업집단의 약화와 해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물론 개혁세력이 노동자 권익과 중소기업 역할 강화, 복지확대 등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재벌개혁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이런 다른 정책들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에서 이런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제 아무리 복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분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감생심일 겁니다. …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없이 복지만 내세워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병천 역시 말하기를,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두 가지 시대정신이 새로 정립되는 상황에서 그 기본 관문(즉 일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재벌개혁과 '삼성 동물원' 상황의 극복"이라고 한다. 즉 경제민주화(재벌개혁)와 복지국가를 각각의 독립된 병렬적 의제로 내세우되, '전자'(재벌개혁)를 '후자'(복지국가)에 앞서 선행하는 단계로 보고 있다. 특히 정태인은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과 함께 공동으로 '재벌개혁 시민연대'를 새로 구축하여 재벌개혁을 올해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먼저 재벌개혁이 제대로 되어야 그 이후 비로소 복지국가가 그 바탕 위에서 제대로 구축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재벌개혁과 복지국가 구축을 분리시켜 보는 데 문제가 많다. 많은 점에서 복지국가의 강화는 그 자체가 재벌개혁이기도 하다. 예컨대 복지국가의 필요조건인 누진 소득세 강화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소득 계층인 재벌 가문들과 그 가신들이다. 또한 보편적 의료 복지와 노인 복지 역시 그 자체 강력한 재벌 개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도들은 재벌계 보험회사들이 주도하는 보험업계의 이익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운동 속에는 이렇듯 '여러 형태'의 재벌개혁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 같은 '특정 형태'의 재벌개혁(그것도 재벌가족이 아닌 대기업그룹 체제만을 규제·통제하는)만이 올바른 재벌개혁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복지국가 따로, 경제민주화 따로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한 운동 그 자체가 경제민주화"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도리어 우리는 출자총액제한 강화를 통해 대기업집단을 약화 또는 해체시키게 되면 한국 최대 대기업들에 대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증폭되고, 그렇게 되면 친노동, 친중소기업적인 정책과 복지 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본다.
조금 더 이론적으로 들어가자면,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다양한 논자들에 의해 다양한 프레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역시 경제민주화론이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이 다수인 사회에서 다수자 민주주의를 통해 집권한 인민주권(즉 민주주의)이 중앙집중 계획경제를 실시함으로써 다수자인 노동계급의 이익에 맞게 (즉 민주적으로) 경제를 운영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들(아나키스트)의 주장 역시 그들 나름의 경제민주화론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국가권력을 해체하고 그것을 자율적 (협동조합) 공동체의 연대적 결사체로 대체함으로써 실질적인(즉 경제적인) 인민주권(즉 민주주의)을 실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조직(특히 그 경제정책 담당조직들)과 대기업들, 즉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조직들'을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즉 1원 1표가 아닌 1인 1표의 이상(理想)에 맞게 재편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정부조직(정부의 경제개입)과 대기업(대기업집단)을 가능하면 작게 만들자는 입장이다. 이렇듯 '완전경쟁 시장(공정시장) 자본주의'를 만들어야만 참된 '1인 1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정치경제 사상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국의 개혁파 학자들은 이것을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그에 반해 우리는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정부(특히 큰 복지국가)와 대기업(대기업집단)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해 긴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야만 참된 경제민주화가 달성된다고 본다. 즉 우리 역시 경제적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구상하는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내용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틀에 머무르는) 우리나라 개혁론자들의 그것과 현격하게 다르다. 우리의 시각은 비자유주의(non-liberal)적 민주주의이며 유럽 사회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
많은 개혁진보 지식인들이 경제민주화를 진보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스웨덴식 복지국가에 '앞서'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한국 진보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1960-80년대에 그 사상적 기초가 형성된 한국 진보 세력의 정치경제학에는 박정희식 관치경제와 재벌그룹 체제로 상징되는 한국 자본주의는 '비정상적' 자본주의라는 관념이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명칭은 '천민' 자본주의(김상조)이다. 그리고 '식민지 반(半)' 자본주의(통합진보당 구당권파), 또는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과거 이병천이 대표적 논자였다)로 불리기도 했다. 굳이 이런 형용사를 붙이는 이유는 한국 자본주의가 선진국 자본주의에 비해 왜곡되고 부도덕한 방식으로 성장해왔고, 따라서 이런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한국 자본주의는 '정상적' 자본주의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천민자본주의'라는 시각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귀족 자본주의'였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자본가들'이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장하준이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안> 등에서 지적했듯이, 실제 미국과 유럽 자본주의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부정부패와 반민주주의, 정부개입이 난무하는 천민적, 비정상적 방식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정태인 등이 말하듯이 착한 자본가 단계, 즉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또는 '공정시장', '공정국가')가 제대로 되어야만 그 이후 비로소 그 바탕 위에서 본격적인 북유럽식 복지국가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한국 경제의 발전 수준과 국민의 시민적 성숙도로 볼 때, 대한민국은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곧장 나아갈 수 있다.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을 세워 지금부터 차근차근 밀고 나간다면, 5-10년 뒤에는 지금의 미국, 그 다음엔 지금의 유럽 중위권 복지국가, 20-30년 뒤엔 지금의 스웨덴 복지국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듯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저, <비그포르스 -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로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제시하는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재벌개혁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없다. 재벌개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 즉 복지국가의 구축에 복무하는 수단, 그것도 여러 수단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재벌개혁 운동과 복지국가 운동은 동시에 '병렬적으로' 행해지면서 서로 '보완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재벌개혁 운동은 어디까지나 복지국가 운동이라는 더 큰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부분이다. 말하자면, 복지국가 운동이 하나의 전쟁(war)이라면, 재벌개혁은 그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전투(battle), 물론 중요한 전투이다. 중요한 것은 프레임(frame)이다. 재벌개혁이 복지국가 구축과 따로 떼어져 병렬화될 때, 그 운동은 궁극적인 큰 목적과 방향(즉 프레임)을 상실한 채 주주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무릇 모든 개혁은 개선(改善)이 될 수도, 개악(改惡)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역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재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은 - 투명성 강화 등 보편타당한 이야기들도 일부 있지만 - 본질적으로 월스트리트와 연계된 주주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프레임 속에서 머무르고 있고, 따라서 대부분 국민의 이해관계에서 볼 때는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주주자본주의 원리에 따른 재벌개혁'은 수익성 및 주주이익 지상주의와 이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과 비정규직 양산, 인건비와 하청단가의 삭감, 청장년 실업과 빈곤층의 만연 등을 낳는다.
개악이 아닌 개선이 되려면, 재벌개혁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본다. 물론 그런 복지국가에서도 소득재분배(이른바 2차 분배)를 통한 복지(즉 좁은 의미의 복지)는 만능이 아니다. 그곳에서도 왕성한 일자리 창출과 근로소득 창출을 통한 1차 소득분배(즉 원천소득 분배)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그 큰 부분은 대기업의 몫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복지국가 원리에 따르는 재벌개혁', 즉 진보적 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프레임의 재벌개혁을 구상한다.

 

박정희 체제=절대악? 어리석은 규정 (프레시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시사IN> 기자, 2012-06-08 오전 8:15:35)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3>
한국의 개발독재 시기는 대다수 민중에게 참혹한 시대였다.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군대식 규율, 경찰폭력과 산업재해의 위험 속에 세계 최장의 괴로운 노동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상징되듯이 노동자의 개인적 권리와 노동조합은 야만적으로 탄압 당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기인 1960-1970년대에 한국뿐 아니라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도 가혹한 노동착취를 당했다. 그에 반해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높은 임금과 역사상 최고조의 복지를 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서구 선진국들 역시 1930년대까지만 해도 야만적인 노동탄압과 국가폭력, 사회 상층부의 부정부패가 일상적이었다. 즉 노동착취와 반민주주의, 부정부패는 자본주의 발전기의 보편적 현상이었으며 박정희 체제로 대표되는 한국 자본주의만 특별히 '비정상적'이거나 '왜곡된' 것이 아니었다.
박정희가 아무리 극악한 반(反)노동, 반(反)서민적인 폭압적 독재자였다 할지라도, 그에 못지않게 폭압적이었던 이디 아민(우간다)이나 마르코스(필리핀)과는 뭔가 다른 '경제' 정책을 운용했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경제정책상의 그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발견한 결정적 차이는 바로 박정희가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매우 강하게 구사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박정희 옹호자'니 '박정희주의자'니 하는 모욕적인 호칭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목하고 싶은 점이다.
박정희는 마오쩌둥과 달리 외자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당시 한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초보적인 수준의 생산설비와 기술도 갖지 못한 나라들이었기에 해외에서 생산재와 기술을 구입하려면 당연히 외화가 필요했다. 박정희는 남미나 아프리카, 필리핀의 독재자들과 달리 외국자본의 무차별적 자유와 권리를 승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GM이나 IBM, 또는 도요타와 폭스바겐 같은 선진국 다국적 기업이 한국에 조립공장만 세우고 기술이전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사의 국제생산 네트워크에 우리 기업들을 종속시키도록 허용하지도 않았다.
박정희 체제는 당시 선진국 수준에서 보면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삼성전자 같은 회사들을 초국적기업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수입을 규제했고, 또한 그 초국적기업들이 한국에 공장을 세울 때에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국가적으로 통제·규제하였다. 당시 한국이 도입한 외자는 대부분 직접투자(기업 설립)나 다수 지분 투자(한국 대기업의 소유권 장악)가 아니라 부채였다. 정부가 외자를 빌린 뒤 당시 국유기업이었던 은행들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가장 긴요한 전략 부문들에 투자하도록 했다. 만약 당시 외자가 직접투자나 다수 지분 투자로 들어왔다면, 외자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통제'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직접투자나 지분투자로 들어온 외국자본은 마음만 먹으면 제멋대로 철수할 수 있다. 그러나 외자가 부채로 들어오는 경우, 더구나 정부가 그 외자 부채를 통제하는 경우, 그 돈(자본)을 국내 산업 발전과 수출 활성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그 외자부채를 갚아 나가면 된다.
박정희 체제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통해 생산적 투자와 기술개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박정희 체제는 외자와 함께 어렵사리 형성한 국내 자본을 생산적 투자에 몰아넣기 위한 총력전을 벌였다. 그리고 국내 자본이 금융 수익성만 좇아 비생산적 부문이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통제했다. 정부 허가 없이 외화를 유출하면 사형까지 당할 수 있던 시대였다. 그리고 이렇듯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덕택에, '박정희 체제'란 명칭으로 포괄되는 30년 동안 한국경제는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했으며 이에 따라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고 실질임금이 꾸준히 상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박정희 체제는 '반노동-친성장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1993년 초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군인출신이 아닌 최초의 문민 대통령 정부답게, '박정희 경제 유산의 해체'를 국정 지표로 제시했다. 그 후 집권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이 '박정희식 경제체제의 해체와 경제민주화'는 '반노동, 친시장'의 경제민주화,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일 뿐이었다.
먼저 노동 영역에 대해 말하자면, 김영삼 정부와 그에 이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초지일관 '친시장적' 노동 정책 노선을 고수했다. 즉 이들 세 '민주' 정부는 모두 노동자 개인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일에 무관심했으며, 노동시간 단축과 실질임금 증가에도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법 같이 (신자유주의의 프레임 안에서도 허용되는) 선별적·잔여적 복지 외에는 별다른 사회복지 구상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 정부는 1990년대 초반까지의 이른바 박정희 체제 하에서는 불법화되어 있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까지 합법화했다. 학자들은 이를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칭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마가렛 대처의 영국과 레이건의 미국에서 시작된 이래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마치 '경제민주화'인양 포장되었다.
더구나 김영삼 정부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 장치들을 대대적으로 해체하였다.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기획의 주무 부서인 '경제기획원'이 1994년 해체된 것은 그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병천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1990년대 초반 이래 한국에서 박정희 체제를 해체하는 데 앞장선 인물(개인)들은 바로 박정희 체제 하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던 모피아 관료들과 재벌계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보수적 자유주의' 학자·지식인들, 그리고 중도좌파로 분류되는 '진보적 자유주의' 학자·지식인들 역시 박정희 체제 즉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해체에 함께 나섰다. 특히 진보적 자유주의 그룹의 학자·지식인들은 이와 같은 국가적 자본 통제 체제의 해체에 대하여 '경제민주화'라는 멋진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김영삼 정부 하에서 외환·금융시장에 대한 국가통제가 완화·해체되자 한국의 은행과 종금사 등은 마구 외채를 꾸어왔다. 그 결과 터진 것이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이다. 따라서 외환금융위기는 모피아 세력과 자유주의 개혁파 지식인들이 말하듯이 '박정희식 관치금융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관치금융)을 섣부르게 해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도 IMF 사태의 한가운데서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박정희식 관치경제·관치금융 때문에, 즉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 때문에 위기가 터졌다는 주류 신고전학파 및 신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이른바 진보적 경제민주화론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했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진보적 자유주의에 따른) 경제민주화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더욱 해체하는 수순을 밟았다. 그것이 바로 은행민영화(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와 국영기업 민영화(KT와 포스코의 민영화), 주식시장 완전개방(월스트리트 주식자본의 대거 유입), 주주자본주의의 대폭 허용(적대적 M&A 촉진과 소액주주권 보호), 재벌개혁(출자총액제한 강화), 사모펀드·헤지펀드나 미국식 투자은행(골드만삭스와 같은)의 육성 등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보적 자유주의 개혁파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란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 체제의 해체를 의미한다. 중앙은행(한국은행) 독립성 역시 IMF와 세계은행 등에 포진한 주류 경제학자들과 신자유주의 세력이 강조해온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개혁·진보 세력이 '관치경제·관치금융 해체'의 일환으로 중앙은행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자들과 - 설령 본래의 선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 동일한 보조를 맞추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추진된, 그리고 이명박 정부 역시 그 기조를 지속하고 있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해체(즉 관치금융 해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금융위기가 빈발하고 있다. 이미 2003년에 발생한 신용카드사 위기가 하나의 소규모 금융위기였다. 2년 전부터 큰 문제로 되고 있는 저축은행 부도 사태 역시 일종의 소규모 금융위기이다.
그리고 만약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과 이탈리아 경제가 파탄에 직면하여 유럽과 세계의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될 경우, 현재 900조원을 넘어 그 부실화 위험이 날로 격심해지고 있는 은행권 가계대출 역시 또 하나의 대규모 금융위기(은행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위기의 배경에는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기업지배구조를 월스트리트 모델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론'이 존재한다. 보수적, 진보적 자유주의 모두 그랬다.
우리의 주장은 박정희식 경제 체제에서 부정적 요소들(노동 억압)을 버리되 긍정적인 요소는 살리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핵심으로 하는 복지국가 정책을 펼쳐나가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주국가적 통제를 더욱 세련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에 관한 한, 박정희 체제의 긍정적 유산인 외환금융 통제와 주주자본주의 통제, 적극적인 산업육성 정책 등은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필수적인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핵심적 목표는 자본(금융과 산업·기업)으로 하여금 단기 수익성과 투기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와 기술혁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금융시장)과 산업·기업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적극적인 국가개입이 필요하다. 또한 복지국가 재정의 확보를 위하여, 자본(금융자산 및 기업)의 소유자들에 대해 그 소유로부터 발생한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누진적 소득세의 부과) 역시 '자본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를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중심에 놓고 노동자 보호와 협동조합 육성, 금융 규제, 산업 정책 등의 수단을 통해 경제가 다방면에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체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박정희 체제의 긍정적인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경제 체제 속에서 금융시장 규제와 산업정책 등이 행하는 중요한 역할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악한' 재벌들의 '잘한 짓', 그 비밀은… (프레시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시사IN> 기자, 2012-06-21 오후 6:14:16)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4>
미국의 유력지인 <포춘>의 기자인 베타니 맥클린은 2007년 "고가도로 운영권 대여(lease) 등의 부문에서 미국은 이머징 마켓"이라고 썼다('Would you buy a bridge from this man?' <포춘> 2007년 10월 2일). 2000년대 중반 호주의 거대 투자은행인 맥쿼리가 미국 시카고 고가도로와 인디애나 유료도로의 운영권을 각각 18억 달러와 38억 달러로 사들여 운용하던 중에 나온 표현이다.
민간자본이 고속도로나 터널, 교량 등의 운영권을 국가로부터 한시적으로 사들인 다음 이로부터 금융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인프라 투자'라는 신종 금융사업 부문에서는 심지어 미국마저도 이머징 마켓이었던 것이다. 요즘 시끄러운 우리나라 지하철 9호선의 요금 50% 인상 시도와 수서발 KTX 민영화 논란 등도 이러한 '인프라 민간 투자'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사실 인프라 투자는 글로벌 금융산업에서 후발 주자였던 호주의 거대 투자은행 맥쿼리가 새롭게 열어젖힌 신천지다. 맥쿼리가 이 사업을 호주 내에서 개시한 1990년대 초중반에 대부분의 금융산업 부문들은 미국, 영국의 거대 투자은행에게 이미 점령당한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맥쿼리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바로 도로와 교량, 항만 같은 인프라 시설을 '금융자산'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예컨대 '인프라 운영 주식회사'를 만든 다음 이 기업의 주식을 발행하여 매각한 돈으로 고속도로 등 인프라의 운영권을 매입하는 방법이다. 더욱이 이런 '인프라 운영 주식회사'를 만든 투자은행(금융투자회사)에는 단지 배당금 이외에도 여러 수익 창출 통로가 있다. 이를테면 그 운영사의 주식 발행을 대행해주면서(주간사 역할) 주간사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그 운영사에 돈을 빌려줘서 이자를 얻거나, 자산운용 및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사실은 이 모든 '금융수익 창출'이 결국 '투자자들 즉 주주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해외에서 맥쿼리는 자사가 조성한 인프라 운영회사에서 순이익이 창출되지 않는 경우 빚을 내서 주주배당을 하는 파격적인 주주중시 경영으로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은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맥쿼리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주주에 대한 신의와 성실'을 다하는 기업이다.
이처럼 금융자본에게 가장 중요한 경영 원칙은 '주주중시'와 주주 이익 극대화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자본의 논리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공공성의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 바로 서울지하철9호선 요금인상 분쟁과 광주순환도로(민자 도로)를 둘러싼 행정 심판 논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금융자본주의가 비교적 최근에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금융자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장하준 : 흔히 실물경제가 몸통이고 금융은 꼬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는 금융이 몸통이 되고 실물경제는 오히려 꼬리로 퇴락하는 이상한 과정이 전개되어 왔어요. 그러니까 금융자본주의란 금융이 몸통이 되어 실물경제라는 꼬리를 흔들어 대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말하자면 실물경제인 공공인프라가 금융이라는 몸통에 질질 끌려다니는 사태 역시 금융자본주의의 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공공인프라가 금융자산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 현상이다. 오히려 금융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그리고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영역은 기업 M&A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제품과 서비스)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가 금융 상품으로 간주되면서 사고 팔리기 시작한 것이 지난 1980년대다.
상식적으로 보면 기업은 고용을 창출하고 더 많은 부를 생산해서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단위다. 그런데 198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는 '기업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흐름을 주도한 마이클 젠센 교수에 따르면,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고 '기업은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경영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고용 창출이나 매출규모 확대, 품질 개선, 장기투자를 통한 미래 성장산업 진출 등이 아니다. 주제넘게 이런 짓을 하다 보면 기업의 비용이 비대해지고 리스크가 커져서 오히려 주가가 떨어져 주식투자자들이 싫어할 수 있다.
차라리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일부 사업부를 정리하거나 종업원들을 정리해고 하는 방법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해서 주가를 띄우는 것이 경영자로서 훨씬 현명한 처신이다. 괜히 주식투자자들의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하다 주가가 내려가는 경우, 다른 적대적 자본의 인수합병(M&A)이 쉬워지고(인수비용이 줄어드니까), 그 경우 경영자 자리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금융자본주의 시대 이후 가장 각광받는 고수익 사업 중 하나가 바로 기업을 사고팔면서 높은 금융수익을 창출하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사업이다. 주가가 낮게 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다수 매입해서 경영권을 획득한 뒤, 정리해고와 당장 돈이 안 되는 사업부의 매각·청산 등 구조조정을 해서 비싸게 되파는 장사다. 말하자면 '기업 그 자체'가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된 것이다. 현재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미트 롬니가 바로 이런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에서는 저투자-저성장-고실업이 체질화될 수밖에 없다. 금융자본주의를 가장 먼저 도입한 미국의 글로벌 제조업체들(GM과 GE 등)이 몰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기업을 상품화하여 M&A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다른 규제와 제도들도 그에 맞추어 '개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을 인수한 금융자본 입장에서는 정리해고를 통해 임금 비용을 절감해야 주가(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다. 그런데 과거 정리해고가 불가능했던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면 정말 '답답한 일' 아니겠는가. 따라서 금융자본은 각국 정부에 비정규직 허용과 정리해고 허용 등을 가능하게 하는 법을 제정하여 노동시장을 '유연화'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또 다른 예로, 금융투자자들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금융 수익을 추구하고 그 돈을 본국이나 다른 나라, 조세회피 지역(tax heaven) 등으로 자유롭게 옮기려면 외환시장이 자유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외환시장 자유화에 대한 요구도 자연히 따르게 된다. 미국 월스트리트는 이러한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을 199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전 세계로 수출했다. 월스트리트 금융자본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의 기업을 '금융 장사의 대상'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월스트리트의 이런 '금융자본주의 혁명 수출'에 한국이 반강제적으로 포섭된 사건이 바로 지난 1997년 IMF 사태이다.
IMF 사태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국민경제와 고용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대기업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행위(즉 자유로운 M&A)가 거의 불가능했다. 대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입하려면 정부로부터 사실상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 대기업 주식 중 25% 이상이 외국인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기도 했다. 즉 한국의 재벌들은 국내나 해외의 다른 기업에게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경영권 안정'이라는 제도적 기반 덕택에 한국의 그 '사악한' 재벌들이 그나마 '잘한 짓', 즉 모험적인 장기적 대규모 투자(자동차, 반도체 등)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인정받는 바이다.
그런데 한국이 외환위기를 당하자 IMF가 우리 정부에 210억 달러를 빌려주는 대신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이 바로 자본시장 자유화 및 개방이다. 한마디로 기업(의 주식)을 사고파는 데 대한 모든 규제를 제거해서(자본시장 자유화) 주식만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도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키라는 명령이었다. 동시에 주식시장 개방을 통해 이런 거래를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리고 적대적 M&A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게 했다. 재벌들의 경영권 안정을 보장하던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해체되었고 (적대적) M&A 시장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여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이 개정되었다. 이로써 한국 기업은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주의 질서에 포섭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대폭 허용되어 노동시장도 '유연화'되었다.
그런데 주주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민간 기업만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다. 이왕이면 공기업 역시 주식시장과 M&A 시장에 끌어들이는 것이 수익이 된다. 이에 따라 금융자본은 공기업 민영화와 주식시장 상장을 요구한다. 공기업은 대개 전기와 상하수도, 정책금융 등 수요가 광범위하고 안정적인 기초생활재를 공급하는 거대 기업이다. 이런 공기업을 상장 주식회사로 만들면 그만큼 금융자본이 거래할 수 있는 주식 수가 늘어날 것이다. 또한 의료와 교육 등 사회 서비스 역시 공적 수요가 광범위하고 안정적인데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금융자본에 크게 노출되지 않은 신대륙이자 블루오션이니, 금융자본이 군침을 흘리는 부문이다. 병원과 교육기관의 영리 주식회사화 역시 금융자본주의의 한 속성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경제 전반의 금융자본주의화와 함께 아예 한 나라를 통째로 금융자본이 들어오고 나가기 좋은 지역 즉 금융허브로 만드는 정책이 추진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금융중심, 금융허브 정책이 그랬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 씨가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세계적 규모의 초대형 토종 메가뱅크를 만들겠다는 것도 금융자본주의화를 향한 정책 패키지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말한 여러 요소들, 즉 공공인프라 민영화와 자본시장 자유화, 정리해고, 공기업 민영화, 외환시장 자유화, 사회서비스 영리화, 금융허브, 금융기관 합병을 통한 메가뱅크 창출 등을 사람들은 보통 신자유주의라는 느슨한 명칭으로 부른다. 실제 IMF 사태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 패키지들이기도 하다. 금융자본주의는 주주(주식투자자)라는 단기 금융수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시 한다는 측면에서 주주자본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재벌의 앞잡이'란 욕설까지 들으면서까지 '기업집단'을 중시하는 이유는, 소위 '경제민주화론'에서 주창하는 것처럼 위와 같은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를 통해 기업집단을 약화시키거나 해체시키는 경우 한국 최대기업들이 오히려 더욱 국내외 주식투자자들의 단기적 금융수익 추구에 종속되어 국민경제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언급했듯이, 쌍용그룹 해체 이후 쌍용차의 운명이나 KT 민영화가 바로 주주자본주의적 기업재편의 대표적 사례다. 또한 우리는 금융자본주의 원리가 지금보다 더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경우, 고용안정이나 복지 달성도 더 힘들어지고, 더구나 복지국가에 필수적인 공기업 및 공공인프라의 해체와 상업화가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관되게 해온 것은 다름 아니라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 현상들의 '핵심'에 금융자본주의의 이해관계가 있으며, 위 현상들은 금융자본주의에서 파생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에 비해 정태인 소장의 경우 금융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여러 측면 중 한 측면에 불과하며 그 폐해 역시 재벌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더구나 정태인 소장은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과제에 대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 규제의 강화의 진행에 맞춰서 주주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공조가 언제 이루어질지는 기약이 없다. 이렇게 기약 없는 시간표에 따라 시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정태인 소장에게 있어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교정하는 일은 별로 시급하지 않은 부차적 고려 사안이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가 옹호하는 다른 재벌규제 방안들 즉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과 최저임금 인상, 하청 기업의 집단 교섭권,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소비자 권리 강화 등 역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규제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
정태인 소장이나 이병천 교수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실상의 주주자본주의적 '재벌개혁'(즉 기업집단 약화)에 우리가 찬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를 '재벌 옹호자들'로 규정한다. 그러나 재벌그룹(대기업집단)을 약화시키는 것과 재벌가문을 약화시키는 것은 엄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집단을 약화시키거나 해체하여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국내 최대기업에 대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경우 친노동-친중소기업-복지 정책들도 오히려 빛을 잃고 실행 불가능하다.
우리는 경제민주화 논의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로부터 '재벌을 수천 개의 전문기업들로 분리하자'는 식의 주장이 나오는 것을 우려하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거듭해왔다. 재벌그룹을 해체하여 수천 개의 전문기업을 만드는 것은 경제의 민주화가 아니라 거꾸로 금융자본주의 강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은 이병천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주주자본주의냐 재벌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우리가 만약 양자택일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주주자본주의냐 재벌이냐'가 아니라 '금융자본주의냐, 복지국가냐'이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금융자본주의가 아닌 복지국가의 편에 선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목표에는 정태인 소장이나 이병천 교수도 동의하시리라 생각한다.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 (프레시안, 이병천 강원대 교수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 2012-06-07 오후 1:10:41)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나는 장하준 그룹의 글이 그간 우리 사회에서 재벌이 저질러온 부정, 불법, 편법, 비리와 독점 독식, 무책임, 구사대-용역 동원 폭력 등에 대한 비판은 너무 미약하고 과소한 반면에, 재벌의 장점과 기여에 대해서는 너무 과대 포장하여 치켜세운다고 읽었다. 재벌의 장점과 기여라면, 굳이 진보주의자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그간 당사자인 재벌과 산하 기관/연구원(전경련, 한국경제연구원 등), 재벌을 옹호하고 지원사격한 정/관/언/학계가 우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장황하고 시끄럽게 떠들어 왔던 바이고, 넘치도록 선전 홍보도 해 왔다. 엊그제만 해도 전경련 싱크탱크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 여론몰이를 하면서 헌법 119조 2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위헌적 재벌 만능 주장을 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장하준 그룹이 한국의 재벌이 지닌 양면성, 그 두 얼굴에 대해 너무 불균형하고 비대칭적인 시각과 인식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장하준은 일본식의 급진적인 재벌해체 대안을 말한 때와 거의 같은 시점에서 일본식 길과는 180도 다른,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식 '대타협'안도 제기했다. 그러더니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출자총액제한제나 지주회사 규제강화처럼 엉뚱하게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을 도와주는 방식"(<선택>, p.257)이라고 말할 정도로 극단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장하준은 다른 나라 대기업들의 횡포를 거론하거나 자본주의 기업원리란 원래부터 독재라고 말하면서 한국 재벌총수의 독재를 옹호한다(<선택>, pp. 219-220). 내용적으로 보자면, 장하준 그룹은 재벌과 관련되어 발생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빈곤화 등 한국 사회경제의 주요 문제들, 나아가서는 재벌 조직과 큰 관련 없는 문제조차 거의 다 주주자본주의 탓으로, 재벌체제가 약화된 탓으로 돌린다.
위와 같은 견해를 두고 내가 '재벌 옹호'론, 또는 '재벌 프렌들리' 견해라고 지적한 게,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을 펼치는 것"이 되는가. 좀 납득하기 힘들다.
정승일은 대기업 집단 일반과 재벌 체제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에 대해 매우 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정승일, 장하준은 재벌 개혁을 곧 기업 집단의 해체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그렇게 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재벌 개혁론자 중에서 어떤 논자가 기업집단을 해체하자고 말하고 있는가. 나만 해도 재벌 해체를 주장한 적은 없다.
나는 재벌을 네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진 대기업 집단으로 보고자 한다. 1) 총수 일가의 소유와 지배 또는 통제, 2) 피라미드형 소유로 연결된 기업 집단, 4) 다각적 사업경영, 3) 독과점적 시장지배와 국민경제 지배, 이상 네 가지다. 이런 정의로 보자면, 재벌은 분명 대기업집단의 일종이긴 하나 매우 특수한 대기업 집단이다. 1)~4)에 걸쳐 재벌의 특징이 해체된다 해도 대기업 집단의 특성은 지속될 수도 있고, 재생될 수도 있다. 이는 전후 일본의 재벌 해체와 그 후 기업집단 형성에서 보는 바와 같다. 일본에서 재벌 해체 후의 기업집단은 느슨하게 수평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개별기업의 독립성이 강하다. 그 때문에 총수가문이 수직적으로 통제하면서 피라미드형 소유로 연결된 재벌형 기업집단과는 기업조직의 원리가 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금융자본과 재벌의 이원론/양자택일론을 비판한 나의 지적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를 구별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반박을 했다. 그들은 재벌이 신자유주의 동맹의 핵심 세력이라고 썼던 장하준(과 신장섭)의 이전 논지를 강력히 옹호하면서 나의 '잡종 신자유주의'론에 대해서도 훌륭하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라고, 자신들과 같은 생각이라면서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모순, 또는 자가당착에서 빠져나오는 묘수를 발견한 것 같다. 그 묘수란 다름 아니라, 인물·개인과 제도·정책을 구별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재벌 가문과 그룹체제 또는 대기업 집단을 구별하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면서 사리사욕을 취하는 재벌총수/가문과 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 대기업 집단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들은 인물/세력과 제도/정책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둘은 마땅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물/세력과 제도, 재벌 총수/가문과 재벌체제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처럼, 그렇게 완전히 따로따로 동떨어져 있는가? 재벌총수/가문은 재벌 체제에서, 그 틀 위에서 독점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인물/세력이다. 그리고 재벌체제란 재벌총수/가문들이 독점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제도이다. 즉 인물/세력과 제도는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복합체라는 것이 나의 재반박이다.
권력이야말로 인물/세력인 동시에 제도화된 구조의 수준을 같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도에 내장된 이 권력문제의 존재 때문에 갈등과 그 조절, 타협의 문제가 제기된다. 인물/세력, 제도, 권력 세 수준은 통합되면서 하나의 복합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복합체가 바로 재벌체제다.
장하준 등의 주장대로 총수/일가/가신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주주자본주의, 주식펀드와 타협하고 '의기투합'한다 (<선택>, p. 215, 223-224). 그러나 그간의 연구와 실태를 보면, 총수/일가/가신들은 소액주주와 여타 이해당사자, 여타 계열사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총수가치'(조돈문) 경영을 일삼아 온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배정 사건 등에서 보듯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각종 불법비리 행위가 대표적인 경우다. 또 경영권 승계를 위해 "물량 몰아주기"로 부당 내부거래를 악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그 부담은 소액주주 및 여타 이해당사자에게 전가된다. 총수/일가/가신들이 하는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산업지휘관으로서 조직능력(organizational capacity)을 발휘하여 재벌체제의 중장기 성장과 동태적 효율성을 추구한다.  한국 재벌체제의 작동에서 총수가 하는 역할은 주주가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미국기업의 CEO와는 결코 같지 않다.
주주자본주의와의 타협과 의기투합은 제도로서 재벌 수준과 무관하게, 단지 총수/가문이라는 인물의 수준에서만 일어난다고는 볼 수 없다. 총수/가문이 통제권을 행사하는 재벌제도, 재벌체제 전체가 가동되면서 주주가치와 타협, 공생하는 하나의 축적양식이 작동하고 있다고, 그런 축적양식은 재벌체제 전체를 관통하는 특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주주자본주의와의 타협과 의기투합은 제도로서 재벌 수준과 무관하게, 단지 총수/가문이라는 인물의 수준에서만 일어난다고는 볼 수 없다. 총수/가문이 통제권을 행사하는 재벌제도, 재벌체제 전체가 가동되면서 주주가치와 타협, 공생하는 하나의 축적양식이 작동하고 있다고, 그런 축적양식은 재벌체제 전체를 관통하는 특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독점적 지배력과 승자독식, 경제력 집중 심화를 통해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개방적 협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재벌체제는 이렇게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함을 통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 축적체제를, 다시 말해 재벌과 금융자본이 공생하면서 그 지배 동맹의 공생의 힘으로 노동자와 서민, 취약한 중산층을 양극화 함정으로 몰아넣는 '잡종형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를 밀고 가는 것이다.
인물과 제도,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천리만리로 서로 생이별시켜 놓은 후에 <신자유주의 = 재벌 인물- 재벌제도+ 금융자본>이라는 자못 흥미로운 새 공식을 제시한 장하준 그룹은 자신들이 빠진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땀을 좀 흘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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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 논쟁, 문재인 Vs 안철수 대리전? (미디어스, 냥이관리인 / 진보신당 상근자, 2012.05.31  14:28:02)
[냥이 관리인의 글 숲 방랑기]
<프레시안>을 통해서 전개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론 대 복지국가론'의 대결양상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듯하다. 당초 정태인 원장의 서평에서 촉발된 논쟁은, 장하준 등의 책에서 호명된 경제민주화론자 혹은 좌파신자유주의자들이 하나 둘씩 반론에 나서면서 진영간의 갈등 양상으로까지 비춰진다.
그간 진행된 논쟁의 글들을 약간의 현기증을 감수하고 죽 읽어보면 몇몇 쟁점이 드러나긴 한다. 즉, 재벌개혁론이 사실상 주주자본주의의 강화나 혹은 글로벌 스탠다드의 종속아니냐는 장하준 등의 주장과 재벌과의 타협을 통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달성이라는 것이 허무맹랑하다는 이병천, 정태인의 주장이 그 하나다. 그리고 정태인 원장이 재기한 한국은행의 독립성 문제와 이에 연동되는 금융위원회의 역할 조정도 또 하나의 쟁점이다.
일단 첫 번째 쟁점을 보자. 장하준 등은 과거 참여연대서 주창했던 소액주주운동이나 사외이사제도 등이 사실상 금융세계화를 등에 업은 다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것이었고 외면적으로는 경제민주화라고 불리었지만 사실상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 재편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서, 소액주주운동은 기업의 경영권에 결정적인 제약으로 작용하면서 단기적인 이윤추구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를 우리나라 기업체계에 이식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말한 것처럼 ‘이건희가 싫다고 삼성을 죽이는 방법을 주장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경제민주화론자 혹은 재벌개혁론자로 지칭된 정태인은 이런 장하준 식의 접근법이 우리 사회가 재벌의 과두체계라는 점을 직시하지 못하는 외부자의 시선에 불과하며 이들이 왜곡해놓은 분배구조를 바꿔놓지 않은 상태에서 보편적인 복지국가를 만든다 해도 정작 서민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반박한다. 이병천은 ‘주주자본주의냐 재벌이냐'라는 양자 택일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면서 재벌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소위 '박정희' 이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왜곡된 경제구조'를 바꿀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
조금은 생뚱맞지만,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논쟁을 보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대까지 남미 등 제3세계를 풍미했던 종속이론이 떠올랐다. 종속이론이란 제3세계가 발전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부적인 미성숙 혹은 전근대성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상태를 강제하는 세계적인 자본주의 구조에 따른 강제, 그리고 이를 통해서 독점적인 이익을 얻는 국내 자본과 국가, 그리고 국제 자본간의 지배블럭을 통해서 형성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제3세계가 저발전 상태에 있는 것은 이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구조 때문이며, 이를 관철시키는 힘은 단순히 외국 자본이 아니라 이를 대리하는 정부관료와 국내 대자본이라는 말이다.
장하준 등은 재벌개혁이라는 것이 결국은 금융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라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국내에 이식시키려는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적 기획으로 파악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대신 이들과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사회적 타협이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다시 말해, 이런 구조에서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설사 그 선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구조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이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반면, 정태인 등은 국내 재벌이 세계 경제 내에서 공격받는 약자라는 측면보다는 국내 경제를 잠식하는 포식자로 이에 대한 개혁없이는 어떤 경제적 조치도 효과가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장하준 등이 말하는 소액주주운동 등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국내 재벌의 특수성에 비춰 보면 그것이 긍정적인 측면이 오히려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태인이 한국은행 독립문제에 대해 장하준이 미국이나 유럽의 상황이라는 렌즈를 무비판적으로 국내 상황에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시각으로 이 논쟁을 바라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경제체제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대선을 앞둔 정치적 논쟁이라는 틀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태인이 언급한 바 대로 장하준 등의 ‘이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책은 유종일, 김상조 등이 참여한 ‘박정희의 맨얼굴'이라는 책에 대한 비판서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박정희 체제의 장기지속이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개혁해야지만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데,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 재벌 개혁을 필두로 하는 경제민주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장하준 등은 박정희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97년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오히려 세계자본주의의 문제점인 금융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라는 문제점은 박정희식의 개발독재에 대한 비판으로는 극복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단순화시키면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개혁정부의 재벌개혁론이 사실상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었는지 아니면 공고한 개발독재에 의해 좌절된 경제민주화 노력이었는지가 이 논쟁의 정치적 맥락이다. 결국 유력 대선 후보군에서 보자면, 친노를 표방하고 있는 문재인인가 아니면 보수와 진보라는 양자에 걸쳐있는 안철수인가라는 문제가 된다.
물론 과도한 오독일 수 있겠지만, 서로 간에 쟁점이 좁혀지지 않는 것은 각 진영이 서로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각자가 내건 경제 개혁 프로그램들의 성패는 실제로 정책으로 시도해볼 때 그 공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장하준 등은 안철수에서 박근혜까지의 스펙트럼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정태인, 이상조 등은 문재인에서 김두관까지 가능하겠다. 이상은 왜 양자가 양측의 입장을 종합할 생각이 없을까 라고 고민하다가 떠오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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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와 삼성 구별 못하나” “수구적 진보”…재벌개혁 논쟁 (한겨레, 류이근 기자, 2012.05.29 19:49)
장하준 ‘좌파 신자유주의’ 비판에 정태인 “재벌 경영권만 보호” 반박
이병천 “재벌 프렌들리” 가세, 장하준쪽 “이건희·삼성 구분못해”
박정희 체제서 양극화 해법까지 한국경제 성격 논쟁으로 번져
재벌활용-재벌개혁 대충돌

진보진영 내부의 재벌개혁 논쟁을 일으킨 실마리는, 대척점에 있는 두 단어를 합성한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 비판서였다. 문제의 책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 및 운영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가 함께 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이다. 선택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은 낡은 화두다”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그러면서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진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선언한다.
‘선택’은 경제학의 전통적 주제였던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서 국가를 우위에 둔다. 재벌 개혁론자나 시장 개혁론자 등을 포함해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진보적 학자군에 대해선 국가의 개입보다 시장을 우위에 두고 있다고 의심한다. 장하준 교수 등 3인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반드시 통제된 시장을 필요로 한다”며 “좌파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의 합리성과 투명성, 효율성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가의 시장 통제와 개입에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택은 특히 진보·개혁 진영의 소액주주운동이 신자유주의적인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선택과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쓴 ‘종횡무진 한국 경제-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하라’란 두 책에 대한 서평에서 “허망하게도 ‘선택’은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썼다. 그는 또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운동이 뜻을 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면 복지국가 운동도 같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프레시안>에 장하준 등 3인의 주장에 답하는 형식의 4차례에 걸친 반박글을 띄웠다. 이 교수는 “(선택은) 주주자본주의냐 재벌이냐를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사실상 재벌 프렌들리(friendly)한 그들(장하준 등 3인)의 복지국가론”을 비판했다.
논쟁의 대척점은 한국 사회의 최대권력의 하나로 떠오른 재벌과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결정적으로 갈린다. 장하준 교수 등은 “경영권은 보장해 줄 테니, 세금을 왕창 내서 복지국가 만드는 걸 도와달라”고 말할 만큼 재벌의 경영권 보장과 복지 재원의 확보가 ‘타협’ 가능하다고 본다. 재벌그룹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 이런 태도가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을 펴온 재벌 개혁론자들을 비판하면서 논쟁은 다소 감정적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장하준을 “재벌체제 개혁에 딴죽을 거는 수구적 진보파”라고 비판했다.
한국 경제의 현재적 모순과 박정희식 경제 모델의 상관 관계도 논쟁거리다. 장하준 등은 “이른바 경제민주화론자들은 (<박정희의 맨얼굴>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빈부격차 심화와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의 주원인이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재벌과 관치, 토건주의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올바른 인식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가 처한 문제는 30년 전의 박정희 탓이 아닌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한겨레21>에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도 크지만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끼친 악영향이 얼마나 큰데, 이에 눈감는 태무심은 정말 놀랍다”고 썼다. 장하준 등은 한국 경제의 현재적 모순의 근원을 신자유주의에 둔 반면에 이정우 교수 등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잔재에 커다란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논쟁이 격화되자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중재자로 나섰다. 그는 “주주자본주의 타파론자인 장하준 등은 ‘계열사-그룹 체제’의 계승에 강조점을 두고 있고, 반면 재벌개혁론을 강조하는 김상조-이병천 등은 ‘총수 지배 체제’의 극복을 강조하고 있다”며 “양자 모두 복지국가의 확대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란 양쪽의 지향점이 같은 만큼 논쟁이 생산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중에도 논쟁은 쉽사리 접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격화되고 있다. 장하준 등은 28일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란 글에서 “책에서 재벌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 말고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재벌 합리화론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요 중상 비방”이라며 “인물(재벌가)과 제도(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자들을 겨냥했다. 아직까지 논쟁은 인터넷과 주간지 등 제한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문제의 책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박정희식 경제 모델의 성과와 한계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사회적 논쟁으로 점차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재벌개혁이냐 재벌활용이냐…진보의 백가쟁명 (한겨레, 곽정수 기자, 2012.05.29 20:31)
장하준 “재벌과 대타협해야”
정태인·이병천 “재벌옹호” 비판
대선앞 경제민주화 논쟁 확산

장 교수 등은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라는 부제가 달린 글에서 “우리가 재벌을 신자유주의적 피해자인 양 엉터리로 묘사했다고 비판한 것은 개인(재벌 가족과 가신들)과 제도(대기업과 재벌)를 구별하지 않아 생긴 오해”라며 “재벌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다는 점을 곡해해, 마치 우리가 이건희·정몽구와 같은 재벌 가문과 가신그룹의 이해관계와 불법행위들까지 옹호하는 양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 쪽은 재벌기업에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세금을 더 내도록 해 그 돈으로 복지를 확충하는 식의 타협을 주장한다.
이병천 교수는 “그동안 양쪽 간에 충분한 토론이 미흡했는데, 제대로 된 소통이 시작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제적인 학자로 한국 사회에도 영향력이 있는 장 교수와 제2의 민주화로 불리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논쟁하는 것은 학술적, 사회경제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개혁진보 진영은 그동안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론을 공통 화두로 삼으면서도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둘러싸고는 이견을 보여, 본격적인 토론을 벌인 적이 없었다. 이번 논쟁은 개혁진보 진영 안에서도 재벌 비판을 넘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과 성장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장하준, 한국재벌 공부가 안돼 있다” “착한 자본주의? 사람들 속이는 것” (한겨레, 김진철 류이근 기자, 2012.05.30 21:30)
[재벌개혁 논쟁] 대표적 재벌개혁론자 김기원 교수 “장하준, 한국재벌 공부가 안돼 있다”
“장하준 교수는 한국 현실, 특히 재벌에 대해 너무나 잘못 알고 있고 공부가 안 돼 있다. 게다가 이념에 사로 잡혀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로 꼽히는 김기원 교수(방송통신대 경제학과)는 30일 전화 인터뷰에서 “장하준 교수 쪽은 재벌개혁에 딴죽을 걸면서 재벌을 활용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그의 사회적 재벌활용론 또는 사회적 대타협론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재벌의 경영권을 안정시켜주고 세금을 많이 내게 해서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게 그쪽(장하준)의 주장이다. 세금을 많이 내라는 데 대해선 재벌들이 콧방귀도 안 뀌니 불가능하다. 경영권 안정이란 이미 현재 재벌총수들의 경영권은 안정화돼 있으므로 결국 세습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건데,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무능력한 재벌 3~4세들이 최고경영자 지위에 올라서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처럼 그룹과 나라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재벌은 일종의 반체제 사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러
-장하준 교수는, 재벌개혁론자들이 재벌의 긍정적 기능까지 부정한다고 비판한다.
“왜곡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있다. 과거 재벌은 고도성장의 견인차로서 긍정적 측면이 부정적 측면보다 많았다. 하지만 2~3세로 가면서 재벌총수는 지분이 희석되고 소액주주가 됐다. 그러나 재벌의 힘은 너무나 커졌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종의 반체제 사범이 된 것이다. 이게 재벌체제의 모순이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은 필요조건이고 민주주의적 견제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이걸 시장만능주의니 주주자본주의니 하면서 비판하고 있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김 교수는 “장 교수가 개발시대와 복지시대의 차별성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박정희 개발시대와 오늘날 복지시대의 논리가 다르다. 복지를 강화해야 하고 금융 규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다만 복지를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일 것인가 하는 데 대한 고민이 장 교수에게 없다. 우리 사회에 대한 재벌의 부당한 지배력이 확대되고 사회는 오염되고 있다. 정계·관계·학계·법조계·언론계를 모두 주무르고 있는데, 어떻게 복지 강화를 위한 증세가 이뤄질 수 있겠나. 재벌의 부당한 힘이 약화되도록 재벌개혁을 해서 복지 위한 세금을 충당해야 한다.”
정·관·학·법조·언론계를 모두 재벌이 주무르고 있는데 어떻게 증세가 이뤄질 수 있겠나
-재벌개혁 주장은 곧 재벌을 해체하자는 주장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장 교수 쪽은 있지도 않은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다. 재벌개혁론자들 중 기업집단을 해체시키자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그럼 기업집단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룹 계열사들 사이에서 일정한 자율성과 협력성,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 장 교수는 ‘선단경영’의 효과를 과대하게 보고 있다. 쌍용차가 재벌체제에서 빠져나와서 망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쌍용그룹 안에 있을 때 이미 쌍용차는 어렵게 됐다. 대우차가 재벌체제 안에 있어서 망한 것도 아니다. 재벌체제가 결정적인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이걸 (장 교수는) 한두가지 개념틀로 덮어버린다. 주주자본주의와 시장만능주의는 악이라는 단순논리 때문에, 내가 장 교수를 수구적 진보파라고 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본인 역시 ‘재벌활용론’이라면서 “다만, 재벌을 개혁해서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벌개혁론자들은 재벌의 긍정적인 면은 살리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고자 한다. 성장의 주체라는 면은 살리고 재벌총수의 부패나 무능이라는 부분과 재벌이 사회를 오염시켜서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한다.” 김 교수는 “한국은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자본주의”라며 ‘특경가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강화론’을 주장했다.
 
장하준과 공저 출간 정승일 위원 “착한 자본주의? 사람들 속이는 것”
정승일 위원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에서 던진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의 맞교환’으로 해석되는 이른바 ‘대타협’이다. 정승일 위원은 30일에 이뤄진 전화 인터뷰에서 ‘오해’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문제를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를 맞바꾸자라는 식으로 단순화해서 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대타협이 당장은 불가능하다. 이건희(삼성전자 회장)와 구본무(엘지그룹 회장)가 미쳤냐? 만약 세금을 (소득의) 75% 내라고 하면 받아들이겠냐? 앞으로 5년, 10년은 재벌과 싸울 수밖에 없다. 대타협에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장하준 교수와 정 위원이 말하는 ‘타협’이란 정확히 말해 “재벌로부터 세금을 더 걷되 가급적 재벌의 소유권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재벌 활용론’이란 것도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정 위원 등은 분명 재벌체제의 효용성을 인정한다. 그는 “쓸데없이 재벌을 깨야 한다는 얘기를 하지 말자”며 “계열사 상호지원은 이건희 회장이 맨 위에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을 계열 분리시켜 다른 회사나 사모펀드에 넘긴다면, 이게 무슨 진보냐”고 덧붙였다.
이들은 재벌체제를 긍정하는 대신 재벌가에 세금을 더 많이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재벌개혁의 핵심이라는 입장이다. 정 위원은 “재벌개혁의 핵심은 재벌의 해체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 공공의 산물을 독점하는 재벌가의 ‘불로소득’을 어떻게 회수하냐의 문제”라며 “소유를 재편하는 게 아니라 소득을 재편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미국과 스웨덴 등의 사례를 들어 최고 75%의 소득세율을 물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 위원 등이 재벌개혁론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김상조(한성대 교수)나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의 재벌개혁은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웨덴식 복지국가 만들자는 것
부자들 세금 더 걷되 가급적 소유권은 건드리지 말자

-장하준 교수와 당신을 ‘재벌옹호론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편법 상속과 증여가 밝혀졌을 때 우린 이건희 회장을 감옥으로 보냈어야 한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이다. 또 삼성전자엔 반드시 노조를 만들도록 법으로라도 강제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우리도) 재벌개혁을 반대하지 않는다. 찬성한다. 다만 그 방향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옹호하는 것은 대기업 집단이지 재벌 패밀리(가문)가 아니다. 재벌 패밀리 잡겠다고 재벌 해체하려는 것은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것이다.”
-재벌개혁론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본인들은 부인하지만 결과적으로 주주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재벌개혁이다. 재벌체제를 넘어선 ‘착한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것은 별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 대신 안철수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을 쓰자는 식의 ‘착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잠깐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대주주를 소액주주로 바꾼다고 재벌의 문제 해결되지 않아
재벌 경영의 장점은 인정해야

-당신과 장 교수가 박정희 체제의 옹호론자란 비판도 있다.
“듣기 불편하다. 그건 중상비방이다. 박정희는 파시스트다. 파시스트 같은 사람을 존경하는 게 아니라, 다만 은행 국유화와 정책금융 등의 몇 가지 요소를 옹호할 뿐이다.”
그는 ‘선택’ 출간을 계기로 불붙은 논쟁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진보가 어떤 미래비전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이번 논쟁을 4·11 총선 이전에 했어야 한다. 그래야 총선판이 제대로 짜였을 것이다. 대선에서 진다고 해도 이후 진보세력이 희망을 가지려면 대선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정비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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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논의 관련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816142357
노동자의 경영 참여,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단계 (프레시안,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2012-08-16 오후 3:31:09)
[김윤태 칼럼]<2>경제자유화만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의 한계
2012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에 경제민주화가 최대 이슈로 부각했다. 지난 7월 22일 참여연대와 우리리서치가 조사한 '경제민주화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0.1%가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현재 경제민주화의 쟁점은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서두른 대기업 위주 정책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촉발했다. 재벌이 중소기업의 단가를 후려치고, 슈퍼마켓과 빵가게로 동네 상권까지 위협하자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 이제 모든 경제문제의 근원이 재벌의 탐욕 때문인 것처럼 공격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한국 재벌의 탐욕은 가공할 수준이다.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부유층은 특권적 신분이 되었고, 소수의 특권층이 대물림을 하고 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재벌 2세, 3세가 세금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기업을 물려받고 있다. 미국의 철강 재벌 앤드류 카네기는 "상속은 자식들을 망치게 된다"고 말했지만, 한국에서 재벌의 세습은 우수한 유전자를 세습하는 것처럼 당연한 논리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선출되지 않은 재벌의 힘은 국가 정책을 좌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20세기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복지국가
지금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쟁에는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다. 18세기 서구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인 사유재산과 경영자의 권력에 관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19세기 유럽의 노동조합운동의 경제 민주화 요구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국유화를 지지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페이비언협회를 주도한 시드니 웨브는 "민주주의의 필연적 결과는 정치조직뿐 아니라 부의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 통제"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만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한 반면,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다른 사회민주주의라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인정하는 대신 철도, 전력, 통신 등 주요 산업만 국가소유 또는 공공소유로 바꾸었다. 사적소유로 발생하는 불평등은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와 복지정책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경제적 민주화 요구는 혼합경제(영국), 사회적 시장경제(독일), 기업자주관리(유고슬라비아), 임노동자 기금(스웨덴) 등 다양한 논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복지국가'가 바로 경제민주화의 핵심 내용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독점자본의 사적 소유가 가장 집중되었지만, 가장 평등주의적 복지국가를 유지했다.
어떻게 경제자유화가 경제민주화로 변신했는가?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재벌들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부는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정부는 단계적인 경제 자유화 정책과 함께 재벌 그룹의 가족 지배와 경제 집중을 제한하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도입했다. 이 때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이 도입한 경제 자유화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재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그 후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도 집권 초기마다 재벌들의 기업 확대와 족벌 경영을 약화시키기 위해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기업 공개 등 재벌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의 정치적 수사와 달리 재벌의 경제 집중은 갈수록 심화되었다. 그러자 1990년대 경실련과 참여연대가 등장하면서 재벌 개혁은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제기한 경제민주화 요구 역시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민단체가 재벌 개혁의 모델로 참고한 것은 1930년대 미국의 독점규제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김재익의 경제자유화 이데올로기는 시민운동에 의해 경제민주화로 둔갑했다. 1880년대 이후 미국 경제를 지배했던 대규모 기업합동집단(트러스트)은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연방정부의 조세개혁을 통해 해체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부를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산업구조조정을 비롯한 뉴딜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트러스트가 해체되면서 주식시장을 통한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대규모 은행과 투자은행, 사모펀드가 사실상 대기업을 통제하면서 미국은 주주 권리, 이윤 중시 경영을 강조하는 주주 자본주의로 발전했다. 이러한 경제모델은 정부와 거대 은행이 함께 대기업을 통제하고 노동조합, 소비자,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유럽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매우 달랐다.
경제자유화만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의 한계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김대중 정부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논리가 재벌개혁을 주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의 지배구조를 정상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재벌개혁을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는 상당수 시중은행을 외국자본에 매각하고 대우, 삼미, 해태 등 다수의 재벌그룹을 전격적으로 해체했다. 이 당시 많은 시민단체는 재벌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주요 재벌 대기업의 주주총회에 나타나 '총수 경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재벌 총수 일가가 소수의 주식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챙기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무시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재벌 총수의 기업 지배를 개혁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주 가치를 강조하는 재벌개혁론은 미국 월가의 주장을 그대로 추종하여 재벌 대기업을 공격하는 논리로 이용되었다. 당시 재벌의 불법 상속과 세습을 비판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한 시민단체의 활동은 순수한 동기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선한 도덕적 의지와 달리 구조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대기업과 은행의 주식을 대거 매입한 외국자본은 더 많은 주주 배당을 요구했다. 주주 가치를 실현하고 소액 주주의 권리를 찾기 위한 당연한 노력일 것이다. 이에 따라 재벌 대기업은 새로운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의 노력은 줄이는 대신 해외 주주에 대한 배당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재벌개혁론은 결국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이 되었다. 미국의 주주자본주의 이론은 한국에서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부 시민단체의 노력을 통해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노동자의 경영 참가,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단계
경제민주화는 지금도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세계 각국의 경제 민주화 논쟁은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1960년대 이후 서구와 북미의 경제에서 경제 민주화의 쟁점은 작업장 민주화, 산업 민주주의의 확대, 노동자의 경영 참가 등이다. 노동자 기업, 협동조합, 종업원 주식소유 제도(ESOP) 등 다양한 노동자 소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동시에 이윤 배분제와 같은 소득 배분 참가, 노동자 경영 참가를 위한 공동결정제도, 노동자의 기업 이사회 참여를 제도화하는 노력이 실현되었다. 이렇듯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다양한 정책 대안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매우 제한적이다.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금산 분리 등 주요 정책과 제도 개혁의 방향은 주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다. 이러한 관점에는 어떻게 한국의 대기업이 장기적 성장동력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지, 어떻게 질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고 우수한 인적자본을 강화할지, 어떻게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복지제도를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지 구체적인 전략이 없다. 재벌 총수 일가가 물러나고, 경쟁을 강화하고, 투명성이 커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민은행처럼 해외 주주에 대한 배당을 확대하고, 현대모비스처럼 비정규직 채용만 늘리고, 쌍용자동차처럼 해외자본이 떠나버려도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제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되찾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며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한했다. 재벌 대기업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새로운 참여적 발전모델은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조직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대기업도 노동조합, 소비자, 시민사회조직과 갈등적 관계가 아니라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서로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협력을 추진하는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종업원지주제, 노동조합의 이사 선임,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통한 산업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복지국가와 노동자 경영 참가를 요구하라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제한, 불법 상속 엄벌과 같은 개별 제도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의 유형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이다. 현재의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를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로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민주화라는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민생과 연결된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 중소상공인과 서민이 공감하는 불공정 하도급,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 사회보험 확대 등이 부각되어야 한다. 이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정책의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정책이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고 미국식 경제체제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작동하는 경쟁, 효율성, 투명성의 원리가 곧 바로 사회 전체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지지한다고 해서 사회통합의 가치를 외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 대신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를 주목해야 한다. 정부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행정,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사협력 체제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필수 요소이다.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해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생산성과 평등주의적 복지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를 복지국가를 통해 효과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추구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실행하고,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사회적 타협을 추진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노사간 상호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는 기업의 주주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다.
이 글의 일부 내용은 김윤태의 '한국의 재벌과 발전국가: 고도성장, 독재, 지배계급의 형성'(한울출판사, 2012년 출간예정)에서 인용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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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타협론과 재벌개혁론, 노동자를 위한 선택지는 없다 (월간 사회운동 2012년 7-8월호 | 통권 107호, 박상은 |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와 그를 둘러싼 한국경제 성격 논쟁에 대한 비평
이제 와서 서평을 쓰기에는 상당히 늦었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대담을 담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선택』)가 지난 3월에 출간된 이후, 이 책에 대한 수많은 서평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이를 계기로 경제학자들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프레시안》에서는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이라는 이름으로 장하준 그룹과 이를 비판하는 이병천, 정태인 등의 논쟁을 연재하고 있다. 《프레시안》뿐만 아니라 《레디앙》, 《한겨레21》에서도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논쟁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한 『선택』과 이를 비판하는 재벌개혁론의 두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양자를 모두 비판하는 이들의 글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재벌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주장의 폭은 더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양상이다.
대결의 두 축은 재벌타협론과 재벌개혁론이다. 한쪽은 ‘재벌 가문과 우리 사회가 타협해 경영권을 보장하는 법적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 주되, 노동이나 복지, 세제 등에서 재벌의 양보를 얻어내자’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은 ‘재벌 개혁의 부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장경제 기본질서의 파괴’가 가장 시급한 문제이며, ‘삼성 동물원 상황을 극복하는 재벌개혁’을 무엇보다 먼저 수행해야 할 과제로 본다.
재벌의 착취와 수탈에 시달리는 당사자이자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들은, 대체 이 두 축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둘 중 그 어느 것도 노동자를 위한 선택지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재벌의 착취와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한다. 이 글은 경제위기 정세에서 민주노총을 포함한 진보진영이 재벌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를 제안하기 위해 『선택』과 그를 둘러싼 한국경제 성격 논쟁에 대해 논평한다.
『선택』: 재벌과의 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
『선택』은 시종일관 ‘경제민주화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주장을 비판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어 온 재벌 개혁은 민주화 운동의 외양을 띠고 있었지만 노동자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을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재벌개혁론자들이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를 ‘경제민주화’로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진보진영이 은행을 재벌에 파는 것은 반대했지만, 해외매각은 그냥 두고 보거나 오히려 환영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이명박과 김대중-노무현의 대립을 강조하면서 마치 김대중-노무현으로의 회귀가 한국사회의 대단한 진보인양 호도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선택』은 경제민주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가 있다.
이들은 현재 경제위기와 국민들을 수탈하는 경제체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주주자본주의’를 꼽는다.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의 착취도, 비정규직 문제도, 고용없는 성장도,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 것도 모두 주주자본주의 때문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주주자본주의라는 용어는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와 거의 비슷한 용어로 사용된다. 이들의 용어법에서, 금융자본주의는 금융이 실물보다 우위에 선 자본주의를 가리키고, 주주자본주의는 이러한 금융자본주의 하에서 주식 투자자들의 이익 극대화를 기업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조류를 가리킨다. 또한 이들은 김대중-노무현과 이명박 정부의 차이를 좌파 신자유주의와 우파 신자유주의로 나누어 설명한다. 좌파 신자유주의는 노무현·클린턴·블레어의 신자유주의로, ‘공정한 시장질서’를 강조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시장 독점을 경계하고 기업집단에 적대적이며 금융시장 자유화를 강조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대목에서는 멈칫거린다. 우파 신자유주의라 부를만한 경향은 이명박·레이건·대처의 신자유주의로, 노동시장의 완전한 유연화를 주장하고, 독점 대기업도 용인한다.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에서 주주자본주의는 IMF를 통해 도입되었는데, 재벌 가문은 자신들의 경영권 수성을 위해 주식 펀드들과 일종의 타협을 했다. 그러나 『선택』은 재벌이 국가의 기간산업을 책임지고 있고, 신사업 투자도 재벌밖에 할 수 없으므로, 국민경제에 유효한 측면이 여전히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삼성과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 기업을 키워낸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에서 본받을 점이 있다고 본다. 이들이 볼 때,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재벌 해체는 답이 아니다. 대신 이들은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함으로써 재벌 가문에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는 대가로 재벌이 복지국가 건설에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재벌과 주식 펀드들과의 타협을 재벌과 국민과의 타협으로 돌리자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렇게 건설될 복지국가는 단지 분배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포괄적 대안을 의미한다. 복지국가는 단지 최빈곤층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가 재교육을 통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산업 고도화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들은 연대임금을 통해 한계 기업들을 정리하면서 국가 전체의 산업고도화를 이루어 낸 스웨덴을 모범 사례로 제시한다. 또한 이들은 복지국가 운동 자체가 재벌 대기업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에, 복지국가 운동과 경제 민주화 운동이 따로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노동자운동의 역할도 강조한다. ‘노동 있는 복지’가 가능하려면 강력한 산별노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산별노조는 노동자운동에만 맡겨둔다고 건설되지 않고 국가가 나서야만 가능하다. 민주노총은 기업별 노조에 안주하며 말로만 산별노조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면 정말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까? 재벌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시민들의 여론에 쉽게 압박받을까? 퇴출된 노동자를 재교육시켜 새로운 산업에 투입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은 바람직한가? ‘이해당사자’의 한 축으로서 산별노조를 정립하는 것이 민주노조가 지향해야 할 방향인가?
이병천, 정태인: 재벌개혁은 복지국가로 가는데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
이러한 『선택』의 주장에 대해 이병천과 정태인은 ‘재벌옹호론’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선택』은 재벌이 마치 주주들에게 억압당하는 것처럼 말한다. 가령 “주식 투자자들이 ‘왜 지난해보다 이윤이 줄었냐’ ‘왜 배당을 덜 하냐’ ‘회사 주가가 어쩌다가 내려갔냐’고 떠드는데, 대기업들이 하청 기업이라고 봐 줄 수 있겠냐”라거나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국제 금융 자본이 만들어 놓은 주주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적대적 M&A 위기를 피하려고 미리미리 알아서 챙기는 거다”라는 식이다. 또 『선택』은 외국자본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국내자본은 여론이나 정치권이 압박하여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본다. 이런 대목에서는 저자들이 이윤 최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자본의 기본적인 성격이라는 사실을 과연 인식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 점에서 “수탈할 수 있는데도 타협하는 자본이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태인의 지적은 타당하다.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해법의 기본은 재벌과의 ‘빅딜’이 아니라 재벌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병천으로서는 『선택』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는 장하준 등이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주주자본주의’라는 규정 자체가 오류라고 생각한다. 1997년 이후 한국기업이 주주가치 추구 경영으로 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경제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같이 금융분야에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고 월가와 같은 금융권력도 없다. 오히려 제조업의 위상이 강화되었으며, 높은 사내유보율과 지분법 이익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재벌체제의 특성이 존속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냉전 반공주의 개발독재체제의 역사적 유산 위에 올라타면서 생긴, ‘잡종형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한다.
이병천은 『선택』이 박정희의 발전국가론을 옹호하는 것에 대해서 특히 심혈을 기울여 비판한다. 그는 이들이 냉전 반공의 정치·경제 체제로서 한국의 개발독재가 얼마나 억압적인 노동규율에 입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박정희 체제에는 국가의 재벌 지원에 따른 성과규율과 함께 노동규율도 작용했다. 억압적 노동규율이 재벌주도 고투자를 가능케 한 계급적 조건이었는데도, 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병천은 복지국가 발전체제로 가는 경로에서 대기업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한 스웨덴보다 중소기업 천국인 덴마크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의 재벌이 사회적 대타협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 인식 속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재벌과의 타협 상대가 되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어려워지고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태인은 한층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 한국에는 노동자-자본 간의 힘의 균형이 없기도 하거니와,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 기업의 수탈에 있어서 국내외 주주 집단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길은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민들의 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과 금융화
그러나 『선택』의 저자들이나 그 비판자들이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오류가 있다. 통상 신자유주의는 시장주의, 작은 정부, 민영화 등으로 이해된다. 『선택』도 이와 유사하게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사실 신보수주의의 표어다. 레이건·대처가 대표하는 신보수주의는 ‘정책의 무력성’을 강조하지만, 클린턴·블레어가 대표하는 신자유주의는 ‘정책개혁’을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동반하는 근로연계 복지, 완만한 인플레와 유연한 화폐정책, IMF 등과 같은 국제기구의 경제개입 옹호 등을 특징으로 한다. 『선택』이 노무현(클린턴·블레어)과 이명박(레이건·대처)을 좌-우파 신자유주의로 구분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하에서 거시경제적 관리라는 국가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화한다고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선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적 대안으로 국가주의적 정책을 제시한다.
이병천은 ‘주주가치 추구와 재벌 체제의 공생’을 이야기하면서 한국경제가 금융화했다는 진단을 유보한다. 그러나 한국의 GDP대비 주식시가총액은 1987년 40%대에서 2005년에는 80%를 넘어섰고, 주식시장의 활동성은 미국 다음으로 높다. 또한 제조업의 금융적 투자자산 대비 유형자산의 비율도 외환위기 전 20% 미만에서 외환위기 이후 37%이상으로 높아졌다. 기업의 영업이익 중 배당금으로 지불한 크기 역시 점점 증가 중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주식시장을 통해 외국인이 재벌을 지배하는 것이다. 도합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경우 외국인이 각각 40-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선택』이 쌍용자동차에 대해 ‘무더기 정리해고는 재벌이 저지른 게 아니라 재벌 해체로 인해 불거진 비극적 사태’라고 진단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완전히 잘못 파악한 것이긴 하지만, 기업이 국외로 매각되면 ‘먹튀’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국부유출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병천은 금융의 자유화와 세계화를 통해 노동자들이 애써 생산한 잉여가치나 국부가 유출되는 메커니즘을 강조하지 않는다.
『선택』의 주저자인 장하준은 ‘자본주의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로 인식한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구조적인 위기이다. 1970년대 이후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여 금융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출현했다. 즉 신자유주의 금융화는 1970년대 이윤율 하락에 대해 반작용한 결과다.
한국역시 이윤율이 1979-1980년과 1997년 외환위기 시기 급락하였는데, 이는 세계 구조적 위기 정세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우선 1979-1980년 불황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거시적 안정화, 미시적 구조조정’을 기조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출현한다. 사실 재벌의 대마불사라는 말은 이 시기에 생겨났는데, 당시 재벌의 저항으로 이러한 정책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재벌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하거나 3저 호황으로 인해 그 필요성이 사라지는 등 부침을 겪었으나, 자본은 이윤율 하락에 대응하여 고정자본 증대를 통해 이윤량을 증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과잉중복투자를 야기하여 1997년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위기와 외환위기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런 맥락에서 1997년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과도기에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로 진입하는 계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각종 금융 자유화 조치에 동반해서 주식시장에서의 투명성과 신용도를 제고하기 위한 기업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재벌개혁을 진행했다. 이른바 ‘신흥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립하려는 목적이었다. 재벌개혁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결과는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증가와 같은 노동신축화로 나타났다.
위기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선택』은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하면 금융시장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실물경제 부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기만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이전의 여러 제도를 해체한 것은 맞지만, 그 중 일부를 부활시킨다고 해서 현재의 경제위기가 쉽게 해결될 수는 없다. 케인즈주의적 금융억압은 대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이처럼 금융을 억압하면 실물경제가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는 가정은 1970년대 이후 구조적 위기의 원인을 간과한다. 『선택』의 주저자인 장하준은 자본주의에 다양한 형태가 있다고 보고 이를 비교하여 더 나은 자본주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유형을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와 ‘조정된 시장경제’로 구분하면서 금융자본주의로 귀결된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옹호한다. 조정된 시장경제에서는 국가가 케인즈주의적 정책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시장을 조정하기 때문에 더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하준이 특히 박정희의 발전국가에 주목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과거의 발전국가 모델을 재현하여 복지국가를 실현하자는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발전국가나 북유럽의 복지국가가 미국 헤게모니의 확립과 위기 속에서 형성, 변화한 역사적 맥락을 간과한다. 1970년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발전주의는 냉전 체제 하 미국의 역개방정책에 의존해서 성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냉전 체제의 이완과 미국의 경상적자 누적으로 역개방정책이 철회된 이후, 한국은 발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환했다. 동시에 복지국가도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혁’됐다. 따라서 지금 발전국가로의 복귀를 통해 스웨덴 모델로 진보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실 스웨덴 모델이 형성된 배경에는, 스웨덴이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 간의 제휴라는 조건 외에도 1-2차 세계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이후 강력한 수출지향 공업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는 지정학적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천은 『선택』과 달리 박정희의 발전국가를 비판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덴마크 모델이 한국적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에서 성장기 스웨덴이나 독일에서 제도화된 코포러티즘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유럽의 코포러티즘은 장기 불황과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코포러티즘’으로 변질되었다. 김대중-노무현의 코포러티즘은 실상 노동자들에게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를 강제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재벌의 성장과 착취의 심화
경제위기로 인해 자본간 경쟁이 격화되고 상품 실현 경로가 불확실해지면서 재벌은 생산을 통한 가치창출로 수익을 획득하던 기존의 방식을 변화하여 가치이전, 즉 다른 곳에서 창출된 잉여가치를 자신의 몫으로 흡수하는 전략을 보다 강조하게 되었다. 잉여가치의 이전전략에는 부등가교환 강화와 금융수익 추구가 있는데, 한국의 재벌은 특히 부등가교환 강화, 즉 종속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기존 하위부품기업들에 대한 단가인하 등의 통제를 강화한다.
재벌은 『선택』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주주자본주의와 사이좋게 잘 지내려다 보니 비정규직 늘리고, 하청 단가 낮추고, 노동자와 중소기업들 희생시키는”것은 아니다. 재벌의 하청계열화는 비단 주주의 이해에 부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내부적 평가절하’에 치중하는 한국 특유의 착취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선택』은 “한국 경제가 IMF를 빨리 수습한 건 1998년부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수출이 크게 신장되면서 외환 보유고가 늘었기 때문”이며, 규모의 경제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구조조정 및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성장전략이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했다는 사실을 애써 간과한다.
경제위기 상황으로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이어지던 2009년 현대차는 창사 이래 가장 큰 수익을 올렸다. 2009년 매출은 전년에 비해 1% 가량 감소했지만,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하청업체의 납품 단가 인하와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의 해고를 통한 과감한 비용 절감으로 영업이익을 19%나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차와 같은 재벌은 세계 경제 위기 와중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한 걸음 더 발전했다.
한국의 재벌 체제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하청계열화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이는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지 주주들의 영향을 줄이고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재벌이 중소기업을 생각하고 비정규직을 고려하여 위계화된 하청계열화 구조를 개선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재벌은 2007-2009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소부품업체와의 부등가교환을 통한 가치이전 전략이 자신들의 배를 불릴 핵심적인 경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재벌은 이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선택』의 주장대로 재벌 체제를 유지하면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벌체제,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으로 맞서야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면 재벌이 사회적 타협에 나설 것처럼, 그리고 정부는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의 편에 설 것처럼 생각하는 『선택』의 저자들은 노동자들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화의 객체로 인식한다. 게다가 산별노조를 국가가 나서서 강화하라고 하는 주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은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과 투쟁으로 자본과 국가와의 세력관계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민주노총을 대기업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집단으로 치부하고 시민사회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병천과 정태인도 대동소이하다. 이들은 노동자가 사회적 타협의 한 주체로 등장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선택』은 노동자들에게 사회적으로 합의를 하라, 그렇게 하면 복지국가가 노동자들에게 지금보다도 훨씬 안정된 삶을 제공해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모범사례로 삼는 스웨덴의 강력한 노동조합-사민당 제휴는 거대 법인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경제적 성장모델과 생산양식을 바꾸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자본주의적 체제의 유지를 조건으로 하는 계급타협을 추구했다. 더욱이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세계 자본주의가 금융세계화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여타의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으며 변질되고 있다. 계급타협은 복지국가가 위기에 빠지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이제 대기업과 타협해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 ‘계급’은 노동자들의 일부분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시작된 지점이 다를 뿐, 스웨덴과 한국은 계급내부의 분할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한국 노동자운동의 목표일 수 있는가?
『선택』의 저자들이나 그를 비판하는 논자들은 재벌과의 타협이나 재벌의 개혁을 통해 복지국가가 실현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재벌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기반으로 한 한국경제 성장전략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때, 재벌체제에 대한 도전은 격렬한 계급투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선언을 되새기며 재벌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자. 그 시작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차이를 넘은 원하청 공동투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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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독이 되는 재벌개혁론 (매노,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2012.07.11)
올해 대선 쟁점 중 하나는 재벌개혁에 관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재벌개혁의 핵심 정책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순환출자규제·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해 소수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총수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도급 관련 제도를 개정하고, 불공정거래에 관한 고발권을 확대해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것이다. 각론에 따라 여러 방안들이 더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총수의 경영권에 관한 문제와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에 관한 문제 두 가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의 재벌개혁 방안으로 과연 노동자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먼저 재벌총수의 경영권 문제. 재벌총수가 지분만큼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얼핏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주주들이 지분만큼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 드러난 미국 두 자동차 기업의 엇갈린 운명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지분에 따른 경영권이 가장 잘 구현된 기업으로 평가받는 지엠(GM)은 파산에 이어 정부 구제 금융을 받았다. 반면에 한국재벌과 비슷하게 소수지분으로 오너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포드는 정부 구제금융 없이 경제위기를 견뎌냈다. 두 기업이 세계경제위기에 다른 길을 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경영방식이었다. 지엠의 경영진은 90년대부터 주주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자동차생산과 개발보다 단기적 수익이 많이 나는 금융투기에 열중했다. 주주들이 선임한 전문 경영인은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매년 고용은 줄였고, 배당은 늘렸다. 포드 역시 미국 경제 전반의 금융화 속에 금융투기를 늘렸다. 그래도 지엠보다는 주주들의 단기적 요구에 좀 더 거리를 뒀다. 주주들의 조급한 이해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오너 경영체제가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일부에서 마치 재벌총수 경영체제를 주주들이 임명한 전문경영 체제로 바꾸면 경제적민주화가 이뤄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오히려 퇴보에 가까웠다. 또한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불안과 기업파산이라는 재앙에 다름 아니었다.
다음으로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개선 방안. 이 역시 얼핏 타당해 보인다. 실제 많은 중소기업들이 매년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1차 부품사들이 좀 더 원청으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한다고 해서 부품사 노동자들의 조건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원하청거래의 가장 진일보한 입장이라는 이윤공유제를 보자. 이윤공유제를 실시하고 있는 브라질 헤센데 지역의 폭스바겐 부품사 사례를 보면, 부품사들은 공유할 이윤을 크게 늘리기 위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했다. 정규직 고용을 부품사들이 오히려 상호규제하기까지 했다. 한 기업이 정규직을 고용해 노동비용을 높이면, 모든 기업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예는 많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현대차 1차 부품사 430개 사의 상황을 보자. 이들의 지난해 평균매출액은 경제위기 전인 2007년에 비해 47%, 영업이익은 63%가 늘어났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영업이익률 역시 3%에서 3.4%로 상승했다. 현대차 성장에 따라 매출액이 크게 늘었고, 현대차의 거래조건이 예전에 비해 약간 좋아진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성장에 비해 1차 부품사 생산직 전체 노동자 임금총액은 단지 20%만 늘었다. 생산 증가에 비해 임금증가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생산 증가의 상당수를 외주화, 비정규직 사용을 통해 이뤘기 때문이다. 특히 무노조 사업장의 경우 임금총액 증가가 12%에 불과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총액으로 보면 무노조 기업의 생산직 임금총액은 2007년보다도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1차 부품사들에 대해 아예 노골적으로 노동 배제적 이윤 공유를 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은 삼성전자로부터 자본 투자도 받고, 해외진출 시 부지와 공장 건설에 관한 협조도 받는다. 납품가 역시 신제품 출시 때마다 곧잘 올려받고 있다. 원·하청 상생의 모범이라 할 만한데, 이 기업의 노동자들은 모두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당연히 노조는 꿈도 못 꾼다.
한국 재벌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방안은 시급한 문제다. 하지만 현재 많은 재벌개혁론은 겉만 진보일 뿐 속은 오히려 자본 편향적인 것들이 많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정책을 진보정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예로 보면 원·하청 거래 개선으로 자본이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이득이 노동자에게까지 미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원·하청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과 1차 부품사의 노동 배제적 이윤 카르텔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동운동 진영은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처해 있는 현실에 입각해 재벌의 사회적 통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이야기되는 이러저런 재벌 개혁론에 뒤꽁무니를 좇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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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한 경제학자를 찾습니다 (프레시안, 성현석 기획취재팀장, 2012-06-25 오전 10:54:45)
[데스크 칼럼] '한국경제 성격 논쟁', 아쉬운 대목들
세계관, 가치관은 현실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변화하는 게 옳다. 물론, 이 과정에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또 대중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소신의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를 갖춰야 한다. 그게 책임 있는 자세다. 글머리에서 예로 든 이들이 볼썽사나운 이유는 자신들의 극단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가 워낙 옹색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된 변절, 성찰이 있는 변절은 깊은 감동을 준다. 주변 사람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최근 <프레시안>에선 '한국 경제 성격 논쟁' 기획이 진행 중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 등의 주장이 한축이다. 또 이들이 비판대상으로 삼는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 다른 한축이다. 재벌개혁,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 산업정책의 중요성 등에 대해 상당한 이견이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한국 경제의 성격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점을 높이 사는 독자들이 많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해당 지면을 담당하는 기자 입장에선 아쉬움이 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등의 문제제기는 크게 새롭지 않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지적했듯, 이들의 문제의식은 2001년 발족한 대안연대회의 활동 속에서 이미 잘 드러났다. 이들의 비판 대상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현 경제개혁연대)를 중심으로 소액주주운동을 해 왔다.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과거 대안연대회의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과 상당부분 겹친다. 물론, 새롭지 않다는 게 꼭 비난받을 점은 아니다. 과거의 논쟁을 현실 속에서 다시 조명하는 게 필요한 때도 많다. 어차피 역사란 중요한 쟁점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논쟁이 태동한 2000년대 초와 지금 사이에는 결정적인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2008년 금융 위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의 성격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외국에선 숱한 사회과학자들이 기존 입장을 바꿨다. 예컨대 클링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으며 미국 민주당의 이데올로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로버트 라이시 미국 UC버클리 대학 교수는 2008년 이후 확실히 좌회전 했다. 금융위기 이후에 출간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전작인 <슈퍼자본주의>, <부유한 노예> 등과 확연히 다르다. 어찌 보면 '작은 변절'인데, 이런 변절자가 미국, 유럽 등에선 제법 흔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선 이런 변절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상아탑 안에만 머물렀던 학자들은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들은 어차피 현실과 거리를 둬 왔다. 그러나 현실에 깊이 개입했던 학자들이 현실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도 아무런 생각 변화가 없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현실은 바뀌는데 생각은 그대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그렇게 망했고, 1980~90년대 운동권이 그렇게 망해가고 있다.
물론, 생각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이끌었던 김상조 교수의 경우, 최근 출간한 <종횡무진 한국 경제>에서 그간 진행한 소액주주운동을 통렬하게 반성했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이른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 중심의 지배 구조 개선 노력이 후하게 평가돼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헤매고 있으며, 박하게 평가하자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사실상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2008년 이후 전개되는 세계경제의 지각변동과는 별개 차원이다. 그 이전부터 예정돼 있던 반성이었다. <종횡무진 한국 경제>에서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과잉' 못지않게 '구(舊) 자유주의의 결핍' 역시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읽기에 따라서는 후자를 더 심각하게 본다는 느낌도 받는다. 2008년 이전이라면, 이런 입장이 꼭 어색하지는 않다. 그러나 2012년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적어도 2008년 이후라면,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낳은 폐해에 더 치중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김 교수가 강조하는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은 꼭 구자유주의적 개혁과제라고만 볼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낳은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장치다. 기득권층의 로비가 법치와 시장 규율을 조롱하는 장면은 충분히 익숙하다. 삼성 등 재벌이 법을 농락하며 군림하는 상황은 이런 현실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러나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입장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 앞에선 조금 한가한 감이 있다. 고름이 터져서 응급처치를 요하는 환자 앞에서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술, 담배를 멀리 하면 건강해진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창립 당시 "거대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라고 천명했다. 이런 입장은 지금까지 견고하게 유지돼 왔고, 큰 성과를 거뒀다. 거대재벌 삼성의 급소를 콕 짚어내 압박했던 여러 사례는 관성에 젖은 기존 운동권이라면 기대하기 어려웠던 성과였다. 소규모 시민단체가 재벌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벌여 높은 승소율을 기록했다는 점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대담론을 외면할 수 없는 때가 된 것 아닐까. 적어도 지식시장에선, 거대담론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다. 철학서적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 장하준 교수의 저술이 잇따라 화제가 된 현상 등이 그 방증이다. 과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류의 책에 열광하던 이들이 이제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는다. 대중이 보기에, 지금의 세계경제는 재테크 서적의 얄팍한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방향을 이해하고픈 욕망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큰 이야기', '역사적 접근' 등을 다룬 책을 찾아 읽는다.
거대담론에 대한 수요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실에 참여하는 지식인은 응답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일은 앞으로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나 "거대담론의 실패경험"을 경계하는 논리가 지금도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지금 대중이 요구하는 거대담론은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처럼 공허한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거대담론에 기반한 설명이 필요한 사례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아이슬란드는 이후 강력한 긴축정책을 취하는 한편,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탕감정책을 취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1000조 원에 가까운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눈길이 가는 사례다. 그런데 긴축에 반대하는 입장, 또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입장 등 기존의 전형적인 분석틀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결국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폭넓게 아우르는 논리가 필요하다.
기존 주류경제학의 처방이 힘을 잃은 상황에서 새로운 논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지금 필요한 거대담론이다.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원칙을 앞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결코 간단치 않다. 신자유주의 이후를 전망하는 거대담론에 대한 토론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대담론을 원하는 대중에게 때 마침 스케일 큰 논리를 제공했던 그룹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등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다. 이들이 비판하는 진영의 논리에 비해, 이들의 주장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딱딱한 법률 용어가 상대적으로 덜 쓰인다. 대중적인 반향이 컸던 한 이유일 게다. 그러나 그만큼, 대중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설명을 할 필요가 따른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문제가 "재벌 총수가 뭐가 아쉬워서 타협 하겠나"라는 것이다. 물론, 이름 모를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대기업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지배구조가 낫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재벌과의 타협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연결 짓는 건 비약이다. '재벌이 현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타협점을 찾게끔 압박할 수단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경제개혁연대라면, 이 질문 앞에서 할 말이 있다. 현행 재벌 지배구조가 지닌 법적 맹점을 공격하는 것이고, 이는 자유주의적인 개혁 과제를 중시하는 이 단체의 입장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이 내놓은 입장은 '복지국가 진영의 정치세력화 및 집권', '정치 사회적 압력', '노동조합 강화' 등 막연한 수준이다. 재벌의 로비는 강력한데, 그들을 통제할 힘은 극히 미미한 게 현실이라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보다 구체적인 재벌 압박·통제 장치를 제출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 대한 정교한 논의가 빠진다면, 이들의 주장은 지속적인 신뢰를 얻기가 힘들다.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역시 독자들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다. 이들 그룹은 여러 차례에 걸쳐 김상조, 유종일 등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을 비판해 왔다. 소유권에 바탕한 자유주의 논리가 연대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에 대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비판은 상당히 소모적이다. 이들이 비판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예컨대 장하준, 김상조 사이의 거리가 주주자본주의를 온전히 지지하는 다른 경제학자와 김상조 사이의 거리보다 과연 멀까. 원고 청탁 및 취재차 만난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으리라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찾아보면, 이들 집단 사이에는 공통점이 꽤 많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지적했듯, 양 측은 모두 '기업 집단 법' 제정을 주장한다. 현행 재벌 지배 구조가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있다는 점에는 다들 공감하는 것이다. 또 장하준 교수는 보험 산업이 복지 강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김상조 교수 역시 삼성생명 등 보험 업계의 문제점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 왔다.
차이점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접근은 논점을 선명하게 하는 데는 이롭지만, 양 측의 공통분모를 확대하는 논의를 가로막는 면도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장점을 살리는데도 해롭다. 이들 그룹의 대표적인 장점은 협소한 주류 경제학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포괄적 접근이다. 예컨대 정승일 박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 문제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서 이 문제에 천착했던 경제학자들에게선 나오지 않았던 접근방식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하청 관행이 많은 경우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 박사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대기업이 하청 업체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문제인데, 최저임금 인상은 이런 경우를 줄이도록 하는 압력이 될 수 있다. 정 박사는 여기에 복지 차원의 접근도 곁들인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줄 수 없는, 경쟁력 없는 하청업체는 도산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와 노동, 복지 영역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야 가능한 해법인데,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이런 접근에서 강점이 있다. 이런 식의 접근에선 기존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소외됐던 노동운동 진영, 복지운동 진영이 설 자리가 생긴다. 민주노총이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 개입할 수 있게끔 하는 논리적 근거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처럼 연대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장점이고, 변호사와 경제학자들만의 운동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는 게 과거 소액주주 운동의 한계였다. 그렇다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생각이 다른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확대하는 게 옳다.
이처럼 포괄적인 접근은, 다른 한편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의 외면을 낳은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런 태도가 꼭 옳은지는 의문이다. 거시경제학의 시조이며, 1930년대 공황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역시 정통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대학 전공은 수학이었고 박사 학위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력을 대학이 아닌 관청에서 쌓았다. 하지만 지금 경제학 역사에서 케인스의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논쟁은 '어느 쪽이 더 정통 경제학 이론에 부합하느냐'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존 경제학 이론의 권위가 흔들린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 필요한 건 '위기 앞에서 가장 실용적인 해법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논쟁이다.
현 정부 들어서 '실용'이라는 표현에 조금 부정적인 어감이 깃들게 됐다. 그러나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적어도 정책에 관한 논의에선 나쁜 게 아니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모두 죽는다"라고 한 것 역시 케인스였다. 경제학자가 할 일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처방이라는 것. 장기적으로 체질을 개선하자는 식의 주장은 경제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게다. 구체적 현안을 둘러싼 논쟁에선 늘 한결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실용적인 해법을 찾다보면, 기존 입장을 뛰어넘는 경우는 다반사로 생기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변절'이지만, 생산적인 변절이다. 향후 전개될 '한국경제 성격 논쟁'에서 생산적인 변절이 종종 나타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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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양보로 복지국가 건설? 심각한 착각! (프레시안, 정재원 서울대 강사, 2012-06-10 오후 3:18:42)
[한국 경제 성격 논쟁] 그들의 논쟁이 탁상공론 되지 않으려면
전반적으로 볼 때, 금융세계화 등 외적 요소를 간과해 온 한국의 학문과 운동 진영의 답답한 풍토 속에서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선생님의 주장은 금융세계화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논쟁의 한 당사자인 소위 경제민주화론자들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오랜 유학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사실은 신자유주의나 (금융) 세계화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서적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울 정도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가 아닌 지역에서 신자유주의가 작동하는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간과해왔던 외적인 요인들이 구체적으로 일국 단위에서 파괴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에 대한 장하준 그룹의 강조는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논쟁의 구도와 내용은 8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차이라고 한다면, 장하준이 당시에는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 반면, 이번에는 소액주주운동이 마치 국제금융자본들의 앞잡이 역할을 한 것처럼 강조한 것과 같은 몇 가지 주장의 대변화 정도(?)이다. 어찌 되었든, 전반적으로 볼 때, 서로 논점을 모아가며 해결을 모색하기보다는 각자의 지식과 상식에 따라 각자의 주장만을 나열할 뿐이며,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 내용이라는 것도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오독과 왜곡이라는 주장과 그것에 대한 논박이 이어지면서 다소 비생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논쟁은 소위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재벌 개혁론에 대해 장하준 그룹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데 반해, 장하준 그룹이 지적하는 주주자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반박하는 구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점에 대해 과거에 깨닫지 못 했던 점을 반성(?)하는 등 장하준 그룹의 지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괴이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장하준 그룹이 경제민주화론자들에 대해 신자유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따라서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는커녕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논쟁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비판과 반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재벌 체제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재벌이 복지국가 건설의 주요 행위자로 거론되고, 경제민주화가 재벌 개혁으로 축소된 채 서로 논박하고 있는 현재의 논쟁은 사회적 경제 혹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생각하며, 노동(정당, 조합)과 시민사회가 복지 국가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그 개념부터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경제민주화가 재벌 체제 개혁으로 축소되었으며, 도대체 언제부터 재벌이 복지국가 건설의 주요 행위자가 되었는가?
어찌 되었든, 논의를 재벌 체제로 국한하더라도 현재 지배블록의 반동에 의해서 엄청나게 후퇴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복원 및 전진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어떤 명칭을 붙이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 역시 일정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논의 구도는 양자 모두 주주자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동의했고, 재벌체제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있으니 합심해서 국제금융자본에 대한 방어 장치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재벌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옳지만, 현재까지는 그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 않고 있다. 필자는 전체적으로 몇 가지 부분에서 문제의 본질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과두지배세력: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의 공존, 정치 엘리트와 관료집단의 동맹
오는 12월 선거 이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간에, 군부 독재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정기적인 선거를 치러 왔고, 실패한 정당은 국민의 심판을 받아 정권이 평화적으로 교체되는 등 마치 정당 정치가 안정화된 궤도에 접어들어 민주주의가 적어도 절차적으로는 공고화되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여당의 국정 실패에 대한 국민의 높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민당처럼 여당 내 야당과 같은 착시현상을 국민들이 갖게 하는 데 성공한 당내 분파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도 상당하다. 따라서 현재 많은 진보적인 국민들은 이러한 사태가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설사 야당이 이런저런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새누리당이 집권한 것과 커다란 차이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차이를 못 느끼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과두지배세력의 존재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는 집권 정당 교체와 무관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지배 블록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상당수의 비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한층 더 정권 교체를 무색케 하고, 정당 정치를 마비시키는 거대한 과두지배세력들이 국가를 포획,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국민들뿐 아니라,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무지한 관념좌파들은 서로 신자유주의자로 뒤집어씌우고, 대안 없는 급진화를 요구한다.
이렇듯, 세계자본주의 체제 비중심부의 과두지배세력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이제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유럽과 같은 '진보 대 보수'로 정치 구도가 빠르게 정비될 것으로 착각했다. 자유주의가 여전히 진보적 의미를 띠고 있는 비중심부 국가들에서 진보의 의미도 매우 혼란스럽지만, 비중심부 국가들에서 보수는 제도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서구의 보수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집단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정당 정치가 잘 작동하기만 하면 정책이 잘 작동할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는 재벌, 관료, 언론, 사회 기득권층들, 그리고 국제금융자본이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과두지배세력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하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 의해 조직되고 성장해 온 한국의 특권 집단들은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단순히 지속성을 유지해 왔을 뿐 아니라, 국가의 통제를 받는 지배 일분파로부터 떨어져 나와, 거꾸로 국가를 포위, 자신의 이익 추구의 도구로 삼는 적극적 지배자로 성장했다. 지구상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와 유사한 지배동맹은 존재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제약이 제도적으로 가해져 온 서구 중심부 국가에서는 노골적인 지배가 크지 않은 반면, 그러한 제약이 미약한 비중심부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글로벌 금융자본과 국가 금융엘리트, 대자본, 정치엘리트, 관료, 언론, 전문가 집단 등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이뤄가며 노골적으로 과두지배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민주화 이후 국가의 공적 기능은 현저하게 약화되면서, 다양한 특권집단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도구로 전락했다. 이들은 소위 민주정부로 일컬어지는 정권 교체 메커니즘과는 상관없이 혹은 별도로 독자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공고화해 왔다. 민주화에 이은 세계화라는 이름 하의 개방화 속에서 재벌들은 국가 권력이 권위주의 시대처럼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보호해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들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갖추어 나갔다. 국내적으로도 지배 동맹의 범위는 언론과 각종 정치 엘리트, 관료들, 전문가들, 그리고 이들과 여러 인맥으로 얽혀 있는 각종 사회 기득권 집단으로까지 확장되어 국가는 철저하게 이들에 의해 포획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자본이라는 위력적인 세력의 침투는 재벌들과의 잠시 동안의 긴장 관계 이후 곧바로 공생 관계로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자본은 자신을 스스로 파괴할 정도로 경쟁하지 않고 언제나 공생의 길을 찾는다. 현재 국내자본 역시 국제금융자본과 동화되거나 공동행보를 하기 때문에 양자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자본은 한국 사회 과두지배 동맹의 주축으로 급속히 성장했다는 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제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이 재벌들의 이해관계와 일치되거나 융합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국제금융자본이 침투하게 되면서 한국의 재벌들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 역시 주주가치 경영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주주를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국제금융자본뿐 아니라 재벌들 역시 자신의 기업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 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지급하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되었다. 즉 주주자본주의의 수혜자는 해외 자본만이 아닌 것이다. 주요 재벌 대기업들의 주식분배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주가치 경영의 강화로 이익을 본 것은 외국인 투자자만이 아니라 재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재벌 스스로 자본소유자로서 막대한 자본 축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국제금융자본의 유입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둘러싸고 재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갈등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이해관계가 서로 밀접하게 얽히면서 유착구조가 형성되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재벌 기업의 경영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제금융자본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경영권 교체로 재벌 회사의 안정성이 떨어져 자신들의 이익 창출 구조가 위험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과 같이 강력한 대자본이 정치력까지 장악한 국가들의 경우 총수 일가의 지배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맹 구조 속에서 재벌들은 국제금융자본의 위협을 과장하며 정부에 더 많은 특혜를 요구했고, 정부는 재벌들에게 더 많이 규제를 풀어 주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의 특권 과두 지배 동맹 체제는 개발독재식 발전주의 시스템과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독특한 지배 체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 하고 논자들은 엉뚱한 대립각만 찾게 되는 것이다.
세계체제 속의 신자유주의의 다양성
바로 이러한 착각과 무지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와 관련된 국가와 시장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재현되고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구별해서 가치를 별도로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순진한 관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신자유주의를 현재의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돌리다 보면, 그 어느 누구도 즉각적인 시장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 한, 신자유주의자라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며, 따라서 늘 상대를 신자유주의자로 몰아 버리는 아무런 의미 없는 논쟁으로 결말이 나고 만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는 마치 시장근본주의이며, 국가(개입)에 대해서 적대적인 이념으로 착각하는 분위기는 하루라도 빨리 타파되어야 한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과 영국 정부 등이 자국의 은행을 국유화한 조치를 들어 '국가가 개입했다'며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선언한 황당한 논자들이 기억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만능주의도 아니며, 국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국가가 특정 과두 지배 세력의 이익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매우 정치적인 기획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신자유주의는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지역과 국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너무도 쉽게 간과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당연히 주주자본주의, 혹은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인 금융자본주의라고 보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 자체는 사전적 의미에서 올바르다. 그러나 본질이 그러하다고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든 지역과 국가, 영역 등에서 똑같은 질의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즉 소위 '신자유주의의 다양성'이란 단순 나열적, 병렬적인 다양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신자유주의 체제란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세계자본주의체제 내 지역과 국가에 따른 다양성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얼마든지 발전주의 국가와 결합할 수도 있으며, 토건 개발주의와도 결합할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는 얼마든지 재벌과 같은 독점 대자본 체제와도 결합될 수 있다. 그들은 경쟁하고 잡아먹고 먹히는 관계이면서도 얼마든지 서로 공생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 재벌인 것처럼 보이는 삼성이나 LG 등은 실제로 여타 반주변부나 주변부 국가에서는 초국적 자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초국적 엘리트들이 지역 엘리트들과 늘 경쟁관계에 있으며, 전자가 언제나 후자에 우위에 서 있다는 착각은 많은 이들의 논지 전개를 방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히려 외적 요소들에 대한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들이 국내적 맥락과 닿는 지점에 대해 무지한 것은 의외이다. 가령, 장하준 그룹은 한국의 점령하라(Occupy) 운동이 국제금융집단으로 향하지 않고 재벌에게로 향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운동 진영이 국제 금융집단들의 폐해를 몰라서가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폐해는 바로 재벌들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위 '장하준 그룹'의 주장에 대한 비판
장하준 그룹이 제기한 문제들 중에서 본격적인 코멘트를 하기 전에 꼭 짚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즉 장하준 그룹은 상대를 아예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무례는 기본이고,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들, 의도하지도 않은 주장들을 끄집어내고 확대 해석하면서 지엽적인 논쟁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특히 그들이 한꺼번에 묶어 버린 소위 경제민주화 진영은 단일하게 주장을 하는 집단도 아닐 뿐 아니라,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그 내부에서 비판도 많고, 스스로 반성하기도 하는 '소액주주운동'을 주로 예로 들어 그것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시도 때도 없이 이들을 통째로 비판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먼저, 필자가 보기에 장하준 그룹이 경제민주화론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상당 부분은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령, 소위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재벌개혁만을 외치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장하준 그룹이 평면적으로 나열한 부분, 즉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노동자공동경영제와 같은 산업민주주의를 이루는 것, 협동조합 경제를 지원하여 국가와 시장이 아닌 사회적 경제를 확장시키는 것, 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 등등, 그 모든 단위 속에서 민중의 직접적 참여를 보장하는 경제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세력은 누구인가? 적어도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국제금융자본보다는 그 국제금융자본을 포함한 그 국가의 과두지배세력 중 주요 동맹 세력인 대자본이 그러한 세력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를 무시하면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거의 동의어로 쓸 정도로 재벌 해체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나아가는 데에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재벌 개혁이기 때문에 재벌 해체를 우선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따라서 재벌 개혁들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다른 정책들은 실현 불가능은 아닐지라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민주화론자들은 경제민주화를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러한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장하준 그룹의 주장처럼 재벌 개혁 운동과 복지 국가 운동은 병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해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반대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정반대로 복지 국가는 재벌의 양보가 아니라, 재벌 체제의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판단으로 재벌 체제 개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언제부터 재벌이 복지 국가로 가는 길에 있어서 주요 행위자가 되었고, 재벌의 양보가 주요 과제가 되었는지 매우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좌파 정당과 노조가 있어야 자본과의 협상이 가능하고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식의 고전적인 어구들만 끄집어 내 나열만 하며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적 소유와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현재, 최소한 복지 국가로 나아가려면 자본과의 타협과 고소득층의 양보는 필수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언제 어디서나 이러한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일반화하는 것만큼 우둔한 짓도 없다. 특히 한국에서 재벌의 양보로 복지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착각은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모른 채 소액주주운동을 추진한 일부 경제민주화 세력의 착각만큼 심각한 것이다.
국가에 대한 부분도 오류가 엿보인다. 장하준 그룹의 주장과 달리, 경제민주화론자들이 '국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국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시장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국가의 시장 개입을 거부한다는 주장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즉, 관치 금융이나 정경유착을 비판하는 것을 두고 엉뚱하게도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비판하는 것으로 왜곡하거나, 더 나아가 국가를 축소하고 시장을 옹호하는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주장에 불과하다. 나치와 군사독재 국가의 시장 개입의 룰과 내용, 서구 복지 국가의 시장 개입의 룰과 내용을 국가 개입이라는 같은 틀 속에 놓고 비판할 수 있는가? 따라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박정희식 국가 개입과 자본 통제(그리고 재벌 체제 형성)를 '비시장적' 자본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전히 모종의 비시장적 사회가 가능하다는 꿈을 꿨던 시대였다면 모를까, 자본주의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이 부재한 현재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이 '자유주의적 경제 민주화가 제대로 되어야만 그 위에서 본격적인 복지 국가가 된다'는 것이라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리고 장하준 그룹이 주주자본주의의 위협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부분도 상당히 당혹스럽다. 한국에서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현재에도 친노동, 친중소기업적인 정책과 복지 정책 발전이 그 어떤 국가보다 훼방을 받고 있는 상태인데, 이러한 현상은 대기업집단을 약화 혹은 해체시켰기 때문에, 국제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증폭된 결과인가? 당연히 최소한 현재까지는 '아니올시다'이다.
정반대로, 그들이 이야기하는 '고용 없는 성장, 비정규직 양산, 인건비와 하청단가의 삭감, 청장년층 실업과 빈곤층의 만연'과 같은 현상은 재벌 체제 하에서 양산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재벌은 주주자본주의의 희생물이 아니라, 그 주주자본주의의 한 축으로서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 속에서 전적으로 주주자본주의 이전 식의 재벌 체제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회경제적 현상들은 재벌 체제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내재화하여 이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즉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위기는 국제금융자본과 재벌 양자가 모두 강제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적 자본은 일국 내 타협 기제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의 예처럼, 고용과 복지를 내팽개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대자본의 양보와 타협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장하준 그룹의 주장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현재,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한국의 재벌을 개인과 제도로 쉽게 구별 지을 수 있을 만큼 그들이 스스로 구별을 자처할지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이다.
또한 복지 국가와 관련해서도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장하준 그룹이 주장하는 복지 국가의 강화 자체가 재벌 개혁이기도 하다는 점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언명이다. 누진 소득세 강화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고소득 계층이겠지만, 그리고 조금은 재벌에게도 타격이겠지만, 그것이 곧바로 재벌 체제가 이끌어 온 전체적인 과두지배세력의 지배 구조에는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다. 보편적 의료 복지나 노인 복지가 재벌계 보험 회사들이 주도하는 보험업계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재벌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장하준 그룹이 주장하는 '복지 국가 수준으로 고소득층에 대한 강력한 누진 소득세' 제도가 쉽게 도입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강력한 저항을 받는다면 그 저항의 주도 세력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재벌을 필두로 한 과두지배세력일 것이다.
따라서 누진 소득세 등의 도입을 위한 싸움과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와 같은 특정 형태의 재벌 개혁은 당연히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재벌 개혁과 다른 경제민주화 과제들이 같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막상 본인들은 보편적 복지 국가를 향한 운동(?)을 먼저 한 후에 재벌 개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정부와 대기업 집단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해 긴요하며, 그래야만 참된 경제민주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은 비중심부 국가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며, 매우 위험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한국 경제의 발전 수준과 국민의 성숙도로 볼 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경제 발전 수준과 국민의 성숙도로 볼 때 곧바로 스웨덴식 복지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 자체도 황당하지만, 그 '민주성'에 대한 치밀한 문제의식 없이 국가와 대기업 집단의 존재가 복지 국가의 토대라고 주장하는 정승일 등의 주장은 (재벌 문제에서) 개인과 제도를 구별하자는 주장만큼이나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대안으로 제시된 부분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가령, 주주자본주의의 규제 대안으로 제시된 창업자나 경영자들에게 1주 10표를 주자는 주장이나 황금주 제도의 도입 등은 일국 내에서 부분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어도 결단코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한 국가에서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으며, 세계적인 금융규제 강화 조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정태인 원장의 주장의 이면에는 동시적인 국제적 규제가 없다면 건전한 투자자까지 포함한 그 거대한 자금이 특정 국가로부터 물밀듯이 빠져나가 국민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러한 규제가 없는 국가로 몰려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토빈세를 한국만 도입할 경우 경제적으로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장하준 그룹의 이러한 일부 대안과 같은 규제는 일시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과 그 이후를 전혀 바라보지 못 하는 매우 허술한 주장이다.
양 진영이 단점 보완해 공동의 대비책 마련했으면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의도했든 아니든 장하준 그룹은 사실상 재벌 체제의 온존을 강변하고 있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한국 재벌 체제 유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그를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주장으로 논지를 확장시키는 것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거시 경제적 지표상으로는 10위권에 육박하고 있고, 국제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어 이미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 국가군에 진입해 있나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비중심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정치, 경제적 발전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그 핵심에 정권의 교체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과두지배세력의 지배가 있으며, 그러한 지배세력들 중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은 대립하여 공멸하는 길보다는 동맹관계를 맺으며 공생하고 있다. 제도로서 재벌 역시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가 아닌 지역에서는 특히 더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의 주요 행위자이다.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전 세계적 경제 위기 속 국제금융자본의 위기 탈출 전략의 변화와 대선으로 인한 과두지배세력의 재편과 지배 양식의 변화가 예상되는 현재, 장하준 그룹이 강조하고 있는 국제금융자본/주주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원이 아니라, 국제금융자본의 공격을 방어해 줄 구원자로 이미 국제금융자본과 동맹하고 주주자본주의의 일원이 된 재벌을 옹호하는 것을 넘어 복지 국가 건설의 주역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급진적이기만 한 관념론에 불과하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의 주장은 '진보의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국제금융/재벌 자본의 지배 동맹을 깰 수 있는 이론과 정책들을 합심하여 창출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소중한 주장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필자의 바람은 양 진영이 대립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 분야를 잘 살려 서로 단점을 보완하고 공동의 대비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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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417095353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전부는 아니다" (프레시안,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2-04-17 오전 10:38:21)
[시민정치시평] 금융민주화의 최대의 적은 거대 금융권력
금융민주화는 경제민주화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금융민주화 논의는 경제민주화에 한참 뒤쳐져 있다. 재벌개혁이 핵심인 경제민주화 논의의 연장선에서 재벌소유 비은행 금융계열사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금융산업의 중심축인 은행산업에 대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재확인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재벌체제로 상징되는 경제적 권력의 집중과 권력관계의 비대칭에 대한 경제민주화의 문제제기를 금융영역으로 확장하면 국내 금융시장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독보적 지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개혁 이후 국내 은행산업은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금융민주화를 거론하려면 우선 금융시장에서 가장 막강한 시장권력으로 등장한 은행산업을 그냥 지나쳐 갈 수 없다. 소수의 대형은행이 외국자본에 장악된 금융지주회사의 지붕 아래에서 대마불사의 안전판에 기대어 "땅 짚고 헤어치기"가 가능한 과점시장이 국내 은행산업의 현주소이다. 최고의 이익집단으로 꼽히는 금융감독당국이 은행권과 일심이체의 이익공동체를 이루어 금융권의 "4대 천황"으로 불리는 은행지주회사의 특권적 과점권력을 키워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부끄러운 낙인을 떨쳐내지 못했다. 가장 가깝게는 10조원을 훌쩍 넘긴 은행권의 순익에도 불구하고 2008년 말 제2의 외환위기 공포를 불러온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다. 또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싫은 부동산시장 몰락과 가계부채 시한폭탄 공포의 한복판에 은행이 있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에 은행산업이 자리 잡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선 사전소유규제 덕분에 재벌의 손길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유일한 산업부문인데다가 관치로 맺어진 재벌과 은행의 유착관계는 끊어진지 오래된 탓에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또 정치권의 민생 챙기기 말잔치에서도 국내 대형시중은행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대형시중은행은 금융 지원이 절실한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서민층과 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대출은 재산, 소득, 직업에 따라 결정되는 신용등급에 의해 결정된다. 국내 여신시장은 대출자의 신용등급에 따라 서열화된 3단계 위계질서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제일 꼭대기에는 영업 전략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소수의 대형시중은행이 있다. 국내 시중은행의 수익전략은 고신용등급의 VIP, VVIP 고객에 집중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가계신용에서 신용등급 상위 1-3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6월 말 현재 71.3%이며 하위 7-10등급의 비중은 5.2%에 불과하다. 즉 이미 주택을 소유한 고소득계층은 손쉽게 은행 빚을 얻어 제2, 제3의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다른 재테크 기회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저금리와 수수료 면제 등 온갖 혜택이 제공된다.
반면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시중은행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한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 기이한 이름의 온갖 재테크용 파생상품과 변액연금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자상품 판매는 대출 중심의 전통적 은행업의 대안으로 시중은행이 사활을 걸고 있는 수익창출 전략이다. 시중은행은 타 금융권보다 훨씬 우월한 지점망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각종 투자상품의 위탁판매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 전국을 휩쓸었던 펀드 광풍에서 이미 입증되었듯이 일반인을 상대로 한 투자상품의 대중화에 은행창구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투자상품의 손실은 전적으로 투자자의 책임이다. 변동금리주택담보대출로 금리위험을 모두 대출자에게 떠넘겼듯이 투자상품 위탁판매는 시중은행에게 파는 만큼 수수료 수익을 보장하는 무위험의 돈벌이다. 오늘의 은행은 과거의 은행이 아니다. 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형태로 존재하는 시중은행은 자산이 많거나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된 사람들, 신용위험이 낮은 기업들을 위한 종합금융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했다.
시중은행의 뒤를 이어 위계질서의 중간단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소위 서민금융기관과 제2금융권의 여신전문업체이다. 그 명칭에 걸맞게 서민층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 대가로 신용등급에 따라 10-40%의 고금리를 요구한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으나 주로 신용등급 4-6등급의 중위계층이 주요이용자층이다. 신용등급 하위 7-10등급의 비중은 캐피탈사와 신용협동기구가 각각 26.2%와 26.4%로 비슷한 수준이며 저축은행이 58%로 제도권 금융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여신시장 위계질서의 가장 밑바닥에는 악명 높은 대부업체가 포진해있다. 신용불량자를 포함해 신용등급 하위 7-10등급의 최저층에게 묻지마 대출서비스를 제공한다. 살인적인 금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대부업체 이용자와 대출금 규모가 말해주듯이 대부업체는 국내 여신시장을 떠받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시중은행이 고소득자와 고신용등급자를 위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면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는 서민층의 생계자금 조달과 한계채무자들의 빚 돌려막기 수요를 전담하며 한편에서는 상부상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는 대부업체의 자금조달에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여러 금융기관에 채무를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는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연결하는 또 다른 통로이다. 시중은행의 대출에서 다중채무 비중은 33.3%로 타 업권과의 연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고 중산층의 신용카드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와는 달리 제2금융권 대출금액의 70%이상이 타 업권과 중복되고 있고, 대부업체의 경우 그 비중이 82%에 이르고 있다. 빚이 더 큰 빚을 부르는 서민층의 빚 돌려막기가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동시에 살찌우고 동반부실 위험도 같이 키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년 동안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중심으로 금융권에 빚을 지고 있는 개인채무자가 급증하고 있다. 2011년 총 1700만 명의 개인채무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13만 명이 '신용 주의' 혹은 '신용 위험' 상태에 처해 있고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공식통계에서만 250만 명에 달한다. 이명박정부의 서민금융 활성화 정책이 오히려 빚 돌려막기를 권장하며 서민층을 더 깊은 부채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서민가계부채 시한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채무조정, 개인회생, 개인파산제도를 과감히 개혁해 부채의 늪에서 서민층을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치권은 시장소득의 양극화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대신 부동산이나 주식 등 금융시장의 재테크를 통해 자산소득을 불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해왔다. 비록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해도 노무현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전략, 이를 그대로 이어받은 이명박정부의 금융선진화 정책은 모두 정부가 앞장서서 불로소득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자산증식정책을 부족한 임금소득을 보완하고 불안한 노후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한 것이다. 불로소득 권장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대형 시중은행이다.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보험상품과 펀드상품, 최근에는 각종 파생상품까지 이르기까지 온갖 재테크 상품을 팔아 조 단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시중은행권에 발을 들이기 어려운 저소득계층이나 영세상공인은 금융소외 계층으로 전락해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의 고금리를 감당하며 빚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다. 소득과 직업에 따른 "신분사회"적 차별이 구조화되어 있는 국내 여신시장이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깊은 골은 더욱 깊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축은행피해자보상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한판승부를 벌였던 금융감독당국이 여론을 의식한 선거철 군기잡기에 나섰다. 은행이용수수료 인하를 이끌어내고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상승의 "합리성"을 점검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서 은행의 금리정책을 지도하겠다는 것인지, 그로 인한 관치논란의 후폭풍을 어떻게 피해 가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금융감독당국과 시중은행권의 신경전에서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을까? 올해부터 내년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46%의 거치기간이 끝나고 만기가 돌아온다. 시중은행이 만기연장을 안 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라도 한다면 어쩔 것인가?
정부소유 은행의 팔을 뒤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의 마음에 드는 금리와 대출정책을 민간소유 은행에게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한다고 은행이 순순히 따를 리도 없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자본확충과 배당자제 요구도 아랑곳하지 않는 국내 은행지주회사는 이제 정부의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력한 관치기관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부도, 법도, 고객도 가벼이 여기는 철저한 이익추구집단이 되었다. 은행권과 일심이체의 금융감독당국이 이를 모를 리 없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새누리당의 압승에 고무되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와 KB지주의 연내 합병설이 나돌며 금융권이 술렁인다. 금융감독당국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공룡급 은행의 꿈을 이명박정부 임기 내에 이루겠다고 한다. 이미 현재의 규모로도 대마불사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자산 1위와 4위의 은행지주회사를 통째로 인수 합병시켜 국내총생산의 50%가 넘는 자산규모를 갖는 초대형 금융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의 마음에 차지 않는 은행지주회사의 초라한 규모 때문에 2008년 말 또다시 외환위기의 철퇴를 맞은 것도 아니고 초대형 금융지주회사의 등장이 서민층이 겪고 있는 금융소외의 차별과 고통을 해결해 줄 리도 만무하다.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된 개념정의는 없다.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경제적 권력의 불평등한 배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경제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고통 자체보다는 그것의 뿌리인 경제적 권력관계의 불평등을 겨냥하고 있다. 그 핵심은 자본주의적 기업형태가 체현하고 있는 자본권력에 대한 통제이고, 사회전체의 이익과 자본권력의 사적 이익 사이에 균형을 세우는 문제이다. 재벌의 경쟁력이 한국경제의 경쟁력이라는 등식이 경제민주화 요구를 짓밟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어 왔다면, 금융민주화에 역행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금융산업 후진성 탈피라는 명분이었다. 금융후진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증,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버금가는 금융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금융발전을 동일시하는 공식을 만들어내고 재벌기업 못지않은 막강한 시장권력을 행사하는 은행지주회사 4대 천황을 탄생시킨 것이다. 김대중정부에서 시작해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15여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왔던 금융정책의 산물이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내 금융민주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정부가 키워놓은 대마불사 은행지주회사이다. 정부도, 금융감독당국도 통제하기 어려운 그 존재 자체가 사회전체 이익과 대립한다. 2002년 이후 부동산담보대출과 가계신용의 급팽창은 대형 시중은행에게 조 단위의 순익을 가져다 준 일등공신이었다. 은행의 수익률 고공행진 속에 재앙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온 것이다.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정책 이후 은행권의 수익전략은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와 예대마진 올리기로 방향이 바뀌었다. 힘없는 소비자를 이용해 과점이윤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 금융민주화는 사회전체를 볼모로 잡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거대 금융권력에 대한 통제에서 출발해 사회전체 이익에 복무하는 지속가능한 금융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금융정책부터 과감히 버려야 한다. 금융양극화를 심화하는 더 이상의 권력집중을 막아야 하고 기존 과점권력의 확장도 억제해야 한다. 당장의 수익에 목을 매는 금융재벌은 금융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지속가능한 금융생태계도 다양성의 보전이 생명이다. 금융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위해 현존하는 민간소유 금융회사와 정책금융기관 이외에 이윤추구가 일차적 목적이 아닌 비영리적 성격의 사회적 소유 은행이 자라날 수 있어야 한다. 민간소유의 거대 금융재벌에게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식회사 형태의 민간소유 은행의 주인은 주주이지만 예금자의 저축이 있어야 은행의 돈벌이가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주주 이익이 예금자 이익보다 늘 우선된다. 정부의 입김에 좌우되는 관치금융기관이 국민을 위한 금융회사가 될 수도 없다. 사회전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금융회사는 수익의 원천인 예금자와 대출자를 위한 소유지배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거대 금융권력을 제대로 통제해 준다면 시민의 힘으로 만든 시민을 위한 금융기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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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8101224
김대중 D, 노무현 C, 전두환 A…이것은? (프레시안, 이병천 강원대 교수, 2012-02-28 오후 2:28:20)
[시민정치시평] 재벌개혁과 한국경제 새판짜기…99% 연대의 길로
복지에 이어 경제민주화가, 그리하여 그 핵심 관문으로 재벌 개혁이 모두, 더불어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중심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가히 '재벌 동물원', 또는 '삼성공화국이' 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재벌의 탐욕과 탐식, 독점과 독식이 도를 한참 넘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는 무너진 민생경제를 살리고 경제민주화 나아가 '제 2민주화'를 이루는 일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명박 정부 아래 오늘과 같은 재벌독식 정글 자본주의를 초래한 장본인인 한나라당까지 당명을 바꾸는 등 법석을 떨고 경제민주화 운운하는 걸 보면, '두 국민'으로 갈라진 채 다수 대중이 삶의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도 남는다. 집권 여당까지, 진지한 반성은 모르쇠로 버티고,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민주화 시대정신에 편승하려고 변신하고 있는 걸 보면, 작년부터 유력 보수 언론이 주도했던 바, 복지국가 길과 재벌개혁은 회피하며 재벌의 자선에 호소했던 한국판 "자본주의 4.0" 기획도 허사가 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정치란 이쪽과 저쪽, 또는 아방타방(我方他方)을 나누며 '우리'를 저변 넓게 구성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의제의 경우, '부자 증세'처럼 아방타방을 나누는 지점이 확실히 존재한다. 이전에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과 같은 말은 그 지점을 잘 포착한 정말 멋있는 슬로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이 슬로건을 높이 쳐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나 복지국가 건설은 부자증세만으로는 어렵고 국민전반의 증세부담을 요청하기 때문에 대척점이 흐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가, 제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축적하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다. 그것에 비해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의제는 대척점이 훨씬 명확하다. 현 상황에서 '우리'를 넓게 99%의 '경제민주화 동맹'으로 확대하고 저쪽을 한줌의 1%로 몰 수 있는 최상의 의제일지도 모른다. 이제 '99% 연대로 1% 재벌을 개혁하자'고 말해야 할 때다.
그런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견해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돈되는 건 다 먹어치우는 재벌의 탐욕을 규탄하며 개혁 대안을 찾는 토론의 장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그런 토론의 일환으로 얼마 전에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나도 토론자로 참여해 지난 시기 '삼성공화국' 국면이래 주장해온 '제 2라운드 개혁'론을 피력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청중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유익한 토론이었다.
주발제자인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2007년 선거가 '성장과 경제자유화'라는 보수적 프레임으로 짜여졌던 반면에, 2012년 선거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 주도의 프레임이 짜여졌고 여기에 보수가 끌려 들어와 따라잡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덜 부각되어 있는 '노동 민주화' 의제를 강조하고, 재벌개혁 운동이 민생연대 나아가 '99%의 연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발제자와 유사하게 노동자 경영참가에 기반한 '산업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에 방점을 찍으면서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개혁 패키지들을 풀어 놓았다. 곽정수 한겨레 기자는 한참동안 민주통합당 내부 '재벌개혁의 X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재미있게 듣고 웃고 했지만,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제법 떠들썩한 외양과는 다른 실상을 'X맨'이라는 말 한마디로 아주 잘 짚은 셈이다. 'X맨'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홍종학 교수가 또 지루한 토론회에 큰 웃음을 주었다. 그는 재벌은 킹콩같은 존재로, 이 킹콩이 선거 기간에는 잠을 잔다면서 이 때가 개혁의 호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벌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제재, 효과적인 규율수단 그리고 빠른 속도라고 하면서 계열사간 배당이나 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재벌세'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노총 토론회를 포함하여 여러 논의들에서 좋은 정책수단이 많이 나온 것 같다. 정책 수단을 잘 몰라서 재벌개혁을 못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수 있을까?
우선 지난날 재벌개혁이 실패한 경험을 반성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 실패했나?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먼저, 두말할 필요없이 재벌 권력의 힘이 너무 강대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의 개발 독재는 강력한 정치적 독재임과 동시에, 대재벌을 키우고 이와 공고히 동맹한 반면 노동을 배제적으로 동원한 아주 당파적인 계급 권력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산업화가 고도의 권력전략인 동시에 계급전략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그리하여 국가 권력과 재벌 권력이 결탁한 과두제(寡頭制)적 지배와 고도집중 체제를 물려 준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물론 5공 신군부독재도 그러하다. 독재정권이 재벌에 퍼주기를 하면서 일정하게 규율을 부과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이 노동계급과 시민사회의 발언을 통제, 억압해 왔기 때문에, 민주화이후 오히려 자기 발로 서게 된 공룡 재벌의 고삐를 잡고 민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역사적 힘이 형성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어렵게 된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난 조건을 찾을 수 있다.
둘째, 개발독재 시기로 환원할 수 없는 민주화 시기의 실정(失政)문제가 있다. 한국의 민주화 시기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와 중첩되었으며 역대 정부는 경제적 자유화=규제 완화와 무분별한 개방의 물결에 휩쓸렸다. 민주화와 자유화와 같이 진행됐다. 그로 인해 재벌의 힘과 정부의 실정이 합작한 끝에 97년 '외환위기'가 도래했다. 이어 97년 이후 중도 자유주의 정부는 한편 외압에 순응하면서 다른 한편 그 칼을 빌려 재벌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는 단절과 연속의 기묘한 혼합물이었다. 불법적 경영권 세습 등에서 보듯이 오늘날 한국재벌의 전근대적 구태는 여전하다. 그러나 재벌 개혁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재벌들이 사라지고 쪼개졌으며, 살아남은 재벌도 크게 변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슈퍼 재벌'로의 초집중과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빈곤화였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역대정부의 재벌 정책에 대한 학점은, 전두환 정부 A, 노태우 정부 C, 김영삼 정부 D, 김대중 정부 D, 노무현 정부 C 로 평가되었다. 논란이 많겠지만, 충격적인 평가다. 이 평가의 타당성 문제는 제쳐 두고, 한국의 민주화이후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과실을 얻고 최대의 수혜자로 부상한 것은 소수 재벌이고,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여러 중간 집단들조차 패배자의 처지로 떨어진 게 사실이라면 이는 정말 큰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역설이 재벌개혁의 부진뿐만 아니라 97년이래의 재벌개혁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지 재벌개혁이 아니라 '어떤 개혁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나아가 정부 정책만이 아니라 '범민주 진보' 진영 내부의 개혁 담론도 재벌 개혁이 실패하는 데 일조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주주 자본주의냐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냐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그 우열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찾는 노력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견해를 편 사람도 있다. 또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개혁틀안에 가두면서 경제민주화와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재벌 개혁의 목적은 단지 공정 경쟁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와 공정한 협력은 배제해 버린다. 어떤 논자는 지난 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즈음하여 사측의 해외공장 이전과 주식배당에 대해서는 은근히 두둔한 반면 정리해고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상한 논법을 제시한 적도 있다(김기원,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창비주간비평>, 2011/8/4). 그리고 IMF 이후 세계화가 반(反)노동적임과 동시에 반재벌적인 효과를 가졌고 그래서 재벌과 노동 모두 거기에 반대했다고, 문제의 한쪽 면만 보는 견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재벌과 세계화간의 불협화음만 볼 뿐, 양자의 교묘한 만남과 화해가 초래하는 반(反)민주적 효과를 간과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문제를 보는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형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바, 재벌체제의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로 분단된 이중화 양식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래 그림 참조). 내부자의 중핵은 재벌체제의 재생산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상위 계층들이다. 외부자는 비정규직, 취약한 정규직, 실업자, 자영업과 중소상인, 취약한 중간층, 중소기업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잘 살펴야 할 것은 소액주주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존재이다. 이들은 야누스적 얼굴을 갖고 있다. 재벌 총수의 횡포는 소액주주권을 침해한다. 그렇지만 재벌의 높은 실적과 주주가치 추구는 소액주주에게 이익도 가져다 준다. 소액주주중에는 소시민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제금융자본과 국내 대금융자산가들도 대체로 소액주주며 이들이 소액주주의 '큰 손'으로 재벌체제의 최대 수혜자에 속한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그 약체 부분은 기업주가 휘두르는 부당 정리해고 칼날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큰 부분은 기업별 노조에 갇힌 채 - 이는 신정완이 '박정희체제의 사후의 복수'라 부른 것이다- 비정규직과 연대는 외면하고 재벌과 이익을 함께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대안은 복지 의제처럼 스웨덴 모델을 준거로 삼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독특한 내부자-외부자의 이중화 상황에서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중심에 놓는 재벌개혁론은 다수 대중의 민생경제를 중심에 놓는 개혁론과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노동자 경영참여를 외치는 개혁론도 정규직이 비정규직, 실업자 등의 이익을 담아내는 보편적 ,포괄적 이해를 구성하지 않는 한 이중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시작하는 제 2라운드의 개혁은 지난 1라운드의 한계 지점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 경쟁시장을 추구하는 질서자유주의적 개혁은 재벌개혁의 기본적 구성부분임이 분명하지만 이는 다수 피억압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과는 충돌하는 지점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개혁은 중도반절로 끝난 질서 자유주의적 개혁의 적극적 부분을 이어받되, 그 중심방향은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을 재창조하는 데 두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노동 부문이 이중화 구조를 넘어 노동 연대를 향해 필사적 노력을 다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중심적 문제는 1997-8년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다수 사람들이 거의 예상하지 못한 채 습격당한 정글자본주의 속에서, 재벌의 전방위적인 탐식과 약탈적 축적, 그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불공정하고 부당한 거래와 분배, 야만적인 노동 배제,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 등이 중심적 문제 또는 '주요 모순'이 되고 있다. 재벌과 외국자본의 지배동맹에 의한 독점 독식과 이중화 축적체제로 인해 배제되고 약탈당하고 있는 광범한 국민 대중의 삶의 불안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상태로는 민생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도 없다.
서두에서 정치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치는 다투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생 협력하며 이를 통해 더 높은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재벌개혁이 재벌죽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재벌살리기라고 말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재벌이 민주공화국을 길들이는 비정상상태로부터 이들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적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시민기업으로 재탄생한 재벌과 민생, 나라경제가 선순환하는 민주적 참여의 시장경제, 고진로(High Road)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재벌 개혁의 목표다. 그리하여 저변이 넓고 튼튼한 민생경제, 피라미드형의 강소(强小)하고 중견(中堅)한 살림의 경제, 공화국의 구성원이라면 동등한 '경제시민'으로서 노동하고 기업(企業)하는 사회경제적 권리지분(stakes)을 쥐어주면서 공정하게 협력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언제나 패자부활이 가능한 한국형 시민경제의 새판을 짜는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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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389
“경제민주화 실현 위해 재벌규제법 만들자” (매노, 조현미 기자, 2012.02.16)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토론회 열려…"재벌개혁동맹 세력화 필요"
“지난해 보편복지 의제를 시작으로 지금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축으로 의제의 쟁점이 형성돼 있다. 2012년 3대 의제는 복지·경제·노동을 3대 꼭짓점으로 형성될 것이다.”
재벌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재벌규제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이 이슈화되면서 각 정당들이 재벌개혁을 총선 공약으로 경쟁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재벌체제 개혁과 경제민주화의 쟁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15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재벌체제 개혁과 경제민주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재벌규제법 제정으로 규제 패키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 부원장은 “재벌규제법은 상법에서 파생되는 법의 범주에서 공정거래법에 포함된 기업집단에 관한 정의, 지주회사 등에 관한 규정 등을 흡수할 수 있다”며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 사이의 관계 규정과 지분 소유 관계와 통제 관계 등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벌규제법이 재벌을 부인하는 반재벌법은 아니다”며 “원칙적으로는 법규정에 맞게 기업집단의 소유관계를 재조정한다는 전제 아래 무차별하게 국민경제를 독식하려는 재벌 체제에 대한 일정한 규제의 틀을 씌우자는 것이 초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10년 동안 5대 재벌집단(삼성·현대차·SK·LG·롯데)의 자산규모는 230조원에서 620조원으로 팽창했다. 삼성과 현대차의 자산규모는 3배 이상 늘었다. 김 부원장은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200조원이 늘었다”며 “가장 속도가 빨랐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매출규모도 평균 2배, 순이익은 4배 정도 증가했다. 자산 총액 5조 이상 대기업 집단 전체를 봤을 때 2007년 946개에서 지난해 1천629개로 급증했다. 김 부원장은 “대기업 집단 중심의 인수합병·지분취득·신규회사 설립이 얼마나 집중돼 왔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으로의 경제집중력은 강화되고 있지만 반대로 고용기여도는 줄어들고 있다. 공기업을 포함해 300인 이상 기업의 종사자수는 전 산업기준 12%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93년만 해도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비중은 22.6%였다. 일본이나 대만의 대기업 고용비중이 22~24%정도인 것과 비교해도 대기업의 고용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총선이 있는 4월부터 대선 직전인 12월까지가 재벌개혁을 위한 절호의 찬스라고 밝혔다. 따라서 속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계열사간 거래에 대해 직접 세금을 부과하는 재벌세를 제안했다. 그는 “규제 강화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며 “반면 재벌세는 도입 즉시 재벌에 대해 비용을 부과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 동안의 재벌개혁을 제1라운드, 현재를 재벌개혁 제2라운드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이 자유주의적 재벌 개혁의 책무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끝났다”며 “제2라운드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는 제1라운드의 한계 지점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현재 재벌체제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거의 없다”며 “소액주주·노동자는 물론 소비자와 중소상인·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 등을 포괄할 수 있는 국민적 수준의 재벌개혁동맹을 통한 사회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대기업과 재벌의 이해관계자이면서 내부감시자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와 노조의 역할과 기능이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현행 노사협의회 수준을 넘어 기업단위 최고의사결정사항에 대한 민주적 지배구조의 구축과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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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02
재벌개혁은 있는데 왜 은행개혁은 없는가? (미디어스, 김병권 / 새사연 부원장, 2012.02.09  10:35:15)
경제가 나빠지면서 서민들이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을 늘리고 카드론 사용빈도가 높아지자 최근 신용카드 대란과 서민가계 파산위험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우리나라 은행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상당히 많은 언론매체에서 문제를 삼았던 적이 있다. 금융감독원 발표를 보면 지난해 은행들의 세전수익이 19조원이었다. 2010년 대비 무려 46%나 상승한 규모다. 세금 내고 대손준비금을 적립하고도 12조원이었다.
얼마나 엄청난지 실감이 나도록 비교를 해 보자. 우선 우리경제의 2010년 성장률은 6.2%인데 지난해에는 3.6%였다.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은행은 거꾸로 이익 신장률이 50% 가깝게 뛰어올랐다. 기업에서 이익 신장률이 이 정도면 문자 그대로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이다. 신장률뿐 아니라 이익규모 자체도 놀랍다. 지난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16조2천억원이었다. 삼성전자조차 지난해 실적은 2010년에 비해 줄었다. 어쨌든 세계적인 제조업 삼성전자의 실적은 한국의 은행들 전체 이익보다 적다. 이미 우리나라 각 은행들이 조 단위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2000년 이후 일상적인 모습이기는 하다. 괜히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책 금융연구원에서 주목을 끌 만한 짤막한 글 하나가 발표됐다. 지난 1월28일 발표된 ‘은행의 상업성과 사회적 역할’이라는 5쪽짜리 논단이다. 논단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얼마 전 언론매체에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2011년에 높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가 일제히 실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냉랭했다. … 반면에 지난 1월6일 삼성전자가 작년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올렸다는 실적을 발표하자 언론과 여론의 태도는 대부분 칭찬 일색이었다. 경제가 어려운데 은행이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정반대로 그러한 상황에서 수출 대기업이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것이 대체적인 언론과 여론의 반응이었다.”
똑같이 높은 이익을 냈는데 금융업인 은행은 비난하고 제조업인 삼성전자는 칭찬하는 상반된 태도에 대해 논단은 우선 그럴 만한 이유와 근거를 찾는다. 예를 들어 은행은 정부가 허락을 해서 특별히 자신들만 영업을 할 수 있는 규제산업이고 또 부실에 빠지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살려주는 특별한 혜택을 받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맞다. 그런 점이 분명이 있다.
또한 논단은 은행이 낮은 금리의 예금을 받아 높은 금리로 대출해서 이익을 얻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장사로 큰 돈을 벌고 있고, 그것도 해외시장이 아니라 가계부채가 심각한 국내시장에서 벌어들였다는 데에 여론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역시 맞는 얘기다.
하지만 논단은 은행들이 나름대로 신용평가를 해서 대출을 잘 선별해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고 결코 거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변명이 크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금융연구원의 짧은 논단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이런 빈약한 설득력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논지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은행이 삼성전자와 같은 사기업과는 다르게 공기업에 준하는 수준의 ‘공공성’이 있다고 국민이 생각하고 있고 논단의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핵심 논지는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은행도 ‘사적인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지 공익만을 위해 노력할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을 한편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논단 저자의 적극적인 항변 부분이다. 종합하면 은행이 공공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고 있으므로 공공성만 강조하지 말고 상업성과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사적 기업이라고 해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것은 지금 세계경제위기를 몰고 온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기업 경영관점일 뿐 원래 기업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만약 은행을 사적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하는 것이다. 은행의 성격과 본성이 공공성이라고 한다면, 굳이 사적 기업형태로 만들어 공공성과 상업성의 갈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 공기업으로 만들면 그런 고민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민영화가 얼마 전까지 대세였다면 이제는 공기업화를 생각해 보자.
덧붙일 것이 있다. 삼성전자는 칭찬을 받고 은행이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지금 재벌은 개혁대상으로 지목돼 다양한 규제와 과세 논쟁이 정치권에서 치열하다. 그런데 은행도 수익규모로 말하자면 재벌그룹 10위권 반열에 들어와 있고, 모두가 지주회사 체계로 돼 있어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지주회사는 예외로 해서 감시·감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은행이 사적기업과 다르게 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도 지금 재벌개혁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제안한다. 은행그룹 개혁도 재벌개혁 범위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노동이 빠진 재벌개혁론 (매노,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2012.02.10)
야당 진영에서 재벌개혁에 관한 정책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당내 경제민주화특위를 구성, 재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예전보다 강화된 출자총액제, 순환출자 금지제도, 중소기업 보호방안 등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은 10대 재벌의 해체를 핵심 기조로 내걸고, 10대 재벌에 대한 맞춤형 해체전략을 제시했다. 약간의 각론과 강조점 차이가 있지만 지금까지 두 정당이 밝힌 재벌개혁 정책의 핵심은 재벌의 소유구조 개혁이다.
재벌 오너들이 소량의 지분을 가지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며, 사리사욕을 위해 기업의 부와 더 나아가 한국경제 전체를 망친 극단적 예는 98년 외환위기다. 외환위기 핵심 원인이었던 민간 부채의 대부분은 대우그룹·현대그룹·삼성그룹 오너가 해외차입을 통해 독선적으로 진행한 중복투자와 문어발식 사업확장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재벌들의 이러한 경영방식은 2006년 정몽구 회장, 2008년 이건희 회장이 회삿돈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 최근 최태원 SK회장과 그 동생이 2천억원 넘는 회삿돈을 자신들의 선물투자 손실분을 메우는 데 사용한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외환위기 이후에도 계속됐다. 재벌 오너들의 작태는 기업의 경영부실은 물론 한국경제에서 이들 기업들이 차지하는 절대적 지위로 인해 경제 전체에도 큰 악영향을 가져왔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마치 재벌의 소유구조 개혁이 무언가 큰 진보를 가져온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다. 미국의 예를 보자. 미국에서는 19세기 말 미국판 재벌해체법이라 할 만한 반독점법을 만든 이후 20세기 초까지 수백 개 대기업들이 해체됐다. 그리고 기존 소유주가 다수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의 시작이다.
이 주주자본주의는 70년대까지 정부의 강한 금융규제와 실물경제의 고성장 속에서 그럭저럭 굴러갔지만 80년대 시장 탈규제 정책과 실물경제 저성장이 시작되며 근본적인 문제점을 만들어 냈다. 주주들의 이해는 기업의 장기적 발전이 아니라 단기적 이해에 집중됐고, 주주들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을 최우선에 두는 경영진은 주식시장에서의 주가 부양과 투자 재원조차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고배당에 집중했다. 제조업 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시켰고, 단기적 이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금융사업을 확장시켰다. 주주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GM과 GE는 2000년대에 금융수익이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생산시설은 절반 이상이 해외로 이전돼 있었다. 록펠러와 같은 재벌 오너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꿰찬 것은 구조조정과 배당 전문가들이었다.
사실 20세기 초 반독점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노동운동이었다. 미국자동차노조(UAW)는 기업의 경제적 독점력 강화가 노동의 교섭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지엠·포드·크라이슬러는 2차 세계대전 전후 부품사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들을 빠른 속도로 인수합병하는 동시에 비용경쟁에서 뒤떨어지는 부분은 노조가 없는 계열사로 아웃소싱했다. 완성차 기업의 조합원들은 상대적으로 저임금 상태에 있던 합병된 기업의 노동자들이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 압박 요인이 되는 것을 회피하고 싶어 했다. 동시에 자신들의 일자리가 아웃소싱으로 인해 불안에 내몰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 미국자동차노조는 반독점법을 통해 자본의 이러한 행태를 규제하기를 원했고, 결과적으로 주주자본주의로 이행하는 파트너로 역할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 노동자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지 않았다. 미국식 재벌해체 뒤 거대기업의 소유주가 휘둘렀던 노동탄압은 주체만 달리해 더욱 강화된 형태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주주들로부터 비용절감을 통한 순익 증가를 요구받은 전문경영인은 마치 자신의 존재이유가 오직 구조조정에 있는 것처럼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비수익 사업부문을 매각했다. 노동자들은 주식시장에서 주식거래 수치를 통해서만 모습을 나타내는 실체도 알 수 없는 주주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노동의 권리를 중심으로 경제체제를 재편할 것을 주장하고, 관철시키지 못한 미국 노동자들의 반독점 운동(우리식으로 하자면 재벌개혁운동)은 결국 자본 간의 소유·경영 관계만 변화시켰을 뿐이다. 노동이 없는 반독점운동은 결국 경제체제의 형태와 상관없이 노동에 불리했다.
현재 야당들이 내세우고 있는 재벌 소유구조 개혁도 근본적으로 미국의 주주자본주의 이행 과정과 다르지 않다. 재벌의 소유구조 개혁 이후 기업을 통제할 주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유화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이는 주주일 수밖에 없다.
한국 노동운동은 재벌개혁에 대해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 당장 재벌의 사회화와 같은 급진적 요구를 할 수 없다면, 현실적으로는 재벌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산별교섭 제도화 같은 요구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재벌기업을 포함한 산별교섭은 노동이 산업적 차원에서 통제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겉만 요란한 재벌개혁론보다는 재벌에게 노동의제를 중심으로 개혁을 요구할 제도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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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022202145&code=920401
MB정부의 잇단 특혜정책으로 계열사 32개 늘어난 재벌도 (경향, 김보미 기자, 2012-02-02 22:02:14)
ㆍ[재벌 개혁]② 경제력 집중
국내 5위 재벌사인 롯데를 대표하는 업종은? 과자·음료 혹은 백화점·마트 같은 유통 또는 호텔…. 이쯤이면 50점쯤 된다. 석유화학도 있다는 것을 알면 60점쯤 될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롯데를 알지 못한다. 롯데는 금융이나 보험은 물론 건설, 영화, 외식, 패션, 전자, 부동산개발 등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롯데그룹의 계열사 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46개에서 지난해 말 78개로 늘었다. 증가폭은 10대 그룹(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군 기준) 중 가장 크다. 사업 종류도 31가지나 된다. 2008년보다 8종이 늘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풀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재벌규제 완화가 잇따른 데 따른 것이다.
롯데의 덩치 키우기는 기존 사업 강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백화점에서 팔 옷을 직접 가져오고, 백화점에 온 손님들이 이용할 식당과 영화관을 만들고, 결제 수단인 카드를 만드는 식이다. 이 때문에 지난 4년간 음식업은 6개, 소매업은 5개, 금융·보험은 7개의 계열사가 늘었다. 계열사 증가분의 절반이 넘는다.
‘재벌 롯데’를 상징하는 대표사례는 지난해 김포공항 인근에 설립한 종합쇼핑몰 ‘롯데몰’(연면적 31만4000㎡·9만5000평)에서 드러난다. 롯데몰을 기획하고 짓고 내용물을 채우고 홍보하고 관리하는 모든 회사가 롯데 계열사로 채워져 있다. 다른 기업의 참여는 어디에도 없었다.
기획은 롯데자산개발. 쇼핑몰·테마파크 등 대규모 개발을 위해 2007년 설립된 회사이다. 시공은 롯데건설, 광고는 대홍기획이 맡았다. 건물 3개동 중 가운데에는 롯데의 핵심인 유통이 있다. 백화점, 마트가 두 축이다. 롯데마트는 자체 운영하는 점포도 따로 냈다. 완구점 ‘토이저러스’와 전자 전문점 ‘디지털파크’다. 쇼핑몰 내 편의점은 ‘세븐일레븐’이 있다. 롯데쇼핑이 1994년 인수해 현재 계열사 코리아세븐이 맡고 있다. 코리아세븐은 또 다른 편의점 ‘바이더웨이’도 2010년에 샀다. 나머지 2개동에는 롯데호텔과 롯데시네마가 들어섰다.
롯데의 영화사업은 13년 전 백화점 부대사업 성격의 영화관 사업으로 시작됐다. 현재는 투자·배급은 물론 극장 내 매점 운영 계열사까지 있다. 영화 사업이 확대되면서 디지털 영사기를 설치하고 보급하는 기업도 만들었다. 다른 중소기업이 들어갈 틈새는 전혀 없다. 햄버거 가게 ‘롯데리아’, 패밀리레스토랑 ‘T.G.I Friday’, 도넛전문점 ‘크리스피크림도넛’, 커피숍 ‘엔제리너스’, 아이스크림 전문점 ‘나뚜루’ 역시 모두 롯데 브랜드다.
패션 부문에서도 독보적이다. 롯데는 독자 패션브랜드가 많다. 자연스럽게 쇼핑몰 주요 지점에서 영업을 한다. ‘유니클로’는 롯데가 일본 퍼스트리테일사와 만든 계열사 ‘FRL코리아’가 수입, 판매한다. ‘자라(ZARA)’도 스페인 인디텍스사와의 합작법인 ‘자라리테일코리아’의 의류다. 미국 아동복 ‘짐보리’도 롯데백화점이 국내 영업권을 갖고 있다. 생활용품점 ‘무인양품’ 역시 롯데가 2004년 일본 회사와 합작한 곳이다.
결제는 ‘롯데카드’가 맡는다. 롯데는 1995년 롯데캐피탈을 만들면서 금융업에 발을 들여놨다. 2002년 동양카드를 인수했고 2007년 대한화재를 사들여 롯데손해보험을 만들었다. 롯데의 금융·보험 계열사는 10개에 달한다. 이 중에는 전국에서 사들인 지역 선불교통카드 업체들이 포함됐다. 롯데는 최근 어느 지역에서나 쓸 수 있는 교통카드까지 내놓았다. 유화의 경우 기존의 호남석유화학에서 현대석유화학(2단지)을 인수한 데 이어 화학사인 ‘케이피케미칼’, 섬유복합재 생산업체 ‘삼박’, 탄소복합재 전문기업 ‘데크항공’ 등을 사들이며 덩치를 키웠다. 현재는 롯데 전체매출의 20%를 유화가 맡고 있다.
롯데의 최근 관심은 부동산 개발에도 쏠리고 있다. 전국에 ‘롯데몰’을 확대하는가 하면 테마파크를 만들어 이들 계열사를 집결시키기 위함이다. 2008년 1곳에 불과하던 부동산 계열사는 2011년 부여·제주 리조트, 롯데수원역쇼핑타운, 유니버셜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자산관리(주) 등 6개로 늘어났다. 현 상황에서 롯데가 추가로 덩치를 불리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법과 제도는 재벌들을 위해 넓게 열려진 상태다. 이는 롯데뿐 아니라 다른 재벌사에도 마찬가지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업종을 늘리고 계열사를 확충한 것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작용은 크다.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해당 분야 중소기업의 먹을거리를 빼앗으며 우리 경제의 균형발전을 저해한다. 막강한 자금력과 지원을 등에 업은 대기업 계열사와 경쟁해 살아남을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 또 무모한 확장으로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 모기업이나 다른 계열사들까지 동반부실에 빠질 우려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재벌 계열사의 부실이 그룹 전체로 확산되면서 심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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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재벌 자산 5년간 2배 증가… 국내총생산 앞질러 (경향, 김다슬 기자, 2012-02-02 22:02:52)
“몇몇 대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끌고 가는 건 사실이고, 양극화는 심해지는데 뾰족한 수는 없고….” 최근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가 털어놓은 고민이다. 공룡 이상으로 커진 재벌은 이제 한국 경제 자체가 돼가고 있다. 좀 더 손쉽게 성장 열매를 얻으려던 정부가 친기업, 친재벌 지향성을 꺾지 않으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이 한국은행·통계청 등의 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30대 재벌의 국내 경제력 집중 추이’ 자료를 보면, 2011년 30대 재벌의 총자산은 1460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1079조7656억원보다 26.1% 많다. 이들의 2011년 매출액은 1134조원으로, 2011년 국내총생산의 95.2%에 달했다.
30대 재벌의 경제력은 198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늘었다. 1980년부터 2006년까지 자산은 38배, 매출액은 27배쯤 늘었다. 총계열사 수는 417개에서 645개로 1.5배 늘었다. 경제력 집중 현상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가속화했다. 2006~2011년 동안 자산과 매출액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계열사 수는 1019개로 1.6배가 늘어나 지난 26년간의 증가분을 넘어섰다.
10대 그룹으로 좁혀보면, 경제력 집중도는 더욱 뚜렷해진다. 재벌닷컴·통계청 등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자산 순위 10대 그룹의 2010년 매출액(은행·보험·증권 제외 539곳)은 756조원으로 전체 제조업체 매출의 41.1%였다. 40%를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국내 전체 제조업체 매출액은 2005년 1196조원에서 2010년 1840조원으로 5년간 53.8% 증가했다. 반면 10대 그룹은 412조원에서 756조원으로 83.5% 급증했다. 삼성그룹이 2005년 109조원에서 2010년 209조원으로 2배가량 증가했으며, 현대차그룹은 71조원에서 124조원으로 증가, SK그룹도 64조원에서 112조원으로 뛰었다.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이미 전체의 50%를 넘었다. 2일 현재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680조8214억원으로 전체 시가총액 1244조1633억원의 54.7%에 이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09년 시장구조조사 결과’를 보면 53개 대규모기업집단이 제조업·광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은 2007년 47.3%, 2008년 49.1%로 상승하다 2009년에는 50.1%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경제력 집중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대표적인 수법 중 하나였다. 일감 몰아주기를 편법적 증여수단으로 이용해 지배지주 일가에게 부를 이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에 뛰어들며, 대기업 계열이 아닌 중소기업의 진출을 막았다.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통해 이른바 골목상권, 서민업종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이들의 자산이 한 해 국내총생산을 앞지른 이유는 다름 아닌 모든 업종에서 돈을 거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을 가진 재벌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위시해 법적,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까지 가졌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 소장은 “몇 개 기업의 힘이 막강해지면 로비력을 통한 입법 개입을 통해 정치적인 민주주의도 해할 수 있다”며 “삼성그룹 비자금 폭로 사건이나, SK 최고경영진 불구속 기소 등을 보면 불법을 저질러도 선처하는 등 사회정의 기초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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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자율 판단에 맡긴 ‘이익공유제’… 실효성에 의문 (경향, 최병태 선임기자, 2012-02-02 21:09:06)
ㆍ명칭도 ‘공유’ 빼고 ‘협력이익배분제’로… 동반성장위 결정
대기업들이 그동안 반대해온 이익공유제 도입에 동참키로 했다. 그러나 도입 여부를 전적으로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기로 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제13차 본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동반위는 지난해 11월 ‘대·중소기업 창조적 동반성장안(이익공유제)’을 마련해 12월 제10차 동반성장위 회의 때부터 안건으로 올렸으나 대기업 위원 9명이 잇따라 전원 불참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 그동안 논란이 된 이익공유제 명칭은 협력이익배분제로 바뀌었다. 그동안 정운찬 동반위원장은 순이익공유제, 목표초과이익공유제, 판매수익공유제 등 ‘이익공유제’란 명칭을 고집해 왔으나 대기업의 반대로 ‘공유’란 단어가 빠진 기형적인 명칭으로 결정됐다.
동반위가 제시한 동반성장 모델은 기본사항과 가점사항으로 구성됐다. 기본사항은 대기업이 협력기업의 애로 해소를 지원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는 것을 평가한다. 구체적으로는 원자재 가격변동 반영 여부, 불공정한 대금감액 여부, 2~3개 협력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여부 등이 그것이다. 동반위는 이런 사항을 평가해 오는 4월 발표할 동반성장지수 산정 때 반영한다. 동반성장지수 산정 대상은 공정거래위원회와 동반성장실천협약을 맺은 대기업이다.
가점사항은 협력이익배분제, 성과공유제, 동반성장 투자·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가점사항은 기본사항처럼 필수사항이 아니라 대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동반성장지수는 오는 4월 발표되지만 가점사항 반영은 내년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대기업이 올해 당장 도입하는 데 난색을 표시한 탓이다. 기본사항은 엄격히 말하면 지금도 어느 정도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과공유제를 이미 자율 시행하고 있는 포스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가점사항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느냐이다.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동반성장 실현정도는 사실 가점사항에 대부분 담겨 있다. 대기업이 지금까지 이익배분제에 반대해 왔던 이유도 바로 가점사항에 들어있는 성격의 항목들 때문이다. 이런 항목들이 제대로 집행돼야 중소기업이 현장에서 느끼는 동반성장 체감도가 높아질 수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아 만든 완제품 스마트폰으로 얻은 이익을 협력이익배분제·성과공유제 등에 포함시킬지, 포함시킨다면 어느 정도로 어떻게 나눌지가 핵심인 것이다.
동반위는 기본사항, 특히 가점사항 이행을 위한 세부적인 안을 마련하기 위해 따로 논의하지는 않기로 했다. 구체적 이행방안은 대기업, 중소기업이 자율적으로 합의하면 그만이다. 이에 따라 가점사항의 이행 행태는 수백, 수천가지까지 나올 수 있고 대기업 태도 여하에 따라 아예 이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날 동반위 합의사항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합의 자체에 무게를 두고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자율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동반성장 같은 국가적 과제를 완전히 아무런 구체적 틀 없이 완전 자율에만 맡긴다는 게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한기 경실련 정책팀장도 “이번 안을 보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 다시 구두선에 그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면서 “대기업이 결단을 내리고,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협력이익배분제: 대기업과 협력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한 결과물로 나타난 대기업의 이익을 양자간 약정에 따라 공유하는 것.
▲ 성과공유제: 수탁기업이 원가절감 등 수탁·위탁기업 간에 합의한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위탁기업이 지원하고, 그 성과를 수탁·위탁기업이 공유하는 계약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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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소비자 권익 강화시켜 압박해야 효과” (경향, 박재현·이호준 기자, 2011-10-19 21:19:35)
금융권의 ‘탐욕’은 과연 통제될 수 있을까. 금융기관 역시 이윤추구를 위한 기관이니만큼 ‘자제’를 촉구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정부가 지금처럼 마냥 압박하는 것 역시 정답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칫 ‘관치의 유혹’에 빠져들 수 있는 데다 시장경제원리로 무장한 금융기관과의 싸움에서 정부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금융소비자들이 목소리를 키워 금융기관을 직접 압박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정부의 역할은 수수료 담합과 같은 불공정 감시 기능을 강화해 시장경쟁원리가 더욱 충실하게 작동하도록 돕고, 소비자들이 금융기관과의 협상에서 대등한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소비자권익을 강화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금융 역시 경제적 욕망을 가지고 이윤을 추구하고 이것을 인정하는 게 자본주의”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자본의 욕망을 무작정 자제하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권의 불로소득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등이 참여하는 계급적인 전선을 만들기보다는 시민사회적인 공감대 속에 직접 금융소비자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소비자운동의 역사나 동력이 미약해서 아직까지 금융기관을 압박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면서 “정부의 역할은 금융기관과 소비자 간 협상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을 의무화하는 등 소비자들의 힘을 강화하는 쪽으로 집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이헌욱 본부장(변호사)는 “소비자들이 불만은 많지만 아직까지 조직화돼있지 못하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준비가 덜 돼 있어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월가 시위처럼 전 세계적으로 금융이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시민사회가 모여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을 제재할 수 있는 명분과 근거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데도 정부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초과 이윤 문제처럼 탐욕이 결국 가격 설정의 힘 즉, 시장 지배력의 행사에 기인해서 발생했다고 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금융감독 당국이 명확한 잣대도 없이 얼마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것은 근거도 희박한 데다 일시적인 효과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반면 공정위는 수수료율이 책정되는 과정에서 사업자들이 얼마나 부당한 시장지배력을 행사했는지 들여다보고 책정 과정의 담합 여부 등도 조사할 근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사외이사제도의 정상화 등 감독당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지적도 많았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유명무실한 사외이사에 소비자대표도 임명하고, 더 나아가서는 노조대표도 선임해 은행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재벌시스템이 도입된 금융자본이 스스로 이익을 양보할 리 없다”면서 “금융권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 당국의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감독당국은 오히려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위기를 겪어왔다”면서 “낙하산으로 대변되는 관치금융의 유혹부터 뿌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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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nnum=621685&sid=E&tid=5
출총제 폐지이후 재벌 경제력집중 심화 (내일, 범현주 기자, 2011-08-29 오후 1:40:45)
실질자산 증가속도 빨라지고 계열사 수도 급증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사실상 폐지된 2007년 이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동안 실질자산 증가속도와 계열사 수 증가속도가 출총제가 폐지되기 전보다 빨랐다.
경제개혁연구소는 29일 이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내 재벌그룹 팽창에 관한 분석과 그 대응방안 모색'이라는 경제개혁리포트를 발표했다고 이날 밝혔다.
리포트에 따르면 출총제가 부활해 실질적으로 적용된 2001~2011년 4월까지 공기업집단을 제외한 40대 민간기업 집단의 자산규모 등을 조사한 결과, 연 평균 실질증가율이 12.32%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총제가 시행중이던 2001~2006년 기간 동안 실질자산 연평균 증가율은 4.28%였다. 이후 기간 동안 연평균 증가율은 5.62%로 나타나 출총제 폐지 이후 자산증가 속도가 높아졌다.
20대 기업집단으로 분석대상을 한정할 경우 출총제 시행중인 시기에는 연평균 5.46%의 증가율을 보였으나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폐지가 된 2007년 이후에는 8.67%를 기록했다.
특히 2007년 이후 출총제 적용 대상 집단은 연평균 15.82%의 실질자산 증가율을 보인 반면 출총제 비적용 대상 집단은 7.15%의 증가율을 보였다. 재벌의 계열사 수를 비교하면 40대 민간기업 집단의 평균 계열사 수는 이 기간 동안 연평균 7.4% 증가했다. 출총제 시행기간동안에는 4.3% 증가했으나 사실상 폐지된 2007년 이후에는 10.5% 증가율을 보였다.
출총제 적용 대상 집단이나 비적용 대상 집단 모두 2005년까지는 평균 계열사 수에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는 출총제 적용집단의 평균 계열사 수가 크게 증가했다. 2005년 평균 27.7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가 2011년 평균 54.3개가 됐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실질자산증가율과 계열사 수에서 확인되었듯이 지난 10년 동안 상위재벌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다"며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 출총제 적용집단을 중심으로 자산과 계열사 수가 급증했다는 것은 출총제가 어느 정도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자 도입된 출총제는 수차례 법령개정으로 지난 2007년 사실상 무력화됐고 2009년 3월 공식 폐지됐다. 출총제는 지난 1986년 도입돼 강화와 폐지 부활 완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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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07
MB 정부를 위한 ‘재벌 사용 설명서’ (시사IN [201호] 2011.07.26  10:18:49 이종태 기자)
전경련과 정치권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권에 맞서 전경련은 ‘시장주의 수호’를 내세운다. 그런데 과연 전경련 회원인 재벌들이 시장 원리에 충실하긴 한 걸까?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09
재벌 논쟁 맞수에서 복지국가 ‘동지’로 (시사IN [201호] 2011.07.26  10:48:55 이종태 기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분열되었던 시민사회의 ‘재벌 담론’이 수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재벌개혁론’과 ‘사회-재벌 타협론’으로 대립하던 지식인들이 서로 공감대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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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744
한진중공업, 노동자 그리고 사회주의 (레디앙, 2011년 06월 23일 (목) 16:56:50 이호걸 / 독자)
[투고] "누가 기업의 주인인가, 진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한진중공업이 조씨 일가의 것인가, 주주들의 것인가, 노동자들의 것인가? 이 질문의 대답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리해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가' 여부가 달려 있다. 또한 '이 세상이 만들어져 나갈 방향은 어느 쪽인가'에 대한 문제도 걸려 있다.
이에 대해 가장 쉽게 나옴직한 답변은 돈을 투자한 사람, 즉 주주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주주들이란 사실 매우 무책임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번 돈에 대해서는 절대적 권리를 요구하지만, 잃은 돈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책임만을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하준은 책임지고 경영을 해나가는 오너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오너들이 과연 그럴 권리가 있는 존재들인가?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럴 권리를 가질 만큼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 기이한 지배구조를 통해 주주들이 투자한 돈을 전용하고 때로는 횡령하는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또한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이 실패했을 때 그들은 정확히 보유한 주식량만큼의 책임만을 진다. 그리고 사실은 횡령을 통해 비자금을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덜 책임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는 자본의 소유자가 아니라, 자본의 일부이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의 한 종류일 뿐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노동자들의 기업에 대한 권리란 전혀 없다.
하지만,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기업을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더구나 기업이 실패했을 때 노동자는 그의 생존의 모든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일터를 잃어버림으로써, 사실상 이에 대해 가장 강력한 책임을 진다.
소유란 절대적인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 원래부터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소유는 상대적인 개념이고 역사적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받아 왔다. 이는 기업이 누구의 소유라는 것에 대해 자연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새롭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이 법적으로는 주주의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오너 일가의 소유인 것이 현재의 실정이지만, 노동자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나려고 하는가에 대한 입장과 의지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재벌 지배에 대한 가장 세련되고 정치한 비판이라는 <시사인> 이종태 기자 식의 논리가 신자유주의적이라면, 주주의 도덕적 무책임에 대한 대안으로 오너에 대한 존중이라는 태도를 제시한 장하준의 생각은 초기 자본주의 시기의 부르주아적 자율성에 대한 환상을 담고 있다. 실제적으로 기업을 만들고 이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가 노동자라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해야 한다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다.
분명해 알아야 할 것은 앞의 두 입장으로는 기업의 정리해고를 결코 제대로 비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너나 주주가 기업을 소유한다면, 그가 단지 생산수단으로 구매하고 소모하는 노동력에 대한 자유로운 처분을 행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직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태도만이 해고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수 있게 한다. 당장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기업을 접수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관점은 결코 포기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에 입각한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은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주장하고,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을 가리켜 우리는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실천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관점이 중요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통합진보정당이 사회주의를 강령에서 삭제하는 것에 대한 당내의 비판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범야권과의 차이 때문에 통합을 거부하는 진보진영의 입장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들이 있기 때문에 한진중공업과의 근본적인 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512122457
MB정부 규제 완화, 재벌 토지자산·현금 늘렸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2011-05-12 오후 2:15:57)
토지자산 두 배 늘어나는 동안 설비투자 증가는 '찔끔'
이명박 정부 3년간 주요 대기업이 보유한 토지자산 규모가 두배 이상 늘어났으나, 설비투자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총액 상위 15대 그룹의 비금융계열사 자산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전방위적인 재벌 규제완화가 진행됐으나, 설비투자보다 사내유보금과 토지자산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상위 15대 그룹의 총자산 합계액은 2007년 592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921조6000억 원으로 55.6% 늘어났다. 자산증가의 주요인은 토지자산과 사내유보금 증가였다. 토지자산은 3년 사이 38조9000억 원에서 83조7000억 원으로 두배 이상(115.1%) 급증했다. 사내유보금도 32조2000억 원에서 56조9000억 원으로 76.4%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설비투자 증가규모는 미미했다. 3년 사이 15대 그룹의 설비투자액은 40조3000억 원에서 55조4000억 원으로 37.5% 늘어나는데 그쳤다. 설비투자는 기업의 향후 생산성과 생산규모 증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고용 증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이 설비투자보다 사내유보금을 더 큰 폭으로 늘렸다는 사실은 투자 대신 유동자산 증가에 관심을 더 기울였음을 뜻한다.
그룹별로 보면, 3년간 총자산 증가율이 가장 컸던 곳은 에스티엑스(STX)그룹이었다. STX그룹의 총자산은 2007년 10조8000억 원에서 지난해 21조8000억 원으로 101.5% 급증했다. 삼성그룹은 총자산이 3년 사이 126조6000억 원에서 205조5000억 원으로 78조9000억 원 늘어나, 15대 그룹 중 가장 큰 폭으로 자산 규모가 커졌다.
보유한 토지자산 증가율이 가장 컸던 그룹은 엘지(LG)그룹이었다. LG그룹의 토지자산은 3년 사이 2조3000억 원에서 8조3000억 원으로 늘어나, 증가율이 253.8%에 달했다. 토자자산총액이 가장 크게 늘어난 곳은 롯데그룹이었다. 롯데그룹이 보유한 토지자산의 지난해 규모는 2007년 6조5000억 원보다 10조9000억 원 늘어난 17조3000억 원에 달했다.
3년간 사내유보금 증가율이 가장 컸던 곳은 한진그룹으로 나타났다. 한진그룹의 사내유보금은 3년 사이 10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늘어나, 증가율이 511.9%에 달했다. 사내유보금 증가규모가 가장 컸던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삼성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07년 8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20조3000억 원으로 11조7000억 원 늘어났다. 반면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07년만 해도 1조 원에 달했으나, 지난해는 30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설비투자를 가장 큰 폭으로 늘린 곳은 LG그룹이었다. LG그룹의 설비투자 규모는 2007년 4조3000억 원에서 지난해 9조4000억 원으로 늘어나, 증가율이 121.0%였다. 삼성그룹의 2007년 설비투자액은 12조9000억 원이었으나 지난해는 19조7000억 원에 달했다. 설비투자 증가규모가 6조8000억 원으로 15대 그룹 중 가장 컸다.
경실련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로 계열사 확장이 쉬워져 토지자산이 (비교적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재벌의 설비투자 증가를 유도하겠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이명박 정부의 각종 재벌규제완화 정책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경실련 자료 인용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22137195&code=920100
경실련, 15대 기업 3년 분석…규제완화, 재벌 주머니만 불렸다 (경향, 이호준 기자, 2011-05-12 21:37:19)
ㆍ토지자산 2배·사내유보금 76% 급증… 설비투자는 38% 증가 그쳐
15대 재벌그룹의 토지자산이 3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고, 같은 기간 사내유보금도 70%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설비투자액은 30%대 증가율을 보이는 데 그쳤다. 경기 회복을 위한 각종 재벌 규제완화 정책의 과실이 고루 퍼지지 않고 재벌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2일 내놓은 ‘15대 재벌(자산총액 기준)의 총자산, 토지자산, 사내유보금, 설비투자액 추이 분석’에 따르면 15대 재벌의 토지자산은 2007년 38조9000억원에서 2010년에는 83조7000억원으로 44조8000억원(115.1%) 급증했다. 같은 기간 총자산은 592조5000억원에서 921조6000억원으로 55.6% 증가했다.
그룹별 총자산 대비 토지자산의 증가속도는 KT가 7.5배로 가장 빨랐고, 한진(4.8배), GS(4.3배), LG(4.3배), SK(3.6배) 순이었다. 전국 표준공시지가는 2010년에 2007년 대비 10.49% 오르는 데 그쳤다.
경실련은 재벌들의 토지자산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 “신규 매입을 포함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로 계열사 확장이 쉽게 이뤄지면서 계열사가 가지고 있던 토지자산이 더해졌기 때문”이라며 “재벌들이 자산을 증가시키는 데 있어 상대적으로 토지자산의 증가에 더욱 치중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15대 재벌의 사내유보금도 2007년 32조2000억원에서 2008년 24조1000억원, 2009년 28조원으로 잠시 감소 추세를 보이다 지난해 56조9000억원으로 3년 만에 24조7000억원(76.4%) 급증했다. 사내유보금이란 투자를 유보하고 내부에 쌓아둔 자금으로 재벌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사내에 쌓아두고 설비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내유보금은 한진이 3년간 511.9%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이어 현대자동차(299.7%), 삼성(136.4%), 현대중공업(134.3%), GS(78.9%)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2007년 40조3000억원 수준이었던 설비투자액은 2010년 55조4000억원으로 3년간 15조1000억원(37.5%)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사내유보금의 증가속도가 설비투자를 크게 웃돌면서 지난해에는 이들 재벌의 사내유보금액이 설비투자액을 상회하기도 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설비투자 유도를 위한 규제완화 정책이 총자산, 토지자산, 사내유보금 급증으로 이어져 재벌들의 주머니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출총제를 재도입하고, 재벌들의 무분별한 경제력 집중 규제를 위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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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에얼릭·로버트 온스타인의 <공감의 진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420105025
갈등 또 갈등…호모사피엔스의 미래는 새드앤딩? (프레시안, 허준석 경제학자, 2012-04-20 오후 6:03:03)
[프레시안 books] 폴 에얼릭·로버트 온스타인의 <공감의 진화>(고기탁 옮김, 에이도스 펴냄)
1980년대 이후 인류학과 생물학(그리고 때로는 경제학까지도) 문화가 인류 진화 과정에 끼친 독특한 차원에 꽤나 주의를 기울여 왔다. 에얼릭의 <인간의 본성(들)>(전방욱 옮김, 이마고 펴냄)이 이러한 공진화론에 대한 이론적인 요약?사실 이 입장에 관한 가장 체계적이고 잘 정리된 접근은 피터 리처슨과 로버트 보이드의 <유전자만이 아니다>(김준홍 옮김, 이음 펴냄)이다?이라면, 공진화론에서 도출되는 주요한 결론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게 된 위기에 대한 해법을 탐색하는 책이 <공감의 진화>이다.
책의 주장은 원제인 "외줄에 선 인류(humanity on a tightrope)"로 압축될 수 있겠다. 오늘날 인류에게 산적한 문제 특히 지구 온난화, 환경 재앙, 핵 위기는 현재 국민 국가의 틀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아이러니한 점은 가족이든 국민 국가든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결사체가 바로 진화의 과정에서 보다 유리한 생존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선택된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던 그 결사체들이 너무 효과적이었던 나머지 오늘날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만일 인류가 살아남고자 한다면 여기서 진화의 지혜와 상상력에 기대어 한 번의 도약을 더 이뤄내야 한다.
이러한 도약을 위해 저자들이 제시하는 단서의 한 조각은 인류 진화의 유구한 역사다. 오늘날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가부장 중심의 가족이나 국민 국가는 결코 자연스럽거나 불변의 그 무엇이 아니다. 과거 우리는 훨씬 크고 넓은 "우리"를 지녔던 바 있다. 종족 번식의 편의성에 따른 모계 중심 사회의 잔존하는 흔적들은 가부장 중심의 가족을 넘어선 형태가 이미 존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뇌는 생래적으로 공감 능력 및 도움 성향을 갖추고 있다. 사실 이러한 공감 능력이 "우리"를 낳았다. 마이클 토마셀로의 유명한 유아 실험이 보여주듯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별도의 교육 없이도 타인을 도우려는 능력과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인간과 영장류의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하다(<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마이클 토마셀로 지음, 허준석 옮김, 이음 펴냄)). 인간은 발달된 거울 신경 세포 덕분에 타인의 처지와 감정을 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고 이를 제 것으로 체화할 수 있다. (물론, 프랜시스 드 왈 등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인간만 이러한 거울 신경 세포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고 거울 신경 세포는 영장류 및 일부의 포유류와 조류에게서도 널리 발견된다고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상황은 무척 희망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모순적이고 다양한 성향을 지닌 존재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자신과 타인들을 이미 수없이 경험해 왔다. 사실, 이 방면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기회주의적인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이기적인 인간만 판치고 날뛰었다면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역사의 종말이 이미 몇 번은 찾아오고도 남았음 직하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들이 많고 그 본성이 기회주의적인 데에도 세상이 망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요컨대, 인간 진화의 역사는 타인과 공감하고 협동하려는 생래적/문화적 성향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 이면의 이기성을 눌러온 것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를 달성해온 여러 방식 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했던 기제의 하나가 우리와 타인을 적절하게 구분하고 타인을 배제하는 것이다.
"외부의 적은 우리를 단결하게 만든다"는 세속의 지혜는 만고의 진리인 셈이다. 이러한 피아의 구분은 자원의 획득과 활용을 둘러싼 환경이 치열해질 때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역설적이지만 타자와의 격렬한 대립을 통해 우리는 동지애를, 전우애를, 그리고 형제/자매애를 나누고 이러한 유대는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외부와의 갈등을 격렬하게 겪을수록 내부적 단결은 단단해진다.
요컨대 우리를 식별하고 타인을 배척하는 것-더 큰 적을 만드는 것-은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기심의 발흥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는 셈이다. 사회, 경제, 역사적인 요소를 과감히 떼어내고 진화라는 맨 눈으로 바라볼 때, 인간 사회의 성공적인 결사체들은 이렇듯 우리와 다른 그 무엇으로 외부를 표상하고 그 명분 아래 하나로 뭉쳐서 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인 것이다.
에얼릭과 온스타인의 책은 지금까지 가장 큰 힘을 발휘해온 진화적 귀결물들이 이제 지구적인 위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기후 변화, 환경 오염, 전염병에 취약한 환경, 핵전쟁의 잠재적 영향, 인종 차별주의, 성 차별, 경제적 불평등"이 그 대표적인 목록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인간의 적응을 도와온 그 기제가 이제 거꾸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아쉽지만 이 대목에서 에얼릭과 온스타인은 분명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분명한 해법을 제시한다는 선언 자체가 되레 정직하지 못한 것일지 모르겠다. 다시 책의 제목으로 돌아가 그들은 외줄 위에 올라탄 곡예사를 볼 때 우리의 거울 신경 세포와 조응하는 그 공감 능력을 서커스 밖으로 확장시키자고 말한다.
"우리는 오늘날 비틀거리는 문명이라는 외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즉 우리나라의 시민 동료들과 지구상의 70억 시민 동료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성공한다면 아득히 먼 미래에 외줄 위에서 걸을 기회를 얻게 될 무수히 많은 호모사피엔스들과 한 몸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
에얼릭과 온스타인의 해법이 유구한 진화의 역사에서 도출한 일종의 의지적 낙관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와 함께 지적 비관도 함께 고개를 쳐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류사적 위기라는 수사학이 국민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에 뒷전에 놓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우리"와 다른 누군가와 어울리고 그들과 공감한다는 것은 책에 나와 있는 것 이상의 용기와 노력 그리고 희생을 요한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우리"를 우리이게 해주는 기제들이 오랜 진화의 작용이라면 이를 더 큰 틀에 맞춰 재조립하고 이를 다시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쉽게 낙관할 수 없는 과업이다. 저자들 스스로 시인하듯 진화의 역사란 언제나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외줄 타기가 아니던가?
시장 이데올로기가 지배한다는 21세기 한국에서 유전자 보존의 욕구를 맨 몸으로 노출하는 가족 이기적 사교육 열풍이나 국민 국가를 넘어선 세계적 조정의 필요성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도무지 쉽게 진화되지 않는 세계 금융 위기의 위태한 현재 모습들은 이러한 저자들의 낙관이 쉽게 의지로 승화되기 힘들다는 대변한다.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현존하는 진화의 안정적인 문화적 결과물을 보다 성공적인 모습으로 녹여내기 위한 "이행"의 전략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안" 가족인가? 가족의 약화 혹은 해체인가? 국민 국가들 사이의 협력 증대란 어떤 모습일까? 이른바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희생하면서 공정하고 효율적인 지구적 거버넌스의 등장에 어느 정도나 헌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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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예산집행지침 관련 글

 

[성명] MB정권의 노동자 무시, 공공기관예산지침에도 또 반복인가 (공공운수노조·연맹, 2012/02/06 10:12)
- 2012년 예산집행지침 확정(1. 31)에 부쳐 -
지난 1월 31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2012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안」을 의결했다. 이번 2012년 “예산집행지침”은 이미 발표된 “예산편성지침”과 함께 공공기관의 운영을 왜곡하고, 공공기관에 직접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정권의 노동배제가 공공기관예산지침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지침이다. 이번 예산집행지침에서는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으로 논의해야할 사항을 모두 일방적 지침으로 내리꽂고 있다. 내용도 노동조합이 문제제기해왔던 것과 정 반대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정부가 앞장서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취지를 묵살하고 있는 지침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지침에서 공공기관의 공공적 운영보다는 경쟁과 시장의 원리, 용도폐기된 신자유주의 원리를 시대착오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애초 기본급이었던 ‘경영평가전환금’을 자체 차별성과급으로 전환하도록 구체적인 방식을 정해 강요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성과경쟁을 임금차별로 부추기며,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할 기관에 민간기업처럼 업무경쟁과 수익성 경쟁을 강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연일 일자리창출 방안을 앞세워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공공기관에서 “일자리창출”은 아랫돌 빼어 윗돌 궤는 내용이다. 일자리창출 방안은 청년인턴채용확대와 같은 실효성 없는 내용이다. 비정규직 처우개선비는 그나마 수년간 동결·억제되어온 정규직 인건비 내에서 사용하도록 묶어놓고도,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육아휴직대체 등을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규직 인건비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민간위탁(외주화)에 대해서는 ‘경영효율성과 생산성향상, 핵심역량강화, 비용절감 등을 위해 아웃소싱 적극 활용할 것’을 요구하는 등 구체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선진화 정책’을 앞세워 인력을 크게 감축해고 그 결과 공공기관비정규직은 사상최대규모이다. 예산지침이 있는 한 이명박 정권임기가 끝날 때까지 공공기관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한편, 지지부진하던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혁신도시 사업은 급기야 총선과 대선을 의식하여 이주수당으로 무마하려한다. 노조는 그동안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혁신도시 관련 총체적인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 대화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예산집행지침은 여전히 충분한 협의없이 발표된 소액의 이주수당 외에, 제대로된 국토 균형발전을 위한 예산투자는 언급도 되지 않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연맹은 정부가 공공기관 노동조합과 협의하여 예산지침을 전면 재개정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좋을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해소, 서민생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 수립과 그 방안 마련을 위해 노동조합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

 


 

공공부문 내년 임금 9% 인상 요구 (매노, 조현미 기자, 2011.10.18)
양대노총 공공부문 공대위 '예산편성지침 공동요구안' 마련
국민건강보험공단 복수노조인 공공운수노조 전국사회보험지부(지부장 최재기)와 공공연맹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위원장 성광)가 오는 31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조합원 1만여명이 집결하는 집회를 개최한다. 올해 공공부문 단위사업장에서 개최되는 집회 가운데 최대 규모다. 공단 노사는 지난 4월부터 임금교섭을 벌였지만 이달 현재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임금의 경우 총액대비 14%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 공단은 4.1% 인상을 고수하고 있다. 공단은 3급 직원에게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노사의 교섭이 교착화된 배경에는 기획재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이 자리 잡고 있다. 기재부는 올해 예산편성지침에서 총인건비 인상률을 4.1%로 제시했다. 공단은 정부의 지침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공부문 노동계는 공공기관 노사의 교섭을 좌지우지하는 정부의 예산편성지침에 공동대응하기로 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는 “최근 물가상승률과 내년 예상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내년 총 인건비를 9% 이상 인상해 줄 것을 요구하겠다”고 17일 밝혔다.
공대위의 예산편성지침 핵심 요구사항은 △총 인건비 9% 이상 인상 △부당한 임금정책 폐지 △복리후생·노동조건에 대한 통제 지침 폐지 △경영평가 성과급 제도 개선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 제한 폐지 △정년 차별 철폐, 조건 없는 정년연장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부 지원사항 이행 등이다. 공대위는 이와 관련해 기재부와 공동협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공대위는 신입직원 초임삭감 원상회복과 함께 임금보전을 위한 별도 재원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외주위탁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적정임금 보장과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노동계의 참여 보장을 요구할 방침이다.
한편 공대위는 이날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공공기관 예산지침 토론회’를 개최했다. 공동요구안을 발제한 이인섭 공공연맹 상임부위원장은 “예산지침은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구속력을 갖게 된다”며 “정부에 의한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노정교섭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사용자는 정부, 단체교섭 나와야” (매노, 조현미 기자, 2011.10.18)
양대 노총 공공 공대위 17일 ‘공공기관 예산지침’ 국회 토론회
“현재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체제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의 세세한 노동조건까지 제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재부가 교섭주체가 돼야지요. 그게 아니면 예산편성지침을 운영지침으로 변경하고 자율교섭을 보장해야 합니다. 지금은 둘 다 안 되고 있어요.”(최재기 공공운수노조 전국사회보험지부장)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이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17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2012년 공공기관 예산지침 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공무원 신분이 아닌 공공기관 노동자의 임금·고용조건이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공공기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훼손하는 예산편성지침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오 실장은 “정부가 임금·고용조건에 관한 내용을 총괄적으로 정하고 싶다면 노정교섭 체제가 구축돼야 한다”며 “이는 예산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노동자를 대표하는 산별노조가 참여하는 교섭체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예산편성지침은 공공기관들이 예산을 편성할 때 참고하는 정부의 지침이다. 기재부가 경영실적평가를 통해 지침 준수 여부 등을 점검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기재부는 ‘2011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에서 올해 공공기관 총인건비 인상률을 4.1%로 제시했다. 경상경비와 업무추진비 등은 동결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기재부는 특히 대학생 자녀 학자금을 무상지원하거나 예산을 통해 경조사비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폐지하도록 지시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장은 “다른 정권하에서는 개인기로 돌파했지만 이명박 정권에서는 숨 죽이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만은 없다”고 토로했다. 최 지부장은 “대정부교섭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국 한국광물자원공사노조 위원장은 최근 기재부가 신입직원 초임삭감 관련해 내놓은 개정 예산집행지침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지침의 가장 큰 문제는 총인건비 내에서 기존 직원의 임금인상률을 줄여서 해결하라는 것”이라며 “잘못된 정책을 가지고 왜 직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 위원장은 “추가예산배정이 어려우면 각 기관별로 예비비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정부의 지침은 전체 공공기관에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공공기관에서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과 성과급 차등지급이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유택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6~7년 전에 기업은행에서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1년이 지나도록 도입하지 못했다”며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다른 공공기관보다 성과를 평가하기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보이는 은행에서도 평가기준을 만들기 어렵다”며 “공공기관은 실적에 대한 경영평가가 아니라 설립목적에 얼마나 부합하게 이행했느냐를 갖고 운영평가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세환 근로복지공단노조 위원장은 “민간부문은 파업을 통해 경영자에게 불이익을 줘서 임금과 복리후생을 쟁취할 수 있지만 공공부문은 파업투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며 “우리의 요구를 어떤 식으로 실현할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노총의 공기업연맹과 전력노조도 공대위에 끌어들여 강한 공공부문 노동자 결합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정치적 압박투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건호 실장은 “공공기관 고용조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노동자들이 공공기관을 서민의 벗으로 전환하는 혁신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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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1/25/0200000000AKR20110125054500002.HTML
공공기관장 해외출장시 일등석 탑승 금지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2011/01/25 09:27)
급여성 복리후생비 신설.변경시 이사회 심의.의결 의무화
올해부터 공공기관장들은 해외 출장시 일등석을 탈 수 없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개최해 이같은 내용의 '2011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안'을 의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우선 공공기관장들이 해외 출장시 항공좌석 등급 규정이 없는 점을 이용해 일등석만 타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올해부터 비즈니스석이하를 이용하도록 제한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장들의 해외 출장을 조사해보니 전체의 20% 정도가 일등석을 이용하고 있었다"면서 "이는 기관장 직위에 맞지 않다고 판단해 정무직 공무원인 차관급에 준해 비즈니스석을 타도록 규정했다"고 말했다.
과도한 복리후생 지원을 제한해 통신비 일괄지원을 금지하고 각종 수당, 급여성 복리후생비 신설.변경시 이사회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의무화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시 기관의 총인건비가 늘지 않도록 했고, 2012년 말 디지털방송 전환에 대비해 향후 자산 취득시 디지털 TV를 우선 사도록 규정했다.
경영자율권 확대기관의 경우 자율경영계획에서 정해진 대로 경평 성과급 지급 등에 예외를 인정하고, 경평 성과급을 입사연도에 받으면 퇴직연도에 지급을 금지해 중복으로 받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신규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 후 집행하도록 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102040
"공기업 경영평가 성과급, 실근무일수 기준으로" (매노, 김미영 기자, 2011-01-26 오전 9:55:00)
기재부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안 발표
앞으로 공공기관 사장들은 국외 출장 때 1등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을 이용해야 한다. 또 경영평가 성과급 지급 기준이 해당 평가연도의 실제 근무한 시간에 비례하도록 변경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4일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공공기관의 인건비를 비롯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세부기준을 담은 '2011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안'을 심의·의결했다”고 25일 밝혔다.
기재부는 지침에서 경영평가 성과급을 평가연도(전년도) 실근무자에게 근무시간에 비례해 지급하도록 했다. 기재부는 “실제 근무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1년에 두 번 성과급을 받은 사례에 대한 지적이 나와 이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복리후생 지원도 대폭 제한됐다. 통신비 일괄지원이 급지되고 창립기념일 등 행사 기념품 제작과 지원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각종 수당을 지급하거나 급여 관련 복리후생비 신설이나 변경할 때 이사회 심의·의결을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했다.
지난해 전광우 국민연금공단의 호화출장 문제가 국정감사 도마 위에 오르면서 기관장의 해외출장 항공운임 기준도 변경됐다. 공공기관장의 국외공무 출장시 항공 좌석등급은 차관급 수준인 비즈니스석으로 이용하도록 명시했다.
이 밖에 정부지침 개정사항이 예산지침안에 반영됐다. 2012년 말 디지털방송 전환에 따라 자산취득시 디지털 TV를 우선 구매하는 규정이 신설된다. 임금피크제 도입시 기관의 총 인건비가 증가하지 않아야 한다. 경영자율권 확대기관의 경우 자율경영 계획서에서 정해진 대로 경평성과급을 지급할 때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신규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 후 집행해야 한다.
한편 기재부는 이날 '2011년 공공기관 지정안'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그동안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던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한국전력공사의 6개 발전자회사들이 올해부터 '시장형 공기업'으로 바뀌었다. 시장형 공기업은 자산 2조원 이상 공기업을 말한다. 비영리 재단법인인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이날 공공기관 지정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http://www.yonhapnews.co.kr/economy/2011/01/26/0301000000AKR20110126170000002.HTML
공기업 클린카드, 미용실.노래방 사용 금지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2011/01/27 06:03)
항공마일리지.공공요금.유류비 포인트 개인사용 못해
공공기관장, 장관 수행시 1등석 이용 가능

정부가 공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클린카드 사용처를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룸살롱은 물론이고 미용실, 노래방, 실내 골프장에서도 클린카드 사용이 금지되며 항공마일리지와 공공요금, 유류비 납부에 따른 포인트도 개인이 마음대로 쓸 수 없도록 했다.
2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각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 내려 보낸 '2011년 예산집행 지침'을 통해 클린카드의 사용법과 금지 장소를 명기했다. 클린카드란 여종업원이 나오는 유흥업소 이용을 원칙적으로 봉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인카드로, 공기업에서 2005년부터 시행됐지만 유명무실했다가 2009년 사회적으로 성 접대 파문이 터지면서부터 정부가 관리를 강화해왔다. 올해에도 정부는 클린카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제시해 공기업 임원과 직원들의 접대비 오남용을 막기로 했다.
올해 공기업 예산집행 지침에 따르면 접대비를 포함한 업무추진비는 신용카드 중 클린카드로만 써야 하며 룸살롱, 유흥주점, 단란주점, 나이트클럽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미용실, 피부미용실, 사우나, 안마시술소, 발 마사지 등 대인서비스와 실내외 골프장, 노래방, 사교춤, 전화방, 비디오방, 카지노, 복권방, 오락실, 성인용품점, 총포류판매 등에서도 클린카드 사용이 금지됐다. 특히 정부는 업무상의 이유로 클린카드 대신 개인카드를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불가피하게 개인 카드를 사용한 경우 이유를 설명하고 곧바로 적합한 카드로 변경해 결제하도록 했다. 클린카드 이용 후 전표에 서명시 사용자의 실명을 흘림체가 아닌 정자체로 기재해 사용자 명세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공무출장으로 적립된 항공마일리지는 별도로 관리해 향후 해당 공무원의 공무 출장시 좌석 승급이 아닌 운임 할인에 사용해 경비를 줄이도록 하고 공공요금, 유류비 지급 과정에서 생기는 포인트는 해당 기관에서 경비로 사용해 예산을 줄이도록 지시했다. 예를 들어 KT 전화요금 납부시 발생하는 포인트로 전화요금을 대체납부하고, 공용차량 주유시 받은 쿠폰으로 유류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휴가 미사용에 따른 보상 금지 규정도 존속시켜 휴가 사용 촉구에도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해서는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도록 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공공기관장이 해외 출장을 갈 경우 차관급에 준해 비즈니스석 이하만 이용하도록 지침을 내렸으나, 정작 장관 수행 등은 예외로 인정한 것으로 드러나 공공기관장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아니냐는 일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지식경제부 장관이 한국전력 사장과 해외 출장을 같이 갈 경우 서로 일하러 가는 만큼 공공기관장도 예우해서 1등석을 타는 게 좋다고 판단해 예외 규정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정부는 올해 공기업에 청년 인턴이 1만여명이나 채용되는 점을 감안해 청년 인턴 고용시 인건비, 경상경비 절감분을 활용해 지출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인턴사원 채용으로 인한 소요경비와 공공요금 지출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경우 인건비 전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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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 확정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제도기획과 보도자료, 2010. 11. 15)
- 방만경영 억제 및 재정건전성 강화 유도 -
[101115_2011년도_공기업·준정부기관_예산편성지침_확정.hwp (228.00 KB) 다운받기]
□ 기획재정부는 11. 15(월) 제11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2011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안」을 심의·의결하였음
   * 예산편성지침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0조(경영지침)」에 근거하여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
□ 동 지침에서는 인건비, 경비 등의 과도한 지출을 억제하여 공공기관의 효율적인 예산운용을 유도하기 위해 감사원, 국회, 언론 등에서 지적된 방만한 예산운용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개선된 기준을 제시. 특히, 공공기관의 재무 건전성 제고를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강화하고 경비절감, 사업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 강화 규정을 신설
□ 예산편성지침의 세부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① 경상경비 동결 및 과도한 복리후생 억제
  ㅇ 총인건비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 차원에서 지난 2년간 동결한 점을 감안하여, 전년대비 4.1% 이내 인상 편성 (호봉승급분 등 자연증가분 1.4% 별도)
  ㅇ 경상경비는 전년대비 동결하여 최대한 절감 편성
  ㅇ 감사원 감사 등에서 지적된  방만경영 사례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예산편성지침에 반영된 제한규정*에 추가하여 사내복지기금 출연 요건 강화, 과도한 기념품 지원 금지 등 신설
     * 대학생 자녀 학자금 무상지원 폐지, 주택자금 대출이율 시중금리 수준, 경조사비 예산편성 금지, 주택자금 이중 지원 금지 등
   - 기관 자체 노력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 세전순이익*을 근거로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 금지 
      * 정부의 재정지원, 출자회사 매각, 유휴재산 매각 등에 의하여 발생한 순이익
   - 장기근속자, 퇴직예정자 등에게 관행적으로 지급하던 과도한 기념품* 예산 편성 금지 
     * 순금, 건강검진권 등 
 ② 공공기관의 부채관리 노력 강화
  ㅇ 공공기관 재무건전성 제고를 위해 형식화되어 있던 예비타당성 조사를 강화하고, 사업구조조정, 재무관리 전담조직 운영 등을 통한 자구노력을 유도
   - 현재 500억원 이상 대규모 사업에 대해 실시하도록 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하는 공신력 있는 외부전문기관에서 수행하도록 하고, 면제대상 사업 범위를 축소․명확화*
      * (현재) 국가정책사업(또는 국고지원사업), 불필요한 예산낭비와 사업 지연 등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사업
     → (개정) 국가재정법상 예타 실시 사업, 재해예방․복구지원, 시설 안전성 확보 등 긴급 요구 사업, 기관의 특수한 사정 등을 감안하여 주무부처 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하여 인정한 사업
   - 자체수입확대, 경비절감, 사업구조조정, 재무관리 전담조직 운영 등을 통한 자구 노력 강화 조항을 신설
 ③ 일자리 나누기 등 국가정책지원 강화 
  ㅇ 유연근무제 확산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단시간 근로자 전환․채용*에 따른 추가 비용을 별도 예비비로 편성할 수 있도록 함 
     * 공공기관 유연근무제 활성화 방안(‘10.4) : 전일제 근무자의 시간제 전환 및 시간제 근로자 신규 채용 확대를 통한 단시간 근무 확대, 탄력근무,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 활성화
  ㅇ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활력 제고, 성장잠재력 확충, 지역발전, 서민생활 안정 등 국가 정책방향에 부응하는 투자를 확대하도록 함
□ 이번에 확정된 「2011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은 관계부처 및 각 공공기관에 통보되어 동 지침에 따라 각 공공기관은 2011년도 예산안을 편성하여 금년말까지 이사회 의결을 통해 확정할 계획. 각 공공기관은 예산이 확정되면 예산내역을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에 공개하고 향후 기획재정부에서는 경영실적평가를 통해 예산지침 준수 여부 등을 점검·평가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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