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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도, 경주 최부자도 포기 못하는 영남대의 이상한 징계

'최외출 총장 비판'보다 더 놀라운 징계사유... 3년 전 설립자 후손 강연 문제삼아

22.07.13 05:08최종 업데이트 22.07.13 08:45

 

 ▲ 경북 경산시 영남대 교정 ⓒ 영남대


영남대학교가 이승렬·김문주 교수를 대상으로 3년 전 일을 문제삼아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 두 사람은 2019~2020년 각각 교수회 의장과 사무국장을 지내며 학내 민주화를 촉구한 바 있다.

사건 경과는 이렇다. 최외출 교수가 총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2021년 2월 18일, 총장 직속기구인 영남대 법무감사처는 이승렬 교수에게 감사 진행 사실을 알리며 소명서 제출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등 징계를 시도했다. 사유는 네 가지였다.

 ① 2019년 5월 영남대의 전신인 구 대구대의 설립자 집안,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부를 운영해온 경주 최씨 집안의 유족 최염 선생 초청 강연 건 
② 2019년 8월 학내의 특정 인사(최외출 총장, 당시 교수)를 검찰에 고발한 건
③ 동성로에서 개최된 검찰개혁 3차 촛불집회에서 검찰이 수사 중인 특정 인사 고발 건을 언급하며 "박근혜의 하수인"이라 칭한 사실 
④ 총장 선출 규정 개정 부결의 부당함을 경북대 국감장에서 호소한 건 


교내외에서는 '표적 감사', '부당 징계 시도' 논란이 일었다. 이 교수 등 교수회가 비판해오던 최외출 교수가 총장으로 취임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가 문제삼은 항목 중에도 '특정인사 비판·고발'이 포함돼 있다. 최 총장은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측근이자 학교법인인 영남학원에서 막강항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립자 후손 초청 강의는 왜 문제인가

그런데 더 놀라운 사유가 있다. 영남대 전신인 대구대학 설립자의 손자 최염 선생을 교수회가 초청해 그 집안의 독립운동의 역사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정신을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경주 최씨 집안이다. 신라 말 이름난 문장가인 최치원의 후손으로 300여 년간 조선 최고의 부자로 명성을 누렸다. '마지막 최부자'로 알려진 최준의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지원과 백범 김구와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14년 독립운동가인 안희제가 백산상회를 세워 독립운동자금 조달계획을 세웠고, 최준은 발기인으로 자본금을 지원했다.

안희제는 1942년 일제의 고문에 순국했고, 광복 뒤 백범 김구가 최준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에 소중히 사용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때 최준은 안희제의 고향인 경남 의령 방향으로 절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가산을 정리해 구 대구대학을 설립했다. 영남대의 전신을 만든 집안 인사를 초청한 게 문제라니. 놀랍지 않은가. 
 

▲ '영남대 전임 교수회임원 부당징계 중단 대책위원회'가 7일 오전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의 전임 교수회 집행부 2명 징계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 백경록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전국 대학단체와 대구 시민사회단체들의 항의 공문이 영남대 총장실에 빗발쳤다. 징계 논의는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는 듯했지만, 대선과 지선이 끝난 직후인 2022년 6월 21일, 이 교수에게 징계사유서 공문이 전달됐다. 징계절차가 진행된 지 1년 5개월여 만이다. 이번엔 김문주 교수도 교수회 회계 등을 이유로 징계대상에 새롭게 포함됐다.

이에 한국사립대학교수연합회 등 26개 단체들은 '영남대 전임 교수회임원 부당징계 중단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연대에 나섰다. 대책위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대학의 지배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한 전임 교수회 임원에 대한 사적인 보복 징계이며, 자치기구로서의 교수회의 공적 활동과 회계운영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 전임 교수회 의장의 공적행위와 발언을 사유로 한 모든 징계 조치 철회 ▲ 교수 자치를 침해하는 행위 중단 ▲ 영남대의 사유화 중단 ▲ 투명한 학원운영을 요구했다.  

특히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경주 최부자와 영남권 유림들의 헌신에 기반해 대한민국 대학의 역사에 길이 빛나는 민립대학으로부터 출발한 영남대가 한 사람에 의해 사유화의 길을 밟아가는 것은 한국 사립대학의 현주소를 웅변해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징계 대상자인 이승렬 교수 역시 "지금 영남대가 개교 75주년 행사를 하면서, 최염 선생 강연을 주최한 것을 징계사유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75주년 기념의 모순
 

▲ 5월 13일 개교 75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식사 중인 최외출 영남대 총장 ⓒ 영남대

 
왜 영남대는 학교의 전신 설립자 후손 초청 강의를 문제 삼았을까.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개교 75주년 약사의 시작을 '1945년 10월 2일 대구대학 전신 경북종합대학 기성회 조직, 회장 최준 선생 취임'이라고 명기했다.

한편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제 1조는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해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영남학원은 박정희 정권이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병합해 세웠다. 

지난 5월 13일 개교 75주년 기념식에서 정홍원 전 국무총리 역시 축사를 발표하며 "지난 75년간의 영남대학교 역사가 바로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설립자이신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민족중흥의 동량 양성이라는 교육 비전처럼, 영남대학교 인재들이 바로 대한민국 발전의 주역이 됐다"고 말했다.

설립자의 사전적 의미는 "기관이나 조직체 따위를 새로 만들어 세운 사람"이다. 과연 영남대의 '진짜' 설립자는 누구일까. 75주년이라는 역사도, '박정희'의 역사도 포기하기 싫은 현 상황이 우스꽝스러운 모순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영남대는 차라리 창립 75주년을 기념하지 않는 게 덜 부끄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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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물가에 덮친 CPTPP’… 농어민 홀대, 식량주권 포기 비판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2.07.12 18:47
  •  
  •  댓글 0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며 전 세계는 식량위기를 대비해 하나같이 자국 농업 보호로 식량주권 사수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첫 농업정책으로 ‘비료 지원예산 삭감’을 내놓더니, 110대 국정과제에 CPTPP 가입을 포함시켜 농어민 생존권을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농·어민들이 12일 정부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에 반발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농어업계를 포함해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등 101개 단체가 참여하는 CPTPP가입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농어업홀대 윤석열 정부 규탄! 농어민생존권 쟁취! CPTPP가입 저지! 7·12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에 ‘농기계 연료비, 비료값, 사료값, 농자재비’ 인상의 책임을 묻곤 ▲CPTPP 가입 저지 ▲농업생산비 상승 대책 마련 ▲후쿠시마 농수축산물 수입 저지 ▲GMO 완전표시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CPTPP는 일본과 호주·베트남 등 11개국이 참여한 다자 무역 협정으로 세계 무역 규모의 15%를 차지하는 대규모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이날 대회에선 “식량자급률 45%, 곡물자급률 20%, 식량수입량 연간 1,600만 톤, 세계 5대 식량수입국이 수십 년 동안 농업을 팔아넘긴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의 결과이다”면서, 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CPTPP는 농축산물 관세는 96.1%, 수산물 관세는 100% 철폐하는 개방농정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농수축산물 관세를 78%까지 철폐한 지난 정부에서도 CPTPP 가입을 추진했지만, 농어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추진을 포기한 바 있다.

또한 CPTPP 의장국인 일본은 가입 조건으로 후쿠시마산 농수축산물 수입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가입을 추진 중인 대만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후쿠시마산 수입을 결정했다. 기준치를 웃도는 발암물질이 검출된 후쿠시마산 농수축산물을 수입한다는 것은 식량주권 포기를 넘어 국민의 건강권마저 팔아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날 7천여 명의 대회 참가자들은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까지 행진해 ‘농어업을 홀대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농어업 홀대 윤석열정부 규탄! 농어민생존권 쟁취! CPTPP가입 저지!

범국민대회 결의문

지금 우리는 식량위기에 살고 있다

기후변화로 곡물생산이 줄고, 코로나19로 공급이 불안해졌다. 전쟁은 이미 시작된 식량위기를 폭발시켰다. 전쟁이후 세계 곡물가격은 50퍼센트 이상 상승했으며 주요수출국의 곡물수출 제한조치 시행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세계식량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먹거리의 수입의존도가 비교적 높은 우리나라는 세계 곡물시장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당연히 국내 곡물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곡물가격의 상승은 먹거리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바로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현재 물가상승율은 6퍼센트대에 근접했고, 7퍼센트 이상으로 상승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반기 먹거리 물가는 현재 수준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먹거리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다. 그리고 이 위기는 가까운 내일에 한층 더 심각해질 예정이다.

윤석열정부에 농어민은 없다

농업생산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이제 농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폭등한 기름값은 생산비 상승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현재 상황만으로도 이미 많은 농어민의 부도상태가 예상된다. 그러나 윤석열정권에게 농어민의 삶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윤석열정부가 출범직후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비료지원예산 삭감이었다. 생산비 인상에 대한 대책, 구체적으로 농어민들의 삶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해야하는데 오히려 지원예산을 삭감하고 농어민을 말살시킬 CPTPP가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CPTPP뿐 아니라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개방요구가 우려되는 IPEF도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WTO와 FTA로 이어진 개방의 시간들속에서 이미 피폐해진 농어민의 삶을 완전히 끝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현재 상황만으로도 소멸로 내몰린 농어민에게 대규모의 피해가 예정된 CPTPP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제 농어민을 버리고, 국민의 먹거리를 포기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우리를 언제나 없는 사람 취급해왔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경험해왔듯이 가장 먼저 버려져 왔던 것은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농어민이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먹거리였던 것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농어민을 말살하고 국민의 먹거리를 포기하는 CPTPP가입이 아니라, 농어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국민의 먹거리에 대한 당연한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CPTPP가입의사를 즉각 철회하라. 우리는 농어민의 생존과 국민들의 먹거리를 위해 결코 이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2022년 7월 12일

농어업홀대 윤석열정부 규탄, 농어민생존권 쟁취, CPTPP가입저지

범국민대회 참가자 일동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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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기도 힘든 ‘고물가’…열심히 만들고 팔아도 답이 없다

등록 :2022-07-12 05:00수정 :2022-07-12 07:17

“비용은 다 오르고 손님은 끊기고…”
‘생산부터 판매까지’ 물가 직격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해서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 7일 저녁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오이와 가지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해서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 7일 저녁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오이와 가지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가격을 올리면 기사님들 부담도 커지니까, 다른 식당에 손님 뺏길까봐 많이 올릴 수도 없었어요.”
 
 지난 6일 저녁 만난 서울 용산구 청파동 ㅇ기사식당 사장 ㄱ(45)씨의 말이다. 이 식당은 지난달 대표 메뉴인 돼지불백과 대구지리의 가격을 9천원에서 1만원으로 올렸다. 8천원이던 알탕은 8500원으로 인상했다. 미국산 돼지고기 1㎏이 5천원 오르고, 러시아산 대구도 5천~1만원 오른 터다. 올해 1월부터 월세도 100만원 올랐다. 112㎡(34평) 식당의 지난달 전기요금과 도시가스는 합쳐서 130만원 나왔는데, 이달 들어 전기요금 등이 인상돼 부담이 더 늘어날 처지다. “거리두기 해제로 손님이 늘어나는 건가 싶었는데, 물가가 올라 다시 점심 손님이 줄었어요.” 시어머니와 남편과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는 ㄱ씨는 “지난 8년 동안 식당을 하며 요즘같이 힘든 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1월 0.9%에서 같은 해 9월 2.4%로 높아졌다. 올해 1월에는 3.6%, 4월 4.5%, 지난달은 6%까지 치솟았다. <한겨레>가 농민·중소기업·식당·편의점 등을 취재한 결과, 원·부자재 공급난과 공공요금·인건비·임대료 상승, 이상기후 등 여러 요인으로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었다.

 

강원도 홍천 서석면에서 신성재(56)씨가 농사지은 고랭지 애호박과 오이의 도맷값도 이달에 많이 올랐다. 지난해 같은 시기 신씨가 수확한 애호박 1박스(20개)는 8천~9천원이었는데 이제 2만5천~3만원까지 받는다. 오이는 한 접(100개)에 3만5천원에서 1년 사이 13만~14만원으로 3배가량 올랐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서 공개하는 품목별 도매가격은 지난 5일 기준 조선애호박은 20개에 4만1천원, 백다다기오이 100개는 12만3천원이었다. 비싼 값에 팔아도 신씨에게 남는 돈은 적다. “상반기에 워낙 날이 가물어서 수확량이 3분의 1로 줄었어요. 애호박은 하나하나 수확해 포장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죠.” 신씨는 동네에 “농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비료와 농약, 농기계용 면세유 가격이 오른 것도 신씨 같은 농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됐다. 농업용 면세유는 리터(ℓ)당 750~800원 하다가 요소수 파동과 원유값 급등 여파로 1500원으로 뛰었다. 채소 도매 경매를 하는 한국청과의 최현식 홍보부장은 “농산물은 날씨, 작황, 인건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최근 애호박과 오이는 공급량이 부족해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ㅎ어묵은 대형마트·백화점·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대표 어묵 제품 가격을 지난 2월 5100원에서 5600원으로 올렸다. ㅎ어묵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재료인) 밀가루, 연육(으깬 생선살), 택배비가 다 올라서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어묵은 지금이 비수기인데다 물가 상승 여파로 소비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상이 된 이상기후에 유가와 인건비 인상 등이 겹치면서 어민들 역시 어업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밀 자급률이 1%도 안 되는 한국에서 많이 수입하는 북미산 밀도 많이 올랐다. 주요 제분사들은 하반기 사용분까지 재료를 확보한 상태라 추가 가격 인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업계 예측이다. 그러나 밀가루와 팜유는 올해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보다 35% 이상 인상됐고 빵값 등에 반영됐다. 파리바게뜨는 지난 2월 6.7%, 뚜레쥬르는 지난 7일 9.5% 제품 가격을 올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대란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발생한 원자재와 에너지 공급난은 기초산업 생태계에 이미 고스란히 반영됐다. 현대자동차와 두산중공업 등의 2차 협력사인 주조업체를 30여년간 운영해온 ㄴ(60)씨는 차량이나 농기계 브레이크 등에 쓰이는 합금·용해철 등을 만든다. ㄴ씨의 회사도 다른 업체들과 함께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4차례에 걸쳐 용해철 1㎏ 단가를 1500원에서 2100원으로 올렸다. 용해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실리콘은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1㎏에 980원 하다가 2700원으로 오르고 구리도 1㎏에 5천원에서 1만3천~1만4천원으로 오르는 등 원자재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ㄴ씨는 “우리는 3디(D)업종이니 거래처에서 그나마 가격을 올려줬지만 다른 업종들은 (원청) 눈치 보느라 못 올리고 있다고 한다”고 했다.

 

월세·공공요금·인건비가 다 오르는 탓에 자영업자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경기도 의정부역 앞에서 20년째 72㎡(22평) 크기의 편의점을 운영하는 ㄷ(51)씨는 “최근 2년 동안 일한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만 나와달라는 말을 하면서 너무 미안했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양말 선물을 해주는데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아르바이트생 대신 ㄷ씨의 세 자녀가 편의점 일을 돕기 시작했다. 권리금 1억원을 주고 시작한 편의점은 요새 매출이 2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갈 만큼 사정이 나빠졌는데 월세는 도리어 30만원 더 올랐다.

 

경기도 포천에서 주유소를 부모님과 함께 운영하는 ㄹ(41)씨는 고유가에 주유소가 폭리를 취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며 억울해했다. 고유가일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는 곳은 카드사일 뿐인데 벌이가 늘지도 않는 주유소만 욕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주유소와 경쟁 때문에 유가가 오르든 내리든 리터당 50~80원의 마진만 책정하고 있다고 ㄹ씨는 강조했다. 1.2~1.5%로 고정돼 있는 카드 수수료는 유가가 오를수록 절대액수가 높아진다. 그만큼 주유소가 내야 할 카드 수수료가 많아지는 셈이다. 최근 ㄹ씨의 아내는 4살 아들을 돌보기 위해 13년째 다닌 무역회사를 그만두었다. ㄹ씨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별도리가 없다. “뉴스 볼 때마다 물가 오른다고 하고, 상승률이 6%라고 하는데, 정말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ㄹ씨의 목소리는 무척 암울하게 들렸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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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이 미분열국 됐다…'美 자유주의' 악몽의 시작

[인터뷰]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안병진 경희대 교수 ①

 

"'미 합중국'(the United States)이 아니라 '미 분열국'(the Disunited States)이 됐다."

최근 낙태, 총기 규제 등 민감한 쟁점과 관련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미국의 분열상에 대한 <뉴욕타임스>(NYT)의 평가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23일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뉴욕주법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집 밖에서 총기 소지를 제한하고 필요할 경우 면허를 받도록 한 뉴욕주 주법이 수정헌법 2조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연방대법원은 다음 날 24주 이내 임신중지권(낙태권)을 보호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헌법은 낙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임신중지를 합법화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30일 기후위기 정책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미국 환경청(EPA)이 온실가스 규제할 권한이 없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무력화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명의 연방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보수 절대 우위(총 9명의 대법관 중 6명이 보수 성향)가 된 연방대법원이 미국 사회를 뒤흔드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대선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트럼프 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의 대선 공약을 퇴임 1년 반이 지났는데도 연방대법원이 연일 실현시켜주는 모양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바이든이 승리한 대선 결과에 불복해 지난해 1월 6일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에 무장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던 '반란(insurrection)'이 과연 진압된 것인가 의문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3분의 2가 여전히 "2020년 대선이 조작됐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믿고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최고 사법기관인 연방대법원을 장악한 우파들의 또 다른 '반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미국 정치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바이든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가져온 퇴행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갖고 안병진 경희대 교수와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를 인터뷰했다.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 유권자 운동과 시민운동을 해온 김동석 대표는 직접 발로 뛰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으로 미국 선거 현실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현장 전문가다. 미국 정치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안병진 교수는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2016년),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2020년),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2021년) 등 트럼프 집권 이래로 증폭된 미국의 정치적 갈등에 대해 심도 깊게 연구하고 있다. 서면과 전화를 통해 진행된 두 사람의 인터뷰를 대담 형식으로 정리해 2회에 걸쳐 게재한다.  

 

 

더이상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지난달 24일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관련 판결 이후 미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보수 우위의 대법원이 지난 50년간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던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었고, 그 이후 미국 사회는 두 개의 나라로 갈라진 것처럼 갈등이 극대화 됐습니다. 일각에서 과거 노예제 폐지 당시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김동석 : 미국내 문화전쟁의 격렬한 시작입니다. 원래 연방대법원은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각축장입니다. 그런데 이번 낙태 관련 판결은 세 명의 진보 대법관이 한목소리로 지적한 것처럼 보수 성향의 다수 판결문은 억제되지 않고 무자비했으며 지나치게 공격적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보장됐던 낙태에 대한 권리를 취소한 충격은 충격 그 이상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여성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라고 말한 것처럼 당장에 22개주 이상에서, 법 집행의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낙태 제공자와 환자가 투옥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낙태가 허용되는 주로 몰려드는 환자들, 남부 국경의 난민들 행렬에 역행하는 임산부의 행렬도 보게 될 것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낙태를 원하는 약 9만4000-14만4000명의 사람들이 판결이 난 첫해 동안 낙태를 받지 못할 것이며, 그 결과 산모의 사망률이 최소 20%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지난 50여 년간 집요하게 펼쳐온 보수우파 풀뿌리 운동의 성과입니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가 설립한 국가생명권위원회(NRLC, National Right to Life Committee)에서 시작한 '낙태 합법화 금지운동'은 1980년대 들어 전국적인 대중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 우파가 결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됐습니다. 국가생명권위원회는 워싱턴 내 정책 영향력 5위 안에 드는 단체로 알려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이들은 정치 운동으로 전략을 바꿔 공화당 지지 선거운동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사법부의 보수화를 정치 목표로 내건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의 캠페인과 결합합니다. 트럼프는 "미국은 기독교 국가였으며, (앞으로도) 기독교 국가이어야 한다"라면서 기독교 우파를 낙태 반대 운동의 중심부로 끌어들여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리더십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발굴해 놓은 법률가들을 지방과 연방 법원 판사로 임명하는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트럼프 집권 기간 동안 연방 대법관 3명을 비롯해 연방 항소법원, 연방 지방법원에 판사 300여 명을 임명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 한 사람이 미국 내 최고법원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병진 : 향후 미 연방(United States of America)은 계속 더 분열되는 미국(Disunited States of America)이 될 겁니다. 제가 작년에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안병진 지음, 메디치 펴냄)라는 책을 쓴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아직도 미국을 건국 시조들의 자유주의 사상이 공통의 지반으로서 작용하는 나라로 낭만적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선거를 통한 민의에 대한 반응성, 견제와 균형, 법적 지배, 개인 존엄 등 자유주의 헌정주의 민주주의라는 공통 가치가 더이상 사회의 지배적 원리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CNN의 국제정세 프로그램인 <GPS> 진행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미국이 비유하자면 중동과 북구 유럽이 한 국가에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낙태는 물론이고, 총기, 이민, 기후변화, 선거 결과 승복 등 모든 이슈에서 그러합니다. 저는 나아가 책에서 단지 두 개의 미국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꿈꾸는 세력까지 포함하면 세 개의 미국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미국은 어떤 정치세력이 등장해도 그 공통의 지반을 다시 만들 수 없는 '티핑 포인트'이자 혼돈의 이행기에 이미 진입했습니다. 이 전제하에서 오늘날 미국을 보아야 그 위기의 강도와 방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강간 피해 아동도 낙태 안된다는 미국, 극우세력 풀뿌리 운동의 결과 

프레시안 : 연방대법원은 낙태권 폐지 뿐 아니라 뉴욕주의 총기 휴대 규제에 대한 위헌 판결, 정부의 온실가스 규제 권한에 제동을 거는 판결 등 연일 시대를 거스르는 판결을 내놓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임기 내 3명이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이런 우려가 나오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과격한 결정을 사회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내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안병진 : 걸출한 SF작가 마가렛 애트우드가 <시녀이야기>(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황금가지 펴냄)에서 상상한 것처럼 여성의 몸을 극단적 수준으로 통제하는 봉건 사회가 도래한 셈입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오하이오주에서 강간을 당해 임신한 10세 소녀가 엄격한 낙태 제한 규정 때문에 인디애나주로 이동해 낙태를 받아야 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야만 사회로 미국이 퇴행하는 가장 명백한 증거입니다. 

미국의 리버럴들이 그간 보수주의자들의 중장기 프로젝트에 대해서 너무 순진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가 주와 지역 차원에서 공화당이 장악하면서 자의적인 선거구 조정, 친 민주당 유권자 투표권 박탈 움직임이 가져올 위험성을 너무 늦게 깨달았던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매우 극우단체인 '연방주의 사회(Federalist Society)'와 공화당 지도부가 오랜 세월 준비해온 법원 장악 프로젝트입니다. 

메리 지글러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가 올해 낸 신간 <생명을 위한 달러(Dollars for Life)>에서 이 반낙태운동이 어떻게 금권정치를 강화했고 기성 공화당 주류의 힘 대신에 트럼피즘을 부상시켜왔는지를 탁월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근 연방은 물론이고 주 차원 등에서 공화당 우위의 법원 장악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바마 정권 시기에 퇴임 타이밍을 놓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안타까운 사망과 트럼프 집권의 결합으로 결국 에이미 코니 배럿이라는 자신들 이념에 가장 순수하게 가까운 극단적인 인사이자 자신들의 스타를 연방대법원까지 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녀는 1972년생입니다. 트럼프가 임명한 다른 두명의 대법관인 닐 고서치(1967년생), 브렛 캐버노(1965년생) 등과 함께 이들이 향후 수십년 헌법 해석(더 엄밀히 말하면 19세기 헌법 교리 집착)을 독점한다는 건 극우단체 '연방주의 사회' 입장에선 유토피아적 꿈의 실현입니다. 미국 자유주의 가치의 악몽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김동석 : 50년 전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학계, 전문가, 미디어 등에서 합의한 보편적 가치로 평가받았고, 지금까지 미국 사회에서 충분히 공감대가 성립된 사안입니다. '생명옹호(pro-life) 운동'이라 했지만 낙태 반대 운동은 주변부적이고 거칠고 투쟁적이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도 낙태권 보장이 항상 다수였습니다. 

대법원에서 공식적으로 결정해서 발표할 때까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야 할 사무엘 엘리토 대법관의 판결문 초안이 사전에 유출된 사실도 거의 음모에 가까울 정도로 정상이 아닙니다. 냉정하고 신중하고 조정하고 타협하고 그래서 판결의 영향이 사회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대법관에게 있습니다.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낙태 문제만이 아니라 뉴욕주의 공공장소에서의 총기 휴대 규제안을 위헌으로 판결한 것은 그야말로 헌법 문구 해석입니다. 전 세계 관광객들까지 타는 뉴욕시 지하철에서 어떻게 총기를 휴대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이번 판결들을 보면 위엄과 품격을 갖춘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대법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법원의 중심이 더이상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아닙니다.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이 주도를 합니다. 토마스 대법관은 1991년 은퇴를 한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굿 마셜의 후임으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습니다. 토마스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부하 여직원 성추문 스캔들이 알려져 자격 논란이 심각하게 일었습니다. 당시 상원 법사위원장이 바이든 의원이었고 인준 청문회를 주관했는데, 찬성 52대 반대 48로 경우 통과가 됐습니다. 그는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기자들에게 "나는 2034년까지 대법관직에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나도 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토마스 대법관은 낙태 반대 판결문에 대한 의견을 내면서 2015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대법원 판결에도 동일한 근거를 적용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의 그동안의 진보적 판결을 원점으로 다 뒤집어 자유주의자들을 비참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 이틀 후인 26일(현지시간)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수도 워싱턴DC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제2의 FDR'이 될 수 있을까? 연방대법원 개혁 전망 불투명 

프레시안 : 진보진영에선 대법관 탄핵 주장까지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대법원의 권력을 견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아 보입니다. 현재의 연방대법원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김동석 : 미국엔 헌법재판소가 없습니다. 9명의 대법관이 최종심과 위헌법률심사권을 다 갖고 있습니다. 연방대법원 대법관 중 진보성향이 다수냐 보수성향이 다수냐는 이민, 낙태, 총기, 동성결혼 등 정치적 견해가 극명하게 갈리는 쟁점에 대한 최종 결론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연방대법관에 누가 임명되는가는 미국 지식인 사회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민감한 관심사안입니다. 대법원의 균형인 '5대4'가 흔들리면 미국 사회가 요동을 치게 됩니다.

지난 몇해 동안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우 무장조직들이 무리를 지어서 공적 장소를 점유하고 노골적으로 정치인들을 협박하고 급기야는 자기들의 후보가 선거에서 졌다고 연방 의사당을 공격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을 진두지휘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법적 처리가 안되는 세상입니다. 따져보면 그 원인은 사법부가 균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를 앞세운 보수우파들의 반란입니다. 특히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이념적 균형은 공존을 의미합니다. 인종차별(사회정의), 빈부격차(경제정의), 다양성(문화정의) 이 세 가지를 붙들 축이 무너진 상황입니다.

대법원의 법관을 구성하는 문제가 국가 운영의 중요한 아젠다로 정치권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민주당은 법을 개정해 보수 성향이 다수인 대법원의 상황을 바꾸려고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연방대법원 개혁 방안을 연구하는 위원회를 대통령령으로 설치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연방대법원의 역할, 대법관 종신제 폐지 등을 검토합니다. 민주당은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정원 늘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상하원에서 대법관 수를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정원은 헌법에 명시된 것이 아니고 의회에서 법으로 인원을 늘릴 수 있지만 입법이 쉽지 않습니다. 민주당 내 상원의원 세명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온건 보수 성향의 바이든 대통령도 대법관 정원 늘리기에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당분간 연방대법원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방도는 없어 보입니다.

안병진 : 과연 바이든 대통령이 '제 2의 루즈벨트'가 될 수 있을까요? 과거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코트 패킹'(대법관 증원 법안)을 시도하다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과적으론 성공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비록 대법관 증원에는 실패했지만 그 이후 대법원은 진보적 여론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루즈벨트의 규제 개혁에 순응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은 기질적으로 루즈벨트와 달리 전환적(transformative) 리더가 아니라 제도 내 점진적 개혁주의자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미국은 진영 대결이 일상화된 미국입니다. 상하원에서 민주당은 압도적 다수는커녕 아슬아슬한 우위 상태입니다. 게다가 이 우위마저 11월 중간선거 이후 사라지면 지금 정치지형에서 법관 증원, 종신 제한 등 자유주의자 숙원의 대담한 개혁은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외부로부터 강력한 사회운동이 일어나 이를 통해 전환적 의회와 대통령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가입니다. 

총기, 낙태 등은 민주당도 다양한 스펙트럼…허약한 바이든 리더십 

프레시안 : 낙태권 관련 판결처럼 대법원의 결정은 트럼프 정부에서 심화된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곧바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매 주말마다 전국 각지에서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낙태권, 총기규제 등이 이전부터 선명한 대립 구도인 이슈라서 수습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는 30% 후반대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 주도권을 갖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안병진 : 지금 미국은 정책이 아니라 진영이 모든 문제의 프리즘으로 작동합니다. 두 개의 국가라는 진영 대결의 고착화 속에서 압도적 여론을 가진 전환적 리더십이란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낙태와 총기 등 이슈는 민주당 내에서도 온건, 강경 사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정적 상원 승부처 중 하나인 오하이오의 팀 라이언 민주당 의원은 대선후보급 거물입니다. 그는 2014년까지는 낙태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그가 반낙태 투쟁의 선봉에 선다는 건 그리 큰 힘을 받기 어렵습니다. 팀 라이언의 사례는 지금 민주당 내부가 가지는 복잡함을 잘 보여줍니다.

김동석 : 혼란 속에서 망가진 국가를 바로 세우겠다고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국민들의 기대만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이라고 하지만 의회의 극단적인 당파성으로 인해 어떤 타협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상원은 필리버스터로 인해 어떤 개혁 입법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판결이 났어도 여성 건강을 위해서, 여성 노동자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문화전쟁으로 인한 사회의 보수화는 인종, 계층간 심각한 갈등을 유발해 사회가 불안해집니다. 경제적 서민과 사회 정치적 약자가 점점 불리해집니다. 아시안을 향한 인종 혐오범죄의 증가는 이런 현상을 설명해주는 단면입니다. 소수계의 차별이나, 권익의 문제는 전적으로 정치나 공권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이럴 때 일수록 대통령의 리더십이 강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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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국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프레시안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관한 보고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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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쓴 영웅 서사, '허준이 프레임'의 함정

[전대원의 교육이야기] 필즈상 수상자를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

22.07.12 05:19l최종 업데이트 22.07.12 05:19l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오른쪽)이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국제수학연맹(IMU)이 수여하는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오른쪽)이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국제수학연맹(IMU)이 수여하는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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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소식이 알려졌다. 요 근래에 보면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들이 많아졌다. 한국의 음악과 영화가 세계 시장을 휩쓸 거나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 어릴 때 강대국이나 쏘아 올리는 건 줄 알았던 우주 발사체를 순수 국내 기술로 쏘아 올리더니, 드디어 수학이라는 순수 학문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업적을 인정받은 사람이 나온 것이다. 이제 한국인에게 노벨 과학상만 남았다는 우스개가 돌기도 했다.

허준이 교수가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이번 수상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그는 이미 이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던 수학자이다. 필즈상 수상 이전에 인터뷰 기사도 나왔었다. 그런데 인터뷰 기사 제목이 묘했다.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내지 마세요"

 
이전에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이 왜 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석학에게 굳이 '수포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싶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함부로 쓴 영웅 서사

신문이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학력고사 시절 수석 합격자에 대한 보도나 수능 만점자 보도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하고 잠 푹 자고 공부해서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 여기에 가정 사정이 불우했다던가, 부모님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이 아니면 금상첨화.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그렇게 해서 공부 영웅의 서사가 완성된다.

이미 여러 누리꾼들이 팩트 체크에 들어가서 더 이상 언급하기도 민망하다. 수포자의 근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했다는 것에 기반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에게 수포자를 운운하는 거야말로 수학 실력의 발전 가능성을 막는 표현이다. 그 나이는 수학을 포기하고 말고 할 것을 말할 나이도 아니다. 만약 세간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식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고 해야 한다.

초등학교 어린 나이부터 수학의 재능이 남보다 빠르고 느리고를 따지는 바람에 수학 교육의 첫 단추부터 잘못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꾸짖는듯하면서 오히려 은근히 조장하는 표현이 '수포자'였다. 그러고 뒤에 덧붙인 인용은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인 게 아이러니하다. 과연 성급히 결론을 내린 것은 저런 제목을 붙인 편집기자인가, 애꿎은 독자인가?

수상을 한 당사자도 답답했던지 다른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포자 아니었다…굉장히 재미있어 열심히 잘 했다"면서 자신이 수포자이고 고교 시절 수학 공부를 못했다는 세간의 오해를 해명하는 발언을 하였다. 아마 본인도 뜻하지 않은 유명세가 가져온 오해들에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한술 더 뜬 동아일보
 
에 실린 기사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왼쪽)와 7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 "시인 꿈꾼 고교 자퇴생 '수학계 노벨상' 품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image-rendering: -webkit-optimize-contrast;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동아일보>
▲  지난 1월 1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왼쪽)와 7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 "시인 꿈꾼 고교 자퇴생 "수학계 노벨상" 품었다"
ⓒ 조선일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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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수포자'에서 한술 더 떠서 '공부를 놨던 고교 자퇴생'이란 표현을 썼다. 이 표현을 보면서 나가도 막나가는구나 싶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놓고서 과연 서울대학교를 갈 수 있었을까? 물론 천재면 가능하지 싶다가도, 오히려 천재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일었다.

여러 비판을 받은 탓인지 글을 쓰면서 검색해봤더니 '공부를 놨던'이란 수식어를 '시인을 꿈꾼'으로 바꾸었다. 허준이 교수가 고등학교 시절 시인을 꿈꾼 것은 본인의 말로 확인되었으니 무리가 없다. 그러나 '고교 자퇴생'이란 표현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인터뷰 기사를 뒤져도 어느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는지 나오지 않았다. 시인을 꿈꿨고, 야간자율학습이 건강에 좋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흔히 나오는 고교 시절 은사를 찾아가 학창 시절 어땠는지 물어보는 기사도 나올 만하지만, 그런 기사 역시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고등학교 중퇴 이후 과외 선생의 인터뷰 기사가 떴다. 과외 선생을 했던 분은 현재 모 대학의 교수로 계신 분인데, 과외를 할 당시에는 서울대 박사과정생이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허준이 교수의 모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학비리로 유명하여 여러 차례 내홍을 겪었던 강남의 S고등학교였다. 이 정도로 팩트 체크를 하고 나면 허준이 교수가 범상치 않은 과정을 거쳐 서울대에 입학하였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의 함의는 매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관련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함부로 영웅 서사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영웅 서사의 선호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학창 시절 수학을 못했다는 도시 전설이 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물론 천재급 학자들 틈에 있으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천재성에 비하여 못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수학 실력이 보통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정도의 실력으로는 아무리 옆에서 도와줘도 노벨상을 탈 수는 없다.

허준이 프레임

학력고사 수석 시대의 보도가 오늘로 이어진 것이 만점자 보도이다.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을 충실히 했더니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는 기사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공부한다고 해서 누구나 수석이 되는 건 아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수석이나 만점자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관행을 자제하자는 신사협정이 나온다면 만점자 관련한 보도가 안 나오겠지만, 어느 순간 불문율이 깨지면 영웅 서사라는 조미료가 가미된 보도들이 나온다. 전국체전 금메달도 아니고 이런 경마식 보도는 교육에는 절대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교 중퇴라는 사실과 수포자라는 단어에서 한국의 교육 현실을 호도하고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정작 당사자는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국내파라고 강조하고, 한국 교육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하지 않았음에도, '허준이'라는 필즈상 수상자를 영웅서사와 한국 교육의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사람이 많다.

서두는 필즈상으로 시작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필즈상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한국 교육에 대한 시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드러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기사가 나온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필즈상 수상이라는 상에 집착하고, 수포자라는 담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의 시선은 그 자체로 한국 교육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언젠가 동네 수학 학원에 어느 전교 1등이 다닌다고 했더니 그 학원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학원에서 전교 1등이 배출되면(?) 학원 현수막도 달고 학원 앞에 관련 내용도 붙이면서 홍보를 한다. 그러면 많은 학부모들이 그 학원에 몰려간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이중적 시선
 
큰사진보기지난 6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7월 모의고사를 보고 있다. 자료사진.
▲  지난 6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7월 모의고사를 보고 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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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전교 1등과 꼴등의 교육은 달라야 한다. 허준이 교수를 키우는 교육과 수포자를 위한 교육도 다르다. 다른 걸 다르게 보지 않고 똑같이 보는 것에 비극이 있다.

수포자의 문제를 볼 때는 필즈상 수상자나 수능 만점자, 혹은 전교 1등을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봐야 한다. 기초 학력 미달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된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건만, 학교에서 수포자나 영포자가 줄어든다는 통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수포자를 직시하지 않고 낭만적 호도의 사례로만 활용할 뿐 제대로 된 기초학력 미달 교육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거 진보 교육감이 보수 교육감으로 바뀌면서 기초 학력 미달 문제를 거론하며 시험을 늘리고, 전국 단위 평가를 강화하겠다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시험을 많이 보면 기초 학력이 해결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를 들이미는 걸 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진짜 문제점이 무엇인지 여실히 나타난다. 시험을 많이 필요로 하는 학생이 과연 수포자일지, 전국 단위 등수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 입시생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야자를 강제하는 한국의 꽉 막힌 교육 현실을 필즈상에 빗대 비난하는 건 또 무슨 이율배반인지 모르겠다.

누차 강조하는 바이지만 교육에는 트레이드오프가 있다. 모든 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이란 없으며, 교육은 인생과 같아서 하나의 단면에서도 매우 다양한 함의가 나타난다. 고교 자퇴라는 코드에서 한국 교육 획일화의 문제를 읽어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사학 비리 학교에 대한 의심을 보낼 수 있고, 다른 측면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알아보지 못한 인재가 있었다는 평가가 가능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서울대 박사과정생의 과외가 존재하기도 했다

이런 복잡성을 이중적 시선으로 체화하며 전혀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부조리도 있다.

필즈상 이후 벌어진 한국 교육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SNS에 쓴 개인 감상을 옮겨 놓는다. 교육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중적 시선. 이 시선 자체에 우리 교육의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들은 교육에 있어서 이중적 인식 구조가 있는 듯.<br />한 편에서는 초등 때부터 선행하고 특목고 안 가면 인생 끝난 것처럼 자녀를 몰아붙이다가도, 또 한편에서는 획일적 입시 중심의 교육을 비판하고 구구단도 늦게 외우고 학교 시험에 적응 못한 창의적 인재에 대한 신화화된 도시 전설에 환호를 한다.<br />만약 학원도 안 보내고 필즈상 수상자 하듯이 시집 읽고 그러다가 애가 좋은 대학도 못가고 그래도, 교육 잘 시켰다고 해줄까?<br />교육에 대한 가치 기준과 내적 욕망 사이에 극도의 모순 상태가 합일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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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쓰러지고 죽는 노동자들 “노동부, 특단의 대책 내놓아야”

실내 온도 37.5도 ‘찜통’ 물류센터부터 땀으로 곰팡이 슨 헬멧까지…폭염과 사투 벌이는 노동자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회원들이 1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혹서기 노동부 지도감독 강화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7.11. ⓒ뉴시스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노동자들이 1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모였다. 때 이른 무더위로 물류센터에서, 급식실에서, 거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쓰러질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이날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은 폭염으로 인해 건강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지도·감독 강화를 촉구했다.

민병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실내 온도가 30도를 훌쩍 넘는 찜통 물류센터의 현실을 전했다. 쿠팡 물류센터는 에어컨 등 내방 시설도 부족할 뿐 아니라 잠시 더위를 식힐 휴게 공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 지회장은 "쿠팡 고양 물류센터에서는 7일 37.5도가 기록됐고, 인천 물류센터에서는 연일 85%가 넘는 습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동탄 물류센터에서는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더위에 탈진해 119에 실려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민 지회장은 "앞으로 장마가 지나가고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즈음에는 전국에 있는 물류센터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탈진해 119에 실려 갈 것이며, 그중에서 또 몇 분의 노동자가 중증 온열질환으로 고통받을지 걱정"이라며 "고용노동부는 형식적인 탁상공론식의 미봉책을 폭염 대책인 양 너스레 떨지 말고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쿠팡 물류센터 온·습도. 왼쪽부터 6월 26일 오후 1시 동탄센터, 7월7일 인천4센터 2층, 7월7일 인천4센터 4층 ⓒ공공운수노조 측 제공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오성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수석부지부장은 "학교 급식실은 불 앞에서 더위와 습도에 시달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오 부지부장은 "이 날씨에 아이들이 먹는 음식의 위생을 위해 모자, 마스크, 토시, 앞치마, 고무장갑, 장화를 착용하고 국이 펄펄 끓고, 180도, 190도가 넘는 솥에서 튀기고, 채소를 볶고, 소스를 끓여야 한다"며 "급식실은 마치 전쟁터와 같다"고 비유했다.

오 부지부장은 "지난주 경기도에서는 2명의 급식실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쓰러졌다고 한다"며 "급식실 노동자들은 학생의 건강한 급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터가 골병 드는 급식실, 숨쉬기도 어려운 온도라면 건강한 급식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집배노동자인 고광완 민주우체국본부 사무처장은 땀으로 변색되고, 녹이 슬고, 심지어는 곰팡이까지 핀 집배노동자의 헬멧을 찍은 사진을 들고 발언에 나섰다.

고 사무처장은 "무거운 안전모를 쓰고 하루에도 4시간, 5시간씩 일을 하면 더워서 땀이 나고, 그 땀이 안전모 내피에 쌓이고 쌓여서 다음 날 하얗게 소금기가 낀 안전모를 다시 써야 하고 그 안전모 내피 안에는 곰팡이가 슬어서 도저히 냄새 때문에 쓸 수가 없는 지경이지만,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이를 전혀 개선할 생각이 없다"며 "집배원들에게 여름용 가벼운 경량 안전모를 지급하라고 요구했지만, 우정사업본부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고 규탄했다.

고 사무처장은 "우본은 '더우면 카페 같은 곳에 들어가서 쉬라'고 한다"며 "이게 말인가. 농어촌 지역에서 배달하는 집배원이 카페를 찾아가는 것도 힘들지만, 도심 지역에서 배달하는 이들 또한 이륜차를 끌고, 제복을 입고 어떻게 카페에 들어가 여유 있게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우본은 집배원의 안전과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사계절용 경량 안전모를 취급하고 제대로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땀으로 녹슬고 부식된 우체국 집배원의 헬멧 내부 모습. ⓒ공공운수노조 측 제공


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인 이은정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서울도시가스분회 조합원은 "요금 검침을 해야 하는 계량기가 많다 보니 빠른 걸음으로 다녀야 한다. 이 외에도 세대 방문 고지서 송달, 고객 민원 전화 응대도 해야 한다"며 "그래서 장마와 폭염으로 가스 사용량이 적은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격월 검침을 시행하자고 가스 회사에 요청했지만, 오히려 회사는 매월 검침하는 것으로 바꿨다"고 비판했다.

이 조합원은 "회사는 현장 노동자의 안전이나 건강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건강하게,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한편, 때 이른 폭염으로 온열 환자 수가 급증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 차원의 조속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11일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 결과'에 따르면 집계를 시작한 5월 20일부터 7월 10일까지 온열질환자 수는 733명이며,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 추정자는 6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집계를 보면, 온열질환자는 184명, 온열 질환 사망 추정자는 3명이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회견 후 서울지방노동청 관계자에게 노조의 요구를 전달하는 등 폭염 대책과 관련한 면담을 이어갔지만, 책임있는 답변은 듣지 못했다고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지방노동청 측은) 관할이 아니라는 식의 답변이 많았다"며 "현안이 해결되도록 관계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의할 것과 관할 당국인 지청에 현장 지도·감독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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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스테핑 중단’에 조선일보 사설만 “불가피”

  • 기자명 금준경 기자 
  •  
  •  입력 2022.07.12 07:45
  •  
  •  수정 2022.07.12 07:47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여론조사 ‘선택적 인용’, 한겨레·경향 ‘여야 역전’·조선 ‘여야 동반하락’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인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한다. 대통령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조치이며, 정치적 의도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한겨레, 경향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 등 5개 신문이 사설을 통해 ‘도어스테핑’의 재개 및 개선을 요구했다.

▲ 12일 아침신문 1면
▲ 12일 아침신문 1면

‘尹 ‘출근길 회견’ 잠정 중단,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와야’(조선일보 사설)
‘윤 대통령 ‘도어스테핑’ 잠정중단, 소통 노력 강화돼야’(경향신문 사설)
‘윤 대통령 출근길 문답 중단, 소통 내용·인식 바뀌어야’(한겨레 사설)
‘잠정 중단된 도어스테핑, 시행착오 보완 계기로’(한국일보 사설)
‘중단된 도어스테핑, 꼼꼼히 정비하고 신속히 재개해야’(국민일보 사설)

‘도어스테핑 중단’에 조선일보 사설만 “불가피”

이들 신문은 공통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통해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쓰고, 이전 정부를 탓하는 등 발언을 한 점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그 자체론 긍정적 평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은 설화와 논란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대통령을 만날 일이 1년에 몇 번 정도였던 과거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뒤 “하지만 국정에 관한 질문에 윤 대통령이 감정이 섞이거나 정제되지 않은 답을 하는 일이 거듭되면서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 12일 중앙일보 기사
▲ 12일 중앙일보 기사
▲ 12일 경향신문 기사
▲ 12일 경향신문 기사

이들 신문은 같은 지적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선일보는 5개 신문 중 유일하게 ‘도어스테핑 중단 배경’에 대한 의문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실 출입 기자 150여 명 중 11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한다. 대통령실은 대변인의 브리핑도 가급적이면 서면 브리핑으로 대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코로나 확산세로 볼 때 불가피한 조치로 생각된다”며 ‘불가피한 조치’라고 언급했다. 지지율 하락에 따른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반면 다른 4개 신문은 지지율 하락에 따른 중단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많은 시민들은 코로나19 확산은 명분일 뿐 실제로는 최근 정제되지 않은 언행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이번 조치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중단 시점이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시점과 맞물리는 점은 오해를 살만 하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코로나19 확산은 궁여지책으로 찾은 핑계로 보인다”고 했다.

▲ 12일 한겨레와 조선일보 사설
▲ 12일 한겨레와 조선일보 사설

한겨레는 다른 신문보다 많은 분량을 ‘정치적 의도’에 따른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는 내용에 할애했다. 한겨레는 “(코로나19로 중단한다는) 설명이 썩 명쾌하진 않다. 출근길 문답이 최근 국정지지율 폭락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에 따른 중단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며 “출근길 문답에 4명씩 풀단을 짜서 진행하기로 합의했는데, 이걸 반나절 만에 아무 상의 없이 바꿔 일방적으로 중단 통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다른 분야에 대한 대책은 없이 언론과의 접점만 줄이겠다고 하니 온갖 정치적 해석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만에 하나 지지율 하락을 일단 멈추기 위해 출근길 문답을 중단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약속 파기일뿐더러 선후관계를 혼동한 얄팍한 계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경향 ‘여야 지지율 역전’ 조선 ‘여야 동반 하락’

여론조사를 전한 보도에서도 온도 차가 있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으로 따라 붙은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도한 반면, 조선일보는 양당 지지율이 모두 하락세를 보이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부각했다. 

▲ 12일 경향신문 기사
▲ 12일 경향신문 기사

이날 리얼미터가 발표한 조사(지난 4~8일, 전국 성인 2525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40.9%로 더불어민주당(41.8%)과는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흐름을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6월 첫째주 38.2%에서 매주 상승세를 보인 반면 국민의힘은 같은 기간 49.8%에서 매주 하락하는 흐름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율과 함께 언급했다. 경향신문은 “국정운영의 양대 축인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동시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표현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임에도 ‘역전’의 의미를 부여했다. 경향신문은 “격차는 0.9%포인트로 민주당이 오차 범위 내에서라도 국민의힘을 앞선 건 새 정부 출범 들어 처음”이라고 했다. 한겨레 역시 “정당 지지도는 (중략) 순위가 바뀌었다”고 했다. 

▲ 12일 조선일보 기사
▲ 12일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는 ‘내홍 영향...여야 지지율 동반 하락’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는 리얼미터 여론조사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를 더욱 부각했다.

조선일보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내분으로 두 정당 지지율이 같이 하락하고 있다”며 “양당 지지율은 일주일 전 조사에 비해 각각 2.3%포인트, 6.6%포인트 하락한 38.6%, 29.0%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기사 후반부에 언급하긴 했으나 리얼미터 조사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상승세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경인일보 서울시민 개인회생 특혜에 “어처구니 없어”

이날 지역신문인 경인일보는 서울회생법원이 이달부터 가상화폐와 주식 투자에 실패한 채무자의 개인회생을 대폭 확대한 소식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서울회생법원은 가상화폐와 주식 투자 손실금을 변제액에서 제외하는 실무준칙을 시행해 개인회생 대상자도 확대하고 갚아야 할 채무액도 줄여주기로 했다. 

경인일보는 제도 자체의 긍정적인 면을 언급하면서도 “그런데 가상화폐·주식 투자 실패자에 대한 개인회생 특혜 대상이 서울시민으로 제한된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며 “시행 주체가 서울회생법원이기 때문에 서울에 주거지가 있거나 직장이 있는 채무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주 연방 국가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서울특별시민과 직장인만 누리는 채무 면제와 탕감 특혜가 가능한 것인지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경인일보는 “서울회생법원이 청년들을 배려한 개인회생 특혜를 제공하려 했다면 그 혜택이 모든 청년에게 돌아갈 수 있어야 했다. 전국 법원과 동시에 특혜 준칙을 시행하든지, 국회나 정부에 전국적인 면책 기준 마련을 촉구했어야 마땅했다”고 지적했다.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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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원전·친기업 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에 쏟아지는 우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7/11 10:13
  • 수정일
    2022/07/11 10: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재생에너지 소외로 수출 경쟁력·전력망 안정성 우려…재계 민원 수용 내용에 공공성 저해 비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원자력 발전소 3,4호기 부지에서 원전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1.12.29 ⓒ뉴스1 
 
정부가 최근 발표한 에너지정책 방향은 탈원전을 뒤집기 위한 근거 마련 성격을 띤다. 재생에너지는 소외됐다. 전력망 안정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9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일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골자는 ‘탈원전 폐기’의 본격화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반대해왔다. 지난달에는 ‘바보짓’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원전 비중을 2021년 27.4%에서 2030년 30% 이상으로 늘린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하향 조정’으로 읽힌다. 전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두고 “간헐성과 입지·수용성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보급을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온실가스 주범인 석탄 발전 축소는 유보적이다. 전력 수급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전원별 발전 비중은 올해 4분기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확정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2030년 전원별 발전 비중 계획이 원전 확대, 석탄 발전 유지, 재생에너지 감소의 경향성을 보일 것이라고 우려한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은 “주요 국가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재생에너지 목표량을 대폭 상향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한국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는 하향시키려는 모순된 방향을 잡았다”고 비판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명시했다. 올해 120억원 규모의 설계 분야 일감을 조기 집행한다. 노후 원전 수명도 연장한다. 향후 세워질 원전을 포함해 2030년 총 28기를 돌릴 계획이다. 지난해 정부가 2030년 가동 원전 수를 18기로 줄이겠다고 한 정책 방향을 뒤집은 것이다.

에너지정책의 급격한 선회가 법적 근거를 결여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법상 발전소 건설은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포함돼야 한다. 15년간의 전력수급계획을 담은 전기본은 2년 주기로 수립한다. 전기본은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에 토대를 둔다. 에기본은 20년간의 계획을 5년 주기로 수립한다. 현재의 제3차 에기본은 2019년 확정됐으며, 차기 계획은 2024년 수립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에너지정책 방향으로 법정 계획인 제3차 에기본을 대체한다고 밝혔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는 “정부의 희망과 바람을 담은 비법정 계획인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으로 제3차 에기본을 대체한다는 건 법치주의 행정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전북 군산시 유수지 수상태양광부지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 행사를 마치고 수상태양광 시설을 돌아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RE100 문제없다” 눈 가리고 아웅

정부의 소극적인 에너지 전환이 수출 기업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압박받는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는 RE100 가입 기업이 늘고 있다. 상당수 기업이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에도 RE100 가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인식은 안일하다. 산업부는 지난 6일 설명자료를 내고 “국내 RE100 기업들의 이행에 차질이 없도록 관련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이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이 빠졌다는 지적에 대한 해명이다.

산업부는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RE100에 가입한 21개 한국 기업의 전체 전력 사용량은 25TWh 규모로, 올해 재생에너지 발전 예상량 44TWh의 절반 수준이라는 것이다.

현재 RE100 가입 기업은 일부에 불과하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기업은 가입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쓰는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2위 현대제철도 마찬가지다. 두 기업이 한 해 쓰는 전력은 30TWh에 육박한다. 이들만 RE100에 가입해도 재생에너지가 모자라게 된다. 2019년 기준 전력 소비 상위 50대 기업 가운데 RE100 가입 기업은 5곳 정도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가 충분한 것이 아니고, 재생에너지 조달이 난망해 기업이 선뜻 RE100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RE100 가입 기업 업종을 보면, 전력 사용량이 큰 제조업·철강 기업은 소수이고, 생산 공장이 없는 통신사·금융사·지주사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지언 활동가는 “전력 다소비 기업은 아직 RE100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정부 해명은 지나치게 방어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뉴시스

안정성 우려되는 원전 중심 전원 믹스

탈원전 폐기와 재생에너지 속도 조절은 공급 관리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급 관리에 실패하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초과하면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린다. 한국도 2011년 전국적인 정전이 약 5시간 이어진 적이 있고, 이후에도 국지적인 정전을 수차례 겪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조합은 공급 관리가 취약하다. 원전은 전력 수요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이른바 ‘경직성 전원’이다. 일종의 냉각재를 사용해 전력 발전량을 조절할 수는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려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는 기후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날씨가 좋을 때 생산한 전력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해놓고 필요할 때 쓰는 방법이 있으나, 비용이 많이 든다.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보완할 전원이 필요한데, 원전은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

통상 재생에너지 비중이 20% 수준이 되면 불안정성이 발생한다고 본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목표 비중을 하향한다고 해도, 2030년에는 20%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잡았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변동성 보완 중요성이 커지는 시기에 신한울 3·4호기가 완공되는 것이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졌을 때 원전 중심의 전원 믹스는 전력망 운영 안정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대접견실에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07.06. ⓒ뉴시스


공공성 결여된 재계 민원 수용

이번 발표에는 재계 민원이 반영됐다. 대표적인 게 민간 LNG 도입 확대다. 에너지 공급망 강화를 위한 수입선 다변화 방안으로 제시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건 아니다”라며 “기업 애로사항이 있으면 해소해주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GS EPS, SK E&S, 포스코에너지 등 재벌 그룹 LNG 발전 계열사는 외국에서 가스를 들여와 전력을 만들어 한국전력에 판다. 각사 연간 영업이익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민간 LNG 발전사는 가스를 한국가스공사로부터 조달하거나, 국제 시장에서 직수입할 수 있다. 두 조달처를 저울질하며 유리한 가격에 사 온다. 국가적인 에너지 조달 차원에서 보면, 민간과 가스공사가 경쟁하는 구조다. 민간이 국제 시장에서 각자 조달하도록 열어두면 가스공사 구입 물량이 줄어 가격 협상력이 떨어진다. 최근 한전과 발전자회사가 재무개선을 위해 유연탄을 공동 구매해 구입단가를 절감하겠다고 한 것과 반대된다. 민간 LNG 도입이 공공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민간의 자발적 탄소중립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배출권거래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증설 공장에 대한 배출권 추가 할당 조건을 완화한다. 에너지정책 방향 발표 전후 대한상공회의소가 환경부에 건의한 내용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은 정부가 매년 배출권을 준다. 할당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 거래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팔 수 있다. 할당량은 기업의 배출량에 비례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면 배출권을 많이 준다. 배출권의 90%는 무상이고, 유상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신설 공장은 첫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어 배출권을 충분히 못 받는다는 게 재계 불만이다. 현재는 새로 구축한 시설을 가동해, 해당연도 예상 배출량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면 배출권을 추가 할당한다. 재계는 증가 폭 기준을 1.5배로 완화해달라고 요청한다.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증설 시설에 대한 추가 할당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입장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배출권이 모자라면 돈을 내고 사면 될 일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배출권 할당량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배출권 할당량은 2030년 NDC 목표를 상향하기 전에 산정됐다. 지난해 정부는 2030년 NDC 목표를 기존 26%에서 40%로 높였다. 국가 차원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강화된 만큼 기업의 배출량을 줄여야 셈이 맞다.

한편, 환경부와 대한상의는 지난 6일 규제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기업이 탄소중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규제 걸림돌 해소를 비롯해 정부의 명확한 정책 시그널과 경제적 보상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정부는 기업이 탄소중립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인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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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이준석은 승복하고 윤핵관은 자중하라”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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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2/07/11 10:00
  • 수정일
    2022/07/11 10:0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윤유경 기자 
  •  
  •  입력 2022.07.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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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지리멸렬 집권당, 나라 안팎 사정 안 보이나”
동아 “尹, 안 변하면 문재명 나라 온다” 중앙 “권력 내부 전쟁 염치 없어”
청년 187명의 산재 기록 1면에 채운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지지율이 30%대(37%·한국갤럽)로 떨어졌다.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10일 과거 학생들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자진사퇴했다. 윤석열 정부의 네 번째 고위공직자 낙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준석 대표에 대한 윤리위원회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 결정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아침신문들은 진보·보수 언론 가릴 것 없이 집권 여당의 현재 상황을 ‘혼돈 상태’라고 규정하며 비판했다. 

▲ 11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 11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조선일보는 ‘지리멸렬 집권당, 지금 나라 안팎 사정이 안 보이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당 대표가 6개월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에 처해진 집권당은 주말 내내 이준석 대표의 거취 문제를 놓고 어수선했다.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30%대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은 여당 대표 중징계 사태로 더욱 곤두박질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 조선일보 11일 사설 갈무리.
▲ 조선일보 11일 사설 갈무리.

그러면서 “대선에 이어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승한 집권 세력이 스스로 내분을 일으키며 지리멸렬하는 일은 더욱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지금 나라 안팎 사정이 그렇게 한가해 보이냐고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은 ‘이준석은 승복하고 윤핵관은 자중하라’였다. 사설은 “(이 대표는) 성 상납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이 어떻게 이슈화됐는지를 떠나 당을 혼란에 빠뜨리게 한 빌미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책임이 작지 않다”며 “성 상납 의혹에 대해 억울한 점이 있다면 경찰 수사 등을 통해 진실을 가리면 된다.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의 기획이 있었는지도 드러나게 돼 있다. 당 대표가 “반란” “쿠데타” 운운하며 공식기구의 결정을 거스를 경우 당의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11일 사설 갈무리.
▲ 동아일보 11일 사설 갈무리.

아울러 “윤핵관들도 자중해야 한다”며 “마음에 안 드는 젊은 대표와의 내전에서 승리라도 한 것처럼 득의양양했다간 역풍을 맞는 건 순식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윤핵관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이 징계 결정 다음 날 대규모지지 모임을 가진 것은 부적절했다. 버스 23대로 1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야유회를 다녀왔다고 한다”며 “얼마 전 친윤 의원 중심의 ‘민들레’ 모임 발족을 주도했다가 비판을 받고 불참을 선언한 적도 있다. 결국 ‘포스트 이준석’을 노린 젯밥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박제균 논설주간은 칼럼 ‘尹, 안 변하면 문재명 나라 온다’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의 처신 탓”이라고 지적했다. 박 논설주간은 그 예시로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역대 대통령 중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검찰 식구’와 학교 선후배 및 지인들을 중용한 인사, ‘조용한 내조’ 약속을 지키지 않은 김건희 여사와 그 가족을 둘러싼 잡음, 김 여사 주변에 불쑥 등장하는 공인인지 사인인지 모를 사람들”을 지적했다. 

▲ 동아일보 11일 박제균 칼럼 갈무리.
▲ 동아일보 11일 박제균 칼럼 갈무리.

그러면서 “무엇보다 ‘윤(尹)사단 챙기기’ 인사와 김 여사 주변 문제에서 공과 사를 칼같이 자르지 못하는 대통령을 보며 우리가 아는 강단의 윤석열이 맞나, 하고 실망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며 “윤석열의 트레이드마크인 공정이 흔들리니 지지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집권 여당에 대해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30대 당 대표, 그런 대표를 상대하기엔 정치력이 부족한 ‘윤핵관’들”이라고 묘사하며 “이준석 대표의 성 상납 의혹은 진상이 밝혀져야 하지만, 사냥(선거)이 끝나자 윤 대통령과 핵관들이 토사구팽하는 듯 비쳐서는 안 될 일이다. 핵관들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대선 때 공은 인정한다 해도 새로운 시대를 열기엔 ‘올드 보이’들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가 됐다”고 했다. 

아울러 “‘문재명의 나라’로 가는 걸 막을 유일한 선택지였기에 오늘의 윤석열 대통령이 있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은) 공과 사를 단칼에 자르고, 필요하면 김 여사 주변 문제도 단호히 정리하며, 아무리 친해도 미래로 가는 데 발목을 잡는 세력과 ‘손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부사장은 칼럼을 통해 “거대 야당과 협치하려는 (윤 정권의) 노력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며 “‘윤핵관’과 이준석 대표의 처절한 전쟁은 또 무엇인가. 이 내전(內戰)의 본질은 2024년 총선 공천권을 거머쥐기 위한 권력투쟁”이라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 11일 이하경 칼럼 갈무리.
▲ 중앙일보 11일 이하경 칼럼 갈무리.

이하경 주필은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경험 부족과 여소야대, 정치적 내전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다”면서 “과거에 빚지지 않았고, 구태정치에 포획되지 않은 윤석열만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면 국정 운영은 순항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야당과 당내 반대자들을 대하는 정권 핵심 세력들의 적대적 태도에 있다고 지적하며 “초유의 퍼펙트 스톰 속에 벌어지고 있는 정권 초기 내전은 명분도, 염치도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은)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라며 “검찰 출신 중심의 일방통행식 인사를 강행하고, 거듭되는 비판에도 전 정권과 비교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 통합과 협치를 위한 노력 대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북송 어부 사건 등 전 정권 때의 일을 이슈화하며 갈라치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지율은 별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폄하하기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또한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전 정권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는 식으로 아집을 부려선 안 된다”며 “윤 대통령은 인사 문제의 본질이 부실 검증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최측근과 비위 전력마저 개의치않고 ‘검사 일색 지인 인사’를 밀어붙여 편향 내각을 만들었고 국민에게 독선적이라는 인상을 심었다. ‘능력에 따라 인사를 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청년 산업재해 기획보도 ‘살아남은 김용균들’

한겨레는 청년 산업재해 기획보도 ‘살아남은 김용균들’을 1면 전면에 실었다. 15살부터 35살까지 총 187명 청년의 산업재해 사고 경위를 전면을 할애해 설명했다. 별도의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 11일 한겨레 1면 갈무리.
▲ 11일 한겨레 1면 갈무리.

한겨레는 “청년 산업재해는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피해자에게도, 그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에게도 크나큰 고통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산재의 경영자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며 “한겨레가 ‘살아남은 김용균’ 187명을 기록하며 ‘일터에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을 권리’를 다시 말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수는 2080명이다. 살아남은 수는 그보다 6배 많은 12만633명이다. 치명적인 산재로 장애나 질병을 얻어 노동력을 100% 상실한 중장해인(장해 1~3급)의 수는 1만1533명(2022년 4월 기준)에 이른다. 중장해인 가운데 20~30대 청년은 187명이다. 

▲ 한겨레 5면 '살아남은 김용균들' 기획보도 갈무리.
▲ 한겨레 5면 '살아남은 김용균들' 기획보도 갈무리.

기사는 “지난 5월 새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6월1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을 신속히 해소하겠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는 ‘경영책임자 의무 명확화를 위한 시행령 개정 등 재해예방 실효성 제고 및 현장애로 개선 추진’을 목표로 뒀다”며 “1월27일 법 시행 이후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정부가 산재의 경영자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통령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산재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아파트 한동의 초인종을 모두 눌러가며 4명의 청년 중장해인(1~3급)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뇌손상으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전봇대를 오르다 감전돼 양팔을 잃은, 공사장에서 떨어진 자재에 맞아 하반신을 쓸 수 없는, 교통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온몸이 마비된 청년들을 만났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20~30대 중장해인 187명의 상해 유형, 재해 발생 경위, 장해보상금 지급액 등이 담긴 자료도 입수해 전수분석했다. 한겨레는 오늘부터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살아남은 김용균’ 4명의 목소리를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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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축체계 맹신하는 종미우익 만화정치

[개벽예감 499] 3축체계 맹신하는 종미우익 만화정치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2/07/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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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3축체계가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해줄 것이라는 맹신

2. 천궁-2는 무용지물이다

3. 두 쪽으로 분리된 타격순환체계

4. 초탄을 요격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장난다

 

 

1. 3축체계가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해줄 것이라는 맹신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 이 문장은 2013년 3월 19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가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꺼내놓은 말이다. 그가 언급한 핵은 북이 보유한 핵무기를 뜻하므로, 북의 핵무기를 자기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고 했지만, 핵무기는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는 짐꾸러미 같은 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북의 전략핵무기는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최강의 억제무기이고, 북의 전술핵무기는 국토완정을 실현하기 위한 최강의 실전무기다. 북은 국토완정이 실현된 뒤에 통일공화국에서 함께 살아야 할 남녘 동포들을 살상하려고 전술핵무기를 만든 것이 아니다. 북의 전술핵무기는 한미련합군의 전쟁수행력을 기습적으로, 찰나에 제거하는 급소타격무기다. 

 

그런데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올해 6월 초, 북의 핵무기를 또 다시 짐꾸러미에 비유한 사람이 있다. 2022년 6월 8일 신인호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국회에서 진행된 당-정-대통령실 협의회에서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만일 그의 발언이 거기서 끝났다면, 9년 전의 박근혜식 엉터리 비유를 재탕한 것이어서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데, 그는 재탕발언을 넘어섰다. 그는 2027년 5월에 마감되는 윤석열 정부의 임기 안에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할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개인의견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방침이다. 이런 발언을 들어보면,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5년 안에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할 대책을 세우려고 결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구상하는,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하려는 대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절대무기는 오직 절대무기로만 무력화할 수 있다. 상대무기(재래식 무기)로 절대무기(핵무기)를 무력화한다는 말은 궤변이다. 따라서 핵무기를 무력화할 대책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핵무기를 개발하기는커녕 핵물질도 만들 수 없다. 핵기술이 낙후해서 핵물질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에 예속되었기 때문에 핵물질을 만들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남측 정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 종미우익정부이며, 따라서 미국의 속박 아래서 노비처럼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미국의 속박 중에서 가장 강한 속박은 비핵화 속박이다. 비핵(非核)은 핵이 아니라는 뜻이고, 무핵(無核)은 핵이 없다는 뜻이므로, 비핵화가 아니라 무핵화라고 해야 옳다. 무핵화라고 번역했어야 할 영어단어 디누클리어리제이션(denuclearization)을 누군가 비핵화라고 오역했다. 

 

미국의 노비가 비핵화 속박을 거부하면, 미국은 그 노비를 가차 없이 제거해버린다. 1970년대 말, 박정희가 미국의 비핵화 속박을 거부하고, 프랑스의 핵기술을 은밀히 도입해 핵무기를 만들어보려고 꼼지락거리다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발각되는 바람에 결국 김재규의 총탄에 비명횡사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윤석열 정부가 핵무기를 개발해서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하려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핵무기를 무력화할 대책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밖에 없는데,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윤석열 정부가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하려는 대책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자기들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서도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겠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묘책’이 바로 3축체계다. 윤석열 정부는 자기들이 앞으로 5년 안에 3축체계를 완비하면,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윤석열 정부는 3축체계가 북의 핵무기를 무력화해줄 것으로 맹신한다. 이성적 판단을 저버리고 허상을 믿어버리는 행위가 맹신이다. 

 

윤석열 정부만 그런 게 아니다. 북의 핵무기라는 불가항력적 실체를 마주한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도 그렇게 맹신했다. 윤석열 정부가 선행 정부들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맹신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북의 전술핵탄 보유시기가 윤석열 정부의 출범시기와 묘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북의 전술핵탄은 국토완정을 실현하는 실전무기이므로,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들과 달리 실존적인 핵위협을 받고 있다. 실존적인 핵위협이라는 말은 어느 순간에 전술핵타격을 받고 궤멸할지 알 수 없는, 절박하고 극단적인 핵위협을 뜻한다. 그래서 지금 윤석열 정부는 절박하고, 극단적인 핵위협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필사적인 몸부림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켰다. 윤석열 정부가 이전 정부들보다 더 깊은 맹신의 늪에 빠져든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2. 천궁-2는 무용지물이다

 

2019년 1월 10일 문재인 집권시기의 국방부는 3축체계라는 기존 용어를 핵-다량살상무기대응체계라는 새로운 용어로 변경했다고 발표했다. 대량살상은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고, 다량살상이 문법적으로 맞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대량(大量)과 소량(小量)이라는 말을 무심히 쓰는데, 다량(多量)과 소량(少量)이라는 말을 써야 옳다. 2018년 12월 20일 당시 국방장관 정경두는 ‘2019년 국방업무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3축체계라는 말을 핵-다량살상무기대응체계라는 말로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왜 용어를 바꾸었을까? 당시 언론매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북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고 용어를 바꾸었다는 추측보도를 내놓았지만, 그것은 억측으로 생긴 오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3축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2020년 예산을 2019년 예산보다 7,063억 원이나 더 책정해놓았을 뿐 아니라, 3축체계를 실행하기 위한 세부작전계획과 작전능력도 종전대로 유지했다. 그런 문재인 정부가 3축체계라는 말을 핵-다량살상무기체계라는 말로 바꾸어놓은 것이 북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문재인 정부는 선행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대북적대행동에 매달리면서 용어나 바꿔놓는 어설픈 말장난을 하고 있었다.  

 

2022년 5월 19일 국방부는 5월 18일부터 3축체계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9년 1월 10일 문재인 집권시기의 국방부가 3축체계라는 용어를 핵-다량살상무기대응체계라는 용어로 바꿔놓은 때로부터 3년 만에 3축체계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지난 시기 문재인 정부가 어설픈 말장난으로 자기의 대북적대행동을 가려보려고 했던 꼼수보다, 윤석열 정부가 3축체계라는 용어를 다시 전면에 내걸은 대북적대행동이 차라리 솔직해 보인다. 그러면 3축체계 구축사업은 누가, 언제, 어떻게 시작했고,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살펴보자. 

 

3축체계라는 말은 축이 3개라는 뜻이므로, 그 체계는 3개 체계로 구성된 것이다. 국방부가 3개 체계 가운데 가장 먼저 구축한 것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KAMD)다. 국방부가 미사일방어체계라는 말 앞에 ‘한국형’이라는 어색한 수식어를 덧붙인 까닭은, 자기의 미사일방어체계를 자기 기술로 개발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로씨야의 반항공미사일개발기술을 도입하여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개발했다. 2005년 10월 6일 노무현 정부는 모스크바에서 ‘중거리지대공유도무기체계사업의 상호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고, 2006년 6월부터 로씨야의 기술지원을 받아 그 체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로씨야의 국영군수산업체인 알마즈-안테이(Almaz-Antey)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개발사업을 주도했고, 한화시스템, 엘아이지넥스원(LIG Nex1), 두산 DST 등이 참가했다. 개발사업을 그렇게 추진한 때로부터 5년이 지난 2011년 12월 15일 국방과학연구소는 천궁-2 반항공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고, 사격시험영상을 공개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국방과학연구소는 2010년 9월 미국 미사일방어국(MDA)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공동으로 연구하기 위한 약정서(TOR)를 체결했고, 양측은 2011년 4월 13일부터 14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계획분석실무단(PAWG) 제1차 회의를 진행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로씨야의 기술지원을 받아 2011년 12월에 천궁-2 반항공미사일을 개발했는데, 2011년 4월에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아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궁-2를 만들어놓고, 또 다시 미사일방어체계를 연구한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린가?  

 

국방과학연구소가 로씨야의 기술지원을 받아 개발한 천궁-2 반항공미사일은 사거리가 짧아서 요격범위가 한반도로 국한된다. 그런데 중국과 전면대결을 벌이는 미국은 미국군기지들이 있는 일본렬도, 괌, 알래스카를 조준하고 있는 중국 미사일을 한반도 밖에서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은 ‘미사일방어체계 공동연구’라는 간판 아래로 종미우익정부를 끌어들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종미우익정부는 경비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서태평양의 미국군기지들을 방어해줄 반항공미사일을 개발하는 중이다. 종미우익정부는 민중의 혈세를 민중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중국을 반대하고, 미국에 충성하기 위해 낭비하고 있다. 그런 해괴망측한 행동은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2022년 현재 한국군에 실전배치된 천궁-2 반항공미사일은 사거리가 40km이고, 요격고도가 20km다. 천궁-2 반항공미사일의 요격대상은 남측 언론매체들이 ‘조선판 이스칸데르(Iskander)’라고 부르고, 미국 국방부가 'KN-23'이라는 자의적 별칭을 붙여놓은 조선인민군의 지대지전술미사일이다. 그 지대지전술미사일의 이름은 화성포-11 가형이다. 화성포-11 가형의 사거리는 500km이고, 비행고도는 20km다. 이런 성능만 보면, 천궁-2가 40km 안으로 날아들어온 화성포-11 가형을 요격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미사일방어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항공미사일의 비행속도다. 천궁-2의 비행속도는 마하 4.5다. 마하 4.5를 초속으로 환산하면, 초당 1.5km다. 천궁-2의 비행속도는 초음속(supersonic speed)을 넘지 못한다. 그에 비해, 화성포-11 가형의 비행속도는 마하 6이다. 마하 6을 초속으로 환산하면, 초당 2km다. 화성포-11 가형은 초음속을 돌파하고 극초음속(hypersonic speed)으로 날아간다. 통상적으로, 마하 5 이상의 속도를 극초음속이라고 한다. 

 

초음속미사일이 극초음속미사일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반항공미사일은 극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천궁-2는 화성포-11 가형을 요격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다음과 같은 가상적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황해북도 신계군 신계읍 인근에 있는 미사일기지에서 서울 용산구 용산 대통령실까지 거리는 115km다. 극초음속의 세계에서 115km는 매우 짧은 코앞의 거리다.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가 그 미사일기지에서 화성포-11 가형을 발사하면, 코앞의 거리를 극초음속으로 돌파하여 약 1분 뒤에 용산 대통령실을 타격하게 된다.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한 또 다른 지대지전술미사일은 미국 국방부가 ‘KN-24'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는 화성포-11 나형이다. 화성포-11 나형은 화성포-11 가형보다 성능이 더 향상되었다. 이를테면, 화성포-11 나형의 사거리는 화성포-11 가형보다 190km가 더 늘어난 690km에 이른다. 화성포-11 나형은 당연히 화성포-11 가형보다 더 빠르게 날아간다. 얼마나 더 빠를까? 2019년 8월 10일 한국군 합참본부가 화성포-11 나형 시험발사를 관측하여 얻어낸 성능지표에 따르면, 화성포 11 나형의 최고 비행속도는 마하 6.9를 넘었다고 한다. 경이로운 속도다. 마하 6.9를 초속으로 환산하면, 초당 2.35km다.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가 화성포-11나 형으로 정조준하고 있는 타격대상들 가운데는 부산광역시 남구에 있는 해군기지도 있다. 부산 해군기지는 황해남도 신계읍 인근 미사일기지에서 435km 떨어졌다.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가 신계읍 인근 미사일기지에서 화성포-11 나형을 발사하면 약 3분 5초 뒤에 부산 해군기지를 타격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군 감시레이더가 포착한 미사일공격에 관한 정보가 작전통제실에 전달되는 시간, 작전통제실에서 지휘관이 요격을 결심하고 천궁-2 반항공미사일부대에 요격명령을 하달하는 시간, 미사일전문병들이 천궁-2 발사를 준비하는 시간을 합산하면, 천궁-2를 발사하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약 5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화성포-11 가형은 약 1분 만에 타격대상에 도달하고, 화성포-11 나형은 약 3분 5초 만에 타격대상에 도달하는데, 천궁-2는 약 5분이 지나서 발사된다. 천궁-2를 무용지물이라고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천궁-2가 화성포-11 가형과 화성포-11 나형을 요격하지 못하는 요인은 비행속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화성포-11 가형과 화성포-11 나형은 통상적인 탄도비행을 하지 않고, 특이한 변칙비행을 한다. 저공비행, 수직상승비행, 활공비행, 돌진락하비행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비행을 변칙비행이라 한다. 어떻게 그런 특이한 변칙비행을 할 수 있을까? 화성포-11 가형과 화성포-11 나형의 동체에 부착된 초소형 발동기들이 일정한 고도에 이르러 작동하면, 비행방향을 그처럼 바꿀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천궁-2가 통상적인 탄도비행을 하는 미사일만 요격할 수 있고, 특이한 변칙비행을 하는 미사일은 요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타격정밀도도 굉장하다. 화성포-11 가형은 500km 밖에 있는 승용차만한 표적을 명중하고, 화성포-11 나형은 690km 밖에 있는 승용차만한 표적을 명중하는 놀라운 정밀타격능력을 가졌다. 이것은 화성포-11 가형과 화성포-11 나형이 타격대상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타격대상만 족집게처럼 골라내 외과수술식으로 적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화성포-11 가형의 탄두부와 화성포-11 나형의 탄두부에는 폭발력이 약한 저위력 전술핵탄이 각각 장착된다. 이런 사정을 보면, 북의 전술핵탄이 피해범위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재래식 고폭탄두들이 하늘에서 와르르 쏟아지는 불우박타격은 엄청나게 넓은 범위를 초토화하지만, 외과수술식 전술핵타격은 피해범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은 인구밀집도가 높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대통령실이나 부산 남구에 있는 해군기지를 불우박타격으로 공격하지 않고, 전술핵타격으로 공격할 것으로 예견된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화성포-11 전술핵탄을 더도 말고 딱 1발만 쏘면, 타격대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제아무리 견고하게 구축한 지하방호시설도 한 방에 사라질 것이다.     

 

 

3. 두 쪽으로 분리된 타격순환체계

 

한국군이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에 이어 두 번째로 시작한 3축체계 구축사업은 타격순환체계다. 언어식민지에 사는 미국의 노비들은 타격순환체계라는 우리말명칭을 버리고, ‘킬 체인(Kill Chain)’이라는 영어명칭을 쓴다. 우리말과 영어가 뒤섞인 그런 잡탕말은 미국의 노비들이 쓰는 속어다.    

 

한국군이 타격순환체계 구축사업을 추진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포격전에서 한국군 K-9 자주포 중대가 조선인민군이 기습적으로 발사한 122mm 40관 방사포의 선제타격을 받고 허둥지둥하다가 엉뚱하게 연평도 인근에 있는 작은 섬 무도를 포격했다. 그러자 그 섬에 주둔하는 조선인민군 해안포병들은 85mm 해안포 4문으로 대응사격을 했다. 그렇게 되자 한국군 연평부대는 방사포 사격과 해안포 사격을 연이어 받고 완패했다. 연평도포격전은 한미련합군이 말하는 ‘상시전투태세'가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과 연속타격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현실로 입증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이명박 정부는 2012년 10월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SCM) 제44차 회의에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과 대구경장거리포를 파괴할 수 있는 타격순환체계를 2015년까지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 1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타격순환체계는 불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타격순환체계를 운용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타격준비시간을 단축하는 것인데, 한국군은 10년이 지나도록 타격준비시간을 전혀 단축하지 못했다. 10년이나 지나도록 단축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영영 단축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의 타격준비시간이 실전과 유사한 상황에서 얼마나 걸렸는지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2022년 3월 24일 오후 2시 34분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화성포-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한국군 합참본부는 동해 상공으로 현무-2 지대지미사일 1발, 미국산 에이태큼스(ATACMS) 1발, 해성-2 함대지미사일 1발, 공대지합동직격탄(JDAM) 2발을 발사했다. 그런데 한국군이 미사일 5발을 발사하기까지 준비시간이 무려 1시간 51분이나 걸렸다.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순환타격체계는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탐지하자마자 30분 만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체계라고 한다. 2017년 9월 15일 한국군은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미리 포착하고, 대응발사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선인민군이 미사일을 발사한 시각으로부터 6분 뒤에 대응미사일을 동해 상공으로 발사했다. 

 

하지만 실전상황에서는 한국군이 대응발사를 미리 준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2017년 9월 15일에 그러했던 것처럼, 6분 뒤에 대응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전상황에서 한국군은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미리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미사일전문병들은 갱도진지 안에서 미사일발사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한국군의 감시레이더전파를 차단해주는 자연차폐물 구실을 하는 산골짜기 도로에서 은밀하고 신속하게 기동하여 발사지점에 도착하기 때문에, 한국군의 감시레이더가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조선인민군은 전술핵탄을 장착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했는데, 서해와 동해에 각각 출동한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전술핵탄을 장착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발사를 준비하는 수중발사징후를 한국군의 감시레이더가 탐지하는 것은 100%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실전상황에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탐지하지 못하는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미사일이 화염을 내뿜으면서 하늘로 솟구치는 발사현상만 탐지할 수 있다. 한국군의 순환타격체계는 그런 미사일발사현상을 탐지하자마자 30분 만에 반격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위에 기술한 구체적인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군은 조선인민군이 화성포-17형을 시험발사한 시각으로부터 1시간 51분이나 지난 뒤에서야 동해 상공으로 대응발사를 했다. 전쟁의 운명이 초단위에서 결정되는 현대전의 고속전개양상을 생각하면, 근 2시간 동안 늑장을 부린 한국군은 실전상황에서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참패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3월 24일 한국군은 평시상황에서 대응발사를 준비했기 때문에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실전상황에서는 한국군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응타격준비를 30분 만에 끝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이 민감한 문제와 관련하여 합참본부 전략기획본부 전력발전 차장과 공군 방공포사령관을 역임한 사람이 <월간조선> 2022년 7월호에 실린 대담기사에서 언급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자. 대담자는 한국군이 북의 미사일발사징후(실제로는 미사일발사현상)를 포착하고 30분 만에 타격할 수 있느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지금 상태로는 30분 안에 절대로 못 쏜다고 단언했다. 

 

위에 기술한 두 가지 사례를 보면, 한국군은 미사일발사징후를 미리 포착하고 대응발사준비를 전부 끝낸 상태에서 대응발사를 준비하는 데 6분이 걸렸고, 미사일발사징후를 미리 포착하지 못해 대응발사를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응발사를 준비하는 데 1시간 51분이 걸렸다. 이런 늑장현상이 나타난 까닭은 한국군의 타격순환체계가 두 쪽으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사일에 대한 탐지-추적-경보임무는 공군이 수행하고, 대응타격임무는 육군이 수행하는 식으로 타격순환체계가 분리된 것이다. 타격순환체계가 단일지휘통제로 운용되지 않고, 탐지-추적-경보체계와 대응타격체계로 분리되었으니, 대응타격준비시간이 그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다.  

 

 

4. 초탄을 요격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장난다

 

한국군이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와 타격순환체계에 이어 맨 마지막으로 추진한 것은 다량응징보복(Korea Massive Punishment and Retaliation)이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이것을 ‘참수작전’이라고 부른다. 참수라는 말은 머리를 자른다는 뜻이다. 매우 도발적인 용어다. 한국군이 다량응징보복체계를 구축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15년 8월 20일부터 25일까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무력충돌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방대한 규모의 방사포와 자행포를 보유한 조선인민군 제620포병군단과 잠수함 50여 척으로 편성된 거대한 조선인민군 잠수함대는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남하하여 군사분계선 쪽으로 접근했다. 미국군 합참본부는 군사정찰위성이 보내주는 위성영상자료를 보면서 조선인민군의 엄청난 전투동원태세를 목격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미국군 합참본부는 당시 진행 중이던 한미련합군 북침전쟁연습을 잠시 중단했다. 그런데 군사정찰위성이 없는 박근혜 정부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다가, 나중에 주한미국군사령부로부터 당시 긴박했던 상황정보를 전해 들었다. 식겁한 박근혜 정부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2016년 9월 9일 새로운 군사작전개념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다량응징보복이다. 다량으로 응징보복할 능력도 없으면서, 다량응징보복으로 북의 전쟁지휘부를 제거하겠다는 객기를 부린 것이다.

 

이전에 이명박 정부가 구축하기 시작한 타격순환체계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라는 선행 군사작전개념에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낸 다량응징보복이라는 군사작전개념이 더해지면서 3축체계 개념도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보면, 3축체계 개념도를 완성하기까지 무려 6년이나 걸린 것이다. 

 

그러나 개념도는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작전개념을 완성했다고 해서, 실전능력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위에 기술한 것처럼, 한국군의 타격순환체계와 미사일방어체계는 조선인민군의 전술핵공격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기 때문에 다량응징보복체계도 당연히 작동되지 않는다. 타격순환체계와 미사일방어체계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다량응징보복체계는 있으나 마나한 무용지물이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3축체계가 무용지물로 되면, 조선인민군의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3축체계를 작동하지 못하는 한국군이 작전종심이 매우 짧은 우리나라 작전환경에서 조선인민군의 전술핵탄 초탄을 요격하지 못하면, 한국군은 그것으로 끝장난다.   

 

한국군 지휘부는 실존적인 전술핵위협을 모른 척할 수 없다. 그래서 2022년 7월 6일 충청남도 계룡대에 있는 육해공군 통합본부에서 전군 주요지휘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략회의가 진행되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 전략회의에 참석했다. 그날 전략회의에서 국방부는 ‘핵심 국방현안 추진방안’을 보고했고, 참석자들은 그 방안을 토의했다. 그날 전략회의에서 한국군 지휘부는 지휘통제체계를 통합한 전략사령부를 2024년까지 창설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르면, 육군, 해군, 공군으로 분산된 3축체계를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새로운 지휘통제체계가 앞으로 2년 뒤에 전략사령부라는 이름으로 창설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이 전략무기를 갖지 못했으면서 전략사령부를 창설하려는 것은 허세로 보인다. 더욱이 위에 기술한 것처럼, 3축체계는 평시에도 작동되지 않고, 전시에도 작동되지 않을 만큼 불비하고 무력한데, 그런 3축체계를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전략사령부를 창설하려는 것도 역시 허세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불비하고 무력한 3축체계로 북의 전술핵탄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맹신하더니, 이제는 3축체계를 통합적으로 운용할 전략사령부까지 창설하겠다고 허세를 부린다.   

 

맹신에 사로잡히면, 만화 같은 생각만 자꾸 늘어난다. 불비하고 무력한 3축체계로 북의 전술핵탄을 제거하겠다는 것은 종미우익 만화정치의 소산이다. 불비하고 무력한 3축체계를 운용하는 전략사령부를 창설하겠다는 것은 종미우익 만화정치의 압권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윤석열 정부가 맹신의 만화정치에 심취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존적인 전술핵위협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위기탈출을 포기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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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시대, 독일인들은 신났다... 9유로 티켓의 놀라운 효과

[이유진의 어떤 독일] 파격적인 대중교통 정책이 미친 파장

22.07.11 05:18최종 업데이트 22.07.11 05:18
지금 독일 사회 초미의 관심사는 '9유로 티켓'이다. 독일이 지난 6월부터 운영중인 대중교통 무제한 9유로 티켓. 독일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호응을 받고 있는 정책. 시민들의 눈과 귀, 발까지 사로잡은 9유로 티켓의 의미는 무엇일까?
 
3개월 동안 9유로에 대중교통 무제한


독일 연방정부는 지난 5월 9유로 티켓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던 상황, 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독일 정부의 통합적인 부담 완화 정책(Entlastungspaket)이다. 소득세 인하, 추가 아동수당 등 여러 지원책이 포함되어 있지만 9유로 티켓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9유로 티켓으로 6월부터 9월까지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 버스, 트램, 도시전철은 물론 근거리 기차까지 포함한다. 단, KTX와 같은 고속 기차는 해당하지 않는다.
 

▲ 독일 9유로 티켓. 월 9유로 티켓 한 장으로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 이유진

 

독일 베를린 기준 대중교통 일회권 가격은 3유로, 한달 권의 가격은 86유로다. 물론 베를린 도심에서만 유효하다. 9유로 티켓을 이용하면 대중교통을 3번만 이용해도 소위 '본전'이다. 9유로 티켓이 얼마나 파격적인 정책인지 알 수 있다(독일 베를린 대중교통공사는 "우리가 이렇게 너그러웠던 적은 없었어"라고 9유로 티켓을 광고한다).

 9유로 티켓은 발표되자마자 인터넷 밈이 됐다. 모두가 9유로 티켓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계산하기 시작했다. 독일 언론과 미디어도 신이 났다. 독일 주요 도시에서 휴양지까지, 폴란드, 오스트리아 근교 도시까지 갈 수 있는 노선을 소개했다. 독일 남쪽 끝 뮌헨에서 북쪽 끝 함부르크까지 5번만(?) 환승하면 13시간 만에 갈 수 있다. 

여행 생각에 들뜬 시민들과 달리 독일 정부는 좀 더 미래를 바라봤다. 독일 정부는 9유로 티켓을 통해 ▲운송 사업자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면서 대중교통의 장점을 보여주고 ▲지역 정부는 대중교통 가격에 따른 이용자 규모 변화를 파악하고 ▲시민들은 기존의 이동 습관을 재고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3개월간 기후 친화적인 모빌리티로의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실제로 테스트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입되는 예산은 3개월간 25억 유로. 9유로 티켓으로 인한 교통공사의 티켓 수입 감소 예상 금액이다. 지역 철도 및 대중교통 인프라 개선을 위해 지원되는 '지역화기금(Die Regionalisierungsmittel)'을 통해 보전한다.
 

▲ 독일 베를린 대중교통공사(BVG)의 9유로 티켓 광고. "우리가 이렇게 너그러웠던 적은 없었어" ⓒ 이유진

 
한 달간 2100만 장 판매

9유로 티켓 도입 한 달, 독일 교통기업연합(VDV)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2100만 장이 팔렸다. 기존의 정기승차권 이용자 1000만 명을 더하면 3100만 장이 팔린 셈(정기승차권 이용자는 월 결제 방식인데 9유로 제외한 차액을 돌려받는다). 이용자 설문조사 결과(중복응답 가능) 응답자의 53%가 쇼핑, 병원 방문 등 일상 생활 이동을 위해 9유로 티켓을 이용했다. 39%는 출퇴근 및 통학, 33%는 근거리 나들이, 14%는 휴가 및 여행에 9유로 티켓을 사용했다.

독일 연방정부도 "티켓 구입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0%가 저렴한 티켓 비용, 50% 이상이 자가용 사용 중단, 12%가 대중교통 이용 테스트라고 답했다"며 "9유로 티켓 정책은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9유로 티켓 도입 이후 개인적으로도 자동차 사용량이 줄었다. 그간 베를린에 일상화된 공유 자동차를 수시로 이용했다. 편리함도 있지만 2인 이상 사용시 대중교통보다 저렴했다. 9유로 티켓 이후에는 공유 자동차의 이점이 사라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6월 한 달간은 대중교통만 이용했다. 9유로 티켓이 일상의 이동 습관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이처럼 9유로 티켓을 이용하는 3개월 독일 전 국토가 큰 실험실이 됐다. 정부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사업자, 도시 계획,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불만의 목소리도 물론 있다. 주말마다 주요 노선에 사람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다. 하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긴급지원금을 지급할 때처럼 독일 정부의 보기 드문(?) 결단력과 추진력에 시민들의 호감도는 급상승했다. 직접적인 금전적 지원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 독일 대중교통 이용자 ⓒ 이유진

 
다음은 '기후티켓'

독일은 지금 9유로 티켓 이후를 이야기한다. 비용이 더 저렴하고, 인프라가 개선된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대중교통 이용이 에너지 절약은 물론 기후에도 도움이 된다는 명제를 모든 시민이 체감했다.

다음에 거론되는 것이 '기후티켓(Klimaticket)'이다. 하루 1유로, 연 365유로로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현재 베를린 기준 연간권은 기본 676유로. 거의 절반으로 줄이자는 이야기다. 
 

▲ 독일환경지원(Deutsche Umwelthilfe)이라는 시민단체가 진행중인 '기후티켓' 도입 청원. 9유로 티켓 도입 이전부터 시작되었는데, 호응이 좋아 정치권이나 미디어 등에서도 언급이 이어지고 있다. ⓒ Deutsche Umwelthilfe e.V.

  
시민단체인 독일환경지원(Deutsche Umwelthilfe)이 진행중인 기후티켓 도입 청원에는 15만 명이 서명했다. 독일환경지원 측은 "자동차 없이도 환경 네트워크를 통한 모빌리티(도보, 자전거, 버스, 지하철)로 우리 도시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라며 "친환경 모빌리티는 더욱 확장되고 매력적으로 짜여야 한다. 사람들이 가능한 한 더욱 쉽게 자동차를 두고 나올 수 있도록 독일 전역에 유효한 기후티켓이 도입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9유로 티켓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타고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를린시는 정확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365유로 연간권 도입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후티켓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독일에서 지금처럼 모빌리티 습관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커진 적이 있었던가.

기후티켓이든 365티켓이든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는 지점은 하나다. 9유로 티켓 이후는 그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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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제철소에 일하러 간 23살 아들, 두살배기 아이가 됐다

등록 :2022-07-11 05:00수정 :2022-07-11 08:40

살아남은 김용균들: 2022년 187명의 기록

① 사라진 기억
제철소 협력사 취업해 희망 꿈꿨지만
2014년 6월6일에 시간이 멈췄다
생떼같은 아들의 사회적 나이는 2.45살
그의 답변은 모두 한 단어였다
이희성씨의 옷장 앞에 걸려 있는 새 작업복. 이씨가 쓰러진 며칠 뒤 회사에서 지급한 작업복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희성씨의 옷장 앞에 걸려 있는 새 작업복. 이씨가 쓰러진 며칠 뒤 회사에서 지급한 작업복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터에서 죽음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노동력을 100% 잃은 중장해 1~3급은 1만1533명(2022년 4월 기준)이다. 이 중 20~30대 청년은 187명(1.6%)으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스물네살의 김용균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무리하게 일하다가 다쳤다. 청년 산업재해는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피해자에게도, 그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에게도 크나큰 고통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산재의 경영자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한겨레>가 ‘살아남은 김용균’ 187명을 기록하며 ‘일터에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을 권리’를 다시 말하는 이유다. <한겨레>는 네 차례에 걸쳐 살아남은 김용균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 첫번째는 제철소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청년의 이야기다. 187명의 사고 경위를 담은 별도의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만들었다.
“누가 제 나이를 물어보잖아요? 이젠 잘 기억이 안 나요. 토끼띠라는 것밖에.”
 박인숙(가명·60)씨의 시간은 2014년 6월6일에서 멈췄다. 8년이 흘렀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충일인데도 일하러 갔던 아들 이희성(가명·31)씨는 이날 이후로 어머니가 평생을 끼고 살아야만 하는 두살배기 아이가 됐다. ‘산업재해’, ‘일산화탄소 중독’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던 시절, 전남 광양의 한 제철소에서 터진 일산화탄소 폭발 사고는 아들과 어머니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던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고 아들 곁에 24시간 붙어 있게 됐다.
 
 사고 경위 알지 못한다

 

21살의 나이로 전역한 아들은 2012년 광양에 있는 한 제철소의 협력사에 취직했다. 제철소 내 여러 기계 정비를 지원하는 업체였다. 복학할 수도 있었지만, 사회 경험도 하고 돈도 벌어볼 생각으로 취업을 택했다. 제철소와 협력사들은 동네를 먹여 살렸다. 다른 마땅한 회사도 없었다. 일찍 취업해 경력을 쌓다 보면 월급도 제법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괜히 회사를 보냈다는 생각을 해요. 후회해요.” 어머니는 허공을 바라보는 아들의 손을 맞잡고선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사고 경위를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희성이가 가스에 중독돼 병원에 있다”는 회사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들어갔을 때 아들은 외상 하나 없이 멀끔한 상태였다. “세 사람이 가스를 마셨다고 하는데, 그분들하고 현장에 들어갔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아는 거지. 다친 데가 없는데 눈을 뜨지 못하니 아무런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아들과 함께 현장에 들어간 나머지 두 사람은 며칠 뒤 회복해 면회를 왔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회사의 말만 들었던 어머니는 왜 아들만 일어나지 못했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회사는 사고가 벌어진 이후 비급여항목(인지·언어 치료 등) 의료비를 부담했지만 “다른 지원은 없었다.”

 

희성씨의 한줄짜리 재해 경위를 검토한 제철소 관계자는 <한겨레>에 “고로에서 나온 가스를 배출하는 밸브에서 볼팅(볼트를 조이는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밸브 룸(밸브가 있는 공간)은 밀폐돼 있고 가스가 새고 있는 것을 몰라서 중독된 건데, 가스 감지기를 달고 다니는 조치가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기 하얗게 된 거 보이시죠. 마음을 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는 어머니를 불러 아들의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보여주며 말했다. 자신의 눈에 비친 아들은 중환자실에서 잠시 잠자듯 누워 있는데,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아들의 뇌는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목숨마저 위태롭다는 소견이 나온 것이다. 살더라도 향후 인지 능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심한 후유장해가 지속될 것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이게 말이 되나요. 내 새끼인데, 예를 들어 몸이 다쳐갖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면 알겄는디 어디 다친 곳도 없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께 기도 안 차더라고.” 어머니가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토하듯 말했다.

 

제철소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지능이 낮아진 이희성씨가 어머니와 산책에 나서고 있다. 하루아침에 아이가 된 아들을 보며 어머니 박인숙씨는 “어머니 껌딱지예요”라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제철소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지능이 낮아진 이희성씨가 어머니와 산책에 나서고 있다. 하루아침에 아이가 된 아들을 보며 어머니 박인숙씨는 “어머니 껌딱지예요”라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생때같은” 아들 사회적 나이는 2.45살

 

광양사랑병원→삼천포서울병원→부산대학교병원→전남대학교병원. “치료할 게 없다”는 말에도 희성씨 부모는 더 좋은 재활 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옮겨 다니길 반복했다. 쓰러진 지 한달 만에 아들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못 알아보는 까막눈”으로 눈을 떴다. 말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의 말에 눈을 깜빡깜빡하며 가족들과 의사를 주고받았다. 말을 하고 의식을 회복하는 데까지 3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이 산재를 당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지금도 산재 이전의 기억만을 더듬을 뿐이다. “네” “아니요” 외에 자기 생각을 말로 풀어내지 못한다. 2017년 4월18일, 사회성숙도 검사(사회적 능력, 적응 행동을 평가하는 검사)에서 희성씨의 사회적 나이(Social age)는 2.45살로 측정됐다. 웩슬러 성인용 지능검사 수치는 40이 나왔다. 최하 점수였다.

 

2014년 6월 쓰러졌던 이희성씨가 약 1년 뒤 받았던 언어치료 자료.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14년 6월 쓰러졌던 이희성씨가 약 1년 뒤 받았던 언어치료 자료.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겉모습이 멀쩡한 “생때같은” 아들을 어머니는 포기할 수 없었다. 2017년 3월 요양을 종료할 때까지 희성씨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에 있는 세브란스병원, 경희대병원, 아산병원을 한달 간격으로 돌아다니며 언어 치료와 인지 치료를 받았다. 한 시간에 5만원인 언어 치료는 비급여 항목이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원받지 못했다. 두 다리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간병비도 받을 수 없었다. 언어 치료는 하루에 최소 2시간에서 4시간가량 이어졌다. “당연히 시켜줘야지. 말을 하게 해줘야 하고 1, 2, 3은 배워주게 하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니어요? 사람들이 현장에서 다쳤다고 하면 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대주는 줄 아는데, 안 되는 것들이 제법 많더라고.” 요양은 끝났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의 불면증과 충동 조절 치료에 필요한 정신과 약을 타러 서울을 오간다.

 

2017년 3월 진행된 장해등급심사에서 희성씨는 3급 판정을 받았다. 2년 뒤 실시한 재판정에서도 등급은 변하지 않았다. 장해연금은 매달 200여만원씩 들어왔다. 장해연금의 산정 기준인 3개월간 임금총액을 반영한 결과다. 21살의 나이에 신입직원으로 입사해 1년9개월 일한 희성씨의 임금이 사고 당시 많지 않아서다. 해가 바뀔 때마다 물가상승분을 고려해 장해연금이 월 1만원 정도 오른다. 연금을 받아도 쓸 줄 모르는 아들 곁에 어머니는 ‘단짝’으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 하루 세끼를 챙기고 함께 산책하는 일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 됐다. 딸은 결혼해 분가했고, 남편은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트럭 운전대를 잡았다. “아직은 제가 젊어요. 아직은 괜찮은데….”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휴지를 꺼내 드는 어머니를 보고도 아들은 말이 없었다.

 

이희성씨가 점심에 먹어야 할 약을 챙기고 있다. 서랍 가득한 약을 빠짐없이 챙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희성씨가 점심에 먹어야 할 약을 챙기고 있다. 서랍 가득한 약을 빠짐없이 챙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답변은 모두 한 단어였다

 

산재는 끝났지만, 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2020년 10월 작성된 희성씨의 심리 결과 보고서에는 “(희성씨는) 산책을 하는 것 외에 딱히 즐기는 활동이 없으며 수면도 일정하지 않아 밤잠이 아니라 낮잠을 잠깐씩 잔다. 사고 이후에는 감정이나 충동 조절 문제도 매우 심각해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해 (…) 가장 큰 문제는 피검자(이희성)가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나빴는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라고 적혀 있다. 또 “전문의에 의하면 ‘뇌의 반이 없는 상태’라고 할 정도여서 기능이 퇴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한다. (…) 외양적 모습에는 이런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아 보호자만 답답함을 느낀다”는 내용도 나온다. 사회적 나이는 1.92살로 3년 전 2.45살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꾸준한 치료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제철소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지능이 낮아진 이희성씨의 진단, 치료 자료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제철소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지능이 낮아진 이희성씨의 진단, 치료 자료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억은 증발해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재해자들은 친구들과 함께 즐거웠던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감을 달랜다. 하지만 희성씨를 지키는 이는 가족뿐이다. 친구들과 지인들도 처음에는 “속이 차지 않아 껍데기만 남은” 희성씨를 안타까워했지만,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몸무게도 10㎏ 이상 불어나면서 희성씨의 호리호리한 모습은 사진으로만 남았다. 꾸미기를 좋아했던 20대 시절, 패션에 관심이 많아 하나둘 사 모았던 나이키 운동화는 버려졌고 기분에 따라 곧잘 뿌렸던 향수에는 먼지가 쌓였다. 희성씨의 “의사소통 영역은 1~2살 수준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간단한 언어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대화가 되지 않는”다(심리 결과 보고서).

 

지난 4월4일 첫 방문날, 기자가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을 때 현관문을 열어준 것은 희성씨였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178㎝ 남짓의 건장한 청년이라 중장해를 입은 산재 피해자라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고 당시가 기억이 나나”, “일은 언제부터 했나” 등 산재 경위와 관련된 기자의 질문에 그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산재에서) 회사의 잘못이 있다고 보나”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했지만, 잘못한 부분을 짚어달라는 요청에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질문에 따른 대답은 모두 한 단어였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 https://bit.ly/3AIbWzo" alt="▲ 더 많은 기사를 담은 인터랙티브 페이지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it.ly/3AIbWzo"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643px;">
▲ 더 많은 기사를 담은 인터랙티브 페이지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it.ly/3AIbWzo
 “그 쇳물 쓰지 마라” 절규에도… 올해 5명 세상 등져
‘그 쇳물 쓰지 마라’ 
2010년 충남 당진의 한 철강공장에서 일하다 섭씨 1600도 쇳물에 빠져 숨진 스물아홉살 김아무개씨의 기사에 댓글로 달린 누리꾼 ‘제페토’의 시 제목이다. 10년 뒤인 2020년, 작곡가 하림은 시에 멜로디를 붙였고 그 노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상징이 되었다. 12년 전의 비극은 더는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죽어 나가지 않길 바라는 염원의 노랫말이 됐지만, 철강공장에서의 재난은 오늘도 계속된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철강산업에서 지난 5월까지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12명이 세상을 등졌다. 철강산업은 다른 제조업보다 산재가 많은 업종이다. 재료산업체와 노동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재료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5월 발간한 이슈리포트를 보면 “(2019년 12월 기준으로 금속제조업 사업장의) 재해율은 (제조업 평균 재해율 0.72%보다 높은) 1.45%로 작업조건이 열악한 편”이라고 돼 있다.

철강산업에서 발생하는 산재의 상당수는 인재가 원인이었다. 노동부가 지난해 9월 ‘철강산업 안전보건리더회의’를 열면서 2016년부터 2021년 7월까지 5년7개월 동안 철강사업장에서 산재로 사망한 75명과 그 세부 원인(복수 원인 포함) 153건을 분석했다. 이 중 작업계획을 수립하지 않거나 준수하지 않았던 경우가 79건(52%)으로 가장 많았다. 끼임 방지, 추락 방지, 보호구 착용 등 3대 안전수칙 미준수 등이 55건(36%)으로 뒤를 이었다. 산재 사망 유형도 끼임(20건), 추락(12건), 화재·폭발(11건), 화학물질 누출(9건) 등 다양했다. 최근에는 제철소에서 일하다 폐암 등을 얻은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포스코에서 근무했던 직원 6명이 폐암 등 질환을 산재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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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울려 퍼진 반전 평화의 목소리, “시민의 힘으로 전쟁을 막자”

신은섭 통신원 | 기사입력 2022/07/1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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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이하 민족위)가 9일(토) 오후 6시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평화 버스킹 ‘선제탄핵’’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백자 가수(노래패 우리나라), 송희태 가수와 노래 모임 ‘다시 부를 노래’ 등이 나왔다. 

 

▲ 백자 가수. 이번 행사에서 노래 ‘일어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등을 불렀다.     ©신은섭 통신원

 

백자 가수는 노래와 노래 사이 이야기를 통해 ‘윤석열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려 나라가 전쟁터로 변할 수도 있다’라는 국민의 우려를 전했다. 

 

그리고 백자 가수는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총격으로 죽은 것을 언급하며 “아베의 죽음과 관련해 제일 우려하는 것은 그동안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써온 일본의 극우들이 이 사건을 십분 활용할 거라는 점이다. 무척 우려하는 점이 하나 더 있다. 지금 윤석열 정권에는 김태효 같은 친일파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런 자들이 자위대가 한국에 오는 것을 공론화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불안하다. 우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일본하고 우리는 동맹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 관계가 아니다. 일본은 식민 지배에 관해 사죄하지도 않았다. 경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경제 공격은 아베가 한 거다. 그런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 ‘전쟁 반대’의 의미를 담아 구운 전을 참가자들과 나누었다.     ©신은섭 통신원

 

▲ 노래 모임 ‘다시 부를 노래’는 ‘희망은 그렇게 시작되죠’, ‘우리가 하나로’, ‘이길 가다 보면’ 등을 불렀다.      ©신은섭 통신원

 

자신을 ‘반일행동’ 소속이라고 소개한 한 참가자는 “미국이 무대를 마련하니 일본과 한국이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장단을 맞추고 있다. 미국 주도의 연합훈련에 일본의 자위대와 한국의 군대가 참가하는 일이 잦아지고, 일본에서 출발한 미군 정찰기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전쟁은 말 한마디, 총알 하나로 시작된다. 지금 한반도는 그야말로 전쟁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결탁한 한미일 3각 공조는 반드시 전쟁을 불러올 것이다”라고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위기를 경고했다. 

 

‘반일행동’은 ‘매국적 한일 합의 폐기’, ‘일본의 전쟁 범죄 사죄 배상’ 등을 요구하며 2,300일 넘게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 미 대사관은 아베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를 담아 조기를 걸었다. 행사 참가자들은 미국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군국주의 부활을 위해 애쓰다 죽은 아베의 죽음에 조기를 내거는가라는 의문을 표했다.      ©신은섭 통신원 

 

송희태 가수는 노래와 노래 사이에 “총 쏘고 미사일 쏘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게임에서도 총 쏘는 게 당연했고, 심지어 자동차 게임 하면서도 미사일 쏘는 게 당연했다. 우린 너무 전쟁이라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 다음 세대들은 평화가 정착된 세상에서 전쟁을 위해 알게 모르게 쓰던 힘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송희태 가수.     ©신은섭 통신원

 

송희태 가수는 ‘삶이여, 감사합니다’, ‘나의 땅’, ‘새벽’, ‘우리의 세상’, ‘검은손’ 등을 불렀다.

 

행사에 함께한 시민들은 “평화를 위해 나왔다.”, “아베 존경한다는 정치인들이 있다. 현해탄에 빠뜨렸으면 좋겠다” 등과 같이 참가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진행자의 질문에 답하는 중인 참가자.     ©신은섭 통신원

 

 

사회자는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서명한다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막을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우리가 총이나 칼로 박근혜를 끌어내린 게 아니다. 촛불로 끌어내렸다.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라며, “많은 분이 ‘평화 선언’에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한편 오늘 행사를 주최한 민족위는 7월 4일부터 매일 오후 2시 ‘평화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평화 행동’은 그날그날의 주요 소식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정세 수다’와 ‘주제가 있는 수다’ 등 순서로 구성된다. 

 

첫날인 7월 4일 진행한 한미일 3국의 전쟁광들을 '원점 타격'하는 상징의식, 다섯 번째 날인 7월 8일 진행한 전 부치기가 많은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다. 

 

매일 평화 행동은 7월 27일까지 계속된다. 

 

 7.27 평화 선언 

http://bit.ly/727평화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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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범 모친 종교에 불만, 왜 아베 살해 결심으로 이어졌나

등록 :2022-07-10 13:45수정 :2022-07-10 14:58

“종교 단체에 보낸 아베 영상 메시지 보고 ‘관계 있다’ 생각”
종교단체 홍보 관계자 “용의자 어머니 신자 맞아”
‘개인 증오’를 일방적으로 키워 범행…경찰 계속 수사
용의자 “총 한 방에 6개 탄환 나오는 구조” 진술
아베 전 일본 총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야마가미 데쓰야가 일본 나라니시 경찰서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고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전 일본 총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야마가미 데쓰야가 일본 나라니시 경찰서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고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8일 거리유세를 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용의자가 “어머니가 빠졌던 특정 종교 단체와 아베 전 총리가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 죽이려고 노렸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의 어머니는 실제 이 종교의 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10일 아베 전 총리를 숨지게 한 용의자인 야마가미 데쓰야(41)가 경찰 조사에서 “특정 종교 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어머니가 신자였고, 거액의 기부를 해서 가정이 엉망이 됐다.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고 원망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또 “아베 전 총리가 (종교 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본 뒤 (종교 단체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원래 종교 단체장을 죽이려고 했지만 접촉이 어려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종교 단체는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생긴 종교로, 이 단체 대표들이 만든 민간활동단체(NGO) 행사에 아베 전 총리가 보낸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런 이유 등으로 “용의자는 이 단체를 일본에 확산시킨 사람이 아베 전 총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용의자의 어머니는 이 종교 단체의 신자로 확인됐다. 이 종교 단체의 홍보 담당자는 <도쿄신문>에 “(용의자의 어머니가) 오랜 기간 신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 보도와 경찰 당국의 발표를 보면,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용의자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어머니가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하다가 2002년 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결국 이 회사는 2009년 문을 닫았다. 용의자의 한 친척은 <아사히신문>에 용의자는 삼남매 가운데 차남으로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종교를 둘러싸고 고생을 했다”면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와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야마가미의 경찰 진술과 일본 언론들의 보도 내용이 맞다면, 이번 사건은 “아베 전 총리의 정치 신조(신념)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어머니의 종교활동에 대한 ‘개인적 불만’이 엉뚱한 곳으로 폭발하며 발생한 게 된다. 일본 경찰은 범행 동기가 여전히 분명치 않다며 야마가미 가족과 이 종교단체 사이에 실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등 수사를 계속 진행 중이다.

 

그와 함께 총기 규제가 매우 엄격한 일본에서 용의자가 집에서 손쉽게 총을 만들고, 그것이 전임 총리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면서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용의자는 경찰에서 자신이 직접 만들어 아베 전 총리를 겨눈 사제 총이 한 발에 6개의 탄환을 발사하는 구조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길이 약 40㎝, 높이 20㎝의 크기다. 실제 용의자의 집에선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총이 여러 정 발견됐다. 사건 당시 영상을 보면, 용의자는 이 총을 들고 아베 전 총리의 등 뒤 6~7m 거리에서 총을 쐈다. 아베 전 총리가 서 있던 곳에서 20m 가량 떨어진 선거 차량에도 탄흔으로 보이는 구멍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져, 총의 위력이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에서 화약과 부품을 사서 직접 만들었다. 폭탄도 만들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아, 총을 만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 동안 해상자위대에서 임기제 자위관으로 근무했다. 방위성은 임기제 자위관은 총의 구조를 이해하는 교습 이외에 분해해 다시 조립하는 방법, 사격훈련도 받는다고 설명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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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진짜 일어날지 모른다

  • 기자명 김지혜 현장기자
  •  
  •  승인 2022.07.10 11:40
  •  
  •  댓글 0
 
 
 

호전광 윤석열과 미국의 패권유지에 맞선 투쟁이 필요하다

‘림팩, 역대 최대 규모, 최강 전력 파견’, F-35A전투기 한반도 훈련, 태평양에서 벌어지는 다국적 연합훈련, 한반도 주변 미 전략자산 전개...

진영대결과 갈등의 고조, 언제 어디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 신냉전의 시대다.

연일 한반도 주변, 인도태평양에서는 전쟁연습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역대급 전력이 참여했다고 알려진 ‘환태평양훈련, 림팩’은 지난달 29일부터 8월 4일까지 세계 최대 해상훈련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 일본, 호주, 한국 등 다국적연합훈련도 파트너만 바꿔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 주변에 미국의 전략자산들이 전개되고, 최근엔 F-35A전투기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훈련을 진행했다. 1년 내내 200여 차례 진행되는 훈련이지만 신냉전 시기 진행되는 전쟁연습은 단순한 훈련으로만 볼 수 없다. 전쟁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주적, 선제타격’... 호전광 윤석열

호전광이라 불리는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북을 주적으로 삼고, ‘선제타격은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우리의 애티튜드’라고 강조하며 ‘힘에 의한 평화’ 기조를 강조했다. 이후 윤 정부는 ‘북한정권·북한군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을 국방백서에 명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나섰다. 인수위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는 북 전쟁지도부와 핵심시설에 대한 고위력·초정밀 타격 능력을 확충한다는 과제뿐만 아니라,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의 실질적 가동과 자산 전개를 위한 한미공조시스템 구축 및 정례연습 강화의 내용을 담았다.

최근에는 전략사령부를 단계적으로 창설해 한국형 3축 체계의 효과적인 지휘통제와 체계적인 전력 발전을 주도하겠다고까지 했다.

이에 북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북 선전매체는 “하늘과 땅, 바다 등 모든 영역에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윤석열 패당의 북침 대결소동은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에 매달리며 우리를 한사코 압살하려는 미국의 북침전쟁의 돌격대, 식민지 하수인으로서의 추악한 몰골을 드러낸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신냉전 본격화

얼마 전 막을 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한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가 파트너국으로 초청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새 전략개념이 채택됐으며 중국은 가치공유 국가가 아닌, ‘구조적 위협’으로 첫 언급했다. 또한 러시아는 심각하고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나토정상회의는 미국의 의도대로, 노골적인 대중국견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각종 회의체계를 이용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대중국견제를 넘어, 나토까지 끌어들여 대서양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이처럼 미국은 유일 패권을 쫓으며 신냉전 대결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유일 패권의 지위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G2 중국의 부상으로 경제부문에서 더 이상의 독점을 유지할 수 없게 됐으며,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며 20여년 간 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국엔 도망치듯 철수했다. 나토 확장으로 발발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미국은 승산없는 처절한 싸움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득을 보고 있는 건 미국의 군수업체일 뿐.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며 패권유지를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일본과 높아진 협력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일정상회담, 한미일외교장관회담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기고만장한 일본 태도에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일본은 참의원선거(7월 10일) 이후 헌법 개정에 힘을 실을 것이 전망되면서 군사대국화를 위한 재무장과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이 예상되고 있다. 한미일 전쟁연습도 더욱 강화될 것이 예상된다.

▲ 공군 F-15K 편대 초계비행 모습. [사진 : 뉴시스]
▲ 공군 F-15K 편대 초계비행 모습. [사진 : 뉴시스]

미국 패권 중심이었던 세계질서가 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최근 콜롬비아에선 좌파세력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일명 ‘핑크타이드’ 물결이 중남미를 휩쓸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끊임없이 일극 패권을 위해 진영대결을 일삼는다. 이로 인해 파생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미국은 패권유지를 위해 신냉전 지금 이 시기를 이용할 것이고, 여기에 호전광 윤석열 정부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 일본 역시 이 기회를 틈타 군사대국화 야욕을 실현할 것이다. 전쟁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시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누가 전쟁을 찾아다니는가. 치닫는 미국과의 대결전. 이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전쟁연습을 막아내고, 전쟁을 막아야 할 때다. 미국의 다음 전쟁터는 과연 어디일까. 그곳은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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